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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삼비가 천마삼절학의 연성에 실패한다면 천마교의 패망은 한 발 앞으로 다가올 것이고... 연성에 성공한다면 이땅은 천마교의 지배하에 들어갈 것이라는 마지막 결단, 그러나 천마교의 마지막 희망은 천마삼비 가운데 두 명이 적사도에 투옥이 되면서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바로 천마삼비 가운데 이인이다.]
적사칠혼 가운데 일인인 소수천마의 침통한 음성이었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 스며 있는 것은 절망감과 체념의 빛. 그의 곁에는 빙후라는 여인이 머물고 있었다. 단엽을 주시하는 그녀의 표정에 무서운 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수십여 년의 세월을 이 적사도에 보내면서... 우리는 그 누구도 연성치 못했던 천마삼절학 가운데 이절학을 연성했다.
빙후는 이렇게 말한 후 천천히 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단엽의 주위를 맴돌았다.
[천하를 우리의 힘으로 뒤덮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이었지. 전폐된 무공을 회복했고 이절학을 연성했지만, 우리가 이 적사도에 머물고 있는 이상 그것은 하찮은 고독을 달래는 손장난에 불과할 뿐이었어.
천엽... 고독은 참을 수가 있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이 황량한 곳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살아야 하는 그런 고통도 참을 수가 있었다. 매일 수차례씩 터지는 화산의 분출로 인한 공포도 참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빙후는 말을 끊고 단엽을 직시했다. 단엽은 그녀의 두 눈 저 깊숙한 곳에서 혼탁하게 일고 있는 싸늘한 한기에 몸서리를 쳤다.
[그것은 바로 허망함이었다. 허무였다. 무려 백여 년의 세월에 걸쳐 연성한 무공이 쓸모없는 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이 적사도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후후후... 거기에서 오는 그 허망함과 허무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눈물이었으리라. 그녀의 두 눈에 맺혔다 언뜻 사라지는 서리처럼
차가운 물기는...
이때다. 소수천마의 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위로하듯 감싸안은 것은. 그는 단엽을 주시하며 빙후를 대신하여 말했다.
[천엽... 수십여 년의 세월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천마삼절학 가운데 이 절학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오는 허망함. 그것은 더한 고통이었다.]
[아미타불...]
[천엽, 이것을 알아두어라. 이제 우리는 그 모든 고통과 허망함을 너에게 보상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단엽은 흠칫 몸을 떨었다. 기실, 지금까지는 단엽이 이들 두 사람에게 받은 고통은 없었다. 언제나 이들은 뒷전에서만 단엽이 받는 고통을 지켜봤을 뿐이었다. 단엽은 그런 그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대체 저들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내게 준비하고 있는 고통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이런저런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단지, 이 두사람이 적사칠혼 가운데 가장 잔인하며 무심한 인물들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고통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잔인하고 무심하다면...
나머지 적사오혼이 그런 점에서 그들 두사람을 두려워 할 정도라면... 단엽에게 항차 찾아들 고통이란 것은 엄청날 것임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받을 고통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오히려 편안하게 그것을 준비할 수가 있었겠지만 전혀 모르는 고통을 앞에 둔 단엽은 그동안 그것에 대해 야릇한 전율마저 느껴왔다.
한데, 그것이 마침내 지금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자신들의 모든 고통과 허망함을 단엽에게 보상받으려 한다니... 단엽은 전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미타불... 두 분 시주께서는 어떤 식으로 보상받고 싶소이까?]
순간, 빙후가 냉혹비정한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우리의 무공을 네놈에게 전할 것이다.]
[무... 무공을?]
[그렇다. 천마삼절학 가운데 이절학인 천마도법과 마라독공을! 이 두 가지 무공의 난해함과 그 가운데의 고통은... 후후...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단엽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희미하게 느꼈다.
