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릿샤쿠지1 - 야마가타에서 기차로 산속 야마데라에 내려 릿샤쿠지에 가다!
2022년 11월 4일 요네자와 에서 신칸센으로 야마가타(山形) 에 도착해 호텔에 배낭을 맡기고는 릿샤쿠지
(立石寺) 절로 가려는데, 야마가타역에서 자동차로 30분, JR 센잔선(仙山線) 으로 20분이 걸린답니다.
호텔에서 걸어서 야마가타역 으로 돌아와서는 밴딩머신 기계에서 240엔에 기차표를 끊어 센다이행 仙山線
(선산선) 기차에 오르니.... 쾌속 기차는 들판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 3정거장 야마데라(山寺) 역에 섭니다.
안내도를 보니 역 뒷편 산쪽에 바쇼기넨관 芭蕉紀念館(파초기념관) 이 있다고 나오는데
저긴 나중에 가기로 하고.... 역 앞쪽에 인포메이션 센타 를 지나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역에서 바라보이는 앞 산에 바위 산을 올라가며 절의 건물들이 들어선걸 보며 거리에 서 있는 안내도를 잠시
구경하고는 마을로 들어가니 원래 절 아래에는 寺下村(사하촌) 이라고 해서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하촌 이라고 하지만..... 일본 말로는 데라시타노무라 寺下の村
라고 하는지 아님 후모토노마치 ふもとの町 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등이 늘어선 마을을 구경하면서 지나서는 입구로 들어가 드디어 산자락 에
도착하니 여기서 부터는 바위산인지라 돌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야 하는데......
S자로 수백개의 계단 을 올라가야 한다는데, 길가에서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 의 얼굴을 봅니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旅に病んで/夢は枯野を/かけ廻る"
바쇼 가 사망 사흘 전에 쓴 하이쿠 라고 합니다.
마츠오 바쇼 는 에도시대의 하이쿠 시인으로 하이쿠의 성인 (俳聖, 배성) 으로 칭해질 정도로 일본 하이쿠 역사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바쇼는 배호 (하이쿠 시인의 필명) 이며 그의 본명은 무네후사(宗房) 라고 합니다.
미에현 이가시 이가우에노 출신으로 재야무사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집안이 어려워 농사도 지었다고
하며...... 13세 때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생활이 어려워져 지역 유지인 토도 가에 시종 으로 들어 갑니다.
무네후사 가 모시던 사람은 두 살 위인 토도 요시타다 였는데 이 둘은 함께 하이쿠 를 배웠으며
요시타다를 모시던 마츠오는 따르던 주군이 25살로 요절해서 갈 곳이 없어지자....
무사를 그만두고는 젊은 나이에 기타무라 기긴에게 사사한 뒤 하이쿠 시인의 길 에 들어섭니다.
자주 여행 을 다니며 노자라시 기행, 가시마 기행 등의 기행문을 남겼는데, 제자 중 카와이 소라 와
함께 겐로쿠 2년(1689년) 부터 반년간 도호쿠, 호쿠리쿠 지방을 돌며 기후현 오가키 까지
여행하고 남긴 '오쿠로 가는 작은 길 (奥の細道, 오쿠노호소미치)' 이라는 기행문이 가장 유명합니다.
최후도 여행 도중 객사 였으니 51세라! 쇼몬짓테쓰 (蕉門十哲) 라 불리는 다카라이 기카쿠, 핫토리 란세쓰,
모리카와 교리쿠, 무카이 교라이, 가가미 시코, 나이토 조소, 스기야마 산푸, 다치바나 호쿠시,
시다 야바, 오치 에쓰진 등 특히 뛰어난 수제자 10명 을 포함한 각 지역에 많은 제자들을 두었다고 합니다.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보라 소리)
五月雨をあつめて早し最上川 (오월 오란비/거두어모아 거센/모가미가와)
夏草や兵どもが夢の跡 (여름 나절 풀/수많은 병사들이/꿈꾸던 자취)
名月や池をめぐりて夜もすがら (밝은 달이여/정원을 산책하며/밤을 새누나)
閑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고요함이여/바위에 스며드는/매미의 울음)
荒海や佐渡に橫たふ天の河 (거친 바다 위/사도 섬을 둘러싼/하늘의 강물)
내가 마츠오 바쇼를 본건 후쿠이현 쓰루가 (敦賀) 의 게히 진구 氣比神宮(기비신궁) 에 들러 신사
한켠에 서 있는 그의 동상을 보았는데..... 거기에 그가 지은 하이쿠들이 적혀있었습니다.
