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특별함이 아닌 일상이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출근 하듯 그렇게 나는 여행을 다니고 있다. 최근에 직장생활에서 휴일없는 근무로 인하여 따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어 짜투리 시간을 쪼개어서 근교여행을 다니고 있다.
여행은 꼭 먼 곳이 아니라도 또 거창하지 않더라도 집 앞을 나서면서 여행은 시작된다고 본다.
나는 가끔 이렇게 집앞에서 시작되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글을 쓰곤한다.
하지만 이번여행은 특별한 여행이 되었다.
운영하고 있는 도린결여행에서 벙개로 가을 단풍을 보기위해 38년만에 개방된 가야산으로 가려고 계획하였으나 주말 야간 근무로 인하여 사람이 많이 몰려서 제때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염려로 포기하게 되고 조합장(지너비님)함께 둘만의 여행을 계획하기로 하였다.
막상 둘만의 여행을 하려니 어디갈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조합장의 고향인 우포늪과 나의 고향인 울진 오지마을 왕피리중 하나를 가기로 했다.
우포늪에는 이미 세번이나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늪 전체를 일주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오히려 봄에 다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되어 울진 오지여행을 하기로 했다.
울진 오지여행도 지난해 겨울에 가족여행으로 한번 다녀왔었는데 평해에서 구주령을 넘어 영양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왕피천으로 내려섰지만 이번에는 아예 비포장 임도를 들어서기로 했었던 것이다.
울진은 내 고향이기도 하며 '등허리 긁어서 닿지 않은 곳'이 울진이라 하였으니 참 오지중의 오지가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울진 삼척지구의 공비로 인해서 유명세를 타더니 요즘은 오지 여행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깨끗한 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국내 몇 안되는 순수 생태환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울진이다.
고향이 울진이라 하지만 사실 불영계곡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변과 고향집은 상당히 먼곳에 위치하고 있다. 국민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이곳을 왔었던 것이 처음으로 왕피천을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36번 국도를 따라 단풍은 요즘 절정이다. 수회에 걸쳐 가을이면 이곳을 지나면서 단풍 구경을 하였지만 설악산을 찾은 사람이 또 찾아 가듯 난 이곳 단풍을 좋아한다.
이번 가을 단풍 여행지로 이렇게 울진오지 여행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
조합장과 오랜만의 둘만의 여행이라니...
모처럼 기회가 생겼으니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다.
며칠전부터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를 스크랩하고 다음 위성지도를 만들었다.
위성지도는 화면을 스크린 복사하여 프린트하여 붙여넣기 하는 식으로 만들고 보니 A4용지 16장이나 되는 대형지도가 만들어 진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여행할 날만 기다렸다.
11월 6일 토요일
조합장과 둘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부부동반 계획이였으나 조합장 사모님의 갑작스런 몸살로 인하여 두집 아낙네는 집을 보게 된다.
아침 7시 조합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날 호프 벙개로 인해서 아직 술이 덜깬 목소리로 겨우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이동 채선당 앞에서 만났다.
나 역시 과음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인데 오늘도 음주여행이 시작된다.
이상하리 만큼 여행전날은 꼭 과음을 하게 된다. 며칠간 술을 끊겠다고 굳게 맹세를 하곤하지만 늘 작심삼일로 끝나고 만다.
믿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나의 애마에 깨운다.
이번 여행에는 오래된 애마가 수고하기로 한다.
오지여행으로 비포장을 달려야 하기에 4륜 구동은 아니더라도 4륜 이상의 재능(?)을 갖춘 승용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비록 승용차이지만 조합장이 탱크라고 부를 만큼 천지갑산 아래 대사계곡을 운전석에 물이 찰 정도로 깊은 자갈계곡을 도강할 정도로 이미 산전수전 다 경험한 놈이다.
지난해에 차를 바꾸면서 폐차를 하려고 했지만 옆지기가 운전연습용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냥 출퇴근 용으로 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 또 한번의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았다.