(수음마공... 모친은 이 하나의 무공을 연성하기 위해 무려 백년의 세월을 소비했다. 그러나 그 분도 끝내 연성하지 못한 수음마공. 천마도법과 마라독공의 무공이 수음마공에 버금갈 정도라면, 그리고 그 무공들을 완전히 연성한 인물이 지금까지... 아니 이들 두사람 외에는 없었다면 그 난해함과 연성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단엽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것도 단시간에 주어지는 고통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이어질 고통... 이 단엽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리라.)
단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나...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내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들이 고통으로 주려는 두 무공을 내가 연성할 수가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참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엽의 오산이었다. 철저하게 잘못 계산된. 만약, 단엽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무공이라면 어찌 소수천마와 빙후가 그것을 그에게 전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이 어찌 단엽에게서 보상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 두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확신이 서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들은 단엽에게 주려 하는 고통을 스스로가 뼈저리게 맛 본 뒤였기에...
어쨌든 단엽은 이 두 가지의 무공을 전해 받았다.
- 천마도법. 이것은 소수천마가 연성한 무공이었다. 천마멸, 천마폭, 천마겁. 이 단 세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 일명 자살도법이라고도 불리운다.
이것이 자살도법이라고 명명되어진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였다. 치명적인 한 가지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도. 단 한차례 뻗어대는 간단한 동작에서 무려 일백 팔십여 줄기의 도기를 뿌려낼 수 있을때 천마도법의 제일초식인 천마혈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백육실 줄기의 도기를 뿌려낼 수 있을 때 제 이초식인 천마폭을 펼칠 수가 있고, 칠백 이십 줄기의 도기를 뿌려 낼 때 제삼초식 천마겁을 전개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무공을 전혀 연성하지않은 인물은 동시에 같은 동작을 두번은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한번 도를 휘두름에 두 사람을 동시에 죽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즉, 두 줄기의 도기를 뿌려낼 수가 없다는 것인데 절정의 도법을 연성한 인물이 동시에 뿌릴 수 있는 도기는 불과 십여 줄기뿐이다. 이 정도가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한데, 이백 팔십, 삼백 육십, 칠백 이십 줄기라면 그것은 아예 불가능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었다. 단점은 뻗어나간 도기의 반이 바로 시전자에게 되돌아 쏘아져 온다는 점이었다. 한줄기의 도기가 철벽을 반으로 쪼갤 정도의 위력이라면 수십줄기, 수백 줄기의 위력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도법을 전개한 인물에게 되돌아온다면 그것을 피할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것이다.
자살도법이란 이래서 나온 것이니 오직 한가지의 방법이 있다면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도기를 피하는 것 뿐이다. 일장 위의 물방울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지극히 찰나적인 순간에 전개자의 몸이 아흔 아홉 번의 변화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수백 줄기의 도기를 피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시전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죽음은 면한다 해도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상처는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깊은 경지에 들면 들수록 위험은 그만큼 높아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도법을 연성하는 과정은 위험과 고통이 수반된다. 다시말해 이 천마도법은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인간이 익힐 수 없는 그런 무공이었다.
단엽은 하루에도 수백 차례씩 이 죽음의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물론 전신이 갈가리 찢겨지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것이었다. 바로 이런 고통을 소수천마는 단엽에게 주려 했던 것이다. 그 고통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무엇보다 큰 고통은 이 도법은 연성할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수십 차례나 단엽의 가슴을 짓누르며 와닿는 것이었다.
- 마라독공! 빙후가 연성한 천마삼절학 가운데 일절학이었다. 한마디로 이 무공은 인간을 독으로 도배하는 무공이었다. 각기 종류가 다른 구백 구십 구가지의 독, 그것들은 한 가지 독만으로도 수백 마리의 황소들을 단숨에 절명시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공했다. 바로 그 절독을 한 가지도 아닌 구백 구십구 가지나 복용해야 하고, 더하여 한 인간이 완전히 독중지신이 되었을 때라야 마라독공은 대성할 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여기에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이란 서로 상생하는 독이 있는가 하면 마치 불과 물처럼 상극하는 독이 있었다. 바로 이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야 한다. 독으로써 독을 제압하고 상생하는 독을 서서히 키워나간다. 그리고 독을 서서히 주입시키되 독의 배합을 완벽하게만 할 수 있다면 완전한 독중지신을 이룰 수 있으며 결국은 마라독공을 대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합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실수가 있다면 그대로 끝장인 것이다. 설혹 죽음을 면한다 해도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하니...
