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인생과 세월이 조응하는 존재의 인식 --신사봉 시집 『시로 여는 세상』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삶을 통한 존재의 인식과 성찰 현대시의 구도나 구성 요건은 대체로 삶의 궤적(軌跡)에서 재생하는 이미지가 그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어서 누구나 지나온 삶의 발자국에서 많은 사유(思惟)의 현장이 전개된다. 이러한 과거형 흔적은 우리 인간들이 소유한 심성에서 생성하는 칠정(七情-喜怒哀樂 愛惡慾)이 인생행로의 중심으로 애환(哀歡)의 이미지로 투영되어 작품과 접맥하는 과정을 많이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 중에서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것과 똑같은 경험이다.”라는 말로 삶에 대한 명확한 진의(眞義)를 파악하지 못한 채 지금 그의 의문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신사봉 시집 『시로 여는 세상』을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삶에 대한 진정한 해법과 동시에 그의 존재의 인식과 성찰을 탐색하는 인생론을 읽을 수 있었다. 삶이란 것은 인생과 또는 생명 그리고 생사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散在)하기 때문에 신사봉 시인이 추적(追跡)하는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자// 사는 날까지 하루하루를 반성하며 살자/ 그러니 오늘을 즐겁게 살 일이다(「오늘」 중에서)”라거난 “자기 분수를 지키고 감사할 줄 알면/ 마음이 즐겁고 조금이라도 베풀 줄 알면/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행복이란」 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이미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 대한 진실이 명징(明澄)하게 적시되고 있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슬픔일까 행복일까 가슴 뭉클해지는 인생의 무상함이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 버릴 줄 알았는데…, 세월에 지배받는 육체는 그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 간다 나이가 들어도 머릿속에는 추억을 실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내 일상이 줄기차게 뻗어가는 대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문 신사봉 시인은 이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엄습(掩襲)하는 심리적 현상 바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의문들이다. “살아온 날들이 슬픔일까 행복일까/ 가슴 뭉클해지는 인생의 무상함이다”라는 상황 설정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슬픔인지, 행복인지 잘 분간이 안되지만 인생의 무상함이 불현 듯 가슴 뭉클하게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가 들면 영육(靈肉)이 모두 함께 세월의 지배를 받아서 그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는 자신을 그는 결론으로 “나이가 들어도 머릿속에는 추억을 실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내 일상이/ 줄기차게 뻗어가는 대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으로 살고 싶다는 염원의 의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나아가 어떤 훈장이나 부정이 따르는 역사를 보게 되면/ 실패한 삶이고,/ 비록 서민으로 살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길은/ 값진 삶이다(「삶에 대하여」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가 진정 추구하는 값진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마라 주는 사랑 더 소중한 것을 살기 어렵다고 후회하지 마라 고난 후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라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을 슬픈 일이 없었어도 진정, 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삶의 보람 이룩하게 된다는 것을 바라보며… --「세상 사는 법」 전문 신사봉 시인은 다시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작품 삶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찾아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것은 지나가네// 지나간 모든 것은/ 소중하게 되리니.” 누구나 많이 읽어던 기억이 난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작품이다. 