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님의 사생활>
봄이 오고 있다. 2월 말이 되면 농장은 긴 방학을 끝내고 가지, 토마토 씨앗을 침종하는 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두부곽, 혹은 그 비슷한 플라스틱 통 바닥면에 두툼하게 거즈면을 깐다. 습기를 충분히 머금도록 쪼로록 물을 흘려 면을 적신다. 작년에 받아둔 씨앗을 작업대로 옮겨놓는다. 핀셋을 이용해 씨앗을 집어서 손바닥만한 통 안에 늘어놓는다. 습기를 머금은 면보 위에 가지런히, 혹은 뒤죽박죽 올려진 씨앗을 마르지 않게 관리한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씨앗이 열린다. 열린 틈으로 뽀얀 꼬리가 나온다. 싹이 텄다. 왕성하게 자라날 준비를 마친 씨앗을 상토가 담긴 트레이에 하나씩 옮겨 심는다. 이처럼 침종 과정은 발아율이 떨어지는 씨앗의 발아를 비교적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다.
나는 아직 씨앗 앞에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땅에 씨감자를 묻거나 아이들과 텃밭 수업을 하며 씨앗을 직파할 때면 내심, ‘여기서 정말 싹이 날까?’ 의심한다. “여기서 싹이 날까요?” 물어보는 아이에게 “씨앗의 힘을 믿어보자”라며 씩씩하게 답하곤 하지만, 뒤돌아서는 아이가 내게 한 질문을 동료들에게 똑같이 하곤 한다. 일주일에 가까워지도록 싹이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일 때면 씨앗의 생사가 궁금한 나머지, 흙을 살짝 갈라 뒤적이며 상태를 확인해본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땅 속에서 힘을 받은 싹이 흙을 뚫고 나오기까지, 발길이 닿는 대로 매번 흘깃흘깃 살펴야만 성이 풀린다. 정작 열 중 아홉은 나의 불안을 달래러 왔다는 듯, 때가 되면 싹을 보인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씨앗을 저승길로 보낸 사람마냥 생사여부를 걱정해왔던 게 아닌가,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하늘세상 구멍에서 떨어질 때 그곳에서 자라는 생명 나무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여인의 손에 잡힌 것은 온갖 식물의 열매와 씨앗이 달린 가지였다. 여인은 열매와 씨앗을 새 땅에 뿌리고 하나씩 정성스레 돌봤다. 이윽고 세상은 갈색에서 초록으로 물들었다.” (p.18)
하늘세상 구멍에서 떨어진 하늘 여인은 처음 거북섬에 씨앗을 뿌렸을 때, 싹이 트기 전까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지금에야 씨앗은 그저 돈 주고 사면 되는 물건 취급을 받지만, 하늘 여인에게 씨앗은 귀하디 귀한, 세상을 물들일 오직 한 번뿐일 기회처럼 여겨졌을 텐데. 그녀도 내가 느끼는 불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그래서 그 불안을 뚫고 나온 싹을 더더욱 하나씩 정성스럽게 돌볼 수 있게 되었던 걸까? 어쩌면 이 전설 속 인물은 씨앗의 가진 생명력, 작은 구형에 담긴 힘을 믿을 수 있는 지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흙 속에서 자라나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생기로 넘치던 계절을 지나, 뼈가 시리고 온갖 생명이 저무는(것처럼 보이는) 겨울은,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증명하듯 쓸쓸한 시기다. 온통 푸르던 세상 빛이 사그라지고 주위에 황량한 가지만 남았을 때, 드세던 들풀마저도 자취를 감췄을 때, 겨울날에 도달한 걸 실감한다. 그 풍경 속에서 쓸쓸해지는 마음을 달래고자 겨울 내내 낙엽을 매달고 있다가 새순이 날 때나 낙엽을 떨어뜨리는 대왕참나무, 유독 돋보이는 붉은색의 열매와 몸체를 뽐내는 남천나무에 시선을 두게 된다. 이 풍경 속 유일하게 마음 둘 곳이라는 듯 다소 애처롭게 시선을 매달아두는 게 내 겨울 버릇이다.
이번 탱자 대면 모임에서 식물 세계에서 겨울 풍경은 지금까지 내 선입견처럼 고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게 기억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식물님의 사생활. 눈에 보이는 일,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확연한 움직임만을 믿는 인간 동물의 시선 너머 식물님들은 어찌나 성실하게 살고 계시는지. 집으로 돌아와 마당의 목련나무를 살펴 봤다. 목련나무 밑둥 둘레에는 두툼한 낙엽이 쌓여 있다. 푸르던 잎이 전부 떨어진 가지 끝에는 보솜보솜한 겨울눈이 달려 있다. 목련나무 한 그루가 만드는 마당의 겨울 풍경이 쓸쓸함, 멈춤, 황량함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는 걸,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서 부지런히 살아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 머리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농사를 짓고, 식물을 관찰하고 글쓰기. 이렇게 식물과 함께 계절을 보내는 건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를 느끼는 감각을 배울 수 있는 길이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올해는 지금까지처럼 말로만 그럴게 아니라, 땅 속에서 움트고 있는 씨앗의 힘을 믿는 마음이 내게 새겨지길 바래본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