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깨다
Breaking The Spell
대니얼 데닛Daniel C. Dennett 1942~
「1942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철학교수로 인지연구센터의 소장을 겸하고 있다. 당대 철학자 중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에 가장 진지하게 활용하는 철학자로, 인지과학 및 과학철학 분야에서 늘 혁신적인 주장을 펼쳐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종교를 자연현상으로 해부한 이 책은 과학적 논증을 통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만들어진 신>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미국에서 나란히 출간되어 종교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한 이 종교 비판서 두 권은 세계적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데닛은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종교라는 주목할 만한 현상의 기원을 밝히고 종교가 왜, 그리고 어떻게 충성을 요구하고, 그토록 강해졌으며, 그렇게 많은 삶을 강하게 규정하는지를 논의한다.」
■ 1부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01] 어떤 주문을 깰 것인가?
1.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초원에서 개미 한 마리가 풀잎을 타고 열심히 기어오른다. 개미는 높이 더 높이 오르다 결국 떨어지고,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매번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오르고 또 오른다. 개미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개미는 이 고 되고 헛된 행위를 통해 무슨 이익을 찾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지금 개미는 예를 들어 영토를 더 잘 굽어보거나, 먹이를 찾거나, 잠재적 배우자에게 과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미의 뇌는 창형흡충이라는 작은 기생충에게 점령당했고, 그 기생충은 번식주기를 완성하기 위해 어떻게든 양이나 소의 뱃속에 들어가야 한다. 이 작은 뇌 기생충이 개미의 자손이 아닌 자기 자손에게 이득이 되는 위치로 개미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미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물고기와 생쥐를 비롯한 다른 생물 종들도 이처럼 행위를 조작하는 기생생물에 감염된다. 이 편승자들은 자신의 기주생물로 하여금 엉뚱한 행동을 하게 만들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데, 이는 전적으로 기주생물이 아니라 기생생물의 이익을 위해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신의 이익과 건강, 자녀 출산의 기회를 뒤로하고, 뇌에 박힌 어떤 생각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다.
창형흡충은 개미의 뇌와 접촉하면 항상 그 뇌를 자기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운 좋은 특성들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신의 말씀을 창형흡충에 비유하는 것은 마음이 언짢은 일이지만, 생각을 생물에 비유하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정신은 어떻게 생각을 창조하는가? 기적과도 같은 영감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좀 더 자연적인 수단에 의해서일 수도 있다. 그것은 생각들이 정신에서 정신으로 전파되고,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살아남고, 노래와 그림과 조상과 의례에 편승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기적처럼 조합을 이루어 또다시 새로운 창조물을 낳고, 그것을 낳은 생각과 가족 유사성을 띠지만 그것만의 새로운 특성, 새로운 힘을 지니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에 최초로 침입했던 야생의 생각들 중 일부의 후손이, 우리가 그 주인이 되거나 적어도 그 집사, 그 목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동안 순화되고 길들여졌을 것이다.
2. 종교의 유효한 정의
임시로 나는 , 종교란 참가자들이 초자연적인 행위자에 대한 믿음을 공언하고 그의 승인을 구하는 사회조직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기도는 말 그대로 ‘신과의 대화’가 아니라 상징적 행위이고,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사들을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은유적 표현 방식이다.
3. 주문, 깰 것인가 말 것인가
4. 심연을 들여다보다
내가 깨야 한다고 말하는 주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많은 자연현상 가운데 하나인 종교를 솔직하고 과학적이고 전면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금기다. 그러나 이 주장을 거부하는 가장 절박하고 그럴듯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만일 그 주문이 깨지면, 즉 만일 종교가 밝은 불빛과 현미경 아래에 놓인다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주문이 깨질 것이라는 심각한 두려움이다. 만일 과학적 연구의 간섭 때문에 사람들이 무력해지고, 종교적 경험이나 종교적 확신의 도약대가 되는 정신 상태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끔찍한 재앙일 수도 있다. 순결은 단 한 번에 잃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섭을 좋아하는 과학자들의 보잘것없는 침략에 흔들리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무신론자들이 독실한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가정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5. 종교는 자연현상이다
나의 말은 종교는 자연식품-맛이 있을 뿐 아니라 건강에 좋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유기농’ 식품-과 같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나의 말은 종교는 인공물, 즉 인간의 지적 활동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다. 재채기와 트림은 자연적이고, 소네트 암송은 자연적이지 않다. ~~~종교는 유전자가 아니라 언어와 상징을 통해 문화적으로 전파된다. 우리는 아버지의 코와 어머니의 음악적 재능을 유전자를 통해 물려받지만, 부모로부터 종교를 전해 받을 때에는 언어를 배울 때처럼 양육을 통해 전해 받는다.
신은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고, 정말로 우리 모두를 창조한 지적이고, 의식적이고, 사랑을 베푸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종교 자체는 여러 현상들의 복잡한 집합체로서 완전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스포츠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만일 종교가 조금이라도 자연적이지 않고 정말로 기적을 수반한다면, 의심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는 최선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에 따르기를 거절한다면, 종교는 어쨌든 초자연적이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의혹만 커질 것이다.
종교는 자연 현상이라고 가정할 때 나는 종교가 인간의 삶에 가치 있는지 없는지를 어느 쪽으로든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종교는 인간의 삶에 가치 있는 사랑과 음악처럼 자연적이다. 그러나 흡연, 전쟁, 죽음 역시 자연적이다. 자연적이라는 망의 의미에서는 인공적인 것들도 모두 자연적이다!
※ 요약: 종교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연현상에 속한다. 만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면 우리의 종교들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위험과 불편이 따르지만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종교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오랜 거부감을 떨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종교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헌신을 이끌어내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21세기에 종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02] 과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
1. 과학은 종교를 연구할 수 있는가?
2. 과학은 종교를 연구해야 하는가?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는 다섯 종류의 가설
1) 계몽운동은 오래전에 끝이 났다. 지난 2세기 동안 서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던 현대 사회의 세속화는 우리 눈앞에서 증발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어 종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종교는 오래지 않아 근대과학이 부상하던 17세기 이전처럼 사회적. 도덕적으로 지배적인 역할을 다시 담당한다.
2)종교는 임종의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늘날 폭발하고 있는 열정과 광신은 종교가 기껏해야 의례 역할을 하는 진정한 현대사회로 넘어가고 짧고 어색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인류학자들의 펜 놀림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수백의 군소 종교들처럼 곧 자취를 감출 것이다.
3)종교는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제도로 변모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의가 없는 그 제도는 자립 프로그램을 팔고 도덕적 팀워크를 만들어 주며, 의례와 전통을 이용해 관계를 강화하고 장기적이고 충성스러운 펜층을 확보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어느 종교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나 댈러스 카우보이의 팬이 되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질 것이다.
4) 종교는 흡연처럼 위신이 떨어지고 규모도 작아진다. 종교는 사회적으로 묵인된다. 종교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를 장려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아이들에게 종교를 가르치는 일에 눈살을 찌ㅐ푸리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그런 일을 사실상 법으로 금지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정치인이 옂너히 종교를 신봉해도 다른 면에서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면 선거에 당선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적 배경, 또는 불공정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쓰는 말인 종교적 질병을 선전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5)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적 그리스도가 패함에 따라 축복받은 자들은 육신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고, 그 밖의 사람들은 뒤에 남아 지옥의 고통을 겪는다.
앞을 내다보는 것,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빛나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소중히 여기는 것을 얻을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3. 음악이 우리에게 나쁠 수 있을까?
4. 무책이 상책일까?
요약: 종교는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반대를 막기 위해 그 모든 광고전을 펼치지만, 그럼에도 과학이 출입할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는 우리의 가장 중대한 정치적 결정들을 모두에게 알리는 데에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르고 심지어 고통이 따르지만 , 그것을 무지의 구실로 이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03] 좋은 것은 왜 생겨나는가?
1. 최선의 모습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종교가 삶에서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 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것은 과학적인 자료수집이라기보다는, 이론과 실험을 접고 실제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에게 종교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그들 자신의 말로 들으려는 시도였다. 거의 다 일대일로 이루어진 비밀 인터뷰였고, 나는 계속해서 캐물었지만 정보제공자들의 말에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줄잡아 말해도 나는 꽤 감동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을 견뎌 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영웅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결단을 내리고 지속시키는 힘을 종교에서 얻고 있었다. 그처럼 극적이지는 않아도 돌이켜 보면 훨씬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재능과 소양은 평범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훌륭한 면을 보여 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그들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은 이기적인 결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품고 노력을 통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종교는 분명 한 개인에게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종교만이 그런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강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겸손과 인내심을 주고, 평범한 사람들을 더욱 높이 끌어올리며, 술이나 마약이나 범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종교를 몰랐더라면 자아도취, 천박함, 미숙함, 또는 게으름에 빠져 있었을 사람들이 종종 종교를 통해 자신을 기품 있게 하고, 누구라도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힘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고귀한 인생관에 도달한다.
2. 누구에게 이익인가?
눈밭에 코요테의 발자국과 코요테의 사촌인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으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개는 땅을 파면서 보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발톱이 더 긴 경향이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코요테의 앞발자국은 체구가 비슷한 개의 앞발자국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떨어져서 보면 코요테가 지나간 자국은 개의 자국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코요테가 지나간 자국은 뒷발이 앞발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섬뜩할 정도로 똑바른 일렬종대로 분포한다. 반면에 개는 호기심에 이끌려 변덕스럽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 때문에 대개 어지러운 자국을 남긴다(Brown,2004) 개는 배불리 먹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녁밥이 온다는 것을 아는 반면에, 코요테는 빠듯한 예산으로 살아야 하고 곧 닥칠 일을 위해 칼로리를 최대한 비축해야 한다. 즉 코요테는 자기 보존 본능이 강하다. 코요테의 이동 방법은 가차 없다 싶을 만큼 최대한 효율성에 맞춰져 있다.
3. 무엇이 종교의 이득인가?
