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주민이 행복한 농촌 만들기
농촌 길 내고 문화센터 짓는 등
정부·지자체 각종 지원사업에도 투자효율 떨어지고 의타심 늘어
주민자치 강화하고 참여 확대로 생활만족도 지속적으로 높여야
추석연휴를 적적하게 보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을 방문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진정되면 고향을 찾아 ‘하하호호’ 웃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았던 서산대사가 읊은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이라는 시구처럼 그땐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집은 무너지고, 마을은 황폐화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방방곡곡에 길을 내고 문화센터를 지어주었지만 이용객이 별로 없다. 또 돈을 주고 외지 젊은이들을 데려왔지만 얼마나 버틸지 확신하기 어렵다. 폐가가 늘고 버려진 농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마을도 많다. 특히 걱정스러운 점은 각종 개발사업의 선정과 시행 과정에 지역 여건이나 주민 수요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다보니 투자 효율이 떨어지고 의타심만 늘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의 ‘제8회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 결과가 발표됐다. ‘농촌마을가꾸기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콘테스트는 주민과 지자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농촌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 발전과 삶의 질을 개선하도록 하기 위한 행사다. 당초 소득·체험, 문화·복지, 경관·환경 등 3개 분야에서 우수한 마을 만들기 사례를 발굴해왔으나 지난해부터 읍·면 단위 지역활성화를 추진하는 농촌지역개발사업과 농촌빈집·유휴시설활용 2개 분야가 추가됐다. 해마다 2000여개 마을이 참여해 경쟁을 거치는데 올해는 107개 시·군 1994개 마을이 참여해 25개 마을이 상을 받았다.
입상자의 면면을 보면 소득·체험 분야의 경우 콩국수와 순두부 등 계절별 식당메뉴 개발 및 콩 가공식품으로 연 4억7000만원의 매출과 20명의 일자리를 만든 전북 정읍 ‘정문 두승산콩마을’이 금상을 차지했다. 문화·복지 분야는 학춤 개발과 학수고대축제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과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한 경북 칠곡 ‘학상리마을’이, 경관·환경 분야는 마을에 힐링공간과 정원 조성, 쓰레기 수거의 날 운영, 업사이클링 밴드 운영으로 환경인식을 개선한 충남 보령 ‘호동골과 젓떼기마을’이 각각 금상을 받았다.
또 면 단위 문화센터에 사물놀이와 한지공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목욕탕 운영과 바자회를 통해 확보한 비용으로 무료 경로식당을 운영하는 전남 함평 월야면이 농촌지역개발사업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주민화합 공간과 방문객 쉼터, 농촌유학, 직거래장터 등에 활용하는 전남 화순 ‘이서커뮤니티센터’는 농촌빈집·유휴시설활용 분야의 상을 차지했다.
한편 몇년 전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충북 영동 모리마을도 소득·체험 분야에서 입상해 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2014년 4월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장관이 왔으면 선물 보따리를 풀어라”는 요구에 “선물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마을을 청소하고 아름답게 가꾸면 손님이 늘어날 것”이라며 함께 마을 진입로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연말에는 누가 잘하는지 심사해서 포상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약속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다. 입상한 마을들은 하나같이 예인조복(譽人造福, 사람을 칭찬해 복을 짓는다)이라는 경구처럼 누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노력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어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을 활성화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1971년부터 1984년까지 7조2000억원(정부투자 57%)이란 많지 않은 재원으로 한국 농촌의 근대화를 일으켰는데 그보다 몇십배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지역개발사업이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런가?
‘행복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에 부족한 재원을 확충하고 인력을 보강하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즉 주민자치의 고도화, 사업 선정과 집행 과정에서 주민참여 확대, 그리고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 및 사후관리를 위해 이장과 지도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콘테스트 대상 농어촌을 마을에서 읍·면 등의 생활권으로 확장하고, 한 분야에서 입상한 마을은 다른 분야나 상위 레벨에 도전할 수 있도록 허용해 더 높은 수준의 농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면 어떨까? 행복농촌은 결국 주민생활의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질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