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저, 『엽서가 된 임진왜란』 (선인, 2022), 530쪽
이 책자는 지난해 7월 이배사 카페에 소개한 책이다. 이번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게 되었다. 학술지 말미에 게재한 것을 약간 수정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다. 이 분야 관심 있는 분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이다.
Ⅰ. 서언
이 책은 부산대 사학과에서 반평생을 보내신 김동철 교수가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낸 저서이다. ‘조선후기 상업사 연구’가 주 전공인 저자이지만, 평소 일본과의 교류에도 크고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부산의 역사에도 커다란 연구 업적을 남겼다. 관련 연구 성과가 엄청나지만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는다. 일본과의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전쟁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전공을 중심으로 한 학술 서적이 아니다. 평소 저자가 수집한 엽서 중 임진왜란과 관련된 것들을 모아서 소개하는 형태로 쓴 교양서에 가까운 책이다.
임진왜란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우선 참전국인 조선, 명, 일본의 사정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극복의 주 동력인 관군, 수군, 의병, 명군의 활약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침략 일본군의 활동상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임진왜란사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관련 연구 성과는 엄청나다. 관련 논문 수는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연구 논문을 모아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도 무수히 많다. 그런데 임진왜란 관련 개설서는 얼마나 될까. 1980년대 후반 국방부에서 발간된 개설서 『임진왜란사』 외에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개설서는 흔하지 않다. 물론 부분적인 내용들만 담은 개설서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전문성이 강조되다 보니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어렵다. 게다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룬 개설서 형태의 책자는 드물다.
주지하듯이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특히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하고 있다. 가히 인문학의 대위기라고 할 상황이다. 인문학에 대한 위기 경보는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어 왔다. 역사학계도 그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다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중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그래야만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읽는 데 전혀 부담감이 없다. 대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특히 엽서라는 시각적인 효과가 더해져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엽서를 소재로 책을 낸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그림들만을 모아서 임진왜란 관련 책자를 낸 경우는 있다. 그러나 엽서를 소개하면서 임진왜란을 심도 있게 서술한 책은 본 적이 없다. 더욱이 엽서는 모두 일본인들이 발행한 것이다.
이 책은 엽서를 가지고 일본의 동향을 중심으로 임진왜란을 서술한 것이다. 그래서 서명도 『엽서가 된 임진왜란』이다. 따라서 기존 임진왜란 관련 논저와는 차이가 있다. 기존 관련 연구 성과들이 일본의 동향을 배제하거나 축소한 경향이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고 하겠다. 일본에 천착할 정도로 일본 측 사정을 크게 반영하면서 서술한 책이다. 따라서 기존 연구 성과들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내용도 망라되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사 연구는 방대한 분야에 걸친 내용들을 다뤄야 한다. 저자의 전공 범위를 넘어서는 범위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련 분야 연구 성과와 사료들로 충실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임진왜란 연구의 동향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덤이다.
Ⅱ. 책의 구성 및 주요 내용
이 책은 총 53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렇지만 410여 매에 달하는 그림엽서라는 시각적 효과가 더해져 읽는 데 무리가 없다. 이 책은 총 10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임진왜란과 근대 엽서’라는 주제이다.
여기서는 우선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서양에서 어떻게 부르는지 정리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원인을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크게 6가지로 정리하였다. 이어서 근대 엽서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서술하였다. 일본어로 ‘에하가키’라고 부르는 그림엽서가 탄생한 시기, 기능 등을 밝히고 있다. 1891년에 최초로 등장한 그림엽서는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폭증하였다. 그리고 엽서가 사료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최근 들어 관련 자료가 엄청난 분량으로 정리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저자가 그림엽서를 수집하게 된 경위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제1장 말미에서 이 저서가 근대 엽서를 활용하여 임진왜란을 살펴 본 첫 시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엽서 자체가 가지는 사료적 한계를 제시하였다. 따라서 기존 문헌사학의 임진왜란 연구와 다른 접근임을 명시하고 있다.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엽서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임진왜란의 전체상을 조망하지 못함도 지적하고 있다.