종교가 인간적 현상으로서 또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노력이다. 진화생물학이 입증한 바로는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시간과 에너지를 주기적으로 소모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어떤 가치의 획득으로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진화적 가치의 궁극적인 척도는 적용도fitness즉 경쟁자보다 더 성공적으로 복제하는 능력이다.
어쩌면 신은 각 사람에게 신을 숭배할 기회를 갈망하는 불멸의 영혼을 심어 주었는지 모른다.
진화의 척도로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지구상에 종교가 없었고, 지금은 종교가 차고 넘친다. 왜 그럴까? 종교는 근본적인 원천이 진화 하나일 수도 있고 진화를 포함해 여럿일 수도 있으며, 진화론적 분석을 완전히 거부할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당장 종교의 생물학적 기초를 연구해야 할 매우 긴급한 이유들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 종교의 원천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이해했을 때 종교를 광기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현명하게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종교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 부분들은 어떻게 서로 들어맞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어떤 결과가 어떤 원인에 의존하는가? 어떤 특성들이 항상 함께 출현하는가? 어떤 특성들이 서로를 배제하는가? 무엇이 종교적 현상을 건강하게 또는 병적으로 만드는가?
우리는 동물처럼 행복한 무지에 빠져 살던 과거로 자신 있게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인간은 꼼짝 없이 아는 존재가 되었다.
4. 화성인의 이론
우리는 종교와 너무 가까운 탓에 처음에는 그 실체를 명확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주제였다. 그들이 스스로 정한 과제들 중 하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기였다.
문화적으로 전파되는 설계에는 유전적으로 전파되는 설계와 똑같은 부유하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과일을 먹는 곰이 숲에서 배변을 할 때 야생 사과나무의 번식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선박제작자들과 선박 주인들은 왜 그들의 배가 좌우대칭인지 그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설계자가 없고, 저작자나 발명가나 심지어 꼼꼼한 편집자나 비평가도 없는 인공물의 설계를 본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인간의 문화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유전학에서의 이유와 똑같은 차별적 번식이다.
이 문화적 복제자- 되풀이하여 복사되는 아이템- 개념에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 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 용어는 최근에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우선 이 자리에서 나는 논쟁의 소지가 없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문화 전파는 때때로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게, 경쟁하는 변이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복사되게 하고 결과적으로 문화적 아이템들의 특성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는 데, 이 수정에는 의도와 선견력을 가진 저작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명백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진 예가 자연언어다. 로망스어-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몇몇 변이체들-는 모두 라틴어의 후손으로, 다수의 기본적 특성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특성들은 수정된 언어들이다. 이 수정된 특성들은 ‘적응 형태’인가? 다시 말해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자신의 환경에서 라틴어속의 조상들보다 낫게 개선된 특성들인가? 이 주제는 논의할 여지가 많으며~~~일단 한 지역에서 어떤 변화가 부상하기 시작할 때, 그곳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해되기를 원한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이다. 로마에서는 로마 사람들처럼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오해를 산다. 이렇게 해서 특이한 발음법, 속어, 그 밖의 새로운 것들이 지방 언어에, 유전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고착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유전적인 것이 아니다. 복사되는 것은 “말하는 방식” 즉 행동 또는 일상이다.
라틴어를 프랑스어나 포르투갈어 또는 그 밖의 자손 언어로 바꾼 점진적 변형은 누구도 의도하거나, 계획하거나, 예건하거나, 바라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그 지역의 어느 유명인이 쓰는 특이한 발음이나 소리가 인기를 끌고 이 일시적 유행이 결국 판에 박힌 발성으로 바뀐 다음 지방 언어에 완전히 통합된 경우도 있었을지 모른다.
단지 밈의 경계가 무엇인가- 야구 모자를 뒤로 쓰는 것은 하나의 밈인가 두 개의 밈인가(모자를 쓰는 것, 그것을 거꾸로 쓰는 것)? - 에 대해서만 해도 어려운 문제들이 있지만, 한 단어의 경계가 무엇인가 - 손을 떼다copping out는 한 단어인가 두 단어인가?- 에 대해서나, 한 유전자의 경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똑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단 음식 기호 이론: 오랜 세월에 걸쳐 영리한 인류는 환경에 속해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답사하고 그 견본을 조사했으며, 수천 년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의 체내 체계들을(과잉)자극하기 위해 그 특수한 물질들을 모으고 농축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우리 몸의 단 음식 기호 성향 옆에 나란히 신 중추God center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무엇에 관여할 까? 그 이익은 무엇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신경학자들이 뇌에서 ‘신 중추’를 발견한다면, 나를 비롯한 다윈주의 과학자들은 그 신 중추가 왜 진화했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 중에 신 중추가 유전적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가진 자들은 왜 그렇지 않은 경쟁자들보다 더 생존했을까?”
만일 그런 진화론적 설명이 옳다면 , 신 중추를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더 잘 생존했을 뿐 아니라 자식을 더 많이 낳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상의 체내 체계를 신 중추로 간주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조심스럽게 거부해야 한다. ~~~어쨌거나 우리 뇌에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중추나 니코틴 중추 같은 것은 없다.
최근에 인간의 미각과 후각에서 발견된 엄청난 유전적 변이처럼, 종교적 감수성에도 유전적 변이가 일어날까? 고수 잎의 향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수 잎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없는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갖고 있다. 고수 잎은 비누 같은 맛이 난다. 윌리엄 제임스는 100년 전에,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에겐 종교에 대한 잔인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한다면, 이것은 나의 신비한 세균이라 불러도 좋다. 이것은 매우 흔한 세균이다. 이 세균은 평신도들을 만들어 낸다. 나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은 전적으로 무신론적인 비판에 아주 잘 저항한다.”(류바Leuba에게 보낸 편지 인용). 제임스의 신비한 세균은 실은 신비한 유전자gene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말한 것처럼 신비한 세균 즉 감염에 의해 수평적으로가 아니라(부모에 물려받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수직적으로 퍼지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공생자 이론: 종교는 인간 숙주에서 인간 숙주로 건너뛰면서 번성하는 문화적 공생자 종일지 모른다. 종교는 장 속의 박테리아처럼 인간의 적응도를 높이고 심지어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상리 공생 생물‘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에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단지 우리를 타고 다니는 중립적인 ’편리 공생 생물’일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는 ‘기생생물’일수도 있다. 즉, 우리로서는(적어도 우리의 유전적 이해와 관련하여) 없으면 더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방어 체계에 대응하고 그들 자신의 번식을 증진하도록 아주 잘 진화한 해로운 복제자일 수 있다. 우리는 기생 미생물처럼 문화적 기생자도 선제하는 체계들을 닥치는 대로 이용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채기 반사는 우선적으로 자극적인 이물질을 비도鼻道에서 제거하기 위한 적응 형태이지만 , 일반적으로 세균이 재채기를 일으킬 때 이익을 얻는 주요 수혜자는 재채기하는 생물이 아니라 또 다른 잠재적 숙주들이 들이마실 수 있는 범위 안으로 힘차게 퍼져 나가는 그 세균이다. 퍼져나가는 세균과 퍼져 나가는 밈은 비슷한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즉 밈은 이야기나 그 밖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려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을 이용하고, 이 충동은 숙주가 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범위, 강도, 빈도를 높이는 이런저런 전통들에 의해 강화된다.
이 관점에서 종교를 볼 때 ‘누구에게 이익인가?’라는 질문은 극적으로 변한다. 이제 종교에 의해 증진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호모사피엔스 에 속하는 번식자인) 우리의 적응도가 아니라,(공생자 속인 종교 문화에 속하고 자기 복제를 하는 번식자인) 세균의 적응도다. 그것은 숙주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이익을 주는 상리공생자로서 번성할 수도 있고, 숙주에 감염되어 해를 끼치지만 숙주의 반격을 거뜬히 극복하는 기생자로서 번성할 수도 있다.
당신의 눈에 당신의 종교는 아마 당신에게 명백히 무해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다른 종교들은 그에 감염된 사람들에게 명백히 유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겉보기에 속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종교는 당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익을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당신의 종교는 당신이 전혀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을 망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에서는 실체가 안 보이는 법이다. 기생생물은 그렇게 성공한다. 조용히, 얌전하게,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절대 기생생물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수 천년 동안 사람들은 다른 종교들을 일종의 병이나 질환이라고 상상해 왔고, 배교자들은 종종 이전 시대를 그들이 간신히 살아남은 고통의 시대로 회고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일단 종교를 문화적 공생자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만큼이나 긍정적인 시나리오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절한 공생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의 몸에는 대략 100조개의 세포가 있는데, 그중 90%는 인간의 세포가 아니다(Hooper et al,1998)! 이 수조개의 미세 기생생물 중 대부분은 해롭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 걱정스러운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 유산은 유전적이지 않다. 그 중 일부는 어머니의 태아가 공유하는 혈류를 통해 전달되고, 또 일부는 신체 접촉에 의해 획득된다.
문화적 공생자(밈)도 그와 비슷하게 비유전적 경로로 자식에게 전담된다. 모국어, 노래, 예절 같은 많은 사회화 기술들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문화적으로 전파되는데, 이 상속원을 박탈당한 유아들은 종종 심각한 장애를 겪는다. 모자 결속은 종교의 주된 전파 경로라고 잘 알려져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성장하고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종교를 받아들인다. 종교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어서 비혈육에게 수평적으로 전파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환경에서 그런 개종은 무시해도 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성인들 중에는 생우유를 마시고 별 탈 없이 소화시키는 사람도 많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물론 유아기에는 우유를 잘 소화시켰지만 젖을 뗀 후로는 필수 효소인 락타아제를 만드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기 때문에 더 이상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이는 포유동물의 정상적인 과정이다. 누가 락토오스 내성이고 누가 아닌가? 여기에는 유전학자들이 식별할 수 있는 분명한 패턴이 있다. 락토오스 내성은 낙농업 문화의 후손에 해당하는 인구 집단들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락토오스 과민증은 중국인과 일본인처럼 목축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후손에 공통적이다. 락토오스 내성은 유전적으로 전달되지만, 그 유전적 특성의 배경인 짐승을 돌보는 경향, 즉 목축 성향은 문화적으로 전파된다. 어쩌면 그것도 유전적으로 전달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한에선 그렇지 않다.
