노출이 된다 라는 것은 정말 큰 광고이다. 그 공간이나 사물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이 인지하지 못 하면 그 사람에게 그 공간이나 사물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그 동안 많은 이름 모를 것들이 노출되어 오며 살았다. 노출 당했다. 가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커뮤니티뿐이겠는가? 대중매체 길거리의 광고지.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호떡, 닭꼬치 같은 것들 모두.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았을 건데 눈에 띄면 사람을 혹하게 만들어서 소비하게 한다.
이번에는 울릉도에 노출당했다. 그리고 울릉도로 떠났다.
울릉도는 지금까지 나에게 올드한 관광지. 주변 사람들의 입에도 잘 오르내리지 않는 관광지.
독도를 이야기 할 때나 언급되는 섬. 정도의 이미지였다. 주변에 가는 사람이 잘 없고 인터넷에도 거의 노출되지 않다 보니 이미지 자체가 거의 없는 바다 위에 있는 작은 섬일 뿐이였다.
깨끗하고 사람이 없다. 물놀이 하기 좋다. 라는 포인트로 시작된 이번 여행은 여행을 준비하기 아주아주 쉬웠다. 울릉도는 아주 작은 섬이고 관광지와 식당들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적이라 검색 범위가 너무 좁았기 때문 ! 신나는 기분으로 동그란 섬을 그려 가고 싶은 스팟에 동그라미를 쳤다.
갈 수 있을까 ? 갈까 말까 하던 고민은 숙소를 예약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숙소가 극과 극이다. 라는 후기 대로 시골분위기의 숙소와 가격대비 아주 비싼 숙소들로 숙소 분위기가 양분화 돼 있었다. 하루는 15만원 짜리 푸근한 숙소 하루는 29만원 짜리 카라반으로 수정이가 원하는 대로 예약을 했다. 음식이 비싸고 맛이 없다는 후기들이 많아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많이 하자는 일정을 짰다.
목금 잠을 못 자는 바람에 토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눈을 붙이려는데 좀처럼 잠이 안 왔다. 잠이 안 오긴 수정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누워 있다 그냥 일어나서 짐을 챙기기로 했다. 호기롭게 구입한 구명조끼와 스노클링 마스크를 잘 쓸 수 있을 것 인가!
구워 먹을 고기도 사고 하다 보니 1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출발하는 여행이 처음이라 나도 수정이도 기분이 이상했지만 설레고 떨리고 신났다. 노래를 들으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보니 시간은 2시를 향해가고 못 참을 정도로 잠이 쏟아져서 안 자야지 안 자야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고 있었다. 3시쯤엔 수정이도 너무 졸렸는지 휴게소에서 잠시 잠을 청했고 둘 다 완전 기절했다. 운전을 안 하고 조금 더 일찍 졸기 시작한 탓인지 난 다섯시쯤 정신이 들어서 후포항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새벽 다섯시에 운전을 하는 건 살면서 거의 없는 일이였다. 동트기 시작한 새벽의 풍경들이 생경하지만 아름다웠다. 보통 밤을 새고 맞이 하는 아침은 탁한 느낌이 든다. 내 정신이 몽롱한 탓인지 아름다움과 새로움보다는 비몽사몽간에 새벽을 맞는 느낌이고 몸도 무겁게 느껴진다. 이 날은 나름 하루를 새로 시작하며 새벽을 맞이하니 정신도 점점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져갔다. 오른편으로 울진의 바다가 보이며 새빨갛게 떠오르고 있는 동그랗고 커다란 태양. 바닷물결에 붉은 태양이 길게 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모양새가 찬란했다. 수정이를 깨워 풍경을 보라고 이야기하자 잠시 태양을 보다 10초만에 다시 잠들었다. 울릉도 여행에서 가장 처음 만난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만큼 멋있었다. 사진으로 담아 머리맡에 두고 싶은 그런 인상 깊은 선명하고 불타는 듯한 다홍 핑크색 태양. 저런 무드등을 거실에 달아놓고 싶었다.
