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서 론 1
1. 기존 연구 분석 1
2. 연구의 목적과 방법 5
Ⅱ. 唐代 유학자의 불교 비판 7
1. 韓愈의 불교 비판 7
1) 論佛骨表 를 통한 불교 비판 7
2) 原道 에서의 유학 사상과 불교 비판 10
2. 李 의 불교 비판 14
1) 去佛齋 에서의 불교 비판 14
2) 李 사상에 있어서의 불교의 영향( 復性書 를 중심으로) 16
Ⅲ. 原人論 의 성립 배경과 조직 22
1. 原人論 의 성립 22
1) 사회·사상적 배경 22
2) 原人論 의 성립 과정 24
2. 原人論 의 조직 28
Ⅳ. 原人論 의 會通 사상과 의의 31
1. 會通의 근거 31
1) 교판을 통한 제 사상 비판 32
2) 핵심개념으로서의 本覺眞心 40
3) 본각진심을 통한 제 사상 회통 46
2. 회통의 방법 52
1) 從淺到深 52
2) 全揀全收 54
3. 原人論 의 사상사적 의의 57
1) 교판의 확장 57
2) 宋·明 道學에 미친 영향 63
(1) 주렴계의 태극도설 63
(2) 양명학의 양지론 69
Ⅴ. 결 론 73
참 고 문 헌 76
ABSTRACT 81
[표 목차]
표 1 : 분과를 통한 原人論 의 범위와 내용 30
표 2 : 原人論 과 都序 의 교판 내용 비교 54
Ⅰ. 서 론
圭峯宗密은 중국 唐나라의 중기와 후기초의 인물이다. 화엄학 5조 그리
고 하택종의 선사로서 禪源諸詮集都序 의 선교일치 사상과 原人論 에
서의 삼교 회통사상으로 그의 사상은 주목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당시의 사상적 쟁론을 무마시키고, 정리·통합하는 融會·평화의 사상이
다. 原人論 이라는 題名은 인간의 근원·본질을 詳考하고 窮究한다 는
뜻이다. 종밀은 이 글에서 儒敎와 道家 그리고 불교의 諸敎를 비판하며
회통해 내고 있다. 原人論 은 대정장으로 4쪽이 채 안되는 분량이지만,
그 집약된 사상적 내용과 교리적 분석은 탁월한 것이다. 馮友蘭은 종밀
에 대해 위로는 종밀 이전의 유불도 삼교 관계의 총결산이고, 아래로는
종밀 이후의 宋·明 道學의 先河를 연 것 ) 馮友蘭, 中國哲學史 (香港 : 三聯書店有限公司, 1989), p. 244.
이라고 학적 위상을 평가하고
있다. 교학으로서의 화엄학과 대중적이며 실천적인 禪 사상은 중국 사상
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불교 사상이다. 그래서 종밀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선교 일치 사상에 더 많은 연구 업적들이 있다. 또한 국내
에서도 선불교와 화엄학의 비중속에서 그리고 보조지눌의 定慧結社 운동
의 定慧雙修가 荷澤神會의 空寂知와 圭峯宗密의 頓悟漸修說에 입각해 있
다 ) 權奇悰, 高麗後期의 禪思想 硏究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p. 32.
심재룡은 頓漸論으로 본 보조선의 위치 , p. 49. 보조국사 지눌의 중국선 이해 ,
pp. 61∼62.( 동양의 지혜와 禪 , 서울 : 세계사, 1992)에서 종밀의 사상이 보조지눌
에게 계승되었으며, 지눌은 종밀의 업적에 대해 비판적이며 선택적이었다고 한다.
는 점에서 그 사상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되어지고 있다.
1. 기존 연구 분석
原人論 에 대한 연구는 原人論 의 내용 이해와 중국 사상과의 연관
성에 대한 언급에서 출발하여 중국 人性論史와 宋·明 道學에 미친 사상
적 영향이라는 측면들이 검토되고 있다. 종밀이 유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편력이 시작되는 것과 그의 글에서 보이는 주역을 통한 해석, 노장학의
용어 사용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밀과 중국 사상은 깊은 관계를 가진
다. 原人論 에 대한 기존 연구 내용의 특징을 시대순으로 기술해보면,
일본학자인 加地哲定은 宗密の 原人論について (1950)에서 原人論 이
儒道 二敎와 불교의 사상적 대결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종밀은 原人論
에서 儒·道의 주장에 담긴 인간의 道를 긍정하고 있고, 이후 유교측에
서 原人論 의 사상을 취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原人論 의 내용의
전개순서를 따라 儒·道와 불교 제 사상을 비판과 회통의 순서로 기술해
나가며 宋·明 道學에 대한 原人論 의 영향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그는 原人論 의 直顯眞源에서 본각진심을 原人(인간의 근원을 궁구함)
의 근거라고 하여 표면적으로는 기신론의 입장을 취하지만, 기신론 뿐
아니라 열반경, 법화경, 화엄경 등을 인용하고, 본각진심을 설명함에 있
어서 如來智 一切智 自然智 無 智 라고 하는 것은 모두 화엄의 입장
이라고 하며 종밀이 화엄학자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宋·明 道學에 미친
사상적 영향의 내용으로 주자의 태극도설, 정주학의 理氣이원론, 육왕학
의 心卽理 사상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加地哲定의 이 글은 原人論
의 이해에 좋은 지침서로 생각된다.
鎌田茂雄은 原人論 의 찬술 시기에 대해서 종밀이 유학을 버리고 불교
에 귀의하여 곧 쓴 것이라고 추정한다. ) 鎌田茂雄,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75), pp. 126∼127.
鎌田茂雄,「原人論의 解題」(國譯一切經, 諸宗部 4, 1979), pp. 259∼260.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1975)에서는 종밀 저술에 대해 문헌적인 정리를 하고 있으며, 제3장
宗密における儒佛道三敎 에서 중국 불교가 도교에 준 영향과 中唐期 신
유학의 형성에 있어서 한유에 배불을 다루고 李 의 복성서 에 보이는
불교의 영향 ― 性情 개념, 성인의 경지, 수양론 ― 등을 간단히 다루고
있다. 原人論 의 사상적 영향에 대한 그의 관점은 중국 사상사에서 불
교의 心識論을 도입해 주체적인 심성을 연구하게 한 역할과 儒道 二敎에
각각의 역할과 위치를 부여한 것으로 삼교융합의 발판을 연 것으로 평한
다.
馮友蘭은 그의 중국철학사 에서 原人論 의 주요 대목들을 예시하며,
불교의 우주 발생론이 宋·明 道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정주
학과 육왕학에 대한 原人論 의 사상적 영향을 간단히 언급한다.
