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창문을 여니 찬바람이 휘이익~ 몰아친다. 5시에 출발하고자 4시반에 알람을 해놨지만 한 시간 일찍 잠이 깼다. 처음 수학여행을 떠나는 초딩처럼 너무너무 좋아서 일찍 일어난게 아니다. 슬프게도 어쩔 수 없는 노화의 증상이다. 언제나 잠을 푹 자볼까나. 예전엔 머리만 대면 잠들었는데 그거~~ 이젠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을까. 대충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여친들도 많은데 광 좀 내고 때도 좀 빼지. 생각뿐이다. 허연 머리를 보니 영~~~
커피 한 잔하고 가시지요?? 여후니 처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문가에 나와 인사를 한다. 여후니가 어제 또 과음을 한 모양이다. 이제 씻고 있으니 차 한잔 하고 가라는 것이다. 순간~~ 성옥이 약간 짜증. 시간도 없는데~~ 하면서 그래도 말은 부드럽게. “어서 씻고 나오라 하세요. 시간이 워낙 없어서.” 여후니 큰손을 휘저으며 차에 올랐다. 어젯밤 늦게까지 거나하게 벌어졌던 술판에 아직도 기분은 업된 상태. 다 비우고 오는건데~~ 두어 박스 남았는데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술꾼들은 남겨논 술이 가장 아깝다는데~~
밀양에서 양양공항까지는 10분거리. 마지막으로 종우기를 태우고 공항에 도착. 만차인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없어 입구 도로변에 가까스로 주차를 했다. 양양~제주간만 왕복하고 있는데~~~ 제주가 달래 만원이 아니구나. 코로나 덕택에 제주는 특수를 누리고 있구나. 부럽다. 특별자치도 제주엔 저리도 사람이 몰리는데 똑같은 특별자치도 강원에는 단풍철만 반짝하는 거 아닌가.
양양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이 다 모였다. 회장인 종욱과 명수 여훈 상범 성옥 향심 옥남 나까지 8명. 비행기가 떴다. 바닷가 쪽으로 휘이 돌아 어둠이 사라지는 상공을 사뿐히 떠서 날아간다. 좁은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곱다. 신비롭다. 골과 골, 봉우리를 휘돌아 하얀 뭉게구름이 솜이불처럼 덥혀있다. 한 때 산에 미쳐 돌아치던 시절 산정에 올라 어쩌다 운해를 만나면 그 신비로움에 탄성을 질렀다. 오늘은 비행기에서 그 광경을 본다. 일진이 좋구나.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 강이 다들 도착했느냐고 묻는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 겸 버스기사인 강은 40대 초반으로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느낌이다. 난 한달 여 전에 제주여행을 했다. 무려 19명의 대군단을 이끌고. 물론 난 원로급이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랬지만. 그 때 버스기사가 소개해준 사람이다. 9시가 좀 지나서 김포에서 온 수도권 친구들과 김해에서 온 정희까지 모두 상봉을 했다. 반갑수다~~ 반갑수다~~ 안고 또 껴안고 좀 과격한 만남의 인사가 끝이 나고 버스에 올랐다. 첫날 첫 일정은 에코랜드. 제주의 산비탈에 묻힌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스르르~~ 열차가 미끄러져 간다. 중산간 제주의 자연이 스르르 밀려온다. 시원한 바람에 향긋한 숲내음. 오~~ 그야말로 “숨비소리”가 절로 나온다. 짙어가는 가을의 단풍과 하늘거리는 억새~~ 첫 일정부터 제주에 빠져든다. 두 번째 역에서는 모두 내려 다음역까지 걸어갔다. 단풍나무 옆을 지나 푸른물 가득한 호수를 건너가고 억새꽃 만발한 잔디밭에서 사진을 박았다. 사진 박을 때는 늘 종욱이 흔들어대기로 했다. 요즘 선진스마트 농군으로 거듭 나 전과 같이 흔들진 못해도 이번 제주여행에선 젖먹던 힘까지 써가며 흔들 기세다. 오늘은 첫날이니 기운 왕성하다. 