μεριμνάω (메림나오, 근심하다)에 대하여
신약성경에서 ‘염려하다’ ‘근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μεριμνάω (메림나오)는 19번 나오고, 이 단어의 명사 μέριμνα(메림나)는 6번 나온다. 놀랍게도 이 단어가 유대인 헬레니스트(요세푸스, 필로)의 작품이나 스토아 철학자들의 작품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염려, 근심’이라는 주제는 지극히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성경의 주제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고전 헬라어에서 동사 μεριμνάω (메림나오)는 긍정적인 뜻에서 부정적인 뜻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관심’(care, concern),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의도’ 혹은 ‘마음의 기울임’을 뜻하는 말이었다. 무엇인가에 대한 과도한 마음이 ‘염려’(anxiety), ‘두려움’(fear)을 만들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근심(메림나 μεριμνάω) 없이 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고대 헬라인들의 생각이었다. 근심은 잠을 설치게 하는 것이고, 근심을 줄이기 위해 사랑하거나 술 마시는 노력을 해 보지만 결국 헛된 것이고, 오직 죽음만이 인간을 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근심이라는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주님의 가르침이 마태복음 6:25-34에 나오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에 대한 염려가 가득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여 살아간다. 예수님의 ‘네 가지의 땅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져 씨가 싹트고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 것을 ‘세상의 염려’(ἡ μέριμνα τοῦ αἰῶνος 마 13:18, 막 4:19) 라고 칭한다. 물질적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생존과 미래에 대하여 인간을 근심하게 만든다고 한다. 예수님은 종말론적인 삶을 강조하면서 제자들이 ‘생활의 염려’(눅 21:34)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말씀한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나오는 베다니의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준비하다가 마음이 분주하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을 돕지 않는 여동생 마리아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주님께로 와서 항변하였다. 이때 주님은 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한다”고 그녀의 근심을 지적한다. 주님을 접대하는 일이 어느새 그녀의 근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로 근심하는 인생보다 말씀을 선택한 마리아의 선택을 존중하신 주님이었다.
μέριμνα(메림나)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에 대한 마음의 기울어짐과 성취를 위한 의도’(strive for things)를 뜻하는 것이다. 근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근심의 대상을 바꾸라는 점에서, 예수님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구하려는 근심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strive for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관심을 가지고 살라고 제안하신다. 세상의 근심, 즉 물질적 근심은 끝이 없는 것이고, 그 근심은 어리석기까지 하여 근심으로는 자신의 생명의 수한을 한 순간도 늘리지 못한다고 깨우쳐 주신다(마 6:25). 오직 근심을 해결하는 방법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μηδὲν μεριμνᾶτε)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여러분의 걱정(μέριμνα)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시다”(새번역 벧전 5:7)
근심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고대 헬라인이라면,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근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근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재물에 대한 유혹, 생활의 염려를 기도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과 돌보심이 인생에게 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종말론적인 삶을 살면서 염려없이(ἀμερίμνους 아메림누스, free from care) 살기를 권면했다(고전 7:32). 결혼생활에 얽매여 염려 가득한 인생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권면한 것이다. 염려와 걱정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자유한 삶을 강조하지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때가 단축된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종말론적인 삶을 강조하는 바울은 물질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근심보다는 한 몸 된 지체들이 서로 걱정해 주고(고전 12:25),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근심을 강조하였다(고후 11:28).
근심이 많은 세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전쟁과 재난의 소식이 가득하고, 경제의 위기로 생계가 위협받고,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근심으로부터 자유하는 길을 찾아서 하나님을 다시 온전히 찾아야 할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