제2장은 ‘전쟁 전야, 16세기의 일본’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이 부문은 임진왜란 이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주변 정세와 일본 국내 사정에 대한 것이다. 먼저 15세기의 명의 책봉체제 속에 있었던 한·중·일의 국제 관계가 16세기에 붕괴된 과정을 소개한다. 특히 명과 일본의 감합무역이 1547년에 완전 단절되면서 명일간의 책봉체제가 붕괴된 사실은 임진왜란의 한 원인이 된다.
이어서 국내 사정으로 먼저 1543년 철포가 전래된 후 조총의 위력이 실전에서 발휘된 점을 주목한다. 특히 철포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천하통일에 활용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일본통일 과정을 알 수 있다. 철포를 활용하여 승리한 대표적인 전투는 나가시노 전투이다. 이는 국내 통일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투이다. 그러나 오다는 1582년 혼노지(本能寺)의 변으로 사망하였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일본에서 크리스트교가 시작되었다. 1549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를 통해 크리스트교가 일본에 최초로 전래되었다. 이어서 루이스 프로이스 등 많은 선교인들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나아가 덴쇼견구사절을 유럽에 파견하여 종교를 매개로 유럽과의 교류도 이루어졌다.
제3장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국내 통일과 대륙 침략 구상’에 관한 것이다.
먼저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밝혔다.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며, 오다의 사망 이후 권력을 장악하였다.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시즈카타 전투였다. 여기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7명의 장수들을 ‘칠본창(七本槍)’이라고 부른다. 히데요시는 1585년 관백이 되고 후지와라 성(姓)에 이어 토요토미의 성을 받게 된다. 1591년 말에는 태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1585년 본거지로 오사카 성을 수축하였다. 이 성을 거점으로 지배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한편 일본 내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크리스트교 신자들이 급증하였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지배체제 완성에 크리스트교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면서 탄압을 시작하였다. 1596년 12월의 ‘26성인 순교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 국내의 크리스챤 무덤들도 다수 남아 있다. 한편으로 포르투갈과 교류도 계속하였는데, 포르투갈 인도 부왕(副王)에게 보낸 답서에는 명나라를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후 조선과 교류한 문서 내용 중 명나라 침략 전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통신사 파견 결과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림엽서 중 ‘히데요시의 삼국 지도 부채’는 그러한 구상을 상징하고 있다. 최근 일본학계는 이 부채에 그려진 삼국 지도가 임진왜란 때 한극함의 아들 한격(韓格)이 가토 기요마사에게 준 지도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제4장은 ‘1592년 1차 조선 침략 전쟁,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다.
이 부문은 임진왜란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가장 분량이 많고 관련 엽서도 105매나 된다. 먼저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인 나고야성에 대해 소개한다. 이어서 일본군 편성과 수송체계, 조선 침략 명령을 내린 주인장(朱印狀), 일본군의 갑옷과 철포 등 무기류를 정리하였다. 임진왜란 발발 후 첫 전투인 부산진 전투와 이어진 동래성 전투를 소개한 후 일본군이 축성한 자성대왜성과 부산진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어서 일본군이 한성을 점령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한다. 밀양의 작원관 전투, 일본군 제1,2군의 진격로에 있었던 조령 관문에 대해 엽서가 남아 있다. 이어서 한성이 함락하는 과정과 남산에 있었던 왜성대를 알 수 있다. 선조가 의주까지 피란하는 과정에 있었던 흔적들로서 정주와 의주의 피란처와 1593년 한성으로 환도하는 과정에서의 해주 피란처를 소개한다. 그리고 한성에 있었던 일본군 본영과 선조의 대명 외교행위 장소였던 별궁, 남별궁도 알 수 있다.