스윽~~ 스치기만 해도 흔들리고 흔들리는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이 하늘 가득하다. 웃고 또 웃다 보니 에코랜드의 끝자락. 요즘은 “언제 또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 늘 에코(메아리)처럼 되돌아올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나이들어보니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친구들 늘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웃음을 찾아 이런 즐거움을 찾아 이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의 제주숲을 한바퀴 돌고나니 급 시장끼가 몰려온다. 새벽에 나오느라 아침은 건너뛰고 가이드가 나눠준 오메기떡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오늘의 점심은 갈치조림. 제주에 오면 먹어야 될 몇가지 음식이 있다. 갈치 고등어 흑돼지 고기국수 돔베고기 보말국수 해물탕 등등. 요즘이 갈치시즌이다. 제주의 은갈치가 먹음직스럽게 상에 올라왔다. 게눈 감추듯~~ 건강을 위해선 천천히 천천히 먹으라 했는데 오늘도 게눈 감추듯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돌문화공원을 방문. 전체 100만평 중 30만평의 부지에 제주화산석으로 공원을 꾸민 곳인데 찾는 이가 많지 않다. 걸어서 돌면 2~3시간이고 카트를 타면 1시간 코스다. 돌조각으로 다시 태어난 오백나한상 하루방 할망 어망 아방 아들 딸?? 딸도 있던가??? 돌박물관까지 갖추어 나름 볼만한 곳이다. 지하 돌박물관 건물 옥상에 호수를 만들었다. 묘하게도 이 호수에서 사진을 찍으면 자신이 물에 뜬 것 같은 사진이 연출된단다. 여인네들은 이 사진 한 장 찍자고 장화 신고 호수에 들어간 아이가 언제쯤이나 호수에서 나올까 그 언제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물러났다. 아이를 기다린 건 아니지만 그 아이가 장화를 신고 있으니 아이를 기다릴 수 밖에. 햐~~ 고놈 어른 맴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다. 아이는 그냥 물이 좋을 뿐 물에 뜨던지 말던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 에이 그 놈 참~~~
예전에 비해 제주에 갈 곳이 많아졌다. 해안에는 전망좋은 까페와 맛집이 즐비하고 중산간지대엔 레져와 관광을 겸한 시설이 들어찼다. 이러다 자연 그대로의 제주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중국자본이 한창 몰려올 때는 긴장도 좀 했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 탓인지 중국자본도 떠나고 시끄럽던 중국인도 보기 어렵다.
뒷얘기지만 여행 일정을 짤 때 좀 더 여유롭게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즐겁게 많이 웃으며 보내자고 지도 한 장 놓고 계획을 세웠다. 하루는 동쪽 다음날은 서쪽 그 다음날은 남쪽 하는 식으로. 맛집을 찾아 계획에 넣었지만 현지 가이드 왈. 별점 4~5개의 맛집이긴한데 한두시간 기다리는 건 예사고 그리고 예약잡기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식당은 가이드에게 위임했다.
닭머르해안길을 돌아 족욕으로 첫날의 피로를 풀었다. 33회 제주투어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둘쨋날 새벽 분명 8시에 아침을 먹자고 했는데 6시반에 문을 두드리며 아침먹으라 을러댄다. 33회 쉐프 정희와 향심이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고 이미 지들은 다 먹었단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체질이라 씻고 머 할 필요도 없이 식당방으로 가 과일과 토스트로 아침을 떼웠다. 내일도 아침을 책임지기로 한 향심과 정희. 14명 아침 먹이느라 수고 많았고 고맙다.
