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주지에 취임한 묘경(妙鏡)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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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이용하는 이메일 구좌의 인박스(Inbox)를 체크하고 있는데 한 발신자의 이름이 눈길을 끈다. ‘달마 놀자.’ 호호. 누군지 알 것 같다. 유난히 눈이 크고 충만한 기백이 하늘을 뚫을 것 같던 분, 고려사의 새 주지 묘경(妙鏡)스님이 분명하다. 오늘 오후 기사를 위해 찾아뵙고 말씀을 나눈 뒤, 인터뷰 때 채 답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메일로 보내주신 것이다. 그에게는 붓다도, 그의 가르침인 다르마도 참 의미의 놀이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묘경스님은 지난 8월 7일, LA 고려사의 제 5대 주지로 취임했다. 매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기원법회와 함께 치러진 주지 취임법회에는 약 90명의 신도들이 참가해 새 주지스님의 취임을 축하해주었다. 이날 취임법회에서는 고려사 회주 현호(玄虎)스님의 법문, 신임 주지 묘경스님의 취임사에 이어 LA불일회 이정규 회장의 축사, 운영위원회 전기병 부회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대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절에 다니던 묘경스님은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줄곳 출가를 꿈꿔왔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을 제대하던 1998년, 25세때 출가를 했으니 벌써 머리를 깎은 지도 15년이 되었다. 훌륭한 스님이 되고자 송광사를 찾았다는 스님은 현호스님의 제자가 된다. 현호스님의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법명에 거울 경자가 들어간, ‘묘경’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은사스님은 자식 같은 제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송광사의 가풍을 잊지 말고 열심히 수행해라. 하루를 살아도 천 년을 살 것처럼 열심히 살아라. 주인 된 정신으로 열심히 살아라.’
“스님 생활 하신지 반백년이 넘는 은사스님의 가르침에는 끝이 없어요. 단지 제 그릇이 작아 그 큰 가르침을 다 담아내지 못할 뿐이죠.”
그 후 약 10년 동안 선방을 전전하며 참선에 매진하던 스님은 2003년 3월, 비구계를 받고 서울 법련사에서 총무 소임을 보던 중, 고려사 주지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올해 갓 마흔이 된 스님은 뽀얀 피부,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것이 ‘동안미남’이란 드라마가 생긴다면 주인공은 따논 당상인 외모다. 스님들은 출가했을 때의 나이를 갖고 산다고 하더니 20대처럼 젊어보이는 그의 외모는 신도들과의 관계에 친화력을 더하는 좋은 이유가 된다.
묘경스님과 LA 고려사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년 전인 2003년 9월, 처음 LA를 찾은 이후, LA에서 한 해의 절반 보내기를 7번이나 반복했으니 그에게 있어 LA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곳.
한국의 송광사와 LA 고려사의 회주이신 현호스님의 제자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은사스님을 모셨던 묘경스님. 어쩜 은사인 현호스님은 그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오랜 세월, 주지로서 훈련을 시켜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들어올리는 스승의 마음을 훤히 읽고 염화시중의 미소로 화답했던 마하가섭처럼 묘경스님 역시 스승의 계획을 일찍부터 헤아리고 마음의 준비를 해오던 가운데 주지스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스승의 부르심에 제자가 할 일은 머리 조아리며 ‘제가 여기 있나이다’,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다들 좋아하시죠. 많이 보아 왔던 분들이니까요.”
8년간 얼굴이 익고 친분이 두터워진 고려사 식구들은 묘경스님이 주지로 오신다는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볼 일이다.
고려사는 LA의 다른 사찰에 비해, 절의 규모와 신도 수,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번듯함을 갖춘 곳. 그렇다고 그 번듯함이 주지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을 헤이하게 하지는 못한다.
“은사스님은 늘 ‘주지는 신심(信心), 원력(願力),공심(公心) 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그 가르침대로 3년 기도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주지 소임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보통 주지 소임은 4년이 만기다. 한국에서라면 한 만기 채우는 것이 빠듯하겠지만 미국은 4년 마다 주지스님을 갈아치울 만큼 절집 상황이 녹록치 않은 만큼 두 만기, 즉 8년간 봉사할 각오를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해요.”
스님은 한국에서 절집 살림을 맡아보기도 하고 대학생 법회를 주관하는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구름과 산으로 표현되는 이판사판 양쪽에 두루 능하다는 얘기다. 이곳 저곳 구름처럼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이판승과 한 곳에 산처럼 발 붙이고 살림과 경영을 해야 하는 사판승은 달라보이지만 결국은 나눠질 수 없는 것. 이곳에서도 2세대 교육을 맡는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무엇 하나 입을 떼기가 조심스러운 시점이다. 그저 인연 따라 할뿐. 그래도 대원칙은 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신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해탈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그것이다.
그래도 10년간 선방을 오갔던 체험을 살려 고려사 신도들에게 참선과 기도를 지도해보고 싶다는 원이 있다. 고려사는 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의미 깊은 곳이다. 스님들이라면 모두들 100일 기도, 1000일 기도를 밥 먹듯 해봤을 것 같지만 여기 저기 선방을 오가며 만행을 하다 보면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기도에 집중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신심 깊은 일반 신도들보다 어려운 경우도 있다. 묘경스님의 경우 2003년 LA 고려사에 왔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마음을 잡고 100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후 동안거 때를 이용해 몇 차례 더 100일 기도를 드렸고 현재는 열심히 백중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도 영험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전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기름을 물에 띄우면서 가라앉게 해달라거나, 돌을 던지며 물 위에 뜨라고 하는 기도는 이루어질 리 없지만 한 가지 기도를 간절히 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많은 불자들이 처음에는 복을 주십사, 하는 기도로 시작하지만 기도가 깊어지다 보면 기복적인 면은 어느덧 사라지고 기도를 드리는 주체가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파의 힘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열심히 기도한다고 자녀들의 시험 점수가 즉각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도를 안 할 때 보다는 나아지잖아요. 어디 그것뿐이겠어요? 기도를 계속 하다 보면 신비한 기적도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히 드리는 한 가지 기도는 부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기도를 해도 안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죠. 나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더 나아가, 가족, 이웃, 사회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면 세상은 불국정토가 될 것입니다.”
