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면서 조는 몸을 굽혀 베개를 뒤집어놓고 침대보를 펴주었다.
그때 정말 놀랍게도, 댄이 팔을 조의 목에 두르고 얼굴을 끌어당기고는 잘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라고 말하며 입을 맞췄다.
그 어떤 유창한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이 조에게 전해졌다.
댄의 서투른 입맞춤과 더듬거리는 말은 “죄송해요, 열심히 해볼게요” 라는 뜻이었다.
조는 이 말 없는 고백을 받아들였지만, 댄의 고백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 놀란 모습을 애써 감췄다.
다만 배개에 묻혀 있는 댄의 갈색 뺨에 키스해 주었다.
조용히 방을 떠나면서 조가 말했다.
“넌 이제 내 아들이야. 너만 괜찮으면 그걸 자랑하고 기쁘게 말해도 된단다.”
댄이 오래도록 기억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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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둥근 방이고, 그 안에 있는 영혼은 날개 달린 작은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벽에는 선반과 서랍이 잔뜩 있어서, 그 안에 내 생각,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그 밖의 온갖 것들을 넣어두는데 좋은 점은 보이는 곳에 두고, 나쁜 점은 단단히 잠글 수 있는 곳에 둬.
그래도 튀어 나오기는 해.
그것들은 힘이 아주 세니까, 집어넣고 꽉 눌러야 해.
내가 혼자 있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 넣어두었던 생각을 꺼내서 갖고 놀아.
그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그리고 일요일마다 그 방을 정리하는 거야.
거기 사는 작은 영혼과 이야기도 하고, 뭘 할지 내가 말해주기도 해.
그 영혼은 몹시 나쁠 때도 있어서 내 말을 안 듣기도 해.
그럴때는 영혼을 야단치기도 하고, 할아버지한테 보내버리는 거야.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영혼을 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주시고 잘못된 점을 반성하게 해주셔.
할아버지도 이 놀이를 좋아하시거든.
나한테 서랍에 넣을 만한 좋은 걸 주시고, 버릇없는 것들을 어떻게 가두는지도 가르쳐주시지.
댄도 그리 해보면 어떨까? 아주 괜찮은 방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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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 작은 친구에게 해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 알아.
그런 부분에서는 데미가 널 도와줄 거야.
대단치는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순수하고 현명하고, 또 내가 너한테 주고 싶어하는 것, 그러니까 선한 원칙을 데미도 갖고 있으니까 말이야.
어린아이에게 선한 원칙을 심어주는 일은 얼마든지 일찍 시작할 수 있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고 해서 선한 원칙을 키워주는 일도 늦었다고 포기해서는 안 돼.
더구나 너희는 아직 아이들이니까.
서로 가르쳐줄 수 있는 거야.
데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의 도덕심을 키워줄 거고, 넌 데미의 상식을 키워주겠지.
그러면 내가 너희 둘을 모두 도와준 거라고 느낄 것 같은데?”
이런 믿음과 칭찬이 댄에게 얼마나 기쁨과 감동을 주었는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여태 댄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좋은 것을 찾아내 키워주려고 신경 쓴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동정은 금방 알아채는, 망가지고 버려진 아이의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숨어 있는지 고민해 본 사람이 여태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명예도, 자신을 가장 존경하는 아이 데미에게 미덕과 약간의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 명예에 비한다면 절반만큼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댄의 손에 맡겨진 이 천진난만한 동반자만큼 댄을 강력하게 바로잡아 줄 사람도 없었다.
댄은 이제 용기를 얻어 데미와 세운 계획을 조에게 말해주었고, 조는 댄이 자연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모든 일이 댄을 위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 정말 반가웠다.
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고 더 나쁜 아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고 조는 굳게 믿어왔다.
이제 댄은 친구도 있고, 험한 세상이지만 자신이 살고 일할 곳이 있다고도 느꼈다.
댄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조가 다가갔을 때 자신이 겪은 시련으로 인해 갖게 된 용감함으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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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보면 이 현미경으로 사람의 영혼도 볼 수 있을까요?”
작은 유리 조각의 위력에 감동한 데미가 물었다.
“아니란다, 얘야.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않아.
그런 건 만들 수도 없지.
보이지 않는 신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네 눈이 맑아지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만 할
거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더 아름다운 것들도 이해하게 될 거다.”
프리츠 이모부는 데미의 머리에 손을 얹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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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부자가 아니잖아, 그렇지?” 잭이 물었다.
“응.”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지?”
“그래.”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이네?”
“그렇기는 해.”
프란츠는 존 아저씨가 무언가 자랑할 만한 일을 하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의 대답에 잭이 실망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거야말로 전부란다.”
마지막 몇 마디를 듣고 아이들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한 바에르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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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하나 없이 버려진 신세로 여섯 달 전에 이곳에 온 걸 생각하면 냇에게는 정말 기쁜 소식이네.
