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세계에서 기독교의 지혜를 찾으려 한다면 근대적 환원론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고대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단지 사상을 담는 고정된 그릇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역동적 피조물이다.
아우구스티누스(성어거스틴)가 말하는 갈망은 호기심이 아니라 굶주림에 더 가깝다. 이 인간관에서 무게 중심은 지성이 아니라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근원적으로 에로스적 피조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가장참된 의미에서 에로스는 피조물인 인간의 선한 특징인 욕망과 이끌림을 가리킨다. 우리는 ' 아가페 ' 와 ' 에로스 ' 의 잘못된 이분법을 주장하는 대신 ' 아가페 '를 바르게 질서 잡힌 ' 에로스 ' 로 이해할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넘치도록 부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구속된 욕망, 바르게 질서 잡힌 욕망이다. 당신이 욕망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성경은 사랑과 지식, 머리와 마음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통전적 인간관을 제시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성뿐아니라 우리의 카르디아. 와 바울이 ' 스플랑크나 ' 라고 부른 것, 즉 우리의 감정 근원인 '내장' 까지도 사로잡으신다.
UCLA와 맥매스터대학교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은 "직감 "gut feeling(직역하면 내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옮긴이)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험을 했다. 위장에 있는 미생물이 어떻게 뇌의 신경활동에 영향을 주는지 ᆢ우리의 내장과 붙어있는 뉴런 망이 존재하며 이 망이 너무도 광범위해서 일부 과학자들은 " 제 2의 뇌 " 라고 부른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먹고 마심으로 그분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점도 전혀 놀랍지 않다(요6:53~58) 제자도는 우리 머리나 심지어 마음에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내장,' '스플랑크'나 감정과도 관계가 있다
소감: 부디 언어의 단순한 유희가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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