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요법문(心要法門) ①
「오대산 진국대사 징관 답황태자문심요(五臺山鎭國大師澄觀答皇太子問心要)」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오대산에 머물던 화엄종 제4조인 청량 징관스님에게 당시 황태자가 마음의 요결에 대하여
질문한 것에 대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마음의 요결에 대하여 화엄 사상을 피력한 것이지만
그 기본 내용은 중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서두를 생략하고 중간 부분부터 끝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선어록(禪語錄)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비록 마음의 요결에 대한 화엄사상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취지가 또한 선지(禪旨)와도 부합됨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止)를 말하자면 곧 지해[知]와 적적함[寂]을 함께 잊는 것이요,
관(觀)을 논하자면 곧 적적함과 지해를 함께 비추는 것이며,
증득[證]을 말하자면 곧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요,
이치[理]를 설하자면 곧 증득이 아니면 요달 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적적함[寂]을 깨달으면 적적함이 없으며,
참다운 지해(知解)는 지해가 없음이다. 지해와 적적함이 둘이 아닌 한 마음으로
공(空)과 유(有)가 함께 원융한 중도에 계합하여,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
며, 포섭하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아 시(是)ㆍ비(非)의 둘이 없고, 능(能)ㆍ소(所)가
함께 끊어져, 이 끊어졌다는 것도 고요하면 곧 반야가 현전하느니라.
言止則雙亡知寂이요 論觀則雙照寂知며 語證則不可示人이요 說理則非證不了니
언지즉쌍망지적 논관즉쌍조적지 어증즉불가시인 설리즉비증불료
是悟寂無寂이요 眞知無知라 以知寂不二之一心으로 契空有雙融之中道하여
시오적무적 진지무지 이지적불이지일심 계공유쌍융지중도
無住無著하여 莫攝莫收하여 是非兩亡하고 能所雙絶하여
무주무착 막섭막수 시비양망 능소쌍절
斯絶도 若寂 則般若現前하느니라. (景德傳燈錄;大正藏 51 p. 459 下)
사절 약적 즉반야현전
적적함[寂]은 쌍차(雙遮)이고
지해[知]는 쌍조(雙照)를 의미하는데,
쌍차도 잊고 쌍조도 잊는 것을 지(止)라 하고,
적적함과 지해를 쌍조하는 것을 관(觀)이라 합니다.
또한 법화경에도 나와 있듯이
"제법의 적멸한 모습은 말과 소리로 표현할 수 없다" 하였듯이
쌍차쌍조인 중도(中道)를 실증한 것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시경전에서 다섯 비구를 위해 설했다든지 누구를 위해 설했다는 것은
순전히 방편일 따름이지 실법(實法) 그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실법인 쌍차쌍조의 중도는 또한 실제로 실증을 하여야
그 이치를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실증을 하기 전에는 그 이치를 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적적함[寂]을 깨치면 적적함을 볼 수 없고,
참다운 지해[知]는 지해(知解)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자리에 와서야 비로소
오(悟)라 하든지
견(見)이라 하든지
적(寂)이나 또는
지(知)라 할 수 있는 것이지,
지견(知見)이나 지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이것은 생멸의 변견(邊見)으로 참된 지(知)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관(止觀)이란
적(寂)과 지(知)를 말하는데,
이 적과 지는
적ㆍ지를 떠난 데서 하는 소리입니다.
적도 찾아볼 수 없는 적,
지도 찾아볼 수 없는 지,
이것이 참된 적이고 참된 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적(眞寂)과 진지(眞止)에 있어서는 진적이 진지가 되고
진지가 진적이 되어 원융무애하여 둘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써
공과 유가 서로 무애한 중도에 계합되어 여기에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포섭하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옳음[是]과 그름[非]이 끊어지고,
주체[能]와 객체[所]가 끊어져 버리며
끊어졌다는 이것마저도 다 끊어져 버리고
완전한 무주무착(無住無着)이 되어
참으로 중도반야가 현전한다는 말입니다.
즉 객진번뇌의 구름이 걷혀 버리고
제8아뢰야(阿賴耶)의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떨쳐 버리면
진여자성(眞如自性)의 반야가 저절로 현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