항상 9시에 가이드 미팅을 하고 일정이 시작된다. 둘쨋날은 군산오름과 산방선 유람선 송악산둘레길 신창풍차해안도로 트레킹이다. 엊저녁에 논의한대로 가이드에게 봉투를 건넸다. 팁이다. 팁을 언제 주어야 가장 효과가 클까를 얘기하다 아침에 주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버스로 군산오름을 올라가는 횡재로 돌아왔다. 승용차만 겨우 올라갈 수 있는 비좁은 도로를 25인승 버스로 올랐다. 가이드 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다음코스는 산방산유람선. 마른 오징어와 맥주를 마시며 제주바다의 바람을 맞고 화산석 제주해안의 수평과 수직 절리에 눈이 갔지만 한잔 두잔 잔을 들다보니 선장은 유명 변사로 바뀌고 그 변사의 해학으로 풀어가는 해설과 목소리에 빠져든다. “저기 언덕위에 하얀집 보이시죠?? 정말 죽이죠. 전망 끝내줍니다. 누구네 집일까요?? 우리집??~~~~~~~ 아닙니다. 화장실입니다.” “오랜만에 제주 왔는데 공항에 내리자 마자 비가 옵니다.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내립니다. 다음날도 내립니다. 줄기차게 내립니다. 그 다음날도 또~~ 또~~~ 줄기차게 내립니다. 오후에 공항으로 비행기 타러 나갑니다. 서서히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2박3일 일정으로 여행왔는데 비만 맞고 갑니다” “오늘 여기오신 분들은 전생에 나라를 세 번쯤 구한 분들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이 없습니다. 파도도 치지 않습니다. 바람도 없습니다. 복받은 분들입니다.” 성옥이 얘기했 듯 날 정말 잘 받았다. 3일내내 바람도 없는 맑은 날씨속에 제주투어는 무르 익어갔다. 변사 선장에 버금가는 인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마부. 송악산 애마부인을 탄생케한 마부다. 송악산 둘레길에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버는 마부가 두어명. 이 중 방송을 탄 명창이 한 명있다. 이 마부의 높고 낮은 창을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그 소리에 빠져들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고 순간 울컥하고 만다. “어~~ 아~~~ 시아버지 방귀는 호령방구요~~ 서방님 방귀는 사랑방귀라~~~” 성옥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말에 올랐다. 마부는 서글픈 창을 즐겁게 불러댄다. “어~~~ 아~~~ 시아버지 방구는 호령 방구/ 시어머님 방구 잔소리 방구/ 아들의 방구 유세 방구/ 며느리 방구 도독 방구/ 딸의 방구 연지 방구/ 방구 방구 잘 나온다/ 한 방 놓으면 떨어지고/ 두 방 놓으면 다 떨어지고/ 서방님 방구는 내 방구나 니 방구나 같아서 가이 볼 것이 없다” 슬프지만 즐거운 애마부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에도 풍력발전기가 들어섰다. 신창풍차해안이다. 어찌보면 바람많은 제주에서 풍력발전을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풍력발전기 세워진 곳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니 무작정 바람많다고 풍력발전기 세울 일도 아니다. 우린 그져 해안을 따라 한 바퀴 휘이 돌아 나오는 길인데~~ 주변이 바다목장??? 아니 바다어장이 맞겠지??. 키워서 잡는 고기가 아니라 간만의 차를 이용해 어장으로 들어온 고기만 잡는 거니까. 우리끼리 결론을 내리고 가려는 찰나. “낙지야. 낙지가 있어” 종욱이 날 보고 빨리 들어가 잡아오라 한다.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보니 도망갈 것 같지는 않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는 물속에 들어가 낙지의 목을 꽉 움켜 쥐었다. 잠간 물컹하는 기분만 있을 뿐 낙지를 도로위에 던졌다. “문어잖아. 문어야”. 한 사라는 되것다. 근데 종욱이 지가 잡으면 될 것을 왜 그 순간 날보고 잡으라고 했지??? 왜 그랬어??? 콘도에 들어가자 마자 그 문어는 맛좋은 안주거리가 되어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좀 늦게 아침을 먹자고 했지만 어제보다 30분이 늦어졌을 뿐이다. 습관과 버릇은 평생 가는 법이다. 애월해변이나 한바퀴 돌아보자. 여친들 같이 가자고 하니 화장하고 치장에 바쁘단다. 홀로 해변을 걸었다. 검은 화산석에 파도가 찰랑인다. 갯강구가 포장된 도로위를 바삐 건넌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 들려오는 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정말 몰랐어“ 그렇다. 우린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모르고 지내고 있는가?? 우린 얼마나 오랫 동안 좋은 친구가 곁에 있는 줄 모르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가???
투어의 마지막날, 억새 우거진 새별오름을 오르고 카멜리아힐에서 가을풍경에 다시 푹 빠져 들었다. 보말칼국수에 조깐술을 들어 다음엔 더 즐거운 추억을 쌓자고 건배를 했다. 오설록에 달콤하지만 약간 쌉싸름만 녹차아이스크림처럼 우정은 가끔 쌉싸름하기도 하다. 하지만 달콤함이 더 많기에 우린 친구다.
친구들아!!!!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푸른 잎도 단풍 져 언젠가는 낙엽이 되고 예쁘게 피었던 꽃도 언젠가는 떨어지는 법.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우리 친구라는 동행자로 남아 다음엔 더 많은 추억의 보따리를 찾아 떠나보자.
2022.11.10. 33회 제주투어를 반추하며 적어본다.
추신 이번 여행으로 분명한 원칙이 하나 세워졌다. 그 동안 적립된 회비를 경비로 집행하는 만큼 그 혜택은 회비를 완납한 회원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