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집안이 주는 교훈/ 삼상 8: 1- 9
흔히 "자녀를 낳기는 쉬어도 사람답게 키우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제 경험으로 봐
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도 큰 소리 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녀 교육인 것
입니다. 자녀 교육은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부모가 온갖 정
성을 다해서 철저하게 자녀를 교육시켰지만 실패하는 가정이 많은가 하면, 형편이 어려
워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렇게 큰 관심과 정성을 쏟지 못하고 거의 방목하다시피 했음에
도 자녀들이 잘 되는 가정 역시 많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자녀 교육도 은혜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야 성공할 수 있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실패한 아버지
성경에도 보면 지도자로서는 위대했지만 아버지로서는 별로였던 사례들이 꽤 많이 나
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과 오늘 읽은 말씀에 나오는 사무엘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
니다.
솔로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무후무한 지혜자였습니다. 그는 인생과 동식물과 조
류, 어류에 대해서 박학다식했을 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어 잠언
삼천 편과 노래 일 천 다섯 곡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문을 들은 천하의 모든 왕
들이 그의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왕상4:30-34) 또 그는 이
스라엘 나라를 당대에 확고부동한 강대국의 대열에 서게 할만큼 군사적인 리더십도 뛰어
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아내들을 위해 많은 궁전
들을 짓는 대 토목공사들을 충분히 감당해 낼 정도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 가는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그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그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위대
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자녀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실패자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뒤
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자기 친구들의 말
을 듣고 백성을 압제함으로써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게 만든 어리석은 왕이었던 것입니
다.
자녀 교육에 실패하기는 사무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나라가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이후 세움을 받은 최후의 사사요,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하
나님은 사무엘을 자신을 대리하여 친정 체제를 감당할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만큼 지도자로서의 그의 권위는 대단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그를 따르고
순종했으며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에서는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지자 자기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자기의 통치권을 위임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인
격과 덕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
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그들은 자기 이권을 추구해서 뇌물을 받고 판
결을 굽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좋은 모범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사무엘은 시종일관 백성들에게 흠을 보이지 아니한 훌륭한 지도자였습
니다. 사무엘상 12장 3절을 보십시오. 그는 공식적으로 퇴임 식을 하는 자리에서 백성들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
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압
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
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입니까? 털끝 만한 잘못을 저지른 일이
라도 있다면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
다."(4절) 그의 잘못을 들고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출발도 좋고 마무리
도 좋았던 완벽한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라면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백성을 지도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버지의 모범을 우습게 여기고는 부당한 이익을 챙
기려고 뇌물을 주는 대로 챙겨 넣는 타락한 지도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뇌물을 받는 자
에게는 선과 악이 따로 없습니다. 뇌물의 액수에 따라서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
어 버립니다. 지도자가 이런 짓을 하는데 어떻게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법과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공평한 사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실로 자기 이름 값도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첫 아들의 이름은 '요엘'입니
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얼마나 거룩한 이름입
니까? 그리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비야'입니다. '아비야'는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
다'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신앙고백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함으로써 자기 이름 값도 못하는 지도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든지 분수에 지나친 자리에 앉게 되거나 감당하지 못할 힘을 갖게 되면 자기만
망할 뿐 아니라 가문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나라를 절망의 수렁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
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권좌에 앉는 지도자라면 물욕을 자제할 줄 아는 수련을 닦아
야 할 것입니다. 물욕을 자제할 줄 아는 것은 통치자의 기본 덕목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덕목 마저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너무나도 완벽했던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어서 아버지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습 제도로 권력이 이
양되는 사회였다 하더라도 그가 아버지 구실을 제대로 한 사람이었다면 아들들이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냉정하게 판단해
보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아무래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판단
되면 그들에게 권력의 칼을 쥐어 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말년에 그 아들들로 인해 근심이 떠날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
동안 백성들의 신망을 받으며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그였지만 이제는 아들 때문에 사람
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마음 약한 어머니는 그들 때문에 무
수한 나날들을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잠 17:25) 사태가 이쯤 된다면 사
무엘은 한시라도 빨리 자기 아들들을 징계하여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용단을 내렸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아들들의 악정을 견디다 못해 백성들이 들고일어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본
문 4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
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
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더 이상 사무엘 집안의 통치를 못 받겠으니 다
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뜻을 같이 하여
압력을 가하니 사무엘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사 제도가 무너지고 세상 나라처럼 왕정이 시작된 것입니
다. 그러나 왕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이래 수 백년 동안 백성들이 왕으로
인해 받았던 고통은 이루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왕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쑥밭이 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 역대상
하와 같은 역사서들이 온통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무서운 불행의 씨앗을 누가 뿌렸습니까? 자식을 잘못 둔 사무엘과 그의 모범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이권을 추구하느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여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그의
아들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무엘 부자의 비극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는데 오늘 우리의 아픔
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함부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 나라
의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연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여간 걱정
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최근에 모 일간지에서 칼럼니스트 유승삼씨의 글을 읽고 무척 공
감을 했습니다. "대선 주자들에게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병 환자는
필요 없다. 대통령직이 대학 입시나 사법 시험처럼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이루게 해 주
는 자리가 될 수 없다. 정히 대통령이 되고 싶거들랑 대통령직에 대한 공부부터 하라."
