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김홍도의 풍속화 답⑤
전시회 제목에 '단원 특별전'이라고 나와 있네요. 단원은 김홍도의 호입니다. 단원 김홍도는 도화서 소속의 화원이었으며, 신윤복과 더불어 대표적인 풍속화가였어요.
1급 비밀인데, 김홍도 풍속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하는데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 사실만 알아도 답은 바로 찾을 수 있어요.
조선 후기에는 우리나라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 산수화와 백성의 생활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풍속화와 민화가 등장하였어요.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이는 정선(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등)이었고, 풍속화가로는 김홍도와 신윤복, 김득신 등이 유명합니다. 특히, 신윤복은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화조화, 기록화, 신선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로 영통동구도라는 서양화법 그림으로 유명한 강세황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이후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으며, 정조어진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 서민 사회의 생활 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 모습을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 풍자를 곁들인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① 김홍도의 서당도입니다.
훈장님에게 혼이 나고 우는 아이와 그것을 보고 학생들이 웃는 표정이 잘 나타나 있어요.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의 경제력과 사회 지위가 상승하고 지적 욕구가 커지면서 서당이 급속하게 늘어났어요.
② 김홍도의 대장간도입니다.
풍속화는 당시의 생활상을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수공업의 발달 모습을 보여주네요.
참고로 김홍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김득신이 그린 대장간도는 김홍도의 대장간도와 아주 유사합니다.
그러나 배경이 그려져 있는 것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있어요.
③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의 하나인 자리짜기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몰락한 양반(향반, 잔반)이 나타났고, 이들은 생계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기도 하였는데,
자리짜기는 이러한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울러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동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④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인 씨름도입니다.
시장에 한 구석에서 펼쳐지는 씨름하는 모습과 장사하는 사람 등이 잘 나타나 있어요.
⑤ 김득신이 그린 노상알현도(路上謁現圖, 반상도)입니다.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어 당시의 신분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대장간도, 자리짜기, 주막거리, 파적도(야묘도추도) 등 다양한 풍속화를 남겼어요. 대장간도를 통해 알 수 있듯
같은 주제를 그려도 김홍도의 작품들과 달리 정경 혹은 배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조선 후기의 예술
1.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
(1) 진경 산수화 : 중국 남종 화법 + 우리 고유 화법
◦ 우리 자연의 사실적 표현으로 회화의 토착화 마련
◦ 정선 :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는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 개척
(2) 풍속화 :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정경과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 → 회화의 폭 확대
◦ 김홍도 :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 →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 신윤복 : 양반 부녀자들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 → 단오 풍정
(3) 개성적 화풍 : 강세황(서양화 기법), 장승업(강렬한 필법․채색법)
(4) 민화 : 민중의 미적 감감 표현,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이 소재 →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 장식
(5) 서예 : 이광사(동국진체), 김정희(추사체 창안)
2. 건축의 변화
(1) 17세기
◦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
◦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2) 18세기
◦ 부농과 상인의 지원으로 장식성 강한 사원이 세워짐
◦ 논산 쌍계사 · 부안 개암사 · 안성 석남사
◦ 수원 화성 : 정조 때의 문화적인 역량 집약, 방어와 공격을 겸한 성곽 시설, 종합적 도시 계획 아래 건설
(3) 19세기 : 경복궁 근정전 ? 경회루(흥선 대원군, 국왕의 권위 고양 목적)
3. 백자·생활 공예와 음악
(1) 자기 공예
◦ 백자가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함
◦ 청화백자의 유행, 청화․철화․진사 등 다양한 안료 사용
◦ 옹기 : 서민들이 주로 사용
(2) 목공예 : 장롱, 책상, 문갑, 소반, 의자, 필통 등에서 성행
(3) 화각 공예 : 독특한 우리 멋을 풍김
(4) 음악 : 음악 향유층이 확대되어 다양하게 발전 → 양반(가사․시조 애창), 서민(민요),
기생과 광대들의 창작(판소리, 산조와 잡가 등)
유사 기출문제
26회 고급 21번 문제
21. 조선 시대의 회화 답④
제시된 문화 특강의 주제가 '조선 시대의 회화'이니, (가)에는 조선 시대의 그림이 들어가야겠네요.
제시된 그림은 조선 후기의 화가 강세황이 그린 사군자 병풍 중 매화, 그리고 조선 후기에 유행한 민화인 까치와 호랑이 그림이네요.
조선 전기 15세기의 그림으로는 화원 출신인 안견은 안평 대군의 꿈을 소재로 그린 몽유도원도, 문인 화가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가 대표적입니다. 16세기에는 노비 출신의 화원 이상좌가 그린 송하보월도, 신사임당의 초충도(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화초, 벌레 등 다양한 소재를 즐겨 그림), 이정의 묵죽도, 어몽룡의 매화도가 유명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나라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 산수화와 백성의 생활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풍속화가 등장하였어요. 진경 산수화로는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풍속화로는 김홍도는 씨름도, 서당도, 신윤복은 단오풍정, 미인도, 김득신의 대장간도 등이 유명합니다. 이 밖에 강세황의 영통골 입구도, 김정희의 세한도, 장승업의 영무도 대련, 호취도, 심사정의 맹호도 등이 유명합니다. 한편 민화로는 까치와 호랑이가 많이 그려졌어요.
① 김홍도(1745~?)가 그린 풍속화인 씨름도입니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어요.
또한 산수화, 기록화(의궤. 어진), 신선도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②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에 그린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입니다.
그림에 낙관이 참 많이도 찍혀 있는 이 그림은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사의 전형적인 난 그림입니다. 그는 난과
대나무를 많이 그렸습니다. 김정희는 세한도와 추사체, 북한산 순수비를 고증한 인물로 유명하죠.
③ 윤두서(1668~1715)가 그린 자화상입니다.
몸통은 없이 화면 전체에 얼굴만이 그려지고 터럭 한올한올까지 섬세하게 그려졌어요. 표현 형식과 기법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자화상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된 그림입니다.
참고로 그림의 인물인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자로 정약용의 외증조이기도 하며, 문인이자 화가였습니다.
④ 이중섭(1916~1956)이 1941년에 연필로 소묘한 소입니다.
1940년대부터 활약한 이중섭은 자신의 불우한 삶을 독특한 서양화풍으로 담아내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흰 소,
달과 까마귀, 아버지와 두 아들, 통영 풍경, 천도화와 어린이들, 길 떠나는 가족 등의 작품을 남겼어요.
