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정복한 왕들
수 12:1-6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 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수 15:1-6 / [유다 지파가 차지한 땅] 유다 지파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각 씨족에 따라 배당받은 지역은 다음과 같다. 남쪽으로 에돔 땅과 접경해 있고 최남단은 신 광야까지 펼쳐 있는 땅이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이다. 2)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남쪽 경계는 사해라고도 부르는 소금바다의 남단에서 시작하여 3) 아그랍빔 비탈을 지나 신 광야를 지나간다. 다시 거기에서 가데스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며 헤스론을 지나 아달로 올라가서는 갈가 쪽으로 돌아간다. 4) 거기서 아스몬을 지나 애굽 시내를 죽 따라가면 바다라고 일컫는 지중해까지 경계가 뻗친다. 바로 이러한 경로가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남쪽 경계선이다. 5) 유다 지파가 물려받은 땅의 동쪽 경계선은 사해라고도 부르는 소금바다로 요단강이 사해로 흘러드는 끝이 바로 동쪽 경계의 마지막 지점이다. 유다 지파가 몫으로 받은 땅의 북쪽 경계선 역시 소금바다로 앞서 말한 요단강과 소금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6) 그곳에서 벧호글라로 올라가다가 벧아라바 북쪽을 지나고 거기서 다시 `보한의 돌'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에벤 보한까지 올라간다. 보한은 르우벤의 아들이었다.
본문은 요단 강을 건너기 전 모세에 의하여 정복된 요단 동편의 땅과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옥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요단 동편 전쟁에 대한 회고는 그들이 앞으로 싸울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승리를 시사합니다.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1-3)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한 종족으로(창10:16) 주로 산지에 살았으며(신 1:7) 출애굽 당시 요단강 동쪽 아르논 골짜기와 헤르몬 산 사이에서 거대한 왕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헤르몬 산은 상부 갈릴리와 골란 고원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모리의 수도는 헤스본이며 시혼은 아모리 족속의 한 왕으로 헤스본의 왕으로도 불렸습니다(신 2:26).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모리인의 땅을 통과하되 왕의 대로로만 갈 것을 요청하였으나 아모리 족속의 시혼은 이를 거절하고(민 21:23) 군대를 모집하여 대항하였으나 결국 모세에 의하여 완전히 전멸당하고(민 21:21-30) 그의 영토는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수 13:20).
바산 왕 옥(4-6) 바산은 길르앗과 헬몬 산의 중간 지대에 있는 비옥한 땅으로 얍복 강 북쪽 갈릴리 바다 동편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좋은 밀을 생산하여 팔레스타인의 곡창 지대로 불렸고, 우수한 목축 지대(신 32:14; 암 4:1)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부유한 여인을 바산의 암소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산은 상수리 나무로 유명한 산림 지대(사 2:13)로서 여기서 나오는 상수리 나무로 배의 노를 만들었습니다(겔 27:6). 바산 주민의 일부는 아모리인이었고 거인들이었습니다. 바산 왕 옥도 거인이었습니다(신 3:11). 그의 철 침대의 길이는 아홉 규빗으로 약 4m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산 왕 옥은 헤스본 왕국을 정복한 모세에게 패하고 정복당하며 영토를 빼앗겼습니다. 모세는 바산 왕 옥이 통치하던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를 점령하였습니다(신 1:4). 아스다롯이란 도시 이름은 이곳 주민들이 여신 아스다롯을 섬겼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옥의 영토는 헤스본 시혼의 영토와 인접해 있었습니다. 요단 동편 시혼과 바산은 가나안 정복의 첫 열매입니다. 이후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적용: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확신할 때 인내하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백성이 그대로 따라야 하고 하나님이 법을 정하시면 사람이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의 요청에 따라 뜻을 돌이키거나 계획을 변경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때때로 계획을 바꾸시면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 설 교 >
은혜의 구슬 꿰기
여호수아 12:1-6
여호수아 12장은 이스라엘이 정복한 왕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동편의 왕들 2명, 가나안 중부의 2명, 가나안 남부의 14명, 가나안 북부의 15명, 이렇게 도합 33명의 왕들을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두 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엄밀히 따지면 약속된 땅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땅이 아니라 모세에 의해 정복된 땅이었습니다.