옆지기는 아직도 운전을 안한다. 그래서 난 두대의 애마를 하나는 출퇴근 용으로 그리고 하나는 쉬는날 나들이로 사용하고 있는데 지난번 새 애마인 그랜져를 끌고 비포장도로를 갔다가 차가 빠지는 바람에 지나가는 코란도에 메달려 겨우 끄집어 내어서 온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번에는 아예 구형 애마를 선택했다.
7번국도를 지나니 가을 하늘이 너무도 청명하게 아름답다.
과음탓에 머리는 무겁고 속은 더부룩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즐거움이 있다.
도린결 여행때는 늘 구름 잔뜩낀 하늘에 한두방울의 빗줄기가 사람 마음 심란하게 하더니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여행다닐때는 늘 화창한 날씨 인걸 보면 여행 날씨가 내탓만은 아닌것 같기도 한데...
4차선으로 새로 개통된 7번국도는 망양휴게소 부근에서 잠시 2차선으로 옛 도로로 내려선다.
7번 국도중 유일하게 아직도 2차선인 구간이다. 20년 동안 공사가 진행형인 곳은 아마 여기가 유일한 곳이 아닐까.
망양휴게소에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한다.
쪽빛바다라고 했던가? 이렇게 깨끗한 바다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바다에 부딪혀 눈부신 은결이 만들어 지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 황홀한 입맞춤을 하는 수평선에는 갑자기 꺼낸 카메라 셔트를 누를 겨를도 없이 갈매기 한마리 날아간다.
휴게소를 떠나 다시 북쪽으로 달리다가 4차선이 합류지점인 덕신에서 조합장에게 망양정을 보았냐고 물으니 못 보았다고 한다.
방향을 해안으로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망양해안도로는 촛대바위가 제일먼저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해안도로 중간에는 작은 마을 포구에 묶여있는 어선들이 갈매기의 놀이터가 되고 지금은 빈 줄만 늘어져 있는 오징어 말리는 장대는 또 하나의 덤으로 보는 볼거리이다.
울진이 고향이지만 나 역시 지난해 가을에 이곳을 처음 와 보았었다.
언젠가는 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도보여행을 하게되면 아마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더 많이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망양정에 도착했다.
먼저 망양정자에 가는길에는 해맞이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2007년에 만들어진 울진대종이 있다.
울진대종은 강구 삼사공원에 있는 경북대종을 연상하면된다.
망양정(望洋亭).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다. 이름에서 말해주듯 정자에 올라서면 푸른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보이고 망양해수욕장이 발아래 보인다.
그리고 북쪽으로 울진 친환경 엑스포 공원 아래 왕피천 계곡물과 동해바다가 하나가 되있는 모습을 보게되며 이곳에서 바다바람을 타고 날라오는 솔향에 잠시 머리도 식혀보고 옛 시인들의 시 한구절 읊어보면 좋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럴만한 여유 시간을 갖지 못한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은 원래 망양리 해안가(울진대게 조형물이 있는곳)에 있던것을 1860년 현자리로 이전하였고 당시의 주춧돌을 정자 앞에 갖다 놓았다.
망양정을 내려서서 옛 7번국도가 다시 합해지는 수산대교를 건너면서 좌회전하면 불영사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로 접어든다.
36번 국도는 울진에서 봉화간 국도로서 전두환시절 군의 공병대를 동원해서 만든 도로이다.
난 공사 구간이 많아 많은 젊은 군인들이 공사중 사망하여 국도를 지나다 보면 위령탑이 서 있으며 불영계곡을 따라 단풍이 절경으로 유명하다.
불영계곡은 총 15Km정도로서 설악산의 주전계곡과 전줄만큼 화려하다.
천년고찰 불영사를 휘감아도는 웅장하면서도 명경지수(明鏡之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맑고 깨끗한 계곡에 빨갛고 노랗게 천연색을 드리운 오색의 단풍들이 내려 앉아 바쁜 걸음을 자꾸만 붙잡는다.