종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 음식 기호 이론, 공생자 이론, 정자 이론. 화폐 이론, 진주 이론, 혹은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종교는 윶너적 진화와 조금도 닮지 않은 문화적 현상들을 포함할 수 있지만, 만일 그렇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누구에게 이익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다른’종교들의 근원과 원인을 기꺼이 연구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 자신의 종교만큼은 어떤 이유로든 취급 불가라고 주장한다면 아무래도 위선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당신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당신의 종교가 다른 종교들과 같은 수준의 연구를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요약: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당, 화폐에서부터 음악, 사랑. 종교에 이르기까지-에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다. 우리의 이유 이면에, 그리고 그로부터 동떨어진 곳에는 진화적 이유, 즉 자연선택이 승인해 온 부유하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 2부 종교의 진화
[4장] 종교의 뿌리
1. 종교의 탄생
신자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 이상한 믿음과 관습은 태초부터 존재하진 않았다. 마르셀 고셰는 종교의 정치사를 논하는 저작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가 알고 잇는 바로는 종교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예외 없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가의 협소한 관점이며, 결코 사실이 아니다. 종교적 믿음과 관습이 누군가의 머리에 떠오르기 이전에도 시대는 존재했다. 어떤 종교적 믿음들은 아주 오래됐지만, 또 어떤 종교적 믿음들은 신문 보관소에서 그 출현을 읽을 수 있다. 이 모든 종교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19세기 말에 파푸아뉴기니아에 도착한 루터교회 선교사들이 멜라네시아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을 때 그들은 완강한 의심에 부딪혔다. 왜 이 변장한 조상들은 구두쇠처럼 화물을 풀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게 하려는 것일까?
당신의 종교는 신이 누군가에게 그 근본 진리를 계시했을 때 생겨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종교가 오늘날에도 번성하는 이유는 당신을 비롯해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도, 신이 당신을 축복했고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럴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종교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만일 그 사람들이 정말로 틀렸다면, 왜 그들의 교의는 잘못된 농사지식이나 낡은 건축 기술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을까?
모르몬 교회는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공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개신교는 50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이슬람교는 1500년이 되지 않았으며, 기독교는 2000년이 되지 않았다. 유대교의 역사는 기독교의 두 배가 채 되지 않으며, 오늘날의 유대교들은 확인 가능한 최초의 유대교에서 진화했다.
종교의 인기 있는 세 가지 목적 또는 존재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통에 빠졌을 때 위안을 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힌다.
-종교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해 준다.
-시련과 적 앞에서 집단의 협동심을 복돋운다.
2. 종교의 원료
3. 자연은 다른 정신을 어떻게 다루는가?
우리는 달에서 사람 얼굴을 보고, 구름에서 군대를 본다. 그리고 경험과 반성을 통해(선천적 성향이)수정되지 않았다면, 선천적 성향에 의해, 우리에게 아픔을 주거나 기쁨을 주는 모든 것에 악의와 선의를 부여한다. -데이비드 흄.<종교의 자연사>
인간의 정신을 종교의 발상지로 볼 때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신이 다른 정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해로운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발견하기 위해 정신 같은 것이 필요하다. 심지어 하등동물인 대합조개도 주로 한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정신의 주요 특질 중 하나, 즉 어떤 불안을 감지하면 해를 피하기 위해 먹이를 찾는 발을 껍질 속으로 움츠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진동이나 부딪힘이 있으면 껍질을 닫는다. ~~~좀 더 많이 움직이는 동물들은 좀 더 많은 것을 식별할 수 있는 더 큰 수단들을 진화시켰다.
동물의 행동을 묘사하고 예측할 때 지향적 자세의 유용성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동물 본인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안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향적 자세를 몇 가지 다른 용어로 부른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정신이론이라 부르지만 이 용어에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중립적인 나의 용어를 고집하고자 한다. 동물이 어떤 대상을 믿음과 욕망(그리고 지식과 목표)을 가진 행위자로 취급할 때 그 동물은 지향적 자세를 채택하고 있거나 대상을 지향계로 취급하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지향적 자세는 적대적인 세계에서 동물이 취하기에 유용한 관점이다. 외부 세계에는 그 동물을 원하고 또 그 동물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고 잇는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향적 자세를 진화시킨 종들이라도 그 정교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위협적인 경쟁자와 부딪혔을 때 많은 동물들이 뒤로 물러설 것인지 상대의 허세에 도전할 것인지를 정보에 따라 예민하게 결정하지만, 그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는 불충분하다.
요약: 생물학적 사고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선사시대를 거꾸로 추정할 때 우리는 언어가 출현한 것과 똑같이 민속종교도 의식적, 의도적 설계 없이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의존적인 과정을 통해 출현했을 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의 근저에는 민감한 상황에 대한 본능이 놓여 있다. 움직이는 모든 복잡한 것을 행위 agency - 믿음과 욕망, 그리고 그 밖의 정신 상태들 - 의 원천으로 취급하는 성향이 놓여있는 것이다.
[05] 종교의 초기 형태
1. 너무 많은 행위자: 연습 공간을 얻기 위한 경쟁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당신을 돋보이게 하는 유용한 사치품들은 조만간 필수품으로 발전한다. ~~~환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에 지나치게 의도를 부요하는 관습을 물활론animism이라 하는데, 말 그대로 움직이는 것에 영혼(라틴어로, 아니마anima)을 부여하는 관습이다. 털털거리는 차를 다정하게 달래거나 컴퓨터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은 물활론의 화석을 보여 주는 셈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행위를 정말로 진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문화의 사람들이 그런 행위에 몰두한다는 사실은 대상, 특히 좌절을 안겨 주는 대상을 믿음과 욕망을 가진 행위자로 취급하려는 충동이 인간 생물학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 차례 스쳐 지나가곤 하는 물활론은 미약하고 아이러니한 경향이 있는데 반해, 과거의 한때에는 바다로 흐르려는 강江의 욕망, 비구름의 좋거나 악한 의도 등이 곧이곧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예컨대 비의 신의 탐욕을 달래기 위해 제물로 바쳐졌던 불쌍한 사람들에게는)생사의 문제가 되기도 했다.
현실적 물활론이라 부를 만한 단순한 형태의 물활론은 결코 실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설계된 것들의 경향성을 추적하는 극히 유용한 방법이다. 정원에 심은 다양한 꽃들과 채소들이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거나, 말채나무를 따뜻한 실내에 들임으로써 그 가지가 봄이라고 생각하도록 속여 움을 트게 만드는 정원사는 도를 벗어나 자신이 기르는 피튜니아들이 어떤 공상에 잠기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설계되지 않은 물리적 체계들도 때때로 지향적 용어나 물활론의 용어로 묘사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강은 말 그대로 바다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지만,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수평을 이루려 하고 번개는 지상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길을 찾는다.
그러나 지향적 자세의 관점을 추구하는 방법은 때때로 실패한다. 우리 조상들은 날씨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믿음을 감추고 있는지를 계산하면서 날씨를 예측하고 싶어 했겠지만, 이 방법은 잘 통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종종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따금 비 춤(비를 부르는 춤)이 비로 보상ㅂ다기도 했을 것이다. 춤의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오래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 B.F. 스키너(skinner.1948)는 비둘기에 대한 무작위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놀라운 미신 창출 효과를 보여 주었다. 실험자는 비둘기가 무엇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찰깍 소리와 먹이 알갱이를 보상으로 주었다. 이 무작위 프로그램에서 비둘기는 곧 깐닥거리고, 빙글 돌고, 목을 쑥 빼는 등 정교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새들의 뇌에서 다음과 같은 혼잣말이 주절주절 흘러간다고 보지 않기란 어렵다.
“자, 어디 보자, 마지막으로 보상을 받았을 때 나는 한 번 돌고 목을 뺐지. 다시 한 번 그렇게 해보자. ...아냐, 먹이가 안 나오는군, 충분히 돌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 이것도 아닌 걸, 그럼 한 바퀴 돌고 목을 빼기 전에 한 번 깐닥거려 볼까?...바로 이거야! 좋았어! 그런데 방금 내가 어떻게 했지?...”
우리 조상들도 행복한 우연을 통해 그와 비슷한 효과를 습득햇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지향적 자세를 좋아하는 선천적 성향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보이지 않는 행위자나 극미인極微人을 만들어 내 당혹스러운 현상의 이면에 숨은 은밀한 조종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구름은 분명 믿음과 욕망을 가진 행위자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 비활성의 수동적 존재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행위자처럼 느껴지는 비의 신이나 구름 심이 뒤에 숨어서 구름을 조작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확실히 자연스럽다. P167
이 신기하고 모순된 생각 - 사람 ‘처럼 생긴’ (머리, 눈, 팔다리가 있고 어쩌면 특수 헬멧을 쓴)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라는 개념-은 다른 자기 모순적인 조합들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내부 공간이 전혀 없는 상자라는 개념이나 축축하지 않은 액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간단히 말하자면 이 생각들은 오랫동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정도로 흥미롭진 않다. 어떤 난센스는 다른 난센스보다 주의를 더 강하게 사로잡는다. 왜일까? 우리의 기억은 그 속에 저장된 내용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잘 기억되고, 또 어떤 것들은 너무 흥미로워 거의 잊을 수가 없는 반면에,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지원하다 조교 상관없이 법정 훈련”(방금 손에 잡히는 대로 신문을 펼쳐 맨 처음 눈에 띠는 기사를 무작위로 조합했다)은 일부러 스무 번쯤 혼자 되뇌든가, 그 단어들을 어떻게든 그 순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으면 길어야 몇 초 이상 기억할 수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습은 복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연습해(전화 번호, 지켜야 할 규칙)그것을 밈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다. 혹은 자연히 흘러가는 대로 놔두어 우리의 타고난 뇌의 경향들이 자극적인 것들을 자동적으로 연습하게 할 수도 잇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사건들을 회상하는 능력인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의 원천일지 모른다. 지난 생일에 당신은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가? 아마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 날 당신은 무엇을 입었는가? 이것은 기억이 날 것이다. 결혼식 전과 그 도중과 그 이후에 그 생각을 여러 번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모든 것을 쉽게 기록하는 기회평등의 저장고인 컴퓨터 메모리와는 달리, 인간의 뇌 기억은 경쟁적인 동시에 편향적이다. 영겁의 진화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들을 다른 종류의 것들보다 더 쉽게 기억하도록 설계했다. 이런 기억은 들어오는 것을 단 한 번 통과시킨 다음 중요한 것들은 곰곰이 생각하고 사소한 것들은 버리는 차별적 연습에 의존한다. 그것은 과거에 극히 중요했던 것들과 관련된 특성들은 온on 상태로 유지시키는, 아주 좋은 일이다. 잠재적 밈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충고는 이것이다. 많이 연습(복제)되기를 원한다면, ’중요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라!
