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박제상 유적지 '치산서원(鵄山書院)'
울산광역시기념물 1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68.72
유적지의 주인공은 바로 영해박씨의 시조이자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 363∼419)이다. 물론 박제상의 출신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박제상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손이며 할아버지는 갈문왕인 아도, 아버지는 파진찬인 물품, 관등은 내마, 벼슬은 삽량주간(歃良州干)이었다고 한다. 삽량(揷梁)은 오늘날의 양산을 말한다. 따라서 벼슬살이를 근거로 박제상을 양산의 인물일 수 있지만 출신지와는 별개로 보기도 한다.
박제상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월평리, 척과리에 위치한 치산서원지, 망부석, 은을암 등의 박제상 관련 유적들로 1997년 10월 9일 부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만화리 박제상유적지는 크게 치산서원, 충렬공박제상기념관, 박제상추모비가 있는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치산서원(鵄山書院)
서원의 기원은 신라시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처를 제사지내기 위해 신라시대 울주 묵장산(墨匠山)의 치술령(鵄述嶺)이라는 고개에 세워졌던 ‘신모사(神母祠)’에서 출발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745년(영조 21)에 영해박씨 주도로 신모사가 있던 두동면에 다시 건립하여 박제상과 그의 부인 및 두 딸을 제향하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복원되었다. 치산서원지(鵄山書院址)를 포함하는 박제상유적(朴堤上遺蹟)이 1997년 10월 9일에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매년 3월 초 정일(丁日)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서원의 배치 구조
서원은 외삼문인 삼강문(三綱門), 박제상의 호를 따서 지은 강당인 관설당(觀雪堂), 동서재인 영휘재(永徽齋)와 경의재(景義齋), 그리고 박제상의 처 국대부인 금교김씨(金校金氏)의 사당인 신모사(神母祠), 박제상의 두 딸 아기(阿奇)와 아경(阿慶)의 영정을 모신 쌍정려(雙旌閭), 박제상의 사당인 충렬묘(忠烈廟)로 구성되어 있다. 신모사로 들어가는 문에는 ‘망해문(望海門)’, 쌍정려로 들어가는 문에는 ‘사효문(思孝門)’, 충렬묘로 들어가는 삼문에는 ‘성인문(成仁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원의 특징
신라의 충신을 제향한 서원이면서, 그 충신의 일가족을 제향한 조선시대 보기 드문 서원 중 하나이다.
자! 이제 서원을 살펴본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작은 다리 정면에는 홍살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며 그 뒤로 외삼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은 신라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인 삼강문(三綱門)을 만난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은 박제상의 호를 따서 관설당(觀雪堂)이라 했다.
관설당
편액은 박제상의 48세손이 쓴것이다
관설당에는 여러가지 박제상과 관련된 글과 사진들이 걸려있다.
제일 우측에 '장사벌지지' 탁본
경주 '장사벌지지(長沙 伐知旨)'는 지난번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참고로 링크해 둔다.
박제상 아내가 통곡한 모래밭 '장사 벌지지'
경주 장사 벌지지(長沙 伐知旨) 경북 경주시 배반동1015 수목전시원(화랑교) 경주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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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설당에서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東齋) 경의재(景義齋)
서재(西齋) 영휘재(永徽齋)
이제 사당으로 들어가보자.
사당으로 가는 문은 성인문(成仁門)이라 한다.
이런 문을 들어가는 법은 '우입좌출(右入左出,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오기)이다.
성인문(成仁門)
사당 '충렬묘(忠烈廟)'
박제상 공 영정
신모사(神母祠)
처음 경주 묵장산(墨匠山)의 치술령(鵄述嶺)이라는 고개에 세워졌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745년(영조 21)에 영해박씨 주도로 신모사가 있던 두동면에 다시 건립하여 박제상과 그의 부인 및 두 딸을 제향하고 있다.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린 마음을 새겨 사당 들어가는 문은 ‘망해문(望海門)’이다.
망해문(望海門)
신모사(神母祠)
신라충신 박제상공 국대부인(김씨부인)신위와 영정
망부석(望夫石)과 은을암(隱乙巖)
박제상의 순국 소식을 들은 부인 김씨는 슬픔과 원한을 이기지 못하여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서 왜국를 보면서 통곡하며 남편을 따라 정절로써 죽으려 하자, 딸 셋 또한 따라 죽으려 함에, 둘째 딸 아영(阿榮)에게 이르기를 ‘너는 살아남아서 네 동생 문량(文良)을 양육하여 아버지의 후사를 잇게 하라.’하고 부인 자신과 두 명의 딸, 즉 큰 딸 아기(阿奇), 막내 딸 아경(阿慶)은 함께 정절사 하였는데, 죽은 세 모녀의 시신은 곧 돌이 되어 망부석이 되었고, 그 넋은 새가 되어 망부석 남쪽 십 여리에 떨어져 있는 국수봉 바위틈으로 날아가 숨었다.
이에 후세 사람들이 새가 날아간 마을이름을 비조(飛鳥, 새가 날아감)라 하였고, 새가 숨은바위를 은을암(隱乙巖, 새가 숨은바위)이라 하였다. 현재 두동면 만화리에는 비조(飛鳥)라는 마을이 있으며, 국수봉의 척과리 쪽 방향에 은을암이 있다.
[울주여행] 박제상의 아내가 새가 되어 숨은 ‘은을암’
울산(울주) 은을암(隱乙岩)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산152번지 오랫동안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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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정여(雙旌閭)
박제상의 두 딸, 아기(阿奇)와 아경(阿慶)의 영정을 모신 쌍정려(雙旌閭)이다.
두 딸의 효심을 기려 사당으로 가는 문을 ‘사효문(思孝門)’으로 했다.
사효문(思孝門)
아기(阿奇)와 아경(阿慶)의 영정
치산서원 구역을 둘러보고
정면에서 좌측에 있는 기념관 구역으로 이동
충렬공 박제상 기념관
박제상기념관은 총 6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치산서원 인근 9,461㎡ 부지에 2개 동의 한옥 양식으로 착공 1년 7개월만에 2008년 9월 준공됐다. 기념관은 크게 충신 박제상을 기리는 박제상기념관과 울주문화관, 교육영상실, 옥외전시공간 등으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 기념관은 박제상 일대기 및 가족이야기를 밀랍인형과 도표, 영상 등으로 꾸며져 있고 문화관에는 박제상이 살던 신라시대상과 울주의 민속 등이 모형으로 전시됐다.
또 교육영상실에는 홍보영상물 상영은 물론 다도 등 다용도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옥외 전시공간에는 박제상 추모비와 그의 부인 김씨 및 딸을 기리는 삼모녀상, 효열비 등이 조성됐다. 다른 한 켠에는 망부석, 은을암을 비롯한 박제상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유적에 관한 설명이 있었으며, 신라시대, 백제시대 등의 의복문화를 맞추고 학습할 수 있는 구간이 마련되어 있다.
박제상 추모비
삼모녀 상
【주변볼거리】
은을암, 망부석, 박제상 생가지, 구하스님 생가지,
전화앵묘, 봉계한우특구
[출처] [울주여행] 만고의 충신 박제상의 유적지 ‘치산서원과 기념관'|작성자 낭만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