그 고통, 그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빙후는 단엽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해야 하는 참혹한 고통의 연속. 단엽은 뼈저리게 느꼈다. 소수천마와 빙후가 이 두가지의 무공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당했을 무서운 고통의 농도를...
그리고 자신이 이 두가지의 무공을 연성하려 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이었나를 역시 절감했다.
시간.. 단엽의 고통에 비해 너무도 더디게만 흘러가는 시간은 그러나 쉬임이 흘러갔다.
하루... 열흘... 한 달... 그리고, 삼년의 세월이 간단없이 흘러갔다.
삼년의 세월이...
파아아... 갈라진다. 노을에 물든 파도가 정확히 서른 여섯 갈래로.
순간,
[우욱...]
갈라지는 파도 속에서 고통스런 이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드러나고 있었다. 파도가 저만큼 물러가자 한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물에 젖은 긴 장발이 우선 드러났고 이어 중년의 수려한 용모가 노을에 젖은 채로 드러났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밋밋한 적빛의 바위 위에 좌정해 있는 그는 천엽성승으로 변신한 단엽이었다. 삼년의 세월... 그동안 변한 것은 별로 없어보였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그의 머리가 허리아래까지 치렁하게 흘러내릴 정도로 자라 있다는 것뿐이었다.
도, 그는 이때 한자루의 장도를 가슴에 품듯 안고 있었는데 상처, 족히 수천 갈래쯤 됨직한 수많은 상처가 단엽의 상반신을 온통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었다. 마치 수천 수만 번 난도질당한 고깃덩어리와 같다고나 할까. 실로 그 모습은 보기에도 끔찍한 것이었다.
[휴우... 나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연성이 불가능한 도법인가? 천마도법.. 그것은?]
단엽의 얼굴에 짙은 절망과 고통의 빛이 동시에 어우러졌다.
[아아... 천마도법의 제일초인 천마멸만 해도 일도에 일백 팔십 도기를 뿜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불과 서른여섯 줄기의 도기를 뿌려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탄식과 함께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더욱이나 서른여섯 줄기 가운데 열 여덟 줄기의 도기는 나를 향해 뻗어지는 것이고 현재로서는 도저히 그것을 피할 길이 없다.]
단엽의 상반신에 나 있는 무수한 상처. 그것들은 바로 단엽이 천마도법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방금 그의 몸에는 또다시 열여덟 줄기의 상처가 생겼다. 마치 뼈마디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 이런 육체적인 고통이야 하루이틀 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제 이력이 나 있는 단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고통은 절망감이었다.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이 천마도법을 연성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것은 무서운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쏴아아... 파도는 또다시 밀려왔고 단엽은 소금기에 절어 있는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고통을 일이 년도 아닌 백년 이상씩 받아 온 소수천마와 빙후... 과연 그들이 이 무공들을 연성했음에도 이곳에서 썩어야 할 신세를 한탄할만 하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허망함... 언제인가 나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겠지.]
헌데 그의 말이 막 끝나는 그 순간이었다.
[흐흐... 당연히 그래야 한다. 천엽.]
단엽의 뒤쪽에서 한줄기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뒷짐을 진채 도저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눈빛으로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삼십 오륙 세 가량의 수려한 인물. 그는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는 석고인간처럼 보였다. 소수천마였다.
[그러나 천엽 그대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불과 삼년 만에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해.]
[아미타불...]
단엽은 합장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정도의 성취가 대단한 것이란 밀이오?]
소수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것이지. 그대의 치졸한 능력으로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은... 크핫하하...]
앙천광소.
적사도 전체를 웅웅 울릴 정도로 엄청난 앙천광소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그의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조롱이었고 경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소수천마... 그렇게 좋아할 것까지는 없다. 노납은 노납의 성취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으므로...]