요단 동편의 땅은 약속된 땅이 아니었으므로 가만히 통과하려고 했지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그 땅의 통과를 거절하고 오히려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동편을 점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복된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덤으로 주어진 은혜였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모세가 빼앗은 땅들이 기록된 이유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모세로부터 이어져 오는 전쟁임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요단 동편의 땅들 역시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약속과 연결 선상에 있는 땅이라고 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기록되어졌습니다. 요단 동편에 땅을 차지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원래 약속에서 언급되지 않은 땅에 살았으므로 자칫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 동편의 땅을 의도적으로 기록함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대감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었지요.
적용
1. 은혜의 구슬들을 꿰어라.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누구나 은혜의 구슬들이 있습니다. 그 구슬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산재합니다. 하지만 그 구슬들을 꿰어보면 정말 아름다운 보석이 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쉽사리 잃어 버리는 이유는 구슬을 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모두 연결시켜 보십시오. 그것을 잘 연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붙들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이 쉽게 자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늘 꿰어 이어놓고 묵상하는 사람은 놀라운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은혜에는 늘 덤이 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붙드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늘 풍성하게 부어집니다. 원래의 약속인 요단 서편에 요단 동편의 은혜가 덤으로 주어졌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 역시 요단 서편은 물론 동편까지 취하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부어질 때는 늘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이 부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만큼만 쪼로록 따라주고 많은 쪼잔한 분이 아니십니다. 늘 충만하게 그리고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목마르고 갈급한 만큼 더 많은 것으로 부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귀로 듣지도 못하였고,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를 즐거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구슬처럼 꿰어져야 할 또 다른 한가지 –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구슬처럼 꿰어져야 합니다. 약속의 땅이 아니었던 요단 동편을 약속의 땅의 일부인 것처럼 기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요단 서편의 백성이 보기에 요단 동편의 백성은 정통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는 요단동편의 정복을 가나안 정복과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요단 동편의 땅을 이미 차지한 세 지파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선봉에 섰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공동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자가 한 구슬들입니다. 이들이 흩어져 있을 때는 그저 구슬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구슬이 꿰어질 때 신앙 공동체라고 하는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슬꿰기를 잘해야 합니다. 흩어져 있는 은혜를 어떻게 모아 보석을 만드느냐가 성도 개인의 숙제라면,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모아 보석을 만드냐는 교회의 숙제입니다. 작은 불씨들은 흩어져 있으면 작은 바람에도 쉬이 꺼져 버립니다. 그러나 모아진 불씨들은 바람이 거셀수록 더욱 큰 불로 확산이 되곤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은혜의 구슬들을 서로 모을 뿐 아니라, 서로 모여 불씨를 크게 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개인이 살아야 공동체가 살고, 공동체가 살아야 개인이 살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
1. 은혜의 구슬들이 아름답게 꿰어져 있습니까, 아니면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안납니까?
2. 공동체라고 하는 보석에 꿰어진 구슬입니까, 따로 노는 구슬입니까?
3. 색깔과 모양이 너무 달라 공동체에서 화악 빼내 버리고 싶은 구슬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가나안 정복 요약 총정리
여호수아 12:1-6
* 계획에 없던 아모리와의 전쟁엔 어떠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까?
* 모세와 여호수아의 정복 점수는 누가 더 큰가요?
요단강 저편을 추억하며
오늘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역사를 간단히 요약․정리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지난날을 정리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형편없는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얼마나 큰 성적을 거두었는지 한 눈에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6절까지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가 정복한 땅과 왕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이 아니면 싸우려고 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아모리 사람들이 먼저 전쟁을 걸어와서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고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리였습니다. 계획에 없던 전투였지만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죠. 게다가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무찔렀단 소문에 가나안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하나님의 이름이 그 땅 가운데에 높아졌습니다. 이 정도면 두고두고 자랑하고 추억할 일이 아닙니까?