鄭舜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原人論 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宗
密의 會通思想硏究 (1983)에서는 原人論 의 회통사상이 화엄의 眞妄交
徹과 선의 眞空妙有에 바탕하고 이 두 가지 면을 수렴하여 全揀全收라
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며 또한 회통에는 절충융합이라는 중국적
사유 방식이 깔려 있다고 하여 전간전수, 절충융합의 논리를 회통의 원
리로 말하고 있다. 또한 華嚴原人論 硏究 (1983)에서는 기신론의 전개
방식에 영향을 입은 全揀全收의 논리와 교판에 의해 정리하려는 從淺到
深의 논리를 회통의 원리(방법)로 기술하고 있다.
苒雲華는 宗密 (1988)에서 鎌田茂雄의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와
같이 저술, 생애, 사상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며 鎌田茂雄보다 사상적 측
면을 좀더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苒雲華는 原人論 의 저술 시기를 만
년으로 보며 ) 苒雲華, 宗密 (世界哲學家叢書, 臺北 : 東大圖書公司印行, 1988), p. 250.
, 도서 와 비교하여 작은 분량이지만, 그 치밀함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종밀의 사상에 대한 취급은 선교일치의 내용이 많
이 다루어지는데 이 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중국 사상사에 미친 영
향에서는 여전히 原人論 에 그 비중을 두고, 그 내용에서 거시적으로
는 宋明 신유학이 건립될 수 있는 단초의 제공을 말하고, 직접적으로
주돈이의 태극도설 과 주희 심성론의 染淨문제를 간단히 언급하고 있
다.
Gregory, Peter N.도 종밀의 전반적인 사상을 다루고 있으며, ) Gregory, Peter N.,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 Traditions of Meditation in Chinese Buddism ,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 Sudden and Gradual Approachs to Enlightenment in Chinese
thought ,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7.
-------------, Tsung-mi and the single word 'Awareness'(chih) , Philosophy
East and West 35, 1985.
Edited by patricia Buckley Ebrey and Peter Gregory N., Religion and society in
t'ang and sung China ,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3.
주로 교
학과 禪을 매개시키는 도서 의 선교일치를 많이 다루고 있다. 종밀 교
학에 대한 서양학자로서의 분석적 해석은 종밀 사상의 이해에 많은 도
움을 주고 있다. 그는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1991)
에서는 교판의 확장을 의미론적으로 분석하여 비록 儒·道를 열등한 범
주에 자리매김하지만, 같은 담론의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에서 종밀의
외교에 대한 입장과 교판의 중요성을 찾고 있다.
신규탁은 인간론에 대한 종밀의 이해 (1994)에서 本覺眞心 의 사상을
분석하고 중국 인성론사의 관계속에서 그 의미를 서술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본각진심을 가진다는 전제에서 만인은 평등하며 주술적 사고로
부터의 해방을 가져오고, 또한 본각진심은 자유의지의 단초, 수양의 근
거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발생론과 구조론을 말하여 구조론적 사고도
개념적으로 能·所를 구분하지만 能生者와 所生者가 별개로 독립된 것
이 아니며 개별자를 떠난 보편자는 무의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다.
신규탁은 이 본각진심 사상의 한계를 지적하여 객관 세계에 대한 존재
론적 해명에 있어 경험적인 문제를 마음의 문제로 환원해서 해석하고 있
다고 하고, 이 본각진심이라고 하는 근원적 원리에 대한 상정은 초경험
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은 종밀 자신의 형이상학적 요청이거나
여러 경전의 聖言量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논증의 과정에서
보이는 성언량으로써 본각진심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성언량으로 진리
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것은 주술적 사고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
능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이상적 태도는 실증적 사고의
출현과 더불어 비판된다고 한다.
리기용은 唐代後期儒學과 宗密의 原人論 比較 (1996)에서 종밀의 儒·
道 비판을 크게 기론과 천명설로 구분하고, 原人論 의 내용에서 종밀은
氣論을 제한적이지만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객관 세계의 존재론적 증명
을 心에 귀속시키는 것에 대해 인식 대상이 인식의 주체와 독립되어 있
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 세계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정
주理學에 와서야 대상세계 ― 인식주체인 氣 ― 원리인 理 에 대한 지각
을 통해 본체론·심성론의 일관된 체계가 정립된다고 한다.
2. 연구의 목적과 방법
종밀은 배휴 등의 권력가들과 두터운 관계에 있었던 것에서도 그가 사
회 의식이 강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동봉, 나룻배와 행인(사미·사집과 강의) (서울 : 불광출판사, 1991), p. 272.
기존의 연구에서도 原人論 이 저
술되는 직접적 배경으로 한유의 論佛骨表 등의 유학자의 불교 비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비판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에는 미흡하
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논자는 동시대의 대표적 유학자인 한유와 이고의
불교 비판을 원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아울러 가장 불교가 치성
한 唐代의 역사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유학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불교 사상의 우위성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고 사상간의 영향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 송대 신
유학과 같은 철학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그 주장하는 바의 내용
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단원 Ⅱ에서는 韓愈의 불타의 뼈를
궁중에 들여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여 조정에 상표한 글 인 論佛骨表 와
참된 도의 근본을 궁구해 본다 는 의미의 原道 를 텍스트로 채택한다.
그리고 李 에게서는 불교의 49재를 제거하자 라는 去佛齋 와 본성을
회복하자 라는 글인 復性書 를 텍스트로 하여, 원문의 불교 비판 내용
을 분석하고 불교 사상과의 관계와 그 영향을 살펴 볼 것이다.
단원 Ⅲ에서는 原人論 이 저술된 당시 사회·사상적 배경을 고찰해
보고, 당시 관학으로서의 유학의 모습 그리고 原人論 에서 보이는 사상
등을 통해서 原人論 의 찬술 배경과 시기를 고찰하고자 한다.
단원 Ⅳ에서는 1장은 原人論 의 회통 사상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살피
는 장으로 원문에서의 전개 과정을 따라 비판의 내용을 분석하고, 종밀
의 핵심개념인 본각진심 사상은 어떤 것인가를 밝히며, 본각진심 사상을
통한 제 사상 회통의 내용을 기술해 나가려고 한다. 논자는 이 장의 논
리 전개에서 原人論 과 그 주석서인 송대 화엄학자인 淨源의 原人論發
微錄 에 입각해서 논술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종밀의 논리 전개 방식인
從淺到深과 全揀全收의 의미를 기술하고 도서 와의 관계성 속에서 그
사상적 내용을 같이 배대해 보고자 한다.