댄의 미래도 난 이미 알지.
하이드 씨가 그애를 데려가고 싶어 해.
댄은 사랑과 믿음만 주어진다면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내는 아이니까 잘해낼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애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 있거든.
그래, 난 이 두 아이의 일에 성공해서 정말로 행복해.
한 아이는 아주 약했고, 한 아이는 아주 거칠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둘 다 훨씬 좋아졌고, 앞으로도 기대가 돼.”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거야, 조?”
“난 이 가족을 작은 세상이라고 보고 있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내가 사랑한다는 걸 그 애들이 알게 해줬을 뿐이야.
나머지는 프리츠가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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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런 좋은 시대가 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란다, 조.
그 믿음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너의 작은 실험을 성공시켜 가능성을 증명해 다오.”
지나가다 잠시 멈춰 선 마치 씨가 격력의 말을 해주었다.
선한 마치 씨는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버린 적이 없었고, 평화와 선의와 행복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큰 욕심은 없어요, 아버지. 전 그냥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맞서 싸울 때 느낄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간단한 것들을 배울 집을 주고 싶은 거죠.
정직, 용기, 근면 그리고 자기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신뢰, 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믿음.
제가 가르치고 싶은 건 이것뿐이에요.”
“그게 전부란다.
아이들에게 그런 도움을 주고, 남자와 여자로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보내는 거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너희들의 노력, 내 사위와 딸의 노력을 기억하고 축복할 거야.”
바에르 교수도 언제부터인지 곁에 있었다.
마치 씨는 이리 말하면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손을 내밀었고, 축복하는 얼굴로 그 자리를 떠났다.
조는 남편과 잠시 그곳에 서서, 아버지 말씀처럼 잘 지냈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로리가 복도로 나가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하자, 갑자기 모두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손을 잡고는 바에르 부부를 둘러싸고 춤을 추면서 즐겁게 노래했다.
여름날은 끝나고
여름에 하는 일도 끝났네.
즐겁게 차곡차곡
수확이 쌓였네.
이제 축제는 끝났고,
연극도 막을 내렸네.
하지만 한 가지 의식이 남았으니
바로 추수감사절이라네.
최고의 수확은
하느님 눈앞에 있네.
행복한 아이들이
집 안에 모였네.
아이들은 감사를 드리네.
마땅히 감사드려야 할 분에게.
감사한 마음과 감사하는 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에게.
마지막 말과 함께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만든 원은 점점 좁아졌다.
바에르 교수와 조의 곁을 아이들의 수많은 팔이 감싸 두 부부의 얼굴 절반이 가려질 지경이었다.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작은 화단 여러 곳에 각기 아름답게 꽃을 피운 모습 같았다.
사랑이라는 꽃은 어느 땅에서도 잘 자라기에, 가을 서리나 겨울 눈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달콤한 기적 속에서 1년 내내 아름답게 만개한 그 꽃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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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조가 유명 작가가 되었다는 변화가 가져다준 행복하고 거룩한 면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묘한 세상사가 그렇듯, 여기에도 골치 아픈 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놀랍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하지만 인간 본성이 지닌 뻔뻔함 탓에, 조는 이런 명성을 부담스러워하며 자유를 잃게 되었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작품에 감동한 사람들이 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이 조를 보고 싶어 했고, 질문하거나 조언하고, 경고하거나 축하하고 싶어 했다.
아무리 선의라지만 성가신 관심으로 조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조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비난했다.
동물애호가협회, 빈민구호단체, 그리고 여러 자선 단체에 기부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이를 거부하면 이기적이고 거만하다고 손가락질했다.
산더미 같은 편지에 답장을 못 하면 독자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한다는 말이 돌았다.
공식적인 자리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하면 ‘작가 행세’나 한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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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콜로라도에 있는 신들의 정원이나 내가 좋아하는 장대한 로키산맥에 비하면 곰팡이 핀 낡은 무덤에 불과해.
난 그림을 걸어놓는 것 따위에는 관심 없어.
자연 말고는 견딜 수가 없거든.
내가 보여주는 건 네 예전 거장들의 작품보다 훨씬 더 너를 압도할 거야.
연을 날리는 것보다 더 높은 감동으로 말이야.
새 마을로 오는 게 좋을 거야.
조시가 말을 타면, 그걸 그리면 되잖아.
백 마리쯤 되는 야생마 무리를 보고도 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진 걸로 할게.”
댄은 자연의 힘과 은총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을 묘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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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는 없겠죠.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말은 별로 믿지 않아요.
저희 어머니도 오래전에 버린 불쌍한 어린놈을 기억하지 못할 거구요.
기억할 이유도 없잖아요.”
“진정한 어머니는 절대로 자식을 잊지 못해.
