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2023년 중등 임용시험 인천지역에 합격한 이상민입니다. 주변 동기나 선배들의 합격 수기를 읽어만 봤지 제가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합격 수기의 분량을 학원에서 정해주셨습니다. 본문 내용은 바탕체, 글자크기 10, 줄간격 160%, 최소 10장이라는 분량을 받아보니 오랜만에 대학교 과제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때의 기분도 낼 겸 소주 한잔 걸치고 작성해보려합니다. (^^) 합격 수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합격을 한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꿈이라면 합격 수기 까지 작성하고 깨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들어가기에 앞서 제가 공부를 ‘특별한 방법’을 써가면서 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책을 이쁘게 꾸미고, 플래너를 작성하고, 필기 및 요약노트를 작성하는 등의 방법은 학창시절에도 해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기에 임용 공부에도 사용하지 않았고, 어찌보면 굉장히 투박한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무거운 엉덩이와 함께 개론서 및 교과서,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 김구쌤께서 만들어 주신 문제를 중심으로 반복, 반복했습니다. 특히 교과서와 개론서에 무게를 두고 공부를 했는데 공부에는 正道가 없으니 참고용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저는 스터디를 많이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상반기에 교육학 스터디 한 개, 하반기에 전공 짝스터디 한 개만 했을 뿐, 기출분석스터디나, 교과서 스터디 등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스터디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스터디 준비를 하느라 복습을 놓칠 것 같았고, 나만의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물론 스터디 준비가 어떤이에게는 또 다른 공부가 될 수 있으니 제가 정답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개인차는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기출 분석이나 교과서 분석을 저 혼자 하다보니 기출과 교과서를 굉장히 자주 보게되는 효과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스터디가 부담된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김쌤과 구쌤을 믿고 수업을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김쌤과 구쌤의 문제에는 기출이 녹여져 있고 추가로 나눠주시는 프린트에 교과서 내용도 꼼꼼하게 나와 있으니까요.
저는 운이 좋게도 2번째 시험만에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수 시절에는 집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인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수 시절에는 노량진에 올라와 직강을 수강하며 학원에서 자습을 해나갔습니다. 보통 공부를 할 때, 우리는 교육학 보다는 전공 과목에 더 중점을 두고, 전공 점수를 올리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노력에 대비했을 때 점수를 올리기 쉬운 과목은 전공보다는 교육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은 양이 굉장히 방대하기에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학은 양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고 머릿속에 구조만 잘 그려 놓는다면 임용 점수를 높일 수 있는 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초수생분들에게는 교육학 고득점이 점수를 높이고 합격으로도 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들께서도 지나치게 전공공부만 사랑하지 마시고 교육학 공부도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전공과 교육학 모두 우리의 사랑하는 자식들입니다.
2년동안 공부를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튼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루에 13시간씩 매일 공부하는 것 보다 하루에 11시간 공부하더라도 2시간은 운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입니다. 초수시절에는 운동을 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하겠다고 운동을 안하다가 9,10월 즈음에 체력이 떨어져 타이어 펑크난거마냥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께서도 공부 시간에 강박을 갖지 마시고 틈틈이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해주시기 바랍니다.
2. 초수시절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대학공부와 임용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강의를 하고 있었고, 학점을 미리 따 놓았기 때문에 집 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인강 들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초수 시절 대략적인 스케줄은 일주일중 6일을 공부하고 그 중 이틀은 온전히 교육학에 투자, 그리고 4일은 전공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인강으로 풀 커리를 탔고 그날 배운 내용은 그날 무조건 복습한다는 원칙을 지켜갔습니다. 인강의 장점은 강의를 배속으로 듣고 내가 혼자 자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공부습관을 들이기가 어렵다는 점이죠. 이럴때는 기상스터디나, 공부 인증스터디를 구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저는 초수시절 그 많은 시간동안 단순하게 많은 펙트들을 외우기에 급급했습니다. 특히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를 달달 외웠고 어떤 역사적 맥락 없이 최대한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험 직전까지도 당나라와 송나라 파트가 헷갈렸고 펙트들이 난잡하게 얽혀 있을 정도로 구조화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지고 있는 지식들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역교론과 교육학은 구조화가 가장 우선시 되는 과목입니다. 이런 과목들을 무작정 외우려고 하다보니 어렵게 느껴졌고, 결국에는 두려운 과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조한 성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차 탈락후 1년 동안 공부한 저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구조화 없이 단순히 펙트들에만 집착했다는 점, 운동을 하지 않아 공부 막판에 체력이 바닥난 점, 혼자 공부하다 보니 외롭고 공부의 동력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패착의 원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는 뼈대를 탄탄히 하고 살을 붙여 나가는 공부를 하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 2시간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공부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노량진에 올라가기로 합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성격입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 옆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저 스스로를 다독이고 채찍질 하기 위해, 그리고 자극을 받기 위해 노량진에 올라갔습니다.
