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대한민국 新택리지를 가다/발행인 조병훈 인터뷰
한국문협 사정 속속들이 아는 실무관리형 이사장으로 인정
소망하고 준비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져....
“한국문협 발전에 획을 긋는 역할 하고파”
올 1월 문인협회 이사장으로 당선된 정종명 소설가. 그는 평소 정직하고 책임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음은 물론 문단에서 쌓은 내공이 상당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번 그의 당선은 25년 만에 소설가 이사장을 배출한 것으로, 시인분과와의 인적 비율상 불가능해 보였던 터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지내면서 누구보다 협회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기에 실무 관리형 이사장이란 소리도 괜한 것이 아닌 듯싶다. 그만큼 회원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크고 그 역시 협회 발전을 위해 자신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잘 알고 있다. 본지는 정 이사장과의 만남을 추진, 문학과 함께해 온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그가 그리는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신다면?
“저는 봉화에서 태어났지만 삼척 도계광업소 기술자로 일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6·25가 터졌고 다시 봉화로 피난을 내려왔죠. 당시 아버지는 입대를 하신지라 장남인 제가 고사리 손으로 땔감을 마련하며 생활을 해야 했어요.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를 때는 위풍당당하지만 나무를 한 묶음 짊어지고 내려올 때는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넘어져 울기도 많이 울었죠. 또 농사철이 되면 모내기 등 일손도 거들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학창시절 굉장한 문학 소년이었을 것 같습니다. 남달랐던 학창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6·25전쟁이 중반 정도를 넘었을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당시는 농촌에 노름꾼들이 많았을 때였어요. 그런 것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사랑방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 이야기책을 읽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동네 아낙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저 역시 거기에 동화돼 눈시울을 적셨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는 눈시울을 적시게도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중이 그 이야기가 소설이고, 소설은 작가가 쓴다는 사실도 알았지요. 아마도 그때의 정서가 제게 작가의 씨를 뿌린 것 아닌가 싶어요. 한번은 동네 사랑방에 책이 한 권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했어요. 표지가 찢어져 제목도 몰랐지만 너무도 재미있어서 확 빠져들게 됐죠. 알고 보니 그 이야기는 삼총사였어요. 그 책을 읽고 소설이란 이런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지요.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다시 태백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학원’이라는 잡지가 나왔어요. 나름대로 산문을 써서 투고를 했더니 운 좋게도 가작으로 당선돼 잡지에 제 이름이 실린 것 아니겠어요? 친구들은 그런 제게 한국의 셰익스피어가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고, 저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가적 꿈을 키우게 됐죠. 강릉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의 지도 아래 문예반에서 활동했어요. 춘천에서 열린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참가해 입상하기도 하고 ‘현대문학’같은 잡지도 헌책방에서 많이 사서 모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한일협정 반대 데모가 일어났는데 어찌하다 보니 제가 주동자로 몰리게 된 겁니다. 시국이 그러니 학교는 6월인데도 조기방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저는 태백 본가로 가게 됐죠. 그런데 본가로 가기 직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고등학생 문예작품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저는 ‘도주’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응모를 했고, 그 작품이 당선되어 장학금을 받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환경 자체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야기를 들려주며 제가 작가로서의 꿈과 열정을 키울 수 있는 거름을 뿌려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였지요. 그런데 막상 제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선택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하셨었습니다. 아버지는 공대를 나와 월급 많이 받는 회사에 취직하길 바라셨죠. 그렇게 저와 의견 대립 중에 한번은 아버지께서 저를 불러 진지하게 물어보시더군요. 작가는 저 다리 밑에 살고 있는 거지와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잘 수 있어야 하는데, 너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렇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겨우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저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저는 아버지한테 하필이면 왜 거지 이야기를 들려 주셨느냐고 여쭤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거지는 어떤 사람인가?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소외된 사람들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소명의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정직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직은 모든 가치의 동력이지요. 문인은 선비를 자처하고, 지식인을 자처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많이 쓰고, 아무리 지식이 높아도 정직하지 못하면 위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을 꼽으신다면?
“작가들은 글을 쓰기 전 저마다의 버릇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담배를 많이 피기도 하고 누군가는 커피향을 음미하며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책장에 꽂혀 있는 세 가지 책 중 하나를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 편입니다. 그 책들이 바로 헤밍훼이의 ‘노인과 바다’, 카뮈의 ‘이방인’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입니다. 이 책들 모두 벌써 마르고 닳도록 읽었지만 읽고 또 읽다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고 분위기가 잡힙니다. 때문에 굳이 제게 감명을 준 책을 고르라면 이 세 책을 고르고 싶어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시겠지만 그 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어느 한 작품도 쉽게 쓰여진 것이 없고 모두 많은 고뇌와 생각을 거쳐 탄생된 것들이라 할 수 있지요. 저는 많은 작품을 쓴 편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단편소설인 ‘이명’이 저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작품이라 조금 더 애착이 갑니다. 그리고 중편소설 ‘숨은 사랑’과 장편소설 ‘거인’을 손꼽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저는 제가 원하고 준비했던 일은 다 이루며 살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현대문학을 사 모으면서 이곳에서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는데, 훗날 그곳에서 5년간이나 근무할 수 있었고,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 보니 그런 기회가 오더군요. 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석사 및 박사학위가 없어도 교단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언제든 기회가 오면 강의를 하고 싶은 꿈을 가졌고, 나름대로의 강의안을 마련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는데, 그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9년간 강의를 했고, 지금은 한국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과에서 소설작법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도 그랬어요. 제 이전 5대가 모두 시인들이었을 정도로 인적 비율상 소설가 이사장이 배출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주변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선거에 도전했고, 25년 만에 소설가 이사장이 되었죠. 저는 이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마다 최선을 다할 것이고, 또 그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한국문인협회 발전에 기여하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나는 그 꿈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이사장님의 건승하심에 저희 회원들이 힘이 납니다. ^^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사장님께서 문인협회 발전을 위해 오래도록 많은 애를 써주실 줄 믿습니다.
평소 존경했던 분의 이야기를 소상이 다시 읽어보며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많은 변화를 이뤄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소망하는바를 더욱 더 성취할 수 있는 한 해 되시기를 빕니다.
건강하세요.
첫인상이 너무 강렬해 감히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2010년 '육필전시회'에 임하고 4일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조금은 따뜻한 면을 보게됐습니다. 그로부터 4년, 지금은 문학기행을 하면서 친정오라버니 같은
정을 느낍니다. 늘 건강하시어 문협을 잘 이끌어주세요^^
지 정 의 인상과 품격을 지니신 회장님, 늘 건필하시고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시며
문단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기를 소망 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소망하시는 것 이루소서...
어제 같은 느낌인데.. 벌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