소수천마는 웃음을 뚝 그쳤다. 단엽의 조소어린 말투에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천엽... 고통을 잊고싶은가 보군. 네놈의 그 건방진 태도는 죽어 고통을 잊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겠지.]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시선은 먼 노을을 향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차라리 이런 고통은 죽음으로써 잊는 게 속이 편하겠지. 그러나 단지 고통은 노납에게만 있는 게 아니야. 그대에게도 고통은 있으며 수십여 년의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그런 허망함과 고통으로써 잊는 게 나을 것이다.]
[후후...]
소수천마의 입에서 한가닥 비정한 웃음이 맺혔다.
[네놈들의 그 말은. 나를 죽여 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런가?]
[원한다면...]
단엽은 여전히 노을을 바라보며 간단히 말을 잘랐다. 순간, 소수천마는 느릿하게 단엽에게 다가섰다.
[분명히 내가 원한다면 죽여 줄 수 있다 했는가?]
[물론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를 죽여주게.]
담담한 소수천마의 음성에는 무서운 살기마저 스며 있었다.
[좋아.]
단엽은 소수천마를 향해 빙글 몸을 돌렸다. 좌정한 자세 그대로. 그 동작 하나에는 지극히 여유가 있었다.
[원한다면 죽여주지. 아니 원하지 않아도 그대는 노납을 위해 죽어야 한다.]
[후후... 그러나 네놈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지 궁금하군.]
[당연하다. 그런 궁금증은. 노납 역시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노납이 과연 너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결론은 언제나 동일하게 내려졌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군. 어서 공격하라.]
소수천마의 입가에 맺힌 조소와 경멸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단엽은 미간을 찌푸렸다.
[준비하라! 너는 무방비 상태다.]
[그렇게 보이나?]
[적어도 노납의 눈에는.]
[빈틈이 보인단 말이지?]
[노납의 말을 믿지 못하는군.]
[공격하라. 보이는 빈틈을 노리고.]
소수천마는 차갑게 말을 끊었다. 여전히 뒷짐을 진 자세였다. 빈틈... 그의 완만한 자세 속에는 그런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단엽은 장도를 지면과 수직으로 세웠다.
[역시 믿지 못하는군.]
단엽의 이 음성은 허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단엽의 신형. 그것은 허공중에서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지 않는가?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 소수천마를 향해 그의 신형은 무섭게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파아아...
단엽의 장도에서는 소수천마를 중심으로 십방을 모조리 차단하며 무서운 도기가 폭출되었다. 무려 백 팔십 줄기의 도기. 소수천마의 두 눈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났다.
[처...천마멸!]
천마도법 가운데 제일초식. 언제 그 가공할 도법을 단엽이 연성했더란 말
인가.
[이.. 이럴 수가!]
소수천마는 대경했다. 그가 알고 있는 단엽은 단지 서른여섯 줄기의 도기만을 뿌려낼 수 있을 뿐이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 단엽은 완벽한 천마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나를 속이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유라곤 없었다. 움직인다. 그의 신형이... 찰나적인 순간 무려 서른 여섯의 변화를 그려내며... 그러나 늦었다.
파파팟! 소수천마의 양쪽 소매가 너덜너덜 찢겨져 허공에 날리었다.
[주... 죽일 놈!]
소수천마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순간, 그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묵도가 들려져 있었고 그는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단엽을 향해 무섭도록 빠르게 묵도를 날렸다.
[천마폭!]
더불어 터져나오는 이 소리. 소수천마는 단엽을 향해 천마도법 가운데 제 이초식을 전개하고 있었다.
우우우.... 묵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삼백 육십 줄기의 도기에 의해 천지가 검게 변하는 듯했다. 순간, 단엽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그 몸은 찰나간에 아흔 아홉 번의 방위 이동을 하니...
