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산동 이야기 변주
나는 금천구 독산동에 살고 있다. 다리 하나 건너면 보이는 경기도 집들보다 훨씬 집값이 싼 곳. 거리를 돌아다니면 중국어가 많이 들리고 다문화 가족이 많이 사는 곳. 우시장이 있는 곳, 육류를 가공, 납품하는 가게 말고도 소규모 주물공장, 금형공장, 정비 공장들이 많은 곳. 이 곳에서 15년째 사는 중이다.
결혼 날짜를 정한 후 집을 구하려고 남편과 나는 둘의 직장 중간에 위치한 사당동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돈은 비싼 동네에 전셋집을 얻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집주인들이 다 거절하는 통에 최대한 있는 돈과 신용대출을 받아 해결해 보려고 신림동, 봉천동, 구로동 일대를 다 돌아 다녔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을 찾기 어려웠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며 살았던 각자의 집을 빼기로 한 날은 다가오는데 전셋집은 구해지지 않아 다급해졌다. 그러다가 퇴근하던 중(당시 나는 시흥동에서 근무하던 때라 독산동을 지나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독산동 신축 빌라 분양 전단지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했다.
“사장님, 혹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전세를 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조심스레 묻는 말에 사장님은 흔쾌히 가능하다며 바로 집을 보러 오라했고, 어둔 저녁 낯선 동네에 우리는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한 달 동안 퇴근하고 매일 집을 보러 다니느라 지쳤던 나는 남편에게 다른 집을 더 보지 말고 계약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우릴 보더니
“전세가격이냐 사는 가격이나 별 차이 안나니 그냥 사요. 다들 그렇게 지금 계약하고 갔어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우리가 어리버리해 보였음이 분명하다. 들어가자마자 거실에 앉아 집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몇 분 만에 계약을 한다니 왜 안 그랬겠는가. 당시 우리는 둘 다 주택자금대출이며(사장이 권해준 2금융권에서 높은 이자로 대출을 받았다), 이자, 집 시세, 좋은 집의 조건, 제테크 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물론 제테크는 지금도 잘 모른다.),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집’이 생긴다는 사실에 들떠, 엄청난 대출이긴 하나 평생 걸쳐 값을 수 있으리라는 무모함에 빠져 급하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독산동에서의 삶은 깜깜한 저녁, 긴 고민없이 덜컥 이루어졌다.
살면 살수록 내가 사는 빌라는 ‘새 집’이라는 점만 빼곤 좋은 점을 찾기 힘들었다. 일단 북향이라 어두워 하루 종일 불을 켜고 있어야 했고, 길 바로 옆이라 사람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으며, 집 주차장에 불법 주차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가는 사람들(심지어 중학생들까지)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나름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옆 건물이 돼지가공육을 만드는 공장이었다는 점이다. 매일 빨간 피가 우리집 주차장까지 흘러왔고, 돼지 삶는 냄새가 역겹게 나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공장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창문을 열어봤자 어두컴컴한 담벼락만 보인다는 사실도 모르고, 평생 살아도 된다며 집을 산 어리석음이여.
‘웬 동네가 이리 공장이 많고, 왜 죄다 공장이 고기를 삶아대는 거야?’
‘아니 공장이 즐비한 곳 사이에 어떻게 집을 짓고 팔 수가 있는 거지?’
나는 길거리마다 진동하는 고기 삶은 냄새에 코를 막으며 육류가공(축산) 가게들과 나한테 집을 판 사장을 욕하면서 뛰어다녔다. 8년을 불평불만을 쏟으며 그 집에서 살았다. 어서 이사를 가서 이 동네를 탈출하리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나는 독산동에 더 정착해야하는 사람이 되었다. 돈도 없었거니와 직장 다니면서 이사를 가기에는 부담이 컸었고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맞벌이를 하며 어린이집에 의존하며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었는데, 운이 좋게 동네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특히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에게는 엄청 인기가 많은 곳인 그 곳에서, 선생님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사회성이 부족해서 잦은 트러블을 일으키던 우리 첫째를 그나마 마음 놓고 맡길 수 있게 된 건 행운이었다. 2015년 둘째셋째로 쌍둥이들이 태어나고 17개월이 되어 높은 점수로 같은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게 되자 나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그 당시 나의 힘겨운 육아지옥을 탈출시켜줄 구세주는 바로 그 곳이었기 때문이다. 돼지 삶는 냄새든, 기계 깎는 소리든 나의 고통을 줄여줄 누군가가 있으면 아무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가려면 실제로 2~3군데의 00축산 가게들과, 00금형 이런 공장들을 지나쳐야 했다.)
