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교사, 샘, 그리고 님'
-서울시교육청 조직문화혁신방안과 호칭 논란 속에서-
한희정(실천교육교사모임 서울대표)
일파만파
지난 1월 8일 서울시교육청은 조직문화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사회변화에 능동적·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정착이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관행과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 혁신이 필요”함을 취임사를 통해 밝힌 바 있으며, “T/F 운영을 통하여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10개의 추진과제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호칭을 바꾸겠다는 것은 이 열 개의 과제 중 하나였다. 보도자료가 배포되고 난 직후 나온 기사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담은 기사들이 주류였다.
서울시교육청, 구성원 간 호칭 직급대신 ‘~님, ~쌤’으로 바꾼다(민중의 소리),
‘○○쌤’ ‘○○님’…서울교육청, 구성원 호칭 통일(중앙일보),
직급 대신 '~님·~쌤' 호칭 통일..서울교육청 조직문화 개선 '시동'(해럴드 경제),
반바지에 슬리퍼..서울교육청 조직문화 10대 혁신과제 발표(뉴시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장교사나 국민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기 때문인지 후속 기사들은 부정적 기류로 흘러가고, 학교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제목을 내세운 기사까지 나오게 되었다. 여론은 술렁였고 서울시교육청은 급기야 이를 해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학교서 ‘선생님’ 호칭 사라지나?...서울교육청 ‘님’ ‘쌤’으로 변경(에듀프레스),
‘교육감’ 대신 ‘조희연쌤’…은어 사용이 조직문화 혁신이라는 교육청(중앙일보),
"교장쌤?… 만우절 장난이냐" 비난 빗발에 '선생님 호칭 금지' 없던 일로(서울경제),
"이제 교장선생님 대신 ○○쌤이라 불러요"(조선일보),
서울시교육청의 ‘○○쌤’ ‘○○님’ 소동(중앙일보),
선생님 대신 ‘쌤’ ‘님’.. "교사 마지막 자긍심마저 뭉개나..."(에듀프레스),
"수평적 문화 위해 '교사'→'쌤'?..선생님 단어가 권위적인가" (뉴스1),
'선생님' 호칭은 교권의 마지막 보루다(조선일보)
이 하나의 사건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어리숙한 사안 처리를 우선 꼽을 수 있다. 학교 현장에 먼저 알리고 의견을 구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언론 인터뷰나 보도자료를 먼저 배포하는 식으로 실제 조직 구성원들을 소외시키는 관행을 만들어온 조희연 체제와 “혁신방안”이라는 초안을 보도자료에 첨부함으로써 불신과 조롱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언론의 보도방식이다. 보도자료 받아쓰기에 능숙한 언론이 초기에는 별 문제의식 없이 제1과제로 제시된 ‘호칭’ 문제를 제목으로 뽑아서 안이하게 보도를 하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에 편승하여 나머지 9개의 과제는 사장시키고 호칭 문제만 부각시켜 훈수를 두려는 태도를 취했다. 현장 교사 출신인 윤근혁 기자가 “'선생님' 대신 '쌤'.. 호칭변경 TF에 현직 '쌤'은 0”(오마이뉴스) 기사를 송고하기까지 어느 기자도 서울시교육청 보도자료에 딸린 29쪽짜리 첨부파일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쌤과 선생님 사이.
현장교사로 20년을 살면서 “교장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 사람과 “교장 쌤”으로 불러야 할 사람을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교감 쌤”이라 해야 할지, “교감 선생님”이라 해야 할지, “부장님”이라 해야 할지, “선생님”이라 해야 할지, 그냥 퉁쳐서 “쌤”이라고 해도 될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얻어먹은 눈칫밥 탓일 수도 있고, 일반직 공무원이 다수인 교육청이나 일반 회사와 달리 그나마 학교 현장은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일상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사람 가려가면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주체가 “하급자”인 “나”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도 3학년 정도만 되면 “쌤”이다. 저들끼리만 있을 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 쌔앰~~”하며 매달리기도 하고, “한희정 쌤께” 이렇게 시작하는 쪽지들을 써서 날리기도 한다. “담임쌤”도 길다며 “담쌤”이라고 부른다. “담탱이”라고 부르던 나의 학창 시절보다 100배는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상대를 가려가면서 사용하는 호칭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쌤”이라 불러야 할지 학생들도 다 가릴 줄 안다. 이것을 가리는 주체 역시 “학생”이다.