이런 정도의 변화라면 제아무리 무서운 자살도법이라도 완벽히 피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설사, 소수천마가 천마폭이 아닌 천마도법의 제삼초식 천마겁을 전개했다 해도 단엽의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허억... 이럴 수가... 불과 삼년 만에 저런 성취를 이루다니... 미... 믿을 수 없다.]
그의 눈빛이 무섭게 뒤흔들렸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었다. 일명 자살도법이라 불리는 천마도법. 이 무공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은 이미 설명한 바이다. 백 팔십 줄기의 도기를 일시에 뿌려내는 천마멸. 삼백 육실 주기의 도기를 뿌려내는 천마폭. 칠백 이십 줄기를 뿌려내는 천마겁. 그러나 그 뿌려지는 도기의 반은 바로 시전자에게 향한 것이고, 그것을 막을 수 없기에 자살도법이라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천마도법은 시전자나 공격당하는 자가 똑같이 공격을 당하는 위험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방법이 있다면 조금전 단엽이 전개한 것처럼 아흔아홉 번의 방위이동이 있어야 하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천마멸과 천마폭, 천마겁을 완벽하게 시전자나 공격당하는 자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기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려 백여 년의 세월을 오직 도와 함께 살아 온 소수천마가 지금에서야 간신히 연성한 것이 그것을 대변하지 않는가? 헌데 불과 삼년이다.
불과 삼년 만에 단엽이 천마도법의 천마멸을 전개했고 찰나지간에 아흔아홉번의 방위이동을 하여 소수천마가 전개한 천마폭을 피한 것이다.
소수천마의 경악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심적 동요가 실수라면 실수가 될 줄이야. 그 지극히 찰나적인 순간,
파아아... 단엽의 장도에서 수백 줄기의 도기가 폭출되어 소수천마의 몸을 휘감는 것이 아닌가?
마치 찬란한 빛의 무리에 휩싸인 듯한 소수천마. 그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중얼거림이 터져 흘렀다.
[으으... 천마겁... 천마겁마저 완벽히 연성하다니...]
그렇다 일시에 칠백 이십줄기의 도기를 뿜어낸다는 환상의 도법. 천마겁. 아니 환상을 넘어서 전율과 공포에 가까운 천마겁이 지금 단엽의 손에서 전
개되고 있었다.
(이...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다.)
소수천마는 몸을 움직였다. 아흔 아홉 번의 방위이동을 해야 이 천마겁을 완전히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의 폐부 깊숙이 전율처럼 일고 있는 경악, 그리고 불신과 회의. 고수의 싸움에서는 이런 심적동요는 치명적이다. 그는 수백 줄기의 도기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찰나지간, 파파팟!
수십여 줄기의 도기가 미처 피하지 못한 소수천마의 전신에 사정없이 작렬했다. 헌데,
[어!?]
경악성, 이 경악성은 분명히 단엽의 입에서 터져 나왔으며, 어처구니없게
도 그는 주춤 물러서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 금강불괴?!]
단엽의 두 눈은 더할 수 없이 부릅떠져 있었다. 상대는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을 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끄덕도 안했다.
[후후... 이제야 그것을 알았다면 늦었다.]
소수천마는 음산하게 웃으며 묵도를 들어 단엽을 향해 내리쳤다. 천마도법 가운데 제일식인 천마멸을 전개한 것이다. 헌데 그 순간,
[아직 늦지는 않았다.]
단엽은 싱긋 웃으며 우수를 뻗었다. 소수천마가 미처 천마멸을 완벽히 펼
치기도 전이었다.
헌데 단엽의 손, 그것은 한순간 무려 일천 개의 환영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어 일천개의 환영이 마치 안개처럼 일시에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
[크으으...]
소수천마의 입에서는 참혹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는 경이의 눈빛으로 주춤주춤 십여 보 가량 뒤로 물러서고 있었는데 그의 미심에는 단풍 모양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소수천마의 신형은 심하게 흔들렸다.
입가에는 가는 선혈마저 보이고...
[무... 무슨 무공?]
소수천마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자신의 금강불괴의 몸이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엽은 빙그레 웃었다.
