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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바라보기: 아픈 청춘, 대학생의 관점에서
21421751 정치외교학과 전태종
서론
“좋을 때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 “그때는 좋은지 모른다.” 그들 뒤를 자주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과거 그 시절은 기성세대에게 풋풋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오묘한 웃음과 아련함을 선사한다. 누군가에게 향수와 부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그들은 바로 한국사회의 대표청춘 대학생들이다. 대학생은 그 단어만으로도 희망과 청춘을 상징한다. 그들은 치열하고 냉혹한 사회와는 조금 떨어져 미숙하지만 순수한 젊음과 패기로 무장한 채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설렘들 앞에 놓여있다. 많은 이들이 그 시절을 한 인간이 무르익기 전 성장의 발판이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순간으로 간주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 역시 그 상징에 신빙성을 더욱 북돋는다. 지금 그 시절을 겪는 우리 당사자들은 인생의 찬란하고도 유일무이한 순간에 마주한 것이다. 통시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은 그런 존재들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생의 모습은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시한다. 누군가 그리워하던 그 시절은 현 세대들에게 힘든 시간의 쳇바퀴에 불과하다. 단지 미래를 겪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정되었던 그들의 푸념은 어느덧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도를 형성했다. 불경기와 사회의 각박함 덕분에 청춘 집합소는 학문의 터전에서 노동자 생산의 한 과정으로 변모했다. 그 속에서 우리 청춘들은 꿈 그리고 사랑과는 멀어지고 인간이 누릴 진정한 가치들을 잃어버린 듯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속도가 빠른 탓일까. 진화하는 사회에서 일종의 아노미현상이 대학생을 색다르게 위협한다. 이제 대학생들의 적은 일종의 불안감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 감정에 있어 근본적인 암울함과 좌절을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2019년의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하지도 않고 찬란하지도 않다. 요즘 대학생의 모습은 한국사회의 우울한 모습들을 대변한다.
그들의 사정을 조금 더 구체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청춘이란 이름 앞에서 이상과 꿈, 그리고 도전은 당연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상보다 타협과 친하며 그 타협에 닿는 나이조차 점점 어려지고 있다. 여기서 타협은 사회를 새롭게 이끌어가야 할 그들이 오히려 사회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순응조차 쉽지 않다. 꿈을 철저하게 배제한 취업조차도 청춘이 누릴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더 심각한 것은 원하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만연한다. 그들이 하나씩 하나씩 달콤한 열매들을 내려놓을 때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선명한 단절이 채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단절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가상의 공간은 모두를 연결시킨다. 정보화시대는 어찌나도 우리를 쓸쓸하게 만드는지, 나 빼고 모두가 잘 사는 것 같다. 어느덧 그들은 이런 삶에 익숙해졌다.
지금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청춘들의 모습은 진정한 청춘과는 분명 상반된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이는 많은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겪는 현실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청춘들에게 투영된 우리사회 모습을 살피고 반성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작게나마 현실을 타파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은 돌파구를 찾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것이 혹여나 힘들다면 비정상이 만연하는 풍토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도 충분하다. 그럼 암울한 모습을 대학생의 하루에 투영시켜보자. 이제부터 한 대학생의 하루를 1인칭으로 살펴보고 현실을 분석한 다음 현실타파를 꾀하고자 한다. 앞으로 등장 할 “대성”은 지방 사립 영북대학교 4학년, 취업을 준비 중인 26세의 남성이다.