오늘 계획은 오지여행으로 시간이 얼마 걸릴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지체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에도 이제는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는지 나 역시 전혀 조급함이 없어져 버렸다.
'에라~ 늦으면 어때 나머지는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몇번이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계곡에 반영된 단풍을 담고 비탈길의 쏟아져 내릴듯한 단풍들도 연신 카메라에 쓸어 담으면서 사랑바위에 도착했다.
사랑바위는 절벽아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전망대 앞의 안내판에 소개된 글을 보면 '옛날 고아가 된 오누이가 약초를 캐면서 연명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오빠에게 불영계곡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촐르 구해오면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말하였다.
오빠는 불영계곡에 가서 삼지구엽초를 발견하고 채취하려 하였으나 실수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에 누이동생은 사흘 밤낮을 울며 통곡하다 벼랑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그 후 계곡에 울려 퍼지는 누이동생의 통곡소리가 하늘에 닿아 두 오누이르 바위로 변하게 하여 평생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니 오누이의 사랑이였다. 연인들 사랑 전설 보다는 오히려 애뜻함이 배어나온다.
사랑바위를 뒤로 하고 삼근리에 도착했다.
푸르디 푸른 하늘 끝 자라락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을 배경으로 붉은 감홍시가 더욱 붉게 자리하고 있고 은행나무 도로가장자리에는 열매가 어찌나 많이 떨어져 있던지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하나를 발로 밟아 뭉게 보았더니 냄새가 고약하다.
지난번 팔공산 3코스때는 같은 장난으로 핀찬을 들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의 호기심은 가끔 나 스스로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삼근우체국 맞은편으로 왕피리의 이정표가 보이는 작은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만나는 울진 왕피천 생태 환경탐방로 안내도와 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여러곳에 초소가 있다.
여름이면 계곡 방문목적이나 인적사항을 기록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나와 보질 않는다.
이제 포장된 시멘트 도로를 따라 금강송이 우거진 길을 굽이 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조금씩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들어온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했던가?
이곳은 만산황엽(滿山黃葉)이다. 붉은 빛보다 더 고운 노랗게 물든 낙엽. 지금껏 보았던 또 다른 빛깔의 단풍구경을 하게된다.
설악산의 단풍이 이처럼 아름다웠던가. 내장산의 단풍이 이처럼 고왔던가?
서다 가다를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쭉쭉 뻗은 금강송과 어우러진 노란 단풍을 담으며 우리는 가을속에 퐁당 빠져 들고 있었다.
자연과 동화된다는 말이 이처럼 실감하는 날은 또 일찌기 없었을 것이다.
내리쬐는 햇살을 마주 받으며 부끄러운 속살을 보이듯 투명한 단풍잎을 그리도 뚫어지라 바라보며 연신 카메라에 담고 있으려니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한다.
정말 조용한곳. 아무도 토요일 주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곳에서 우리는 단풍구경을 하면서 가을을 만끽하면서 가야산 만물상을 가지 않은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 자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시간 단풍으로 유명한 몇몇의 산들은 단풍보다는 사람에 치여서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없겠지만 이곳 만큼은 한적한 숲속에서 우리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누린다.
천천히 운전을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어 동영상도 찍고 옆에서는 연신 셔트소리가 요란하다.
오지중의 오지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적할 수 는 없었다.
어쩌다 한두대의 차량을 만났지만 다행히도 잠시 도로 가장자리로 피 할 수 있어 통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지난해 다녀온 십이령길에 시멘트 포장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산복도로를 차량을 이용해서 오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산길을 오르면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먼리 삼근이 쪽으로 눈길을 한번주고 반대편 능선의 단풍을 보니 다시한번 아름다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한참을 오르니 박달재에 도착했다.
과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왕피리로 들어가면서 통곡을 하면서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통고산 자락의 험난한 구비다.