참으로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한가지 주문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설혹 자기 자신은 대통령이 될 만한 자격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할지라도 자
녀들이 이 사회나 국가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자들인지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선 주자들에게 사무엘 집안의 역사를 배우라고 권면하
고 싶습니다.
뇌물의 위력
사무엘의 아들들의 악정은 뇌물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 뇌물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뇌물에 해당하는 단
어는 제가 발견한 것만도 무려 일곱 개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코펠', '므킬', '마타나
', '쇼타드', '쉴롬', '테르마', '싸칼', 이 모든 표현들은 뇌물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이름들입니다. 뇌물은 천의 얼굴을 가진 사회악이기에 자연히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습
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자금', '정치자금', '청탁금',
'촌지', '급행료', '교통비', '선물', '떡값', '사과 상자', '007가방' 등등 그 이름이
얼마나 많습니까?
뇌물은 부패한 인간의 최대 약점인 탐욕을 공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열이면 아홉은 그
미끼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뇌물은 일종의 만사 특효약인 셈입니다. 잠언17장 8절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
느니라." 뇌물이 받는 사람에게 보석 같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디로 향
하든지 원하는 일을 형통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보고 '성경도 뇌물을
인정하지 않느냐?'라며 반색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 말씀은 인
간 사회에서 뇌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죽음의 뱃사공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 세상에서
뇌물이 안 통하는 곳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뇌물을 흔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
습니까?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 짧지만 매우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름을 많이 먹이면 먹일 수록 가죽은 부드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뇌물은 가죽을 부드
럽게 만들기 위해 먹이는 기름과 같아서 무슨 일이든지 순조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뇌물
의 가공할 만한 위력 앞에 무력하기는 동서양이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뇌물은 눈을 흐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뇌물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다
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에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먼저 뇌물은 주는
자나 받는 자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눈을 흐리게 한다'는 말은 '총명을 어둡게 한다',
'선악을 분별하는 양심의 눈을 멀게 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3장 8절을 보십시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
느니라." 뇌물로 인해 선악을 분별하는 눈이 흐려지게 되면 만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재판에서 엉뚱한 판결을 내려 수많은 의로운 사람들을 억울
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돈을 먹었는데 어찌 안 봐주겠습니까? 전도서7장 7절
은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한다"고 했습니다.
