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2부) 과거와 만나는 순간은 무언가를 함께 하고 공감했을 때 짓는 미소처럼 아름답습니다. 천 년(千 年) 전의 누군가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느꼈을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高麗)가 이룬 창의성과 독자성, 뛰어난 예술성은 우리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유전자입니다. 고려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요? 고려 오백 년을 지소괄 수 있게 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대고려전(大高麗展)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셨기를 바랍니다. 부처를 모신 작은 집(金銅佛龕) / 고려 14세기 금속판을 조립해서 만든 전각 형태의 불감이다. 문 안쪽 면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좌우대칭으로 부조하고 안쪽 벽에는 타출(打出) 기법을 사용하여 부처의 모임 장면을 표현하였다. 부처와 두 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10대 제자로 보이는 승려들이 서 있다. '지정 18년'이 새겨진 향완(香垸) 받침 / 고려 1358년 / 영국박물관 몸체는 없고 받침만 남아있는 청동 은입사 향완이다. 이 향완 받침에는 비슬산(琵瑟山) 소재사에 있는 지장(地藏) 앞에 놓는 향완(香垸)이라는 봉안 장소가 은입사로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명문은 음각으로 새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향완처럼 은입사로 장식까지 한 사례는 흔하지 않다. 금동보살좌상 (왼쪽), 금동미륵보살좌상 (중앙), 금동대일여래좌상 (오른쪽) 비사문천과 관음보살이 있는 작은 불감 / 고려 1156년 이전 남원군부인南原郡夫人) 양씨(梁氏)의 석관(石棺)에서 발견되었다는 작은 불감(佛龕)이다. 탑을 든 비사문천(毘沙門天)과 연꽃을 든 관음보살(觀音普薩)이 감실 형태의 불감에 봉안되어 있다. 문을 열러 예배 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범자(梵字)가 있다. 1156년에 부인을 장사 지냈다는 묘지명의 기록이 있어 1156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동자무늬 경갑(經匣) / 고려 12~13세기 / 금동 / 미국 보스턴 박물관 경갑(經匣)이란 불교에서 불경을 넣어두는 상자로 불경과 경갑을 아주 작게 만들어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경전 휴대 내지 일종의 부적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고봉국사 불감 (高峰國師 佛龕) / 고려 말 조선 초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 송광사 성보박물관 연꽃넝쿨무늬 팔찌와 부적 / 고려 / 개인소장품 아미타삼존불좌상 (阿彌陀三尊佛坐像) / 고려 1383년 / 은에 금도금 / 삼성미술관 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존불로 드물게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었다. 삼존상의 주위를 둘렀던 은제 난간과 청동합, 은합이 일렬로 전하고 있다. 금강저와 금강오고령 (왼쪽부터) 염색으로 문양을 표현한 견직물 석장 머리 장식 / 고려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09호 / 호림박물관 비구가 지니는 석장(錫杖:Khakkhara)의 머리부분으로 금동으로 되어 있으며 조성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석장의 머리 부분은 여의두 모양의 커다란 고리 형태로 고리 안에는 마치 연꽃줄기에서 뻗어나오는 듯한 연화대좌 위에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꼭대기에는 5층탑이 장식되어 있다. 삼존불상을 마치 거신광처럼 감싸는듯한 여의두 모양의 커다란 고리 안에는 3개의 작은 고리가 남아 있다. 나전 모란넝쿨무늬 경함 / 고려 13~14세기 / 보물 제1975호 2014년 (사)국립중앙박물관회가 기증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모두 9점으로 대부분 국외에 소재하녀 높은 예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쉽게 감상할 수 없었다. 불감과 관음보살상 / 고려 말 조선 초 / 금동, 은에 금도금(보살) 2018년 1월에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이 기증하였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으로만 전해오다가 국립중앙박물관회의 노력으로 국내에 돌아오게 되었다. 감실 내부의 가장 넓은 벽에는 본존과 협시보살 주위로제자와 팔부중이 운집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청자 동자 모양 연적 /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왼쪽) 청자 사자장식 베개 /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중앙) 청자 거북이 모양 연적 /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오른쪽) 이색 초상(李穡 肖像) / 작가 미상 / 조선 18세기 / 비단에 채색 / 보물 제1215호 (왼쪽) 이색(李穡, 1328~1396)이 오사모(烏紗帽)와 담홍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서대(犀帶)를 한 반신상이다. 이색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문인으로 1348년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이 초상은 필선 위주로 얼굴을 표현하고 선염이 거의 없는 고식이다. 사모 높이가 평편하고 좁고 긴 양각이 아래로 쳐져 있으며 단령의 깃이 좁은 여말선초의 상복常服 차림을 보여준다. 이색의 초상은 여러 차례 이모되었는데 여말선초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안향 초상(安珦 肖像) / 조선 16세기 중엽 / 비단에 채색 / 국보 제111호 / 소수박물관 (오른쪽) 회헌 안향(1243~1306)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린다. 1289년 안향은 당시 세자였던 충선왕을 수행하여 원나라 연경에 갔다가 주자의 저서를 필사하고 공자의 초상을 모사하여 1290년(충렬왕 16년)에 돌아와 이 1290년을 우리나라 주자학의 시작으로 보며 이후 성리학은 백이정, 권보, 우탁, 이제현 등으로 이어지다가 여말선초의 신진사대부에 의해 조선의 정치 이념이 된다. 