⑤ 정선(1676~1759)의 1751년에 그린 진경 산수화인 인왕제색도입니다.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은 진경 산수화라는 새로운 화법을 개척하였어요. 그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5회 고급 27번 문제
27. 신윤복 답⑤
'도시 양반들의 풍류와 부녀자들의 생활, 사랑 표현', '김홍도(단원), 장승업(오원)와 함께 삼원(신윤복은 혜원)이라 불리며 풍속화를 개척한 인물'이라는 내용에서 신윤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신윤복에 대해 김홍도와 비교하며 공부해 보세요.
혜원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인물로, 미인도, 단오풍정, 단오도, 연당의 여인, 무무도, 선유도 등의 다양한 풍속화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도화서 화원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는 사실 이외에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윤복은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던 김홍도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데, 이것은 풍속화의 경향 차이 때문입니다. 김홍도의 경우 소탈하고 익살맞은 서민 생활의 단면을 주로 다루었는데 비해 신윤복은 부녀자들의 모습, 도시 양반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주로 그렸어요. 이는 당시 신분의 차별을 강조하고 남녀의 애정 묘사를 금기시한 성리학 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또한 소재의 선정이나 포착, 구성 방법, 인물들의 표현 방법과 채색법 등에서도 김홍도와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남녀 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즐겨 사용하였어요. 이 때문에 그의 풍속화들은 매우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홍도의 경우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배경을 삭제하는 특징을 보이지만(씨름도, 대장간도, 서당도 등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신윤복의 풍속화들은 자세한 배경을 묘사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는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 조선 후기의 생활상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①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입니다.
정선은 진경 산수화(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회화의 토착화를 이루어낸 그림)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해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②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인 씨름도입니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어요.
또한 산수화, 기록화(의궤. 어진), 신선도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③ 김득신이 그린 노상알현도(路上謁現圖, 반상도)입니다.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어 당시의 신분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대장간도, 자리짜기, 주막거리, 파적도(야묘도추도) 등 다양한 풍속화를 남겼어요. 대장간도를 통해 알 수 있듯
같은 주제를 그려도 김홍도의 작품들과 달리 정경 혹은 배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④ 오언 장승업이 그린 영무도 대련입니다.
19세기에 활약한 장승업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 3대 화가로 불리며, 산수, 인물, 영모, 화훼 등 다양한 소재를
강렬한 필법과 채색법으로 자유자재로 그려내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습니다.
홍백매도, 호취도, 군마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⑤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4회 고급 28번 문제
28. 조선 후기의 모습 답④
제시된 그림은 조선 후기에 정선(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입니다.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은 진경 산수화(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회화의 토착화를 이루어낸 그림)를 개척했어요.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해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① 청화백자는 하얀 색의 도자기에 코발트로 청색의 그림을 그린 도자기로,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하였어요.
청화 백자는 형태와 문양이 다양해져 준수한 세련미를 풍겼고, 안료도 청화, 철화, 진사 등으로 다채로웠습니다.
②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이 즐기는 판소리, 탈춤, 한글 소설, 서민 음악이 유행하였어요.
특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소설의 보급은 서민들의 의식 향상 등 그 영향력이 대단히 컸습니다.
한글 소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현실적인 세계가 배경이 되었어요.
③ 조선 후기에는 장시가 전국에 생겨 나고 판소리와 탈춤이 유행하였습니다.
탈춤(가면극)은 양반 지배층이나 승려의 부패와 위선, 허구 등을 풍자하여 장시 등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④ 조선 후기 당시 왜관이 설치된 곳은 부산의 초량이었습니다.
세종 때인 1426년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항하면서 교역을 위해 이곳에 왜관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삼포 왜란(1510)을 계기로 폐쇄되었다가 왜인들의 간청으로 임신약조(1512)를 통해 제포만 개항하였어요.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되고 개항장도 폐쇄되었다가 기유약조(1609)를 맺어 국교를 회복하면서 교류도 재개되
었어요. 이때 부산포만 개항하면서 왜관을 두모포에 설치하였다가 숙종 때인 1678년에 초량으로 옮겼습니다.
⑤ 조선 후기에는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詩社)를 조직하였어요.
이들은 역대 시인의 시를 모아 시집을 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2회 고급 30번 문제
30. 조선 후기의 문화 동향 답⑤
조선 후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한글 소설, 판소리, 탈춤, 풍속화와 민화 등 서민 문화가 발달하였다는 것입니다.
서민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은 서당 교육의 확대, 서민의 경제적, 신분적 지위가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문화 중에서도 가장 많이 출제되는 것은 그림과 관련한 것이니,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의 특징, 화가, 각 그림들에 대해 잘 공부해 두세요.
제시된 그림은 김홍도의 ‘무동(舞童)’ 신윤복의 ‘단오풍정’입니다. 두 사람은 조선 후기 풍속화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조선 후기 문화에 대해 생각하며 문제를 풀면 되겠죠?
조선 후기에는 서당 교육의 보급, 서민의 경제적·신분적 지위 향상에 따라 서민들이 즐기는 문화가 등장, 발전하였어요.
문학에서는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가 대표적이었어요.
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소설은 최초의 한글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을 비롯해 춘향전, 토끼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이 대표적이었어요. 한글 소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고,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두고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 탐관오리, 신분 차별 같은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풍자, 고발하거나 남녀 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였습니다. 시조에서도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서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설시조 형식을 통하여 남녀 간의 사랑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춤과 노래 및 사설로 서민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표현한 판소리와 탈춤이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판소리는 관중이 추임새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서민을 포함한 넓은 계층에서 호응을 받았어요.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어요. 탈춤으로는 마을굿의 일부로 공연되던 탈놀이와 무대에서 공연되던 가면극인 산대놀이가 유행했습니다. 특히,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으며, 하층 서민인 말뚝이와 취발이를 등장시켜 양반의 허구를 폭로하고 욕보이기까지 하였어요.
회화에서도 서민으로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습니다. 풍속화가로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대표적입니다. 김홍도는 산수화, 기록화, 신선도 등을 많이 그렸지만,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어요. 반면 신윤복은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죠. 민중의 미적 감각을 잘 나타낸 민화는 주로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소박한 우리 정서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백자가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그중 하얀 색의 도자기에 코발트로 청색의 그림을 그린 청화 백자가 가장 유행하였어요. 청화 백자는 안료도 청화, 철화, 진사 등으로 다채로웠습니다.