사과 상자에다가 몇 억을 들고 와서 두 눈을 뽑아 달라고 사정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
다. 선뜻 자기 눈을 뽑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두 눈
을 감고 평생을 더듬거리며 살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촌지 하나에
도 자기의 양심의 눈은 너무 쉽게 뽑아주고 맙니다. 양심의 눈이 멀면 선악을 분별하는
감각도 없어져 버립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
오. 그 사회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뇌물은 공의가 설자리를 없애버린다
둘째로, 뇌물은 공의가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의와 불의의 경계선을 모호하
게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사야5장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
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 도다." 쉽게 말해서 뇌물은 의인을 악인으로
만들고, 악인을 의인으로 둔갑시킨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법원이나 형무소 주변에 가 보
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이상한 말이 돌고 있습니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유죄요,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죄라는 것입니다. 돈만 집어주면 범법자가 피해
자가 되고, 피해자가 범법자로 바뀌어 버립니다. 돈만 입에 물려주면 정보를 미리 빼돌
려서 온갖 이권을 가로챌 수도 있습니다. 돈 봉투만 내밀면 진급도 잘 됩니다. 돈만 주
면 외진 시골 마을에도 러브호텔 허가가 납니다. 돈만 집어 주면 환경이 어떻게 되든지
골프장 허가가 납니다. 무엇이든지 돈이면 다 통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무슨 공의가 있습니까?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다음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
까? 뇌물은 사회를 이와 같이 무법천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뇌물은 나라를 망친다
셋째로, 뇌물은 나라를 망칩니다. 잠언29장4절을 보십시오.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
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망치는 자들입
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면 선진국에 비해 우리 나라에는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많
은 법 조항이나 규제 등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법조문은 자연히 뇌물 관행이
자리잡게 만드는 모판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자기 이권을 추구하고 정쟁을 일삼느라 법조문들을 명확하게 개정하지 않고
방치해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뇌물이 사회 구석구석을 독버섯처럼 뒤덮고 있는 뇌물 공화
국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뇌물로 인해 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
고, 공의가 서지 아니하는 나라 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사야와
미가 시대의 유대 나라를 보십시오. 그 당시 사회가 온통 뇌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미
가 3장 11절을 보십시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이르기를...." 요즈음 말로 하면 정치인들
과 법관들이 뇌물을 위하여 재판했다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
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돈을 주어야 복을 빌어주고 제사를 지내 주었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똑같이 썩었으니 그 나라가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 악에서 돌이킬 것을 수도 없이 지적하셨지만 그들은 그들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
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해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온 국토가 폐허가 되는
비극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를 보아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1세기 전 대한제국이 망하게 된 이유
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변 강대국들의 침범 때문일까요? 그것도 한 가지 이유이
긴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해도 내부
적으로 결속이 잘 되어있고 국가의 기강이 제대로 서 있는 나라를 삼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은 지도자와 백성이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못했고, 국가의 기강마
저 제대로 서 있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임금 고종은 관직을 돈 받고 파는 일에 직접 개
입했고, 뇌물이 신통치 않으면 신하들 앞에 그 봉투를 집어던지는 추태까지 보였다고 합
니다. 그래서 국고는 텅텅 비어 있어도 왕과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주머니는 늘 두둑했던
것입니다. 왕이 이 정도라면 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얼마나 더 부패했겠습니까?
1904년에 러일전쟁 종군 기자로 우리 나에 왔던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우리 나라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군수는 악명 높은 양반이다. 이를테면 귀족이면서 도둑놈
인 것이다. 양반들은 모두 도둑이었다. 백성들은 '양반'하면 으레 자기 것을 빼앗아 가
는 도둑놈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지배계급이 도둑놈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
다." 그 정도로 뇌물로 인해 나라가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지도자들의 악정으로 인해 나라
가 망한 이후로 그 후손인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과 질곡을 무슨 말로 다 형용할 수 있
겠습니까? 38년 동안이나 식민지 생활을 한 결과 기성 세대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식민
지 근성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3대가 지나가야 겨우 씻긴다고 말합니다. 그 말
이 사실이라면 식민지 근성이 완전히 없어지려면 아직도 약 5,60년은 더 있어야 될 것입
니다. 뇌물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뇌물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시게 한다
마지막으로 뇌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게 만듭니다. 이사야1장 1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
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그 손에 피가 가득한 자가 누구입
니까? 25절을 보면 뇌물로 의로운 자와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
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
님은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부정하게 모은 돈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 헌금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마저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가라앉는 배에 비유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개혁
을 외친 문민정부가 더 타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국민의 실망과 분노와 원망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한보가 특혜 대출을 받은 총액이 자그마치 5조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것
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액입니다. 저는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5조원이 어
느 정도의 액수인지 실감나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열린
다고 해 봅시다. 이 주경기장을 가득 채울 경우 5만 명 정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5조
원은 축구 경기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5만 명의 관중들에게 한 사람 당 1억 원씩 나누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액수입니다. 그 많은 돈이 나라의 기간 산업을 튼튼하게 세우는 일에
제대로 쓰여졌다면 그나마도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5조원 중에 소위 말하는 '비
자금'으로 돌렸다고 의혹을 받고 있는 돈이 수천 억원이라고 합니다. 수천 억원이라면,
한 사람 당 1억씩이라고 계산해도 정계, 금융계, 공무원 세계의 지도급 인사 가운데 수
천 명이 그 악덕 기업인에게서 돈을 받고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러니 소위 '정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자기들만 애꿎게 걸려들었다는 말
을 함직한 것입니다.