3장에서는 原人論 이 가지는 사상사적 의의를 다루는 장이다. 첫째,
교판의 확장 부분에서는 교판사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외교(外敎)의 수용
과 그 사상적 회통이라는 맥락에서 의미론적 해석을 수행하고, 현재의
종교 다원주의 현상에 대해 종밀이 가지는 외교에 대한 입장과 연계하여
종밀에 평화 사상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둘째, 原人論 이 宋·
明 道學에 미친 사상적 영향에 대해 학자들은 그 영향을 말하지만 어떠
한 사상의 연관성 혹은 영향인가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미
흡하다. 여기서 논자는 宋·明 道學에 미친 원인론 의 사상적 영향설의
전제 위에서 송대 신유학의 개조라 일컫는 주돈이의 태극도설 을 중심
으로 고찰하고, 양명학의 양지론 에 대한 사상적 연관성과 영향설에 대
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唐代 유학자의 불교 비판
1. 韓愈의 불교 비판
1) 論佛骨表 를 통한 불교 비판
韓愈 ) 韓愈는 자가 退之이며 과거출신의 신관료로 고문 운동을 이끌었으며, 유명한 문학가
이며 시인이다. 한유는 이고와 더불어 유학을 부흥시켜려는 노력을 시도한 사람이
다. 韓愈의 생졸연대는 768∼824 년으로 종밀(780∼841)과 동시대 인물임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原道」와 論佛骨表 라는 불교 비판의 글은 종밀이 原人論
을 저술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불교의 세력과
비할 때 유교의 세력은 견줄바가 되지 않으며, 韓愈는 論佛骨表 라는 글의 상표로
귀양을 가는 결과를 맞을 정도였다.
의 論佛骨表 는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불교를 비판한다. 첫째는
불교는 오랑캐의 법문일 뿐이라고 하며 중국인 고유의 자대(自大)사상으
로, 온 세상에서 오로지 중국만이 예의가 있는 국가이고 그 밖의 나라들
은 모두 야만적인 오랑캐라는 발상이다.
佛이란 것은 오량캐의 一法일 뿐이다. 후한 때에 중국에 유입된 것으로 상고
시대에는 없었다. ) 欽定四庫全書 韓昌黎集 권 39, 佛者, 夷狄之一法耳. 自後漢時流入中國, 上古未
嘗有也.
두번째는 임금의 수명의 길고 짧음을 예로 들어 불교의 죄상을 폭로했
다. 皇帝의 수명에서 시작하여 양무제까지 모든 임금의 수명을 헤아려,
불교를 믿었던 제왕은 복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반대로 화를 입었다
고 주장한다. 韓愈는 이 말로해서 憲宗의 노여움을 사서 생명을 잃을 뻔
한다.
옛날에 황제는 100년 동안 在位했었고 나이는 110세였다. 소호는 80년을 在
位하였고 나이는 100세였다. 전욱은 在位 79년 이고 나이는 98세, 제곡은 在
位 70년 나이 105세, 제효는 재위 98년 나이 118세, 순과 우 황제는 모두
100세 였다. 이때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고 오래 살았다. 그러나 중
국에는 佛이 있지 않았다. 그후 은·탕 또한 나이가 100세 이고, 湯孫 태무
는 在位 75년, 무정은 在位 59년 이다. 書史에는 그 年數(수명)를 極한 바를
말하지 않는데, 그 년수를 추극하면 대개 모두 백년 보다 적지 않다. 주 文
王의 나이는 97세 였고, 武王은 93세 였다. 穆王은 100년을 在位하였고, 이때
에 佛法은 또한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佛을 섬기는 것에 因하여 그러함을
이룬 것이 아니다. 한 명제 때 비로서 불법이 있었다. 명 황제는 겨우 18년
을 在位하였을 뿐이다. 그후 어지럽고 亡함이 서로 이어져 운조(運祚 : 하늘
로부터 받은 복조)가 길지 않았다. 宋, 齊, 梁, 陳, 元魏 이하는 佛을 점차로
삼가며 섬겼고, 年代는 더욱 짧았다. 오직 梁武帝가 48년을 在位하였을 뿐이
다. ) 上同, 昔者, 皇帝在位百年, 年百一十歲. 少昊在位八十年, 年百歲. 頊在位七十九年,
年九十八歲. 帝 在位七十年, 年百五歲. 帝曉在位九十八年, 年百一十八歲. 帝舜及禹
年皆百歲. 此時, 天下太平百姓安樂壽考. 然而中國未有佛也. 其後殷湯亦年百歲. 湯孫
太戊在位七十五年. 武丁在位五十九年. 書史不言其年壽所極推其年數. 蓋亦俱不減百
歲. 周文王年九十七歲, 武王年九十三歲. 穆王在位百年, 此時, 佛法亦未入中國. 非因
事佛而致然也. 漢明帝時始有佛法. 明帝在位 十八年耳. 其後, 亂亡相繼運祚不長. 宋,
齊, 梁, 陳, 元魏已下事佛漸謹, 年代尤促. 惟梁武帝在位四十八年.
세번째는 임금은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교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현혹되기 쉽기 때문에 황제께서 불교를 믿으시면, 장차 백
성들도 모두 진심으로 불교를 믿고 임금을 대성(大聖)이라고 부르면서 신앙
에만 정진할 것입니다. 백성중 어느 누가 생명을 아끼겠읍니가? 이마를 지지
고 손가락을 태우며 수백명씩 무리를 지어 옷을 풀어 헤치고, 돈을 흩뿌리
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앞날만을 두려워 하여 때마다 老少가 앞을 다투며,
그 다음에는 業을 버리니, 만약 곧바로 금지하지 않는다면 다시 모든 절(寺)
이 어지러워지고 반드시 팔뚝을 자르고 몸을 장조림함을 供養하는 것으로
여기고, 풍속을 헤치고 사방에 웃음거리를 전하니 잡다한 일이 아니겠는가
? ) 上同, 然百姓愚冥, 易惑難曉, 見陛下如此, 將謂眞心事佛, 皆云天子大聖, 猶一心敬
信. 百姓何人, 豈合更惜身命! 焚頂燒指, 百十爲群解衣散錢, 自朝至暮, 轉相倣效, 惟恐
後, 時老少奔波, 棄其業次. 若不卽加禁 , 更歷諸寺. 必有斷臂 身以爲供養者, 傷風
取俗, 傳笑四方, 非細事也?
네 번째로는 君臣의 義와 父子의 情을 모른다고 하여 불교가 탈세간적
이며 윤리, 도덕을 폐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형식적인 禮만을 갖추기를
권하고 있다.
대저 佛은 오랑캐로서 그 말은 중국의 말과 통하지 않고, 의복은 그 법제가
달라, 입으로는 先王이 남긴 올바른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몸으로는 선왕이
남긴 올바른 의복을 입지 않으며, 君臣의 義(올바른 법도)와 父子의 情을 알
지 못합니다. 만일 그 몸이 지금 살아있어서 그 나라의 국명을 받들어 장안
에 와서 조회한다면, 폐하께서 그를 받아들여 만나보시는데, 다만 선정전(宣
政殿)에서 한 번 만나보시고, 손님을 맞는 상이나 한번 차려주며, 옷이나 한
벌 주어서, 보호하여 국경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그가 대중을 현혹하지 못하
게 할 뿐입니다. ) 上同, 夫佛本夷狄之人, 與中國言語不通, 衣服殊製, 口不言先生之法言, 身不服先王之
法服, 不知君臣之義, 父子之情. 假如其身至今尙在, 奉其國命, 來朝京師, 陛下容而接
之, 不過宣定一見, 禮賓一設, 賜衣一襲, 衛而出之於境, 不令惑衆也.
