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14구간 어림산(御臨山 510.4m)
산행일자 : 2007년 10월 07일
산행장소 : 오룡고개~368.4m봉~521.5m봉갈림길~532m봉~금동지안부~349.8m봉~ 시티재~호국봉~382.9m봉~349.8m봉~대곡지안부~어림산(510.4m)~483m봉~마치재~390m봉~남사봉(471m)~310m봉~287m봉~한무당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29명)
산행날씨 : 맑은후 비
산행거리 및 시간 : 22km, 07시간 43분
장마철이 지났는데도 2~3일 주기로 내리는 폭우와 반갑지 않은 태풍이 낙동정맥길을 떠나려는 회원님들의 발목을 번번이 잡는 바람에 언 50여 일 동안 낙동정맥 마루금을 밟지 못했다.
가을철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크게 나타나면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어 엽록소에 의해 가려져 있던 본연늬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잎이 시들면서 잎 속에 있던 물질들이 그때까지 잎 속에 없던 색소로 바뀌며 나타나는 현상의 산물이 단풍(丹楓)이라고 한다.
단풍(丹楓)을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위와 같이 아무런 느낌이 없겠지만, 가을로 접어드는 이때 '고우성' 시인의 '단풍'이란 시를 읽다보면 사뭇 다른 느낌과 함께 울긋불긋 곱게 물든 가을 산이 그리워 진다.
단풍(丹楓) - 詩 고우성
햇살이 스웨터속으로 올올이 파고드는 오후
그대는 산발한 화가인가
억새가 그려놓은 한 점의 풍경화는
숙성된 적포도주처럼 붉어지며
취기의 물결이 인다.
휘청거리는 발 밑으로
별들이 지고있다
지난날 내 가슴의 가지에 단단하게
매달아 놓았던 꿈 또는 사랑
청포도처럼 싱그러웠던,
때론 날이 선 자존심으로
그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었던 상처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거야
이별의 계절앞에
나목(裸木)이 되어 버린 가슴으로
미련만 돌돌 말아놓은 채
미처 그에게 닿지 못한 마지막 편지는
가을 모퉁이를 구르고 있다.
08시 49분 오룡고개(230m)
50여 일 만에 낮선 정맥호에 승선해 반가운 회원님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칠곡휴게소에서 박진용님께서 준비한 찰밥으로 맛있게 아침을 먹고, 08시 49분에 오룡고갯마루에 도착해 삼성산(578.2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조망한다.
우리가 늘 이용하는 정맥호가 금강산 관광길을 떠나서 하는 수 없이 다른 정맥호를 불러 이용하는 바람에 이곳 오룡고개까지 항해하는 동안에 여러 난관이 있었다. 옛말에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듯이 그동안 늘 함께했던 정맥호 선장님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
08시 59분 오룡고개(230m)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을 잇는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지나는 오룡고갯마루에서 그동안 무박산행을 하느라 산행 전 기념촬영을 하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며 모처럼 회원님들을 한곳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가져 본다.
09시 25분 삼성산 갈림봉을 조망하며
오룡고개에서 차츰 고도를 높이는 오르막 능선을 따라 작은 바위모둠터가 있는 368.4m봉을 지나 407m봉 정수리를 넘어서니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521.5m봉이 다가선다.
09시 45분 삼성산 갈림길(521.5m)
407m봉을 지나 잠시 고도를 낮춰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은 안부를 지난 정맥 마루금은 521.5m 삼성산 갈림봉을 향해 가파르고 긴 오르막 능선을 만들어 놓고 회원님들의 폐활량과 허벅지 근육을 잠시 실험한다.
허벅지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삼성산 갈림봉에 닿으니 여러 회원님들이 물로 목을 축이며 오랜만에 찾아온 화창한 가을 날씨속에서 즐거운 가을 산행의 참맛에 흠뻑 취해 있는 모습들이다. 이곳에서 삼성산 정수리까지는 왕복 1.6km밖에 되지 않는다. 평소 회원님들이라면 정수리에 올라 잠시 머물다 올 것이나 오늘은 모든 회원님들이 아무 말 없이 532m봉을 향해 우측 능선을 따라 발길을 옮길 따름이다.
