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속
유월이 가는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었다. 철이 철인만큼 우리 지역 걸쳐진 장마전선으로 연일 흐리고 비가 내린다. 그동안 무덥기도 하고 가물었는데 때맞추어 비가 와주어 고맙다. 내가 학교에서 소일거리로 가꾸는 봉숭아가 물이 모자라 야위어 시들고 있었는데 비를 맞아 싱그럽게 생기를 띠었다. 머지않아 학교 뒤뜰 봉숭아꽃밭에 알록달록한 꽃이 피면 한동안 세상이 환할 것이다.
주중은 근무지 발이 묶여 장마철이긴 해도 주말이 기다려졌다. 어디로 정해둔 행선지가 없어도 강우 상황을 봐 가며 산행을 감행할 셈이었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베란다 밖을 살피니 하늘은 흐렸지만 웃비는 내리질 않았다. 점심도시락은 마련하지 않고 배낭에 얼음 생수만 챙겨 넣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대학과 도청 앞을 지나 대방동으로 갔다.
대암고등학교 부근에서 내려 등산로 길목으로 들었다. 하늘에선 참았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 배낭에 넣어간 우산을 꺼내 펼쳐 썼다. 대암산으로 향하지 않고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으로 드는 임도를 걸었다. 이른 새벽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새벽엔 비가 오질 않아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나섰던 사람은 가볍게 내리는 비를 그냥 맞고 걸었다.
용제봉 임도엔 주말이면 산행객이 더러 보였는데 장마철이라 인적은 뜸한 편이었다. 장마철엔 습도가 높고 날씨가 무더워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는데 기온은 그리 높지 않아 땀은 흐르지 않았다. 전형적인 여름 장마철 날씨였다. 농바위를 지나 쉼터 의자에 앉아 얼음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저만치 숲이 끝난 지점 창원터널로 드나드는 차량들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상점령으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용제봉을 향해 올랐다. 계곡에선 그간 내린 장맛비로 물이 제법 불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킨 계곡물은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바위에 부딪친 물소리만 들어도 더위는 잊을 만했다. 용제봉 일대는 창원 근교에서 여름철이면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곡 가운데 하나다. 용제봉 계곡 말고는 도청에서 가까운 용추계곡과 북면 천주산 뒤 달천계곡이 있다.
계곡에 걸쳐진 데크교량을 지나니 누군가 염원을 담은 돌탑이 두 기 세워져 있었다. 작은 돌멩이로 모양을 내어 공 들여 층층이 쌓아 올린 탑이었다. 너럭바위엔 하얀 거품을 부서지는 계곡물이 흘렀다. 계곡으로 내려가 맑은 물에 손을 담갔더니 시원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사시 등산로로 올라 낙엽활엽수가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장맛비는 끊이지 않고 차분하게 계속 내렸다.
비가 오는 속에도 우산을 받쳐 쓴 채 숲길을 걸었다. 용제봉 오르는 산기슭에서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었다. 오래 전 산자락을 넘어가는 송전탑을 세우면서 중장비가 지나간 길인 듯했다. 숲속을 지나는 임도는 아주 길고 길었다. 한참을 걸었더니 상점령 가까운 곳과 만났다. 고개를 넘어 대청계곡으로도 내려갈 수 있었으나 무리를 하지 않고 되돌아왔다.
비탈길을 걸어내려 아까 상점령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진 곳으로 갔다. 숲속에서는 등산객을 아무도 볼 수 없었는데 바깥으로 나오니 우산을 받쳐 쓴 산행객이 간간이 보였다. 비가 내리는 주말 여가를 실내서 보내지 않고 야외활동으로 보내려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성주동 아파트단지로 나왔다. 빗속 아침나절 숲속에서 보낸 시간이 제법 되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집 근처 반송시장으로 갔다. 아직 점심때가 한참 일렀다. 내가 가끔 들리는 시골밥상으로 갔다. 주인아주머니는 나중 때가 되면 찾아올 손님들에게 낼 점심밥을 가득 지어 공기에 담고 있었다. 주인은 내가 밥이 아닌 곡차를 들고 갈 손님임을 처음부터 알았다. 생탁을 한 병 시켰더니 두부전과 계란프라이가 따라 나왔다. 골목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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