① 판소리는 폭넓은 호응을 얻어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대표적인 판소리 작품으로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이 있어요.
② 홍길동전은 허균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었습니다.
홍길동전은 서얼에 대한 차별 철폐, 탐관오리의 응징을 통한 이상 사회의 건설을 묘사하였습니다.
이 밖에 춘향전은 신분 차별의 비합리성, 토끼전은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못된 용왕을 골려
주는 이야기, 심청전은 부모에 대한 효성, 장화·홍련전은 불합리한 가족 관계에서 희생된 자매 이야기를 담았죠.
③ 조선 후기에는 청화 백자가 유행하였습니다.
청화 백자는 회회청(回回靑) 또는 토청이라 불리는 코발트를 안료로 사용하여 만들었던 도자기였어요.
④ 조선 후기 유행한 민화는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였던 그림입니다.
⑤ 악학궤범은 조선 전기 성종 때인 1493년에 성현이 편찬하였습니다.
이 책은 음악의 원리와 역사, 악기, 무용, 의상 및 소도구까지 망라하여 전통 음악을 정리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음악에서는 양반층은 종래의 가곡, 시조를 애창하였고, 서민은 민요를 즐겨 불렀어요. 이와 함께 직업적인
광대나 기생이 판소리, 산조와 잡가 등을 창작하여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1회 고급 29번 문제
29. 조선 후기의 사회 모습 답④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사회모습(결혼, 재산 상속, 혼인 등)을 파악하는 문제, 그리고 각 시대나 시기에 볼 수 있었던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는 매회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외 관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쉽게 풀 수 있기에 풀기에 쉽지 않은 문제 유형이기도 합니다.
문제에 제시된 '요즘'이 언제일지 파악하기 위한 힌트를 제시된 역사신문에서 빠르게 찾아볼까요?
'김홍도의 풍속화인 '서당도', 풍속화 유행, 정약용'을 통해 조선 후기임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① 조선 후기에도 육로 교통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한 조세 운송과 물품 운반이 활발하였어요.
이에 따라 상업이 발달하면서 포구가 새로운 상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들 포구를 거점으로 활발한 상행위를 한
이들은 선상, 객주, 여각 등이었어요. 객주나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상품의 매매를
중개하고,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습니다.
②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이 즐기는 판소리, 탈춤, 한글 소설, 서민 음악이 유행하였어요.
특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소설의 보급은 서민들의 의식 향상 등 그 영향력이 대단히 컸습니다.
한글 소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현실적인 세계가 배경이 되었어요.
③ 조선 후기에는 양반과 새롭게 부상한 부농, 상공업 계층의 지원,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대규모 건축물이 세워졌어요.
17세기에 세워진 사원은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18세기에는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가 대표적입니다.
④ 국가가 관리에게 수조권을 지급하는 제도는 16세기 중엽에 직전법마저 폐지하면서 없어졌어요(1556).
이후 관리들은 녹봉만을 받았으니, 조선 후기에 수조권을 가진 관리에게 전조를 바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⑤ 조선 후기 그림에서는 풍속화와 함께 민화도 유행하였습니다.
특히, 민화는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해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였던 그림으로,
민중의 미적 감각과 소박한 우리 정서가 짙게 배인 그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0회 고급 30번 문제
30. 청화 백자(靑化白磁) 답①
도자기 문제는 19회 시험에서 나올 예상 주제라고 내용과 기출문제를 정리해 드렸었는데 20회 시험에서 나왔네요.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는 내용 때문에 분청사기로 생각한 분들도 있네요.
그러나 '코발트 안료 사용', '조선 후기에 대량 생산되면서 널리 유행되었다.'라는 내용으로 청화백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백자가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어요.
청화 백자가 유행하는 가운데 형태와 문양이 다양해져 준수한 세련미를 풍겼고, 안료도 청화, 철화, 진사 등으로 다채로웠는데, 제기와 문방구 등 생활 용품이 많았습니다.
청화백자는 하얀 색의 도자기에 코발트로 청색의 그림을 그린 도자기로,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하였어요.
흰 바탕에 푸른 빛깔의 산수, 즉 나무와 풀, 꽃, 새 등을 그려 넣은 청화백자는 조선 전 시기를 통하여 제작되었으나, 15세기 중엽까지의 청화백자는 기형과 문양 등에서 명(明)나라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사용하던 안료도 페르시아 지방에서 생산되어 중국을 통하여 수입한 회회청(回回靑)이었기 때문에, 적은 수의 청화 백자만 생산되었어요.
그러다가 15세기 후반부터 청화 백자의 독자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 무렵 수입이 어려워진 회회청 대신 토청을 직접 개발하기도 하였으며, 이전의 청화백자와 달리 무늬 면에서도 여백이 중요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분청 사기는 점차 쇠퇴하고 청화 백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꽃병·연적·술병·필통 등의 실용적인 물건들에도 청화백자를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청화 백자의 회화적인 문양에서는 일반 도공의 솜씨가 아닌 도화서 화원의 그림 솜씨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16세기 이후 광주 분원을 비롯한 관요에서 백자를 생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청화백자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① 청화 백자 매죽문호입니다.
②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주자입니다.
③ 순백자 달항아리입니다.
④ 분청사기 조화 어문 편병입니다.
⑤ 청자 칠보 투각 향로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고려 ~ 조선 시대의 도자기
시기 | 특징 | |
고려 시대 | 특징 | • 신라와 발해의 전통을 토대로 송의 자기 기술을 수용하여 11세기경 독자적인 자기 기술 완성 • 귀족들의 생활 도구, 불교 의식 도구로 제작 |
11세기~ 12세기 초 | • 귀족 사회가 전성기에 접어들 무렵 청자 기술도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함 • 이때 제작된 비취색의 청자(순수 청자)는 서긍의 <고려도경>에 쓰여 있듯 중국인들도 천하의 명품이라고 극찬하였음 | |
12세기 중엽~ 13세기 중엽 | • 고려의 독창적 기법인 상감법(象嵌法)이 자기에 활용되어 청자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음 • 상감법은 나전 칠기나 은입사 공예에서 응용된 것으로, 그릇 표면을 파낸 자리에 백토, 흑토 를 메워 무늬를 내는 방법 • 상감청자는 강화도에 도읍한 13세기 중엽까지 주류를 이루었음 | |
원 간섭기 | • 북방 가마의 기술이 도입되고 청자의 빛깔이 퇴조함 • 이후 점차 소박한 분청사기로 바뀌어 갔음 | |
조선 시대 | 고려 말~ 조선 전기 | • 청자에 백토의 분을 칠한 것으로, 백토를 긁어내거나 철분이 많은 물감으로 그려 무늬를 낸 분청사기 등장 • 15세기, 사대부들의 취향에 맞는 백자가 제작되어 사용 →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됨 |
조선 중기~ 후기 | • 청화백자 : 코발트 성분을 안료로 하여 푸른색 무늬를 넣은 백자로, 조선 후기 백자의 주류 • 철화 백자 : 산화철을 안료로 하여 갈색 무늬를 넣은 백자 • 진사 백자 : 산화동을 안료로 하여 붉은 무늬를 넣은 백자 |
19회 고급 29번 문제
29. 민화가 유행한 조선 후기의 문화 동향 답③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회화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출제되는 곳은 고대와 조선 후기입니다.