첫아이와 둥이들은 모두 5년 동안 7세까지 같은 어린이집을 무사히 다녔고 현재는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나 역시 같은 독산동이지만 거리가 좀 더 먼 중학교에서, 착하고 예의바른 학생들을 만나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나의 결혼생활과 육아의 터널을 지난 이 곳, 나에게 독산동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서울살이에서 안정과 평화를 누리해 준 고마운 동네이며 나와 아이들의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다. 집 앞 슈퍼, 세탁소, 지금은 폐업하고 없어진 카페, 약국, 이비인후과, 큰 아이가 다니는 체육센터, 안양천 등의 많은 곳, 그리고 그 곳을 오가며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켜켜이 쌓여있다. 세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다닐 때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이 엄청 많이 컸구나, 엄마가 애 많이 썼네 등의 말을 종종 듣는다. 어쩌면 사소하면서도 지나칠 수 있는 짧은 한 두 마디. 그 한 두 마디로도 나는 가끔 힘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올 봄 남편 사업 때문에 8년 전에 이사 온 이 집을(독산동 두 번째 집이다.) 잃을 뻔 했다. 어찌어찌해서 주변의 도움과 더 불어난 빚으로 집을 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사정이 안 되면 더 외곽으로, 출퇴근을 내가 더 멀리하는 싼 집으로 갈 각오도 하긴 했으나 세 아이가 다니는 학교, 특히 첫째가 어렵게 적응한 학교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아 빚을 더 얻는 걸(그것도 겨우)로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이들 스스로 학교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게 현재 나에게는 제일 중요하다.
지금까지 독산동에 대한 나의 마음은 동네의 낡은 곳이 깨끗이 청소되어 고급지고 좋아보이도록 바뀌고 좋은 공원과, 분위기 좋은 커피숍, 식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우시장은 언제 다른 데로 옮겨지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아쉬운 점도 많았고 여전히 길거리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훅 들어올 때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집 때문에 애태우며, 돈이 없어 다른 곳으로 밀려날지 모르는 사람이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빚 갚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갈 곳이 없는 처지.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도 여전히 빚에 허덕이며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몇 달을 전전긍긍 했던 시간을 지나고 보니, 이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기를, 중심에서 계속 밀려나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들의 터전이 돈에 의해, 집짓는 장사들로 인해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지금 내가 사는 곳 근처는 오래된 건물이 헐리면 무조건 원룸,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동네가 깨끗하게 싹 정비되면 밀려나고 또 짐을 싸야하는 사람이 있음을 이제야 깨달으며, 물론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고 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타인의 실패에 점점 더 가혹해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가난을 드러내며 싸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함께 싸우더라도 어느 순간 자기 몫의 아픔이 찾아 오겠지만, 이 용기 있는 사람들의 외로운 시간이 견딜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이제는 ‘오토바이 소음과 땀 냄새,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영세한 공장들이 사라지고 큰 건물들로 채워진 공간을 '깔끔해졌다'고 여길 수 있는 순진함’ 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남편도 부랴부랴 코앞에 있는 회사에 지각을 안 하려고 나가는 중이다. 나 역시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탈히 잘 지내고 오길,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사랑을 받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리라,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그것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독산동의 한 주민이자 직장인으로서 최소한의 할 일은 아닌가 생각하면서.(4157자)
첫댓글 합평 시간에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크게 덧붙일 말은 없지만, 저는 이 글이 갖고 있는 매력을 살리려면 좀 더 길고 길게 퇴고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목부터가 <독산동 '이야기'> 인데, 이야기는 짧은 것보다 서사의 흐름이나 인물의 내면이 좀 더 오르락내리락할 때 재밌게 느껴지니까요. 여러 가지 깨달음과 복잡한 감정에 대한 것도 소제목을 나누어 정리하고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요. 만약 좀 더 짧은 호흡을 원하신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상황 중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추어 한두개의 사건과 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소재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리뷰 감사해요. 일단 제목을 하나씩 넣어서 길게 퇴고를 해보기도 하고. 좀더 내가 하고픈 이야기에ㅜ초점을 맞춰 퇴고를 해봐야겠어요. 아직 내일 숙제도 안해서 당장은 어렵지만 퇴고의 간절한 마음이 옅어지기 전에 최대한 서둘러 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