3. 1차 준비과정
초수 탈락의 고베를 마시고 1,2월 두 달 동안은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3월부터 직강 생활을 시작합니다. 3월 개강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직강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6시 30분이라는 굉장히 이른 시간에 강의실에 들어갔지만 이미 앞자리는 꽉 차 있던 상태였습니다. 저에게 6시 30분이란 시간은 이른 시간이지만 노량진에서는 늦은 시간이었나 봅니다. 충격을 받았지만 또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면 합격해 나갈 수 있겠다. 공부하기 싫어 때려 치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 3-6월
이 기간 하루의 대략적인 스케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를 크게 오전, 점심먹고난 오후, 저녁먹고난 이후의 시간으로 나눠서 공부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수업이 오후에 있었다는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1) 교육학
교육학은 초수 시절 인강으로 풀 커리를 탔기 때문에 이 시기 강의는 따로 듣지 않았습니다. 혼자 공부를 하되 스터디를 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고, 스터디를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미리미리 해야한다는 강제성이 있었기에 공부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스터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미리 영역을 정해놓고 그 부분을 공부한 다음 아침에 모여 각자가 만든 문제를 시간 안에 풀어보며 함께 답을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낸 문제에 대한 풀이는 본인이 스터디원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 문제를 낸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굉장히 꼼꼼하게 영역들을 점검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터디가 끝난 이후 혼자 공부를 할 때는 내가 틀린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형광팬으로 표시해놨습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또 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접니다. 실제 시험장에 가서도 그런다면 대참사가 일어나기에 실수하거나 틀린 부분은 곱씹으며 완벽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초수시절에는 구조를 완벽하게 암기 하지 않고 펙트들만 외우려 했기 때문에 외운 것을 금방 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3월과 4월에는 꼭 이선화 선생님께서 나눠주셨던 교육학 구조도를 암기하려고 했습니다. 3월과 4월에 구조를 암기해 놓고 5,6월에는 내용까지 암기해 나가니 교육학 공부가 재밌어지기까지 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미를 붙이다 보니 공부에 탄력이 붙게 되고 외운 내용을 쉽게 잊지 않는 효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초수생분들께서는 교육학을 처음 접하기에 부담감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구요. 1,2월까지, 혹은 최소한 3,4월까지는 구조를 암기하는데 집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사실에만 집착 말고, 그리고 남들보다 적게 외웠다고 낙담하지 마시고 천천히 그리고 튼튼하게 뼈대를 만들어 봅시다. 그러면 살은 자연스럽게 붙어나갈 것입니다.
(2) 전공
<역교론>
역교론 역시 교육학 공부와 큰 틀에서는 비슷합니다. 즉 구조를 외우는 것입니다. 저는 따로 녹, 갈, 남색 책에 대한 구조도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편한 방식으로 구조도를 그렸고 개론서을 읽거나 기출을 분석할 때 항상 옆에 펴놓고 내가 지금 어느 영역을 공부하고 있는지 떠올렸습니다.
역교론은 정말 어렵습니다. 점수를 올리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결국 내린 결론은 그냥 김쌤 수업 따라가자 였습니다. 무책임한 말일 수 있겠지만 역교론은 김쌤을 믿고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보라는 것 보고, 외우라는 것 외웠습니다. 강조하신 부분은 따로 표시해놓고 달달 외웠습니다. 불안하실 수 있지만 역교론이 어렵다면 김쌤을 믿고 따라가도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기출과 교과서>
서양사, 한국사, 동양사는 먼저 기출을 분석하고 교과서에 나온 부분과 안 나온 부분을 체크했습니다. 임용 시험은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문제를 출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행 교육과정이 잘 집약되어 있는 교재는 바로 교과서입니다. 따라서 교과서에 기출과 미기출 영역을 표시해 나가면서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생각하면서 개론서를 읽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서는 백년 전쟁에 대한 서술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용시험에서는 출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점을 파악하고 개론서를 읽을 때 백년 전쟁과 관련된 내용은 꼼꼼하게 짚고 넘어갔고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 백년 전쟁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시는 한국사에서도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사 기출을 분석해 보면 고려시대 역사서, 조선 후기 역사서는 기출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전기 역사서는 출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화사는 중학교 역사 2 교과서에서도 자세하게 다루는 영역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영역인데 출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머릿속에 집어넣어 줍니다. 추가적인 예시로 고려시대를 보겠습니다. 고려시대 기출을 분석해 보면 주로 문화사, 불교 파트가 집중 출제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사 파트에서 역사서와 불교는 자주 나왔으나 눈에 띄는 미출제 영역이 보였습니다. 바로 불교 경전입니다. 교과서에서도 서술되어 있기에 경전과 관련된 내용들을 외웠습니다. 이런식으로 기출과 교과서를 함께 분석하고 어떤 문제가 출제될까 예상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이번 시험에서 고려사절요나 신편제종교장총록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올해 고려시대 공부를 한다면 여진족이나 몽골 등 고려의 대외 관계를 눈여겨 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란과의 관계는 출제가 되었지만 여진족 및 몽골과의 관계는 출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식으로 교과서와 기출을 함께 분석해 나가면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개론서읽기 방법>
상반기에는 개론서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꼼꼼하게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개론서를 소홀히 하고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만 달달 외운다면 어떠한 역사적 맥락도 없이 펙트들만 외우는 것이기 때문에 금방 잊어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는 개론서를 최대한 꼼꼼하게 읽고 교재에는 없는 맥락들을 교재에 단권화하면서 흐름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개론서를 읽을 때 큰 맥락을 잡는데 도움을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밑에 사진처럼 해당 시대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서술입니다. 이 부분역시 소홀히 보지 않고 꼼꼼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시대의 큰 흐름을 잡아갔습니다.