모세 vs 여호수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계획에 없던 전쟁에 승리하는 바람에 큰 땅덩어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땅을 우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의 반쪽 지파에게 그들의 살 터전으로 주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한 일입니다. 그런데 반면 여호수아가 이룬 업적은 어떻습니까? 모세가 두 왕을 무찌른 데에 비해서 여호수아는 서른 한 명이나 되는 왕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일을 이루었습니다. 아무리 천하의 모세라 할지라도 여호수아가 훨씬 많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율법을 상징한다면 이 여호수아는 훗날 오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Joshua(여호수아)와 Jesus(예수) 둘의 이름도 비슷합니다. 덧붙이자면 율법이 주는 승리보다 복음이 주는 승리와 선물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영광스럽다는 말이지요.
이스라엘이 정복한 성읍들
수 12:1-6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율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단순한 논리로 구약 성경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지혜조차 무시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하면서 마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게도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영적 싸움을 지속해야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세상에서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소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요, 죄를 지을 수도 없나니 그 까닭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이라.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니라.』(요일 3:9,10)
현대인들은 죄에 대해서 매우 관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또는 언론 매체에 이르기까지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모습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살인, 강도를 일삼는 근육질의 남성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둔갑하고 있고, 가정 파괴와 불륜으로 결론지어질 법한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으며, 동성애자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고, 마약, 매춘 등을 이제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파렴치한 스캔들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8년 동안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토록 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현대인들의 죄에 대한 무감각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에 매우 민감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문제는 매우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미 많은 죄들이 숨어들어 왔지만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믿음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죄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잘라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들과 동일한 과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행하는 여정을 떠났듯이 동일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듯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만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피하려 든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난 대적들은 영적으로 많은 교훈을 가져다줍니다. 그 대적들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데 있어서 만날 대적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대적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살펴봅시다.
모세의 대적들
모세 지휘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두 왕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첫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가기 위해 그 땅을 통과하기를 요청했을 때 오히려 대적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로 완전히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의 지경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자기 백성을 함께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를 치고 아르논에서부터 얍복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소유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이르니 이는 암몬 자손의 경계가 강하였음이더라.』(민 21:23,24)
세상 사람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그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전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이 과정은 겪지 않을 수 없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대적에 대하여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약해 있는 것은 이러한 싸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막고 있는 세상의 모든 대적들에 대하여 담대하게 싸워 이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바산왕 '옥'입니다.
그는 신장이 장대하여 침대의 크기만도 9규빗(약 4m)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60여 성 읍을 거느릴 정도로 매우 막강한 통치자였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도시를 빼앗았으니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도시가 하나도 없었더라. 그 도시들이 예순 개니 아르곱 온 지방 곧 바산에 있는 옥의 왕국에 속한 도시들이라...... 이는 거인들의 남은 자들 가운데 남아 있는 자가 오직 바산 왕 옥뿐이었음이라. 보라, 그의 침상은 쇠 침상이라. 그 침상이 암몬 자손의 랍바스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큐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구 큐빗이요, 넓이가 사 큐빗이니라.』(신 3:4, 1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대적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는 거대하며 막강한 힘으로 그 길을 막기 위해 서 있습니다. 사단은 누구보다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그는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압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대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거대한 대적과의 싸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친히 지휘하시고 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위의 두 싸움에서 보았듯이 모세의 싸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싸움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을 치루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길에 가로막는 대적들과 두렵게 하는 모든 것들을 능히 이겨내고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대적들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두 왕을 상대로 전쟁을 했지만 여호수아는 기록된 성 읍만 31개가 될 정도로 많은 대적들과 싸움을 치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되고 나서 치러야 할 싸움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라고 주장하는 많은 교회들의 실수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들을 보내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있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이후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구원받은 이후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많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각 각 정복한 성 읍의 숫자만큼이나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구원받기 전보다 더욱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 까닭은 구원받기 전에는 믿음을 얻기 위한 싸움이지만, 구원 후에는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의 대상은 그리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성격이 워낙 다양해서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간다면 결코 이 복잡한 싸움에서 우리가 넘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 모이기에 힘써야 하겠고,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심지어 직장, 학교, 사업 터 등지에서도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도록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대적들은 연합해서 다가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자를 든다면 욥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대에 의인이었습니다. 사단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조금씩 그를 시험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에 자녀, 종, 가축 등을 죽이고 심지어 아내까지 그의 곁을 저주하고 떠나게 만드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일들을 흔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자가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일들이 겹쳐서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 데 어떤 이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이는 결국 넘어져서 믿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닥치는 시험은 대체로 겹쳐서 즉 사단이 그 힘을 모아서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다가옵니다. 물론 반드시 이러한 경우를 만나지는 않지만 사단의 속성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자들은 이러한 공격이 다가 오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싸워 가는 성도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점령한 성을 나열한 12장의 내용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적 전쟁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성도라면 모세의 전쟁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받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구원받은 성도라면 여호수아의 전쟁을 통하여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부디 바라기는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는 일없이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여호수아 12:1-6
찬송 452장
모세는 그 땅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 절반에게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전 지역을 대부분 정복함으로써 그들이 소원하던 기업을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는 그러한 기업 분배 과정이 나와야 함이 적당하다.