[전문적으로 금강불괴의 몸만을 파괴한다는 단엽천불수이지.]
순간적으로,
[부...불문 최고의 무공!]
소수천마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러나 단엽의 공격이 거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손, 다시 우수가 소수천마를 향해 날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한데 손, 단엽의 손은 너무도 희고 투명하기까지 했다. 마치 얼음처럼.
그리고 빨랐다. 그것이 뻗어지는 그 순간 이미 소수천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컥!]
소수천마는 가공할만한 한기가 단엽의 손에서 흘러나와 자신의 심장을 비롯해 내장 모두를 얼려 감을 느끼고 경악했다. 분명히 단엽의 손은 그의 가슴을 파고 들었지만 피라곤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모... 모두 얼었다.)
소수천마는 아예 전율했다. 단엽은 다시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것은 수음마공이다. 들어본 적이 있겠지...?]
[수...수음마공... 아아...]
소수천마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는 두 팔을 발악처럼 단엽을 향해 뻗어냈다. 파아아! 그의 양팔목에 감겨 있던 한 쌍의 묵환이 풀어지며 그대로 한 쌍의 도로 변하며 그 상태로 가공할 천마도법의 제삼초식 천마겁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엽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무려 수백 줄기의 도기가 단엽의 전신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소수천마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헌데, 그 미소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캉캉캉... 수백 줄기의 도기는 단엽의 몸을 그대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었다. 일부는 적중했지만 역시 단엽의 몸에 아무런 손상도 익히지 못했다. 단엽은 빙긋 미소 지었다.
[수음마공은 금강불괴지신보다 더 강한 신체를 준다. 그것을 몰랐던가?]
[끄으으...]
소수천마의 몸은 이제 완전히 투명해지고 있었다. 한 덩어리의 얼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말할 여력은 남아 있는 듯 싶었다.
[끄으... 처..천마도법..다...단엽천불...수...수음마공..거..거기에 마라독공까지...여...연성했을 테니...너...천엽은 천하무적...그러기에 느껴야 하는 허망함...헉헉...누구보다 크리라...나...나는 주,죽어...모든 고통 끝나나... 너...너는...시작...]
그러나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쩍쩍... 그의 얼음동체에 수백 가닥의 금이 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조각조각으로 갈려져 버리는 것이다. 이어, 그 얼음조각들은 순식간에 물로 화해 버린다. 소수천마의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묵도와 한쌍의 묵환, 그리고 머리에 둘렀던 검은 문사건, 역시 검은 비도 한쌍이었다.
단엽은 그것을 하나씩 주었다.
[그렇지. 소수천마에게는 여섯 개의 도가 있었지. 손에 든 묵도는 천마도.
팔찌처럼 팔목에 낀 이 두개의 묵환은 천마환. 그리고 이 검은 문사건은 천
마건이며...]
마지막으로 한쌍의 검은 비도를 집어들었다. 비도, 그것은 손가락 크기 정도의 아주 작은 것이었다.
[이것은 천마비도라 했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상황에 따라 이것들은 완벽한 도가 된다.]
단엽은 그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핀다. 이어, 천마건을 자신의 머리에 둘렀고, 천마환은 자신의 손목에 둘렀으며 천마비도는 허리춤에 집
어넣었다.
(후후... 이것들은 내가 소수천마가 되기 위해선 빠질 수가 없는 것들이
다.)
이때였다. 단엽의 모습이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천엽성승의 모습에
서 다른 한사람의 모습으로. 그 모습은 바로 소수천마의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같았다. 그 한 몸에서 풍기는 기질까지도. 그리고,
[문제는 옷이로군. 그렇다면 나머지 적사육혼의 연공시간을 기다려 귀신도 모르게 소수천마의 거처로 들어가 두 벌의 옷 중 나머지 한 벌을 훔쳐 입어야겠군.]
이 음성까지도 소수천마의 것이었다.
쏴아아... 단엽은 이제 그 빛을 잃어가는 노을을 본다.