위와같이 말하고 韓愈는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말로 불교를 비방한다.
하물며 그 몸이 죽은지 오래고 말라썩은 해골과 흉악하고 더러운 찌꺼기를
어찌 의당 宮禁(대궐)에 들어가게 하겠는가? 공자께서 귀신을 공경하나 멀
리하라 하셨으니 엣날에는 제후가 그 나라에 조문하러 가서 오히려 무당과
박수로 하여금 먼저 桃 (복숭아나무와 갈대의 이삭. 부정풀이 하는데 쓰임)
하여 不祥을 없앤( 除 : 재액을 떨어뜨림) 연후에야 조문하러 갔다. 지금은
없어져 마르고 더러운 물건을 취한다. 친히 나아가 보건대 무측이 먼저 도열
하지 않고 그 그릇됨을 말하지 않고, 어사는 그 잘못을 들어 말하지 않으니
신은 참으로 부끄러워 바라건대 이 뼈를 건넨 벼슬아치(有司)들을 모두 물과
불에 던져버려 근본을 절단하고, 천하의 의혹을 단절시키고, 후대의 미혹됨
을 절단하여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大聖의 小作을 알게하여 尋常(항상됨을
찾아) 萬萬히 나가게 해야 한다. ) 上同, 況其身死已久, 枯朽之骨, 凶穢之餘, 豈宜令入宮禁? 孔子曰, 敬鬼神而遠之, 古
之諸侯行弔於其國尙令巫祝先以桃 除不祥, 然後進弔. 今無故取朽穢之物, 親臨觀
之, 巫祝不先桃 , 不用 臣, 不言其非御史, 不擧其失臣, 實恥之, 乞以此骨, 付之有司,
投諸水火, 永絶根本, 斷天下之疑, 絶後代之惑, 使天下之人, 知大聖人之所作, 爲出於
尋常萬萬也.
이상과 같이 韓愈는 네 가지 관점에서 곧 불교는 오랑캐의 법으로 야만
적인 것이며, 임금의 수명과 비교해 볼때 불교를 믿은 황제는 運祚(하늘
로부터 받는 복조)가 길지 않았다고 하며 또한 임금은 백성에게 영향을
끼치므로 이 해괴한 것을 믿음은 풍속을 헤치고 사방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며, 또한 그것은 선왕이 말한 뜻(법도)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형식적인 禮만을 갖춰 대하기를 권하고 있다.
2) 原道 에서의 유학 사상과 불교 비판
原道 ) 장윤수, 정주철학 원론 (서울 : 이론과 실천, 1992), pp. 45∼46.
여기서 原 이란 本 의 뜻이다. 즉 사물의 근본에 대해 논하는 문장이란 뜻으로 原
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글은 韓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韓愈의
글 중에 原 類의 것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原道」·「原性」·「原毁」·「原人
」·「原鬼」 편이 바로 그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原 이라고 하는 특별한 논문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추상적인 것의 근원을 추론,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하여 쓰여진 글을 原 이라고 이름한 것 같다. 原 類 5편 중에서도 특히「原道」
는 인간의 도로서 유가의 도덕을 추론하여 도가, 불가가 흥성했던 당시의 사상적
경향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原道」의 글 중에는 仁義의 본질, 정치의 의
의를 설명하며, 또한 대학 논어 맹자 등 유가의 말을 많이 인용하여 유가의 전통을
밝혀내고 있는 부분이 많으니, 唐代에 유가 사상에 기여한 韓愈 사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하겠다.
는 불교에 대한 비판과 유가 사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글이
다. 먼저 그의 경제적인 면에서 불교 비판을 보면
옛날에는 백성되는 자가 넷(士·農·工·商)이더니, 지금은 백성되는 자가
여섯(士·農·工·商·佛·老)이다. 옛날에는 가르치는 자가 그 중 하나(士)
에 처하였으나, 지금은 가르치는 자가 세 군데(士·佛·老)에 처한다. 농사짓
는 집은 하나(農)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士·農·工·商·佛·老)이다.
工匠의 집은 하나(工)인데, 器物을 쓰는 집은 여섯이다. 장사하는 집은 하나
인데, (이것으로부터) 도움받는 집은 여섯이다. 이를 어찌하랴. (이에)백성들
이 곤궁해져 도둑질하지 않겠는가? ) 上同, 권 11, 「原道」, 古之爲民者四, 今之爲民者六. 古之敎子處其一, 今之敎者處
其三. 農之家一, 而食栗之家六, 工之家一, 而用器之家六. 買之家一, 而資焉之家六. 奈
之何民不窮且盜也?
라고 하여 사회 계층 가운데 農·工·商 은 생산자고, 나머지 士·佛·
老 는 소비계층이다. 그렇지만 儒家의 식견으로는 士는 비록 생산자는
아니지만 백성을 교육하고, 국가를 이치로 다스리는 계층이므로 인정이
되고, 여기서 僧侶·道士의 집단은 오로지, 農·工·商인이 생산한 것을
소비하고, 종교적인 광기로 사람들을 驚訝(놀래키고 의심이 생기게)하는
낭비적인 계층이라고 비난한다.
다음으로 정치, 윤리적인 면에서 고찰해보면
「大學」에 가로되, 옛날의 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
라를 다스렸다.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정제하였다.
그 집을 정제코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수양하였다. 그 몸을 수양코자 하
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고 한다. 그러므로 옛날의 이른바 마
음을 바르게 하여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有爲를 내세운 것이다.
이제 그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지만 천하국가를 도외시하는 것은 그 天常(하
늘이 준 질서, 즉 五常)을 없애는 것이다. 아들이면서도 자기 아버지를 아버
지라 여기지 않고, 신하면서도 자기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고, 백성이면
서도 자기 일을 일로 삼지 않는다. … 시경에서 … 서쪽의 오랑캐와 북쪽의
오랑캐는 정벌하고 남장오랑캐는 무력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오
랑캐의 법을 들어서 선왕의 가르침 위에 덧붙이니 어찌 차례대로 오랑캐가
되지 않겠는가? ) 上同,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信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其意
者, 將以有爲也. 今也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 滅其天常. 子焉而不父其父, 臣焉而不君
其君, 民焉而事其事, … 詩曰 … 戎狄是膺, 荊舒是懲. 今也擧夷狄之法而加之先王之
敎之上, 幾何其不胥而爲夷也?