3월부터 6월까지 동양사는 한위중을 중심으로 읽고 부족한 부분은 동양사개론으로 보충했습니다. 혹시 동양사 개론을 읽기가 부담이 된다면 구쌤께서 나눠주시는 자료로 커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서양사는 서양사개론과 서양사강좌를, 한국사는 시대사 총서를 읽었습니다. 개론서를 읽을 때는 내가 만약 출제자라면 어떤 문제를 낼까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교과서는 모든 공부에서 기본 옵션이었습니다. 개론서을 읽을 때는 항상 옆에 교과서를 펴놓았고 교과서 서술과 개론서 서술을 비교했습니다. 개론서에는 없는데 교과서에만 있는 중요한 내용은 교재에 단권화 했습니다.
개론서를 읽을 때는 제목도 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목을 통해서 내용을 유추할 수도 있고, 본문을 읽을 때 제목을 떠올린다면 맥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위의 한위중 본문의 제목을 보면 ’송의 건국과 문신관료체제- 송의 건국과 문치주의의 채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을 보면 송 태조가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어떠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 송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본문만 읽는다면 펙트들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펙트들을 소제목인 ‘송의 건국과 문치주의의 채용’에 묶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송나라가 문치주의를 채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본문의 내용과 연결 시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제목인 문치주의 채용과 본문 내용인 황제권 강화 조치를 연결지어 보자면 송은 절도사들이 각자 군권을 거느린 5대 10국의 혼란상을 잠재우고 중원을 통일했기에 군사권을 황제가 장악하고자 노력했고 이는 문치주의 풍조까지 이어졌구나를 음미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송태조의 황제권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 문치주의 풍조가 송에 미친 영향과 관련된 펙트들은 뒤따라 올 것입니다. 이렇게 개론서를 읽는 방법은 서개론 서강좌 동개론에도 동일합니다. 나중에 백지 인출을 하고자 하신다면 소제목만 보고 내용을 인출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2) 7-8월
7,8월부터는 오전에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스케줄을 다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일요일에도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반기에는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상반기에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하반기에 최선을 다한다면 합격에 무리가 없으니 상반기 공부가 부족하다고 낙담하지 마시고 하반기에도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상반기에 엄청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중에 코로나에 걸려 학원을 일주일 쉬기도 하고 진도도 밀린적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날이 좋을 때는 학원 수업을 안 듣고 농땡이 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탈이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씩 저 자신에게 쉴 틈을 주고 위로하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반기 동안 체력을 저축해놨다고 보고 하반기에는 이 체력을 사용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짝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외웠다고 생각해도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출을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외우기 위해 학교 선배와 짝 스터디를 했습니다. 스터디를 하지 않던 선생님들도 꼭 이때부터는 인출 스터디를 하시길 추천드립니다.
(1) 교육학은 매일 매일
하반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대다수의 선생님들께서 전공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교육학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부터는 교육학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그동안 스터디를 통해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반복해서 봤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오전부터 점심먹고 난 직후까지 교육학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주로 연습장에 손으로 쓰면서 외웠습니다. 외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우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백지에 구조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먼저 인출해본 이후 교재를 다시 확인하는 방식도 사용해 보았습니다. 상반기에는 교육학을 월요일과 화요일에만 했다면 하반기에는 전공 수업을 듣는 날에도 오전에는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수업이 9시부터였는데 6시까지 학원에 가서 1시간 30분동안 교육학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교육학을 매일 매일 보다보니 눈에 익숙해졌고 책 내용이 머리에 스캔 떠지는 듯 했습니다.
