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오늘의 역사
2023년 강원도 강릉아레나에서 2023 강릉 세계합창대회 개막.
2022년 특전사 여군, 세계군인강하대회 첫 금메달
6월20~30일 오스트리아 귀싱에서 열린 제45회 세계군인강하선수권대회(WMPC)의 4인조 '상호활동'(4-Way Formation Skydiving)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1976년 이래 16회 WMPC에 참가한 한국의 금메달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호활동은 4명이 약 3.2㎞ 상공 항공기에서 뛰어내려 서로의 팔과 다리를 잡고 빠르고 정확하게 대형을 만드는 능력을 겨루는 경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한 대형을 많이 만드는 팀이 승리한다.
4명 외 제5의 팀원은 대형을 촬영하는 '카메라 플라이어'로, 대형을 형성하는 모든 과정을 촬영해 착지 후 심판진에 제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전사 여군팀은 이번 대회에서 총 187점을 획득, 각각 173점과 140점을 얻은 모로코와 프랑스를 따돌리고 우승했다.
여군팀은 작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상호활동 부문에서 2위에 올라 국군의 대회 출전 사상 첫 메달을 딴 바 있다.
2021년 軍, SLBM 수중 발사 성공..세계 8번째 SLBM 개발국
탐지가 어려운 바닷속 잠수함에서 발사돼 적을 은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략 무기인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의 수중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세계 8번째 SLBM 개발국이 된 셈인데, SLBM 수중 발사에 성공한 3천 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은 어뢰 기만기 발사 체계 시험 평가를 완료하면 이달 중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국산 SLBM은 현무2B 탄도미사일을 개조한 것으로 최대 사거리는 500㎞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SLBM 개발은 지난 2015년 북한이 북극성-1형 SLBM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이에 대응해 빠르게 진행돼 왔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북한 등의 SLBM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2016년 이라크 바그다드 차량 폭탄 테러 사망 292명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열림 143개국 1만3,000여명 참가 역대 최대
2014년 충북 중·고교 '0교시' 수업 폐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청와대서 정상회담.
2014년문화체육관광부-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 한중영화공동제작협정 체결
2013년 이집트 군부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강제로 쫓아냄
군부는 국민의 뜻이라 주장하고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군사쿠데타라며 반발, 무르시정권 붕괴후 무르시 찬반세력충돌로 혼란, 무르시 지지시위대 무력진압과정에서 1천명 이상 숨짐
2012년 이탈리아 유명 차 디자이너 세르지오 피닌파리나 별세
피닌파리나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페라리·마세라티·알파로메오·란치아 등 명차의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최전성기를 풍미했다.
1926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토리노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그의 아버지가 만든 카로체리아(소규모 자동차제작소) '피닌파리나'에서 차량 제작·디자인을 시작했다. 작년까지 40년 이상 페라리 이사회 이사로도 재직했다.
2012년 '100세 화가' 윤중식 화백 별세
1913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윤 화백은 숭실중 2학년 때 소녀와 풍경을 그린 두 점의 유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일찍 화가의 자질을 보여줬으며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4년 첫 개인전 이후 향토성과 서정성, 강렬한 색채미가 돋보이는 화풍을 구축해 '색채의 화가' '감성의 작가'로 불렸다. 이후 국전 심사위원, 홍익대 교수 등을 지냈다. 2000년까지 1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난 5월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가진 상수(上壽·100세) 기념전이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됐다.
북에 두고 온 부모님을 생각하며 서울 근교에 안 가본 양로원이 없을 만큼 '무소유'의 철학을 지닌 작가이기도 했다.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2011년 백병원 창립자인 고(故) 백인제 박사 부인 최경진 명예이사 별세
고 최경진 명예이사는 일본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배화여고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28년 6월 백 박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5녀를 뒀다. 평북 정주 출신으로 흥사단 의사부장으로 활동하던 백 박사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19일 흥사단원 박현환의 서울 집에서 흥사단원들과 함께 납북됐다.