라고 하여 천하국가를 도외시하여 세상을 등지고, 天常을 없애며 君臣
·父子 관계를 끊고 자기 본분을 행치 않는다고 하여 불교를 夷狄의 法,
오랑캐의 法으로 단정하여 윤리, 도덕을 폐기하는 것이므로 불합리하다
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韓愈가 내세우는 참된 사상이란 어떤 것인가? 韓
愈는 역대 祖師들로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선종의 道統說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도교의 체계에 대항하기 위해 儒家야말로 도통이 있음을 역
설하고, 仁義를 先王의 가르침으로 논설한다.
가로되, 이 도는 무슨 도인가? 가로되 내가 도라고 일컫는 것은 도가, 불가
에서 이제까지 말하던 도가 아니다. 堯는 이것을 순에게, 순은 우에게 우는
탕에게 탕은 문왕, 무왕, 주공에게, 문, 무, 주공은 공자에게, 공자는 맹자에
게 전하였다. 그러나 맹자가 세상을 떠난 후 도는 전하여지지 못하였으며,
순자와 양웅이 그 일부만 선택하였고 도의 정수는 전해지지 못하였으며, 도
를 말하기는 하였으나 상세하지 못하다. 주공으로부터 위는 임금(천자의 지
위를 가진 성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일(정치)을 행하였다. 주공으로부터
아래(천자의 직위를 갖지 못한 성인, 즉 공자를 말함)는 신하가 되었다. 그러
므로 (후세에 전해주는)그 언설이 아주 오래도다. ) 上同, 曰, 斯道也何道也? 曰斯吾所謂道也,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 堯以是傳之舜, 舜
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 武, 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孟軻,
軻之死不得其傳焉, 筍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 由周公而上, 上而爲君. 故其
事行. 由周公而下, 下而爲臣. 故其說長.
이른바 선왕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仁이라 한다. 행
하여 마땅한 것을 義라 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을 도라 한다. 자
기에게 충족해 있어서 밖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을 덕이라 한다. 그 글은
「詩」·「書」·「易」·「春秋」 이다. 그 법은 禮樂· 刑政이다. 그 백성
은 士·農·工·買(商)이다. 그 位는 君臣· 父子· 師友· 賓主· 昆弟·
夫婦이다. 그 의복은 삼베이다. 그 주거는 가옥이다. 그 먹는 것은 곡식, 채
소, 과일과 어육이다. 그 도란 밝히기 쉽고, 그 가르침이란 행하기 쉽다. ) 上同, 夫所謂先王之敎者何也. 博愛之爲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
己無待於外之謂德. 其文詩·書·易·春秋. 其法禮樂·刑政. 其民士·農·工·買. 其
位君臣·父子·師友·賓主·昆弟·夫婦. 其服麻 . 其居宮室. 其食栗米蔬果魚肉. 其
爲道易明, 其爲敎易行也.
「原道」의 마지막에는 佛·道를 막고, 선왕의 도를 밝혀야 한다는 주
장으로 글을 마친다.
그러면 이를 어찌해야 옳은가? 가로되(老·佛의 도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흐르지 않고, (老·佛의 도가)멈추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행해지지 않
는다. (老·佛의 도를 믿는)사람을 (올바른)사람되게 하고, (노·불의)서책을
불지르고, 그 주거(사원)를 초막(民家)으로 만들고, 선왕의 도를 밝게 함으로
써 이를 인도하고, 홀아비·과부·고아·외로운 사람·병자를 양육함이 있으
면, 그 또한 그로써 옳음에 나아가리라. ) 上同, 然則如之何而可也? 曰不塞不流, 不止不行. 人其人, 火其書, 盧其居, 明先王之
道, 以道之, 鰥·寡·孤·獨·廢疾者有養也, 其亦庶乎其可也.
이상과 같이 韓愈는 原道 에서 대학 의 首章을 인용하여 유가의 도를
설명하고자 하고, 선종의 도통설의 영향에서 유가의 도통설을 주장하며,
仁義를 실현하는 것이 도에 이르는 방도이며, 마음속에 仁과 義의 본성
을 구비한 것이 덕이라 하는 그의 사상을 전개한다.
불교 비판의 측면에서는 주로 경제적인 측면과 정치, 윤리적인 측면에
서 사상적인 깊이 없이 정치적인, 유가 세력의 확대를 꾀하는 글로 판단
된다. 이후의 유학사에 있어서 韓愈에 대한 평가는 이고와 더불어 宋代
신유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지만 그의 학문적 이론 건립의 미약함과 경
적의 훈고에서도 치밀하지 못한 점 등으로 체계적 이론가로서는 인정되
고 있지 않다. ) 조민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 (서울 : 예문서원, 1996), pp. 206∼207.
노사광은 한유가 유학 혹은 선왕의 도를 부흥한 것이 그 당시 특수한 정신의 방향
을 대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는 한편으로 한유는 이론적으로 깊은 통
찰이 부족하고 맹자를 추존하였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낱 문장가로서 철학
의 발전에 실제로 공헌한 바는 없다고 혹평한다.(노사광, 中國哲學史 三·上, 1982,
p. 22). 馮友蘭도 그를 걸출한 문인이기는 하지만 철학적 흥취는 가지고 있지 않았
다고 한다.(馮友蘭, 중국철학사 下, p. 820.) 주희는 한유의 학설이 비록 천박하나,
그가 말한 요지는 옳다고 평가한다.( 朱子語類 권93, 竇問韓公一家如何? 韓公天資
高, 但學識淺. 故做得到那田地. 然其大綱皆正. )
2. 李 ) 勞思光 著, 鄭仁在 譯, 中國哲學史 , 宋明篇, (서울 : 探求堂, 1987) pp. 32∼33.
李 의 자는 習之이며 신당서 , 권 177에 열전이 있으나 그 생졸연대가 기록되지
않아 대략 韓愈와 동등한 상대로 사귀었지 제자가 아니었다.(한유와 이고를 사제
관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고의 이론 능력은 상당히 높아 韓愈보다 뛰어난 점이
매우 많다. 李文公集 중에는 가장 유명한 復性書 를 제외하고도 從道論 , 命
解 및 학문을 논한 편지 글이 실려 있는데, 모두 유학문제에 대한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고가 제일 처음으로 中庸 을 근
거로 하여 유학이론을 제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개 중용 은 禮記 의 한편이
었으며, 비록 남조 때에 중용 을 풀이한 자가 있었지만, 사실 이전에는 유학자들
에게 중시되지 못하였다. 이고는 홀로 중용 에 근거하여 이론을 세웠는데, 이것은
송나라 유학이 중용 을 존경하고 믿는 기풍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韓愈
가 大學 을 인용하였으나 그 글에 의거하여 어떠한 이론을 제출할 수 없었던 것
에 반해서 李 는 참으로 중용 에 의거해서 그 이론을 발휘할수 있었다.