그는 이 세상 사는 법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마라, 살기 어렵다고 후회하지 마라, 도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라는 등의 인생 잠언(箴言) 같은 어조로 훈계하고 있어서 푸쉬킨의 용기 북돋음처럼 삶에서 고통받거나 절망의 우울한 감정을 해갈하는 해법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지 마라”라는 경계에서도 “슬픈 일이 없었어도/ 진정, 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삶의 보람 이룩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러주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다람이 커피숍」 「환승역」 「그늘 사랑」 「정답게 시는 길」 「쓰레기통을 보며」 「쿨하게 사는 길」 등등에서 신사봉 시인이 여망(輿望)하거나 갈구(渴求)하는 삶의 지향점을 명징하게 적시하고 있어서 그의 존재와 상찰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 “가는 세월”이 남긴 시간의 흔적 신사봉 시인은 삶과 동행한 세월에 대하여 다채로운 흔적의 사유에 천착(穿鑿)하고 있는데 이는 세월과 더불어 재생되는 인생의 자취가 애환의 범주를 벗어나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형상화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인생 무상」이라는 서글픈 관념의 언어로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 꽃은 피어야 아름답고/ 바람은 불어야 시원하며//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다”라는 노년의 행적을 인생론으로 정리하고 있어서 그가 이 세월, 즉 시간성에서 감지(感知)하는 그의 내면에는 삶에서 이미 긍정하고 수용한 존재에 관한 심도(深度)있는 성찰이 동반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에게서 시간성 또는 세월이라는 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지(扶支)해온 생명의 원류가 희노애락의 정적(情的)인 변화와 정적(靜寂)에 대하여 어떠한 기류와 상응(相應)의 행적이 있었느냐하는 인생의 행로가 바로 이 세월과 불가분의 상관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람도 재를 넘다 피고 지는 꽃봉오리 세월 속에 흘러가고 인생의 가는 길엔 머물 자리 안 보이고 도둑맞은 내 젊음, 선명한 주름살이 그물처럼 덮여 오네 바람이 듯, 구름이 듯, 허허로운 꿈길 살아서 한 백년 죽어서는 몇 해련가 바람으로 가는 세월 물 위로 떠가는 한 잎 가량 같은 거 --「가는 세월」 전문 그렇다. 신사봉 시인은 고시(古詩)에서 말하는 무정세월 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라는 무상한 세월에서 그는 “인생의 가는 길엔/ 머물 자리 안 보이고/ 도둑맞은 내 젊음,”이라는 어조로 “선명한 주름살이 그물처럼/ 덮여 오네”라는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월의 야속함을 허허로운 꿈길이며 살아서 한 백년 “바람으로 가는 세월/ 물 위로 떠가는 한 잎 가량 같은 거”라는 결론으로 가는 세월을 자탄(咨歎)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탄은 작품 「바위처럼」 중에서 “77년의 세월을 지키며/ 견디어 간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바쁘더라도/ 끝까지 서두르지 아니한다// 폭풍이 지나가도/ 비가 지나가도 푸념하지 않는다”거나 「66회 생일을 맞이한 당신께」 중에서도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신축년 흰 소의 해/ 여보, 지난날을 반성하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77년과 66년의 세월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내와 사랑으로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얼굴에 그늘이 덮였다 넓게 퍼진 산 그림자 퍼져 간다 얽히고설킨 시간 그 많던 햇살도 어디로 갔을까 내 몸에 살다 간 시간의 흔적 거울에 비추고 있다 나는 꽃길이라 부르리 나를 지켜준 증거 나는 계속 꽃길을 걸으리라 --「주름살」 전문 신사봉 시인은 문득 쳐다본 거울에서 자신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얼굴에 그늘이 덮였”음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는 “얽히고설킨 시간/ 그 많던 햇살도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으로 자신의 얼굴에 늘어진 주름살을 “내 몸에 살다 간 시간의 흔적”은 결국 세월이라는 무형의 흘러간 시간 앞에서 나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나이가 드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작품 「생기 있게 살려면」 중에서 “나이가 들면 근육이 약해지고/ 상상력이 빈곤해진다/ 편안함에 길들어지면 혼자의 힘으로 견뎌내기 힘들다/ 뇌의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 소파에 누워 삼시세끼 보내다 보면/ 상상력의 근육과 다리의 근육,/ 노화의 길로 가게 된다”는 섭리(攝理)를 자인(自認)하면서 노화(老化)라는 현실을 실감(實感)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작품 「나이가 드니」 전문에서도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다 어렵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막막하였던 일도 풀리게 된다// 고상(高尙)하고 수준 높은 사람보다/ 이제는 소탈하고 마음 알아주는 시골 동창이 좋다”는 어조로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세월과의 화해로 자성의 정감적인 심성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3. 