현실투영
‘띠리리리...띠리리리’
6시 20분. 오늘도 어김없이 피곤하다. 알람으로 맞춰 놓은 노래는 언제나 듣기 싫은 노래로 변한다. 이 노래도 마찬가지가 되려나. 요즘 들어 부쩍 게을러진 탓에 새롭게 시작한 기상스터디. 7시까지 도서관에서 인증사진을 올려야 한다. 아니면 가입비를 회수할 수 없다. 괜히 한 건가... 오늘도 변함없이 잠이 덜 깬 채로 집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야지. 도서관에서 들어섰다. 아무도 없네.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1등이다. 자연스럽게 꺼내든 인적성 모음, 토익스피킹, 한국사 검정...시... 아! 이건 이제 버려도 된다. 저번 주 토요일에 합격점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버리더라도 가방은 여전히 무겁겠지. 나보다는 가방이 더 고생하는 것 같다. 오늘은 취업스터디 전까지 영어 단어나 외워야겠다. familiarize. familiarize. 익숙해지다. 익숙해지다... 익숙해졌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언제 끝날지 아는 게 더 나을까, 만약 안다면 더 버티기 쉬울까? 아니면 차라리 지금처럼 모르는 게 더 나을까. 이제 한 5개월 되었으니 앞으로 6개월? 아니 1년, 설마 2년까지는 안 가겠지... 모르겠다. 책이나 봐야겠다. familiarize···
‘우우웅···우우웅···’
벌써 알람 진동이 울린다. 10시 10분 전이다. “아자아자” 취업스터디에 가입한지도 어느덧 2달이 되어간다. 지금은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지만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안타깝게도 그 중 취업자는 고작 한 명이다. 그 사람도 자신이 꿈꾸던 직장은 못 들어갔다. 남들도 다 아는 대기업은 그에게 힘든 벽이었나 보다. 나름 학부에서도 상위권에서 놀았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이제 한 사람씩 도착한다. 이호동. 26세. 나와 마찬가지로 공기업을 준비한다. 이 사람은 원하는 분야가 딱히 정해지지 않았다. 안정적이면서 공무원보다 연봉이 많다는 이유로 공기업을 원한다고 한다. 그냥..평범한 사람이다. 유채연. 25세. 당차고 할 일을 찾아서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성격도 좋아 보이고 대외관계도 원활하다. 한 때 학생회 소속이었다고 한다. 스펙도 좋은 것 같은데 천마기업 마케팅부는 그녀를 벌써 3번이나 떨어트렸다. 그 기업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유능해져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김현주 25세. 오늘은 그녀의 마지막 스터디 날이다. 아쉽다. 그녀는 원래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가고 싶었다고 한다. 갑자기 왜 그만 둔다는 걸까. 준비기간이 길어서 그런 걸까.
‘수고하셨습니다.’
2시간의 스터디가 끝났다. 모두 자리를 뜨기 바쁘다. 다들 할 일이 많나 보다. 오늘은 김현주씨의 마지막인데도 별 다를 건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헤어진다. 아무리 스터디라지만 너무 단편적인 관계인 것 같다. 언제 또 볼지 모르니 김현주씨한테 번호라도 물어봐야겠다. 사실 약간 호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지. “현주씨 혹시.. 번호교환 가능할까요.. 그래도 한 달 같이 했는데 아쉬워서요..” 그녀의 대답은 죄송하다로 돌아온다. 그렇게 내가 마음에 안 든 건가. 이제 그녀의 거절 이유를 들을 차례다. 그렇군. 진로를 바꿨단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한단다. 너무 갑작스러운 전환이다. 조만간 서울로 올라간단다. 보나마나 노량진이겠지. 공부와 관련 없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단다. 학원에 고시원도 이미 끊었단다. 원래 여행가고 국제기구 탐방하려던 돈...아 그걸로 학원이랑 고시원 등록한 거구나. 어느덧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너무 가기 싫지만 가야한다고, 이런 자기가 싫다고, 꿈이 너무 컸는가, 자신이 지금껏 욕심쟁이처럼 살아온 것인가, “지금껏 많은 걸 포기했는데 이제는 꿈마저 버릴 시간 인가요?···” 지금 그녀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어린아이 같다. 그녀의 외침은 어느새 나에게 거절이 아닌 호소에 가까웠다. 그렇게 더 이어가던 중 이내 이성을 찾고 소극적인 인사와 함께 나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참치마요덮밥 하나 주세요.’