(2) 개론서와 문제풀이
3월부터 6월까지는 개론서를 한바퀴 돌렸습니다. 한번 읽었다고 그만 읽는 것이 아니라 7월에는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시험 준비 기간동안 늘 개론서에 집착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부족했고 자꾸 읽고 싶었습니다. 마치 여자친구를 보고있는데도 보고싶어 하는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3월부터 6월까지 나름 꼼꼼하게 읽어왔음에도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9월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제풀이 기간이기 때문에 개론서를 엄청 꼼꼼하게 읽는다기 보다는 문제풀이 영역을 중심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기출영역과 미기출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미기출영역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가져가려고 하기 보다는 확실하게 가져갈 것은 가져가자는 마인드로 공부에 임했습니다.
아침에 교육학 공부를 하고 수업 전까지는 그날 진도나갈 문제를 미리 풀어보았습니다. 문제는 꼭 수업을 듣기전에 풀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문제가 10문제가 있다면 5문제는 풀고 5문제는 아예 건들지도 못했습니다. 상반기 그렇게 공부했는데 왜 나는 아직도 부족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별로 낙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공부할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요. 문제를 풀면서 아 내가 이 부분을 어려워하는구나, 개론서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3) 짝스터디
7월 부터는 완벽한 암기를 위해 짝스터디를 활용했습니다. 그날 배운 내용을 각자 복습해오고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서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스터디 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잡은 것은 개인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로 묻는 방향은 기출 패턴에 따라 잡았습니다. 기출 문제를 보면 사건의 배경, 원인, 결과, 영향, 이유, 목적 등을 물어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와 얽힌 인물들, 제도들 역시 자주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질문을 만들고 서로 묻고 답했는데, 예를 들면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게 된 정치적 배경은 무엇일까?, 1차 왕자의 난이 조선 정치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3) 9-11월
이때부터는 매주 모의고사를 푸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시험도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구요. 모의고사 점수에 놀라고 이 점수로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낙담하면서 멘탈이 깨지기 쉬운 시간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이 시기 멘탈을 잡는데 주력하시길 바랍니다. 저만의 멘탈 관리 방법은 후술하겠습니다.
학원에서 정말 감사드리게도 모의고사를 채점해주셨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성적을 매겨주었습니다.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저는 운이 좋게도 61점을 얻었고 인천지역에서 3등을 하는 준수한 성적을 얻었습니다. 사실 놀랐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나름 제 기준에서는 모의고사를 고득점 맞다 보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을 얻되 자만하지 말자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1) 교육학
교육학은 인강을 수강했습니다. 아침에 모의고사를 풀고 그에 대한 해설강의를 들으며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최근 교육학 기출 경향을 보면 이론보다는 오픈형 문제가 많이 출제 되었습니다. 그에 발맞춰 오픈형 문제를 대비했습니다. 이선화 쌤께서 모의고사에 오픈형 문제를 자주 출제해주셨기 때문에 모의고사에서 다룬 부분은 완전히 머릿속에 집어넣고자 했습니다. 반복만이 살길이다 생각하고 최대한 많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시기에도 교육학은 매일 공부했고 이번에는 자기 전에도 교육학을 봤습니다. 원래 자기전 30분은 유튜브를 보며 재충전 시간을 가졌지만 마지막 시기에 스퍼트를 내고자 유튜브를 끊었습니다.
(2) 모의고사 활용 방법
모의고사 점수는 평균적으로 56-58점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자책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거를 틀렸다고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 보기 전에 운이 좋게도 내가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겠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이맘때 모의고사 점수에 연연하면서 멘탈이 무너지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모의고사를 잘본다고 무조건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못본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럴때는 ‘에이 몰라~’ 마인드를 가져봅시다. 간혹 저도 모의고사 점수를 거지같이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에이 몰라~ 밥이나 먹자~’ 그러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곧바로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모의고사를 본 당일에는 틀린부분을 중점적으로 개론서를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편 전쟁과 관련한 문제를 틀렸다면 아편전쟁에 해당되는 한위중, 동개, 그리고 교과서를 모두 읽어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틀린부분에 해당되는 부분만 점검하는데도 당일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일요일에는 모의고사 모든 문제의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문제에 해당되는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다룬 영역 앞, 뒤 내용을 같이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에서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 다루었다면 내용을 정리할 때는 앞선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1세, 그와 관련된 사건인 레냐노전투, 프리드리히 2세 이후의 사건인 대공위 시대와 금인칙서 내용을 같이 정리했습니다. (그림 참고)
이런식으로 하다 보니 모의고사 내용은 꼼꼼하게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4. 멘탈 및 체력관리
저는 1년동안 노량진에서 1차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슬럼프를 겪지 않았습니다. 왜 겪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인데 아마 제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멘탈이 약한 편이고 스트레스를 잘 받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회복력이 굉장히 빠릅니다. 단순한걸까요. 힘들다가도 조금만 재밌는 일이 있다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다시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꼈고, 유튜브로 SNL을 보면서 웃을 일이 많았습니다. 교육학 스터디를 하면서 스터디 쌤들이랑 잡담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노량진에 같이 올라온 대학 형, 동생들이랑 어디 나들이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선생님들도 소소한 행복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또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면서 속으로 저에게 굉장히 많은 칭찬을 했습니다. ‘이야 이상민 이런것도 안다고? 대단한데? 최고야 미쳤구나 너’ 라고 칭찬을 자주해주었습니다. 굉장히 고요한 직강 강의실에서 저는 속으로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제가 대단해보였습니다. 덕분에 자존감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1차 준비기간 동안은 저의 합격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모든 우주의 기운이 저의 합격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무교입니다. 오해 마세요) 3월에 교육학 스터디를 구할까 김구 카페에 들어갔는데 웬걸 구한다는 글이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인천을 쓸까 경기를 쓸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인천에서 티오가 대박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갈 곳은 인천이구나, 인천이 오라고 손을 흔드는구나 느꼈습니다. 1차 시험전 12월 2차 스터디를 구할 때 운이 좋게도 스카웃이 되었습니다. 아 나 정말 되려나 보다.