의 불교 비판
1) 去佛齋 에서의 불교 비판
去佛齋 는 불교의 齋를 제거하자 는 것으로 불교를 반대한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윤회의 관념이 없는 유학의 입장에서 불교의 49재를
道에 어긋나는 행위로 규정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溫縣令 楊垂가 京兆府參軍이 되었을 때 숙부사도의 명을 받들어
喪儀를 찬집하는데 그 일편에서 49齋를 말하기를, 그것은 죽은 자를 보내는
데 불교의 절에서 옷을 입혀 복을 거듭 추구하는 것이다. 李 는 양씨의 喪
儀는 다른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바가 있는데, 가히 행하는 자가 많다. 이
하나의 일은 禮를 해치는 것이므로 논하여 제하하고, 그 나머지를 존속케 하
고자 한다. ) 欽定四庫全書 李文公集 , 卷4, 故溫縣令楊垂爲京兆府參軍時, 奉叔父司徒令撰集
喪儀, 其一篇云七七齋以其曰送卒者衣服於佛寺以申追福. 以楊氏喪儀其他皆有所出,
多可行者. 惟此一事傷禮故論而去之, 將存其餘云
다음으로 李 는 불교의 사상이 이미 열자와 장자의 사상에 이미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며, 오랑캐의 道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유학에서의 仁義
를 그 변치 않는 道라고 주장한다.
불법이 말하는 것은 열어구와 장주가 소상하게 말하였다. 그 나머지는 모두
오랑캐의 道이다. 가령 佛이 중국에서 태어나더라도 그 짓게 되는 것은 또한
여기서와는 다를 것인데, 하물며 나라 사람들을 몰아 그 術을 행한단 말인
가! 君臣·父子·夫婦·兄弟·朋友는 삶에 養이 있고, 죽어서는 돌아갈 바가
있으며, 생물에는 道가 있고, 사용함에는 節度가 있는 것이다. 복희에서 중니
에 이르기까지 비록 백대의 성인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
므로 가령 천하(人)이 모두 행하더라도 弊할 수 없는 것은 이 聖人의 道로
이른바 君臣·父子·夫婦·兄弟·朋友가 기르는 것으로서의 道德仁義임을
말하는 것이다. ) 上同, 佛法之所言者, 列御寇莊周言所詳矣. 其餘則皆戎狄之道也. 使佛生於中國則其
爲作也必異於是, 況驅中國之人奉行其術也. 君臣·父子·夫婦·兄弟·朋友存有所養,
死有所歸, 生物有道, 費之有節. 自伏羲至於中尼雖百代聖人不能革也. 故可使天下奉而
行之無弊者, 此成人之道, 所謂君臣·父子·夫婦·兄弟·朋友而養之以道德仁義之謂
也.
다음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교도들이 생산을 일삼지 않으므로 천하인
들로 하여금 모두다 그것을 행하게 할 수 없다 고 하였으며 만일 사람마
다 불교도가 된다면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고 한다.
무릇 천하인으로 하여금 모두 다 그것을 행하게 할 수 없으면 성인의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무리는 누에를 치지 않지만 의복이 갖추어지고 밭에 김
을 매지 않지만 음식이 충분하고, 일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히 살며, 다른 사
람을 부림으로써 자기를 기르는 자가 몇 천만 명에 이른다. 이것을 추측해
보면 얼어 굶주리는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 上同, 夫不可使天下奉而行之, 則非聖人之道也. 故其徒也不蠶而衣裳具, 弗 而飮食
充, 安居不作, 役物以養己者至於其千百萬人. 推是而凍 者幾何人可知矣.
이상과 같이 李 의 불교 비판도 경제적인 면과 문화적인 면에서의 피
상적인 비판에 그치고 宗密 原人論 에 있어서와 같이 본질적인 사상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의 사상의 핵심이 담긴 글인 復性書 에
는 오히려 참다운 사상으로서의 유학을 부르짖는 가운데에서 불교의 영
향을 보게된다.
2) 李 사상에 있어서의 불교의 영향( 復性書 ) 장윤수, 정주철학 원론 (서울 : 이론과 실천, 1992년), p. 75.
복성서 는 상·중·하 3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고의 핵심사상을 수록하고 있
다. 그는 여기에서 공자와 맹자로 이어지는 참다운 학문을 배워서 본연의 性을 회
복할 것을 주장한다. 이고가 중용 을 인용한 학문적 경향은 자연 후대 정주학자들
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복성서 또한 중요한 저술로 평가받게 되었다.
를 중심으로)
李 復性書 의 내용에서는 자못 불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는 소
년시절에 梁肅에게서 지식을 받았다. 즉 李 는 感知己賦 라는 서문 중
에서 안정양군이라고 일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 上同, 卷1, 感知己賦 , 勞思光 著, 鄭仁在 譯, 中國哲學史 , 宋明篇, (서울 : 探求
堂, 1987), p. 43.
梁肅(751∼793)은 중국 안정 사람이다.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고, 일찌기 佛門에 귀
의하여 荊溪에게 천태학을 닦고, 천태의 止觀을 다시 편찬하여 6권으로 만들었다.
(홍법원, 불교학대사전, 1988, p. 1040).
라는 글에서 李 의
불교와의 직접적인 영향을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사상사적으로 후한 이
래 들어온 불교가 역사 속에서 중국의 제 사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그 누적된 사상적 압력과 극복에의 모색이 唐末의 李 라는 유학자에게
주어진 과제였을 것이다. 漢代 유학사상의 특색은 우주론 중심의 철학
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체를 하나의 天 으로 돌아가게 하
여 이것으로 일체의 존재 및 관계를 설명하고 역시 이것에 근거하여 가
치표준을 세워 놓았다. 이것과 선진 공자·맹자의 심성론 중심의 철학과
는 차이가 너무 심하게 드러난다. 한대 이후의 유학자는 비록 孔孟을 宗
主로 삼는다는 이름을 내걸면서도 사실은 음양오행 등 원시관념을 잡다
하게 취한 한대유학의 이론을 역시 언제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방향이 공맹의 본래 의미를 크게 어그러뜨리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러나 한대 유학의 우주론 중심의 철학 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공맹과 분
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역시 퇴화되어 타락하
였다. 대개 이른바 덕성 및 가치의 문제는 결코 존재의 영역에다 호소할
수는 없다. 우주론 관념을 기초로 삼아 건립된 어떠한 가치론도 그 자체
는 모두 엉성하고 빈약하다. 이 이론문제는 그 객관적인 확정성을 가지
고 있으므로 반드시 역사적인 계기 하에서 곧바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드러났을 때, 우리가 비록 한대 유학의 우주론 사상과 선
진 유학의 역사성의 차이를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한대
유학의 이러한 사상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여 개조하려는 요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당대 말기의 학자들이 이
미 표현하여 宋明 儒學 운동의 序曲으로 이룩되었다. 이러한 조류를 일
으킨 역사적 계기는 불교의 압력이었다. … 불교 철학은 일단 선진유학
과 다른 심성론 철학이다. 그 알맹이가 있는 곳은 모두 가치문제에 내려
와 있었다. 중국학자는 불교의 압력에 대면하였을 때 그 가르침 중의 강
점으로 말미암아, 즉각 한대유학의 전통하에서 우주론 중심 철학의 근본
적 약점을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당대 말기의 학자인 韓愈, 李 등이 모
두 불교를 거부하는 입장으로 처음에는 한대유학의 사상을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대개 불교의 가치론과 장단점을 논하려면, 우주론 중심의 철
학을 포기하고 심성론 중심의 철학으로 되돌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론적인 측면으로 말하면 우주론 중심의 철학은 본래 유치한 사상에 속하
므로 불교의 심성론과 맞설 수가 없었다. 이것은 객관적인 한계인 것이
다. 이 한계가 일단 자각단계로 들어가면 우주론을 버리고 다시 가치문
제를 돌아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勞思光 著, 鄭仁在 譯, 中國哲學史 , 宋明篇, (서울 : 探求堂, 1987), pp. 3∼4.