태양이 완전히 떠올랐을 때 후포항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벌써 차량도 사람도 많았다. 모두 새벽을 달려 도착했거나 근처에서 자다 비몽사몽 나온 듯 뿌성뿌성해 보이는 모습들이 우리 일행과 마찬가지였다. 수정이가 차량을 선적하고 나는 발권을 했다. 아리랑 태무라는 청소년 단체 관광객들이 하늘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모여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구석에 앉아서 쉬다 항구 구경도 하다 배가 보이는 야외 벤치에 앉아 요거트도 하나씩 까먹었다.
수정이가 배를 타자마자 5층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해서 타자마자 뛰어 갔더니 창문앞에 메트리스를 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메트리스 두 개를 폈더니 완전 멋진 자리가 됐다. 이 자리는 정말 심하게 최고였다. 창 밖 풍경도 잘 보이고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고 너무 사람이 많이 다니는 통로도 아니고 아주 아늑하니 멋졌다. 옆자리 아저씨가 과자를 나눠주셨다. 집에 돌아오는 배안에서도 어떤 아줌마아저씨가 맛동산을 주시고 맥주는 없다고 농담하셨는데 어른들의 그런 따스함이 좋았다.
배를 한 바퀴 둘러봤는데 노래방, 편의점, 휴게공간이 있고 갑판도 두 개 층으로 나눠져 있어 컸다. 옥상(?)은 완전히 사방을 다 볼 수 있었고 5층은 후미쪽과 옆면으로 트여 있었다. 삼김과 오뎅국물을 먹고 눈을 붙이자 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울릉도 란다. 항구에 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를 직원들이 빼줘서 내리자 마자 차를 탈 수 있었다. 여기가 울릉도야 ? 하면서 신기한 기분으로 차를 타고 갔다. 망망대해 바다가 끝없이 보이고 항구가 정말 아늑하니 시골 분위기가 났다. 섬안으로 들어가면 경사도가 심하고 길이 꼬불꼬불해서 운전하기가 편한 도로는 아니였다. 그래도 낯선 섬 풍경이 좋아 돌아다는 길이 내내 재미있었다.
전주식당이라는 곳에 오삼불고기를 먹으러 갔다. 작고 아늑한 시골식당 분위기 였는데 일하시는 분들의 분위기가 특이 했다. 카운터에 꼼짝도 안 하고 앉아있는 다운상의 아저씨, 식탁에 앉아 있는 그 아저씨와 똑같이 생긴 살찐 웃상의 단발머리 젊은 여자(메신저), 부지런히 일하는 가장 늙은 할머니와 주방의 똑같이 생긴 아주머니. 다운상의 아저씨가 좀 모자란 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기억력도 좋고 말씀도 잘 하는 아주 밝은 분이여서 나중에 놀랐다. 무례할정도로 수정이를 빤히 쳐다봐서 수정이가 모자란 사람인줄 알고 참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정말 친절하고 밝은 성격이며 어떤 말이든 재미있게 하셨다. 나온 음식은 ! 최근 먹은 오삼중에 오징어가 제일 많고 싱싱탱탱했다. 이렇게 오징어가 실한 오삼불고기를 먹은게 얼마만이지 ?! 간은 적절하지만 식을수록 단맛이 좀 강해졌다. 그리고 밑반찬들이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다 직접 만든 나물 반찬들이였다. 버섯, 명이 장아찌 등에서 싱싱한 자연의 향기가 났다. 지금까지 먹어본 명이중에 제일 향기로웠다. 좀 과장해서 입속에 울릉도의 자연이 펼쳐지는 그런 맛의 나물 반찬들이였다.
같이 나온 시래기 된장안의 시래기도 아주 실해서 정말 기분이 좋은 첫 식사였다.
배부르고 행복하게 밥을 먹고 울릉도의 해변가를 달렸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아무것도 없이 자연만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해변도로였다. 그 풍경이 비현실적이라 느껴졌다. 오른쪽에는 망망대해 새파랗고 맑고 잔잔한 바다, 검은 바위에 부서지는 흰파도 높은 바위 절벽. 도로에는 차량이 거의 없이 고즈넉해서 울릉도답게 멋졌다. 완벽한 해안도로였다.
태양이 아주 땡땡하니 뜨겁게 더웠다. 내수전 몽돌해변쪽에 가니 길에 차를 세워놓고 그늘막을 펼치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따라줘야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 바로 물에 들어가보자고 권했다. 돗자리 의자 물놀이 용품등을 챙겨서 다리아래의 그늘에 돗자리를 폈다. 차안에서 수영복을 갈아입는데 쪄죽을 것 같았지만 시원하게 입고 바닷가에 앉아 과자와 맥주를 먹으니 참 좋았다.
