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잠 20:5절
제 목 :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
일 시 : 2020. 4. 20.
잠언 20:5/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하나님께서 요즘 계속해서 마음에 관한 말씀을 주십니다. 마음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죠? 모든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이라는 제목입니다. 모략이 어디 있다고 했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잘 들으시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먼저 모략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모략이란 에짜라고 하는데 충고라는 단에서 유래했으며, 함축적으로 계획, 신중함, 충고, 숭고, 모사, 방책, 목적이라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략이란 숭고한 계획과 모사와 방책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책이나 계획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모략이라는 단어가 모두 9번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삼하15:31/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했으며, 삼하15:34/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도망갈 때 압살롬과 함께 반역하는 일에 동참했던 아히도벨이라는 전략가가 있었는데 아히도벨의 전술전략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을 만큼 적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후세라는 사람을 보내서 아히도벨의 전략을 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압살롭으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모략보다는 후세라는 사람의 전술전략을 듣고 순종하게 함으로 아히도벨의 모략이 패하게 됨을 다윗이 승리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모략은 전술전략입니다. 적과 싸워서 승리하게 하는 일급비밀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략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사11:2/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위에 임하게 될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임할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예수님 위에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의 언어로 말하면 성령님의 아홉 가지 은사에 해당됩니다. 모략은 신약시대의 성령님의 아홉 가지 은사 특히 지혜의 은사에 해당됩니다. 이런 모략은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분을 보시면 이렇게 중요한 모략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1.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모략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는 모략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략은 땅에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며, 학교나 연구실에 있는 것도 아니며, 도서관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모략은 밖에서부터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즉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의 마음속에 모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암송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게 되면 어느 순간 모략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 되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략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잠17:24/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과거한 한 때는 능력을 받고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서 유명한 목사님과 부흥강사님들을 쫓아 다니고 유명세미나에 참석한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저에게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저에게 이 말씀이 섬광처럼 번쩍이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의 삶을 보면 나에게 필요한 능력과 은사와 지혜를 얻으려고 많은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세미나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간다고 해서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둔다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지? 하면서 자꾸만 외부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얻으려고 눈을 땅 끝에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이 곧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 때의 깨달음은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얻고 싶어하는 지혜와 능력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어디에 다니면서 무엇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조용히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복이 되었습니다.
2. 그리고 모략은 깊은 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18:4/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깊은 물이란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입니다. 끊임 없이 솟아오르는 물과 같습니다. 성령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략이라는 깊은 물을 길러서 마시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러면 누가 모략이라는 깊은 물을 길러서 마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명철한 자입니다. 명철한 자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명철을 얻습니까? 다른 말로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찾는다란 바카쉬라고 하는데 찾아내다(어떤 방법으로든, 특히 예배와 기도로), 추구하다, 구하다, 간청하다, 원하다, 탄원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 찾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할 때 일반적인 뜻은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찾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때 그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께 나를 만나 주시고 나에게 나타나 달라고 추구하고 간청하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실 때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찾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처럼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모략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암송하는 구절 속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55:6-9/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시는 의미는 다양합니다. 1)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만날 수 있고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분, 너무나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가까이 계십니까? 계3:20절에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내 마음의 문밖에 서 계십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들어오실 수 있는 너무나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2)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저절로 만나지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찾고 불러야 만나 주십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어야 만나 주십니다. 3) 세 번째 의미는 그 다음구절에 있습니다. 사55: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 나를 떠나 버린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러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셔서 어디에나 계시고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 장소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 그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4) 네 번째 의미는 어떻게 돌아가야 합니까?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길이란 삶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삶의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삶의 방법을 버리기 위해서는 불의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불일치하고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생각보다 차원이 낮고 저급한 생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마귀가 주는 거짓말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드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진리이고 내가 가진 생각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선하고 나의 생각은 악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의롭고 나의 생각은 악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 즉 나를 만나 주십니다. 5) 다섯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만나 주심은 깨달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 나의 손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명철입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구나!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28:5/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무엇이든지 깨달아집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도무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깨달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깨달음이 없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깨달아지는 것이 곧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신 증거입니다. 깨달음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을 즉시 메모하고 기록하여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순종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깨달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물질을 회복시키시고, 관계가 회복시키시고,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나라를 회복시키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무너지고 깨어진 것들이 다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복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잠언22: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어떤 보상이 있습니다. 세 가지의 보상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물질의 회복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영광이고, 세 번째가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도 첫 번째가 물질이고, 두 번째가 자녀를 얻음으로 영광을 얻었습니다. 번성의 복입니다. 세 번째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물질이 가장 먼저 주어집니다. 그리고 물질과 함께 따라오는 것은 건강입니다. 돈이 많아도 몸이 아프면 복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돈이 많아야 그것이 복이 됩니다.
언제 이런 깨달음을 주십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여 주십니다.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꿀같은 말씀이 됩니다. 깨달음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그 후에 깨달아지고 믿어졌던 복들이 실제로 주어집니다. 깨달아지고 믿어지지 않는데 복이 오는 법이 없습니다. 과거에 저는 그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깨달아지는 것만큼, 믿어지는 것만큼 복이 주어지는데 깨달아지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너무나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만큼 복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복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나의 입으로 말하고 선포하고 기도하고 구하고 심고 행하는 데로 복을 주시고 복을 받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모략이라는 샘물을 길어내기 위해서는 마중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기도이며, 영(방언)으로 기도하는 기도이며,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데 곧 깨달음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물질의 복과 영광과 영원한 생명의 복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