학식이 최고다. 수업직전에 간편하고 그나마 싸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곧 오후 수업들이 시작된다. 빠르게 먹고 가야지. 요즘 혼밥, 혼술은 당연한 세상이다. 인싸가 주도하던 대학은 옛날 말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싸를 자처한다. 저기 TV아래 1인 자리에 같은 스터디 원인 유채연씨도 보인다. 1학년 때만 하더라도 혼자 밥 먹는 문화가 이렇게까지 흔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게다가 일명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고학번들도 이전보다 많아진 듯하다. 아마 졸업유예와 휴학, 그리고 취업준비 때문이겠지. 요즘 실업률에 비례해서 대학생들의 사회 진출 시기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데 몸소 느껴진다. 나와 같은 고인물은 학생식당, 도서관, 길거리에도 자주 출몰한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 혼자.. 지금 나도 혼자서 밥을 먹는다. 꼭 친구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느 순간 혼자가 인생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좋다. 다수가 모였을 때 나왔던 낭만과 특유의 아우라가 종종 그립다. 그 속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든 진지한 이야기든 소통은 마음의 위로를 준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시간들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진다. 왜일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맞다. 일단 내가 능력을 갖추고 만나야 되니까? 음...씁쓸하지만 맞는 것 같다. 주위 친구들과 동기들 모두 바쁜 시기이니 만남을 최소화하는 건 당연하다. 연락도 많이 뜸해졌다. 그래도 1년에 몇 번은 만났었는데.. 엇. 벌써 다 먹었네. 오늘은 10분도 안 걸렸다. 빨리 자리 맡으러 가야겠다.
‘와 진짜가? 어떻게 뚫었다 카던데?’
하교 길에서 유독 이 한 마디가 귀에 내리 박혔다. 아니 순간적으로 주위가 모두 반응했다. 사람은 관심 있는 것만 보고 듣는다는 말이 사실이다. “그 선배 원래 엄청 열심히 했잖아. 학점도 좋고, 자격증에 대외활동, 토익, 토스, 인턴, 각종 자격증에 공대출신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딱 봐도 면접 잘 보게 생겼다 아니가” “와 맞나. 부럽다. 이제 떵떵거리고 완전히 끝났네. 아 나도 이과갈 걸 그랬나... 이제 우린 우짜노 먹고는 살겠나 싶다.” 못 들은 척 덤덤히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부럽다. 들어보니 괜찮은 기업에 들어간 것 같은데...아니 그것보다도 취업된 것 자체가 어디냐. 그게 나였으면. 공대라고 그랬나? 공대라서 취직을 한 걸까. 음...사회탐구가 좋아서 선택한 문과.. 차라리 그냥 과학과 친해졌어야 했었나.. 시선을 돌려보자. 에라이.. 이게 뭐야. 하필 공무원 합격자 명단과 마주쳤네. 저 현수막은 마치 전쟁에서 승전보와 같은 위엄을 보인다. 저것도 예전에는 없었는데. 공무원이 대세라는 말이 실감난다. 18학번? 21살에 벌써 공무원에 붙었네. 저 사람은 이제 승리자로 불리겠다. 저런 어린나이에 되다니! 그런데 원래 꿈이 공무원이었을까. 그럼 대학은 왜 온 거지. 안정적이고 싶었나? 저기 저 승전보는 어떻게든 열차에 올라탄 걸 자랑하는 걸까. 나도 그냥 공무원 준비해야 되는가. 모르겠다. 아직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기는 싫다. 근데 계속 취업이 안 되면. 나도 해야겠지? 사촌동생도 준비한다던데... 눈치 덜 보이게 그냥 공무원시험 준비할까. 생각 좀 해봐야겠다.
‘다시 또 시간 낭비하네. 저 인스타그램 속에서’
길에서 들리는 익숙한 멜로디, 한 때 많이 들었던 노래가사다. 무의식적으로 누른 어플은 오래된 취미인 SNS다. 책과 달리 지겹지 않다. 교양서적을 본 적이 언제더라. 기억도 안 난다. SNS는 삶을 환기시켜준다.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으로 모두 연결된다. 온 지구가 직사각형 안에서 쉴 새 없이 일렁인다. SNS는 친절하다. 원하는 테마 중에서도 실시간으로 뜨거운 감자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빅데이터의 힘은 대단하다. 음...어디보자. 이 사람은 엄청 잘생겼네. 실제로도 이렇게 생겼으려나. 나는 취업준비 동안 살이 10kg나 찌는 마당에 이 사람은 팔로워가 10만 명이다. 그나저나 오늘도 수많은 비행기가 사람들을 해외로 실어 날랐구나. 도쿄, 파리, 하노이, 상해... 저마다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에 뽐내기 한창이다. 나는 아직 해외 한 번 못 가봤는데. 대리만족도 지겹다. 아니 이제는 대리만족이 아니다. 그건 열등감에 가까워졌다. 예전엔 언젠가 가야지 하는 기대감이 컸다면 이제는 다르다. 영영 못 갈 것 같다. 그리고 다들 음식사진은 왜 이렇게 많이 찍는지 모르겠다. 이제 음식은 사진에 담기는 용도가 더 큰 것 같다. 내가 유행을 못 따라 가는 건가. 어느 순간 현실은 가상의 공간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SNS는 삶에 활기를 주었다. 이것도 어쨌든 간접경험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와 가상의 그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제모습은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에라이 꺼야겠다. 시간낭비...그리고 박탈감만 커진다.