커다란 몽돌이 있어서 철썩 철썩 강한 파도가 위험하게 다가 왔고 물에 전혀 들어갈 수 가 없었다. 몸을 가누기 전에 또 파도가 치고 또 치고 바닥은 돌이 미끄덩해서 다칠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울릉도는 섬전체 해안이 날카로운 바위라서 몽돌이 깔린 곳은 정말 해수욕장이 맞다.
시멘트를 발라둔 쪽으로 입수를 했다. 하나도 차갑지 않고 기분 좋게 시원한 온도의 물이 갑자기 온 몸을 감쌌다. 다리를 저으니 오리발의 힘으로 앞으로 휙휙 나갔다. 스노클링 마스크가 불편해서 물 속을 보는 건 쉽지 않았지만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바닷물에 둥실 둥실 들어가 온 몸을 적시는게 도대체 얼마만이지 ?? 23살 때 인가 윤선이랑 해운대에 간 이후 처음같다. 그때도 구명조끼 없어서 애매하게 놀았을 걸. 바다가 너무 좋다. 소금물을 씻어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할만큼. 파도가 그냥 떠 있기만 해도 재미있게 우리를 데리고 놀아준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눈이 부시지만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생명의 보고,시작,기원인 바다. 한낮의 얕은 바다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보물이다. 울릉도의 깨끗한 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다에 쓰레기가 둥실 떠있는 법이 없다. 아주 맑다. 내년에도 또 와야겠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공항이 생기기 더 일찍 전에 울릉도를 알 걸 그랬다.
물 위에 좀 떠 있으니 수정이가 물멀미를 호소했다. 올라오는 것도 일이였다. 파도가 치고 밀려나간 틈에 재빠르게 휙 올라와야만 했고 큰 오리발이 조금 거추장 스러웠지만 바닥이 너무 뜨거워 꼭 오리발을 신어야만 했다. 물놀이를 마무리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다시 달렸다.
관음도, 삼선암이 보였는데 삼선암의 비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죽도도 보여서 죽도에 사는 김유곤씨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터널이 원래의 아름다운 바위를 파괴하지 않고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조금 위험할지 몰라도 가까이서 바라본 바위는 너무 아름다웠다. 천부항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낡았지만 깨끗했고 물놀이에 지친 우리가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 그만이였다. 조금 누워서 쉬다가 노을을 보기 위해 서둘러 나갔다.
티끌 하나 없이 눈 앞에는 그저 바다와 하늘이 있었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하늘색 핑크색 보라색 감색 흰색 주홍색 등 인상파 그림으로만 표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노을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너른 하늘을 가리는 그 어떤 빌딩도 건물도 간판도 없었다. 살면서 거의 보지 못 한 놀라운 풍경이였다. 왼쪽에도 그냥 바위와 산만 보이는 순간이 더 많았다. 공기도 부드러웠고 적당한 더위와 시원한 바람이 극락같았다. 정말 아름다운 해질녘이였다.
학포 부근의 아름다운 노을을 조금 보다가 우리도 저녁을 먹을 곳을 펼치기 위해 근처를 좀 돌아보았다. 마땅히 어디에 구이바다를 펴야 할지 잘 알지못하는 우리는 잠시 투닥거렸지만 항구에 자리를 펴고 앉으니 향기로운 바다내음과 고즈넉한 분위기에 금방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끝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옆 자리에는 낚시를 하는 커플이 있었는데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돌아갈 때 까지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 했다
미리 사온 소고기를 구워서 참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 행복. 소고기보다 대패가 아주 맛있었다. 양념도 딱 적당히 준비돼 있어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내 장비와 차림을 비교 할 일도 없었다.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건 어린시절 이후로 처음보는 것 같다. 아 울산 정자?쪽에서 본 하늘도 생각나고. 별이 영롱하게 빛났다. 렌즈를 낀 덕에 별을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공기가 맑고 바람이 살살부니 술도 전연 취하지 않았다.