멘탈이 건강해야 공부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공부하기 싫을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가족,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아들 노량진에 보냈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아빠, 손자 합격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할머니, 공부 방해 될까 전화도 허락맡고 하는 엄마, 간간히 용돈을 챙겨주는 누나, 형,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주는 친구들. 이런 분들이 주위에 있는데 어떻게 공부를 쉬엄쉬엄 할 수 있을까요. 공부를 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때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혹시 공부 습관을 들이기 어려운 분들이 계시다면 학원에서 주위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쌤 한 분을 찍고, 그 분과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해보시길 바랍니다. 제 앞에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쌤이 한 분 계셨습니다. 모르는 분이지만 그 분을 보면서 ‘저 친구 집에 안가면 나도 안간다’는 마인드로 공부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하시던 분이고 존경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게 제가 노량진에 올라온 이유이기도 하구요. 어느 날 쿠팡에서 샀다고 한 무설탕 사탕을 주셨는데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
상반기에는 운동도 틈틈이 하시길 바랍니다. 운동도 공부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체력에서 강한 정신력이 나온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공부가 부족하니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강박을 갖지 마시고 체력도 챙기길 권장해드립니다. 저는 이데아 빌딩 지하 1층 헬스장을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잠을 줄이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잠도 충분히 자야 합니다. 저는 10시 30분에 잠들어서 5시 20분에 일어났습니다. 거의 7시간 가까이 잤는데 잠을 푹 자다 보니 학원에서 졸을 일이 없었습니다. 9월-11월에는 체력이 떨어지다보니 잠자는 시간을 오히려 8시간으로 늘렸습니다.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니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요일에도 푹 쉬시고 잠도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1차시험
올 것 같지 않았던 1차시험 당일이 되었습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졸병의 마음가짐으로 시험장에 나섰습니다. 책은 이선화교육학 요약책 한 권,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 4권을 챙겨갔습니다. 하루 전날 인천에 가서 숙소를 잡았고 시험 당일에는 아침을 꼭 먹었습니다. 머리 잘 돌아가라고 페레로로쉐 초콜렛을 챙겨갔습니다. 다음은 시험 내용 복기입니다. 저는 시험을 보고 나서 따로 복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복기가 아니라는 점 알아주시기 바랍니다.ㅜ
<전공역사 A형>
1 | ㄱ 조직개념 ㄴ 기본개념 |
2 | ㄱ 의자왕 ㄴ 선덕여왕 |
3 | ㄱ 보부상 ㄴ 독립협회 |
4 | ㄱ 아라스 화약 ㄴ 상비군 |
5 | 중학교에서는 전근대사를 중심으로, 고등학교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내용을 조직 분류사 조직, 시대상을 드러내는데는 적절하지 않다. ㄴ역사를 안다에 대한 관점 |
6 | ㄱ.시무 28조(ㅎ) ㄴ. 황로술 연좌제 등 억압적인 법가정책에 반발하여 발생한 진승오광의 난을 말한다. ㄹ. 군주가 통치를 잘하면 상서로운 징조를 내려주고 잘하지 못하면 재앙을 내려준다는, 군주의 통치와 하늘의 재이가 연관되어 있다는 천인감응설을 말한다. |
7 | ㄱ.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대한국민회등 우익세력이 연합한 민족운동단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ㄴ은 버마전선에서 포로를 심문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다) 뭐라 썼는데 기억안남 |
8 | ㄱ테베 ㄴ투키티데스, 민주정이 와해되고 과두정이 성립외었다. 스파르타의 억압적인 통치에 반발하여 발생했다. |
9 | ㄱ삼강행실도 , 백성들에게 유교윤리를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ㄷ고려사절요, 고려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했다는 특징이 있다. |
10 | ㄱ시모노세키조약, 중국이 일본에 최혜국대우 권리를 인정함에 따라 두 국가의 관계는 일본이 우위에 있는 불평등한 관계가 되었다. ㄷ.위해위 ㄹ.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견제하기 위해 |
11 | ㄱ.종교재판소 ㄴ트리엔트공의회 성직매매, 성직 겸직을 금지하였다. 7성사와 불가타성경의 효력을 인정하였다. |
