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풍속도
김 영 신
누군가를 만나면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 반가움과 친밀감을 나타내는 악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사법이다. 편리함 때문인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악수에도 예의가 있어서 윗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청하면, 답례로 공손히 오른손을 내민다. 여성과 남성이 악수를 나눌 때는 여성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순서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악수보다 ‘목례하기’를 권하는 추세다. 목례는 번잡하지 않고 겸손과 공경의 마음을 가볍게 전할 수 있어서 좋다.
예로부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뵙고, 절을 올리던 미풍양속이 전해졌다. 결혼식이 끝나면 준비한 폐백음식을 시댁 가족들 앞에 내놓고 절을 올리는 풍습. 양가 부모님을 방문하거나 맞을 때, 두 손을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절부터 올렸다. 동내 친지들이 오시면 부모님이 우리를 소개하시고, 우리는 공손히 무릎 꿇고 절하며 예를 갖췄다. 어른들도 절을 받은 답례로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서로를 공경하는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생략되고 간편해졌다. 태도가 생각을 바꾸는지 어른을 존경하던 마음도 점점 옅어진다. 아예 절의 대가를 노골적으로 바라며 절값을 따지는 풍토가 되었다.
어렸을 때 시골 큰 집에 가서 자주 머물렀다. 큰 집들이 한 동네에 모여 있어서 이집 저집을 오가며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 곳에는 많은 자손들과 일꾼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끼니 때마다 아궁이에 불 때던 정경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큰 가마솥에 김이 오르고 식구 수대로 늘어놓은 밥그릇들. 그릇들에 수북이 담긴 밥의 양만큼이나 인심도 푸짐했다. 내 밥그릇은 뚜껑에 꼭지 달린, 작고 오목한 놋그릇이었다. 가끔 부엌바닥에서 재 묻힌 짚단으로 놋그릇들을 닦는 모습을 구경했다. 얼룩진 그릇들이 때를 벗고 반짝이는 것이 신기했다.
큰 집에 잔치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리 가서 지내던 나는 어머니가 오신다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돌이켜보니 큰 집과 외갓집의 추억이 많은 건, 내 밑으로 생긴 동생들 때문인 듯하다. 친지들이 워낙 편하고 허물없이 대해주니 집처럼 편해서 그 때는 몰랐다. 나는 어머니를 큰 집에서 만난다는 기쁨으로 들떠있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보퉁이가 들려있었다. 큰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미리 주문한 수제품, 봉황이 수놓아진 비단 이불이었다.
오래전부터 바구니에 모아둔 계란들이 진가를 발휘할 때였다. 며칠 전부터 상주한 요리사들이 갖가지 모양과 색깔로 만든 양갱이나 정과란 것을 처음 맛보았다. 예쁜 문양의 약과와 송화다식, 건오징어를 솜씨 있게 오려서 꽃을 피웠다. 우리 음식들이 그토록 오색찬란하고 다양한 줄을 그 때 알았다. 아녀자들과 일꾼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속에서, 어린 눈에는 별천지처럼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눈 호강, 입 호강하며 신나게 뛰어놀던 날들이다.
셋째 큰아버지의 환갑 날이었다. 대청마루에서 곱게 의장한 큰아버지 부부가 위엄 있게 앉아계셨고, 그 앞에는 색색의 음식들이 일렬로 높게 쌓였다. 마당에는 아주 큰 멍석이 펼쳐졌고. 그 멍석 위에서 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일가 친척들이 항렬 순으로 절을 올렸다. 구성진 창의 가락과 알록달록한 색채들이 너울거리며 조화를 이뤘다. 어린 마음에도 큰아버지가 부러웠다. 일가친척들의 절을 받고, 귀한 선물들이 산처럼 쌓여서. 자손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을 실감한, 그 날의 장관을 잊지 못한다.
풍성한 음식의 잔치 상들이 다른 큰 집 안방까지 차지하며 사흘간 이어졌다. 그 날의 잔치를 생생히 기억하는 건, 비단 선물이나 음식 때문만이 아니다. 이웃 동리에서 소문 듣고 찾아온 이들을 위해 곳간을 열어서 그 안의 쌀을 한 말씩 지고 가게 했다. 누구보다 비싼 절값을 치룬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배려한 어르신의 아름다운 미덕, 그 때 본 광경이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부지런한 큰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일꾼들을 진두지휘하며 농사일을 하셨다. 덕분에 우리 집 뒤주에도 쌀이 떨어질 새 없었다. 평소에 근면하고 검소하신 큰아버지는 노력으로 이룬 풍요의 결실을 환갑잔치에서 한껏 풀 수 있었다. 빈곤한 이들의 박탈감을 배려한 그 분은 큰절로 대접 받아 마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때의 정경이 아름답게 떠오른다.