인간의 기억에는 중요한 조합을 선호하는 편향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동물의 뇌에 존재하는 기억이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기억은 상대적으로 공상이 스며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어가 없기 때문에 동물의 뇌는 자연현상에서 볼 수 없는 조합들이 폭발하여 범람할 여지가 없다. 불안에 사로잡힌 원숭이가 어떻게 걸어 다니는 나무나 보이지 않는 바나나 같은 반직관적 조합- 원숭이에게 보여 줄 수만 있다면 당장에 마음을 사로잡을 생각들-을 꾸며낼 수 있을까?
이 공상 발생의 과정과 같은 일이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단지 인류에게만)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지만 이 문제는 더 깊이 연구해볼 진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다른 목적들을 위해 자리를 잡은 재료들만 이용하더라도, 이 가설은 온갖 신비한 창조물과 귀신들을 만들어 낸 대단히 비옥한 상상력을 충분히 설명할 것이다. 괴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든 우연히든(언어가 발명된 것처럼) 발명되어야 했다. ~~~인간에게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비둘기에게서 미신을 이끌어 낸 스키너의 실험과 같은 종류의 실험이라면 원숭이의 기억 메커니즘에서 이런저런 편향과 특징을 발견할지 모른다.
좌우대칭은 매우 중요하다. 동물이나 사람의 두 면이 똑같아 보일 때 그것은 그들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먹잇감이나 포식동물과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특징이다. 또한 사람들이 대칭적으로 배열되는 시각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인간 집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단순한 화장이나 이발 기술에서부터 직물의 무늬와 실내 장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가 있다.
왜 다른 종들에겐 예술이 없을까? 이번에도 마음이 떠오르는 답 - 이것은 그 답이 입증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충분히 입증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은 그들에겐 언어가 없기 때문에 대용 자극물을 조합해 낼 도구가 없고, 그래서 그 감각들의 순열 조합을 폭발시킬 관점이 없다는 뜻이다. 빈틈없는 관찰과 시행착오를 통해 틴버겐은 그의 새들(그리고 다른 동물들)을 수많은 기이한 행동으로 유인하는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들을 영리하게 고안했다. 분명 동물들은 때때로 자연에서 자신에게 속아 무심코 초정상 자극을 발견하고 그 자극이 유도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다음엔 무엇을 하겠는가? 기분이 좋다면 다시 하겠지만, 진정한 설계를 폭발시키는 다양성의 창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모든 민족의 신화에 득실거리는 잊기 어려운 님프들과 요정들과 도깨비들과 귀신들은 당혹스럽거나 무서운 일이 잇을 때마다 행위자를 찾는 과잉 습관과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것은 엄청난 수의 행위자 개념을 무분별하게 만들어 내고, 그 대부분은 너무나 어리석어 한순간도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지 못한다. 단지 잘 설계된 극소수만이 연습 경쟁에서 살아남아 변이와 개선의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뇌에서 연습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수 십억의 경쟁자들을 이기고 살아남은 실력자들이다. 이것은 물론 새로운 생각이 아니며, 여러 세대 동안 회자되어 온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확대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설명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미신이었다. 마당에서 꼬마 요정을 찾거나 침대 밑에서 도깨비를 찾는 것은(아직) 종교가 아니다. 무엇이 빠졌을까? 우선, 믿음이다!
설마 하면서도 매혹을 느끼는 수준(하늘을 나는 담요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해!), 성가심을 수반한 불확실성의 수준(유니콘? 난 그런 걸 본 적이 없어), 그리고 강한 확신의 수준(악마는 저기 서 잇는 말처럼 실제로 존재해)이 그런 정신 상태들이다. 매혹은 연습과 복제를 촉진하기에 충분하다. 유니콘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유니콘 개념의 강력한 사본을 하나씩 갖고 있다. 반면에 푸두(pude, 남아메리카의 가장 작은 사슴-옮긴이)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뚜렷한 이점이 있음에도, 그 개년을 알고 잇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종교의 매혹은 반직관적인 행위자들에 대한 매혹보다 훨씬 크다.
2. 이해관계자로서의 신들
다른 종들은 지향적 자세를 제한적으로 - 포식자의 먹잇감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그리고 약간의 위협과 허세를 위해- 사용한다. 반면에 우리 인간은 타인과의 개인적 관계에 집착하여 자신의 평판, 지키지 못한 약속과 의무를 걱정하고, 애정과 충성을 점검한다. 숨어 있는 포식자와 줄어드는 식량원을 항상 걱정해야 하는 다른 종들과는 달리, 우리 인간은 급박한 문제와 급박하지 않은 문제를 폭넓게 거래해 왔다. 서로 다른 의제를 가진 소통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집단 속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 우리 인류는 그 복잡한 의제들과 변화하는 관계들을 염두에 두고 계산해야 한다는 비용을 지불한다.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 누가 나를 신뢰하는가? 누가 경쟁자이고 누가 친구인가? 나는 누구에게 빚을 졌으며, 누구의 빚을 탕감해 주고 누구의 빚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 세계는 파스칼 보이어의 용어를 빌리면 그런 전략 정보로 가득한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카드게임에서 처럼)다음과 같다.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우리는 전략 정보에 대한 다른 사람의 접근이 결코 완벽하거나 자동적이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녀가’ 남편과 헤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내가 그 돼지를 훔쳤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까?
사람들은 이 모든 복잡함을 어떻게 해결할까? 때때로 사람들이 새 카드 게임을 배울 때, 게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람들이 쥐고 있는 패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으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게임의 전술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면 상상력이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각자가 감추고 잇을 패를 실제로 보게 되어 사실에 관한 추론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테이블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패를 추적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카드를 감추고 잇을 때 누구에게 어떤 카드가 있을지 상상하는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모든 전략 정보에 접근할 수 잇는 행위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떻겠는가? ~~~- 보이어의 말을 빌리면 ‘무제한 접근full-access행위자’- 가 있다면 그것은 중의를 사로잡는 조합이겠지만, 그 외에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
세계종교에 대한 한 조사에서 무제한 접근 행위자들은 거의 항상, 사라졌지만 결코 잊히지 않은 조상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식과 손자와 증손자들에게 누차 전달되는 과정에서 윤색되고 다듬어지듯이, 아버지의 혼령도 여러 가지 색다른 성질이 더해지겠지만 무엇보다 그 이미지의 핵심은 전략 정보 분야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종종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장난을 치려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잘 꿰뚫고 있었는지를 기억해 보라. 조상도 그와 같으며, 단지 정도가 더할 뿐이다. 당신은 조상들에게 심지어 비밀스러운 생각조차 감출 수 없으며, 조상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제 당신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 할 수 있다. 나의 조상들은 현재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할까?
오래전에 딸이 다섯 살이었을 때 아이는 체조선수인 나디어 코마네치가 평균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을 훙내 내다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져 발가락 두 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나는 겁에 질린 아이를 어떻게 진정시켜 무사히 응급실로 데려갔을까? 영감이 떠올랐다. 나는 맥박이 느껴지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자, 안드레야! 내가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줄게. 마음속으로 발가락의 통증을 ‘내’ 손으로 밀어내는 거야. 자, 해봐. ‘밀어! 밀어!” 아이가 내 말대로 하자 효과가 나타났다! 아이는 아빠의 손으로 “통증을 밀어 보냈다.”(최면 효과와 함께) 그 효과는 불과 몇 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중간 중간에 즉석에서 최면 마취를 받고서 아이는 응급실에 도착했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자연선택은 아이들의 뇌에 부모와 부족의 연장자들이 말하는 것을 믿는 경향을 심는다.
3. 신들과의 대화
어떻게 신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우리 조상들은(살아 있는 동안에) 대단히 교묘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점占이었다.
4. 최면술사로서의 샤먼
신경 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딘 해머는 (우리 뇌에서 최면 감수성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 최근 저작인 <신 유전자>에서 VMAT2 유전자는 모노아민이란 단백질의 제조법을 공급하고 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모노아민은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신호들 -즉, 뉴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신경조절물질과 신경전달물질, 이들 물질을 복원하면서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뉴런 내부의 운반물질 - 을 전달하는 단백질 집단이다. 프로작을 비롯해 최근에 개발된 많은 항정신성 또는 기분 전환 약물들은 이런저런 모노아민의 활성을 높이거나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인간의 VMAT2유전자는 다형 발현 polymorphic을 하는데, 이는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변이체가 잇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볼 때 VMAT2유전자 변이체들은 사람들이 동일한 자극에도 감정적으로 또는 인지적으로 다르게 반응하는 현상을 잘 설명하고, 왜 어떤 사람들은 최면 유도에 상대적으로 내성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은 쉽게 혼수상태에 빠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아직 이 가설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5. 구어 문화의 기억 처리 장치
종교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종교의식의 의미와 기능을 이론화했지만 대개 진화론적 배경을 무시하는 장님의 관점에서였다. 의식을 근본적인 욕구나 믿음이나 그 어떤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이론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의식이란 밈 전파 과정의 복제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의식적인 어떤 설계자가 아니라)문화적 진화가 설계한 기억 향상 과정이라는 주장을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진화생물학의 가장 분명한 교훈 중 하나는, 복제 장치가 고장 나거나 심지어 조금이라도 퇴보하는 계통의 미래에는 빠른 멸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숭배의식들이 태어났다가 빠르게 소멸하는 것을 목격한다. 최초의 숭배자들이 신앙을 잃거나 관심을 잃고 떠나가 몇 년 후엔 거의 흔적도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복제 기술을 이용하지 않으면 그들의 유지 열망은 조만간 꺾이기 마련이다.