'하'
하루가 어떻게 간지 모르겠다. 이젠 집 안에서의 전쟁이다. 이번 달은 공과금이 두 배나 나왔네. 보일러를 너무 많이 틀었나. 이번 달에는 새 옷을 사보려고 했는데 포기해야겠다. 집 안에서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설거지 거리는 왜 이렇게 많이 쌓인 건지. 빨래도 해야 하고.. 새삼 이렇게 또 엄마가 그리워진다. 이럴 때만 생각이 나는 것 같아 미안한 기분이 든다. 별 수 없지 뭐. 그러고 보니 가족들 목소리를 들은 지 얼마나 되었지? 부모님은 아무것도 정해진 미래가 없는 내게 매달 용돈을 보내주신다. 적지 않은 금액이기에 감사한 마음 보다는 죄송함이 크다. 그들을 떠올리면 미안한 감정이 앞서기에... 먼저 전화도 못하겠다. 나는 아직까지 가족의 짐이다. 이제 자야지. 생각이 많다. 내일도 결국 오늘의 재생산이겠지. 내일이 두려워질수록 취침은 늦어진다. 자기 싫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거지. 아 알람 한 번 더 확인하고. 그저 평생 이러지만은 않기를.....................................................
현실분석
#_familiarize
익숙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일까, 부정적인 상황일까. 아니 이분법적이지 않다. 오히려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익숙해진 것은 갑작스러운 변화와 불편함, 그리고 저항을 이겨낸 나름 안정적인 상황이다. "대성"은 그의 아침에 여러 모로 익숙해져 있다. 6시 20분, 무거운 가방, 다양한 책들과 도서관. 그는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늘 마주하던 현실의 패턴은 오늘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이어진다. 어떤 행위가 목적론적이든 맹목적이든 익숙함은 그 행위가 탈선하는 것을 막아준다. 시작부터 5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익숙함은 "대성"을 이끌었다. 비록 그가 희미한 종착점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탈선의 가능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익숙함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익숙은 다른의미로 어떤 상황이 계속 유지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껏 겪었던 경험들이 딱히 개선되거나 변화하지 않아 하나의 응집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한 인간은 괴로움조차 익숙해져서 고통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대성"의 하루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다만 그 톱니바퀴들은 회전할 수록 녹이 쓸어간다. 어느 순간 이음새의 녹들은 불협화음을 낸다. 끼익끼익... 그러나 그 소리는 어느덧 당연해진다. 익숙함은 이렇게 청춘들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고름과 진통제.. 하지만 진통제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아니다. 결국 익숙함에 물들어진 청춘들은 피폐해진 자신과 마주한다.
#_n^n포세대, 그리고 굴복
no pain, no gain. give and take. 누가 반박하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유혹들을 잠시 내려놓는 것은 필수적이다. 씨를 뿌려야 밭이 꾸려지듯, 인생의 물리법칙은 간단하고 확실하다. 이를 부정하고 오직 달콤한 열매만을 추구하는 삶이야 말로 비인간적이다. 청춘들도 잘 알고 있다. "고통스러울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 "책을 볼수록 미래의 배우자가 바뀐다." 고문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희망적인 구절이다. 청춘들은 이렇게 스스로 의도적으로 최면을 건다. 그리고 더 강렬한 고육지책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그래서 바쁘다. 취미, 사랑, 만남, 유흥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대신 스터디와 같은 조금은 고통스러운 작업과 친해진다. 그래서 "아자아자" 스터디원들은 스터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스터디는 취업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포기한 무언가에 대한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다만 "호동"에게는 막연하게, "채연"에게는 절박하게, 또 "현주"에게는 회의적으로 다가온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그 중 "현주"는 스터디를 탈퇴함으로써 현실에 굴복한다. 그녀에게 스터디 탈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현주"는 하나의 pain을 내려놓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더 큰 pain으로 가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국제기구라는 꿈을 버리면서 그녀의 선택권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빠진다. 이제 그녀는 원하지 않는 꿈을 위해서 원하는 것들을 더 포기해야 된다. 이런 순응과 타협은 청춘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지금껏 타협하지 않았던 현실을 그녀는 "욕심"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각박한 현실은 지금까지 포기했던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꿈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이렇게 굴복한 청춘에게도 no pain no gain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pain의 크기는 커지는 데 비해 gain의 크기는 너무나도 작아졌다. 청춘은 더 이상 그냥 n포 세대가 아니다. 놓아야 하는 것의 무게는 더욱 커진 n^(제곱)n포 세대가 도래했다.
