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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축구는 즐겁게"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2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준공된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박지성 선수가 유소년 선수들에게 즐거운 축구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2010.7.24 |
[21세기 人文學 산책] 한니발과 스키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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敵이 강할수록 승리는 돋보인다 지중해 패권을 놓고 운명의 단판승부 한니발을 벤치마킹한 스키피오가 승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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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말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이 그런 사례다. 우연히도 꼭 같은 시기에 서양에서도 전혀 손색없는 예가 확인된다.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그러한 예다. 둘은 각각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를 이끌고 지중해 패권을 겨뤘던 장군들이다. 카르타고 자마(Zama)에서 벌인 단판 승부로 이들 운명이 갈렸다. #1. 자마전투 현황(기병을 활용한 포위섬멸전로 스키피오의 로마군 대승) 승자 대(大)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BC 247-183)는 영원히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반면에 패자 한니발은 타국을 전전하며 재기를 꿈꾸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승패의 명암은 그렇게 뚜렷했지만 스키피오의 위대함을 느끼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그전까지 한니발의 눈부신 활약상을 이야기할 때 더욱 빛을 발휘한다. 한니발(Hannibal: BC 235-183)은 스키피오보다 12세 연상이었다. 카르타고에서 태어난 그는 채 열 살이 되기 전 부친을 따라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광물과 농산자원이 풍부한 그곳을 카르타고 영토로 만드는 것이 부친 생각이었다. 로마와 싸움(1차 포에니전쟁)에서 패해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잃은 것을 벌충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출정 전야에 한니발 부친은 그를 신전에 데려가 로마인과는 절대 친구가 되지 않겠노라 맹세하게 했다. 부친과 매형은 목숨을 바쳐 '스페인 제국'을 건설했고, 한니발은 20대 중반에 제국의 경영을 물려받았다. 로마에 한 맺힌 부친과 카르타고 수호신에게 했던 맹세도 잊지 않았다. 아니, 그는 이미 로마를 사생결단을 벌일 숙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로마가 동맹 사군툼(현재 사군토)을 돕는다는 구실로 카르타고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자 한니발은 서슴없이 결단을 내렸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 안마당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2. 한니발의 알프스 산맥을 통한 로마 침투 경로
북이탈리아 평원에 다다랐을 때 남은 병력은 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한니발 자신은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천재적 전술가로서 한니발은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북쪽에서 세 차례 연속 로마 정규군을 궤멸하고 남진하여 마침내 칸나에(Cannae)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한니발이 침공한 지 2년 만에 로마는 마치 풍전등화 같은 처지였다. #3. 칸나에 전투 전반 - 로마군의공격(붉은색) #3-1. 칸나에 전투 후반 - 패주하는 로마기병과 포위당하는 로마보병(붉은색) 그렇지만 한니발의 전략적 판단에 심각한 착오가 있었음이 곧 드러났다. 칸나에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로마의 이탈리아 연방은 와해되지 않았다. 덕분에 교전을 피해 적을 지치게 하는 로마의 지연작전이 차츰 먹혀들었다. 이탈리아가 그렇게 5년여 동안 소강상태에 빠진 동안 스페인 사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스키피오가 변화의 주역이었다. 그는 몇 년 전 부친과 숙부가 함께 전사해 공석이 된 스페인 파견군 지휘를 자청했다. 한니발이 '스페인 제국'을 계승할 때처럼 그도 20대 중반이었다. 스페인에서 스키피오의 눈부신 활약은 이탈리아 침공 직후 한니발이 거둔 성공을 연상케 했다. '스페인 제국' 수도(현재 카르타헤나)를 기습 점령하고 세 개로 나뉜 카르타고 군대를 차례로 괴멸시켰다. 이 상황 변화는 이탈리아의 한니발에게 치명적이었다. 이탈리아 원정군의 가장 믿음직한 병참기지가 떨어져 나간 셈이었다. 스페인에서 패한 한니발 동생과 카르타고 본국의 증원군이 모두 이탈리아 진입에 실패하면서 한니발의 고립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스키피오는 또다시 한니발을 흉내내는 듯한 전략을 제안했다. 한니발을 상대하는 대신 카르타고 본국을 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니발은 스스로든, 본국에서 소환했기 때문이든 아프리카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되었다. 노회한 정적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스페인의 성공에 취한 젊은 스키피오가 무모한 짓을 벌여 오히려 한니발이 로마를 직접 공격할 기회를 줄 것이라 반박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민의 열화 같은 지지 때문에 정적들은 절충안에 동의했다. 그를 칠리아 총독으로 선임하되 아프리카에 대한 작전권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스키피오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45일 만에 함선 30척을 짓고 병력 3만5000명을 실어 오늘날 튀니지 근방에 상륙했다. 위기를 느낀 카르타고 정부는 결국 한니발을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한니발은 스키피오와 직접 만나 협상을 꾀했으나 승운을 확신한 스키피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곧 벌어진 자마의 결전이 보여주듯 스키피오는 이미 한니발을 무력하게 만들 전술을 준비한 상태였다. 역사의 섭리는 적수 한니발의 성공요인을 효과적으로 벤치마킹한 스키피오의 편이었다. 그것은 카르타고가 아니라 로마가 지중해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게 되는 긴 역사적 흐름의 최대 분수령이었다. 2차 포에니 전쟁의 두 영웅은 공교롭게도 BC 183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경현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Note) 1. Who is 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BC 235-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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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키모의 막대기 ]
에스키모의 막대기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걱정,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 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 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때, 이전에 꽂아 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 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를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 www.plus3h.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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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베스트셀러 [체크리스트]의 저자 가완디와 LBA 김점수 |
작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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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7/22 (13:49) | 조회 : 625 |
뽀너스(?)로 비오는 풍경 사진 하나 올려드릴게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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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고 고무적인 소식을 혜순 누님이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월요일입니다.
종인 샘님~~!! 감사합니다.
항상 착하게 사시면서 우리에게 좋은 일만 가져다주시는 종인 샘님~~!!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찌아찌아족과 생각과 마음을 교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안녕하셨어요?
글 답글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언니 비오는 풍경이 아주 시원하네요 대문 창으로 쓸까요? ㅎㅎ
춘록님 감 사 감 사
두 아드님 방학 잘 지내고 있지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더 잘 풀리겠지요. ^^
회장님~~!! 더운데 안녕하시지요?
세계공용어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가 되는 그날까지~!! ^^
정호진 님등극을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기시면서도 고생하신 그대 행복 만발
전국방방곡곡에서 쇄도하는 전화로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공부하시느라고
감사드립니다- (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