고대에는 벽화,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진경 산수화, 문인화(세한도), 풍속화, 민화에 대한 내용이 문제로 출제됩니다.
문제에 제시된 그림은 '까치와 호랑이(호작도)', 그리고 '물고기를 이용해 효(孝)를 표현한 문자도'입니다.
두 그림 모두 전문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소박한 느낌이 들죠?
이 그림은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였던 민화입니다.
민화에는 민중의 소박한 미적 감각과 우리 정서가 잘 나타나 있죠.
조선 후기에는 서당 교육의 보급, 서민의 경제적·신분적 지위 향상에 따라 서민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이 시기 서민 문화의 특징은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였다는 것으로, 이런 경향은 자연히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을 비판하고,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죠.
특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소설의 보급은 그 영향력이 대단히 컸습니다.
한글 소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고,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두고 신분 차별이나 탐관오리 같은 사회 모숩을 비판, 풍자허거나 남녀 간의 사랑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춤과 노래 및 사설로 서민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표현한 판소리와 탈춤이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회화에서도 서민으로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습니다.
① 조선 초기의 모습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음악을 백성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여겼고, 각종 의례와 관련하여 중요시하였습니다.
특히, 세종은 악곡과 악보를 정리하게 하고 아악을 체계화함으로써 아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게 하였습니다.
② 고려 후기의 문화 특징이네요.
고려 전기에는 구양순체가 유행하고 탄연의 글씨가 뛰어났으며, 고려 후기에는 조맹부의 송설체가 유행하였습니다.
③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고 인기 있는 분야는 판소리와 탈춤이었습니다.
판소리는 솔직한 감정 표현, 관중도 함께 어울리며 즐길 수 있어 서민을 포함한 넓은 계층에서 호응을 얻었어요.
탈춤(가면극)은 양반 지배층이나 승려의 부패와 위선, 허구 등을 풍자하여 인기가 많았습니다.
④ 조선 초기의 모습입니다.
고려 말에 나타난 분청사기는 안정된 그릇 모양과 소박하고 천진스러운 무늬가 어우러져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구김살 없는 우리의 멋을 잘 나타내어 조선 초기(15세기)에 유행하였습니다.
⑤ 조선 중기(16세기)의 문학 모습이네요.
이 시기에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의 여류 문인의 활동도 활발하였던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6회 고급 28번 문제
28. 정선의 진경 산수화 답③
회화 관련 문제도 자주 출제되는 유형 중의 하나입니다.
고대 회화 관련 문제는 벽화가 출제되고, 고려 시대는 고려 후기 불화, 그리고 조선 시대는 각 시기별 회화들에 대한 문제가 출제됩니다.
아래에 제시된 유사 기출문제들을 풀어보시면 조선 시대 그림 문제는 한번에 공부가 됩니다.
문제에 제시된 내용에 '진경산수대전', '정선이 그린 그림'이라는 결정적인 힌트가 그대로 제시되어 있으니 조선 후기 회화를 공부한 분이면 누구나 맞혔을 문제네요.
사실 정선 그림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그림 설명에 나와 있는 '바위산은 선으로, 흙산은 묵으로 묘사해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라는 것만으로도 답을 쉽게 찯을 수 있을 문제, 그래서 1점짜리네요.
조선 후기에는 실학의 발달과 함께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우리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높아진 자부심을 바탕으로 우리의 고유 정서와 자연을 표현하려는 예술 운동이 나타나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가 유행하였어요.
진경 산수화는 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회화의 토착화를 이루어낸 그림이었으며,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정경과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이었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화가는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이었습니다.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는데,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①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입니다.
김정희는 그림보다는 추사체라는 서체, 그리고 금석문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인물로 잘알려져 있죠?
세한도는 김정희의 문인화로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송백(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입니다.
②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화원 출신 안견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그린 그림으로,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와
환상적인 이상 세계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대각선적인 운동감을 활용하여 구현한 걸작으로, 현재 일본에 있습니다.
③ 정선이 서울에 있는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입니다.
④ 조선 후기에 강세황이 서양의 원근법을 적용해 그린 영통동구도(영통골 입구도)입니다.
⑤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린 십장생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5회 고급 26번 문제
26. 조선 후기의 회화 답③
제시된 소설의 내용을 보면 '정선의 한 양반이 매우 가난하여 환곡을 타먹었으나 이를 갚지 못하여 옥에 갇혔는데, 그 동네 부자가 그 소식을 듣고 그 양반에게서 양반 신분을 사는 게 어떨까?'라고 나와 있네요.
'환곡', 그리고 '양반 신분을 매매'하는 등의 사회 모습이 나타난 시기는 조선 후기라는 것은 알고 있죠?
이 소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이 저술한 <양반전>의 일부입니다.
중상학파이자 북학파인 박지원은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현실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문체로 혁신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어요.
따라서 문제에 주어진 <양반전>이 쓰여진 것은 조선 후기이니 조선 후기의 그림을 고르면 되겠네요.
조선 후기 그림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새 경향은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의 유행, 그리고 민화를 들 수 있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화가는 정선으로,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가 있습니다.
풍속화가로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대표적입니다. 김홍도는 산수화, 기록화, 신선도 등을 많이 그렸지만,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신윤복은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시기 민중의 미적 감각을 잘 나타낸 민화도 유행하였습니다. 민화는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소박한 우리 정서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ㄱ - 조선 중기에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입니다.
ㄴ - 조선 후기 그려진 민화의 하나인 까치와 호랑이입니다.
ㄷ -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의 하나인 자리짜기입니다.