[단엽...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동안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그의 입가에 비정한 미소가 스쳤다. 이어, 소수천마가 한줌의 물이 되어 버린 곳을 힐끔 주시했다.
[소수천마. 너는 자신을 너무 과신했다. 금강불괴지신에 천마도법을 십이성 대성한 너이기에 당연히 자만과 나태가 찾아든 것이겠지만...]
단엽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그 자만과 나태가 결국 너를 죽인 것이다.]
쏴아아....
- 그리고 소수천마, 너의 실수라면 나를 화룡담에 자주 머물게 한 것이다. 수음마공의 수음지기가 나의 체내에 잠재되었고 그것은 화룡담의 극양의 기운과 조화를 이루며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으니... 너희들은 미처 몰랐겠지만 화룡담에서의 나의 성취는 너희들의 수십 배에 달한 것이었다. 비록... 삼년의 세월이었지만 나는 화룡담의 덕분으로 천마도법을 비롯한 마라독공, 단엽천불수, 수음마공 모두를 연성할 수 있었다. 결국, 너의 패배는 자만에서 나온 것이고, 나의 승리는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다. 복수하리라! 내가 받은 그대로를 돌려 주리라!
빙후. 이 여인의 표정은 어두웠다. 얼음보다 더욱 시리게 느껴지는 눈빛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어둠침침한 동굴의 석실을 배회하는 그녀는 웬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일까?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천엽이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이며... 그분은 어디로 가신 것일까?)
기실, 지금 이 적사도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단엽이 돌연 실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소수천마까지도 종적이 묘연했다.
적사오혼은 천엽과 소수천마를 찾아 적사도를 헤매고 있었고 빙후만이 남아 동굴을 지키고 있었다. 빙후와 소수천마. 겉으로 알려진 이들은 천마삼비 가운데 이인이었다.
그들이 연성한 무공은 천마교 사상 최강의 무공이라는 천마삼절학 가운데 이 절학, 그 누구도 연성치 못할 것이라는 가공할 무공을 그들은 무려 백년의 세월을 허비해 가면서 결국은 대성했다. 이것은 나머지 적사오혼에게는 경이로움 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적사오혼은 이들 두 사람에게 한가닥 두려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들은 나이를 떠나 동등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 두려운 감정이 빙후와 소수천마만큼은 특별한 신분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빙후와 소수천마는 나머지 적사오혼에게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빙후와 소수천마는 부부지간이었다.
물론, 그들은 적사도에서 부부로 맺어 진 것이다. 서로의 고독을 부부라는 인연의 끈으로 달래고자... 그래서인지 그들 간의 사랑의 농도는 여타의 부부들보다 더욱 끈끈하고 깊은 것이었다.
지금, 빙후의 마음은 소수천마의 그림자로 꽉 차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그림자로만 존재했던 사람. 다른 사람에게는 비정하나 자신에게만은 누구보다 따스했던 사람. 그가 홀연 자신의 곁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은 없었다. 이토록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이 한번도...
(혹시... 그분의 신상에 무슨 변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빙후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져 갔고 급기야 이런 불길한 생각까지도 한다. 적사도. 인간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다. 거대한 화산의 분출과 함께 하루에도 서너번씩 용암에 뒤덮이고. 거기에서 오는 여파로 땅이 갈라지는 거대한 균열도 있다. 아차하는 날이면 이런 자연의 횡포 아래 죽어가야 할 판이다. 비록, 무공이 신의 경지에 이른 소수천마라도 예외가 될 수가 없었다. 만약 적사칠혼이 이 안전한 동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들도 앞서 죽어간 인물처럼 이미 오래 전에 이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아무튼 빙후는 불안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분을 찾아나서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그녀는 이내 마음을 굳히고 몸을 돌렸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앞을 딱 막아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바로 빙후가 애타게 기다리던 소수천마였던 것이다.
[아아... 당신, 무사하셨군요.]
빙후는 말과 함께 와락 소수천마의 품으로 몸을 던졌다. 소수천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미안하게 되었소.]