백 박사가 납북된 뒤 백병원은 극심한 재정난에 빠져 해체 위기까지 몰렸다. 병원 설립 때부터 백 박사를 도와 환자를 보살피던 최씨는 환자들의 식사를 직접 마련했고, 경리 일을 맡는 등 백병원 회생을 도왔다. 또 백병원에 근무하던 조카 백낙환(85·현 이사장)씨를 도와 백씨가 큰아버지인 백 박사의 뜻을 받들어 백병원을 중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썼다. 10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1년 80년대 동아일보 이끈 김상기 전 회장 별세
191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중앙고와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6·25전쟁 후인 1958년 동아일보 출판부장을 거쳐 1972년 부사장, 1981년 사장, 그리고 1983~ 1989년에 회장을 역임했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차남이다.
고인은 1981년 사장 취임사에서 "동아일보 사장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라며 "언론 자유를 위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전진하자"고 당부했다. 그해 동아문화센터를 개설하고 이후 월간지 '음악동아' '월간 멋'을 창간하는 등 문화와 출판 사업도 확대했다.
2005년 아르헨티나, 2005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나이지리아 꺾고 우승
아르헨티나는 2005년 7월3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갈겐바르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18ㆍ바르셀로나)가 페널티킥 2개를 모두 성공시킨 데 힘입어 아프리카의 맹주 나이지리아를 2대1로 꺾고 우승했다. 아르헨티나는 79년, 95년, 97년, 2001년에 이어 이 대회 5번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브라질을 제치고 역대 최다 우승국으로 발돋움했다.
우승의 주역은 ‘축구 천재’ 메시였다. 메시는 전반 40분 하프라인부터 단독 드리블로 PA 안쪽까지 파고든 뒤 나이지리아의 델레 아델레예의 태클에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메시는 왼쪽 골문을 향해 땅볼로 가볍게 차넣으며 선취골을 뽑았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나이지리아는 후반 8분 올루바요 아데페미가 오른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치네두 오그부케가 몸을 날리며 헤딩골을 성공시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교체 멤버로 투입된 세르히오 아게로가 후반 30분 PA 오른쪽에서 돌파를 시도하다 상대 수비수의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내자 키커로 나선 메시가 오른쪽 골문으로 강슛을 날려 결승골을 뽑아냈다. 6골을 기록한 메시는 득점왕(골든볼)과 MVP(아디다스 골든슈)를 석권하며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 러시아 여객기 시베리아 남부에 추락, 145명 사망
2001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MBC 출연 거부 결의
250여개 연예회사들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회장 엄용섭)는 2001년 7월 3일 비상총회를 열고 7일부터 MBC TV에 대해 소속 가수, 탤런트, 개그맨, MC들의 출연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연예제작자협회는 "6월 17일 방송된 MBC TV `시사매거진 2580`이 제작자와 연예인의 계약 관행을 `노예 계약`이라고 왜곡 보도, 명예를 크게 손상시켰다"며 이같이 결의했다. 협회는 "MBC가 공식 사과방송과 반론권 제공, 관련자 문책을 할 때까지 무기한 출연거부한다"며 "기존 계약 기간이 남은 탤런트, 개그맨, MC는 계약이 끝나는 대로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매거진 2580`은 6월 17일 방송된 `한·일 비교, 연예인 대 매니저`편에서 "노예문서라고 불리는 전속 계약의 허구성을 파헤친다"며 "나이 어린 연예인들이 불평등 계약의 주요 대상이며, 음반사가 노래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갖고 가수는 몇푼의 인세만을 챙긴다"고 보도, 제작자들로부터 `일방적 매도`라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연예제작자협회 회원사엔 김건모 조성모 g.o.d. 박진영 포지션 김현정 엄정화 핑클 등 대부분 가수와, 이영애 이미연 안재욱 차태현 남희석 신동엽 등 인기 탤런트·개그맨들이 소속돼 있다
2000년 프랑스, 2000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프랑스가 2000년 7월 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데퀴프경기장에서 벌어진 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윌토르의 동점골에 이은 다비드 트레제게의 연장전 골든골로 이탈리아에 2대1로 승리했다.
프랑스는 98월드컵에 이어 2년 만에 유럽선수권대회를 제패하였으며 1984년에 이은 두번째 유럽선수권 우승이었다.
1998년 북한 잠수함 승조원 시신 9구, 판문점 통해 북한에 인도
북한 잠수정 승조원 시체 9구가 1998년7월3일 오후 1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북한측에 송환됐다.