ㄹ - 조선 전기의 화가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13회 고급 28번 문제
28. 조선 후기의 회화 답③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해 파악하는 문제는 11~1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연속 출제되고 있네요.
지난번 1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직전 <시험전 꼭보기방>에 조선 후기 회화 출제될 가능성 높으니 꼭 보고 가라고 올려드렸는데 그때부터 연속 출제되고 있네요.
그 이전에도 조선 후기 회화 부분은 종종 출제되었으니 이 주제도 반드시 알아둡시다.
아마도 다음 시험에서는 다른 시대의 회화가 출제되거나 전 시대 통합 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이 크겠죠?
아래 <유사 기출문제 더풀기>에 그러한 기출 문제들이 있으니 잘 풀어봅시다.
(가) 자료를 보면, '남종과 북종 화법을 두루 수용',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 회화의 토착화'라는 설명이 나와 있네요.
한마디로 우리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진경산수화에 대한 설명이네요.
17세기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고, 이런 의식은 우리의 고유 정서와 자연을 표현하려는 예술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회화에서는 진경산수화가 나타났는데, 이는 중국 남종과 북종 화법을 고루 수용하여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으로 창안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화가는 18세기에 활약한 정선(1676~1759)이죠? 도화서 화원이었던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동국진경을 완성했습니다. 정선은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정선은 심사정, 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렸으며, 정선을 따르는 강희언, 김윤겸 등은 정선파로 불렸습니다.
정선의 특이한 점은 관상감(觀象監)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에 임명되기도 했다네요.
(나) 자료를 보면 '서양 문화에 대한 반응에서 유래한 화풍'이라는 말이 팍 꽂히죠?
전 근대 시기 우리나라 회화를 설명하면서 서양 화풍하면 원근법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원근법하면 강세황(1713~91)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세황은 서양화 기법(원근법)을 반영하여 사물을 실감 나게 표현하였습니다. 강세황이 개성을 여행하면서 그린 <송도기행도첩>에 실려 있는 영통동구도는 원근법, 그리고 남종화적인 기법에다가 대담한 필치와 오늘날의 수채화와도 같은 색채로 바위와 산의 모습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강세황이 자신을 그린 자화상도 유명하죠.
ㄱ - 흥선 대원군의 묵란첩,
ㄴ - 정선의 금강전도,
ㄷ - 강세황의 영통동구도입니다.
ㄹ - 안견이 그린 소상팔경도 중 1첩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12회 고급 20번 문제
20. 정선의 금강전도 답③
이 문제는 3점 배점 문제이지만 교과서에 실린 그림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제시된 제화시의 내용 중 '만이천봉 개골산'에서 이 그림이 금강산을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학교다닐 때 배웠던 동요만 알아도 금강산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어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개골산은 금강산을 부르는 여러 이름 중에 겨울 금강산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금강산은 계절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각각 달라 봄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산수가 맑기 때문에 금강산, 여름에는 온 산에 녹음이 물들어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기암괴석의 산체가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렀다는 것....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죠?
그림을 하나씩 살펴보죠.
① 정선이 개경에 있는 박연 폭포를 그린 그림입니다.
② 원근법으로 영통동구도를 그린 것으로 잘 알려진, 강세황이 그린 태종대입니다.
③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그린 금강전도입니다.
④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그린 인왕제색도입니다.
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제시된 시에 '솔과 잣나무 숲에 절간일랑 가려 있네'라는 내용 때문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그려져 있는 ④번을 답으로
고른 분들이 의외로 많았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정선의 금강전도인 ③번입니다.
11회 고급 27번 문제
27. 조선 후기의 회화 답⑤
이 문제도 카페 <시험전 꼭보기방>에 카페지기가 마지막으로 조선 후기 그림 한번쯤은 보고 갑시다라는 제목으로 올려드린 글을 보신 분은 100% 다 맞았을 겁니다...ㅋㅋ
<시험전 꼭보기방>+<고급 문제 더 풀기방>을 통한 카페지기의 문제 적중률 놀랍습니다.ㅋㅋㅋ
고급 1번 문제부터 적중입니다.
그럼 문제를 풀어보죠.
제시된 자료는 조선 후기 상품 작물의 재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료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그림이란 조선 후기의 그림을 의미하니 <보기>에서 조선 후기 그림을 찾으면 되겠지요?
ㄱ -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이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모습을 안견이 그린 조선 전기의 대표적 그림입니다.
ㄴ - 곤충이나 과일 등을 그린 대표적 화가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입니다.
신사임당은 5만원짜리 화폐에 들어간 인물로, 거기에는 초충도가 함께 들어가 있답니다.
ㄷ - 김홍도가 그린 무동도입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조선 후기 풍속화를 대표하는 화원 소속 화가였습니다.
김홍도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도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
했고, 신윤복은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어요.
ㄹ - 조선 후기에 그려진 민화의 하나인 까치 호랑이 그림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민중의 미적 감각을 잘 나타낸 민화도 유행하였습니다.
민화는 해, 달,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는 용도로 그려졌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11회 고급 25번 문제
25. 고려~조선 후기의 불교 건축물 답①
이 문제는 건물 사진 밑에 건물명이 제시되어 있어 그래도 난이도가 조금 떨어지지요?
제시된 목조 건축물은 모두 국보입니다.
제시된 건축물의 건립 시기를 파악할 때 (가)가 먼저일까? (나)가 먼저일까?
대부분 이 상황에서 고민하였을 것 같습니다.
(가)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2년 보수 공사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 건물은 신축 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 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타 버렸답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다) 전남 강진에 있는 무위사 극락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입니다.
(라)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17세기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입니다.
제시된 건축물을 건립된 시기순으로 파악하면 (가)-(나)-(다)-(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9회 고급 20번 문제
20. 조선 후기의 건축물 답①
문제에 제시된 사원 건축물이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았으면 조금 어렵게 느낄 수 있겠지만, 건물명이 제시되어 문제를 푸는 데 훨씬 쉽네요.
조선 후기에 불교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 차지하고 정치·경제적인 변화가 나타나면서 건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양반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부농, 상공업 계층의 지원 아래 많은 사원이 세워졌고,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대규모 건축물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죠.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를 들 수 있습니다.
① 화엄사 각황전은 다포식 건물입니다.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면서 건물을 치장하는 장치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짜여 있으면 주심포 양식이라 하며,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짜여져 있는 것을 다포식이라고 합니다.
주심포 양식은 주로 고려 시대의 사원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이 대표적입니다.