가토 군의 함경도 공략과정과 그 과정에서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의 글씨 유물이 남아 있다. 함경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에 대항했던 ‘회령 팔의사’를 기리는 현충사비, 회령에 있었던 임해군과 순화군의 행재소 유적들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가토가 여진 지역을 침략한 사실, 경성지역에 남아 있던 임해군·순화군의 기적비(紀蹟碑)를 소개하고 있다.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군의 참전으로 조·명·일 전쟁으로 확전된 양상을 소개한다. 명군의 참전 중 이여송이 이끈 대규모 명군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탈환함으로써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여송을 맞이한 류성룡의 활동상과 상호 관계의 흔적들을 알 수 있다. 평양성을 치기 전 안주 백상루의 흔적과 평양성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진입 통로였던 칠성문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로 명나라 심유경과 일본군 고니시와의 휴전협상 장소인 평양 연광정 유적을 알 수 있다. 평양성 탈환 후 남하하던 명군의 대장 이여송이 대패한 벽제관 전투 관련 엽서가 많다. 이는 일본군이 자기네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한편 일본군은 남하하면서 이전 해 1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데 대한 설욕을 한다. 이것이 1593년 6월 하순의 제2차 진주성전투이다. 촉석루, 창렬사 등 유적과 논개와 함께 죽은 일본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 간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와 관련 엽서도 많이 발행되었다.
제5장은 ‘일본군의 주둔과 철수, 지루한 협상의 결렬’이란 주제이다.
일본군이 남하한 후 강화회담의 추이를 살피면서 남해안에 쌓은 거점이 바로 왜성이다. 특히 부산에 많은 왜성이 있었으며, 자성대왜성, 김해 죽도왜성, 울산 서생포왜성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이 기간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군이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것이다. 히데요시가 본인의 양생을 위하여 호랑이 고기나 내장을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가 호랑이를 잡은 그림이 많이 전한다. 이어서 일본군의 철수 과정에서 고바야가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먼저 철수한 후 그의 행적을 소개하는 것은 특별한 사례이다.
명일간의 강화 교섭 중 명 황제는 히데요시가 책봉을 원한다는 거짓보고를 받고는 히데요시에 대해 일본 국왕 책봉을 명한다. 책봉문과 책봉에 필요한 관복류와 각종 선물 등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1596년 9월 히데요시가 제시한 7가지 요구 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강화교섭은 결렬된다.
제6장은 ‘1597년 2차 조선 침략 전쟁, 정유재란’에 대한 것이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의 전쟁목표와는 차이가 있다. 임진왜란의 정벌 대상은 명나라였지만, 정유재란은 조선의 4개도를 우선 점령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정유재란의 선봉은 가토 기요마사였다.
1597년 7월의 칠천량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좌군과 우군으로 편성하여 전라도를 공략하였다. 그 중 고니시 유키나가가 선봉이었던 좌군의 공격목표는 남원성이었다. 조명연합군이 지키던 남원성이 함락된 후 전주성까지 진군하였다. 가토 기요마사가 선봉이 된 우군은 황석산성을 공격한 후 좌군에 이어 전주성에 입성하였다. 일본군 좌·우군은 충청도로 북상하였다. 충청도에서 명군은 일본군과 교전을 벌여 북진을 막았다. 공주에 있는 명국 삼장비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비이다.
한편 남하한 일본군이 주둔한 왜성 중 울산왜성에 대한 전투가 1597년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1월 초까지 전개되었다. 5만 명의 조명연합군이 울산 도산에 위치한 왜성을 공격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울산왜성과 관련된 그림 자료가 상당수 있다. 서생포왜성 관련 자료도 보인다.
1598년 8월 18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전쟁은 종전 상황으로 치닫는다. 히데요시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5대로는 명군과 강화하여 병력을 철수시킬 계획을 결정한다. 조명연합군의 사로병진작전 중 사천전투와 순천전투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사천전투는 일본군의 주요 승전 중 하나이므로 유적 현창과 관련한 엽서가 많다.
