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대한 본격 수술에 들어가면서 공기업 기관장의 임금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정부는 공기업 기관장의 기본 연봉을 차관급의 연봉 정도로 일괄 조정하는 보수체계 개편을 단행 중에 있다.
공기업은 그동안 방만한 운영과 낮은 경영 효율에 비해 기관장 연봉이 너무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로서는 우선 기관장의 연봉 수준부터 조정함으로써 공기업에 경종을 울리고 공기업 개혁의 정당성도 확보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모 공단 이사장의 경우 1억 7000만원 받던 연봉이 1억700만원으로 37% 삭감되기도 했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이 문제됐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만큼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박수를 보낼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관장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혁신을 이끄는 효율적인 길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 않다.
공기업 역시 기업이고, 기관장은 그 기업의 생존과 근로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최고경영자(CEO)이다. 제대로 된 공기업 혁신은 유능한 CEO없이 이뤄지기 힘들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고 유능한 CEO모셔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건만 된다면 능력 있는 CEO의 연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CEO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정한 시장 임금이 있고, 그에 맞춰 CEO의 연봉이 매겨지는 것이다.
공기업 기관장의 연봉을 대폭 삭감하면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능한 인재를 CEO로 영입하는 데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판에 연봉까지 터무니없이 낮다면 공기업 기관장을 지원할 우수한 인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로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퇴직한 공무원의 잔치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퇴직한 공무원의 경우, 공공기관 기관장의 연봉이 낮아도 이를 보충할 수단이 있다. 공무원 연금에서 일정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낮은 연봉을 받더라도 기관장을 할 유인이 충분한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 기관장 보수 체계를 개편하면서 기관장의 성과급을 대폭 삭감한 데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의 경우 CEO가 열심히 노력해 우수한 경영 실적을 내도 그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경쟁이 없는 공기업의 특성상 많은 성과급을 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일면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공기업 기관장의 무사안일을 부채질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서는 능력만 된다면 많은 연봉을 주고서라도 유능한 CEO를 영입하는 것이 빠른 길이다. 그런 CEO가 공기업의 장기적 비전을 만들고 경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CEO에 주는 연봉을 '아껴야 하는 비용'으로만 보는 좁은 시각으로는 공기업 혁신의 길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 공기업 혁신의 길은 좀더 넓고 근원적인 시각에서 찾아야 한다. 엄청나게 상승한 노조원의 연봉은 손도 못 댄 채 기관장의 연봉만 삭감하는 조치가 자칫 포퓰리즘적 대안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입력 : 2008.08.29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