라고 하는 것 처럼 그 누적
된 역사 속에서 불교의 영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의 사상에서 불교에의 영향을 살펴보면 먼저 여래장사상의 영향
을 들 수 있다. 不一不異인 眞如와 生滅을 동시에 지니는 여래장사상 ) 金東華, 佛敎學 槪論 (서울 : 寶蓮閣, 1954), pp. 201∼202.
一見相異한 것 같은 이 眞如 生滅의 二義는 이것이 곧 一心의 兩義이므로 마치 實
體를 여의고서 現象이 없고 또 現象을 여의고서 實體가 없는 것과 같이 眞如를 떠
나서 따로 生滅이 없으며 또 生滅을 떠나서 따로 眞如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
로 眞 生 二義의 關係는 不一不異한 것이다. 卽 眞如는 一心의 絶對 平等한 本體
不生不滅하는 實體요, 生滅은 相對差別의 諸法生滅變化의 現象이니 이 二者는 이와
같이 劃然한 區別이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不一이라 한다. 그러나 眞如의 本體를
여의고서 生滅變化의 現象이 있는 것이 아니라 眞如 즉 生滅, 生滅 즉 眞如로서 二
者는 別異한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不二라 한다.
의 영향을 다음의 글에서 볼 수 있다.
情의 움직임이 쉬지 않으면 회복하여 천지에 닿아 다함없는 밝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사람들 중에서 먼저 깨달은 자(先覺者)이다. 깨달으
면 밝고, 그렇지 않으면 미혹되며, 미혹되면 어둡다. 밝음과 어두움은 같지
않다고 말한다. 밝음과 어두움은 性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
다면 같음과 같지 않음의 둘을 떠나 있는 것이다. 무릇 밝음이란 어두움에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두움이 없어지면 밝음 역시 세워지지 않는다. ) 上同, 復性書 , 卷2, "情之動非息, 則不能復其性而觸天地爲不極之明. 故聖人者, 人
之先覺者也. 覺則明, 否則惑, 惑則昏. 明與昏謂之不同. 明與昏, 性本無有. 則同與不同
二者離矣. 夫明者所以對昏, 昏旣滅, 則明亦不立矣."
여기서는 覺과 惑이라는 불교의 용어 사용을 볼 수 있고, 明과 昏을 昏
이 있음으로 해서 明할수 있다는 여래장 사상의 不一不異의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의 復其性(자기 본성을 회복한다) 이라는 말은 李
사상의 전체 핵심의 요지 이기도 하다. 수행 면에서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 사람이 어두워진지는 오래되었다. 장차
그 性을 회복함에는 반드시 점차적인 것(수행방법)이 있다. 감히 그 방법을
묻겠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 걱정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은 생기지
않는다. 정이 이미 생기지 않으니 올바른 생각(正思)이 된다. 올바른 생각이
란 것은 걱정이 없고 생각이 없는 것이다. … 「주역」에서 말했다 …길흉과
뉘우치고 한탄함은 움직임에서 생겨난 것이다. 어찌 그 성을 회복할 수 있
을까?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바야흐로 고요하였을 때 마음에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재계(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심신을 깨끗이
하는 일)하는 것이다. 본래 아무 생각이 없으면 고요함과 움직임이 모두 떠
남을 알아 고요하여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지극한 誠이다. ) 上同, 復性書 中, 或問曰, … 人之昏也久矣. 將復其性者必有漸也. 敢問其方. 曰,
… 非慮非思, 情則不生, 情旣不生, 乃爲正思. 正思者, 無慮無思也. … 易曰 … 吉凶
悔吝, 生乎動者也. 焉能復其性? 曰 … 如之何?曰 … 方靜之時, 知心無思者. 是齊戒
也. 知本無有思, 動情皆離, 寂然不動者, 是至誠也.
라고 하여 수행 방법으로 非慮非思를 말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의 止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情의 방해를 받지 않고서 復性하는 방
법은 어떠냐 하면, 그는 非慮非思 라고 답한다. 요컨대 그 마음을 수련하
여 활동을 그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은 主情(止)에 귀착된
다. ) 狩野直禎 著, 오인환 譯, 中國哲學史 (서울 : 을유문화사, 1986), p. 346.
그래서 李 는 非慮非思를 통해 寂然不動하여 지는 것을 최고의
경계로 보는 것이다. 이 성인의 경지 ) 上同, 復性書 上, 성인이라고 어찌 情이 없겠는가? 성인은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다. 가지 않지만 도달하고, 말하지 않으나 신령스럽고 빛이 나며 천지의 변화에
참여하여 제작하고 음양에 합치하니 비록 情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일찍이 情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聖人者, 豈其無情邪? 聖人者, 寂然不動. 不往而到, 不言而
神, 不耀而光, 制作參乎天地變化, 合乎陰陽, 雖有情也, 未嘗有情也.)
