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신하출토청광서연간석비 河北新河出土一块清光绪年间石碑
출처: 신화망 저자: :巩志宏 邢广利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신허(新河)현 다자(大贾)촌에서 발견된 '당양서원 중수기(堂陽書院記)' 비석 허베이(河北) 신허(新河)현 문보(文保) 부서는 최근 문화재 조사를 하던 중 청광서(淸光绪) 연간 비석을 발견했는데, 당시 관설 교습 장소였던 '당양서원(堂陽書院)'의 발전 역사와 중수 과정을 약 137년 만에 기록했습니다.
'중수당양서원기(重修堂陽書院記)' 비는 신허현 다자촌(大贾村)에 현존하고 있으며, 비신만 남아 있고 비액과 비좌는 유실되어 있습니다.현존하는 비신은 청석 재질로 길이 2.45m, 폭 0.90m, 두께 0.27m입니다.
비신의 앞면에는 '중수당양서원기(重修堂陽書院記)'가 있으며, 전문은 822자이고, 해서체는 세로로 쓰여져 있으며, 비문이 완전하고 글씨가 또렷합니다.비문의 양쪽에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 신허현 문화 및 보호 직원은 '중수 당양서원기' 비를 베낀 비문에 당양서원이 청나라 강희 16년에 시작되어 관립 교육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했으며 건륭, 가경 시대에 여러 번 수리했지만 여러 번 수리했지만 번 수리되고 폐기되었습니다.
광서 8년, 당시 지현(知縣)의 손석강(孫錫康)이 다시 부지를 선택하여 재건하고, 선비들이 적극적으로 기부하여 건설을 지원하였고, 재건 후 당양서원의 규모가 거대하여 신허의 흥교 바람이 날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신허현 문화보호소 직원 펑샤오나(冯晓娜)는 허베이성 신허현을 역사적으로 당양현이라고 불렀으며, 신허현지에 따르면 '당양서원 중수비'는 쑨시캉이 직접 썼고, 그는 당양서원을 재건하고 금 3천 냥을 모아 기금 연사 교사로 삼아 신허 문풍을 융성시켰습니다.
▲ 중수당양서원기라는 비의 일부인 풍효나(冯晓娜)는 중수당양서원비는 당양서원의 발전과 변화, 중건 규모 및 중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청나라 때의 교육상황과 풍토민정 연구에 참고가 된다고 합니다.
분류:고고학 프론티어
이 글의 꼬리표: 비석 중수 당양서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