너희 어머니도 그럴 거라는 사실을 난 알아.
어린 아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잔인한 남편에게서 떠나신 거란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네 삶은 좀 더 행복했을 거야.
내 어머니가 그러셨듯 네 어머니도 널 도와주고 위로해 줬을 테니까.
어머니가 널 위해 모든 걸 포기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
그리고 그걸 헛된 일로 만들어서는 안 돼.”
갑자기 굵은 눈물방울이 책 위에 툭 하고 떨어졌다.
댄의 눈물이었다.
죄와 죽음을 이겨낸 신트람이 상처 입은 몸으로 어머니의 발밑에 무릎을 꿇은 곳에 눈물 자국이 번졌다.
댄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울림을 주었다는 사실이 조는 흐뭇했지만 댄은 팔로 책을 문질러 눈물 자국을 지우더니 책을 덮고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 책 가져갈게요. 보는 사람이 없다면요. 다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어디에서든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죠.”
“물론이지. 이건 우리 어머니가 주신 책이야. 읽을 때마다 두 어머니께 우리를 잊지 않을 거라고 믿어보자.”
조는 책을 어루만진 뒤 댄에게 주었다.
댄은 다정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낯선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짧게 말하고는 책을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곧장 강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날 여행자 세 명은 길을 떠났다.
모두 밝은 기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특히 조의 손에 입맞춤하고는 모두에게 모자를 흔들며 마차를 타고 떠났다.
허공에는 하얀 손수건이 물결쳤다.
마차 소리가 멀어지자 조는 눈물을 닦으며 앞날을 예견하듯 말했다.
“저 중 누구에겐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돌아오더라도 너무 변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겠지.
하느님께서 내 아이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들과 늘 함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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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이런 조언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위대한 셰익스피어를 계속해서 사랑하고 연구하렴.”
캐머린 씨는 차분하게 말했지만 조시는 그녀의 말투가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새로운 친구 캐머린 씨가 자신을 동료 대하듯 말한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기뻐서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그 자체로 공부가 된단다.
인생은 셰익스피어의 비밀을 모두 배울 만큼 그리 길지는 않아.
하지만 무대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기하고 싶다면 그 전에 네가 갖추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어.
네개는 인내, 용기, 힘이 있니?
밑바닥부터 시작하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앞으로의 일을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 필요한 것들 말이야.
명성은 진주 같아.
많은 사람이 바다로 뛰어들지만 진주를 찾아 올라오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잖아.
더구나 진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조금 흠이 있다 싶으면 더 나은 걸 구하려고 애쓰다가 더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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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네 취향은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거야.
할아버지는 책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분이거든
그런 취향은 세련된 성격을 드러내주고, 평생 위로와 힘이 된단다.
정말 기쁘고 고맙구나, 존.
마침내 네가 어디 취직할 생각을 하고, 이리 만족스러운 곳을 찾다니 말이다.
이제 너도 어른이 되었으니 독립해서 살기 시작해야 해.
최선을 다해라, 네 아버지처럼 정직하고 쓸모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돈을 얼마 벌든 그건 상관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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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은 제가 돌볼게요.
그런데 저는 요즘 우리 각자는 하느님과 자연이 만들어주었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걸 크게 바꿀 수 없어요.
우리 안에 있는 좋은 점은 키우고 나쁜 점은 누르는 정도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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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있는 병원입니다.
병든 영혼, 약한 의지, 무모한 열정, 눈먼 양심, 법을 어긴 모든 병이 있죠.
이런 병들로 인해 고통과 벌을 받고 있습니다.
저마다 희망도 있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구원도 있겠지만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인내와 복종이 필요합니다.
꿋꿋하게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게 정당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 고통과 부끄러움을 통해 고귀한 삶을 위한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흉터는 남겠지만, 영혼을 잃느니 두 팔을 잃는 게 낫습니다.
지금의 힘든 세월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한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지 배운다면 말이지요.
오, 여러분. 쓰라린 과거를 넘어서서 죄를 씻어내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노력해 주세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 부인,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끈기 있게 여러분을 기다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보내주는 사랑과 염원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돌봐주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분이 혹시 있더라도 하느님 아버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항상 두 팔을 벌리고 방탕한 아들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위로해 주시니까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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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여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는 축복이었다.
자신들이 존경하던 여성들이 야학을 후원하고 직접 가르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브씨의 설득력 있는 학대받는 부인들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조세핀 버틀러 부인이 거리의 소녀들을 구했으며, 클레멘티아 테일러 부인은 유서 깊은 저택의 방을 하인들의 도서관으로 만들었고, 섀프츠베리 경은 런던 빈민가에 공동 주택을 짓느라 바쁘다는 이야기 등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해온 용감한 이들에 대한 일화를 들었다.