이날 송환 행사는 유엔사측 토머스 라일리 대령과 북한군측 유영철 대좌가 나와 간단한 시체 확인절차를 거친 뒤 25분만에 끝났으며, 북한측은 환영 성명서 발표 등 일체의 정치적 행사를 열지 않았다. 송환된 시체는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와는 달리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관에 넣어진 채 북측에 넘겨졌다.
송환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측에서는 장성급 회담 북측 대표인 이찬복 중장, 조동현 소장, 박임수 대좌 등 3명이 판문각 계단에서 내려와 시체에 대해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시했다. 북한측은 그러나 96년 강릉잠수함 사건 시체 송환 때와는 달리 이날은 의장대를 배치하지 않는 등 일체의 의식을 갖지 않았다.
1997년 정승화씨, 12·12사건 관련 무죄선고
1979년 고(故)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돼 80년 내란방조 혐의로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68)씨가 재심을 통해 17년6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지법 형사23부(재판장 최세모)는 3일 정씨의 내란방조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볼 때 정씨가 79년10월 26일 밤 박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라는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김진기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체포를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김 부장의 범행을 사전에 알고 방조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79년 12월 12일 당시 신군부측에 의해 강제연행돼 80년 3월 내란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문민정부 출범 후 전두환-노태우(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 및 5·18사건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자 작년 5월 재심을 신청했다.
정씨는 재판이 끝난 뒤 “너무 오래 걸렸지만 어쨌든 진실이 밝혀져 기쁘다”고 밝혔다. 한편 정씨는 전-노씨에 대한 사면논의에 대해 “본인들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해야 사면을 논의할 수 있다”며 “본인들이 항거하고 있는 마당에 사면을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정씨는 무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그동안 받지 못했던 군인연금 2억9천88만원을 지급받을뿐 아니라 앞으로도 육군대장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또 사망한 뒤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게 된다.
1997년 성수대교, 붕괴 2년 8개월 만에 재개통
1995년 미국의 테니스 선수 곤잘레스 사망 - 미국 프로 선수권대회 남자단식에서 7회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8회 우승
1992년 월북 국어학자 홍기문 사망
충북 태생인 대산은 아버지 홍명희 선생의 영향으로 학구적인 가풍에서 자랐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하면서 민족 언어인 조선어문법 연구를 시발로 국어학, 언어학, 음운학, 국문학, 역사학 등으로 학문의 폭을 넓혀 나갔다. 중국과 일본에 유학한 후 귀국해 일제시대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와 부장으로 신문지상에 국어학, 국문학, 국사학 등 국학 전반에 걸친 많은 논설을 발표했다.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신문을 통해 국학관련 논설을 발표했다.
해방후 1947년 아버지 벽초와 함께 월북한 뒤 김일성 대학 교수와 사회과학원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이조실록과 팔만대장경 등 주로 고전번역사업에 공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월북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그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조명이 미진한 상태다.
1992년 한국-카자흐스탄, 무역협정 체결
1989년 익산 미륵사 터에서 백제시대 채색벽화 조각 처음으로 발견
1988년 이란 에어버스 페르시아만에서 미군함에 의해 격추. 290명 사망
1986년 권인숙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폭로
1986년 7월3일 주민증록증을 변조해 위장취업을 했다는 혐의로 경기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권인숙(서울의류대 4년 제적)씨가 조사 과정에서 성적 모욕과 폭행을 당했다며 담당 경찰을 고소했다 1988년 6월 대법원은 담당 결찰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권씨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84년 영호남지역 호우 36명 사망 12명 실종 재산피해 402억 4,600만원
1983년 미국 칼빈 스미스, 육상 100미터에서 9초93으로 15년만에 세계신기록
1982년 정부 예금, 주식, 국공채, 사채 등에 실명거래제 83년 실시키로(7.3조치)
1982년 중국, 고령관리 200만 퇴진
1980년 정부, 아사히(朝日)신문 및 시사통신 서울지국 폐쇄
1980년 압둘 하미드 샤라프 요르단 수상 사망
1979년 한국종합전시장(KOEX) 개관
1978년 중국, 대(對)베트남 원조 전면중지 발표
1976년 완도 공비 침투사건
전남 완도군 금일읍 화목리 거주 주민 3명이 약초 채취차 구도(무인도)로 건너간 후, 1명은 공비의 권총에 맞아 살해되고, 2명은 후일 생환.
