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195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박인환
‘신시론’과 ‘후반기’ 등
1950년대 문단의 모더니스트 그룹을 이끌며
도시풍의 시를 쓰고
숱한 에피소드를 뿌린 ‘댄디 보이’
박인환(朴寅煥, 1926~1956).
그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문화 비평가이며
영화 감독이기도 한 장 콕토를 선망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박광선(朴光善)은
중등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면사무소 직원이었다.
땅도 꽤 있어서 어릴 적 그의 집은 시골 살림치고는
부유한 편이었다.
인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박인환이 머리가 좋고
똑똑한 것으로 드러나자,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면사무소를 그만둔다.
그의 아버지는 생활 터전을 서울로 옮기는 한편
산판업을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서울 종로구 원서동 언덕배기로 이사한 뒤
그는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한다.
1939년 박인환은 경기공립중학교에 진학한다.
이 무렵 그는 영화와 문학에 빠져들어
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과 일본 상징파 시인들의 시집을 탐독하느라
밤을 새우곤 한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드나든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중학을 중퇴한 그는 한성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에 편입한다.
그는 중학 졸업 뒤 아버지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로
3년제 관립 학교인 평양의학전문대학에 들어가지만,
해방이 되자마자 학업을 접고 서울로 돌아온다.
헌칠한 키에 얼굴도 잘생긴 박인환은
당대의 문인 가운데 최고의 멋쟁이, ‘댄디 보이’였다.
여름에도 정장 차림을 하던 그는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날리고 모자도 쓸 게 아냐?” 하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날 그는 땅바닥에 끌릴 듯이 긴 외투를 입고
친구들 앞에 나타나서
“이게 바로 에세닌이 입었던 외투란 말이야.” 하고
의기 양양하게 지껄인다.
러시아의 시인 에세닌이 자살하기 직전에 입었던
외투를 사진에서 보고
미군용 담요로 본떠 지어 입은 것이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시인 김차영은 이렇게 돌아본다.
(그가 입고 다닌 양복은 외국 고급 천에 일류 양복점의 라벨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흐린 날은 손잡이가 묘한 검정 박쥐 우산, 봄 가을엔 우유빛 레인코트,
또 겨울엔 러시아 사람들처럼 깃이 넓고 기장이 긴
진회색도 검정도 아닌 중간색의 헐렁한 외투를 입고 다녔다.)
박인환은 통속적인 것을 혐오하고,
원고 쓸 때는 구두점 하나에도 몹시 까다롭게 굴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차도 한잔 같이 마시지 않는 결벽증을 보이곤 한다.
수주 변영로가 금주를 선언하자
그를 찾아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자격이 없다며
앞으로는 ‘선생’자를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문단 선 · 후배들이 함께 있던
어느 영화 시사회장에서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평론가 백철을 향해 “어이, 백철 씨! 저걸 알아야 돼.
저걸 모르고 무슨 평론을 한단 말이오!” 하고
일갈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의 첫 단독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이 나온다.
첫머리에 ‘아내 정숙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들어 있고
총 4부 56편으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박인환의 대표작이 거의 다 실린다.
한때 그가 ‘신시론’과 ‘후반기’ 동인의 결성에 앞장서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기는 하지만,
이 시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를 모더니스트로
보기 거북하게 만들 만큼 서정성이 짙게 묻어난다.
그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목마와 숙녀」만 하더라도
‘버니지아 울프’라는 낯선 외국 작가로 말미암은
이국적 분위기와 ‘목마’라는 낭만적 요소를 묘하게 섞어
슬픔에 물든 생각을 잔잔하게 흘리고 있는 서정시다.
여기서 시인에게 인생이란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이며
허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첫댓글 잘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