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필리포프 성모발현 성지
개요
필리포프는 체코 서부 지역인 보헤미아에 있는 마을로 체코와 독일, 폴란드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있다. 보헤미아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오랫동안 이웃 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수많은 전투가 치러져 유랑 생활을 하는 집시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필리포프의 주민들은 늘 불안하고 고단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있는 필리포프에 1866년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보헤미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 주었다.
1930년대에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방문하여 보헤미아의 루르드로 불렸던 성지이기도 하다.
성모님의 발현
1866년 1월 13일 필리포프 63호 주택에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각종 질병으로 침상에 몸져누워 있던 31세의 막달레나 카데오바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그녀는 폐렴과 흉막염, 수막염 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1865년 2월에 또 다른 심각한 가슴 통증이 나타났고 그녀의 오빠 요제프의 가족과 두 명의 주치의가 그녀를 돌보았다. 1865년 11월 두 주치의는 막달레나가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하여, 곧 죽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녀는 점점 고통이 심해졌으며, 더 움직이지 못했고 자주 의식을 잃었다. 1865년 12월 21일 이리코프의 신부 프라티세크 스토르흐가 그녀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하였으며,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이제 죽음만이 그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주 후 1866년 1월 12일 밤, 옆집에 살고 있던 막달레나의 오랜 친구 베로니카 킨더만이 찾아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며 같이 기도를 바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경 고통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한 막달레나가 기도를 바치는데 갑자기 밝은 빛이 비치면서 방이 낮보다 더 환해졌다. 깜짝 놀라 팔꿈치로 베로니카를 깨우며 “저 아름다운 빛을 봐!”라고 말했으나 잠에서 깬 베로니카에 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때 막달레나는 그녀의 침대 앞에서 흰옷을 입고 머리에 황금색 왕관을 쓴 빛나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이 여인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자 막달레나는 몸을 떨면서도 두 손을 모아 “저의 영혼은 주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저의 정신은 저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 그 빛나는 여인은 여느 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특별한 음성으로 부드럽게 “내 아이야, 이제부터 너의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여인이 사라지자 막달레나는 즉시 치유되었다. 그날 새벽 막달레나는 혼자의 힘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고,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한한 행복감에 젖었다. 아침이 되자 막달레나는 빵을 사러 동네 빵집에 갔다. 주민들은 그녀가 건강한 상태로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막달레나는 “밤에 성모님이 저에게 이제부터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저는 그 순간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식은 즉시 주변 지역에 퍼졌다. 막달레나의 집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직접 그녀를 보고 싶어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 앞에 모였으며 일부는 집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자세하게 이야기하였고, 그녀의 집으로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발현 장소
시대적 배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이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수백 년 동안 핍박과 수난을 당하며 고통스럽게 살수밖에 없었던 보헤미아 지역의 작고 가난한 마을 필리포프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필리포프의 주민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불쌍한 막달레나를 선택하시어 그녀가 몸져누워 있는 침대 앞에서 발현하셨다. 1866년 1월 이 기적적인 치유의 소식이 퍼지자 막달레나의 집을 찾아오는 순례자가 날로 증가하였다.
성모님이 발현하실 당시 막달레나의 집 주변에는 초원만 있을 뿐 어떤 건물도 없었다. 이에 1866년 5월 막달레나는 순례자를 맞이하기 위해 성모님이 발현하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임시 경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오래된 책상을 수리하고 막달레나가 성모님을 보았던 침대에는 아름답게 수놓은 베개가 놓였으며 하루 종일 촛불이 봉헌되었다.
1870년 프란티셰크 스토르흐 신부는 막달레나의 집을 매입하여 우선 경당으로 사용하였고, 이어서 1873년 1 월부터 막달레나의 집터에 건립될 성당의 공사를 시작하였다. 1885년 정면에 2개의 탑이 있는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축성하였으며 이리코프의 지부 교회로 운영하였다. 성당을 관리 유지하고 순례자를 안내할 목적으로 1884년부터 성당 바로 옆에 수도원 건립이 시작되었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던 침대가 있던 위치에는 막달레나의 구술에 따라 만들어진 906111 높이의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이 성모상은 이탈리아산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용은 폴란드 귀족 카롤리나 라친스키가 지불했다고 전해진다.
시현자
1835년 6월 5일 막달레나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카데오바 가족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원래 가난한 집이었는데 막달레나가 13세 때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
1854년 19세가 되자 또 다른 고통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여러 가지 중병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폐렴과 능막염, 그리고 나중에는 수막염으로 고생했다.
혼자 힘으로는 지낼 수 없던 막달레나는 오빠 요제프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도움을 받았다. 이런 상태로 무려 12년을 살다가 결국 병자성사까지 받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이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은 막달레나가 즉시 병에서 치유되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기적의 치유를 받은 후 막달레나는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수많은 순례자를 맞이하면서 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달하였고, 집으로 찾아온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았다. 또한, 교회 성역화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협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매각하여 기부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이리코프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오랫동안 봉사 활동에 전념하다가 1905년 12월 10일 70세 나이로 선종하였다. 병자성사까지 받은 중증 환자가 70세까지 장수한 것은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유해는 이리코프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가 1925년 필리포프의 공동묘지로 옮겨졌고, 1994년 다시 필리포프 성당으로 이전되었다.
지금까지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 가운데 막달레나의 경우처럼 특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시현자 중에서 이렇게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던 사례는 없으며, 더 나아가 시현자가 고통과 죽음에서 치유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한 때도 막달레나가 유일하다.
물론 성모님을 직접 만나 뵙는 것 자체도 기적이며, 시현 이후 삶이 달라져서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분명 기적이다. 그러나 막달레나처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에서 성모님이 다른 메시지 없이 오로지 시현자의 치유만을 언급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성지 소개
필리포프 성지는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노인 요양 시설로 크게 구분된다. 1885년 5월 대성당 옆에 수도원이 완공되면서 대성당의 유지 관리를 잘한 덕에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여, 1930년대에는 성모님 발현 성지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체코의 공산화로 독일과의 국경 지역에 위치하던 수도원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어졌다.
1953년에는 국경 조정으로 수도원이 폐쇄되어 군부대의 훈련을 위한 병영으로 사용되었고, 이에 순례자가 급감하였다. 1966년 수도원은 민간 시설인 고아원으로 변경되었다가, 1971 노인 요양 시설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성당 실내 후면부 2층에 설치된 아름답고 풍성한 음색의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여,2001 년부터 매년 가을에 정기적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연주회에는 체코 주민들은 물론이고 인근의 독일 주민들도 많이 참석하여 양국 간의 화합과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