1976년 이스라엘, 엔테베 기습작전
1976년 7월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장장 3840km나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ㆍ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ㆍ프랑스ㆍ케냐에 수감돼 있는 자신들의 동지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협상과정에서 많은 인질들이 풀려났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106명은 아직도 인질로 잡혀있었다.
‘선더 볼트’로 불린 기습공격이 시작된 시간은 7월4일 0시. 하지만 서독인 2명을 포함한 7명의 납치범들은 기습작전을 느낄 겨를도 없이 불과 1분 만에 모두 사살됐다. 20명의 우간다 군인과 11대의 전투기도 살해되거나 파괴됐다. 예행연습 때는 55분이 걸렸던 작전시간이 실제 작전에는 52∼53분 밖에 걸리지 않은 정도로 작전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스라엘 특공대원 1명과 인질 3명도 목숨을 잃었지만 완벽한 작전성공이었다.
1974년 홍수환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꺽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밸트를 차지했다. 이때 그가 유행시킨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두 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낸 그는 이름뒤에 `씨`字보다는 여전히 `선수`字가 어울릴 것같은 영원한 권투선수다. 1980년 12월 염동균과의 라이벌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홍씨는 두번이나 세계타이틀(74,77년)을 차지했지만 단명 세계챔피언이었다. 두번 다 2차방어전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1974년 태풍 길다 호 28명 사망 실종,
1974년 미국-소련 지하핵실험제한협정 조인
1973년 불국사 복원
1973년 포항제철 3년3개월 만에 준공식
1973년 6월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어느덧 21시간이 지난 오전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고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착공 이래 3년3개월간을 기다려온 그 순간, 사람들은 너나없이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에서 작업을 시작한지 5년 만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방미 때 미국의 제철공장을 둘러본지 7년 만이었다.
공사비 만 1215억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고, 단일사업으로는 단군이래 가장 큰 대역사였다. 7월3일에 치러진 준공식 이후 포항종합제철은 30년 만에 서울 여의도의 3배에 이르는 270만평의 거대한 부지에 도로 길이만 80km가 넘는 ‘철의 메카’가 됐다. 이름 만 ‘포스코’로 바뀌었을 뿐이다.
1972년 부토 파키스탄 대통령과 간디 인도수상, 시물라평화협정에 조인
1971년 박정희 제7대 대통령 취임
1971년 한미합동 제1군단 창설
1971년 한국-모리셔스 국교 수립
1970년 미국 화가 버넷 뉴먼 사망
1970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서 시가전. 영국군이 가톨릭교도지구를 습격
1969년 위장간첩 이수근 사형 집행
1960~70년대를 뜨겁게 했던 위장간첩 사건의 주인공 이수근씨(45)가 ‘위장’ 8백33일 만에1969년 7월 3일 오전 11시 59분 교수형에 처했다.
1967년 3월 판문점 정전위원회가 끝나고 유엔군 수석대표 치콜렐라 소장이 승용차에 오르는 순간, 북한측 기자가 잽싸게 밴크로프트 준장 차에 뛰어올랐다. 그가 바로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이었다. 기자를 태운 승용차는 남쪽으로 돌진했다.
그로부터 2년후 1969년 1월 29일 콧수염과 가발로 변장한 이수근이 위조여권으로 한국을 탈출했다. 그러나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영사관 직원들에게 발각돼 한국정부의 정보요원에 의해 체포,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이수근은 항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형이 확정됐고 1969년 7월 3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집행 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가 위장간첩 활동을 함으로써 환대해준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주장과 함께 그의 귀순이 위장이 아닌 사실이며, 남한에 정착한 후 갖게 된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제3국 탈출의 모험을 강행하게 됐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이후 법원은 39년 만인 2008년 12월 19일 "이씨가 위장간첩이 아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962년 알제리, 132년 만에 프랑스로부터 독립
100년이 넘도록 알제리를 식민지 삼아온 프랑스의 식민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것은 1954년이었다. 그해 5월 프랑스는 56일간의 사투 끝에 베트남의 디엔비엔푸를 빼앗겨 100년에 걸친 인도차이나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비틀거리는 늙은 맹수를 상대로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민족해방운동의 불길이 치솟아 오른 것은 1954년 11월 1일이었다. 그해 3월에 결성된 민족해방전선(FLN)의 주도로 일어난 봉기로 유럽인과 친프랑스 이슬람교도 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한 것은 8년에 걸친 알제리 독립전쟁의 신호탄이었다. 프랑스군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FLN은 프랑스를 비롯 유럽 각지에서 이주해온 온건파 입식자(入植者)와 친프랑스 이슬람교도들을 제거함으로써 동화와 다민족주의 개념을 파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2년 반 동안 FLN은 1,000여 명의 유럽인과 6,300여 명의 아랍인을 살해했다. 프랑스군은 강경책으로 선회해 1,000여 명 이상의 FLN 대원을 살해했다. 이처럼 FLN의 폭력이 끊이질 않자 1957년 1월 프랑스 정부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에게 FLN을 소탕하는 데 절대적인 작전권을 주고 고문 금지도 폐지했다.