「달밫 맑은데 휘적 휘적 가노라 모래 위의 길
月清し遊行のもてる砂の上」
「곳곳마다 8경 다시 보는 기비의 달
國々の八景更に氣比の月」
「고목 같은 이름 쓰누가, 그 곳의 가을달을 사랑하노라
ふるき名の角鹿や恋し秋の月」
「달빛에 들리는 신궁의 종소리 바다 속에 잠기노라
月いつこ鐘八沈る海の底」
「이름난 기비의 달, 별안간에 다시 찾아 왔노라
名月や北國日和定なき」
「중산을 넘어 월국(=후쿠이)으로 8월마다 가고 싶어라
中山や越路も月ハまた命」
두번째는 센다이시 북쪽에 일본 3경의 하나라는 마쓰시마 (松島 송도)를 찾아 즈이간지와 고다이도
를 지나 다리를 건너 오시마 (雄島 웅도) 를섬에서 바쇼의 시비를 보았던게 떠오릅니다.
1689년에 6개월 동안 마쓰시마등 동북 지방을 여행하고 체험과 감상을 하이카이
(俳諧)와 하이분 (俳文) 으로 엮어 쓴 “오쿠노 호소미치(奥の細道)” 는.....
고전기행 작품이라는데, 바쇼 에게 여행의 목적 은 옛 노래 "와카의 명소" 를
방문하고 전란의 격전지 를 찾아 죽어간 선인들의 영혼을 "진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별나구나/ 향기도 없는 풀에/ 머무는 나비”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소금 절인/ 도미 잇몸도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가진 것 하나/ 나의 생은 /가벼운 조롱박”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스미는 바람”
2000년 아사히 신문에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 라는 설문조사에서 6위 를 기록했는데
1위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의 저자 나쓰메 소세키 였고 2위는 세계 최초의 여류 소설가인 무라사키
시키부, 3위 “료마가 간다” 의 저자 시바 료타로, 4위 미야자와 겐지, 5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7위
다자이 오사무,8 위 마쓰모토 세이초, 9위 노벨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10위 미시마 유키오 였습니다.
저 문인들 중에 시바 료타로는 친한파 라고 할만한데.... 그가 전선으로 끌려갈 때, 기차 안에서 서울역 인근의
청자 기와를 덮은 지붕들을 보면서 '내가 만약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조선에 꼭 와봐야지' 라고 다짐
했다는데 그래서 한일 수교가 되자마자 기를 써서 한국에 왔으며 한국기행과 탐라기행 등 기행문을 남깁니다.
또 시바 료타로 는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 라는 소설을 썼으니 1986년 KBS 1TV 에서 방영된
3부작 8.15 특집드라마로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출신 도공 들과 그 후손들이
14대 400년 동안에 걸쳐 심수관(沈壽官) 을 형성하고 민족의 뿌리를 지키며 살아
가면서 조선의 도자기 문화가 일본에 유입되어 사쓰마 야키(薩摩燒) 가 등장하는 이야기 입니다.
그의 첫 직장은 재일교포가 경영하는 회사 였으며 1980년 김대중씨가 조작된 혐의로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스즈키 젠코 총리에게 김대중 구명에 나서 달라는 서한
을 보냈으며 <한나라 기행(韓のくに紀行)> 에서 "나는 일본의 선조의 나라를 간다",
"일본 보다 오랜 시대부터, 당당한 문명과 독립국을 운영한 조선인(한국인)" 이라고 적었습니다.
또 진무 덴노(신무천황)는 가공의 인물 이라며 "일본의 혈액의 60%는 조선반도 에서 전해져 왔다. 90%,
아니 그 이상 일지도 모른다" 라고 적었으며 극우 학자들이 실존을 의심한 조선의 항왜 김충선
(사야가) 에 대해서도 <가도를 가다> 에서 "센고쿠 시대 일본의 상식에서 보면 항복한 무사가
어제 까지의 아군에게 활을 겨누는 일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라며 그의 실존을 긍정했습니다.
'어째서 일본인은 이렇게 바보가 된 걸까' 하고 22살 때 생각했습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을 텐데. 거기서
부터 저의 소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을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일본은 여기
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을 테니까. 쇼와로 와서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옛날 일들을 잘 몰랐습니다.
35~36살 때부터 문헌과 자료를 읽으면서 쓴 소설은 22살 때의 자신에게 부친 편지 였습니다.
<료마가 간다> 도 <언덕 위의 구름> 도 그 이후의 작품들도 '일본인이란 것은
뭐야?' 가 테마였습니다 - 1992년에 헤이세이 3년 일본 문화공로자 수상 기자회견 에서.
이야기가 엉뚱한 길로 샛는데 하이쿠 시인 비쇼 로 돌아오면 바쇼는 곤약을 좋아했으며 또 출신지가 닌자로
유명한 이가우에노 이고, 전문 하이쿠 시인들은 여러 곳을 여행하곤 해서 첩보활동 을 맡게 되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한 바쇼 자신도 여행 중에 여러 의문점을 남겨 실은 닌자 가 아니었느냐는 설이 있습니다.
