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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희망을
2010년 4월 7일 / 삼일예배 / 겔 37장 1-14절
겔 37:1-1-14 /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 소생함] 나는 여호와께서 손으로 내 몸을 붙잡아 올리시는 것을 느꼈다. 그러더니 주님의 영이 나를 데리고 나가 어떤 골짜기의 들판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에는 온통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 차 있었다. 2) 주님은 사방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 흩어진 뼈들을 내게 보여주셨다. 그 골짜기 들판에 흩어진 뼈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바싹 마른 것들이었다. 3) 그런 다음에 여호와께서 내게 물으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주 여호와여, 그 일은 주님만 아십니다!” 4)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뼈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5) 나 주 여호와가 너희 뼈들에게 하는 말이다. 너희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겠다! 6) 내가 너희 뼈에서 힘줄과 살이 돋아나게 하고 그 위에 피부를 입힌 뒤 다시 살아나도록 너희 속에 네 숨을 불어넣어 주겠다.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7) 나는 주께서 이르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 이미 어떤 소리가 내게 들려 왔다. 그것은 바로 뼈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연결되면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8) 나는 그때 그 마른 뼈들 위에 힘줄과 살이 돋고 그 위에 피부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 속에 아직 생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9) 그때에 주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생명의 영을 불러오너라! 내 이름으로 생명의 영에게 명령하여 생명의 영이 사방에서 이 전사한 사람들에게로 불어와서 그들을 다시 살려내게 하여라!” 10) 그래서 내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이 숨을 쉬기 시작하며 다시 살아나서 모두 제 발로 일어섰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군인들이었다. 11)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뼈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다 말라 버리고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 하고 탄식한다. 12)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는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가 직접 너희의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내 백성으로 데리고 나와 몸소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13) 내가 너희의 무덤들을 열고 이렇게 너희를 무덤 속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으로 삼으면 그제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에게 내 영을 불어넣어 다시 살려 놓고 몸소 다시 너희의 땅으로 데려가면 그제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의 중앙로역 구내에서 50대 남자인 김대한은 휘발유를 담은 페트병 2개에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져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린 대형참사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50대 중반의 한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신병인 뇌졸중으로 비관(우울증 증세)하다 나머지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지하철 객차 안에 불을 지르고 죽으려고 했다. 이 방화범은 휘발유를 담은 페트병 2개를 가지고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의 명덕역에서 지하철 1호선의 제1079열차를 탄 뒤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열차가 성내동의 중앙로역에 정차하기 위하여 서행하는 도중에 갑자기 휘발유가 든 페트병에 불을 붙였다. 주위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만류도 소용없이 순식간에 불이 번졌을 때 제1079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중이어서 승객들이 대부분 빠져나갔으나, 제1079열차의 불길이 반대편 선로에서 진입하여 정차한 제1080열차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제1080열차의 기관사와 지하철 사령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동안 불은 맹렬히 번졌으며, 이 열차에서 대부분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 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출근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타고 있어서 인명피해도 엄청나 192명(신원 미확인 6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방화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사망하였다.
이런 와중에 여기저기서 공공건물을 폭파하겠다는 협박과 모방 범죄가 줄을 잇고,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분들이 자살로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신병을 비관한 정신병자의 정신 나간 행동 때문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이 문제를 보면 우리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좌절과 절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화범 김대한이라는 사람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사실은 절망이라는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 어떤 곳에서 활동하던 사탄이 자신의 활동영역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여 그동안 자신이 사용하던 무기들을 반액으로 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액세일 첫 날부터 많은 사탄들이 찾아 왔는데 한 젊은 사탄이 진열된 무기들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다가 그 무기들 중에 가장 비싼 무기가 절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젊은 사탄은 그 주인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이 절망이라는 무기는 왜 이렇게 비싼가요?” “아, 자네 아직 이 무기 사용 안 해봤나? 이거 아주 기막힌 거야. 이 절망을 사용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온갖 종류의 해악을 끼치는 데 성공할 수 있지. 이건 사실 내가 가장 아끼는 무기야.”
사탄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절망의 재료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경제 규모는 점점 더 커지는데 가계경제는 점점 오그라들고 있습니다. 국민총생산은 선진국 수준에 육박한다는데 가난한 사람은 후진국 못지않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근로자의 봉급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성공의 기회는 무한정이라고 하는데 정작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질 않습니다. 거리의 쇼윈도는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는데 그늘에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초라해져 갑니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젊은 벤처 기업가도 있지만 평생 땀 흘려 경영한 사업이 졸지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불치의 질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덮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에도 침투합니다.