② (가), (나)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③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지은 절입니다.
팔상전은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후 선조 38년(1605)부터 공사를 시작해 인조 4년(1626년)에 중건되었는데,
이때 사명대사(유정)가 복원 사업을 주도하였습니다.
④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유일한 5층 목조탑입니다.
이 건축물이 탑인지 모르셨던 분은 이 기회에 탑임을 알아두세요.
⑤ 두 건축물 모두 17세기에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7회 고급 34번 문제
34. 조선 후기 판소리 답③
문제에 제시된 내용에는 춘향이가 한양으로 떠난 도련님(이몽룡)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네요.
이 작품은 '향단이', '도련님(이몽룡)'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 중 하나인 "춘향가"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판소리에 대한 설명을 찾으면 됩니다.
조선 후기 문화 분야에서는 서민 문화가 대두, 유행하였어요.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분야가 판소리와 탈춤이었습니다.
판소리는 광대가 한 편의 이야기를 노래에 해당하는 창과 이야기에 해당하는 사설(아니리와 몸놀림인 발림으로 연출)로 엮어 가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고 솔직하였습니다.
특히 분위기에 따라 광대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빼거나 더할 수 있었고, 관중이 추임새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서민을 포함한 넓은 계층에서 호응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런 이유로 판소리는 이 시기 서민 문화의 중심이 되었어요.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신재효는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ㄱ - 판소리는 호남의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동편제 중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승된 것이 중고제입니다.
ㄴ - 시사란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한 모임을 의미하므로, 판소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ㄷ - 판소리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19세기 후반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변강쇠가
등 여섯 마당만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20세기 들어 변강쇠가도 사라져 현재는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어요.
ㄹ - 시나위는 한국 무속 음악의 일종으로, 판소리와는 연관이 없어요.
ㅁ - 판소리는 그 가치를 인정 받아 2003년 11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 ㅁ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3회 1급 31번 문제
31. 조선 후기의 민화 답④
이 문제는 '생활 공간 장식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 '무명 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 등의 힌트를 통해 민화임을 금방 알 수 있네요.
조선 후기 그림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새 경향은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의 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서는 민중의 미적 감각을 잘 나타낸 민화도 유행하였습니다.
민화는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④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 그림입니다.
대나무 그림은 조선 중기의 화가 이정이 유명하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회 1급 21번 문제
21. 조선 후기 문화의 동향 답③
제시된 그림은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정선의 인왕제색도, 풍속화가 김홍도의 주막도입니다.
조선 후기 그림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새 경향은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의 유행이었고, 서예에서는 우리의 정서를 담은 글씨, 김정희의 추사체의 등장이었습니다. 정선이 개척한 진경 산수화는 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 회화의 토착화를 이룩하였으며, 김홍도, 신윤복이 발전시킨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정경과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어 회화의 폭을 확대하였지요. 그리고 강세황은 서양화 기법, 그리고 장승업은 강렬한 필법과 채색법을 사용한 화가로 유명합니다.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는 세한도로 유명한 김정희 등의 문인화의 부활로 침체되었다가 한말에 새로운 모습으로 유행하죠.
이와 함께 민중의 미적 감각을 잘 나타낸 민화도 유행합니다. 민화는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을 소재로 삼아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였습니다.
① 고려 청자는 용어 그대로 고려 시대, 그 중에서도 11~13세기에 유행하였습니다.
원 간섭기 이후에는 퇴조해 갔죠.
② 개항 이후인 19세기 말의 모습입니다.
③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속에서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 판소리 등이 유행하였습니다.
이는 문학의 저변이 서민층에까지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어요.
④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려 무신 정권기인 1193년에 저술되었습니다.
⑤ 조선 초 세종 때인 15세기 전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2회 1급 18번 문제
18. 김정희의 세한도 답①
문제에 제시된 내용에 답이 그대로 나와 있죠?
'한 겨울 추운 날씨....소나무.....추운 계절을 겪고도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절조' 등을 통해 대강 답이 잡히죠?
이런 내용들 하면 떠올려야 하는 그림이 있죠?
① 김정희의 세한도입니다.
김정희의 세한도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이 배웠을 겁니다.
위에 제시한 작품의 서문 내용을 요약하면,
추운 겨울을 지나보아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늘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도 역경을
겪어 보아야 지조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한도는 그림으로 이러한 내용을 표현한 것이죠.
② 조선 중기에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를 잘 그렸다는 이정이 그린 산수화첩에 실린 산수도입니다.
③ 정선이 그린 유연견남산도(悠然見南山圖)입니다.
④ 안평 대군이 꿈 속에서 본 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해 완성한 몽유도원도입니다(일본 덴리 대학 소장).
⑤ 강세황이 서양화풍의 원근법을 사용해 그린 영통동구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6회 고급 43번 문제
43. 추사 김정희 답①
이 그림은 잘 못보던 그림이죠?
그렇지만 이 그림을 모르더라도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리고 문인화 등의 그림은 일반 민중과는 유리된 지배층의 그림이라는 것...아시죠?
낙관이 참 많이도 찍혀 있는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에 그린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입니다.
이 그림은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사의 전형적인 난화입니다. 그는 난과 대나무를 많이 그렸습니다. 난 그림을 잘 그렸다는 흥선대원군도 그에게 난 그림을 배웠다네요. 특히 제주도 유배 생활 중에 한란을 많이 관찰하고, 아끼며 그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힘찬 난을 보면, 꼿꼿한 그의 기개가 보여지는 듯 합니다.
추사 김정희하면 몇 가지가 떠오르나요?
글씨에서는 추사체,
그림에서는 세한도,
금석학에서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해석한 것 등이 유명하죠?
김정희는 학문 연구에 대해서는 당시 유행하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추사체(굳센 기운과 다양한 조형성을 지님)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증학, 금석학에도 밝아 북한산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였습니다. 그의 회화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세한도(歲寒圖)) 등이 있으며, 저서에는 <완당집>, <금석과안록> 등이 있습니다.
ㄷ - 진경산수화하면 정선이 떠오르죠?
김정희는 세한도 등의 문인화를 그린 인물입니다.
ㄹ - 이익 등의 역사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익은 실증적이며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
장하였으며, 민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익의 제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저술하여
이익의 역사 의식을 계승하였지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3회 고급 30번 문제
문제해설
'필법, 시문, 금석학에서 중국까지 이름을 떨친' 이라는 내용을 통해 추사체와 금석학 등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를 파악할 수 있겠네요.