그러나 본서 기자는 기업 분배에 관해 기록하기에 앞서 그간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땅에 대하여 다시금 간략히 언급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상기하며 또한 일찍이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에 대한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창15:18-21)
오늘 말씀은 그중에서도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땅의 경계와 그 땅을 통치하던 아모리인의 두 왕에 대해서 언급한다.(1-5절)
이러한 본문에는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사실도 언급되고 있다.(6절)
그런데 사실 요단 동편 가나안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어디까지나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하지 아니하고 그 지경을 가만히 통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 동편을 정복하게 된 것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그 땅의 통과를 거절하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민21:21-24, 신2:26-37)
그리하여 요단 동편의 두 왕을 진멸하고 그 땅을 정복한 모세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서편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동참한다는 조건하에 요단 동편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다.
한편 이러한 요단 동편 정복은 장차 이스라엘이 요단 서편을 정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요단 서편의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한 일을 듣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스라엘을 크게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도 전에 전의(戰意)를 상실했기 때문이다.(수2:24)
이러한 내용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 준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 가나안을 향해 순례 길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무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다. 즉 저들은 장차 하나님의 최후심판 날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으로, 아무리 강대한 세상 권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물방울처럼 사라질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아모리 족속의 두 왕도 자신들의 힘과 능력만을 믿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다가 결국 패망(敗亡)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그 분을 의지해야 함을 교훈한다.
6절)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요단 동편은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어디까지나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하지 아니하고 그 지경을 가만히 통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요단 동편을 정복하게 된 것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그 땅의 통과를 거절하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고 있던 땅은 비옥해서 목축에 적합했기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가축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모세에게 그 땅을 요구했고 하나님이 그 요구를 허락하심으로 이스라엘의 기업이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백성이 그대로 행해야 하고 하나님이 법을 정하시면 순종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의 요청에 따라 뜻을 돌이키거나 계획을 변경하기도 한다.
요단 동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그 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계획을 바꾸시면서 응답하기도 하신다.
우리가 소망하고 원하는 바를 아버지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뢸 때 기쁘게 이루어 주신다.
오늘도 주의 은혜 안에 거하며 크신 사랑을 누리며 감사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마침내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수 12:1-24
1~6절까지는 요단 동편에서 과거 모세가 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7~24절까지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여호수아가 정복한 31왕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 중 7~16절까지가 가나안 남부의 16왕이며
17~24절까지가 가나안 북부의 15왕이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수12:7~8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네겝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라)
오늘 여호수아기 12장의 결론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정복했다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Mission Completed 의 선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라는 사실 앞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 사항이 꼭 붙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대로’라는 전제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부터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어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그리고 다시 수백 년이 흘러 아무런 소망도 없이 애굽의 노예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라고 약속하셨다.
출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오늘 여호수아 12장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때부터 오늘의 여호수아 정복전쟁이 있기 까지 약 7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나님은 수백년이 지나도,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다.
아니, 영원토록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이다.