■ 20세기의 위대한 성자라고 불리던 존 조웨트라는 사람도 이렇게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삶에 기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내가 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며 또 영적으로 계속 성숙해가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나는 매사에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음 깊이 더럽혀져 있는 자신을 보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일컬어지던 스펄전이라는 분도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때때로 너무나 깊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여러분만은 제발 나와 같은 이런 극한 상태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용사 다윗도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시 69:2 / 발 디딜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듭니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파도가 집어 삼키려 합니다.
심지어 저 유명한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장 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 1:8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가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꼭 알아두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진 박해와 고통을 견디어 내지 못하여 끝내 살아남을 희망조차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복권을 사고 경마장엘 갑니다.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합니다. 돈과 성공에 매달려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오늘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영적 백신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절망이라는 영적 질병을 물리치고 회복되는 우리가 되십시다.
■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우리나라는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안타까운 몸짓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이어 1910년 한일합방으로 우리나라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고통과 절망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동아공영이라는 간판을 들고 식민지 백성들의 등에 쟁기질을 하며 수탈과 착취에 열을 올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빼앗긴 땅에 살 수가 없어서 만주로 이주를 했습니다. 먹고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을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선교사였던 멕켄지선교사의 보고서가 ‘자유를 향한 한국의 투쟁’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주를 찾아오는 한국 실향 이주민들의 말 못할 참혹한 고생은 이를 목격한 사람의 언어로도 그 표현과 이해가 심히 어려울 지경이다. 엄동설한,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헌 옷을 입은 말없는 무리들이 열, 스물, 혹 쉰 명씩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눈 덮인 산언덕을 허물어지듯 밀려간다. 여러 사람이 식량 부족으로 죽어갔다. … 여자들은 제대로 옷을 못 입어 허리가 퍼렇게 드러났는데 등에 업힌 어린 애들의 버선 없는 발목이 새파랗게 노출되어 얼어 있었다. 이렇게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허리가 굽고 보기에도 가엾은 얼굴을 하고 몇 백리를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뼈가 휘청해져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더 내놓을 수 없을 때까지 … .”
당시 우리 민족의 고통과 절망을 대변하는 글입니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놓을 수 없을 때까지 생존을 위해 방황하는 무리들의 행진! 이것이 어두운 역사의 터널을 지나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역사의 어둠을 뚫고 일어나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입니다. 빼앗긴 땅 한복판에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포로된 백성이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절망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고 외쳤습니다. 물론 독립을 선언했다고 해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희망을 외쳤다고 해서 새 시대가 열린 것도 아닙니다.
▶ 세상적으로 새 시대가 열리지는 않았으나 암흑과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희망을 불어넣으시자 곧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독교 신도들이 신앙을 일깨우고 낙심자들을 회개시키며, 불신자를 구원하는 신앙운동이 기독교부흥운동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하루에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바울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회심하여 3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함으로써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16세기에 루터와 칼뱅이 중심이 되어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교회가 세워졌으며, 신앙의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성직자들과 제후들이 개종하여 복음의 순수한 신앙이 바탕이 되어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1734-1735년과 1740-1742년에 일어난 미국의 에드워드가 중심이 된 대각성운동이 전개되어 성도들의 회개운동과 함께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4~1906년에는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10만 명 이상이 회개의 고백을 하였을 때 술의 판매와 범죄사건이 크게 감소하였다.