김정희 관련 문제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몇 가지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제시된 자료는 초의 선사가 김정희를 추모하며 남긴 글입니다. '초의 선사(1786~1866)'는 차 문화를 발전시켜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선종 승려입니다. 그는 학문에 두루 통달하고 시(詩)·서(書)·화(畵)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약용 그리고 후일 추사 김정희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교류하였어요.
김정희는 북한산비를 비롯한 다양한 비문을 고증해낸 금석학, 추사체라는 필법, 세한도라는 문인화로 유명하죠.
먼저, 그는 조선 후기 고증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박제가의 제자로, 1809년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베이징을 방문하였다가 청의 고증학자 옹방강과 완원과의 만남을 통해 고증학의 정수인 경학과 금석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어요. 그가 북한산에 있던 이름 모를 비문을 해석해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낸 것은 유명하죠.
서예에서는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필법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중국 학자들에게까지 전해져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화에서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 ‘세한도’가 유명합니다. 또한 난과 대나무를 많이 그렸는데, 흥선 대원군도 그에게 난 그림을 배웠답니다. 그의 회화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등이 있어요.
저서에는 "완당집", "금석과안록" 등이 있습니다.
① 정약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 남인 집안이었던 이들 정씨 형제들은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1801) 때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용은 흑산도로 유배가는 운명을 맞았어요.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였고, 정약전도 흑산도 유배지에서 그 지역의 어류 등을 조사 정리해
자산어보를 저술하였죠.
② 김정희는 명필로 이름난 중국의 왕희지, 구양순의 서체를 비롯해 다양한 서체를 연구하여 추사체를 완성하였어요.
추사체의 특징은 굵고 가늘기가 심하고 필획과 서체의 각이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조화된 것에 있습니다.
③ 세한도는 김정희의 문인화로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송백(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입니다.
그림에 "추운 겨울을 지나보아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늘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도
역경을 겪어 보아야 지조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④ 김정희는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을 방문하였다가 청의 고증학자 옹방강과 완원과의 만남을 가졌고, 귀국한 후에도
그들과 편지 등을 통해 교류를 지속하였어요.
⑤ 김정희는 북한산 정상에 있던 오래되어 풍화된 비문을 해석해 진흥왕 순수비임을 처음 밝혀냈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4회 고급 35번 문제
35. 각 시대 회화의 특징 답②
이 문제는 고대의 고분 벽화에서 조선 후기 민화까지 각 시대별 회화의 특징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가) 고구려 고분인 평남 강서대묘에 그려진 벽화, 사신도 중 서쪽 방위신을 의미하는 청룡도입니다.
(나) 고구려 고분인 중국 길림성 집안현 각저총에 그려진 씨름도입니다.
(다) 고려 후기에 그려진 불화인 혜허의 양류관음도입니다.
(라) 조선 후기 화가인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입니다.
정선은 우리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인물로, 금강전도, 왼왕제색도 등을 그렸습니다.
(마) 조선 후기 민중들이 소원을 기원하고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애용한 민화 중 까치호랑이 그림입니다.
② 각저총에 그려진 씨름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8회 고급 24번 문제
24. 조선 시대 시기별 회화의 특징과 흐름 답④
이 문제는 조선 시대 시기별 회화의 특징과 흐름을 살펴보는 문제네요.
(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15세기)
문인 화가인 강희안은 시적 정서가 흐르는 낭만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고사관수도는 선비가
수면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빠진 모습을 담고 있는데, 세부 묘사는 대담하게 생략하고 간결하고 과감한 필치로 인
물의 내면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나) 신사임당의 초충도(16세기)
신사임당은 소박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필치로, 꽃과 나비, 벌레 등을 그려 여성의 심정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다) 김홍도의 무동(18세기 후반)
정선의 뒤를 이어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 경지를 열어 놓은 화가는 김홍도입니다. 그는 산수화, 기록화, 신선도 등을
많이 그렸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정감 어린 모습들을 표현한 풍속화입니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는데, 이런 그림에서 18세기 후반의
생활상과 활기찬 사회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라) 김정희의 세한도(19세기 전반)
세한도는 고고하고 지조 있는 선비의 높은 이념 세계를 표현한 문인화입니다.
④ 세한도는 전형적인 문인화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조선 전기 회화에 대한 문제지만 답지가 유사하여 함께 제시합니다.
23회 고급 18번 문제
문제해설
아래 유사 기출문제를 보면 알겠지만, 15회 시험 때 출제된 기출문제와 유사하게 출제되었네요.
일부 모르는 그림도 답지에 제시되었지만, 답을 찾기는 쉽네요.
15세기 그림은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의 그림과 관료이자 문인인 선비의 그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역대 화풍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하여 우리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화가로는 안견, 강희안을 꼽을 수 있습니다.
화원 출신인 안견은 역대 화가들의 기법을 체득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안평 대군의 꿈을 소재로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이 그림은 왼쪽에 현실 세계, 오른쪽에 이상적인 도원의 세계를 배치해 현실 세계와 환상적인 이상 세계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대각선적인 운동감을 활용하여 구현한 걸작으로 인정 받습니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현재 일본 덴리 대학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문인 화가인 강희안은 시적 정서가 흐르는 낭만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대표작인 고사관수도는 간결하고 과감한 필치로 인물의 내면 세계를 느낄 수 있게 잘 표현하였어요.
16세기 들어 강한 필치로 산수화를 그리거나 선비의 정신 세계를 사군자로 표현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어요.
노비 출신으로 화원에 발탁된 이상좌는 송하보월도에서 바위틈에 뿌리박고 모진 비바람을 이겨 내고 있는 늙은 소나무를 통하여 강인한 정신과 굳센 기개를 표현하였어요. 신사임당은 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그리고 화초와 벌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으며, 초충도가 특히 유명하죠. 이정은 사군자 중에 대나무(묵죽도가 유명), 어몽룡은 매화를 잘 그렸어요.
① 정선(1676~1759)이 서울에 있는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입니다.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은 진경 산수화를 개척했어요.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해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② 조선 후기에 강세황(1713~1791)이 서양화풍의 원근법을 사용해 그린 영통동구도(영통골 입구도)입니다.
강세황은 서양화 기법(원근법)을 반영해 사물을 실감 나게 표현하였어요. 영통동구도는 강세황이 개성을 여행하면서
그린 <송도기행도첩>에 실려 있는데, 원근법, 대담한 필치와 오늘날의 수채화 같은 색채로 바위와 산의 모습을 처리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③ 조선 후기에 전기(1825~1854)라는 작가가 그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입니다.