아래 사진의 삼각점은 09시 49분 월성이씨 묘를 지나 532m봉 정수리에 막혀 있는 삼각점을 담은 사진이다. 532m봉에 다달을 무렵 1시간에 6km를 걷는다는 한 회원님만이 오던길로 발길을 되돌려 삼성산 정수리를향했다.
09시 53분 349.8m봉을 조망하며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금동지 안부로 내려서기 전 349.8m봉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으로 349.8m봉 너머로 겹겹이 잇따르는 산그리메가 아스라이 다가선다.
10시 13분 삼성산(578.2m)의 남서쪽 사면
금동지 안부를 지나 349.8m봉에 다다르니 남동쪽으로 향하던 마루금이 급하게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 삼성산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처가 나온다. 그래서 삼성산 갈림봉에서 남동쪽으로 병풍을 드리운 것처럼 이어지는 삼성산의 능선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삼성산 정수리 바로 아래를 보면 도덕산(703.1m)에서 오룡고개로 하산할 때 지났던 너덜지대와 같은 너덜지대가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너덜지대 아래로는 산불이 났었는지 새로 심은 키작은 나무군락이 조망된다.
아래 사진은 삼성산 정수리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담은 사진으로 북서쪽으로 흘르는 능선에선 삼성산 갈림봉(521.5m)과 532m봉을 찾아 볼 수 있다.
10시 38분 시티재(190m) 남북평화통일기념비
349.8m봉에서 시작된 내리막 능선은 시티재(190m)를 향해 급하게 고도를 낮추며 이어진다. 가파른 내리막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르다 보면 여러 개의 묘지를 지나치게 되는데, 두 번째 묘지에서는 우측으로 나 있는 산행로를 따르지 않고 좌측으로 나 있는 산행로를 따라야만 한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오는 탈력으로 무심코 직진을 하면 가파른 내리막 비탈을 어렵게 내려간 후 되돌아 올라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평소 내리막 능선을 뛰다시피 내려서는 호랑이 총무님은 이날 위 글처럼 일명 '알바'를 해 30여 분 동안 힘든 발품을 팔아야만 했단다....!
영천읍과 안강읍을 잇는 고갯마루에는 4차선으로 잘 포장된 28번 국도가 지난다. 시원하게 포장된 4차선 도로를 횡단 할 때는 차량 통행이 많은 만큼 각별히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대간호가 오룡고개에 도착하기 전, 회장님은 대간호 안에서 시티재는 차량 통행이 많아 위험하니 시티재를 건널때는 각별히 조심해서 모든 회원님들이 다 건넌 다음에 호국봉으로 걸음을 옮길 것을 당부 하셨다.
시티재에 먼저 도착한 회장님은 도로를 횡단 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을 골라 도로 가장자리 한쪽에서 빠른 속도로 고갯마루를 넘는 차량을 향해 서행하라고 수(手)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차량의 통행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회원님들이 안전하게 도로를 횡단하는 것을 도우셨다.
한편 시티재에는 호랑이에 관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30여 년 전 낙동정맥 시티재 영천~안강간 고갯마루를 잇는 비포장 임도를 왕복 1차선 도로로 포장 공사를 할 때, 공사 인부들이 시티재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불도저로 뽑아 내려는 순간 백호(白虎) 한 마리가 느티나무 앞에 갑자기 뛰어들어 느티나무를 보호하는 바람에 공사하는 인부들은 애초의 공사 계획을 수정해 지금 안강휴게소 내에 남아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을 우회하는 도로를 냈다고 한다."
또한 30여 년 전 당시 느티나무 아래에 꽤 오랜 시간을 앉아 공사를 중단시켰던 백호(白虎) 때문에 인부들이 느티나무를 뽑아내지 않고 느티나무를 우회하여 공사를 했고, 그 후 다시 4차선으로 확포장공사를 할 때도 30여 년 전의 백호 사건 때문인지 느티나무를 회손시키지 않아 지금도 느티나무는 온전히 안강휴게소에 남아 시원한 그늘과 함께 휴게소를 지키는 수호수(守護樹)가 되 있다.