12 | ㄱ역사자료 분석과 해석 ㄴ체크리스트를 활용한 자기평가 ㄷ인과적 설명 ㄹ프랑스혁명은 진정한 자유, 평등, 우애가 담긴 혁명이라고 볼 수 있을까? |
<전공역사 B형>
1 | ㄱ도결 ㄴ삼정이정청 |
2 | ㄱ정성공 ㄴ천계령 |
3 | ㄱ패러다임적 사고 ㄴ외침과 그에 대한 저항 뭐라 썼는데 기억이 안남 ㅠ |
4 | ㄱ데인로 ㄴ위그카페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페왕조가 시작되었다. ㄷ위탄게모트회의 ㄹ통일잉글랜드 왕국은 왕이 많은 왕령지를 소유하며서 왕권이 강한 반면 ㄹ은 왕령지가 적고 제후령이 많아 왕권이 노르만을 통제하지 못할정도로 약했다. |
5 | ㄱ의천, 신편제종교장총록, 속장경간행에 영향을 미쳤다. ㄴ해동통보를 주조하였다. |
6 | ㄱ팔고문, ㄴ전시, 부역황책을 작성하고 조세를 징수하였다. |
7 | ㄱ집단농장을 폐지하였다, 잉여생산물의 시장거래를 허용하였다. ㄴ브레즈네프독트린, ㄷ프라하의 봄 |
8 | ㄱ사진자료는 사건이 발생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당시 역사적 상황을 생생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ㄴ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의 시대, 상황, 맥락에 대한 질문을 한다. ㄷ맥락 ㄹ다양한 관점에서 쓰인 자료를 선정하여 제공한다 |
9 | ㄱ병호, 군적은 일반민호의 호적과 별개였으므로 병농일치의 부병제가 아니었다 ㄴ절충부가 수도 주변과 국경지역에 심하게 편재되어 있어 지역에 따른 부병역의 편중부담으로 도망자 증가 ㄷ괄호정책 |
10 | ㄱ남조선과도입법의원, ㄴ미소공동위원회 훈련을 통한 자치경험을 시키기 위함 나)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 총선거 실시를 통한 정부수립 |
11 | ㄱ생생하고 주체적인 역사이해가 가능하다. ㄴ지역의 범위 ㄷ 답사전 박물관 전시물에 대한 사전지식을 학습하도록 지도한다. ㄹ 문맥비판 |
5. 2차 준비
1) 12월
1차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답안 채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구쌤께서 올려주신 답안지를 보긴 봤습니다. 저의 멘탈을 나가게 한 답은 황국협회와 텍스트비판입니다. 저는 독립협회와 문맥비판이라고 썼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좌절했습니다. 남들 다 맞추는 문제를 틀렸다는 생각에 1차 준비기간동안 자신있어하던 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임용 준비 기간 중 저의 첫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2차 스터디는 1차 시험 전에 미리 구해놨기 때문에 스터디는 바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1차 시험 전에 미리 스터디를 구해보시길 바랍니다.
스터디는 일주일에 6번 진행했습니다. 5번은 수업을 했고 1번은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이미 초수 시절에 2차스터디를 한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수업 준비에 대한 감은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은 김쌤의 수업실연 교재와 카페에서 올려준 자료를 바탕으로 연습했습니다. 아침에 모여 4개의 구상지를 준비하고 모두가 함께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상시간이 끝나면 그때마다 수업할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아 수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내가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상을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에 대해서는 포스트잇에 서로 잘한점과 부족한 점을 작성해서 교환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저의 수업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해나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 모습을 본다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수업에서 내가 하는 안 좋은 습관들을 찾아낼 수 있고 아무래도 내가 나의 문제점을 더 잘 알다 보니 금방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기간에는 1차 시험에서 실수한 것이 자꾸 맴돌아서 공부에 대한 의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2차 스터디를 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터디에 참여한 감이 있습니다. 스터디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다음날 스터디만 빠르게 준비할 뿐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부모님한테 떨어지면 뭐라고 할까, 나는 교사가 될 운명이 아닌가? 우울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래도 스터디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좋았습니다. 워낙에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우울하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보고싶네요 다들.