왕피리와 공민왕의 전설은 뒤 왕피리에서 소개 하기로 하고 이곳 박달재는 충청도의 제천에서 충주가는 길의 금봉이의 전설이 있는 그 곳과 이름은 같아도 험난한 구비를 따진다면 많은 차이가 있다.
몇년전에 충청도의 박달재를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이 곳에 비하면 그 곳은 작은 언덕고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설을 따라서 충청도 박달재에는 여러가지 조형물이 있어 볼거리는 많았지만 이곳은 까마득한 골짜기를 발아래 두고 가도가도 인적이 없는 구빗길과 벼랑길 그리고 울창한 원시림을 발아래 두고 끝없이 가쁜숨을 헐떡이며 넘어서야 할 어쩌면 통곡할 겨를도 없는 곳이다.
박달재에 도착하니 또 하나의 초소가 있고 사람들이 있지만 역시 아무런 제재가 없다.
박달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까 생각했지만 시간도 그러하거니와 오지마을이 궁금해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이 곧장 내려선다.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고갯길을 역시 구불구불 내려선다.
발아래 내려다 풍경은 울긋불긋한 단풍 뿐만이 아니라 쭉쭉 뻣은 미인송이라 불리는 금강송이 그림으로 가득메우고 있다.
이곳으로 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소광리 금강숲이 있다.
금강소나무는 명품소나무로 지난번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의 목재로 쓰일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울진 전역에 걸쳐 산재해있음을 알 수 있다.
박달재에서 다시 한참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온다.
작은 조립식으로 된 허름한 구조물앞에 산불 감시원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아저씨에게 왕피리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니 좌측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잠시 착각을 했다. 이정표에는 우측으로 동수골이 그리고 좌측으로 부원농장 가는 길이다. 가져간 지도를 보면서 우리는 좌측으로 가야 계획된 여정인줄 알고 우측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처음 계획부터 동수골은 계획에 없던 곳이였다. 하지만 정말 오지다운 오지 여행은 길을 잘 못 들면서 시작되었고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우측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 들어가니 이내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빨간 우체통이 산행길 초입의 소나무에 걸려 있어 신비감을 더해주고 아마도 우체부도 더 이상은 갈 수 없었나 보다.
때로는 물 웅덩이로 깊게 패이고 또는 가파른 절벽으로 떨어지면 몇바퀴는 굴러질 듯한 낭떠러지를 나의 애마는 즐거운 비명(?) 소리와 함께 리듬을 타면서 잘도 간다.
가끔씩 들려오는 쇳소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나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오늘 이곳에서 애마의 무덤이 된다는 각오로 왔으니 전혀 두려움은 없었다.
언젠가 비포장 돌에 찍혀서 마후라가 빵구나는 아픔도 경험한적이 있었지만 그나마 자갈길이 아니라 다행이다.
마주오는 차량이라도 있으면 한참을 후진해야하는 낭패가 아닐 수 없는 일이지만 토요일 주말임에도 아무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없는 정말 오지중의 오지였다.
그래서 왕피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수골은 그냥 지나치고 곧장 길을 따라 왕피천변의 왕피리만 찾고 있다고 한다.
가운데는 깊게 패인 흙길에 애마의 밑이 닿고 한쪽은 산비탈에 만장절벽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어렵사리 들어서니 발아래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수골이다. 오지마을이 흔히 그렇듯 제각각 불리우는 예쁜 이름들이 있다. 이곳에도 속사,임광터, 뱀밭, 햇내, 거리굿, 시리돌, 동수골....
마을이라고는 서너집이 전부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동수곡 분교였다.
분교는 69년도 개교후 92년까지 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하니 평균 한해에 너 댓명의 졸업생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깊고 깊은 산골에 한해에 한 학년에 서너명씩 학생이 있었다면 제법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분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RV차량이 두어대 서 있는데 사람이 있을것 같지만 사람들은 보이질 않고 건물은 보암광산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준비한 지도를 아무리 펴 보아도 우리가 목적한 곳인지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위성지도에 표시한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지금껏 이곳이 왕피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진짜 왕피리에 가서야 감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수골의 잠재터로 동수곡 분교에서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했다.