10시 47분~11시 05분 후미를 기다리며
회장님의 배려로 시티재를 안전하게 건넌 회원님들이 후미 일행이 시티재를 건너 오기를 기다리며 물로 목을 축이고 다리쉼을 하는가 하면 꽃사슴님은 산밤을 몇 알 주워 연신 맛있다는 감탄사를 자아내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마치 꿈 많은 소녀를 연상케 한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며 마루금에서 다른 사람과 조우 한다는 것은 좀처럼 힘든 일인데 오늘은 북진하는 두 그룹의 산행객들과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남진하는 3명의 산행객들을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11시 10분 삽주
시티재로 내려서는 가파른 내리막 능선에서 알바를 한 이길숙 총무님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호국봉을 향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을 따르다가 백출 혹은 창출이라고도 불리우는 '삽주'를 만나 카메라에 담아 보았으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삽주(Atractylodes japonica)는 국화과(菊花科 Aster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키는 50㎝까지 자라며, 어린순은 흰 솜털로 덮여 있고 굵은 뿌리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보통 3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때때로 5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전혀 나누어지지 않기도 한다. 잎가장자리에 짧은 가시처럼 생긴 톱니들이 있다. 흰색 또는 연한 분홍색의 꽃은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두상(頭狀)꽃차례로 무리져 핀다. 두상꽃차례는 잎처럼 생긴 총포(總苞)에 싸여 있으며, 총포 가장자리에도 가시 같은 톱니를 가진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갓털[冠毛]이 달려 있다. 뿌리를 가을에 캐서 햇볕에 말린 것을 백출(白朮) 또는 창출(倉朮)이라고 하는데 한방에서 건위제·해열제·이뇨제로 쓰며 혈압강하에도 쓰인다. 뿌리는 그냥 말린 것을 창출, 껍질을 벗긴 뒤 말린 것을 백출이라 하기도 하며, 뿌리가 얽혀 있는 것을 백출, 그렇지 않은 것을 창출, 생강처럼 생긴 뿌리의 단면이 담황색이고 조직이 충실한 것을 백출, 뿌리가 염주처럼 잘록잘록하며 단면이 황갈색인 것을 창출이라고도 한다. 또는 백출과 창출은 각기 다른 식물에서 얻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삽주속(―屬 Atractylodes) 식물의 뿌리를 흔히 백출이나 창출이라고 부른다. 봄철에 어린순을 삶아 먹는다. 배수가 잘되는 양지 바르고 조금 그늘진 산 속에서 잘 자란다.
11시 22분 SK 중계안테나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는 오르막 능선이 다하자 순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그 능선을 따르다 보니 산속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붉은 벽돌로 벽을 쌓아올린 건물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이동통신용 중계안테나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건물 사위를 위압감을 주는 철책으로 둘러친 붉은 건물 전면 철책에 붙어 있는 'SK'란 글씨와 로고는 이 구조물이 이동통신용 중계안테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건물 좌측으로는 오류골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 있다.
11시 35분 호국봉(護國峰 348m)
이동통신용 안테나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 10여 분 발품을 팔면 봉우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능선 상에 '護國峰'이라 씌어져 있는 하얀 푯말이 땅에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봉우리가 호국봉인 것이다.
호국봉(護國峰 348m)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안강기계전투'는 1,950년 북한군이 8월과 9월에 걸쳐 기계~안강~경주~울산~축선을 따라 부산으로 진출하려고 총 공세를 해 왔고, 이에 아군 수도사단을 주축으로 한 제1군단이 북한군 제12사단을 경주 북방에서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완전 섬멸시킴으로써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 부산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은 중요한 전투이다.
이렇듯 전 국토가 북한군에 함락되고 마지막으로 부산지역만 남겨놓은 최대 위기사항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전투가 바로 '안강기계전투'인데 그 장소가 바로 호국봉(護國峰 348m)이라 전해진다. 호국봉 정수리에 박혀있는 하얀 푯말에는 '護國峰'이란 글씨와 함께 '영천호국원 설치'라는 글씨도 씌어져 있다.
아래 사진은 호극봉에서 회장님과 꽃사슴님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1시 39분 돌탑봉(382.9m)
나라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장렬히 싸우다 순국(殉國)한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호국봉을 뒤로하면 이내 삼각점을 휘돌아 마치 봉화를 올리는 봉수대(烽燧臺)처럼 돌을 쌓아 올린 야트막한 돌탑이 있는 돌탑봉(382.9m)에 닿는다. 돌탑봉 정수리 삼각점에는 푸른 이끼가 뒤덮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이색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11시 42분 안강읍 하곡리 저수지
382.9m 돌탑봉에서 349.8m봉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을 따르다보면 우측(동쪽)으로 안강읍의 전경과 하곡리의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다.