작품의 사회성 혹은 시사성 일찍이 영국의 시인 매슈 아놀드는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이야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시가 나의 삶이나 주변의 인간들에게 가장 밀접한 생활상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래는 그 시인이 직접 부르는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작중화자(作中話者-persona)를 통해서 간접화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신사봉 시인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의 실상들을 적시하여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하여 거기에 야기(惹起)하는 안타까운 현상들을 세상에 알리거나 호소하는 인간의 긴박한 이야기들에 많은 관심을 흡인하고 있어서 이목(耳目)을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작품 「삶의 현장을 본 후」 중에서 “텃밭 앞 정자각에 조그마한 나무통이 새집처럼 설치되어/ 사람 없어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꽈리고추 한 봉지에 2천 원,/ 수정노인회회관 어르신들께도/ 사시사철 봉사를 아름답게 하시는 할머니”라는 정감의 어조로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화법(話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하늘을 본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오늘은 눈이 오려나 날씨가 좋을 때면 앉아 있기도 좋은 날, 돌덩이처럼 굳어진 어깨와 허리, 무릎이 아파도 손뜨개질하여 수세미를 팔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하루하루 구걸하는 삶, 정자역에 오가는 사람들은 할머니 오늘도 나오셨어요 떡 두 개 주세요 그리고 어여쁜 수세미 주세요 그럴 때면 허기진 몸짓에도 환히 웃으시는 할머니 바람에 몸 맡긴 운명, 하늘은 알고 있을까 오늘은 수세미가 팔리지 않아 수심에 싸여 할머니 표정이 어둡다 --「뜨개질하는 할머니」 전문 일찍이 시는 순수하게 생활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아름다움(美)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으나 현재의 시인들은 현대의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생성하는 불안감 또는 위기의식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희망과 투쟁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 표면에 적시하여 호소력으로 개선하는 비평의식이 시의 한 요체(要諦)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사봉 시인도 이러한 사회적인 모순이나 갈등들을 작품을 통해서 호소함으로써 시의 정신과 시의 위의(威儀)를 향상하는 동시에 인간의 정서를 정화(淨化)하는 교시적(敎示的)인 역할도 그의 뇌리(腦裏)에 순수 정신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뜨게질하는 할머니는 오늘도 정자역에서 “영하의 날씨에도 하루하루 구걸하는 삶”으로 떡을 팔고 뜨개질한 수세미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생활(real life)에서 감당하고 있는 할머니의 고난이 시인의 안목에는 어쩐지 “바람에 몸 맡긴 운명, 하늘은 알고 있을까”라는 불합리의 현장이 “오늘은 수세미가 팔리지 않아/ 수심에 싸여 할머니 표정이 어둡다”는 안타까움이 형상화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비애(悲哀)가 짠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할머니는 키가 작지만/ 홍두깨를 마음대로 주무르신다/ 밀가루 반죽을 말았다 펴고 맛을 불러들인다(「할머니의 칼국수」 중에서)”거나 “고단한 나날들이 그렇게 허리 굽도록/ 이고 지고 한평생을 끌고 온 세월,/ 폭우가 내리지 않은 이상 / 오후 다섯 시도 안 되어 팔려/ 할머니의 손끝은 쉼 없이 분주하다 (「노점상 할머니들」 중에서)”는 등으로 들려주는(telling) 할머니에 대한 스토리는 시의 사회성이 더욱 정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땅이 있는 한 사람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나무를 계속 심어야 한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 세상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선거의 중립성이 계속되어야 한다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심(正心), 정도(正道), 정의(正義)를 가진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이 세상의 변화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계속되어야 한다」 전문 신사봉 시인은 보편적인 생활상의 사회적 모순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살아나가는 지향점에서도 상당한 불안과 불만의식이 공존하고 있는데 위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심(正心), 정도(正道), 정의(正義)를 가진 /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어조로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선거의 중립성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그의 자존(自存)은 더욱 진지하게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작품 「혁신」 중에서 “현명함도 잃고 죄의식과 수치감을 잃으면/ 혁신이라 할 수 없는 일…,/ 어떻게 국민을 행복하게 할까/ 새로운 시대, 새롭게 발전하는 국민의 염원/ 무엇을 움켜쥐고, 무엇을 놓지 못하는가”라거나 「골짜기」 중에서도 “정치도, 학교도, 교회도, 학계도,/ 틈새가 간격이 골을 만든다/ 세상의 일도 골짜기 천지다/ 네 