※요약: 민속종교의 명백한 고비용은 생물학에 대한 도전으로, 아직 입증되진 않았지만 시험할 수 있는 가설들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아마 HADD에의해 생겨나 과잉 인구로까지 증가한 가상의 행위자들 중에서, 예를 들어 점에서는 결정 도움 수단으로, 건강 유지에서는 샤먼의 공범으로 숙주에게는 도움이 될 후보자가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징발 또는 외용外用된 정신 구조물들은 이제 번식 솜씨에 대한 선택압력하에서 광범위한 설계 수정을 거쳤다.
[06] 집사의 진화
1. 음악과 종교
서투른 종교의식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종교적 관습의 설계와 실행에는 기교가 있다. 말을 더듬고 단조롭게 말하는 목사와 지루한 성찬식, 성가대의 위태로운 노래, 언제 일어서고 무엇을 말하고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 이런 엉성한 예식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모인 회중마저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만들 수 있다. 교묘하게 거행되는 예식은 회중을 숭고한 환희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좋은 음악 교수는 모차르트 교향곡이나 바흐 칸타타를 분해해 다양한 설계 특징들이 어떻게 작용해 마술을 부리는지를 보여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대 마술의 기법을 자세히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들에게 설명은 경이로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축구 경기의 규칙과 요점을 자세히 모른 채 선수들이 공을 앞뒤로 차고 열심히 내달리는 것만을 구경하는 사람의 피상적 이해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이 “멋있는 동작이야!”라고 진지하게 외쳐도, 실은 눈앞에 펼쳐지는 탁월함을 대부분은 놓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교단의 모든 목사는 재즈 음악가와 같다. 그들은 사랑받는 표준 곡들을 정해진 대로 연주하면서 전통을 유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하며, 속도를 늦추거나 높이고, 기도의 한 구절을 삭제 하거나 다른 구절을 더하고, 참석자들의 마음과 가슴을 사로잡기에 적당한 비율로 친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뒤섞는다.p210
오늘날의 기독교적 사고는 초기 기독교의 사고와 크게 달라졌다. 오늘날의 음악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음악과 다르듯이, 오늘날의 주요 종교들도 그 종상들의 형태들과 다르다.
2. 실제적 지식으로서의 민속 종교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풍상 앞에서, 설계된 것은 무엇이나 갱신과 복제를 거치지 않으면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 생물학의 유기체, 신체 기관, 본능이 그렇듯이, 인간 문화의 조직과 습관도 이 법칙, 즉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을 피하지 못한다.
동물들이 본능적 행동을 왜 하는지를 동물들이 안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 본능의 좀 더 깊은 목적들을 우리는 좀처럼 들여다볼 수가 없다. 우리와 다른 동물의 차이는 우리가 그런 무지를 걱정한다는 것 뿐이다! 다른 종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해의 일반적 필요를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이 강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차이로 판단할 때, 우리 조상들 중 극소수만이 친척들 및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들을 의문시하는 시간이나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p215
민속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적 관습은 사냥 및 수집 또는 경작 및 수확과 나란히 놓인, 실생활의 자연스런 일부다. 그리고 그들이 재물을 바치는 신들을 정말로 믿는다고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신들을 얼마나 크게 믿는지를 영원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입 밖에 꺼낼 의심이 없으면 믿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3. 반성의 시작과 비밀주의의 탄생
4. 종교의 순화
※요약: 종교의 전파에는 방대한 수정이 수반되어 왔고,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침투한 생각들의 집사가 되고 그 생각들을 길들임에 따라 종종 의도적이고 예측에 근거한 수정이 발생해 왔다. 비밀주의, 사기, 반증에 대한 체계적 방어 같은 특징들이 출현했다. 그런 특징들은 누구에게 이익인가? 를 민감하게 결정하는 과정에 의해 설계되었고, 그 과정에는 집사들의 동기가 개입되어 왔다.
[07] 단체정신의 출현
1. 좋은 의도로 덮인 길
2. 개미 집단과 회사
밈이란 용어를 만든 리처드 도킨스는 결코 종교에 우호적이지 않고 종종 밈-특히 종교적 밈-을 바이러스에 비유해, 인간 숙주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면서 증식하는 밈의 능력을 강조해 왔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어로 ‘이슬람’이 복종을 의미한다는 것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무슬림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보다 이슬람교의 확산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이름의 어원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자신의 행복,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말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그들의 최고선이다. 그리고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자식이나 손자를 두지 말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그 명령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밈이 그들을 징발했고 그들의 번식 본능을 둔화시켰다는 생각에 위축되지 않고 기꺼이 그 생각을 받아들인다.
어떤 개미도 말씀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개미에겐 언어가 없고, 말로 표현할 문화도 없다. 그러나 우리 언어 사용자들은 단지 하나의 말씀이 아니라 여러 말을 이해하고, 많은 말들이 우리의 주목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때로는 서로 협력하여 회사를 형성하고 우리의 충성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
3. 성장하는 종교 시장
종교 단체의 앞날을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4. 대화할 수 있는 신
긴장이란 종교 집단과 외부 세계 사이의 차별성, 격리, 적대감의 정도를 가리킨다. 그 스펙트럼상에서 규모가 큰 기성 교회들은 긴장도가 낮고 비주류 종파와 숭배 의식들은 긴장도가 높다.
※요약: 인간의 집단성 경향은 몇몇 경제학적 종교 이론에서 평가되는 것보다 더 신중히 평가해야 할 개념이지만, 그것은 또한 동물들에게서 진화함 무리 짓기 본능보다 더 복잡하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다. 밈의 관점을 채택할 때 우리는 인간의 충성이라는 현상이 부유하는 합리적 근거와 잘 확인된 합리적 근거의 결합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복종을 신중한 경제적 결정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음을 인정하고, 종교를 각기 다른 필요와 취향을 가진 신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적인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설계된 체계로 보는 관점의 분석력과 예측력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다.
[08] 믿음에 대한 믿음
1. 믿는 것이 낫다
1장의 끝에서 나는 흄이<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다룬 문제로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가라는 문제다. 이 장에서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
2. 지향적 대상으로서의 신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믿음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신에 관한 전승 지식의 많은 부분이 산타클로스나 원더우먼에 관한 지식처럼 믿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악마의 사도>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올바른 충고를 내놓는다.
“현대의 유신론자들은 아마도 바알과 황금송아지, 토르와 보탄, 포세이돈과 아폴로, 미트라와 아몬 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사실 무신론자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류가 믿어 왔던 대부분의 신들에 대해 무신론자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신 하나를 더할 뿐이다."
3. 믿음 구성 노동의 분업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기쁘다. 신을 가장 훌륭한 존재로 믿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무신론자이면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것은 완전히 가능하다. 그런 사람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훌륭한 정신 상태라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신을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신에 대한 그들 자신의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명제를 믿으면,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틀렸다고 믿는다.
4. 최소공배수?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다!(신을 믿는 사람은 거의 모두 신에 대한 믿음을 믿기 때문에, 세상에는 신을 믿는 사람보다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사람이 실제로 더 많다.)
다음과 같은 당혹스러운 질문이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 중(대략) 몇 퍼센트가 실제로 신을 믿을까? 이 경험적 질문을 조사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노동 분업 때문에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당신 자신이 신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앨런 울프는 미국 종교의 발전에 대한 최근의 연구서<미국 종교의 변형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르면서도 종종 열정적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이다.” 만일 당신이 이 범주에 속한다면, 울프의 표현과는 정ㅂ나대로 당신은, 비록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당신이 그 특정 교의의 신을(열정적으로든 어떻게든) 믿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신을 믿는지를 판단할 확실한 입장에 있지 않다.
5. 고백을 위해 설계된 믿음
“한 등산객이 혼자 절벽을 오르다 미끄러지고 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절벽 꼭대기로부터 수천 피트 아래 밧줄 끝에 매달려 있다. 밧줄을 타고 오르거나 옆으로 흔들어 안전한 곳에 닫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절망적으로 외친다.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놀랍게도 구름이 열리고 아름다운 및이 그에게 쏟아진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가 대답한다. 그래, 나의 아들아. 내가 도와주겠노라. 칼을 꺼내 밧줄을 잘라라! 등산객은 칼을 꺼내려다가 문득 손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 다음 이렇게 외친다. 다른 누구 없어요? 나존 도와주세요!”
금언이 의미하는 것은 행위자의 말보다는 실제 행동이 그 행위자가 믿고 있는 것의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민속 종교에서 체계적 종교로의 전환은, 매우 분명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맣는 믿음에서 체계적으로 애매모호한 결과를 낳는 믿음으로의 이동이라는 특징을 보여 준다. 이제 입에 발린 말이 믿고 행동할 수 잇는 유일한 길이 된다. 만일 당신이 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비의 신이 비를 내려 주지 않을 거라고 정말로 믿는다면, 당신은 소를 제물로 바치면 된다. ~~~만일 당신의 신이 당신을 구해 줄 거라고 정말로 믿는다면, 당신은 밧줄을 자를 것이다.
입에 발린 말은 이렇게 필요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말해야 하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고백은 자발적이지만 믿음은 자발적이지 않다. 믿음은 이해를 필요로 하고, 이해는 쉽게 획득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 문제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노력한다고 해서 믿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칭거 추기경의 선언은 이 점에서 약간 도움이 된다. “신앙은 계시 받은 진리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신비를 명석하게 이해할 수 잇도록 그 신비를 꿰뚫어 보게 한다.”