어디 구체적인 소망의 실현뿐일까. 물론 기도가 깊어지면 사고가 날 자동차를 묘하게 피하게 되었다는 등의 작은 기적들도 일어난다. 하지만 밤에 잠들어 아침에 또 다시 눈을 뜬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적이던가. 전쟁과 천재지변이 가득한 이 지구별 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 역시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아니던가. 이 신비하고 엄청난 삶의 기적들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것이 기도의 참 열매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2003년 9월 이후, 미국 생활 반, 한국 생활 반을 반복하며 가능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려 애썼지만 어디 이곳에 발붙이고 사는 동포들만 할까. 그는 미국생활에 대해서도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씩 배워나간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
“한국 불교가 미국 땅에 뿌리내리려면 한국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가 한국 일본 중국 모두 다르게 꽃피운 것처럼 말이죠.”
한 예로 미국의 절에서는 한국에서처럼 매월 1일 정광여래재일, 18일 지장재일 등 음력재일을 챙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기야 요즘은 한국에서조차 양력을 기준으로 생활습관이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음력 법회만을 고집할 경우 법회에 참석하는 대상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일요법회가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추세. 미국생활의 현실을 파악해 일요법회를 일상화하는 것은 물론, 석가탄신일 같은 불교 명절도 일주일 앞당겨 행사를 치르는 등 한국 불교를 미국화하려는 시도에 우리 모두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스님은 미국에 살고 있는 신도들의 마음이 열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젊은 스님들이 의욕에 넘쳐 불사를 펼치려 할 때, 바로 도와주지 않고 한참을 지켜보다가 행동에 나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스님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신심 있는 불자들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불사에 참여하기를 스님은 바란다.
신도의 고령화 역시 미국 불교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
“절이 젊어지려면 청소년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한때 고려사에는 30여 명의 청소년들이 법회에 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엔 청소년 전용 컴퓨터 방을 두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10대가 있다 보니 적어도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일요일에 꼭 절에 나왔던 것. 집에서는 못 해도 절에 오면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이유 덕에 꼬마들이 오히려 부모를 졸라 절에 오곤 했던 것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뜻이 있다는 게 뭐 그리 큰 대수일까. 그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절에 갈 만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아닐까. 절에 자주 오다 보면 법당에서 부처님 말씀 한 두 마디라도 듣고. 마음밭에 심겨지게 될 테니까. 고려사에서는 예전에 반응이 좋았던 사물놀이 강습도 다시 재개하려 학생들을 모집 중에 있다. 요컨데 어른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신들만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청소년들을 이끄는 가장 기본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어렵게 새신도가 발걸음을 하더라도 이를 계속 이끌어줄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도 불교계의 큰 문제다.
“노보살님들은 자신이 항상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으면 심한 경우 쫓아내기까지 하잖아요. 절에 다닌 지 오래 되는 불자들이라면 오히려 자기 자리를 새로운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신도를 챙기는 기독교회의 친절을 우리도 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회에서는 또한 갓난아기를 둔 젊은 어머니들을 위한 수유실을 마련하거나 준비 중에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절에는 그런 공간이 전무한 형편. 편하게 아기에게 젖도 주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데 많은 신도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예전처럼 소극적으로 오려면 오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 아니라 불자들이 마음의 부담 없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절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름철 맨발로 다니는 여성분들이 많잖아요. 이를 보기 흉하다고 조계사 법당 입구에 양말 신지 않은 사람은 대웅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표지를 내걸었더니 여신도들 반이 들어가지 않더라니까요.”
이럴 때도 무조건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덧버선을 준비하는 등의 배려를 해주면 좋지 않을까. 미니스커트 입고 절에 왔다고 내쫓는 대신, 늘어가는 신세대 신도들을 위해 작은 포를 준비하는 등의 열린 마음이 있어야 젊은 세대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스님은 믿는다.
현재 고려사에서는 조상천도재가 있는 날이면 약 100명 정도의 신도가 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예전보다 법회 참여 신도 수가 많이 늘었고 건물도 확장할 계획이다.
많은 한국 스님들이 미국에 와서 6개월 정도 머물며 이곳 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는데 건물이 증축된다면 이도 가능해질 것 같다. 그런 소통 가운데 미국 불교계도 더욱 발전할 터이다.
삶의 터를 옮긴 묘경스님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새벽 5시 예불을 시작으로 6시 아침 공양, 10시 30분 사시 예불, 12시 점심 공양을 마치면 한숨을 돌린다. 가끔씩 은사스님을 모시고 그리피스 공원에 등산을 가기도 하고 생활필수품을 사러 다니기도 하신다. 중간 중간 책 읽고 공부하고 오후 5시면 다시 기도, 9시경이면 잠자리에 든다.
변화를 꿈꾸는 스님의 열정, 그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지속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눠야 할 포교의 분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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