해충도 없고 본 벌레라고는 작고 귀여운 빨간 무당벌레 한 마리 였다.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만 날개를 펼 수 있다고 한다. 독도 소주병에 앉은 보석같은 무당벌레는 정말 꼭대기까지 길을 터주니 날아갔다. 중간 지점에서는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해서 도망을 못 간다고 한다. 정말 소중하고 귀여운 친구였다.
소고기, 대패만 먹어도 배가 불렀는데 수정이가 라면까지 먹자고 해서 말 그대로 배가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날씨와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틀자 수정이는 야외인데도 불구하고 잠들어버렸다. 그 노래는 별이진다네였다.
혼자 영차영차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늘 고기도 다 구워주고 운전도 해주는 고마운 수정이. 텐트도 펴고 접고 많은 것을 해주려하는 고마운 친구다.
정말 완벽한 시간이였다. 숙소에 돌아와 술김에 노래를 좀 듣다 나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홉시쯤 눈을 떴다. 일찍 잠든 수정이가 일찍 일어나 벌써 짐을 거의 정리해둔 상태였다. 아침으로 따개비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울릉도의 서쪽은 인적이 드물었고 도로에 차도 적었다. 우리는 크루즈를 탔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다 따개비칼국수집에 있었다. 사진으로 보기에 국물 색이 유난히 진해서 온 집이였는데 화장실에서 더 맛있는 따개비 칼국수를 위해 노력한 것들이 적혀 있고 진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적혀 있어서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엉겅퀴 소고기국과 따개비 칼국수 반찬들은 아주 맛있었다. 반찬들이 다 약초같이 진한 맛이였다. 호박식혜도 사봤다. 호박과 식혜 둘 다 별로 안 좋아하지만 어쩐지 울릉도 호박식혜는 맛있었다.
더운 날씨 속에 대풍감이라는 곳으로 갔다. 대풍감 현풍감하면서 이름이 입에 잘 익지 않았던 곳이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힘든 여정이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서 본 경치는 정말 좋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많지 않은 사람들.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은 통유리로 돼 있어 앞뒤가 뻥뚫려 잘 보였다. 내리자 마자 모노레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땀범벅인 것이 보였고 그것은 곧 우리의 미래였다. 산 길은 그늘이라 그리 덥지 않았지만 가끔 만나는 햇빛은 정말 뜨거웠다. 산길을 깨끗했고 아름드리 드리워진 수풀들이 정겨웠다. 대풍감전망대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게 불었다. 끈적하지만 시원하고 강한 바람에 거기에 아주 오래 서 있고 싶었지만 밑이 완전 투명하거나 뚫는 전망대라서 나는 좀 두려웠다. 전망대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자 아래에 정말 투명한 바다와 파도 검은 바위가 아름답게 펼쳐진 것이 보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무서움도 잠시 잊고 경치를 구경했다. 그 한 부분만 지나면 또 바람이 아예 없이 뜨거웠다. 대풍감 1.2 전망대가 따로 있었지만 수정이를 위해 경치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다음에 또 와서 다시 보러와야지 하고 다짐했다. 우리 여행의 평화가 지켜지는 순간이였다.
학포항이나 다른 어딘가에 갈까도 싶었지만 너무 더워서 카페에 가야만 했다. 꼭 가야만 했다. 아주 급하게 카페 올라로 갔다. 코스모스라는 아주 비싼 펜션 옆에 있는 카페였고 대기업 자본이라 카페도 예쁘고 메뉴도 먹음직스러웠다. 개인 카페 특유의 촌스러움이 없었다. 아주 귀엽고 맛있었던 팥빙수는 더위를 날려주기에 적당했다. 우리 숙소 바로 옆이기도 해서 팥빙수를 먹고 경치도 보다가 바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작은 카라반이였고 29만원이나 했다. 수영장이 멋졌는데 이용하지 못 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아주 마르고 까만 할아버지가 숙소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계셨는데 손흥민아버지같은 외모셨다. 그 분은 정말 날렵하고 부지런하게 이 크고 관리하기 힘들어 보이는 펜션을 관리하셨다. 펜션 입구는 정말정말 경사가 심해 눈이오는 날은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울릉도는 눈이 정말 많이 온다는데. 여긴 폭설이 오면 아주 오랜 시간 감금될 것 같은 오르막이였다. 손흥민아버지 관리인은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수영장에 있는 벌레를 뜰채로 건지고 잡초도 뽑고 어디 높은 돌 위에도 올라가 높이 있는 넝쿨도 제거하면서 자기 몫을 다 하고 계셨다. 주인이거나 아주 돈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너무 부지런한 사람. 그 분은 투숙객들의 짐을 들어주기도 하셨다. 카라반은 높은 계단위에 있어 카라반에 한 번 오르고 내리는 것만 해도 큰 운동이였다.