편이니 내 편이니 편을 가르는 싸움은 /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골짜기를 메워야 한다”는 그의 사회적인 신념과 민주주의 국가관이 투철하게 적시하는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신추도의 천일염」 「8남매의 사랑 꽃」 「난태를 막아내는 길」 「지하철」 「성남시에 사는 보람」 「작은 불씨 하나」 등등에서 그는 사회적인 현실의 미흡한 점이나 불만의 요소들을 적나라하게 적시함으로써 우리들의 심성에서 요동치는 울분이나 분노들을 순화하는 기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자연 섭리에서 투영하는 서정성 신사봉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자연 섭리에 순응하고 만유(萬有)의 자연이 제공하는 변화에 따라서 그가 착목(着目)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시법을 활용해서 서정적인 자아(自我)를 추구하는 미감(美感)의 이미지를 투영시키는 서정시인이다. 자연은 계절마다 풍기는 특유의 안온한 향훈(香薰)과 더불어 그 풍광(風光)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은 그의 정서를 끌어올리는 듯 감정을 드러내는 특징을 엿보게 한다. 그는 우선 계절적인 감응에서 겨울과 가을에 대한 그의 정서가 순백의 서정으로 환원(還元)되고 있어서 계절의 순환적 이미지가 승화(昇華)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맑고 정갈한 아침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 삭막한 대지 빈 뜨락에도 하얀 눈꽃송이 당신의 손길 바쁘기만 하다 앞뜰에는 엄마와 아이들은 눈사람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 눈웃음 이루고 초록을 품었던 나무들 갈증 난 칼바람 속에도 굳세고 늠름한 겨울나무들 은백색의 아름다움이여! 하얀 꽃을 이룬 푹신한 눈부심 나뭇가지마다 순백 되어 웃음꽃 이루다 --「눈이 오던 날」 전문 신사봉 시인은 우선 겨울의 이미지에서도 소리없이 내리는 눈 오던 날의 기억을 재생하면서 보편적이면서 통상적인 일상의 형상들이 그의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초록을 품었던 나무들/ 갈증 난 칼바람 속에도/ 굳세고 늠름한 겨울나무들/ 은백색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는 미적 사유가 그의 시법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처럼 삭막한 대지나 빈 뜨락이 하얀 눈꽃송이가 그는 결론적으로 “하얀 꽃을 이룬 푹신한 눈부심/ 나뭇가지마다 순백 되어/ 웃음꽃 이루다”는 서정시의 본령에서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가을 황금 들녘의 풍성함과/ 가을빛 그리움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 가을 노래와 함께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선물」 중에서)”이라는 고독한 가을의 그리움이 형상화하는 서정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과 같이 되고 물을 가까이하면 물처럼 살고 싶은 사람의 심정, 겸손을 배우고 낮은 곳에 머물러 부끄럽지 않음에 깨닫는 것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인연이 된다 --「자연에서 인연 가꾸기」 전문 다음은 꽃이다. 자연 서정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새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꽃이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에서 신사봉 시인은 그 자연에서 인연을 상기하는 서정적 자아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친자연적인 성향(性向)에서 발현한 자연관은 꽃처럼, 물처럼 살고 싶다는 함의(含意)에 우리들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연에서 겸손을 배우고 낮은 곳에 머물면서 부끄럽지 않는 깨달음으로 사람과 자연과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인본주의(humanism)의 근원을 주제로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꽃이 아름다운 이유」 전문에서 “꽃은 자기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꽃은 자기를 돌보아주지 않아도/ 결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사랑이 된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기 때문,// 우리 모두 꽃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어조로 꽃에 관한 명민(明敏)한 생태에 흡인하면서 미학적인 그의 시학을 서정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리산 철쭉꽃 애향」 중에서도 “숲길의 꽃멍길에는/ 자산홍(紫山紅), 영산홍(暎山紅), 산철쭉꽃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 웃음꽃 이룬다”는 천지사방에 만발한 화훼류(花卉類)에 대한 그의 외적인 대사물관과 내적인 그의 지적인 관념의 융합이 우리 서정시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사봉 시집 『시로 여는 세상』은 그의 삶의 중심 궤적에서 재생한 정감적인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나 자신을 다시 인식하고 성찰하는 시법이 곧 신사봉 시학으로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임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