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면서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근 15년만에 전화를 해왔다. 뜻밖의 전화를 걸어온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 이민문제였다. 기자가 20여년 전 가족들과 함께 이민올 때와는 너무나 다른 문제로 그를 비롯한 친구들이 고민을 하고 있었다.
W의 경우 두 아이는 이미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큰 아들은 그가 과거 MBA과정 이수를 위해 미국에 있는 동안 출생했기 때문에 시민권자라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앞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데 불편할 수밖에 없어 미국 영주권을 따 주고 싶다는 것이다.
큰 아들은 이미 대학에 입학을 했고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조기유학을 왔기 때문에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큰 부담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부모가 내린 결론은 어떻게든 미국에서 살자는 것이었다.
W는 대기업 이사로 있지만 이미 45세로 '사오정'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50만달러를 내면 받을 수 있는 투자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했다. 서울의 이민대행업체들은 W같은 친구를 투자이민 쪽으로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W의 경우 변호사 비용까지 57만달러를 투자하면 3년 반만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아들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영주권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50만달러는 돌려받는 조건이다.)
W에게 가능한 대안 하나는 현재 18세인 큰 아들이 성인이 되는 3년 후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부모를 초청하고 6개월~1년이면 영주권이 나온다. 그러면 W부부는 바로 작은 아들을 초청하고 4년 정도면 영주권이 나온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면 W의 가족은 모두 시민권자 내지 영주권자가 된다. 그러는 과정에 W의 가족은 비즈니스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첫 비즈니스에 수반되는 '수업료' 성격의 투자 손해도 7만달러 투자와 묶여 있는 50만달러에 비하면 그리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나 병희야. 네 결정이 어떻든 친구니까 도와야지. 전화해라."
W가 전화를 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봤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결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공항에서 만나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기대반 걱정반이다.
기대는 10여년간 외로웠던 미국 이민 생활에서 가까운 친구가 곁에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치와 재미있는 온갖 문물들 마음껏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 한국의 후진적 정치 행태에 관한 답답함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 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이민생활을 시작하는친구를 비롯한 그 가족들이 제대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경제적 환경의 상이함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친구가 미국을 너무 쉽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걱정들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은 1990년대 초반에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다. 이 당시에 외국에 쏟아져 나왔던 사람들중 일부가 귀국하지 않거나 해외에서 자리잡으면서 아이를 낳았다. 특히 미국같은 속지주의 국가의 자녀들은 복수국적자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88년도 수준의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 있다.
확실한 것은 한국이 아무리 경제대국이 된다 해도 어떤 이유로든 한국을 떠나 이민 행렬에 뛰어들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대개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목적지가 될 것이다. 친구의 전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