마을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주민을 만나 한농복구회 가는 길을 물으니 지금은 모두 철수하고 빈 건물만 있을꺼라 일러주며 우리 차를 보더니 못 미더운듯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사실 내심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가에서 본 RV차량에 와이어가 준비 되어 있고 경운기가 있는것을 보았으니 무슨일이 생기면 저놈들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계곡길을 따라 내려간다.
다시 두갈래길이 나오는데 하나는 계곡으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고 우측으로 비스듬히 임도길이 나타난다.
나중에 분교에서 만난 광산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으로 곧장가면 봉화로 이어지는 임도로서 평소에는 차량 통제차단막이 있어 갈 수없는데 지금은 개방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승용차로서는 무리라고 한다.
계곡길을 내려가야 한농복구회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승용차로는 진입이 불가하다.
아무리 강심장이고 모험을 즐겨한다고 하나 이건 아니다 싶어 포기하고 말았다.
경사도가 45도 쯤으로 보이는 것이 오래전 억새풀로 유명한 오리온 목장을 찾아 가면서 비슷한 길을 들어 섰다가 혼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오리온 목장(무장산)은 경주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면서 많이 좋아 졌지만 예전에는 그 곳에도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몇몇 안되는 오지라 할 수있었다.
우측으로 임도길을 따라 들어서니 길 옆으로 풀이 우거져서 열어둔 창문으로 풀잎이며 낙엽이 들어오고 문짝에는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 차 밑에서는 돌맹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금은 가슴아프게 한다.
출퇴근 용으로만 사용하다 조용히 보내고 싶었는데 또 다시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 바가지로 하는 나의 애마가 불쌍하다.
한참을 임도를 오르다 더 이상의 마을 흔적은 없고 진입해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선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한농복구회의 흔적을 찾아 들어가 본다.
한농마을은 10여개의 부락들이 있으며 동수골도 그 중의 하나 이다.
마치 포스코의 롬멜하우스 처럼 조립식으로 되어 있는 건물은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옛 흔적들만이 남아 있는데 가구며 냉장고 장독등이 한때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줄 뿐이며 꼭 귀신이 나올듯한 엄습함이 묻어난다.
다시 언덕길을 올라서는데 몇번씩 헛바퀴를 돌리면서 겨우 올라서니 타이어 탄내가 난다.
어렵사리 동수국 분교에 다시 도착해서 사람을 찾아 봐도 인기척이 없고 외딴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쫓아갔다.
할아버지는 밭일을 할머니는 대추를 선별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도 보인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로 부터 동수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주머니는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이곳이 고향이며 할머니와는 모녀지간이라 한다.
어릴적 동수곡 분교를 다녔고 몇십리 산길을 걸어서 삼근에서 중학교를 다녔다고하는데
동수골 바로 뒤는 통고산으로 냇물이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하여 동수골이라 불리우며 잠재터는 원래 광산이 있던 자리로 주석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 폐광 이후엔 주민이 다 빠져 나가버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하는데 지금은 환경을 위해 한농복구회를 모두 철수 시키고 남은 몇가구 만이 살 고 있다고 한다.
왕피천의 마지막 마을인 이곳은 전쟁이 나도 모를 정도의 오지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전기도 들어오고 휴대폰도 겨우 어렵사리 터지고 있었다.
이곳 농사라야 밭농사가 전부지만 대추 농사를 많이 하는지 마당에 전부 대추를 말리고 있어 한되에 만원에 구입했다.
토종이라 그런지 대추맛이 여느 대추와는 달리 아주 달큰한것 같았다.
할머니와 작별을 고하고 분교에 도착하니 그 사이 조합장이 사람을 만나고 있었는데 분교에 있던 광산업체 책임자였는지 라면 끓여 먹을 곳을 찾은다 하니 이곳에서 끓여 먹으라며 우리를 건물 안으로 안내한다.