#_slow and alone
느림의 미학, 빛이 나는 솔로. 뒤쳐진 자와 아싸들에게 힘이 되는 문장이다. 요즘은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최근 대학생들의 사회진출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 휴학과 졸업유예 중 하나는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순수하게 학교에 더 머물고픈 졸업유예와 말 그대로 쉬고 싶은 휴학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회로 가는 준비를 위한 연장선으로 부득이하게 사용한다. 줄어드는 노동수요에 대비하여 더 매력있는 공급자가 되기 위한 발버둥인 것이다. 게다가 사회로 진출하는 적정 나이에 임박해질수록 그 시간들을 혼자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성" 앞에 마주한 "고인물"들은 어쩌면 과거에는 당연히 사회에 있었어야 할 사람들이다. 또한 "대성"은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 하며 동족들이 왜 혼자가 되어 가는지를 변호한다. 바쁨과 체면은 그들의 쓸쓸한 뒤쳐짐을 더욱 심화시킨다. 덕분에 고학번 아싸는 대학에서 당연한 풍경으로 전락했다.
#_비교와 타협
취업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취업소식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압박이자 부러움이다. 특히 "메이저"로 분류되는 직장은 더더욱 그렇다. 설령 자신의 꿈과 적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에도 그 직장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니 굳이 메이저가 아니더라도 취직이 목표 그 자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최근 이공계 선호 현상이 점점 심화되어온 이유도 이와 통한다. 문과는 "문돌이"인 것에 비해 이과는 "취업깡패"다. "대성"의 의식 변화도 좋은 직장에서 취직 그리고 이공계에 대한 미련으로 전개된다. "대성"은 스스로가 문과 체질임을 알고 있음에도 취업의 벽 앞에서 뒤늦은 타협 가능성을 모색한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옆에는 승전보라고 표현한 취업전쟁의 승리자들이 떡 하니 붙어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18학번은 "대성"에게 또 다른 타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번엔 속도다. 그는 조금 전 학생식당에서 마주친 수많은 고인물들과 18학번 예비 공무원을 비교한다. 정답은 없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는 후자를 더 선호하는 추세이다. 그는 아직 타협하지 않은 전자에 가깝지만 주변의 취직소식들은 그의 적성과 방향 그리고 속도에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제 초점을 "대성"에서 18학번 예비 공무원으로 전환시켜보자. "대성"의 생각처럼 18학번 공무원에 대한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공무원이 인생의 꿈이었거나, 빨리 되고 싶었거나, 아니면 공무원의 직업적 특성에 끌렸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염려스러운 모습은 18학번 예비 공무원이 타협자였을 때 발생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른 합격이 만약 타협의 결과였다면 우리 사회는 타협에 점점 가까워지는 풍토에 노출된다. 이는 곧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를 간과할 위험성을 높인다. 어느새 사회의 초점은 본질을 잊고 근시안적으로 변하게 된다.
#_가상과 박탈
“잘난 사람 많고 많지”,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이 피드 속엔 나완 다른 세상뿐인데”
“대성”이 길거리에서 들었던 “인스타그램”이란 노래 가사 일부이다. 이 곡은 발매되고 지금까지 정보화 시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SNS에 자신들의 시간을 할애한다. 주도적이든 관조적이든 상관없다. SNS의 매력은 사람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그는 지루했던 일상의 환기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SNS에 들어갔다. 야속하게도 그에게 다가온 것은 달콤한 도피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성”의 박탈감이 5G의 속도로 업데이트된다. 박탈감의 근원은 자신과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성”은 그를 오늘 네모난 화면에서 처음 마주했다. 심지어 그를 가상에서 바라볼 뿐인데도 “대성”은 현실에서 철저히 소외된 기분과 만끽한다. 그의 말대로 이제 대리만족은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가상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다. 어느덧 그것은 현실과 맞닿아 상호작용하면서 그것을 만들어 낸 모태에 치명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종 현실보다 가상에 더 집착하기에 이르렀다. 이놈의 정보화 시대는 인간 진보라는 정당성을 빌미로 완전히 주객전도된 세상을 만들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수록 현실의 나는 작아진다. 원래 앎은 숭고하고 뿌듯한 것이었건만, 요즘은 알면 알수록 괴로워지는 시대다. 그래서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다.