그러니 가나안 정복전쟁의 마무리를 선언하고 있는 본문 수12장은
사실은 창세기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언약이,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를 거쳐 여호수아 때에 마무리 된 것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기자회견인) 셈이다.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약속을 못 지킬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 인간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연약하고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것을,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셨다. 성취시키셨다.
그 언약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만큼 신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의 토대위에서,
앞으로도 견고하게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같으면 약속을 했어도, 상대방이 우리를 배신하거나
서로간의 신뢰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약속을 취소해 버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했는가?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반역과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자신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주셨다.
나의 구원, 우리의 구원도 그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주 예수는 여전히 그 언약을 이루신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구원의 언약은 더욱 완성을 향해 오늘도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셨듯이
우리가 마침내 천국의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이다.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오늘날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계심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란다.
이렇게 내 미래 운명을 책임져 주시는 주님이 계심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불안해서 드는 갖가지 보험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도 확실한 보장이다.
그런데도 정작 사람들은, 보험이 약속하는 '보장'은 안심하는데,
하나님의 '보장'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내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1:6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우리가 여호수아기를 공부하면서 지속적으로 배운 말씀은
‘이 전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사역, 직업적 소명, 우리 가정의 미래..
그 모든 것들도 다 마찬가지다. 여호수아서 12장 말씀대로 결론이 날 것이다.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지만, 내가 내 손과 열심으로 이루기 이전에,
하나님의 작정대로, 하나님의 열심이.. 여호수아가 (=예수님이) 대장되어
그 사역, 그 소명,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가실 것이다. 결국은 약속하신 땅으로!
그 길을 훼방하고, 막아서고,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들은, 결국 무너지고 실패하고 말 것이다!
▲2. 오늘 본문에 보면 요단 서쪽에서 2명의 왕을,
요단 동쪽에서는 31명의 왕을 상대로 승리했다라고 나와 있다.
물론 이들이 오늘날과 같이 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아니었지만,
이 많은 왕들을 상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했다는 것은
대장이신 여호수아(히브리어 예수아는 헬라어로 예수)를 따라간 결과였다.
본문 수12장의 죽은 2+31왕의 명단을 보면서 (요단 동편 2왕)
우리 각자도 한 번 '살생부(?)'를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내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내가 변화받은 이후에
내가 정복한 나의 죄성은 무엇인가?
또는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싸워서, 이긴 나의 난공불락을 여리고 성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건너지 못했으나, 언약의 말씀을 앞세워 건넜던 나의 '요단강'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발로 밟아서 승리한 영역은 어디인가?
내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가?
혹시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가 나에 대한 살생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귀가 어떤 죄로 나를 유혹했더니, 내가 거기에 넘어가 버린 것,
마귀가 어떤 죄로 나를 공격했더니, 내가 그 전투에서 패한 것..
이런 정확하고도 분명한 명단이 작성될 때,
나의 영적 전쟁은 더욱 구체적이 되고,
더욱 승리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내가 공격해야 될 지점은 어디이며,
내가 철저히 방어해야 될 지점은 무엇인지.. 명단으로, 지도로 명백하게 나오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다섯 왕들의 목을 밟았듯이,
내가 정복해야 할 다섯 가지 죄성의 목을 밟을 수 있는(급소를 누를 수 있는)
그런 승리하는 여호수아가 되어야 하겠다.
나를 대적하러 나아오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대적들, 마귀들, 나의 육신과 죄성들을
다섯 왕이라도 내가 정복하고, 그 목을 밟고, 명단을 작성할 수 있게 되기를 금년에는 바란다..
▲3. 시대마다 적합한 지도자를 세우신다
6절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를 설명하면서 언제나 모세가 함께 등장한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평가할 때, 모세의 리더십을 빼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의 패키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을 정리하면서, 요단 동편에서의 승리도 기록한다.
이는 여호수아 이전의 리더십인 모세도
가나안 정복을 함께 한 인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는 요단을 건너기 전까지 상징적이고 결정적인 전쟁을 승리한다.
이것은 하나의 전조 현상이 되어,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모세는 가나안 정복의 기초를 놓았고, 여호수아는 정복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기자는 가나안 정복을 단순히 여호수아 만의 승리로만 기록하고 있지 않고,
모세와의 합작품임을 드러내고 있다. 본문 6절에서.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D-day, 여호수아는 V-day를 상징한다.