안강읍(安康邑)은 경상북도 경주시 북부에 있는 읍으로 읍소재지는 안강리이다. 시가지가 있는 북동부에는 넓은 평야가 발달했고, 이 일대는 무릉산(459m) 도덕산(703.1m) 등 500m 내외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육통리 안강리 산대리 일대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읍의 남서쪽 경계를 흘러서 형산강에 합류한다. 벼 보리 콩 등의 주곡작물 이외에 사과 포도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과 흥덕왕릉 등이 있으며, 옥산서원의 중국주엽나무(천연기념물 제115호)가 있다. 안강(安康) 양월(楊月) 육통(育通) 노당(老堂) 산대(山垈) 옥산(玉山) 하곡(霞谷) 강교(江橋) 두류(斗流) 근계(根溪) 갑산(甲山) 대동(大洞) 검단(檢丹) 사방(士方) 청령(靑令) 등 15개 동리가 있으며 면적은 138.67㎢이고 인구는 2002년에 37,020명으로 조사되었다.
12시 02분 맛있는 점심
10여 분 간격으로 오르막 능선과 내리막 능선이 번갈아 잇따르는 정맥 마루금을 따르다보니 어느덧 12시가 가까워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배속에서는 시장기가 동한다. 그래서 회장님께 점심을 먹고 가자고 말하니, 회장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데 함께 걷던 꽃사슴님은 "반찬은 내게 주고 밥을 챙겨 간 할마시(꽃사슴님이 호랑이 총무님을 부르는 호칭)가 와야만 점심을 먹는데..."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하곡리 저수지를 조망하고 대곡지안부로 걸음을 옮겨 349.8m 갈림길에 닿으니 선두 이용우 산악대장님을 비롯해 20여 명의 회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있다. 그래서 회장님과 꽃사슴님을 비롯해 대여섯이 한 쪽에 자리를 펴고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시작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꽃사슴님의 밥을 가지고 있는 호랑이님을 비롯해 후미 일행이 모두 도착해 모처럼 산행에 함께한 모든 회원님들이 한 자리에 앉아 20여 분에 걸쳐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다.
12시 38분 대곡지안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다 292m봉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높이를 낮추는 내리막 능선을 한 차례 내려서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대곡지안부가 나온다.
13시 02분 야수골 사거리 전 무명봉
대곡지 안부에서 시작된 오르막 능선이 다하자 여러 종류의 잡목과 관목 형태로 자란 키작은 떡갈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순한 능선길이지만 떡갈나무와 잡목이 정맥 마루금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우거져 있어, 잡목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한편 약 4m 정도 되는 콘크리트 기둥을 땅에 세우고 가시가 달린 철사를 콘크리트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며 둘러친 70~80년 대나 볼 수 있었던 철책이 정맥 마루금 우측(서쪽)으로 수 길러미터 잇따른다. 이 철책을 따라 이어지는 잡목숲을 헤치고 나아가다보면, 남쪽으로 향하던 마루금이 잠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지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무명봉 정수리에는 붉게 녹이 슬은 10여 미터 되 보이는 국기봉이 땅 바닦에 가로 누워있다. 국기게양대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국기봉이 있는 것으로 봐 아마도 이 근방에 군시설이나 국가 중요시설이 있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위 사진은 힘들게 잡목숲을 빠져나와 무명봉에서 류영돈님이 꺼내놓은 사과를 나눠 먹고 있는 모습이다.
13시 17분 옛길
야수골사거리로 보이는 안부에 닿으니 큰 키를 자랑하는 쑥부쟁이가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야수골 사거리는 오래 전부터 사람의 왕래가 없었는지 좁은 고갯길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 사이로 잡초만 무성할 따름이다.
13시 25분 308m봉
야수골안부에서 시작된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308m봉에 오르니 정수리에서는 늘 함께 산행하며 좋은 얘기를 들려주시는 송영래님을 비롯해 김일석님과 박영규님 그리고 삼총사들 사이의 홍일점인 들국화님이 잠시 다리 쉼을 하며 과일을 나누고 있다.