너무 예쁜 숙소 수영장에 들어가 볼까도 싶었지만 어딘가 나가보자 하고 다시 출발했다. 학포항에 갈까 하다 천부항에 갔다. 어제만 해도 해수풀이 있어서 아기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오늘은 조용했다. 텐트도 치고 준비를 해서 바로 물에 들어갔다. 방파제가 둘러쳐진 공간이라 파도가 적당했고 바닥에 돌맹이라서 물고기가 아주 많았다. 놀기 아주 좋은 곳이였다. 하염없이 둥둥 떠다니며 물고기도 보고 수영도 했다. 첫 날에는 마스크가 적응이 안돼서 계속 썼다 벗었다 하며 얼굴이 쓸려 아팠는데 이 날은 물안경만 가지고 가니 오히려 편했다. 기분 좋은 파도가 밀려오고 또 쓸려가고 우리는 둥둥 떠다녔다.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니기도 혼자 다니기도 했다. 알록달록 줄무늬, 핑크색 가로무늬, 열대어처럼 화려한 색상 등 아주 많은 물고기를 봤다. 그 다음날 독도 잡지책을 보니 그 물고기들이 다 있었다. 울릉도 근처에서 서식하는 스노클링으로 자주 보는 물고기들 코너에 말이다.
물놀이를 열심히 하고 텐트로 나와서 쉬었다. 따뜻한 기운이 나오는 샤워장이 있어서 정말 쾌적했다. 물은 아주 차가웠지만 천장에 달린 장치에서 따뜻한 열기가 나왔다. 바다수영은 하고 나온 후가 문제인데 바다 바로 앞에 샤워장이 있으니 정말 쾌적했다. 샴푸로 머리까지 감으니 아주 천국. 은근히 바다수영이 힘들었던지 텐트에 누워서 과자를 먹다가 노래를 틀자마자 잠들어버렸다. 허윤진 노래를 들으면서 꽤 곤히 잤다.
어느샌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또 어느샌지도 모르게 일어나서 남은 밥 김치 고기를 넣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너무너무 맛있었다. 항상 음식들을 열심히 만들어주고 더 맛있게 보이게 세팅도 해주는 수정이에게 감사를 !!
진짜 저녁은 독도새우를 먹을 예정이였기 때문에 너무 거하게 먹지 않고 간단히(?) 먹고 다시 일어났다. 독도새우와 탕을 먹고 오징어회를 포장해서 돌아와서 이차를 먹을거라고 열심히 계획을 짜서 출발했건만 거의 30분을 걸려 울릉도를 돌아돌아 가로질러질러 갔는데 우리가 갔던 시기에 태풍 때문에 새우잡이 배가 출항하지 못 해 새우가 없단다. 울릉도 어디에 가도 없을거다 급냉한 새우를 찜으로만 팔고 있다고 했다. 인생 음식 독도새우!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데 울릉도에서는 먹지 못 한다니 정말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오징어회와 해산물을 먹기로 하고 포장을 하러 또 이동하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새우를 사러 이동하는 길에 세자매집에서 돌판에 구워파는 오징어를 작은놈으로 두 마리 샀는데 정말 정말 맛있었다. 난 오징어를 짱짱 좋아하나 보다. 수정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 듯 하고. 너무 맛있어서 사자마자 계속 뜯어먹었고 그 다음날도 가족들이랑 원장님 선물용으로도 또 샀다. 내껀 작은 오징어. 선물용은 큰 오징어. 어머니드릴 피데기도 내 기준 큰 돈주고 샀다. 잘 드시고 계시려나. 9월이 되면 태하 오징어를 다시 구입하리라 !! 오징어는 울릉도에서 직접 사도 꽤 비쌌다. 예전엔 정말 저렴했는데 중국놈들 !! 역시 도움이 안된다.
