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 웅, 썽!
국군의날 열병식 행렬에서 했던 구호를 외쳐봅니다. 우리는 때로 그 소리를 '까 - 악, 깍!' 하는 까마귀 소리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할 만큼 소리가 크니까요. 봄부터 강원도 양구 펀치볼 밑에 있었던 부대에서 자체 연습을 한 것을 빼고도, 국군의날 석달 전부터 우리들 전군 대표 부대들은 한데 모여 그 해 여름 내내 성남 비행장에서, 그 잠깐 동안 여의도 사열대에 서 계시는 각하의 존영 앞을 지나갈 때를 대비했죠. 연습을 시키던 감독관들은 데시벨이라는 단위로 소음을 측정하던 기계를 써서 부대마다의 구령소리의 크기를 쟀고, 줄맞추기, 행진동작 같은 것들의 종잇장같은 차이를 체크했죠. 눈알은 무엇을 잡아먹을듯이 부릅뜨고 45도 위로. 흰 목장갑을 낀 주먹은 불끈 쥐고. 팔은 위로 15도, 몸 뒤로 15도. 허리를 펴고, 몸은 작대기처럼 직선. 올리는 무릅은 직각. 걸을 때마다 군화 바닥으로 마룻장을 꽝꽝 내치는 기분으로......
가끔씩 구령대 위에선 우리 같은 사병들에겐 하늘이나 다름 없었던 영관급 장교가 그 감독관으로부터 여지없이 쪼인트를 까이거나 배, 심지어는 태권도 실력이 좋았던지 얼굴 높이까지 뻗어올린 발로 면상을 걷어차여 엉덩방아를 찧곤 했습니다. 원위치. 넘어진 뒤에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다시 총알같이 빠른 동작으로 원래대로의 그 위치, 포즈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새끼들, 짬밥은 *대가리로 쳐먹었냐? M16 소총의 총알을 밀어내는 역할을 했던 공이는 보안대에서 몇번이고 숫자를 되세어 거둬갔고, 편지도 배달되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 하게 보안검열을 받았습니다. 총 속에 있는 부속품도 모두 빼낸 껍질 뿐이었으며, 배낭 속에는 사각으로 자른 스치로폼이 들어 있었죠. 연습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서야 눈에 들어온 군복은 온통 새하얀 소금끼가 지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더운 여름날에는 서로를 밀어낸다는데, 그 여름 우리는 온통 욕과 구타와 잡아먹을 듯이 서로가 서로를 갈구는 것으로 한철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웃을 수도 없었죠. 이따금 누군가가 연습중에 웃음끼를 띄다 들켰는지, 망원경을 눈에 대고 있던 감독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땡볕 하늘로 갈라졌습니다. 야, 거기 몇행 몇줄에 *새끼. 날아가는 새 **를 봤냐? 쪼개긴? 확, 강냉이를 털어버린다? 눈깔에 힘 빠졌어. 줄 못 맞추고 튀어나온 데는 면도날로 그어버린다...... 모두 직선이었죠. 그렇게 거의 매일이다시피 전군 연습평가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또 십중팔구 막사로 돌아가 살아 있다는 것이 싫을 정도로 뛰고, 구르고, 선착순달리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마 프란다스의 개처럼 명령과 복창, 그 무궁무진한 자학의 몸동작만을 반복했던 우리를 지켜준 유일한 버팀목은, 그 시간에도 국방부 시계는 돌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을 겁니다.
여군들도 우리처럼 텐트 사이를 가로질러 친 빨레줄에 팬티를 걸어 말렸고, *할년, *구녘, 이렇게 욕을 하고, 또 상관이 부하들을 주루룩 세워놓고 손바닥을 때리고, 엎드려 뻗혀 놓고 빳따를 치더군요. 부대와 부대마다의 경계에는 작고 날카로운 칼날이 촘촘하게 박힌 철조망이 있었지만, 비행장에 모인 첫날 텐트를 치면서 특공대대와 해병대대는 철모망을 사이에 두고 제가 생전에 봐 본 적이 없는 큰 패싸움을 벌이더군요. 정말 그 선이 먼저 찢어지도록 옷주름을 칼날처럼 다려입었던 해병대와 사선을 넘나든다는 특공연대, 그 기세 등등했던 두 부대의 숙영지가 서로 맞붙어 있었던 게 화근이었죠. 돌맹이와 야삽과 반합과... 집어 던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그 난장을 가르고 큰 총소리가 몇번, 귀창을 찢을듯이 울리고 난 뒤에야 사위가 조용해졌습니다. 그 결과가 어뗐는지 아세요? 철모가 있었던 해병대가 미처 국군의날 연습용 신마이 철모를 지급받지 못해 빵떡 같은 베레모밖에 없었던 특공연대보다 부상자가 적었습니다.
때로 연습 성적이 좋은 날이면 상부에서는 그 성적 좋은 부대를 구별해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돼지 한마리씩을 줬죠. 그러면 우리는 어렸을 때 고향마을 어른들이 돼지 멱을 따 잡던 것을 구경했던 기억을 되살려, 군기가 바짝 든 일병을 시켜서 식칼로 목을 따게 했죠. 익숙한 것처럼 선지국을 만들 피도 뽑고, 누군가는 그것을 그대로 마시고 하늘을 향해 한껏 크게 벌린 입 주변에 피칠갑을 남긴 채 트림을 하기도 했고, 살점을 발라 흙먼지가 가라앉은 운동장에 모자 모양으로 흙을 파내고, 거기에 불꺼진 연탄불을 되살리는 데 썼던 착화탄을 피워, 석면으로 된 슬레이트 조각을 덮고, 그 위에 고기를 구워먹었습니다.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까 - 악, 깍!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87년 이 무렵이었습니다.
첫댓글 그때도 그랬지만 나는 예비군 훈련 받을 때 더 힘들었습니다. 아씨, 내가 저새끼(예비군 중대장) 직업 지켜 주려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