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보호와 학생 인권 / 이호규
1) 결국 큰일이 터졌다. 서울 모 초등학교 젊은 여교사가 본인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자세한 내막은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그간 교육계 현장에서 잠재해 있던 문제점이 분출한 것이다.
2) 이를 발화점으로 지난 주말에는 전국에서 4만여 교사들이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먼저 간 동료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다. 젊은 그들은 불같은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왜 그렇게 모였을까?
3) 추모 현장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근조 화환만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어느 교사분은 리본에 적힌 애절한 문구를 읽는데 2시간이 더 걸렸다고 SNS에 올렸다. “내가 죽은 것 같습니다”, “후배를 꼭 안아주고 싶은 선배 교사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애들아! 같이 슬퍼하고 애도하자, 그게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길이야” 등의 함축된 소중한 글들 앞에서 그녀를 애도하고, 함께 하고픈 마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4) 꼭 사람이 탈 나야만 정치권과 교육 관련 부서가 움직이는 걸까? 지금까지 ‘학생 인권 조례’만 강조하였지 ‘교원지위법’이란 것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진보성향 교육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운영되어 온 학생 인권 조례이건만 언론이 부추겨 비대칭으로 학생 인권만 있고, 교권은 위축될 지경으로 지금까지 오고 말았다. 정치 성향 짙은 교육감들은 교육 현장 일선에서 보고되는 분쟁들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 관심을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5) 정치권에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호 존중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세상이 법대로만 지켜진다면 경찰이 왜 필요하고 검찰, 법원이 왜 필요하겠는가? 지금까지 관련 법을 다루는 일부의 직위 높은 분들, 교육 관리자들의 보신주의 등이 종합되어 현재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교원지위법에 있는 내용대로 관리자들이 보호 조치만 해주었어도 훨씬 교사들이 대처하기 나았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젊은 교사들이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에서 왜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을지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6) 어디를 가더라도 문제가 없는 현장은 없다. 교사 중에도 문제 교사가 있을 수 있고, 학생 중에도 문제 학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처리 과정에서 공평한 기준으로 잡음이 없도록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소소한 잘못에도 뺨을 수없이 얻어맞았던 옛날 같았으면 두 손 들고 학생 인권을 주창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 와서는 교실에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학생 인권이 강조되고 나서부터는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가 설 수 없고, 어떤 분쟁 상황을 접하고도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7) 2년 전 교원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한 학교의 교육적 기본과 원칙이 한 사람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 상황에 대한 조속한 타개를 위해 시 교육청이 해당자를 고발 조치해야 한다”고 교총에서 주장하였다. 어떤 학부모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학교가 정상적인 학사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력 대응을 요청한 것이다. 제주도의 한 학부모가 모 초교를 상대로 수년 동안 연평균 100여 건의 상습적인 악성 민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전국 교원단체가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하여 교육청이 고발하여 결국 그 학부모는 구속되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악성 민원’에 대한 처리 방법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8) 우리 집에는 교사가 여러 명 있다. 아들 부부도 교사다. 가족 식사를 할 때면 마치 교무회의 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어왔지만 이렇게 심각한지는 솔직히 몰랐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학교 현장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근무처도 힘들기는 비슷하다고 격려보다는 지혜롭게 처리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른 집 부모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교사를 둔 부모는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할 것만 같다.
9) 교사로 근무하는 우리 아들의 경험이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현관에 들어서는데 로비에 학생들이 몰려있어 가보니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끼리 싸움이 생겼는데 선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일단 붙잡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 순간 교사로서 훈계하고 타이를 수 없는 현실에 자괴감이 왔다고 했다. 교사에게 형용할 수 없는 언어적 폭언을 하는 경우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만약 교사가 그렇게 했으면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처벌법에 저촉되어 당장 언론에 문제가 되지만 도를 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10) 모두 어느 가정의 귀한 자녀다. 출산율이 줄어들다 보니 자녀들이 가정에서 너무 귀하게 자란다. 첫 사회 경험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집과 같이 제 마음대로 하려니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집에서 못 시키는 인성교육까지 학교에서 해야 하지만 교권이 살아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어느 신문에 모 작가가 학교에서의 악성 민원의 본질은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라고 기고를 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11) 애매모호 하고 포괄적인 관련 법들. 아동복지법에 나오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한다.”라는 내용은 교사들의 생활지도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아동학대범으로 무고하는 수단이 된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교사들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증언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신고 즉시 직위 해제되고 있어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누가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위해 손발 벗고 나설 것인가?
12) 교권 확립을 위해서는 명확하고 실질적인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거론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에 ‘정당한 지도 행위’는 신고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식의 애매한 법규가 아닌 교육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이 나와야 한다.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대해 강력한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야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야 교사들이 마음 편히 내 자녀 교육하듯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지도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바로 서고, 학생 인권과 교권이 보호되는 그런 아름다운 교육 현장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