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월. 사도행전 21:17-36
문들이 닫히더라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일행을 예루살렘 교인들이 기
쁘게 영접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만나 그간의
사역들을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떤 사람
들은 '바울은 은혜에 의한 구원을, 야고보는 행위에 의
한 구원을 가르쳤다'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오직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린 같은 믿음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입니
다. 나는 믿음의 다양한 형태를 포용하는 사람입니까?
혹 같은 믿음을 품은 지체들임에도 방식이 다르다는 이
유로 배척하지 않습니까?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이 겪을 위험을 예견합니다. 율법에 열성을 품은
유대인들이 할례와 율법보다 복음을 강조한 바울에 대
해 강한 반감을 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는 바울에게 나실인으로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성결
예식을 치르기를 제안하면서,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반
감을 없애려고 합니다. 바울에게는 율법의 행위가 구원
의 조건이 아니라는 신념이 있었지만, 복음을 훼손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복음의 진전을 위해서 야고보의 제
안을 받아들입니다. 복음의 사람은 신념을 지키는 일과
고집을 부리는 일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신념을 지키되
유연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7일간의 성결 예식을 마
치기 위하여 성전에 들른 바울을 발견합니다. 바울이 일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있던 모습을 떠올리
고는, 이방인을 이방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전의 안뜰까
지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오해하고 몰아세웁니다. 기울
어진 시각은 사실마저 왜곡합니다. 사정과 사연을 헤아
리기보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기에 급급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예상치 못하게 천부장이 나타
나 바울을 돕습니다. 동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온 바울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
다. 복음을 위하는 삶에는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은혜도 항상 따릅니다.
오늘의 기도 / 내 사고의 벽을 넘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를 간절히 사모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