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행복한 책 읽기, 2004.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네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인과의 접촉 임무를 부여받은 언어학자의 인식론적 변용을 그린 표제작이다. 테드 창은 중국 1967년 뉴욕 주 포드 재퍼슨에서 중국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문학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1990년 데뷔작 <바빌론의 탑>은 ‘최연소 수상인 동시에 데뷔작에 의한 최초의 수상’을 기록하며 네뷸러 상을 받았다.
<네 인생의 이야기>의 화자는 루이즈 뱅크스로 언어학자이다. 어느 날 우주선이 느닷없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웨버 대령이 상황설명을 하고 물리학자 게리 도널리와 한 팀이 된다. 그녀에게 맡겨진 임무는 외계인의 음성을 해석하는 일이다. 녹음테이프를 들려주자 물을 뒤집어 쓴 개가 후드득 흔들어 물을 떨궈내는 소리라고 말하며 성대가 큰 듯하다고전한다. 그리고 직접 만나 얘기해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전한다. 만나지 않고는 녹음된 소리로 언어를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미지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직접 교류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교류라는 건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 따위를 의미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언어 습득은 절대 불가능해요. 따라서 외계인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면, 언어학 분야에서는 직접 외계인과 만나야 합니다. (p.144)
소설은 루이즈와 딸과 있었던 기억들로 교차하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녀에게 첫번 째 중요한 전화가 걸려온다. 산악구조대는 딸이 사망하여 안치소에 있다는 내용이다. 딸은 스물다섯 살이다. 딸과 함께 언어를 습득하는 사건들도 스치고, 자신의 데이트 상대인 넬슨을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정해 말했던 추억도 더듬는다. 엄마 데이트 상대를 본 첫 인상을 “오늘 밤 날씨가 어떨 것 같아?” 라고 물으면 “푹푹 찔 것 같아”라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말을 나눈 기억도 있다.
‘체경’(looking glass)이라는 우주선은 미국 전역에 9개, 전 세계에 112개가 떨어졌다. 외계인은 이름은 헵타포드라고 붙였다. 일곱 개의 가지가 맞닿은 곳에 올려놓은 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방사상으로 대칭이었고, 가지는 모두 팔이나 다리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것은 네 다리를 써서 걷고 있었고, 다른 세 개는 팔처럼 측면에 말려 올린 상태였다. 게리는 이들을 ‘헵타포드’(칠족생물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p.147)
언어학자는 정부에 디지털 한대와 대형스크린을 주문한다. 스크린에 단어를 표시하고, 그들이 쓰는 글자를 카메라로 녹화할 예정이다. 헵타포드들도 문자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한다. 음소 대신 문자소를 판별하면 작업은 더 쉬워진다. 웨버 대령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의 노출을 가급적 최소한으로 꺼린다. 두 헵타포드에게 플래퍼와 래즈베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을 구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언어학자와 물리학자는 지구의 언어를 그들에게 설명한다. 뛰다. 걷다. 말하다. 쓰다라는 자동사부터 헵타포드가 젤리 달걀을 먹는다는 타동사까지 몸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신호를 보내온다. 저들은 한 단어가 어떤 식으로 회전해도 다른 경우와 똑같이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을 안고 있다. “우리의 비디오 화면은 헵타포드에 비하면 원시적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통해 보는 내 동료들은 외계인들보다 더 먼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p.162)
언어학자는 세 가지 가능성을 진단한다. 첫 번째는 헵타포드들은 진정한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 앞에서 쓰고 싶지 않아 할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지금 쓰고 있는 과학기술은 본래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 가능성이다. 세 번째는 진정한 문자로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비선형적 문자 체계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표어문자-표의문자-어의문자의 순으로 발달하는데 그들은 어의문자를 사용하며 인간 언어의 문자와 대략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의문자는 자체적인 의미를 가지며, 다른 어의문자와 결합해서 무관하게 서술할 수 있다. 그들은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판단 내린다.
“언어 진화에서 습득의 용이함은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해. 헵타포드의 경우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적, 인지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서로 아예 다른 언어를 쓰는 편이 오히려 같은 언어를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내는 것보다 더 논리적인지도 모르는 일이지”(p.167)
지구에 외계인이 왔을 때 필요했던 학자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였다. 언어학자는 소통을 위해 물리학자들은 외계인에게 원소주기율표, 질량, 가속도, 물리학의 기본적인 특성을 전달하기 위한 시도 한다. 직접 시연, 사진, 그림, 동영상을 보여줬지만 진전이 없자 물리학자들은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언어학자들은 점점 빠르게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지구로 왔는지” 답을 얻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답을 말하지도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지구에 온 관광객처럼 지독하게 호기심이 없는 태도를 취한다.
소설은 화자가 딸과 살았왔던 사건들이 교차된다. 여섯 살 된 딸과 하와이를 가는 장면, 대학 졸업 후 금융분석가의 길을 가는 장면, 13살 때 쇼핑센터에서 엄마랑 다녔던 것을 챙피해 하는 장면, 14살 때 양쪽 진영 모두 이길 때 쓰는 말을 아빠에게 물어봐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그려진다.
작품은 합리성, 이성, 인과를 중시하는 서양식 세계관과 연속, 순환, 연결을 중시하는 동양식 세계관이 공존한다. 과거-현재-미래를 선형으로 이어지며 사고하는 외계인과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사고하는 인간과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복잡한 햅타포드의 원리를 이해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착시현상의 그림(노파와 연인)에서 보여주듯이 인간의 능력으론 불가능하다. 두 그림을 동시에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다르다. 그 과정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미래를 알기에 자유의지와 미래의 선택은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외계인들은 사고한다. 그것을 루이즈 뱅크스 박사는 습득했다.
루이즈는 딸이 스물다섯 살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 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응"이라고 대답한다.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p.218)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허리에 두른 그의 팔을 떼어 내고, 우리는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p.230)
삶을 살아가다보면 과거-현재-미래의 경우를 대비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냐는 문제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지금 어떻게 쓰여 지고 있는가. 과거에 어떻게,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해나갈지 성찰하게 만든다. 인과론적 관점이나 목적론적 관점에서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헵타포드의 기능을 얻어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보고 싶은가도 묻게 해준다. 과학소설이지만 삶을 관조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여운이 깊은 작품이다.
<서평-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