집에서 조용히 듣는 강의보다 훨씬 감동적이었고, 소녀들은 때가 되면 자신들도 힘을 보태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영광으로 빛나는 미국이지만, 진정으로 정의롭고 자유롭고 위대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이 학생들은 잘 알았다.
또한 에버크롬비 부인이 에이미부터 어린 조시까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들은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밑창이 두꺼운 영국식 구두를 가능한 한 빨리 구해서 신어보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부인은 파르나소스에 찬사를 보내고, 플럼필드를 정겨운 옛집이라고 부르며 학교의 모든 것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은 런던에 큰 저택을, 웨일스에 성을, 스코틀랜드에 웅장한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부인이 돌아가면서 진심으로 따뜻한 악수를 청하자 모두가 손을 내밀었다.
그때 부인이 한 말은 학생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동안 많이 무시당하던 여성 교육이 이곳에서 훌륭하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제가 미국에서 본 그림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페넬로페’를 보여준 에이미 로런스 부인에게 감사드려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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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댄이 속마음을 들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혹독하게 자제력을 훈련한 댄은 힘든 순간을 의연하게 벗어났다.
그는 베스의 두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이렇게만 말했다.
“잘 가, 공주님. 앞으로 다시 못 만나도 옛 친구 댄을 기억해 줘.”
베스는 댄이 겪은 고난과 지금 그의 얼굴에 보이는 애틋한 표정에 마음이 흔들려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야. 우리 모두 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하느님께서 댄이 하는 일을 축복해 주시고 안전하게 집으로 다시 보내주실 거야!”
베스는 애정을 가득 담은 얼굴로 댄을 올려다봤다.
잃어버린 모든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자, 댄은 목멘 소리로 “안녕!”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러운 금빛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교도소 독방에 갇힌 기분이었고, 이제는 자신을 위로해 줄 푸른 하늘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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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러분 모두가 기억하시는 곡을 연주해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은 저만큼 이 곡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냇은 올레 불 같은 자세로 서서, 플럼필드에 처음 왔던 밤 모두에게 연주해 준 거리의 선율을 연주했다.
물론 모두가 그 곡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조를 띤 목소리로 다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냇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노래였다.
내 마음은 슬프고 지쳤소.
돌아다니는 곳마다
옛 농장을 그리워하오.
집에 있는 가족들도.
“이젠 정말 기분이 좋아요.”
노래가 끝나고 다 같이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조가 바에르 교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 중에는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 아이는 성공할 거예요.
참을성 있게 기다린 데이지는 마침내 행복한 아가씨가 되었구요.
냇은 당신 작품이에요, 프리츠. 진심으로 축복해요.”
“아, 씨를 뿌리고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믿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겠죠.
씨는 내가 뿌렸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새가 날아와 그 씨를 쪼아 먹지 못하게 지켜주었어요.
로리는 물을 넉넉히 주었구요.
수확을 함께 나눕시다.
설령 수확이 적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하자구요.”
“우리 가엾은 댄을 생각하면 씨앗이 돌밭에 떨어진 게 아닌가 했어요.
하지만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 모두를 뛰어넘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이 여러 성인들의 존재보다 훨씬 더 기쁨을 주니까요.”
조는 행복하게 거니는 흰 양 무리를 바로 앞에 두고서도 검은 양 한 마리를 꼭 안고 있었다.
마치 집안의 역사가는 이제 강한 유혹을 받고 있다.
지진이 일어나 깊은 땅속에 플럼필드와 주변 지역이 깊이 묻혀버려, 어떤 위대한 고고학자도 흔적 한나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다는 유혹 말이다.
하지만 과장된 결말은 관대한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줄 수도 있으니, 이를 자제하고 “그래서 다들 어떻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다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여러 소명에 따라 살았으며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베스와 조시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며 명성을 얻었고 시간이 흘러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찾았다.
낸은 쾌활하고 독립적인 독신 여성으로 바쁘게 지냈고, 고통받는 자매들과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참다운 여성의 일 속에서 변치 않는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댄은 결혼을 하지는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용감하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그들을 지키다가 총을 맞았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푸른 들판 위에서 금빛 머리카락 한 줌을 가슴에 묻고 조용히 잠들었다.
그때 댄이 지은 미소는 아슬라우가의 기사가 마지막 전투를 끝내고 마침내 얻은 안식처럼 보였다.
스터피는 시의원이 되었지만, 어느 연회 뒤에 뇌졸증으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돌리는 사교계 인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전 재산을 탕진한 뒤에 고급 양복점에서 자신의 천직을 발견했다.
데미는 출판사의 공동 경영인이 되어 간판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활동했고, 로브는 로런스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성공도 테드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테드는 유명한 목사가 되어 어머니의 놀라움과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했고 몇몇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모두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최선의 삶을 살았다.
이제 음악을 멈추고 조명을 끄면서, 마치 가족 이야기의 막을 영원히 내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