13시 45분 신포항 NO 119번 송전철탑
야트막한 봉우리가 연이어 잇따르는 마루금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오늘 산행의 주봉이라 할 수 있는 어림산(御臨山510.4m)이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순한 모습으로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사이로 다가서는 어림산을 연신 카메라에 담으려 했으나 좀처럼 끝나지 않는 잡목숲이 야속할 따름이다.
어느덧 '신포항 NO 119번'이라 쓰여져 있는 송전철탑이 있는 지점에 닿으니 10여분 전 어림산의 모습과는 상이(相異)하게 보이는 어림산이 고압송전철탑과 송전선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14시 17분 어림산(御臨山510.4m)
고압 송전철탑에서 바라다보이던 어림산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듯 까가워보였으나, 어림산은 회원들로 하여금 힘든 가쁜 숨과 힘든 발품을 팔게 한 후에야 정수리를 허락했다. 대간이나 정맥 능선을 따르다보면 만나는 봉우리가 다 그러하듯이 어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또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가파르고 긴 오르막 능선을 오르고 나면 정수리는 온데간데없이 다만 또 하나의 오르막 능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연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을 따라 세 차례에 걸처 발 품을 판 후에야 어림산 정수리에 닿을 수 있었다.
어림산(御臨山 510.4m)은 '조선조 왕이 다녀갔다'고 하여 '御臨'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의하면 '어림산 정수리에는 50cm 가량 되는 작은 빗돌이 정수리 한켠에 세워져 있다'고 하나 오늘 어림산 정수리에는 '경주 309, 2007 재설'이라 씌여진 삼각점만이 덩그런 땅에 막혀있다. 이 삼각점도 경주시에서 올해 재설한 것이라는 걸 삼각점에 씌여진 글로 알 수 있다.
모처럼 어림산에서는 회장님과 송영래님 그리고 박영규님과 신현숙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했다. 위 사진에 늘 함께 산행을 하시는 김일석님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늘 김일석님은 무릎이 좋지 않아 산행하는 내내 일행들보다 조금 뒤에서 산행을 했기 때문이다.
14시 37분 483m봉
남쪽, 남남동쪽을 향해 이어지던 정맥 마루금이 어림산(御臨山510.4m) 정수리를 기점으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티재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는 정수리가 너덜로 이루어진 483m봉이 솟아 있다.
483m봉 정수리는 지금껏 지나온 봉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동안 조망 없는 마루금을 따라 산행하느라 지친 회원님들의 기분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14시 53분 마치재(220m)
마치재에 도착하니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현곡면을 잇는 927번 지방도가 시원하게 지난다. 마치재에서는 잠시 다리 쉼을 하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다.
아래의 사진은 마치재에서 남사봉(471m)쪽으로 이어지는 무명봉(390m)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인데, 390m봉을 오르다가 마치 귀신이라도 쒸운듯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신발조차 천근만근(千斤萬斤) 무겁게 여겨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원님들이 잠시 다리 쉼을 하는 틈을 타 몇 분 동안 눈을 붙여 보았지만 효과가 없어 급기야 390m봉 기슭에서는 눈꺼풀의 무개를 견디지 못해 20여 분 동안 눈을 붙여야만 했다.
무박산행을 할 때면 가끔 아침을 식사 후, 혹은 점심 먹고나면 졸음이 몰려와 고생한 기역은 있었으나 오늘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못이겨 산행하다 말고 산속에서 잠 든 적은 처음이다. 산속에서 정신없이 잠자고 있는 나를 지나쳐가는 회원분들이 나를 보고 걱정하며 내뱉는 소리는 꿈속에서의 말처럼 들렸는데, 그 중에 꽃사슴님이 던진 말이 언뜻 기역에 남는다. "산곡에서 잠자면 악마가 잡아가는데..." 악마(岳馬)를 악마(惡魔)가 잡아간다....!
'황수탕'으로 잘 알려진 영천(永川)은 삼국시대에 신라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임고군(臨皐郡)으로 개칭하고 영현으로 도동현(道同縣)·임천현(臨川縣)·장진현(長鎭縣)·신령현(新寧縣)·맹백현(黽白縣)을 관할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도동현과 임천현을 병합하고 영주(永州)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가 파견되었다. 1018년(현종 9)에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으며, 뒤에 주(州)로 승격했다. 1413년(태종 13)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영천군이 되었다.