왜 노력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교의에 대한 믿음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밈의 관점이 어느 정도 설명을 제공한다. 밈에 관한 최초의 논의에서 도킨스는 이 문제와 그에 대한 전통적인 해답에 주목했다.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때로는 어른들까지도 만일 성직자들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으면 사후에 끔찍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 믿는다. ...지옥불이란 개념이 무한히 계속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자체로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Dawkins.1976)만일 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발생할 거라고 경고하는 행운의 편지를 받았다면, 당신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가진 않더라도 그 전략을 이해할 것이다. 신뢰하는 사제가 보증하는 말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6. 레바논의 교훈: 드루즈파와 킴 필비의 이상한 사례들
나는 (40여년전) 베이루트에서 잠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슬람 역사가였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문화관으로(그리고 전략사무국-OSS, CIA의 전신)근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곰 인형과 장난감 트럭을 갖고 놀다가 가까운 사원의 첨탑에서 뮤에진(기도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신자들에게 기도 시각을 알리는 소르를 날마다 들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는 그 후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내게 전율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다섯 살에 베이루트를 떠났고, 1964년에야 비로소 그곳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기 위해 돌아왔다. 우리는 베이루트 외곽의 한 산악 마을에 잠시 머물렀다. 마을 주민은 대부분 드루즈파(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였고,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약간 섞여 있었다. 내가 드루즈파가 아닌 주민 몇 명에게 드루즈 종교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아, 드루즈파는 대단히 슬픈 족속이다. 드루즈 종교의 첫 번째 행동 방침은 외부인에게 그들의 신앙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교도에게는 절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루즈인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드루즈파에게는 그들 자신의 성서가 있었으나 그것을 잃어버렸고, 그것이 너무 창피해서 온갖 방식으로 엄숙한 난센스를 지어내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드루즈파의 의식을 보면 여자들은 어떤 의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자들은 그런 비밀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7. 신은 존재하는가?
마침내 나는 앞에서 약속한 대로 신의 존재를 위한 논증들을 고찰할 시점에 이르렀다.
우주론적 논증에서 가장 단순한 논증에 따르면 모든 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우주에도 반드시 원인, 즉 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논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에 원인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에(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그 전제를 부정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전제를 인정한 다음 무엇이 신의 원인이었는가? 라고 묻는다. 이때 신은 자기 발생적이라는 대답은 다음과 같은 반증을 촉발한다. 만일 어떤 것이 자기 발생적일 수 있다면, 왜 하나의 전체로서 우주는 자기 발생적일 수 없는가?
※요약: 신에 대한 믿음은 대단히 중요해서 반증이나 진지한 비판의 위험에 노출 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 없게 만들게 했다. 그 결과, 교수들조차도 그들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신의 존재를 입증하거나 논박하는 목표를 돈키호테식의 여행으로 만들었지만, 같은 이유로 그리 중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 3부 오늘날의 종교
[09] 종교를 위한 구매가이드
1. 신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사람들은 대부분 신에 대한 믿음을 믿고, 심지어(항상)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다. 그들은 왜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가? 한 가지 명백한 답은 그들은 선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그런 삶을 위해 신에게 봉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2. 학문의 연막
3. 무엇을 믿는가가 왜 중요한가?
왜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가?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단지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무와 산을 믿고, 탁자와 의자를 믿고, 사람과 장소를 믿고, 바람과 물을 믿고, 신을 믿는다. 이것으로 신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설명되지만, 그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신에 관해 무엇을 믿는가에 그토록 주의하는가?
내 생각에 여호와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권능과 위대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정말로 노여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신을 넘어섰다(그렇지 않은가?)우리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설계 작업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가정하는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igence은 질투를 할 수 잇는 부류의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열역학 제2법칙은 누군가가 자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에 신경 쓰지 않고, 그래서 나는 모든 존재의 근원도 그와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자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화에 대한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나의 믿음은 종교가 아닌가? 아니다.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진화를 사랑하는 우리는, 진화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진화에 대해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이 위대한 생각을 잘못 이해하고 낭만적으로 허위 진술을 해서 그들 자신의 판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판단까지도 그르치게 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비판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신비나 몰이해는 안전하게 도피할 안식처가 없다. 그렇다. 진화의 지평에는 겸손과 정의와 순수한 기쁨이 있지만, 그것은 이성의 잡라적 포기(짜릿함의 포기는 말할 것도 없고)와 무관하고 그런 포기에 이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진화라는 단어의 전파를 도덕적 명령으로 느끼지만, 진화는 나의 종교가 아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이제 그런 근본적인 질문 때문에 평정심을 잃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종교의 이해득실은 무엇인가? 종교는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렬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가치가 있는가? 윌리엄 제임스도 이 질문을 다루었는데, 나는 그의 말을 우리 논의의 틀로 이용하고자 한다. 그의 말은 그 자체로 훌륭할 뿐 아니라, 우리가 지난 세기에 이룬 진보를 어느 정도 드러내면서 많은 점에서 우리의 사고에 명료함과 예리함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밈이나 밈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훨씬 이전에, 제임스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원리에 대한 종교들의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종교들은 실제로 진화해 왔음에 주목했고, 그 진화가 항상 인간의 가치 판단에 대응해 왔음을 간파했다.
종교는 우리를 향상시키는가? 윌리엄 제임스는 그럴 수 있는 두 가지 주된 방향을 구분했다. 종교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더 유능하게 만들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건강하게 하고, 더 확고부동하고 침착하게 하고, 유혹을 더 잘 견디게 하고, 절망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하고, 불행을 더 잘 견디게 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마음 치료 운동mind-cure movement이라 부른다. 다음으로 종교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종교가 이렇게 기능하는 방식을 그는 성인다움saintliness이라 부른다. 혹은 종교는 상황에 따라 정도는 달라질 수 있지만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 할 수 있다. 두 목적 모두와 관련하여 할 이야기가 많다. 이 장의 나머지는 첫 번째 문제에 전념할 것이고, 종교의 도덕적 역할이라는 대담히 중요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4. 당신의 종교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제임스(윌리엄 제임스)는 완전히 다른 두 부류의 사람, 즉 마음이 건강한 사람과 마음이 병든 사람이 있으며 두 부류는 종교로부터 각기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고 추측했다. 또한 교회는 다수의 만성적인 종파와 소수의 격심한 종파 간의 끝없는 내부투쟁에 직면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을 항상 즐겁게 할 수는 없고, 그래서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타협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종교는 건강에 좋은가? 많은 종교들이 이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어 왔고, 일반인들을 위한 자선 행위와는 별도로 구성원들의 건강과 사기를 함께 증진시켜왔다는 증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화된 나라보다 여성의 신체적 매력이 작은 역할을 하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거식증과 폭식증 같은 섭식 장애가 훨씬 적다. 현재 급증하는 관심 속에서 규칙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살거나 심장병이 적은가 같은 문제에 전염병학과 공중 보건의 모든 통계적 수단이 적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조사 결과는 종종 대담히 긍정적이다.
※요약: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종교는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몇 개의 보호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사랑 장벽, 학문 영역의 장벽, 신에 대한 충성 장벽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종교적 충성의 이해득실을 차분히 검토해야 하고, 가장 먼저 종교는 건강에 좋은가? 라는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증거는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는 건강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이익을 제공하는 더 좋은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 부작용이 이익을 초과한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이르다.
[10] 도덕과 종교
1. 종교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드느가?
종교는 선하게 행동해야 할 명백한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도덕성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 무한한 조상을 얻게 된다는 약속과,(취향에 따라) 선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지옥에서 무한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협박이다. 이 논리에서 볼 때, 신의 채찍과 당근이 없으면 사람들은 목적 없이 방황하거나 가장 비천한 욕망에 빠지고, 약속을 어기고, 배우자를 속이고, 의무를 게을리 한다. 이 논리에는 잘 알려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것은 사실이 아닌 듯 하다. 이는 좋은 뉴스다. 왜냐하면 둘째, 그것은 인간 봉성을 비천하게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든 아니든 천국의 보상 그리고/또는 지옥의 형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살인, 강간, 강도, 약속 위반을 더 많이 저지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나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의 수감 인구는 카톨릭교도, 신교도, 유대인, 무슬림, 기타 종교 신자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는데, 그 비율은 전체 인구에서의 비율과 거의 일치한다. ~~~미국에서 이혼율은 브라이트들이 가장 낮고 거듭난 기독교인들이 가장 높다(Bama.1999)
2. 종교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가?
종교는 우리가 존중할 만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가? 사이비 종교의 마수에 걸린 사람들이나 사기꾼 종교인에게 속아 평생 모은 돈을 바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특별한 종교가 사기라 해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의미 있는가?
3. 신성한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신이 믿는 종교의 도덕적 가르침은 -간단히 말해-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의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모범적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내 주장은 다르다.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도덕적 신념의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단지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또는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또는 무슬림(또는 힌두교, 시크교도...)이기 때문에 그것은 논의할 수 없고, 토론할 수 없고, 협상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선언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견해를 진지하게 여길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도덕적 대화에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며, 자신의 견해는 진지하게 숙한 것이 아니니 더 이상 들어 줄 가치가 없다고 암암리에 인정하는 셈이다.
오래전부터 신앙심이 깊은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 연구와 설득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념을 열심히 옹호해 왔다. 그들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곤란한 점이 있다면, 그들의 비타협적 태도가 그들의 종교에 보탬이 되기는 커녕 문제를 악화시키고 잇다는 것을 그들보다 덜 합리적인 동료 신도들에게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외교적 판단에 직면하는 것뿐이다.
이제는 모든 종교의 합리적인 신자들이 용기와 열정을 발휘해 어느 전통에서든 신에 대한 무기력한 사랑을 존중하는 전통을 파기할 때가 되었다. 그런 전통은 존경을 받기는커녕 변명할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가장 부끄러운 사람은 사제, 랍비, 이맘을 비롯한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들은 신도들이 진실한 태도로 도덕적 지도를 요구하면,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성서에 대한 어떤 틀림없는 해석을 내놓고 그 뒤에 숨어버린다.
