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돌아오자 여우가 웃었다? 포식자 애증 관계
쥐만 먹다 사슴고기로 배 불리지만 죽을 위험은 다른 문제
같은 갯과 포식자이지만 늑대는 순록을 사냥하지만(왼쪽) 여우는 그 찌꺼기를 노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우는 늑대 주변을 맴돈다. 사냥하고 남긴 찌꺼기를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칫하면 덩치가 3배나 큰 늑대에 물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남긴 먹이는 치명적 유혹이다.늑대가 사라진 곳에 늑대를 복원하면 그곳 여우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멀리할 수도 그렇다고 가까이할 수도 없는 중형 포식자와 대형 포식자의 복잡한 애증 관계를 현장에서 살펴본 연구결과가 나왔다.프란세스코 페레티 등 이탈리아 연구자들은 ‘린네 학회 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탈리아 중부의 한 보호구역에 늑대를 복원한 뒤 여우의 먹이 변화를 조사했더니 사슴과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가 식단에 오르는 빈도가 전보다 2∼3배 늘었다”고 밝혔다.
중형 포식자인 여우는 기회가 오면 무엇이든 사냥한다. 뉴트리아를 사냥한 여우. 스테파노 베티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우는 기회가 오면 뭐든지 먹지만 주 식단은 과일, 곤충 등 무척추동물, 쥐 등 소형동물로 꾸려진다. 그런데 늑대가 오고 나서 여우의 배설물을 조사해 보니 사슴 등 대형 포유류를 먹은 여우가 34%나 됐다.물론 여우도 봄과 초여름엔 갓 태어난 사슴 새끼를 사냥한다. 그러나 조사에서 여우는 연중 사슴 등 유제류를 꾸준히 섭취한 것으로 드러났다.이 보호구역엔 다마사슴, 노루, 멧돼지 등 유제류가 풍부하다. 연구자들은 “복원한 늑대가 남긴 유제류 먹이가 여우에게 새로운 먹이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일반적으로 중형 포식자는 대형 포식자를 회피하지만 이곳 여우는 늑대와 활동영역이 겹치고 활동시간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도 대형 포식자와 중형 포식자가 이처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두 포식자 사이의 공존이 먹이가 풍부한 지역 여건 때문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사냥감을 지키는 퓨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먹이를 노리는 중형 포식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멜리아 데비보, 워싱턴대 제공
일반적인 대형과 중형 포식자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또 다른 연구결과는 반대 결론을 내놓는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자들이 250여개의 기존 연구결과를 종합해 실은 과학저널 ‘에콜로지 레터스’ 최근호의 리뷰논문을 보면 지구촌에서 대형 포식자가 남긴 먹이 찌꺼기는 중형 포식자가 모처럼 고기 맛을 볼 기회보다는 죽음의 덫에 가깝다.주 저자인 로라 프러그 교수는 “처음에 우리는 작은 포식자들이 늑대가 사냥한 고기 찌꺼기를 청소하면서 득을 볼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사냥 장소에서 늑대와 맞닥뜨려 죽을 확률이 커 실제로 먹이 찌꺼기 청소는 득이라기보다 덫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조사 결과 중형 포식자 먹이의 3분의 1은 사슴 등 유제류여서 늑대 등 대형 포식자의 사냥감 찌꺼기가 주요 먹이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동시에 중형 포식자의 사망 원인 가운데 3분의 1은 그 먹이를 제공한 대형 포식자로 나타났다.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는 같은 갯과 중형 포식자를 많이 죽인다. 카이자 클라우더, 워싱턴대 제공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사냥감 찌꺼기를 먹으러 갔다가 먹이로 되돌아온 대형 포식자에게 죽임을 당한 중형 포식자가 상당히 많다는 얘기다. 특히 가뭄, 산불, 혹한 등으로 먹이가 부족할 때 이런 일이 잦았다.연구자들은 “세계적으로 대형 포식자가 감소해 여우 등 중형 포식자가 늘어나는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이런 생태적 덫이 조절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늑대 등 갯과 대형 포식자는 여우, 코요테 등 같은 갯과 포식자를 주로 죽이지만 퓨마 등 고양잇과 대형 포식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특성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인용 논문: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DOI: 10.1093/biolinnean/blaa139/6026522Ecology Letters, DOI: 10.1111/ele.13489
출처 한겨레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