솔직히 그의 돈을 안 먹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정치계
와 금융계, 교육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썩어 있습니다. 종교계 하면 그래도 거룩하고 깨
끗해야 되지 않습니까? 기독교 하면 그래도 뭔가 살아 있는 양심의 최후의 보루여야 하
지 않습니까? 그러나 돈의 무서운 마수에 빠져 주의 종들조차 썩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의 현실입니다.
저는 지난 어린이날 텔레비전에서 초등학교 남학생 몇 명을 세워 놓고 인터뷰하는 것
을 본 적이 있습니다. 리포터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은 요즈음 어른
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그랬더니 한 아이가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들
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가 존경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참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우리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 옷을 찢고 가슴을 쳐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저는 이런 내용의 설교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선 저 자신에게 은혜가 안
될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는 이 설교를 들어야 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안에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불이익을 당하
면서도 끝내 봉투 건네주기를 거부하고 착실하게 사업하는 기업인들이 여러 명 있습니
다. 박봉을 받으면서도 뇌물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한직을 지원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자기 양심을 지키는 공무원들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촌지를 받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하고 주위 동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멋진 교육자
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는 교인만 상대해서 전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사회와 국가를 향해 외치
는 하나님의 진리요, 선지자의 외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패한 이 사회를
놓고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뇌물에 대해 설교를 해야겠
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회가 썩어서 악취를 낼 때 교회가 제 구실을 잘 감당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처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거룩에만 만족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무
관심해도 좋다면 도대체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다고 해
서 "너 좋고, 나 좋자."라는 식으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는 자
는 "세상이 다 그런데 뭐!" 하면서 세상과 똑같이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교
회가 정체성을 잃고서 이 세상에서 그 존재 기반마저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권력을 등에 업고 세상을 정화시키겠습니까? 이것은 굉장한 유혹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장로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러한 기대에 부풀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 장로 대통령을 통해서 이 사회 구석구석의 썩은 곳들이 다 청소되
고 그릇된 제도와 관행들 모두 고쳐질 것이다. 기독교의 강력한 힘이 사회 전반에 미치
게 되어 이 사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회로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처지는 어떻습니까? 세상 권력을 등에 업는 교회는 그 권력 때문에 반드시 망한다는 준
엄한 역사의 교훈을 새삼스럽게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
은 우리가 세상과 끊임없는 전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사건건 그들을 정죄하고
충돌해서 믿는 자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대
단히 멋진 방법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그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일반 직장에서
살아남을 크리스천이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이 사회에서 발
붙일 곳을 모두 잃어버리고 고립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뇌물로 인해 공권력이 흔들리고 양심이
마비되어 가고 있는 이 마당에 교회가 어떻게 해야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 이 나라를 위
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보통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
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패한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더 밝은 빛이 되고, 더 짠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사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게 만들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우리 자신부터가 손을 깨끗이 해
야 합니다. 뇌물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내 손이 깨끗하지 않으면서 어떻
게 이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시편 26편을 쓴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저희 손에는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 손에는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
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10,11절) 세상 사람들의 손에는 뇌물이 가
득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기의 완전함에 행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완전함에 행한
다'는 말은 자기 손을 뇌물로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손을 깨끗
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말씀 앞에 가책을 받으시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십시
오. 뇌물을 받고 한보에 거액을 대출해준 은행장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들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뇌물을 거절하고 자기를 지켰더라면 은행도 살고 자기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손을 깨끗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받을
때는 갑부가 되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뺏기고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조차 얼굴을 들고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면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게 될 지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경건의 은혜를 보여주라
더 나아가 우리는 손을 깨끗이 하고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를 세상 사람들
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정직하게 사는 삶의 행복을 보고 느낄 수 있도
록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건의 은혜가 세상 사람들에게 좀더 실감나게 알려지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뇌물을 안 주고 안 받다 보면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교육비를 마련하기 힘들어 자녀 교육에 남들만큼 투자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
다. 폭등하는 전세 값을 마련하지 못해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환한 얼굴로 행복하게 산다면 그들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봉투를 받지 않아서 가난하게 사는데도 저 가정은 어쩌면 저렇게 얼굴이 밝
고 행복해 보일까? 정말 아름답다.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들에게
경건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면, 세상 사람이 절대 가지지 못한 만족과
기쁨을 보여준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이 감동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기독
교의 감수성이 이 사회 전반에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질
것입니다.
요즈음 TV에 나오는 바카스 광고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어떤 환
경미화원이 쓰레기를 가득 담은 수레를 끌고 가는데 그 뒤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이 그
수레를 밀고 갑니다.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힘들지 않니?"