한국에서는 1903년 원산에서 여자 선교사 화이트가 집회를 인도할 때 캐나다의 선교사 하디가 성령의 체험을 가지는 등 부흥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1907년 1월 평양에서 블레어 목사가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봄에는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경기도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1907년 9월 장로회 총회에서는 중국 산둥[山東]에 선교사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두 사람을 선정하였습니다. 부흥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하여 한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1910년 10월 평양의 한 교회는 한 주에만 4,000명이 세례(침례)를 받았고 수 천 명이 교회에 새로 등록했습니다. 1911년에는 김익두 목사가 신유의 은사를 행하여 초기 부흥운동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메소포타미아 그발 강가에 나라를 잃고 잡혀와 살던 한 포로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스겔이었습니다. 주전 606년 경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약탈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다니엘도 잡혀갔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유대왕국은 8년 후인 주전 598년에 바벨론으로부터 독립하려고 계획을 세우다가 다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여호야긴 왕을 비롯해서 더 많은 귀족들과 나라의 지도자들이 잡혀갔습니다. 이 포로들 가운데 제사장의 꿈을 키우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역만리 타국에 포로로 잡혀와 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포로가 되어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제사장이 되겠다던 꿈도 깨져버렸습니다. 무심히 흐르는 그발강의 강물처럼 그의 인생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눌려서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발 강가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권능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절망의 재를 털고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587년에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유다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들어 올려 백골이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자세히 살펴보게 하셨습니다. 뼈가 심히 많았습니다. 초토화된 전쟁터에 버려진 채 죽은 군인들의 해골과 뼈가 널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저 많은 주검 속에 혹시 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질 수가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부상자도 없습니다. 신음 소리도 없습니다.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시신도 없습니다. 누구의 해골인지 누구의 손발 뼈인지 알 수 없이 온 천지에 흩어진 뼈 조각뿐이었습니다. 정적을 깨뜨리며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뼈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화살에 맞은 사람도 아니고 창에 찔린 사람도 아니고 뼈 조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이것을 가능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마른 뼈를 보고 살 희망이 있다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살아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마른 뼈에도 희망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무엇을 아신다는 말입니까? 마른 뼈가 살지 못한다는 것쯤은 에스겔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른 뼈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마른 뼈를 살리실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라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라면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대답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뼈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또 9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른 뼈를 향해서,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생기를 향하여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먼저 마른 뼈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5) 나 주 여호와가 너희 뼈들에게 하는 말이다. 너희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겠다! 6) 내가 너희 뼈에서 힘줄과 살이 돋아나게 하고 그 위에 피부를 입힌 뒤 다시 살아나도록 너희 속에 네 숨을 불어넣어 주겠다.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 흩어져 있던 뼈들이 달그락거리며 들어맞으면서 힘줄이 생기고 살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더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외쳤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에스겔이 대언하였더니 정말로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곧 살아 일어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 물론 이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환상이었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그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바벨론을 쳐부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루었다면 애들 만화영화 시나리오로 딱 맞을 겁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이 환상은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희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죽음 같은 절망을 깨뜨리고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2)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는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가 직접 너희의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내 백성으로 데리고 나와 몸소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 구소련의 이리나 라투신스카야라는 시인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 이리나는 신비한 기운이 자신의 마음을 덮는 것을 느끼고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어떻게 하다가 당시 소련에 빠른 속도로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이리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끊임없이 감시했습니다. 결국 이리나는 28세 되던 해에 체포되어 14년 형을 언도 받고 악명 높은 바라세보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수용소에도 그녀는 시를 썼습니다. 수용소에서 쓴 이리나의 시는 사람들을 통해 바깥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유럽의 그리스도인들과 인권단체들이 이리나를 석방시키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마침내 1986년 미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석방되었습니다. 이리나는 석방된 후 유럽으로 망명하여 책을 한 권 발간했는데 그 책의 제목을 ‘회색은 희망의 색이다’라고 붙였습니다. 어둡고 절망적인 회색빛 삶에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자유의 희망을 가지고 시를 썼습니다. 절망적인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희망의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회색의 삶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희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시 39:7 / 그러니 이것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주님이여, 나의 희망은 오직 주께만 있습니다.
시 62:5 / 아, 하나님을 바라는 이 마음 한없이 평온하구나. 나의 희망 오직 주님뿐이시니.
시 71:5 / 주님이여, 이 몸 주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를 바라며 어릴 때부터 믿어 온 여호와 아니시면 그 누구를 의지할까요!
시 146:5-8 / 얼마나 복되랴,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 주실 분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 여호와를 굳게 믿는 사람은. 6) 여호와는 하늘을 내신 분. 땅을 지으신 분. 바다를 펼치신 분. 그 안에 사는 세상 만물을 지어내신 분. 언제까지나 하신 약속은 꼭 지키시는 분. 7) 억압당하는 이 편드셔서 재판하시고 굶주린 이에게는 먹을 양식 주신다. 여호와께서는 감옥에 갇힌 이를 해방시키신다. 8)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하신다. 쓰러져 있는 이를 일으키신다. 바르게 살려 애쓰는 이 사랑하신다.
본문의 핵심은 백골이 살아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희망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백골이 가득한 죽음의 골짜기에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희망이 있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망해버린 나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희망이 있다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절망스러운 인생도 하나님의 품 안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삶 속, 막막한 앞길, 실패한 사업, 병든 육신, 서러운 가난 속에도, 억울한 신세, 더러운 마음, 파탄난 인격에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희망이 있다고 가슴 펴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절망이라는 영적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회색빛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대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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