D-day는 2차대전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한 날이요,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날)
V-day,는 베를린 함락의 날이다. (최후 승리의 날)
오늘날 우리는, 마치 모세-여호수아의 지도력 승계와 같이
과거 1970~80년대의 한국교회 부흥의 모델들이 천국으로 떠나시고, 모세 시대
새로운 리더십으로 자연적인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거의 끝마치고 있다. 여호수아 시대
(아니 더 빠르게 보면, 여호수아 이후, 사사기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시대에 맞는, 그 시대에 적합한 지도자를 세우신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고,
일례로 모든 법을 제정하고,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 닦는 일에 있어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것 외에도, 애굽 왕궁에서 교육을 받은 모세가 적임자였다.
가나안 정복시기에는 정말 강직한 군인처럼 '단호한 여호수아'가 적임자였다.
수24 :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2차대전을 뚝심으로 승리로 이끈 주역이지만,
유럽 전선 종전 직후 열린 영국 총선에서 뜻밖에도 처칠은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게 패배하고 만다. 영국 국민들은 그를 저버렸던 것이다.
그때가 1945년 7월이었는데, 한창 열리고 있던 포츠담 회담에서 그는 중도 귀국당해야 했다.
이때 영국 국민들의 표심이나 선택은, 처칠 수상은 '전시용 war-time 수상'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되었으니, 평화의 시기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던 것이다.
(1940년 5월 10일 ~ 1945년 7월 26일)
그러다가 동서냉전이 시작되자, 보수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총리에 재임명되었다.
(1951년 10월 26일 ~ 1955년 4월 7일)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모세는 모세 나름대로의 특징과 역할과 고유의 리더십이 있었고,
여호수아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지도자를 세우신다.
여호수아 시대의 끝자락에서 사사기 시대로 넘어가는 듯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오늘날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적 지도자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성경에서 누구랑 가장 닮아 있을까?
※관련글 : 하나님은 시대마다 적합한 대통령을 세우셨다
◑수12장 구절별 해석 -출처-
※성경은 "개역"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ㅇ요단 저편 해 돋는 편 -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이란 곧 요단 동편 땅을 가리킨다.
요단 강을 건너기 전 일찍이 모세가 점령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한 땅이다.
1~6절까지는 요단 동편 땅에서 과거 모세가 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ㅇ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 -
'아르논'(Arnon, '급류', '물살이 빠른 시내'란 뜻)은 오늘날에는 바닥이 말라붙은 골짜기이지만,
구약 시대에는 북아라비아의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서쪽으로 약 32km의 물줄기를 형성하여
엔게디 맞은 편에 위치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었다.
한편 '헤르몬 산'(Mt. Hermon)은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신3:9; 대상 5:23; 겔 25:5)이라고 불렸으며,
아모리 왕국의 북쪽 경계선(신 3:8; 4:48)을 이루었다.
따라서 이 산은 북부 아모리 왕국의 바산 왕옥의 영토 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2:5; 13:1).
이 산은 여호수아에게 의해 정복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수 11:17; 12:1; 13:5)으로 묘사되었으며, 가나안 땅 분배 후에는 므낫세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했다<신 3:8 주석 참조>.
'동방 온 아라바'는 요단 동편의 남쪽 한계선인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한계선인 헤르몬까지 이르는 요단 계곡의 동편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여기서 '아라바'(Arabah)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계곡을 가리킨다.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강까지며
헤스본은 요단 강 동쪽 약 2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다.
민수기 21:25-30에 따르면, 헤스본은 본래 모압 땅이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은 이 성읍을 모압인들로 부터 빼앗아 그의 수도로 삼았다.
그 이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에 시혼에게서 이 성읍을 탈취하였다.
탈취 후 땅을 분배할 때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 내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었다(민 32:37).
그런데 갓 자손은 가나안 정복 후에 이 성읍을 재건하였다(민 32:37).