[대..대체 어찌된 일이지요?]
빙후는 물기 젖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소수천마는 탄식했다.
[그가 죽었소.]
[그가 죽다니요?]
빙후는 소수천마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를 바라보는 소수천마의 눈은 기이했다. 물론 그런 표정의 변화는 빙후가 느낄 수 없는 미세한 것이었지만.
(지독하게 아름다운 얼굴이로군. 한 덩어리의 얼음인 줄 알았더니 제법 따스하기까지 하네.)
이런 중얼거림은 분명 소수천마가 아니라 단엽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소수천마는 단엽이었다.
(빌어먹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몸이 벌써 뜨거워지고 있잖아. 아직은 때가 아닌데...)
단엽은 또다시 발동하는 자신의 병에 흠칫하여 와락 빙후를 끌어안았다.
혹시나 빙후가 자신의 이런 변화를 눈치 챌 것을 우려하여... 그녀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천엽,그 놈이 죽어버렸소.]
그는 못내 애석하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순간,
[그...그가 죽어요? 어떻게?]
빙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당히 놀라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천엽의 죽음 따윈 그녀에게 있어서 하나의 노리개가 없어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가 없었다.
[놈은 자결했소.]
[자결?]
[천마도법을 연성하던 도중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용돌이에 몸을 던지고 만 것이오.]
[실수로군요. 그 놈이 자결할 수도 있었다니...]
[그렇소. 그놈에게 그런 용기가 있음을 몰랐던 것이 실수요. 애초부터 놈이 자결하려 마음먹었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놈의 자결을 막을 수가 있었지만, 놈은 모든 굴욕을 감수하고 살기 위한 발버둥을 쳤고, 그것이 결국 우리가 놈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오. 그런 만심이 결국 그 놈에게 자결할 기회를 준 것... 우리 모두의 실수요.]
[어쩔 수가 없지요.]
빙후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엽은 탄식했다.
[안타까운 일이오. 그동안 그 놈은 충실히 우리의 고독과 허무를 달래주었는데... 이제 놈이 자결한 이상 우리의 고독과 허무는 또다시 이어질 것이오.]
[참아야지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으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겠소. 이곳 적사도엔 우리 외에도 천엽을 대신할 사람은 있소.]
[그럴리가...]
[내가 말한 우리란 당신과 나요.]
[그렇다면?]
빙후는 눈을 크게 떴다. 단엽은 비정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적사오혼이오. 그들은 내일부터 우리를 위해 천엽을 대신해야 할 것이며... 천엽대신 우리의 고독과 허무를 달래주게 될 것이오.]
[당신... 무서운 생각을?]
[후후... 적사도는 우리만의 왕국이오. 아니 그렇게 만들 생각이오. 우리를 위해 적사오혼은 충실한 하인이 되어야 할 것이며... 앞으로 이 적사도에 투옥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이오.]
[아아...]
[후후... 이곳은 죽음의 땅이 아니오.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라 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소. 화룡담이 있는 이곳은 가꾸기에 따라 천상의 낙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오.]
[꿈이에요. 그것은...]
[꿈이 아니오. 그런 사고방식이 그동안 우리를 체념하게 했고... 짐승처럼 살게 한 것이오. 후후... 더 이상은 짐승처럼 살지만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인간이오. 인간이니 인간다운 생활을 해야 할 것이 아니오.]
[하지만...]
[당신은 모든 것을 나에게 일임하고 나의 뜻을 따라주기 바라오.]
단엽은 그윽한 시선으로 빙후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뜨겁다. 빙후라는 이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의 입술은 불처럼 뜨거웠다.
(빌어먹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단엽은 솟구치는 욕념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돌침상에 누였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찢듯이 볏겨 내렸다.
[걱정이 되어요.]
그녀는 침상에 누운 채 단엽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적사오혼을 걱정하는 것이오?]
단엽은 짐작이 간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래요. 그들은 우리의 하인으로 두기엔 너무 강해요. 당신은 그들이 순
순히 당신의 뜻에 응하리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