1961년 반공법 공포
공산계열의 활동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의 처벌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이 일반적인 반국가행위의 처벌법인데 비해 반공법은 공산계열의 활동에 관한 특별법으로서 장면 정권이 제정하려다가 국민의 저항이 강해서 실패한 바 있다.
전문 16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은 광범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언론탄압이 대대적으로 자행되었고 평화통일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반공법에 소급적용 되기도 했다.
이 법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반공법을 페기하고 국가보안법에 그 일부를 삽입했다
1961년 박정희 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5월 20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고 혁명내각을 조직[최고회의 의장 겸 내각수반에 장도영(張都暎)]하는 등 개혁을 추진해나갔는데, 7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박정희, 내각수반에 송요찬(宋堯讚)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7월 9일 전(前)최고회의 의장 장도영(張都映) 중장 등 44명은 반혁명음모혐의로 체포되었다.
1961년 최고회의서 장도영 중장 등 44명을 반혁명 혐의로 구속
5.16군사정변 이후 표면상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직과 혁명내각수반직에 있던 장도영 중장의 추종세력 44명이 1961년 7월 3일 반혁명음모협의로 구속됐다.
내각수반 장도영씨는 5.16군사정변 당시 참모총장으로 쿠데타군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다리 위에 헌병 등으로 구성한 저지군을 투입, 총격전을 벌이게 했다. 또 최고회의 의장 겸 내각수반이 된 뒤에도 `참모총장직 겸임해제` 조항을 삭제키 위해 최고위원을 포섭하려 했다. 이에 실패하자 측근 세력을 규합하여 중앙정보부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폐지하고 쿠데타 주동세력을 제거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처음에는 끌려 들어가 듯 쿠데타 진영에 참가한 장도영 육참총장은 쿠데타 성공이 확연해진 5월 16일 오후 군사혁명위원회의장과 계엄군사령관직을 공식 수락하고 취임했다. 이어 19일 쿠데타군의 평의회인 국가재건 최고회의의 의장으로 취임했으며 20일에는 임시정부 내각수반과 국방장관자리까지 차지했다. 이미 육참총장직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형식상 정부와 군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만에 반혁명사건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았다가 형 면제로 풀려난 뒤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1961년 송요찬 내각수반 취임
1954년 문교부, 한글 간소화안 발표
1953년 간통쌍벌죄 법안이 국회 통과
1950년 맥아더사령부, 미국 해병대에 한국출동령
1945년 2차 대전 중 연합군 베를린 공동 점령
1935년 폴란드의 역사가 보브진스키 사망
1933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이리고옌 사망
1933년 한국-중국연합 일본토벌군, 1개여단 병력의 일본-만주연합군 격파
1933년 소련, 7개국과 불가침조약 조인
1928년 컬러TV 방송 세계로 첫 송출
1921년 혁명적 노동조합 국제연합(프로핀테른) 창립대회
1919년 영국-미국-프랑스 3국 협약 발표
1916년 제4차 러일협약 조인
1915년 미 해병대 아이티에 상륙하여 혁명 운동 진압
1907년 대한매일신보 헤이그 밀사 사건 첫 보도
1905년 프랑스의회, 정교분리법 가결. 정치와 종교 분리
1901년 프랑스 화가 뒤비풰 태어남
1896년 프랑스인 그라유에게 경의철도 부설권 허가
1893년 독립운동가 문익상 출생
1888년 일본의 화가 무라카미 가가쿠 출생
1887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출생
1879년 미국 철학자 코지브스키 태어남
1871년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 함대 철수
1854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곡가 야냐체크 출생
607년 일본, 소야매자(小野妹子)를 수나라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