특별히 여기서 일본 수군에 대해 소개한다. 일본 수군의 주요 지휘관들 중 도도 다카도라, 구키 요시타카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일본의 군선인 세키부네와 아다케부네를 소개한다. 이 내용들은 제3장 또는 4장 앞부분에서 언급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편 조선 수군의 진영도 소개한다. 여수의 전라좌수영과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 등에 대한 그림엽서가 남아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통영에 건설한 태합굴, 착량교 등에 관한 자료도 있다.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죽음, 사후의 기념물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제7장은 ‘전사자, 전쟁포로, 전리품’ 등에 대한 것이다.
7년간의 전쟁으로 학살되거나 질병·굶주림 등으로 사망한 조선인은 100~150만 정도, 코와 귀를 베인 조선인은 적어도 10만 명, 일본에 끌려간 전쟁 포로는 9만~14만 명 정도라고 한다. 전사자의 흔적으로 일본에는 이총(귀무덤)과 비총(코무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시마즈 부자가 1599년에 세운 ‘고야산 적미방 전사자 공양비’도 있다.
당시 많은 전쟁 포로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부는 유럽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전쟁 포로 중 경상도 하동 출신 여대남(余大男)은 기요마사의 보리사인 혼묘지의 3세 주지가 되기도 했다. 이삼평(李參平)은 충청도 공주 금강에서 도공으로 살다가 포로로 잡혀갔다. 그는 일본의 도자기 산업에 큰 기여를 하여 도조로 추앙받았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아버지 이진영의 아들로 태어난 이전직(李全直)은 일본에서 유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한편 일본인 중에서도 포로가 되어 조선에 귀화한 사람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항왜 사야가(金忠善)가 있다.
일본군이 조선에서 가져간 전리품이 다양하다. 갑옷과 마구 등의 장구류도 있지만 소철과 매화 등 희귀식물들도 있다. 탑과 불상, 종 등도 있다. 특히 종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제작연대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책과 활자도 많았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출판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제8장은 ‘신이 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일본군의 주요 인물 중 신사에 봉안된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였다. 먼저 오무라 요시아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 소속으로 평양, 충주, 순천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구로다 요시타카·나가마사 부자는 전진기지 나고야성 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구로다 나가마사는 평양, 벽제관, 행주산성, 제2차진주성, 황석산성, 직산, 1차 울산성 전투 등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각종 중요한 전투에 참전하였다. 가토 기요마사는 육상전에서 선봉에 선 인물로 유명하다. 가토와 관련된 사당과 비석, 동상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있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된 유적과 신사가 많이 있다. 특히 신사는 교토의 도요쿠니 신사를 비롯하여, 오사카, 나고야, 나가하마 등지에 도요쿠니 신사가 있다.
제9장은 ‘세키가하라 전투와 에도막부 탄생’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국내에서는 권력 다툼이 크게 일어났다. 문리파와 무단파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각종 전투가 벌어졌다. 서군과 동군으로 편성된 양군은 1600년 9월 세키가하라에서 큰 전투를 벌여 동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는 히데요시가 구축한 정치체제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도쿠가와 막번체제 정치시스템을 형성하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전투와 관련된 엽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패배한 서군 소속 다이묘들의 영지는 몰수되거나 감봉·전봉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이 되었다. 결국 에도(江戶)막부를 열어서 새로운 에도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1614년 오사카 전투를 통해 히데요시 추종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제10장은 ‘사귐과 지킴의 간극’이란 주제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이후 17세기에서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에 의해 부산이 개항되기까지 조일관계는 왜관과 통신사의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왜관은 최초로 절영도왜관(1601~1607)이 있었다. 이후 동구청 부근에 있었던 두모포왜관(1607~1678), 용두산 부근의 초량왜관(1678~1876) 등으로 이전되어 운영되었다. 관련 엽서가 다수 있다. 또한 동래는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침략을 받은 지역이다. 따라서 이 시기 일본과의 외교를 담당하면서 동시에 일본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 상반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편 통신사행은 1763년에 출발한 통신사가 에도에 간 것이 마지막이고, 1811년에는 종결되었다. 그 후 일본은 1868년 막부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1876년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면서 조선과의 교린관계도 끝난다. 이 책의 서술 범위는 여기까지이다.