수산시장같은 곳에 가서 오징어회와 해산물을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덧 마지막 날 밤이 깜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너무 아쉬웠다. 컴컴한 숙소의 야외테이블로 나왔다. 생각보다 벌레가 별로 없었고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 순간 하늘에 엄청 빠른 속도로 하얀게 휙 지나갔다. 수정이가 UFO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30초도 안돼서 그게 갈매기 라는 걸 알게됐다. 늦은 밤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본 건 처음이였다. 그렇게 빨리 낮게 날아다니는지 몰랐다. 한 번 알고나니 갈매기들이 자꾸 자꾸 보였다. 우리가 울릉도를 떠나는 날 다음날부터 오징어 축제를 한다더니 그걸 연습하는 것 같은 음악과 레이저 불빛이 밤하늘을 갈랐다. 너무 시끄럽지도 않게 잔잔히 음악소리가 들려와 아주 적당한 BGM이 돼 우리의 적막을 막아주었다.
오징어회는 평범했고 해산물은 원래 안 좋아하는거라 그냥 쏘쏘였다. 가장 달달한 건 공기와 울릉도라는 배경이였다. 공기가 좋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니 어제도 그렇게 술이 취하는데 안 취하는 느낌! 이래서 어른들이 산에서 술을 드시나 싶다. 벌레가 많아서 야외에서 술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 순간은 정말 좋았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그 날의 부드럽고 적당히 축축하면서 달달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곧 돈벌레와 바퀴벌레가 나타나 숙소 안으로 도망치긴 했지만, 다른 그 어느곳의 야외보다도 울릉도는 해충이 적었다. 숙소에 들어와 좀비버스를 보면서 해물라면 먹다보니 어느새 수정이는 잠들도 나도 내일의 일정을 위해 일찍 누웠다. 비싸지만 좁고 축축한 숙소에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인지 내가 먼저 눈을 떴다. 빨리 울릉도에서의 새로운 또 하루를 즐기고 싶어서 였나 보다. 그런데 창 밖은 어둡고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회색 하늘이 보이고 작은 카라반의 창문으로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꽤 부는 것 같았다. 우선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배가 뜰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그 다음은 오늘 하루 일정을 제대로 보내지 못 한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침에 숙소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못 하겠네 싶어서 아쉬웠다. 밖으로 나가보니 막상 안에서 느껴지던 것 만큼 비바람이 강하진 않았지만 바람이 서늘해서 물에 들어갈 날씨는 절대 아니였다. 정리 정돈을 해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출발했다.
오징어 내장국아니면 물회를 먹으러 갔는데 물회는 안된다고 오징어내장국을 먹으란다. 아주 작고 허름한 가게는 응답하라에서 볼법한 1990년대 분위기가 풍겼다. 커다란 빨간 글자로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시계 띠벽지 식당 내부에 집안 살림같은 것도 많았는데 모든게 정답고 아늑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아주 커다란 식혜통을 통째로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내가 식혜를 안 좋아하는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넉넉한 인심이였다. 가게앞에 다육이 화분을 수두룩 빽빽하게 키우는 그 전날엔 몸이 안 좋아서 가게를 열지 않았다던 아주머니. 가게 내부는 주방으로 가는 길이 점진적으로 여러단의 계단같은 직각 경사로로 이어져 있고 가게 내부는 이 식당이 20년 정도는 운영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도록 잡동사니가 아주 많았다. 아주머니가 그냥 정리를 잘 안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건지 가게가 정말 오래된건지. 난 울릉도의 이런 소소한 생활감과 낡음의 흔적들이 모두 좋았다. 반찬들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명이나물 김치를 처음 먹어봤는데 명이의 감칠맛에 김치양념이 들어가니까 혼을 쏙 빼놓게 맛있어서 집에 사가고 싶을 정도였다. 4-5월이 되면 판다고 하던데, 사가지 못 한 것이 너무 아쉬운 맛이였다. 오징어 내장국도 얼큰 시원했다. 나물 반찬들도 너무너무 맛잇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섬을 마지막으로 돌아돌아 저동항쪽으로 이동했다. 해안산책로를 가는 길이였는데 파도가 강해서 해안산책로 접근이 안된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근처에 갔는데 거기 바다앞에 마을을 가로로 막고있는 기다란 방파제와 촛대바위가 있었다. 길고 긴 방파제는 약간 높게 돋워진 부분이 있었고 그 위에 올라가니 바다와 작은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게 참 신기했다. 서울이였으면 수두룩 빽빽하게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 했을텐데. 까만 용암바위에 녹색 이끼와 풀, 심지어 나무까지 자라있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까만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물거품과 진녹색 바닷물. 강한 바람으로 머리카락이 점점 끈끈해지고 꼬여 갔지만 그 길을 느리게 걷고 걸으며 울릉도에 스며들었다. 단 한순간도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했다. 저동항은 항구였는데도 바다위에 플라스틱 쓰레기나 과자봉지같은게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동해에서 본 항구의 바다는 시커멓고 깊고 더러운데 이런 맑은 항구라니.