아저씨를 따라 건물 뒷편으로 가니 분교를 개조해 주방으로 꾸며 놓았는데 제법 살림살이 들이 갖추어져 있다.
아저씨는 아주 친절하셨는데 직접 가스렌지에 불을 붙여주고 냄비에 물을 받아 준비해가 라면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점심을 먹은후 옆방 사무실에 들러 손수 커피 포터에 물도 끓여서 커피까지 대접해주니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없었는데 아저씨의 고향은 충북 제천으로 이곳에는 광산일로 왔다고 한다.
광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이곳에는 리듐광산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리듐은 함유량이 2%라 되는 품질 좋은 광물이 생산되고 있으며 일제시대때 일본놈들이 생산하던 것을 최근에 다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많이 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광물을 매일 반출하고 있어 울진까지 다니면서 시장을 보고 있어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다만, 겨울에는 눈이 내래면 산 비탈길에 눈이 쌓여서 길을 알 수 없어 며칠씩 꼼짝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시 아저씨랑 작별을 고하고 동수골을 빠져 나온다.
동수골을 나오면서 들어올때 보았던 보암광산을 찾았다.
광산입구에는 작업인부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광석을 캐고 있었는데 구경좀 해도 되냐고 물으니 굴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일하는데 방해는 안될까 염려하면서 굴안에 들어가니 친철하게 광석도 설명하고 굴 작업사항까지 세심하게 설명해준다.
아마도 분교에서 만났던 분이나 이곳 현장에서 만난분이나 모두들 사람이 귀한 탓일까 낯선사람에게도 아주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여행을 하면서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어쩌면 이번여행에서 가장 멋진 추억을 만들게 되는 것도 광산을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이방인들에 친절한 미소로 반겨주던 모습에서 여행에서 배우는 교훈이 바로 이런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광산을 빠져나와 다시 비포장 길을 달려나오는데 이제는 제법 운전이 여유롭다.
한번 지났던 길을 되돌아 오니 핸들을 잡은 손도 가볍게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동수골 이정표가 있던 입구까지 나왔다.
산불 감시원 아저씨는 일찌감치 퇴근했는지 보이질 않고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을 달리니 이번에는 왕피리 1리 2리로 나뉘어 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다시 지도를 펴 보지만 아직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이다.
위성지도를 갖고도 이리 헤메이고 있으니... 빨리 스마트 폰으로 괘적을 찾는 법을 배우던지 해야지 이래가지고 어딜 다니겠다고 혼자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착각을 하고 나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가끔씩 나는 한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는 옆에는 절대 안보일때가 있는데 아마 이번 여행에서 그 병이 도졌는지 오직 왕피리와 굴구지 마을을 착각하면서 더욱 헷갈리고 있었다.
삼거리에서 이정표 대신 만들어둔 지도를 보면서 먼저 왕피리 1리로 들어갔다.
왕피리는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피신을 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몇년전만 해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빈 마을이 되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한다.
생태농업을 실천하는 생활공동체 한농복구회 사람들이 이 곳으로 집단 이주를 시작하면서 왕피리는 대규모 마을로 변모했다고 한다.
삼근리에서 산복도로를 따라오는 길은 예전 같으면 정말 접근이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차량들이 있어 접근이 용이할 뿐 아니라 골짜기 깊은 곳임에도 제법 너른 터를 이루고 있어 곳곳에 여러개의 자연 부락이 있다.
다리를 건너 한농교육관이 있지만 우리는 계곡을 따라 난 시멘트 포장길을 계속가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투명한 물빛에 가을이 반영되고 암석들의 풍경이 더 없이 아름다운 곳을 따라 양지마을에 도착하니 계곡물이 많을때 이용한다는 곤도라를 만나면서 더 이상은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돌아서서 다시 한농교육관이 있는 꽃등마을로 향한다.
한농교육관을 앞으로 언덕길을 올라서면 '모두가 일가로 남이 없는 형제마을 거리고 마을' 이라는 나무와 돌에 새겨진 글이 보인다.