매화꽃이 눈송이처럼 피어난 날 초가집에서 문을 열어놓고 친구를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면 붉은 옷을 입고 거문고를 메고 다리를 건너오는 인물이 이 그림을 그린 전기이고, 초가집에서 친구
(전기)를 기다리는 인물이 오경석(개화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죠)이라고 하네요.
④ 김홍도(1745~?)가 병진년 화첩에 그린 옥순봉도입니다.
그는 풍속화가로 유명하지만 화원으로서 정조 어진 등의 인물화, 산수화 등 다양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김홍도는 1791년 정조 어진 작업에 참여해 그 포상으로 그해 12월에 충북 단양 옆 고을인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어
3년간 머물렀어요. 이 때문인지 1796년에 그린 병진년 화첩에는 도담삼봉, 사인암, 옥순봉 등 단양의 풍광을 그린
그림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⑤ 안평 대군이 꿈 속에서 본 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해 완성한 몽유도원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5회 고급 16번 문제
16. 안견의 몽유도원도 답⑤
문제에 제시된 신문 기사의 내용 중 '안견이 안평 대군의 요청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는 것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죠?
이 그림은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입니다.
화원 출신인 안견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그리게 한 그림입니다(현재 일본 덴리 대학 소장).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와 환상적인 이상 세계를 능숙하게 처리한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① 조선 후기에 강세황이 서양의 원근법을 사용해 그린 영통동구도(영통골 입구도)입니다.
②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정선이 금강산 만이천봉을 그린 금강전도입니다.
③ 정선의 진경 산수화인 인왕제색도입니다.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은 진경 산수화라는 새로운 화법을 개척하였습니다.
진경 산수화는 중국 남종화와 북종화법을 고루 수용하여 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새로운 화법으로, 회화의
토착화를 이룩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정선은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습니다.
정선은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습니다.
④ 19세기에 활약한 김정희가 선비의 이상을 잘 표현한 세한도입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의 인품을 송백(松柏)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랍니다.
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28회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오 유용한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단 분은 등업 안됩니다.
그림의 작가 찾기 문제를 풀면서 그시대 건축 예술의 흐름까지 짚으며 깊이 공부해야는 군요 유사기출문제까지 하면 이 부분은 확실히 숙지할 수 있겠네요
그림문제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나중에 공부하다 헷갈릴 것 같네용
강의로 전체적인 흐름만 파악할 때는 관련된 그림까지 자세히 알아야하는지 몰랐네요.
유사한 문제까지 공부할 수 있어서 미리 다른 문제도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연관 문제가 많이 보이네요 ㅎ 저도 단어위주로 공부하다 흐름을 좀 알아야할거같아요..
그림 문제를 한번에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잘 정리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림이나 사진 문제는 공부하면서 그때그때 찾아보는게 좋더라구요.
감사해용
제가 아이 때문에 구입한 책 중에
'아재랑 공재랑'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으로 조선 미술을 한번에 훑을 수 있네요.
마침 우연히 아이한테 그 책을 보여주다가
이 문제에 나온 그림 모두를 봤었는데,
다음날 시험문제에 나와서 완전 기뻤던ㅋㅋ
아동도서지만 어른이 봐도 좋은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 그림의
특징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신윤복은 컬러풀하고 배경이 디테일하고,
기생이나 양반을 많이 그렸지만
김홍도는 무채색에 평민,
선이 굵고 배경을 생략해
인물에 집중하도록 한 게 특징입니다.
김득신은 김홍도와 비슷하게 평민을 많이 그렸지만
선이 훨씬 가늘죠.
그림문제들이 쉽게 이해가 되네요.
단원 김홍도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려있는 그림입니다. 출제포인트는 혜원 신윤복의 작품의 특징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서민생활의 단면을 주로 다루었으나, 신윤복의 풍속화는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간의 애정을 주로 그렸습니다.
당연히 이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들이 많네요 ㅠㅠ
그래두 해설이 꼼꼼하게 적혀 있어서 쫌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확실히 문화에서 그림쪽은 수월하게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세한 해설 고맙습니다
문화사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림도 잘 기억해둬야겠네요
문화사에 약한편인데 설명도 잘되어있고 칼라로 나와잇어서 이해가 빨리됐어요! 감사합니다.
문화파트도 많이 까다롭네요 ㅠㅠ 흐름을 염두하고 가지고 있는 교재의 자료를 꼼꼼히 봐야겠어요.. 역시 기출위주로 공부하는게 가장 정석이란 생각이듭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문제지를 보면 시대순으로 문제를 배열하는 것 같은데, 문화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회화작품이랑 문화재작품들도 공부해야 겠어요~
유용한정보예요 감사합니다
공부안하고 보니 다 너무어려워 보이네요!
작가와 화풍에 대해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문제를 풀어야 할것같네요. 좀더 구체적인 흐름과 특성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림은 쉽게 풀수 있을것 같은데 도자기 구분은 정말 어렵네요
도자기가 왜 어려울까요^^;
탑도 아니고..
혹시 흑백으로 출력해서 보시는 거면 혹 그럴 수도.
오히려 탑이나 건축물보다 구분 쉬운데요.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예술 등이 시험에 많이 나온 것 같네요. 자세한 해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부할때 잘 참고하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등업 제외
감사합니다~
등업 제외
대충 보면 쉬워보이는데 보기를 볼수록 헷갈리는...ㅠㅠ 문화사 파트는 언제나 머리 아프네요.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전체적으로 흐름을 아는게 먼저인듯 하네요. ^^
재미있을 듯 하지만 어려운게 문학사 같아요... 특히 탑들은 왜이리 비슷하게 생겼는지...ㅠㅠ
공무원 국사와는 많이 다른듯 하네요
이직 준비중이라 도전중입니다
팟팅 하겠습니다
처음에 김홍도 풍속화에서 1번이다 라고 딱 찍었는데, 결국에 아닌 걸 고르는 문제였네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듯 싶습니다. 열공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림쪾은 접근하기 쉬운듯 한데 도자기 부분은 봐도 봐도 헷갈리네요~~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쉽게 접근할수 있을듯 합니다~~
그림 문제도 흐름에따라 잘 알고 있어야 하겠네요;; 처음 시작하는단계에서 열심히 머리싸잡아매야겠습니다~~
감사
김홍도 풍속화의 특징은 "배경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