그러니까 그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뭘요. 아버지는 매일 하시는 일인걸요." 너무
나 애정이 넘치는 얼굴로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
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야, 참 연기 실감나게 잘한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나
중에 두 사람이 진짜 부자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
다 보니 신문에서도 이들에 대해 특집 기사를 쓰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인 박선치씨는 강동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입니다. 그는 원래는 시장에서 옷가게
를 했었는데 가게가 잘못 되는 바람에 10년 전부터 환경미화원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
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고만 알렸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인
상호 군이 고2가 되더니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권면을 해도 말을 안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삼 남매를 불러놓고
자신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사실 공무원이 아니란다. 아침
마다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원이야. 내가 지난 10년 동안 남들이 마다하는 그 일을 하며
너희들을 키웠는데 이러면 되겠니?" 그날 밤 온 식구가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빗나가던 상호 군은 마음을 잡게 되었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올해 대학
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광고를 만든 MBC애드컴은 삭막해진 이 사회에서 부자가 서로 아끼고 자랑스러워하
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부각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환경미화원과 그의 아들이 수레를
끌고 가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가상 인물은 실제 인물
에 비해 아무래도 감동이 덜한 법입니다. 그래서 애드컴은 서울시 각 구청에 대학생 자
녀를 둔 환경미화원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지원자가 없어
광고 제작을 거의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때 박상호 군이 지원을 한 것입니다. 상호 군은
애드컴 관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우리 가정은 어느 가
정보다 행복해요. 부모님의 부지런함이 언제나 나를 가르치고 단련시켰습니다. 맡은 일
에 최선을 다하시고, 땀 흘려 번 정직한 돈으로 저를 키워 주신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길에서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힘들고 천한 일이라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선치씨 부자는 비록 그런 일을 하며 살지라도 그 속에서
감동이 솟아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바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뇌물 안 받고 안주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뇌물을 안 받
아서 그렇게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삶 속에서 어떤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가
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
지 않습니까?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계심이로다." 크리스천은
좁은 길을 걸어도 밤낮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해도, 수입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
보다 진급이 늦어져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
운 것인지 보여 줄 수 있어야 됩니다. 당장은 우리 자녀들이 남보다 뒤쳐지는 것처럼 보
이지만 하나님이 오른손을 높이 드셔서 권능을 베푸시고 축복하시면 이 자녀들의 장래가
밝아진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우리 후손이 번창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우리 가정이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비록 정직하게 사느라 적은 소득을 얻
는다 하더라도 이와 같이 밤낮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야, 나도 봉투를 거절하고 저 사람처럼 살아야 되겠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
다.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비상벨의 역할
을 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해야 합니다. 위험하면 위험하다고 소리쳐야 합
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가면 그들을 가로막고 말려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데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비상구를 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걸 보면서도 내 일이 아
니라고 방관하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잠비아의 전(前)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가 무엇보다 필요로 하
는 것은 궁전에 있는 기독교 통치자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기독교 선
지자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봅니다. 이 나라를 정직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예수
믿는 지도자가 아니라 부패한 세상을 향해서 경종을 울리는 기독교 선지자들인 것입니
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속삭여야 합니다. "여보, 가난해도 괜찮아요. 부정한 돈은
절대 받지 마세요!" 이 한마디에 남편이 얼마나 용기를 얻겠습니까? 자녀는 부모에게 이
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빠, 엄마. 우리 용돈 많이 안 받아도 괜찮아요. 하나님 말씀대
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요.' 이 한 마디에 축 쳐졌던 부모의 어깨가 얼마나 펴지겠습
니까? 부모는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얘들아. 요즈음 많이 힘들지? 하지만 아
빠의 직장이 이런 데란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어쩔 수가 없지 않니? 한푼이
라도 아끼면서 우리 신나게 살아보자!' 이 말을 듣고 자녀가 부모의 정직한 삶에 감동을
받고 부모를 존경하며 따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이러한 가정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부하가 상관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상납은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맙시다. 우리 정직하게 일해봅시다." 그럴 때 이 사회가 정직한 사
회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라앉는 배와 같은 이 나라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면 우
리 자신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뇌물로부터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가난하게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깨끗한 손으로 정직하게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것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경건의 은혜를 보여줌으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상벨을 울려야 합니다. 그럴
때 이 나라가 소망이 있습니다. 이 사회가 정직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이 시대에 위대한 선지자로, 이 시대에 위대한 등불로 크게 사용해 주시기를 간
절히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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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