육마도권(六馬圖券) / 작가미상 / 비단에 채색 / 오른쪽 반, 금 12세기~13세기 초, 왼쪽 반, 원(元) 14세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른편 그림은 인물과 말의 사실적인 세부 표현과 짙은 채색 음영법으로 보아 북방 사실주의 전통에 익숙했던 금(金)나라 직업화가의 그림으로 여겨지며 왼편의 3마리 말은 채색과 음영이 도식적이고 인물이 안장(鞍裝)도 없이 말에 올라탄 모습으로 인물이 머리에 쓴 전립(氈笠)의 형태 등을 감안할 때 원대(元代) 1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선사 노비문서(修禪社 奴婢文書) / 고려 1281년 / 종이에 먹 / 보물 제572-2호 / 송광사성보박물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 주지였던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 1215~1286)이 아버지인 양택춘(楊宅椿)에게 받은 노비와 그 자식을 수선사에 바쳤고 이를 나라에서 공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원오국사는 수선사에 봉안되었던 거란대장경을 관리하기 위해 자신이 상속받은 노비를 수선사에 예속시켰다. 문서 끝부분에 지원(至元) 18년이란 연호가 남아 있어 문서가 작성한 연도(1281년)를 알 수 있다. 청자 모란무늬 항아리 / 고려 13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 청자 꽃, 나비무늬 정병 /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 은제 꽃 모양 잔 / 청자 풀꽃무늬 잔 목조아미타불좌상 / 일본 헤이안(平安)시대 12세기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왼쪽)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다스리는 아미타여래에 대한 신앙은 중국과 고료,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일본에서는 특히 헤이안시대(794~1185) 후기 정토종(淨土宗)의 확산으로 아미타당(阿彌陀堂)과 아미타상이 빈번하게 조성되었다. 아미타불좌상은 아미타불의 아홉 가지 수인 가운데 두 손을 배 앞에서 마주하여 엄지와 검지를 맞댄 상품상생인(上品上生印)을 취하고 있다. 목조대일여래좌상 / 일본 헤이안(平安)시대 12세기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오른쪽) 목조아미타불상과 같은 시기인 일본 헤이안 12세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왼손 검지를 세우고 이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수인은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의 수인과 동일하다. 그러나 일본의 대일여래가 머리를 높게 묶고 신체를 장엄한 보살의 모습인 점음 고려의 여래형 비로자나불과 다른 점이다. 두 불상 모두 여러 목재를 결합하여 불상을 조각하는 분할조립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 고려 14세기 / 일본 사가현 중요문화재 / 일본 후묘지 (왼쪽) 정교한 세부 묘사와 온몸에 걸친 화려한 장신구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이다. 오른팔을 올리고 왼팔은 내려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 구품인 가운데 중품하생인을 취하였다.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 고려 말~조선 초 / 2009년 구입 (오른쪽) 둥글고 넓적한 얼굴은 편평한 편이나 튀어나온 눈꺼플과 우뚝 선 예리한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은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가슴 윗부분과 하반신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다. 목조관음보살좌상 / 송(宋) / 나무(木) / 영국박물관 당나라 양식을 계승한 남방의 송과 북방의 요 불상은 11세기 이후가 되면 각각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 송대에는 관음보실은 반가좌(半跏坐)와 유희좌(遊戱坐), 윤왕좌(輪王坐)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한 관음보살상이 제작되었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복건성과 절강성 지역에서는 보타락가산의 수월관음 신앙이 유행하여 유희좌 혹은 윤왕좌를 취한 관음보살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목조로 조각된 솜씨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유희좌 자세가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얼굴 부분 확대 모습 목조세지보살좌상 / 금 또는 남송 / 12~13세기 / 나무 /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두 다리를 접어 편안히 바닥에 두고 오른손을 든 수인을 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다. 높게 묶어 올린 보계(寶髻)만큼 높은 보관을 착용하였고 보관 중앙에 보병(寶甁)이 있다. 금동대세지보살좌상 / 고려 14세기 보물 제1047호 / 호림박물관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 / 고려 말 조선 초 / 보물 제1547호 한쪽 무릎을 세운 유희좌(遊戱坐)와 윤왕좌(輪王坐) 자세는 송대(宋代)에 특히 성행한 형식으로 고려시대에 수용되어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를 세우고 왼팔에 체중을 실은 채 머리와 상체를 곧게 세우고 있다. 이 상(像)과 유사한 상(像)이 강진 고성사(康津 高聲寺)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 대외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바다와 인접한 해남과 강진에 송대 윤왕좌보살상 도상(圖像)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 고려 1346년 / 금동 / 보물 제337호 / 청양 장곡사 (촬영/청암) |
첫댓글 다음주엔 중앙박물관 견학을 해야겠어요..감사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問-不如一見)이라고
실제로 보시면 두 눈이 휘둥구레 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히 잘 보았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