영천의 별호는 익양(益陽)·영양(永陽)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고종 31)에 대구부 영천군,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영천군의 20개면이 10개면으로, 신령군의 4개면이 2개면으로 통합되어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이때 내서면·내도면·완산면·우곡면이 합해 이루어진 영천면이 1937년에 영천읍으로, 1973년에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1986년에 화북면 삼창출장소가 화남면으로 승격되었다. 영천읍은 1981년에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영천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영천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영천시를 이루었다.
15시 38분 남사봉(471m)
마치재에서 서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어 어어지던 정맥 마루금은 390m봉을 기점으로 다시 남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남사봉 기슭의 임도까지 40여 분간 이어진다. 한편 지금까지는 남쪽과 남서쪽으로 향하던 정맥마루금은 남사봉을 기점으로 'U'턴을 하며 북쪽과 북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한무당재를 지나 316.4m봉까지 이어진다.
남사봉 기슭 채마밭에 도착하니 먼저 밭 곳곳에 수확을 포기한 무우가 널브러져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채마밭 너머로는 남사봉 자락을 수직으로 잘라내 임도와 밭을 만든 바람에 검붉은 황토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면 무우밭 아래 골짜기에는 1,000여 평의 연못과 2,000여 평의 택지가 조성되 있다.
푸른 잔디가 깔린 택지와 연못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느낄 수 있겠으나, 중장비를 이용해 높이 10여 미터, 길이 1킬로미터가 넘는 수직 절벽이 생길 정도로 남사봉 자락을 훼손한 광경을 봤다면 아마 누구라도 혀를 찼을 것이다. 가끔 TV뉴스나 신문에서 '무분별한 난개발로 그린밸트나 상수원보호구역을 비롯 아름다운 산하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접했을 것이다. 바로 이곳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16시 42분 한무당재
남사봉 기슭 임도에서 난개발로 인해 정맥 마루금이 끊어져 있어 남사봉 정수리에 오르지 않고 정수리 북쪽 기슭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이동하다 임도가 지나는 고갯마루에서 정맥 시그널을 찾아 숲길로 접어 들었다.
남사봉에서 한무당재까지는 310m봉과 287m봉이 차례로 잇따르는 가운데 순하고 완만한 능선의 1시간 가량 이어진다. 맑았던 하늘에 2시간 전부터 드리우기 시작한 구름이 한무당재가 가까워지니 산행이 끝났음을 알리듯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한다.
909번 지방도가 지나는 '할마당재' 혹은 '청석골재'라고 부르는 한무당재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떡갈나무 아래에서 있으려니 이내 후미 일행이 모두 도착함과 동시에 대간호가 다가온다. 함무당재에서 회원님들은 대간호에 올라 먼저 하산한 회원님들이 모여 맛있는 김치찌개와 하산주를 나누고 있는 청석골로 향했다.
검은 먹장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흩뿌리는 빗방울을 벗 삼아 따끈한 김치찌게와 함께 마시는 하산주는 산행의 피로를 씻은듯 날려 주었고 오랜만에 만난 회원님들과 나눈 얘기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 오늘 산행은 오랜만에 반가운 회원님들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모쪼록 다음 산행에서 만날 때까지 건안하시고 즐거운 나날 이어가세요. 글을 읽다가 혹 다른 의견이나 오류가 있으면 꼬~옥! 댓글을 남겨 주세요. ***
2007년 10월 13일
강일구
첫댓글 50여일 만에 재개한 정맥길이었군요. 얼마전에 출발을 한 것 같은데 벌써 경주시 안강읍이네요~ 앞으로 남은 구간도 즐겁게 안전하게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저녁노을님 성원에 힘 입어 꼭 완주하겠습니다. 즐거운 나날 이어가세요.^*^
그래도 늘 함께라는 산님들이 있어 늘 즐거운 산행이겠지요^^ 안강이라..예전에 포항살때 조금 인연이 있지요^^무사산행을 빕니다.
올 여름 유난하게 기승을 부린 턔풍과 낙뇌 때문에 겨울산님을 오랜만에 뵜습니다. 늘 건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