앞에서도 종종 그랬듯이, 우리는 이렇게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의 합리적 근거는 전적으로 부유하는 근거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의 종교는 어떻게 해서 수영장과 같을까? 해답은 이렇다. 그것은 볍률에서 말하는 이른바 ‘유인적 위험물 attractive nuisance'이다. 유인적 위험물 원칙이란 아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사유지 안에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그 유인물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경고판을 세우거나 그보다 더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종교를 관리하고 종교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종교에 이끌리고 종교로부터 고결한 망토를 제공받는 사람들이 당할 수 잇는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
4. 내 영혼을 축복하라 :영성과 이기주의
물질주의적 또는 유물론적이란 말의 완전히 다른 두 의미를 살펴보자. 일상적 의미에서는 물질적인 소유물, 부, 그리고 부의 모든 상징물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현상을 비물질적인 어떤 것-예컨대 데카르트의 연혼이나 영기 또는 신 - 에도 의지하지 않고 설명하기를 바라는 이론을 가리킨다. 과학적인 의미에서 유물론적의 일반적인 부정은 이원론적이다. 이원론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실체, 즉 물질과... 정신을 구성한다고 추정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두 의미를 이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연결 고리는 충분히 명백하다. 만일 불멸의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천국에서 보상을 얻을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이 물질적인 세계에서 얻을 수 잇는 모든 것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다. 만일 일상적인 의미에서 물질주의적의 부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영적인 Spiritual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종교적 관점에 따라 사람들이 약간씩 다르게 표명하는 견해 하나를 발견했다. 인간에게는 영성에 대한 깊은 욕구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인 체계적 종교로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다른 사람들은 뉴에이지 숭배 의식, 운동, 취미로 충족시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미술, 음악, 도예나 환경 운동-또는 축구!-로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면 사람들은 대개 꽁무니를 뺀다. ~~~~영성이 무엇인지를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확인하려면, 여러 사람의 실망스런 답변을 요약한 다음의 풍자적인 설명을 직접 다듬어서 더 좋은 설명이 나올수 있는지 확인해 보라. “ 영성이라, 당신도 알다시피, 그건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아주 심오한 생각에 몰두하는 거지. 그건 누구의 옷이 더 멋있는가, 새 차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저녁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는 게 아니야. 누구나 알다시피, 영성은 물질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관심이지.
나는 이렇게 도덕적 선을 영성에 일치시키고 도덕적 악을 유물론에 일치시키는 것이 인생의 실망스러운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에 아주 깊이 틀어박혀 있고, 오늘날 유물론적 과학의 전진을 가로막는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 우리 유물론자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초자연적인 어떤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아무리 어리석고 한심해도 자기들은 최소한 ‘천사의 편’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의 비물질성과 불멸성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영혼을 믿는 사람들보다 덜 진지하고, 덜 도덕적이고, 모든 인간의 복지에 덜 기여한다고 볼 이유는 전무하다. 그러나 그런 유물론자들은 사람들의 물질적인 행복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만일 그 말이 단지 사람들의 집, 자동차, 음식처럼 ‘정신적’ 건강과 반대되는 육체적인 것들을 의미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결국 선량한 과학적 유물론자는 예를 들어 음식과 옷이 충분한가에 관심을 기울일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정의, 사람, 기쁨, 미, 정치적 자유, 그리고 심지어 종교적 자유가 충분한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제 도덕적 선과 영성을 혼동하는 이 논리적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오해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 대단히 영적인 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고,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세계의 도덕적 문제에는 전혀 무관심하다. 사실 도덕적 선과 영성을 혼동함으로써 발생하는 정말로 구역질나는 부작용 중 하나는, 그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선행을 게을리 하고 경건함과 도덕적 깊이를 가장한 신성한(그리고 꿰뚫을 수 없는)가면 뒤에 숨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 욕구에 진지하게 주목하면 자연히 도덕적으로 선한 삶에 이를 것이라고 대단히 정직하고 순진하게 믿는다. 종교와 세속을 막론하고 내가 아는 많은 활동가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과 선을 통합하는 수백 년의 경향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해 나는 전혀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요약: 종교를 도덕성의 보루로 보는 유명한 견해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천국의 보상이 좋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준다는 생각은 품위 없고 불필요하다. 종교가 인생에 의무를 부여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빠진 위선적인 함정에 의해 위태로워진다. 종교적 권위가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기초를 제공한다는 생각은 진정한 세계주의적 탐구에서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영성과 도덕적 선의 관계를 가정하는 것도 착각이다.
[11]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진화론은 그저 이론에 불과한가?
2002년 이후로 조지아 주, 코브 카운티의 학교들은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는 사실이 아니라 이론이다 라는 스티커를 붙였으나, 최근에 한 판사는 스티커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헌법 제 1조를 위반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조지아주 헌법은 세금을 종교를 보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뉴욕타임스>2005년 1월14일)
생물학 안에도 역시 수많은 논쟁적인 이론이 잇지만, 경쟁하지 않는 배경 이론은 진화론이다. 특히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논쟁을 열거하자면 조류의 비행, 종 분화에서 이주의 역할에 대해 경쟁하는 이론들이 있고, 인간의 주거지로 가가이 다가가면 언어의 진화이론, 두 발 보행, 배란 감추기, 정신분열증에 대해 경쟁하는 이론들이 있다. 결국 이것들은 모두 적절히 가려질 것이고 몇몇 이론은 이론이 아니라 사실로 판명될 것이다.
종교는 진화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좋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담배는 우리에게 안 좋지만 아주 잘 생존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언어를 뱅우는 것은 언어가 우리에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언어를 배우는 것은(만일 우리가 정상적인 신경계를 갖고 있다면)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교의 경우는 언어 학습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가르침과 훈련, 훨씬 더 정교한 사회적 압력이 뒤따른다. 이 점에서 종교는 말하기보다 읽기에 가깝다. 읽을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들이 발생하고, 아마도 신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거나 더 큰 이익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종교가 제공하는 어떤 이익들과도 무관하게 종교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적당한 적포도주가 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기뻐한다. 그것이 나에게 좋건 나쁘건 나는 그것을 좋아하고, 계속 마시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종교도 그와 똑같을 수 있다.)
종교가 생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교는 수천 년 동안 가지치기, 수정, 편집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수백 만 개의 변이체를 낳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특징들, 바로 그 특징들을 위한 제조법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많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책에 스티커를 붙여 이 책은 사실이 아니라 단지 이론을 제시한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나는 즐겁게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세상의 구명보트라고 주장하거나 가정하는 모든 책이나 논문에도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나의 연구는 이미 이루어진 작업의 아주 작은 부분을 강조해왔고, 그것을 이용해 종교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가에 대한 기능한 이야기 중 하나를 살펴보았으며, 다른 이야기들은 언급하지 않고 지나쳤다.
2. 몇 가지 탐구 방법: 우리는 어떻게 종교적 확신에 안착하는가?
이 책에서 지금까지 내가 제기한 몇 가지 경험주의적 질문들을 살펴보자.
8장에서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 모든 사람 중, (대략) 몇 퍼센트가 실제로 신을 믿을까? 언뜻 보아서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다항식 질문을 던지면 될 것처럼 보인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렇다/ 아니다/ 모르겠다
혹은 다음과 같은 질문일 수도 있다.
신은 존재한다: 그렇다/아니다/ 모르겠다.
당신은 이 질문들 중 거의 어느 것도 뇌나 유전자를 심지어 간접적으로조차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 그럴까? 종교적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간질병이나 푸른 눈동자를 갖는 것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신 유전자나 영성 유전자 같은 것은 없다고 굳게 믿고, 카톨릭 신자들의 뇌에 가톨릭 중추 또는 종교적 체험 중추 같은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렇다, 분명 당신이 예수를 생각할 때마다 당신의 뇌 일부는 다른 부위들보다 더 활성화하겠지만, 이런 일은 당신이 어떤 것을 생각해도 발생한다. ~~~실제로 당신이 오늘 예수에 대해 생각할 때 밝게 켜지는 부위들이, 다음 주에 예수에 대해 생각 할 때 켜지는 장소들과 일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3. 우리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4. 유해한 밈
5. 인내와 정치
[부록A]
• 새로운 복제자
진화는 다음 세 조건이 충족되는 때와 장소에서 항상 발생한다.
복제 /변이(돌연변이) /차별적 적응도(경쟁)
다윈 자신의 용어로 요약하자면, 만일 변이를 가진 유전과 삶을 위한 혹독한 투쟁이 존재한다면 좀 더 좋은 장비를 갖춘 후손들이 경쟁을 뚫고 번성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처음 두 조건은 단일한 물질적 기질인(유전자 발현 및 발생의 주변 체계들을 가진)DNA에 의해 확보되고, 세 번째 조건은 지구의 유한성에 의해, 그리고 무수히 많은 환경적 도전에 의해 좀 더 직접적으로 확보된다.
단어들이 거주하는 언어가 지금까지의 주장들처럼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유일한 변이체는 아니다. 모방에 의해 전파되는 다른 인간 행동들과 관습들도, 인간이 아닌 동물들의 몇몇 습관들처럼 잠재적 복제자임이 확인되었다. 이 매체들은 매개 유기체의 행동에 담겨 있는 소리와 그 밖의 모든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패턴들을 포함하여 물리적 기질이 다양하다. 게다가 행동은 종종 복제의 목적에 그 행동 자체보다 더 적합한 예로 작용할 수 있는 인공물들(길, 은신처, 도구, 무기... 기호와 상징)을 낳는다.
※새로운 복제자의 간단한 분류
‣ 밈 →인간 →행동 →언어/노래,춤/수단,사냥,농사,항해.../동작,의례.../게임
‣ 밈 →인간 →인공물 →언어적:시, 속담,이야기, 법률, 이론.../음악,예술적: 도구,교향곡,기보법,조각, 회화.../은신처,건물,우물,댐.../무기,가정용품,도구...