배에서 먹을 아리랑 김밥도 포장해서 슬슬 항구쪽으로 이동했다. 김밥을 포장하기 위해 들어가본적이 없던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최근엔 가본적 없는 깡시골 분위기가 정겨웠다. 아주 좁디 좁아서 오토바이나 다닐 법한 그런 골목에는 낡은 집들이 창문도 다 깨진 채 있었는데 스산하거나 흉흉하기보다 관광객의 시선이라 그런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주 어릴 때 경주 살 때, 아니면은 이모네와 가까운 평리동 살 때 본 것 같은 그런 골목의 풍경들. 차도 다니지 못 하는 좁은 골목은 뭘로 다 물건들을 실어날라 장사를 할까. 오토바이나 손으로 들고 옮길까. 그래도 관광지인지라 그런 작은 골목의 슈퍼마켓에 라면기계도 있었고, 피자가게도 있었다. 시간만 허락했다면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골목 사이 작은 쉼터 겸 광장같은 그 곳에 앉아서 김밥을 먹고 싶었다. 작은 골목의 정겨운 풍경은 발걸음을 자꾸 아쉽게 한다.
항구 방면에 위치한 플라워카페로 이동했다. 우리처럼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막간의 시간을 보내려 온 사람들로 자리가 다 차있었다. 벽을 모두 채운 통창에는 바다가 가득했다. 커피도 의외로 맛있었다. 파스테톤의 테트라 포트 축소 장식이 기억에 남는다.
울릉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렇게 좋다는 해안산책로도 못 가본 슬픈 여행. 하지만 한 조각의 순간의 좋지 않았던 시간이 없었던 여행. 또 와야지 라는 생각에 이글이글 불타며 차를 선적 대기줄에 주차했다. 가볍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천장이 있는 야외 주차장 아래에 돗자리를 의자 삼아 앉았다. 옆에 있던 모르는 중년의 커플이 맛동산을 나눠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따뜻한 어른들.
돌아오는 배에는 가는 배안에서 교훈을 얻은 탓인지 사람들이 모두 갑판의 너른 공간에 매트리스를 펴고 앉으려고 난리였다. 1시간 줄서면 4시간이 편하다면서. 우리는 이번에 반대로 평실안을 노렸다. 우리방이 아닌 다른 방에 들어갔는데 따로 표검사는 하지 않아서 텅텅 빈 조용한 방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조금 더 차긴 했지만 옆 방에 비하면 양반이였다. 수정이는 뭔가 주변 상황을 살펴서 그때 그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시종일관 주변 상황을 살폈다. 평소 내내 긴장한 채 있어서 밤에 잠을 잘 자는 걸까.
난 밤에 푹 잔 덕분에 평실안에 고요해졌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노래를 들었다가 졸다가 했는데 인터넷이 안 터져서 그런지 자꾸 헤드폰 연결이 끊어진 채 노래가 꺼져 있었다. 바람을 맞으러 갑판에 나갔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갑판은 360도 사방이 모두 바다뿐인 망망대해였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바다와 나만이 있었다. 혼자됨을 즐기기에 좋은 공간이였다. 육지방면으로 해가 뉘엿뉘엿지며 핑크색과 하늘색, 보라색이 섞인 아름다운 구름이 가로로 길게 펼쳐지며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 하늘을 바라봤다. 담배 냄새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잠시 바람쐬러 나왔던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하나 둘 갑판 위에 멈춰서며 사람들이 금새 많아졌다. 수정이가 나와서 함께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어느새 서쪽에 육지가 포인다. 울진이다. 우리의 울릉도 여행을 그렇게 마무리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웠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