Ⅲ. 결언
이 책을 읽으면서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부분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평자가 그동안 등한시 했던 일본 측 기록들에 대해 개안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관련 엽서를 보면서 다양한 사료들에 대한 확인이 가능했다. 각주로 처리된 많은 연구 성과들을 통해 연구 범위의 외연을 확장할 수도 있었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소장 그림엽서를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니 임진왜란 극복의 주 동력 중 일부 빠진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 의병의 활동상과 관련된 일본의 그림엽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의병과 일본군간의 전투도 상당 부분 있었는데, 이와 관련한 자료가 없다. 또한 수군의 전투 상황 역시 소략하여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의병의 활동상과 함께 한산도, 부산포, 칠천량, 명량, 노량해전 등 당시의 전황에 미친 영향이 큰 해전과 관련된 엽서도 발견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전투의 흐름이 시간 순서로 이어질 때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부분의 엽서가 빠진 경우도 아쉬운 부분이다. 예컨대 정유재란 시기 명군의 참전과정이나 사로병진작전 중 2차 울산왜성 전투에 관한 내용이 없다. 이는 소장 엽서를 중심으로 임진왜란사를 서술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향후 새로운 엽서가 발굴되어 더 많은 분야가 보완되길 희망해 본다.
그렇지만 저자도 글의 서두와 말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근대엽서를 활용한 최초의 연구 시도이다. 따라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런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연구 성과는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평자로서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평소 저자가 수집해 놓은 많은 엽서들을 사장시키지 않고 세상에 드러냈다는 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힘들게 수집한 많은 엽서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면 개인의 서가에 꽂힌 채로 마감되었을 것이다. 엽서를 통해 임진왜란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은 귀찮고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특히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분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렵고 힘든 작업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이러한 작업은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서두에서 평자가 언급한 바, 인문학의 대중화 경향에 부합하는 성과라는 점도 이 책자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일 것이다.
첫댓글 서평만 읽어도 책 한 권 다 읽은 분위기..ㅎ
엽서만으로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전공자가 아니면 힘든 작업일 텐데..
저자의 노력에 감탄합니다!..🙆♀️
동자갑선님의 독력이 대단하시니 다 읽은 분위기를 느끼셨을 듯하네요.
저는 게을러서 이런 엄청난 내공이 들어가는 책 못만듭니다.ㅠ
재삼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격군님이 추천해주셔서 구하여 읽었습니다.
일본 인명이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힘들었으며
엽서를 중심으로 서술한 내용이 도움 되었습니다.
기타지마 만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의 인용이 많았는데
이 책이 임진왜란 사를 공부하는데 인용할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요?
참고로 열선루님의 논문 인용도 있었습니다. (p272)
도요토미의 조선침략 책자는 일본의 저명한 학자 기타지마 만지 교수가 쓴 책인데 이를 웅천현감님이 번역한 것이죠. 기타지마선생은 임진왜란사를 전공한 학자이기에 공신력이 있습니다.
서평 읽고 다시 책 주문했습니다.
두꺼운 책을 한 번에 읽을 집중력이 있었으면 하고,
일독한 내용이 제 머리에 쏘~옥 쏙 들어오기를 빕니다.
명나라 장수 비석을 언급한 부분에 제 논문이 살짝 인용되었다니..
감사히 공부하겠습니다.
서평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열선루님은 떠오르는 태양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 분투 노력하시면 정점에 서리라 믿습니다.ㅎ
구해 읽어 보겠습니다.
부산과 관련된 내용이 많으니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스승의 책에 대한 서평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접근법으로 쓴 책을 읽지 않고도 맛보기하는 혜택을 누리네요. 잘 읽고 갑니다~~^^
잘 읽고 가셨다니 다음에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ㅎ
조선과 일본의 기록이 어느정도 비교가 되겠습니다.
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평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추 재배하랴 책읽으랴 바쁘시겠습니다.ㅎ
아는거라고는.
이삼평 도자기 이총.비총.
그래도 반갑네요.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엽서가 된 임진왜란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책이 있다는 정도만 기억해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