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년 동소 등이 조조를 위공으로 임명하자고 황제에게 청하자 순욱은 이에 반대, 이 사건으로 조조의 미움을 산다. 이때 손권 정벌이 행해지는데, 순욱은 초군에 파견되어 시중 광록대부로서 군사에 참여. 조조군이 유수에 도착했을 때 병으로 쓰러져 수춘에 잔류하고 근심과 고민 속에서 50세로 사망한다. <위씨춘추>에 의하면 조조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는데, 열어보니 속은 비어 있었다. 찬합은 형식일 뿐, 내용물이 없다는 것은 '귀공과의 사이는 서로 예만 갖출 뿐 마음은 없다.'는 의미다. 순욱은 사태를 깨닫고,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알려진 순욱의 죽음 이야기입니다. 본인이 가치가 없다고 의미하는 빈 찬합을 받고 음독자살 혹은 마음의 병으로 병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저는 순욱의 죽음을 설명하는 이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순욱은 반동탁 연합군 시절부터 조조군 내에서 거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책사였습니다. 도겸 정벌에 나선 조조를 대신하여 도성을 지켰고 진궁과 여포, 장막의 반란도 잘 막아낸 뒤 조조 귀환 후 복양의 여포를 격퇴하였죠. 196년 쫓기는 몸이 된 후한의 황제 헌제를 받아들이도록 조조에게 조언하고 조조는 한나라의 대장군으로 승진하게 됩니다.어떻게 보면 순욱은 조조의 천하 쟁취의 기반을 쌓았죠. 외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정확하게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능력이라든지 적을 궁지로 모는 전략들은 매우 뛰어나지요.
이런 순욱이 조조의 승진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조조의 미움을 샀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는다. 그 죽음이 피살이든 타살이든 말이 되지 않습니다. 조조는 능력을 매우 중요시했으니까요. 대표적인 예가 가후입니다. 여러 분들도 아시겠지만 가후는 장수와 함께 난을 일으켰고 조조의 아들 조앙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후의 투항을 받아들였습니다. 가후의 능력을 신용했기 때문이죠. 이런 조조가 자신이 위공이 되는 걸 반대한 순욱을 죽였다...?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합니다. 순욱은 아주 뛰어난 참모를 조조가 왜 죽입니까.
저는 다르게 해석하겠습니다. 위공의 칭호를 반대한 순욱은 조조의 눈치를 받습니다. 순욱은 조조의 근신하라는 명을 받고 초군에 파견하는 처세를 합니다. 그 뒤 조조가 유수에 도착했을 때 조조는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아마 이제 다시 복귀하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미 순욱은 병이 들고 약해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평균 수명을 고려해보면 지천명의 나이가 적은 것은 아니지요. 순욱은 조조의 제안을 사양하고 수춘으로 가서 임종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가지고 후대의 사관들이 빈 찬합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각색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합니다. 겉보기에는 조조가 순욱을 미워하며 순욱을 죽음에 이르게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그냥 자연사가 아니었을까요...
이상 J King의 추리였습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다면 기꺼이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실제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를 고의적으로 폄하 하는 기옥이 많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비 중심의 촉한 정통론으로 지은 이야기 입니다. 일종의 역사 왜곡이지요. 역사 왜곡을 하게 된 경위는 대략 짐작이 갑니다. J King의 추리가 정확하시다는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첫댓글 실제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를 고의적으로 폄하 하는 기옥이 많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비 중심의 촉한 정통론으로 지은 이야기 입니다. 일종의 역사 왜곡이지요. 역사 왜곡을 하게 된 경위는 대략 짐작이 갑니다. J King의 추리가 정확하시다는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림 님^^
저... 그렇다면 혹시 왜 조조가 폄하되는 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조조가 폄하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