‣ 밈 →인간 →인공물 →무기,가정용품,도구 →컴퓨터 →인공 생명 복제자/ 컴퓨터 바이러스
‣ 밈 →동물 →행동 →신호/생존수단/짝짓기 과시.../이동 경로...
‣ 밈 →동물 →행동 →신호 →새의 노래/ 경계음...
‣ 밈 →동물 →행동 →생존수단 →사냥,방목,추적.../탈출
‣ 밈 →동물 →인공물 →은신처/도구/영토, 표시, 길...
리처드 디킨스에 의해 소개된 밈 이란 용어는 새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그 용어를 채택한 다른 사람들은 밈 을 인간 문화에 국한시키기를 원해왔다. 경계음, 둥지 짓기 수단, 침판치의 도구 같은 동물의 전통들도 밈이라 불러야 하는가?
• 분류와 개별화의 문제들
유전자는 DNA분자에 의해 암호화된 복사 가능한 정보라고 말한다. ~~~만일 현재의 언어 소멸 경향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한 언어를 사용할 것이고,...
• 문화적 진화는 다윈주의적인가?
[부록B]
• 과학에 대한 몇 가지 추가 질문
1. 과학의 초대
자유와 종교가 존재하는 민주주의에서는, 자신의 종교가 유일하게 진실한 종교라 선언하면서도 그 선언을 변호하라는 모든 초대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또한 사람들에게 양심적인 반대를 허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들의 주장을 함부로 승인하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 내놓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당신의 믿음은 진행 중인 연구에서 조금도 고려되지 않을 것이고, 엄밀한 탐구와 반대 신문을 거부하는 쓸모없는 일방적 선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 당신의 믿음을 데이터로 취급하겠지만 -다양한 주장을 공언하지만 그 주장을 연구의 장에 내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당신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당신의 선언을 우리의 연구에 기여하는 하나의 견해로 간주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교의를 연구의 장에 내놓기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칭찬할만한 행위이고 신앙에 대한 명예로운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당신 자신의 종교가 외부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외부자들이 당신과 마주칠 때 발견하는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당신은 거의 틀림없이 당신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가가 당신에게 부여한 자유를 이용하여, 당신은 당신의 동료 시민들이 가장 긴급한 국가적, 국제적 안전 문제를 탐구하는 것을 돕지 않고- 당신의 권리인 것처럼-발뺌한다. 당신은 동료 시민들에 대한 의무보다 당신의 종교에 대한 충성을 앞세우는 무임승차자다. 다행히도 공공 정신을 가진 시민들이 그 손실을 메우고 국가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앞장서는 반면에, 당신은 ‘원칙에 근거한’ 신앙의 입장을 고수한다. 이 점에서 당신은 진심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시아파나 수니파 교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2. 과학의 이익은 무엇인가?
“과학을 두려워하는 종교는 신을 모욕하고 자살할 것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3. 이데올로기를 제자리에 놓다
[부록C]
• 벨보이와 터크란 이름의 부인
터크란 이름의 젊은 부인이 있었지
억세게도 운이 없었지
너벅선을 타고 물로 나갔지
뱃머리에서 자빠지고 말았지
오리에게 다리를 물렸지
나는 이 시를 여러분에게 들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그것을 더 멀리 전파할까? 그것은 다른 밈들이 당신의 뇌 그리고 당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뇌에 무엇을 감염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부록D]
• 킴 필비, 근원적 해석의 불확정성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
[Review]
파스칼은 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세 부류 중 하나에 속하며, 이에 따른 삶의 모습이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세상에는 다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첫 번째는 신을 발견하여 이를 섬기는 사람들, 두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애써 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추구하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사람들은 도리에 합당하고 행복하며, 세 번째 사람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불행하며, 중간의 사람들은 도리에는 합당하지만 불행하다.” -팡새-
신이 이성으로 깨우칠 수 있는 존재라면 공부를 많이 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먼저 종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심정에 직감되는 존재이고 신앙인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지식과 빈부 격차를 떠나서 오로지 그 심성에 의해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계층으로 다양한 종교적 종파에 속하거나 무신론자,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있지만 종교 활동을 결단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어떤 특정 종교가 아닌 모든 종교를 한 범주로 보고 비판하기 때문에 독자는 자칫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현재 심령 상태가 신앙에 회의적이거나 초보자라면 읽지 말기를 권한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확신,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읽고 오늘날 세속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신앙적 지식에 관심 없고 오직 삶의 문제로만 고민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처음부터 이런 책은 아무 효용이 없다. 그런 분들은 성경만 읽으면 된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되어있다. 첫째 종교는 인간 정신이 만들어낸 산물로서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창안해 낸 ‘문화적 복제자(밈. meme)'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즉, 원시시대에 인간의 정신에 침입했던 야생의 생각 중 일부가 머릿속에서 기적처럼 조합을 이루어 새로운 창조물을 낳고, 새로운 특성 새로운 힘을 지니는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의 종교로 발전했다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과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하며 철학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깨야 한다고 말하는 주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많은 자연현상 가운데 하나인 종교를 솔직하고 과학적이고 전면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금기다. 그러나 이 주장을 거부하는 가장 절박하고 그럴듯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만일 그 주문이 깨지면, 즉 만일 종교가 밝은 불빛과 현미경 아래에 놓인다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주문이 깨질 것이라는 심각한 두려움이다. 만일 과학적 연구의 간섭 때문에 사람들이 무력해지고, 종교적 경험이나 종교적 확신의 도약대가 되는 정신 상태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끔찍한 재앙일 수도 있다. 순결은 단 한 번에 잃는다.“(본문)
둘째로 원시 종교의 발달과정과 종교가 인간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게 된 요인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었으며 거기에는 언어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개미도 말씀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개미에겐 언어가 없고, 말로 표현할 문화도 없다. 그러나 우리 언어 사용자들은 단지 하나의 말씀이 아니라 여러 말을 이해하고, 많은 말들이 우리의 주목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때로는 서로 협력하여 회사를 형성하고 우리의 충성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본문)
셋째로 오늘날의 종교 현실을 다루는 장에서는 종교가 사회적 도덕성을 높이고 또 개인의 삶에 어떤 유익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종교는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몇 개의 보호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사랑 장벽, 학문 영역의 장벽, 신에 대한 충성 장벽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종교적 충성의 이해득실을 차분히 검토해야 하고, 가장 먼저 종교는 건강에 좋은가? 라는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증거는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는 건강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이익을 제공하는 더 좋은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 부작용이 이익을 초과한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이르다.”(본문)
저자인 다니엘 데닛은 진화론을 추종하는 철학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특히 '밈' 이론으로 종교를 해석하고 철학적 논증으로 확장시켰다.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인지연구센터의 소장을 겸하고 있으며, 당대 철학자 중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에 가장 진지하게 활용하는 철학자로, 인지과학 및 과학철학 분야에서 늘 혁신적인 주장을 펼쳐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종교인에게는 문제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일반 독자들보다 더 많은 식견과 철학적 지식을 지닌 지식인으로, 종교인들을 향해서 해 볼 테면 해보자. “나와 신의 문제를 두고 토론하자!”식의 선전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최전방에서 진화론에 입각한 종교적 비판자임을 독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창조와 진화는 인간의 논리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진화론만큼이나 창조론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있으며 위대한 과학자 철학자 중에도 종교 생활을 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근간을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소홀할 수는 없다. 어떤 점에서 이런 책들은 보수적 신앙인들에게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책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이러한 진화론의 지식이 신앙인들의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고 또 종교도 세속화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무조건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다만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따라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리며 읽어야 할 것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문>
“사람들은 대부분 신에 대한 믿음을 믿고, 심지어(항상)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다. 그들은 왜 신에 대한 믿음을 믿는가? 한 가지 명백한 답은 그들은 선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그런 삶을 위해 신에게 봉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종교의 합리적인 신자들이 용기와 열정을 발휘해 어느 전통에서든 신에 대한 무기력한 사랑을 존중하는 전통을 파기할 때가 되었다. 그런 전통은 존경을 받기는커녕 변명할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가장 부끄러운 사람은 사제, 랍비, 이맘을 비롯한 전문가들일 것이다.”
“당신 자신의 종교가 외부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외부자들이 당신과 마주칠 때 발견 하는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당신은 거의 틀림없이 당신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은 종교는 인공물, 즉 인간의 지적 활동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다.”
"모든 교단의 모든 목사는 재즈 음악가와 같다. 그들은 사랑받는 표준 곡들을 정해진 대로 연주하면서 전통을 유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하며, 속도를 늦추거나 높이고, 기도의 한 구절을 삭제 하거나 다른 구절을 더하고, 참석자들의 마음과 가슴을 사로잡기에 적당한 비율로 친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뒤섞는다."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풍상 앞에서, 설계된 것은 무엇이나 갱신과 복제를 거치지 않으면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 생물학의 유기체, 신체 기관, 본능이 그렇듯이, 인간 문화의 조직과 습관도 이 법칙, 즉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을 피하지 못한다.”
“민속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적 관습은 사냥 및 수집 또는 경작 및 수확과 나란히 놓인, 실생활의 자연스런 일부다. 그리고 그들이 재물을 바치는 신들을 정말로 믿는다고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신들을 얼마나 크게 믿는지를 영원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입 밖에 꺼낼 의심이 없으면 믿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내 생각에 여호와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권능과 위대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정말로 노여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신을 넘어섰다(그렇지 않은가?)우리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설계 작업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가정하는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igence은 질투를 할 수 있는 부류의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문화적 복제자- 되풀이하여 복사되는 아이템- 개념에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 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 용어는 최근에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우선 이 자리에서 나는 논쟁의 소지가 없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문화 전파는 때때로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게, 경쟁하는 변이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복사되게 하고 결과적으로 문화적 아이템들의 특성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는 데, 이 수정에는 의도와 선견력을 가진 저작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명백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진 예가 자연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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