다른 쌤들은 저처럼 12월에 우울해하지 마시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며 2차준비에 매진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12월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1월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 1월
12월 29일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왔습니다. 발표 확인 전에는 정말 너무 너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부모님께 1차 붙었다고 거짓말하고 나중에 2차에서 아깝게 떨어진 척을 할까 못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전혀 기대도 안하고 있던 와중에 합격자 확인을 하려고 했는데, 이때 실수로 수험표 출력으로 들어가 로그인을 한 겁니다. 로그인을 했는데 2차 시험장소가 고등학교로 나오고 (1차 시험장소는 중학교였습니다) 면접 대기실이 떴습니다. 어라? 뭐여. 이게 왜 나오지? 당황했습니다. 정신차리고 합격자 발표로 들어가 로그인을 했더니 1차 합격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음도 안 되는 좁디좁은 고시원방 안에서 욕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5분도 안갔습니다. 왜냐하면 12월 2차 공부가 부족했기에 1월 생활이 힘들 것이라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2차공부에 매진했습니다.
빠르게 2차스터디를 새롭게 구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홍대 강의실을 대여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4번 스터디를 했고 하루에 수업과 면접을 모두 준비했습니다. 모든 수업과 면접 답변을 영상으로 촬영했고 지하철에서 혼자 보면서 문제점들을 파악했습니다. 최대한 저의 장점은 살리면서 부족한 부분들은 보완하고자 했습니다. 초조해지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어, 이제 등의 말 습관을 많이 한다는 점이 보였습니다. 최대한 딕션을 정확하게 배에서 소리를 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그 답변을 들을 때 아이컨택을 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수업에서 가진 장점은 발문이 다양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발문은 항상 연구해왔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유도하는 질문, 평가적 질문, 감정이입적 질문, 일상생활과 연결한 질문 등등 모든 수업을 구상할 때마다 조건에 없더라도 확산적 발문을 2개씩은 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로 발문 노트를 만들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발문을 할 수 있을까 정리해놨습니다.
저는 12월 공부가 미진했기 때문에 1월에는 미치는 듯이 2차 준비를 했습니다. 스터디날에 스터디 끝나고 노량진에 오면 저녁 8시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곧바로 스터디룸으로 향했습니다. 스터디 때 했던 저의 수업을 피드백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재실연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업은 안하고 구상만 했던 구상지를 1개 선택해서 추가적으로 실연을 연습했습니다. 실연을 많이 해보면서 어떤 조건이 나와도 저만의 수업 스타일이 나타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도 다 촬영을 해서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고 난 이후에야 잠에 들었습니다.
이 시기 스터디 피드백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자존감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고 자신감있게 수업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저를 수업 너무 잘한다며 칭찬해주신 우리 선생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면접은 인천이 평가원으로 바뀌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12월에 면접레시피를 한바퀴 돌려봤기 때문에 1월에는 기출 패턴에 따라 면접 답안을 준비했습니다. 주로 평가원은 교사상, 수업에서의 문제상황 진단 및 해결방안, 갈등 관리 방안 등을 물어보기 때문에 이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평가원 면접은 면접레시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 2차 당일
2차 시험 전날 숙소를 미리 잡아놨습니다. 저녁에 들어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30분동안 몸을 지졌습니다. 그리고 노곤한 몸을 침대에 던졌더니 5분도 안돼서 잠들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잠을 잘 자는 체질을 물려준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든든하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다행히도 숙소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야간 노가다를 끝내고 소주 한 잔 걸치시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홀로 정장을 입은 채 순두부찌개를 완국했습니다.
저의 수업 순번은 15명 중에 9번이었습니다. 제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또 다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 고백을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동아시아 교과서를 읽었습니다. 그동안 세계사, 그중에서 서양사 파트가 나왔으니 이제는 동양사 파트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수업 순번이 뒤에 걸리면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배가 불러야 목소리에 힘도 나도 기운도 생기니 꼭 점심은 챙겨 가시기 바랍니다.
제 차례가 되자 짐을 챙기고 구상실로 향했습니다. 구상실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하나가 외롭게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구상지가 뒤집혀있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나와도 절대로 당황하지 말자고 멘탈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시작한다는 구령에 맞춰 구상지를 뒤집었습니다.
조선 후기 생활사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속의 상상에서도 하지 못했습니다. 1차 준비할 때도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간 부분이고 2차 준비할 때는 선택과 집중에서 배제된 주제였습니다. 따라서 문제를 봤을 때도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연습했던데로 구상을 해나갔습니다. 구상을 마치고 실연실로 나아가는 복도는 최대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복도를 걸어가 실연실 문앞에 섰을 때 복도 감독관께서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라고 다독여주셨습니다. 덕분에 침착하게 실연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발문을 활용해서 내용을 설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수업 연습을 할 때 발문은 수도 없이 연습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첫 발문은 제가 지금 생각해도 참신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들을 낳고 싶나요? 딸을 낳고 싶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조선 후기 남아선호사상과 장자상속 등 생활 모습에 대한 수업을 전개했습니다. 사실 수업을 한 당시에도 ‘질문 미쳤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고 저만의 수업 리듬을 찾아가며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떠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조건을 몇 개 놓쳤습니다.ㅎㅅㅎ,, 조건에 있는 판서 내용을 1개 쓰지 못했고, 수행평가를 체크해놓고 정작 실연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 외 하나 더 놓쳤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시간은 약 2분정도 남긴채 수업을 끝내고 나왔습니다.