그후 갓 지파가 이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스본은 갓의 성읍으로 있다가,
후일 므라리 자손의 레위인들에게 할당되었다(21:39; 대상 6:81; 민21:26 주석참조).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족장 시대 훨씬 이전부터 요단 강 동편과 서편에 정착해 살던
가나안 원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이 작정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다.
시혼은 모세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왕(민 21:21-30)으로,
모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가를 얻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허가를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다가
참패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시혼을 격파한 후 이스라엘은 그의 땅을 최초의 정복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었고, 북쪽 경계는 얍복이었다(민 21:24).
그리고 시혼의 영토 내에는 많은 촌락과 성읍이 있었다(민 21:25).
결국 시혼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 일부가 정착한
요단 건너편(Trans Jordan)의 일부가 되었다.
ㅇ얍복 강 - 요단 동편에 위치한 약 96km길이의 이 강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로 유명하다(창 32:24).
강 북쪽의 만곡선 부분은 당시 암몬 자손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으며(민 21:24),
그 유역 서쪽으로 멀리는 갓 지파가 정착했다. 그리고 강의 서쪽 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둘로 구분시키는 천연적인 정치적 경계가 되었고(신 3:12, 16),
한편으로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인 시혼 왕국과 옥 왕국을 구분지어 주는 강이기도 했다.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ㅇ긴네롯 바다 - '갈릴리' 바다의 별칭으로 '긴네렛' 바다(신 3:17)로도 불리운다.
대략 남북이 22km, 동서가 14km 정도 되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다.
상세한 내용은 13:24-28 강해, '갈릴리 바다'를 참조하라.
ㅇ염해 - '사해(死海)'의 별칭으로 본래는 싯딤 골짜기였다(창 14:3). '아라바해'라고도 불리운다.
신 3:17 주석 참조.
ㅇ비스가 산록 - '비스가'(Pisgah)란 명칭은 '비스가 산꼭대기'(민 21:20; 23:14; 신3:27; 34:1),
'비스가 산록'(신 3:17; 4:49) 등의 결합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산록'(山麓)이란 산의 구릉(丘陵)이 시작되는 산기슭을 뜻한다.
그리고 비스가 산정(山頂)에서는 모압 평지가 내려다 보이며, 서쪽으로는 사해도 보인다(신 3:17; 4:49).
후에 비스가 산록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중 일부가 되었다(13:15-20).
한편 하나님께서는 말년의 모세에게 이 비스가 산에 올라 멀리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신 3:27).
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ㅇ르바 - '크다', '강하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곧 거인 족속인 '르바임 족속'을 가리킨다(창 14:5; 15:20; 신 3:11; 삼하 21:16, 18). 신 2:11 주석 참조.
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ㅇ그술 사람 -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 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가 족속의 땅과함께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배당된 땅의 일부이다(신 3:14).
이 그술의 경계 지역은 본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술 족속(the Geshurites)이란 말은 13:11,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다윗과 그술왕 달매의 딸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ㅇ길르앗 - 요단 동편의 산지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또 넓게는 요단 강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나(22:9 이하),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한다(왕하 10:33). 신 2:36 주석 참조.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모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그 분배하게 된 관정과 분배 지역은 민 32장에 잘 나타나 있다.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ㅇ요단 이편 - 여기서 요단 이편 지역은 요단 강 서편, 곧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민32:19).
한편 본장 7~24절까지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정복한
31왕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ㅇ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 이는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정복한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키는데, 이미 11:17에 언급된 표현이다.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 서는 북부 바알갓이 먼저 언급되고
남부 할락 산이 나중에 언급되었는데, 11:17에서는 북부 바알갓이 나중에 언급되고
남부 할락 산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11:17 주석을 참조하라.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ㅇ산지와 평지와 아라비아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이 표현은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을 대략 지형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10:40및 11:16에도 언급되어 있다(10:40 주석 참조).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는 '광야'란 말이 더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광야'는 남부의 '네게브'(Negeb)라기 보다는
아라바 지역과 네게브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유대 광야' 지역을 가리킨다.
ㅇ헷 사람과...여부스 사람 -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의 명칭들이 열거되고 있다.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