그러니 호칭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다. 저 사람과 나는 어느 정도의 관계인가, “쌤”이라고 불러도 될 사이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훈계를 하거나 벌점을 주거나 화를 낼 사람인가를 먼저 판단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고 했지 않는가! 사실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이 “샘”이라 부르든, “쌤”이라 부르든, “선생님”이라 부르든 전혀 상관이 없다. 교사인 내가 아이들과 맺는 관계는 호칭에 따라 갑자기 존경의 마음이 더해진다거나 덜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쌤이라고 부르면 친근하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형식적이고 딱딱하다는 이분법적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쌤과 선생님 사이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언제나 깍듯하게 “선생님, 선생님” 부르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내가 맺어가는 관계를 “쌤, 쌤”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맺어가는 관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두가 고유한 관계일 뿐이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력, 삶의 자리에서 각자가 판단한 결과로 선택되는 것이 호칭일 뿐이다. 늘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밴 학생이 사용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서먹하고 서툰 관계에서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같은 호칭이지만 그 결이 다르다. 그것은 관계와 호칭의 고유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호칭만으로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자조 섞인 비웃음과 탄식, 그 근원은 무엇인가
서울시교육청의 호칭 문제가 기사화된 이후 수많은 현장 교사들의 조롱과 냉소가 페이스북에 넘쳐났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에 서울시교육청의 조직문화혁신이라는 좋은 의도가 가려진 탓도 있을 것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양산하는 SNS 문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들의 자조 섞인 비웃음과 탄식의 근원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조롱하고 냉소하던 교사들이 ‘호칭은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모르거나 거부해서 그런 반응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칭은 고유한 관계의 결을 담은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쌤”이라고 부르면 비하하는 것이고, “선생님”이라 부르면 존경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 역시 그렇다. “선생님 호칭은 교권의 마지막 보루다”는 조선일보식의 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조롱과 냉소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무엇보다 그러한 제안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시행방안”으로 학교와 교사들에게 시달될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호칭 문제는 그 현장의 교사와 학생들이 알아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그것을 ‘혁신학교’를 선두로 시범 시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수평적 조직문화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수직적 위계질서를 통해 구현하려고 하다니, 조직문화혁신 TF에 현장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네, 근데 학교에서도 시행하라네, 이거 학교현장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만든 거네’, 이런 냉소다. 진짜 교권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은 의사결정이나 수렴의 주체로 교사를 대하지 않는 교육청인 셈이고 이에 대한 냉소다.
이미 학교는 2-30년 전 우리가 다니던 그런 학교가 아니다. 그런 학생도 아니고, 그런 교사도 아니다. 교사들이 정말 고민하는 문제는 백인백색의 교사들이 백인백색의 학생들과 맺어가는 관계다. 아무리 “선생님, 선생님”이라 부르며 굽신 거려도 존경은커녕 겉 다르고 속 다른 이기적 속살이 다 보이는 학생들과 “쌤, 쌤”이라 부르며 까불어도 그 행위에 담긴 마음이 밉지 않은 학생들과 맺어가는 각각의 관계다. 서로에게 맞춰 가느라 학생들도 힘들고 교사들도 힘들다. 이것은 교권이 무너져서 벌어지는 사태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했고 사회 구성원인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변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낯선 사태일 뿐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2-30년 전에 학교를 다녔던 누군가의 훈수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권은 “쌤”이라 부르든 별명을 부르든 이런 호칭과는 무관한 문제가 된다. 오히려 교권은 모든 학생들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가르칠 권리로 접근해야 한다.
진짜 호칭 문제는 하대
“야, 이 녀석!”, “이 자식 좀 봐” 이렇게 문자화된 언어는 맥락을 상실하여 무색무취가 되거나 개인의 인식 수준에서 그 내용이 결정된다. 그러나 맥락 속에 놓이게 되면 얼마든지 다양한 관계로 변이된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와 맥락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는 것이다. 인격 모욕이 될 수도 있고, 장난처럼 주고받는 말일 수도 있다. 당사자들은 전혀 불쾌하지 않은데 옆에서 듣는 사람이 불쾌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 해석도 대체로 사적인 관계에 국한될 뿐이다. 공적인 관계에서 이런 말을 사용한다면 일단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호칭 문제가 한참 이슈이던 지난 1월에 교육청 산하기관인 서울교육연수원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모든 교사들이 교직 경력 5년이 지나면 받게 되는 초등정교사 1급 자격 연수 과정에 강의를 해야 했다. 2012년부터 꾸준히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데 2019년에는 몇 가지 점에서 강사 의전이 특별했다. 먼저, 강사 휴게실 탁자에 도열되어 있던 강사 명패와 이름표가 사라졌다. 둘째, 강사 휴게실까지 반대표 교사가 찾아와 에스코트하는 관행이 사라졌다. 셋째, 점심시간에 강사들이 우선 배식을 받도록 안내하는 관행이 사라졌고, 강사석이라고 따로 구분된 식탁이 사라졌다. 강사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던 관행이 사라진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쉬는 시간 강사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연수 담당 연구사 두 명이 인사를 하러 들어온다. 고생이 많으시다, 요즘은 강사 구하기가 힘들다, 요즘 애들이 너무 어려서 민원도 많고 그런데 이렇게 강사로 와 주셔서 고맙다, 점수 경쟁이 너무 심해서 걱정인데 강의 참여는 잘 하느냐, 요즘은 뭐 다 연수생이 상전이라 그렇다는 등의 얘기를 막힘없이 풀어간다.
‘요즘 애들? 경력 5년이 넘은 교사들에게 요즘 애들?’ 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저런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겨울방학을 반납하고 연수를 받는 교사들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일까? 관리하고 통제해서 ‘민원’만 없이 잘 끝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교직 경력에서 1정연수의 의미를 승진용 점수 관리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게 만들어 놓고 경쟁이 심한 것이 문제라는 저런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으러 온 20-30대 교사들을 동료 교원으로 대하지 않고 뭔가 가르쳐줘야 할 어린 사람 취급을 하는 그 자연스러운 인식의 흐름이야 말로 심각한 문제 아닌가? 이런 이들이 학교에서는 어떻게 학생들을 대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의전 행위는 바꿀 수 있지만 인식은 바꾸기 어렵다.
객관화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지 못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세대와 조직 문제를 인식하는 한, 호칭 자체를 백 번 바꾸고 엄벌한다 해도 그 하대하는 문화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랫사람에게 별명을 부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윗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들의 부당한 권력 행사를 멈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호칭 문제는 윗사람을 향한 아랫사람들의 호칭이 아니라, 윗사람들의 아랫사람에 대한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