한 분, 두 분, 어른들이 떠나신 후로 구심점이 없어졌다. 그 많던 일가친척들과 자손들은 흩어져서 각자의 일가를 이루며 지낸다. 요즘엔 환갑은 생략하고, 칠순과 팔순조차도 직계가족만 조촐하게 모이는 추세다. 어쩌다 결혼식 같은 데서 친척들을 만나면, 가족을 일일이 소개해야 누구 자손인지 알게 된다.
이제 양가 부모님이 안 계시니 절을 올리던 우리가 세배를 받는다. 세배 돈을 미리 봉투에 준비하면서. 앙증맞게 절하는 손녀들 모습만으로 미소와 절값이 절로 나온다. 아직 돈의 가치를 모르지만, 좀 더 크면 액수를 가늠하겠지.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예금이나 주식투자를 생각할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군것질의 액수가 아닌, 단위가 커진 절값을 내밀게 된다.
설빔을 입고 어른들 찾아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세배하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추운 날씨에도 훈훈하고 풍성했던 어린 시절이다. 아직까지 자수가 놓인 비단방석을 간직하는 건, 옛 추억을 떨치지 못해서일까.
첫댓글 살림이 넉넉한 농촌 대갓집의 여유롭고 인정이 넘치던 삶의 풍속도가
눈앞에 떠오릅니다.
지금은 대가족제가 사라지고 핵가족으로 흩어져서 보기 어려운 추억 속의 아련한 정경들이지요.
회갑 잔치에 오신 하객들에게 곳간을 풀어 쌀을 한 말 씩 지고 가게 하신 큰아버님의 마음 씀이 너무나 감동입니다..
누구보다 비싼 절값을 치르셨네요. 부지런히 곳간을 채우시고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신 분 존경합니다.
어린 날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지니신 분이 부럽네요. 근황까지 이야기의 흐름이 유연하고, 잘 쓰셨습니다
어릴때 큰집 잔치풍경이 세시풍속도 모양 아기자기하게 잘 그리셨네요.
내 어릴때 큰집 제사때 온 일가 친척이 모여들어 법석대던 풍경을 떠 올리게 하네요.
지금은 그 큰집이 폐허가 되다싶이되고 박씨 집성촌이었던 동네집들이 타 성씨네들이
들어와 집도 새로 개축해 살고 있지요. 어쩌면 그렇게 모두 대처로 흩어져 버렸는지 씁쓸하네요.
세월속에 사라지고 변모된 고향의 쓸쓸한 모습도 완전 공감입니다.
아직까지 봉황자수의 비단방석을 간직하는 건, 옛 추억을 떨치지 못해서일까.
결미 부분이 이 글의 주제를 함축하는 듯하군요.
독자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기는 좋은 시도입니다.
김 선생님
감상문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글 말미 부분에 대해서 잘 짚어주셨네요.
옛 것들을 많이 비우고 살았는데,
어머니가 혼수로 해주신 방석 두 개를 아직도 간직하며 세배 받을 때 꺼내서 앉곤 해요. 옛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겠지요.
감사합니다~^^
일경 선생님, 이예경 선생님,
박무형 선생님,
어느새 부족한 글 읽으시고 감상문까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이번 주제에 대해 오리무중이었는데,
어린시절 추억이 떠올랐어요. 잊고 지내던 일이 글을 통해 재생되니 신기해요.
다시 한 번 깊은 감사 드립니다.
지송 김영신님의 인사의 풍속도를 읽으니, 김홍보도의 풍속도 그림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큰 아버님의 이웃배려심은 어느누구도 실천하기 어려운 *베품이시네요~^^
"한 분, 두 분, 어른들이 떠나신 후로 구심점이 없어졌다." 이 귀절은 저희 안씨집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럴수록 어른이 계신 곳을 다음 설날에 (코로나 방역지침이 완화되면)
집안 어른을 찾아 세배하러 가야겠습니다.~^^
김영신님 댁의 '알록달록한 풍속도' 잘 감상했어요~^^
민속화 보듯 그려진 글이군요.
역시 화가의 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