특히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의 기술이 여행 중 동행한 카와이 소라가 쓴 '소라 여행일기' 와 80가지
이상에 달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근거가 되곤 하니 여행 출발 일자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 ' 에서는 5월 16일인데 '소라 여행일기' 에서는 5월 9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쿠로바네마치에서 14박, 스카가와에서 7박을 하며 수많은 시구를 남겼지만..... 출발 시에
절찬했던 센다이번 내의 마츠시마에서는 단 1구도 남기지 않고 하루만 묵고
통과해버렸으니 이것은 센다이번의 내부를 조사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습니다.
'소라 여행일기' 에선 바쇼가 센다이한의 군사 요새라고 하는 즈이간지 (瑞巌寺), 상업항구인 이시노마키항
을 집요하게 구경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소라는 막부에서 임무를 받고 그 위장으로 바쇼의 여행
에 동행했다는 설도 있으며 또 하루 400 km를 이동했다는 등 상식을 벗어난 여행속도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설로부터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은 기행문이 아니라 센다이 다테번의 내부 사정 을 적은
보고서 라는 견해도 있으니..... 당시 막부는 다테번에 닛코 토쇼궁을 수리 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지출이 막대하기 때문에 다테번이 불만을 품을 가능성 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핫토리 한조의 가명 이 바로 마츠오 바쇼 이고 그가 동요로
유명한 카고메카고메 를 지었으며 그 노래가 말하는 속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숨은 진실 (혹은 그가 숨긴 보물) 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
때문에 마츠오 바쇼는 현대 ‘전국 란스’ 등의 창작물에서 닌자 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와패니즘 사이버펑크
소설 닌자 슬레이어에서는 닌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헤이안 시대를 카라테로 지배 했던
닌자들을 파멸시킨 중요 인물 로 언급되며, 카라스 닌자와 닌자 슬레이어가 잘라온 닌자의 수급
100개에 짓수를 행사하여 사위스러운 데스 하이쿠를 읊게하는 말법적 의식 을 실행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대중매체에서는 “주문은 토끼입니까?” 에서 우지마츠 치야가 존경하는 인물이라서 라떼아트로 하이쿠
를 쓰기도 했으며, 죠죠의 기묘한 모험 에서는 히로세 코이치가 자신의 스탠드를 각성할 때
바쇼의 시가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홍서범의 노래 ‘김삿갓’ 에서 마츠오 바쇼 가 언급이 됩니다.
만화에서 바쇼는 쇼토쿠 태자 와 마찬가지로 보케 담당 캐릭터가 되어 허구한날 바보짓 을 하고
그때마다 제자에게 얻어맞고 사는 인물로..... 처음에는 성격 나쁜 제자에게 당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일수 있지만 계속 보다보면 정말 구제불능 아저씨 라는걸 알게 된다나요?
만년 슬럼프를 겪고 있어 제대로 된 하이쿠를 짓지 못하고 있는데.... 아니, 슬럼프 이전에 하이쿠의
기본인 5·7·5 조차 안 지키고 멋대로 지어내는 것이 태반이었으니, 그때마다 제자 소라에게 단죄
를 당하다가 정말 드물게 좋은 하이쿠를 짓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실제 마츠오 바쇼의 작품 입니다.
만화 에서 바쇼가 지은 엉터리 하이쿠 일부 입니다. (마츠오 바쇼가 지은 것은 아님!)
忍者かと思ってたら違ってた (닌잔가 하고/생각해 보았더니/아니었더라)
かさねちゃんファイト一発根性だ (아자 카사네/파이팅 한방이다/근성이 최고)
どうしてみんな私をバカというの (대체 어째서/모든 이들이 나를/바보라 하지)
野茂だもの逆から読んでものもだもの (만두먹두만/거꾸로 읽어봐도/만두먹두만)
おいでやす京都 (어서/오세요/쿄토)
チクショーーーーー! (제/엔/장-----!)
うんこ (또/오/옹)
어제와 오늘/궁둥짝의 데미지/심각하구나
대낮이라도/숙박해 버릴거다/왜 아니꼽냐
다람쥐의 뺨/먹이가 들어가는/볼주머니지
버섯을 먹으니/섰구나/거기가
번역을 5/7/5 로 맞춘것도 엄청난 센스 로 완벽하게 해내 바쇼의 병신맛 을 한국인들도 무리없이
느낄 수 있는데 하이쿠가 아닌 것들이 많은 것 같지만.... 하지만 의외로 인기가
높아 1회 인기투표 때는 우사미와 같은 표로 4위였다가 2회째에는 1위로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