즉, 모두를 형제로 여기며 남이 없는 일가 마을을 이루어서 살아가는 인류의 꿈을 이룬 행복이 가슴마다 가득넘쳐는 마을 꿈꾸는 한농마을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한농마을에 대해선 언젠가 TV에서도 소개 된 적이 있었는데 이곳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몇군데 있으며 이들은 채식을 위주로 무공해 무농약의 식재료를 생산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도린결이라는 테마여행을 만들무렵 건천의 생식마을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이곳도 그곳이랑 비슬한 모양이다.
특정 종교 집단은 아니지만 종교 이상으로 같은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 어쩌면 또 하나의 소중한 것을 배울것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들을 보지 못한채 그냥 돌아 설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내년 여름 왕피천 트래킹때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다시 왕피2리로 넘어선다.
거야 고개를 넘어서면 왕피천을 가운데 두고 제법 느런 땅에 논과 밭을 일구며 마을이 형성되어 고갯마루에서 보니 눈에 익은 한폭의 그림이 보인다.
내가 왕피리를 와 보고 싶은 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인터넷에서 우리나라의 오지마을을 검색하던중 한장의 그림이 나로 하여금 왕피리를 찾고 싶게 만들었던 그림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연신 셔트를 눌러보지만 이미 산골속의 오후는 햇볓을 잃고 있었는지 마음에 드는 그림이 되질 않는다.
아쉽지만 그런데로 마무리를 하고 고갯마루를 내려서서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시골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
긴 장대를 들고 감나무 위에서 감을 따고 있는 아주머니와 나무아래 떨어진 감을 줍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적 생각이 잠시난다.
내 고향집 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한 그루있다. 화장실 지붕과 붙어 있어 감을 따기 위해선 화장실 지붕으로 올라가서 긴 대나무로 만든 긴 장대로 감을 따곤했었다.
긴 장대 끝 부분을 둘로 갈라지게 한다음 사이에 작은 나무 조각을 넣어 벌어지게 한다음 따고자 하는 감 꼭지 부분에 끼어서 비틀어서 감을 따곤 하는데 너무 익은 홍시 감은 따는 순간 아래로 떨어져 밑에서 받고 있는 사람 머리에 떨어져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오랜만에 소중한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을 포장된 소로길을 따라 계곡은 이어지고 부원 농장앞의 다리에서 더 이상 길은 허용하지 않는다.
부원농장 내부까지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은 왕피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야근 근무라서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
농장앞에 세워진 왕피천 유역 생태환경안내도를 보면서 내년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라 다짐하며 지도를 찬찬히 드려다 보니 이제서야 오늘의 여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획했던 여정이 아니였지만 더 보람된 여정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못가본 굴구지 마을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박달재에 올라 임도로 갈라지는 도로가 이번에 갔어야 할 도로라는 것을 확인하고 삼근으로 내려와서 울진으로 향한다.
이미 어둠은 아스팔트에도 내려 앉아 있고 경보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포항에 도착함으로서 하루 여정이 마무리 되었다.
야근 첫날.
이렇게 하루라는 시간을 정리하면서 오늘의 추억들이 훗날 오래 기억하리라 기록으로 남겨본다.
첫댓글 아름답고 고즈넉한 오지가 눈에 선합니다.페순이가? 아직은 천리라도 가겠네요...긴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구요^*^
아직은 쓸만합니다.
앞으로 더 할일이 많아 질것같구요. 내년에 여유시간이 많아져서...ㅎ
수고 많았습니다.
덕분에 좋은여행 하였구요.
여행기 보니 세월이 흐른후에 좋은 추억물이 될 것 같습니다.
먼 훗날 좋은 추억을 위해 나름 상세하게 기록해 두는 거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왕피천은 은어로 유명합니다.
불영계곡쪽으로 예전에 참 많이 있었는데...
멋진곳 가고싶었는데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