조건을 놓쳤다는 생각에 다시 멘탈이 나갔습니다. 그래도 정신차리고 면접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글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녁 먹고 티비 보다가 일찍 잤습니다. 멘탈은 나가더라도 잠은 잘 오더군요...
다음날은 아침도 안먹었습니다. 밥맛이 없었기때문이죠. 기가 팍 죽은채로 다시 지옥같은 학교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순번을 7번을 뽑았고, 면접은 10분씩 진행되기 때문에 제 순서는 금방 왔습니다. 이번에도 구상실에 가서 구상을 하는데 다행히도 모든 문항들이 준비를 해왔던 주제들이라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유롭게 구상을 하고 면접실에서도 연습하던데로 답변을 했습니다. 사실 수업보다 면접을 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면접에서 더 많이, 4점이 깎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면접관님들의 표정과 시선에 압도되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마치 맹수들에게 포위된 아기 사슴같은 눈빛으로 면접을 본 것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면접까지 무사히 끝냈고 길고 길었던 2차 과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6. 끝나면서
2차 준비를 하는 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시험 준비를 하는 기간에 6키로가 빠졌습니다. 머리털도 꽤 빠졌구요......(아빠가 탈모이긴 합니다) 살과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합격을 얻었다고 생각하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다시 살도 붙어 가고 있고 머리털도 빠지는 양이 덜하긴 합니다. 2차 준비 기간동안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무작정 버티고 버텼던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제 저의 합격 수기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합격 수기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합격한 선배들과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부럽기도 하면서 나도 나중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먼저 합격한 동기와 선배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응원해준 가족, 친구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같이 스터디를 해왔던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특히나 항상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며 합격의 길로 인도해주신 김쌤과 구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느 날 김쌤께 상담을 하러 갔는데, 김쌤께서 저를 보시며 ‘너는 내가 합격할 것이라고 꼽는 아이들 중 한 명’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앞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저의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정말 단순한 말 한마디인데 어쩜 그렇게 힘이 나던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말 한마디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꽤 큰 꿈이 있습니다. 백년 뒤 예비 역사교사들이 공부할 ‘선생님을 위한 한국사’ 현대사 파트에 제 이름이 실리는 것입니다. 이 꿈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교사라는 꿈도 이루어 냈으니 다음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 까요?
제가 남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빠른 시기에 임용을 합격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 어떤 조언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 포기하지 말고 우리 역사교사 합시다. 아이들한테 스승의 날 축하받는 상상을 해보시고, 아이들과 체육대회 반티를 맞춰 입으며 추억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상상을 해봅시다. 상상만해도 행복하지 않나요? 우리 공부하느라 힘이 들고 지쳐도 학교 현장에서 만날 이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이루어 냅시다. 선생님들은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저의 글이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특히나 제 글을 읽고 있을 우리 학교 후배들에게는 더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후배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주세요. 제 번호 아시잖아요?^^ 올해 같이 합격한 대학 동기 윤재, 예닮이, 그리고 교육학 스터디를 같이한 진선 쌤, 2차 스터디 같이한 현진 쌤, 서윤 쌤 합격 축하드립니다. 옆에서 많은 도움, 자극을 얻었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보니 저는 진짜 인복이 넘쳐나나 봅니다. 우리 이 인연 오래 이어가요.
모든 선생님들의 앞날에 꽃길만이 가득하길 응원하면서 이상 이상민의 합격수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부족한 합격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점 있으시면 댓글달아주세요!!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16 17:18
아영쌤~ 12월동안 재밌는 스터디 함께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응원하고 있을게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20년도에 입학해서 운 좋게 스터디원들과 함께 커피와 치킨 맛있게 얻어 먹었던 이현정입니다 ◡̎
학과 생활도,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선배님들을 만나 저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사족이 너무 길었네요 ㅠㅠ 인스타 스토리로도 확인했지만, 용기가 없어서 차마 그날 답장은 못 보내고 이렇게 댓글 남겨요
임용고시 합격 정말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감도 안 잡히네요 ㅠㅠ 이제부터는 꽃길 가득한 교직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ㅎㅎ!
저도 1월부터 노량진 올라와서 준비중인데 직강을 듣다 보면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되고 위축되면서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나아가는 선배님들을 보며 자극 받고 노력하면 할 수 있음을 깨닫는 중입니다..
저 같은 후배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조만간 꼭 따라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합격 축하드려요 🎉 남은 2월 편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고,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하실 3월도 응원하겠습니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16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