#_종합: 미래는 희미하고, 당장도 답답하다.
혼자 사는 집에 오면서 “대성”의 하루가 끝난다. “대성”의 하루는 대부분 미래에 대한 투자로 사용되었다. 이제 그 앞에 놓인 것은 내일을 살기 위한 필수요소들이다. 고지서, 설거지, 빨래.. 그리고 용돈까지...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집안일은 하면 끝이고, 금전은 아직까지 지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초가 된 그 앞에서 모든 것들은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데 집에 와서도 그는 또 다른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 때 “대성”은 문득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거기서 머무른다. 다이얼을 누를 용기는 미안함에게 패배한다. 이번에 “대성”은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단절은 삶의 가장 가까운 부분에서 조차 이뤄진다. 그렇게 그는 똑같은 하루를 위한 잠자리에 들었다.
청춘들은 우울하다. 그들의 미래는 희미하고 당장도 답답하다. 이런 배경에서 그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들은 익숙, 굴복, 포기, 외로움, 타협, 박탈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앞으로 청춘을 그렇게 정의해야 하는 걸까.
현실타파?!
그럼 현실타파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과감하게 말하자면 오늘날 문제적 풍토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병든 사회의 원초적인 원인은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기인한다. IMF이후 저성장과 경제침체 속에서 삶 자체가 힘들어지고 양상은 점점 심화된다. 우리 청춘들은 점점 좁아져오는 틀에 고립된 일련의 피해자들이다. 분명 비정상적인 모습들임에도 불구하고 포기는 당연해졌고, 도태에 박탈과 굴복은 만연하다. 사실 많은 부분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청춘들은 아프게 되었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자면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다. 현실 분석의 각 장면에서 공통적인 나타나는 특징은 바로 “인간 감성의 위기”다. 인간 감성의 위기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무언가에 종속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위기의 순간은 명확하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역전되고, 단절이 일상화 되며, 결과 우선주의와 더불어 남 눈치를 많이 볼 때 인간은 우울해진다. 그리고 정보화시대의 기술발전은 그 위기를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하나다. 청춘들은 의식적으로 “여유”를 만들어가야 한다. 여유는 청춘들이 행복해지는 시발점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바쁜 와중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아닐까.
결론
지금도 한국사회는 수많은 청춘들을 “대성”으로 만든다. 그리고 “대성”은 한국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개선은 쉽지 않다. 그래도 거시적인 측면을 해결하기 힘들다면 이제는 개개인의 부분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청춘들에게 변화를 장려하고 싶다. 이제는 더 나아가 사회에 굴복하는 그들이, 사회를 바꿔 놓던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해야 할 때이다. 오늘도 집을 나서는 전국의 “대성”들의 고뇌와 고군분투가 한국사회의 우울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회 진보의 희망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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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쓰시는 글들 쭉 보면 항상 가독성도 좋고 재밌는거 같아요! 글에 공감 팍팍되네요!! 소재 너무 좋습니다
엇 완전 과찬이십니다ㅎㅎㅎ 공감을 이끌어내서 다행인 것 같네요. 좋은 칭찬과 피드백 주셔서 감사드려요!!!
"familiarize. familiarize. 익숙해지다. 익숙해지다... 익숙해졌다." 청춘들의 현 주소지를 공감가도록 정말 잘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ㅠㅠㅠㅠ
같은 입장의 대학생에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입니다...정말 글 잘 쓰십니다ㅠㅠㅜㅠㅜㅠㅜ
'대성'의 삶이 흔히 존재하는 일반적인 대학생이라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일과를 통해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단편소설 잘 읽었습니다 ㅎㅎ
제 글 실력이 태종님 글만 봐도 좋아질 것 같은 기대가 됩니다.
ㅋㅋ. 내 기분이 수목씨 얼굴만 봐도 좋아질 것 같은 거랑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