에 대해 寂然不動이라는 해석을
취하는 것에서 또한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非慮非思를 통
해서 寂然不動의 경지에 들어가는 점차적인 것 은 수행에서의 점수적 성
격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를 예로 들어 말하여,
선생의 말 대로라면 그것을 하루 닦으면, 성인에 이를 수 있습니까? 10년 그
것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하루에 그것을 멈추는 경지에 도달함을 추구하
니, 이것은 맹자의 이른바 물 한 잔으로 한 수레의 장작불을 끄고자 하는 것
이다. 너무 심하다. (지극한 선에)멈추는 공부를 쉬지 않으니 반드시 정성스
럽게 되고, 정성을 다하고 쉬지 않으니 반드시 밝아지고, 밝음과 정성스러움
을 끝내 거역하지 않으면 몸을 마칠 수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반드시 여기에
서 행해야 하며, 엎드러져 넘어졌어도 반드시 여기에서 행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이르름을 바랄 수 있다. ) 上同, 復性書 中, 曰 如生之言, 修之一日, 則可以至於聖人乎? 曰 十年擾之, 一日
止之, 而求至焉, 是孟子所謂以杯水而救一車薪之火也. 甚哉. 止而不息必誠, 誠而不息
必明, 明與誠終歲不違, 則能終身矣.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則可次希於至矣
라고 하는 것처럼 그는 수행 방법에서 漸修적인 입장을 취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李 는 情을 불교의 無明, 煩惱로 간주
하고, 性을 本覺眞心으로 파악하며, 寂然不動을 聖人의 경지로 보며, 수
행에 있어서는 漸修的인 방식을 취함을 볼 수 있다. ) 鎌田茂雄,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75), pp. 124∼125
참조.
李 는 復性書 를 짓는 이유를 復性書 上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性과 命을 다룬 저서들은 남아 있지만 학자들은 그것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莊子, 列子, 老子, 釋迦 등에 탐닉하였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들은 성명의 도를 깊이 연구하여 낼 수 없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믿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性命의
道를 물어본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전하겠다. 드디어 책에
글로 써서 誠明의 근원과 오랫동안 빠지고 끊어지고 버려져 드러내지 못하
였던 도를 개진해 보이고자 한다. (도를)때에 알맞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책제목을)「復性書」로 명명하여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하고자 한다. 오호라!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
도 나의 말을 폐하지는 못하리로다. ) 上同, 復性書 上, 嗚呼! 性命之書雖存, 學者莫能明. 是故皆入於莊, 列, 老, 釋. 不
知者, 謂夫子之徒, 不足以窮性命之道, 信之者皆是也. 有問於我, 我以吾之所知而傳焉.
遂書于書, 以開誠明之源, 而缺絶廢棄不揚之道. 幾可以傳于時. 命曰, 復性書以理其心.
以傳乎其人. 烏 ! 夫子復生, 不廢吾言矣.
라고 하여 本性에로의 復歸를 주장한다. 유학에만 性命의 도가 있다는
것이 李 의 생각이다. 그러나 李 의 사상은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유학의 새로운 사상적 모색 속에서 불교의 심성론의
영향을 받아 중용 과 역경 을 통해 공·맹의 학문을 체계화하려한 것
이고, 이것이 韓愈와 함께 宋代 신유학의 단초를 제공하는 唐末의 유학
자로서 평가받는 것이다.
Ⅲ. 原人論 의 성립 배경과 조직
1. 原人論 의 성립
1) 사회·사상적 배경
唐朝는 수나라를 계승하면서 일찍이 없었던 대판도를 영유하였으니, 그
세력은 멀리 서역에까지 미쳤다. 정책은 세계통일주의로서 일체의 모든
문화를 포용하였다. 당 왕실이 도교를 특별히 대우하기는 하였으나 자유
로운 입장으로서 모든 종교를 거의 동등하게 다루는 종교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불교에 대해서도 도교와 마찬가지로 보호함과 동시에 경교(景敎)
를 비롯하여 새롭게 전래되어 온 현교( 敎), 마니교(摩尼敎), 회교까지
도 당 왕조 아래서 자유롭게 발전하였다. ) 미찌바다 료오슈 著, 계환 譯, 중국불교사 (서울 : 우리출판사, 1996), p. 181.
수의 공제 의녕 2년(618) 4월에 당의 고조가 중국을 통일한 뒤 경종 천
우 3년(906)에 이르기까지 290년 동안은 불교로서는 모든 방면에서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그 반면 도교는 노자가 당의 고조인 이연과 같은 성을
가졌다고 해서 당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역대의 황제로부터 계속 보호를
받았는데 특히 현종(712∼756)대에 거의 국교와 같은 예우를 받게 되면
서부터는 당대를 통해 불교와 논쟁이나 항쟁이 끊이지 않았다. ) 久保田量遠 著, 최준식 譯, 中國儒佛道 三敎의 만남 (서울 : 민족사, 1990), p. 149.
8세기까지는 불교는 중국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아 갔다. 불교의 계율은
숭상됐고 그 영적인 진리는 의심받지 않았다. 불교는 가난한 자, 부유한
자, 모두의 삶 속에 파고 들었고, 당제국의 모든 사회조직들에 영향을 주
었다. 755∼763년 당제국은 안록산의 난에 의해 약화됐는데, 이 반란으로
황실은 와해됐고 중앙 정부는 무력하게 쇠퇴해 갔으며, 간접적으로는 중
앙의 왕조를 약화시키는 지방세력의 성장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 반란으
로 말미암아 당제국의 자신감은 약화됐고, 왕조 전성기의 세계주의적 경
향이 약해졌으며, 외국문화에 대한 방어적 태도가 극단적인 국수주의로
발전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 아서라이트著, 양필승 譯, 중국사와 불교 (서울 : 신서원, 1994), pp. 106∼107.
중당 무렵부터는 천자의 탄생일을 맞아서 삼교의 담론이 행하여졌다.
儒·佛·道의 대표자들이 궁중에 불려가서 각자 담론하는 것으로서 대
종, 덕종, 경종, 문종, 무종, 선종, 의종, 소종과 역대에 걸쳐 행하여졌는
데 그야말로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삼교담론은 앞서 당
초기 고조 때부터 행하여져 온 것인데, 고조는 무덕 7년(624)에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 서광에게는 효경(孝經)을, 사문 혜승에게는 심경(心經)을,
도사 유진희에게는 노자를 강론하게 하였으며, 태종은 정관 13년(639)에
유교의 공영달, 사문 의정, 도사 채황으로 하여금 홍문전에서 담론을 시
키고 있다. 종밀 당시의 삼교 대론은 代宗 大曆 3년(768) 9월에는 章信
寺의 崇惠가 東明觀에서 도사 史華와 대론하여 그를 물리치고( 송고승
전 제17장 崇惠傳), 德宗 정원 12년(796) 4월에는 인덕전에서 승려 湛然
과 도사 葛參成이 대론하고, 敬宗 寶曆 2년(826)에는 大明宮에서 승려와
도사 4백여 명이 담론했으며, 태화 원년(827)에는 인덕전에서 승려인 義
林과 도사 楊弘元이 대론했다. ) 久保田量遠 著, 최준식 譯, 中國儒佛道 三敎의 만남 (서울 : 민족사, 1990), p. 159.
이상에서 보듯이 삼교의 논쟁은 중당 때까지 가장 심하게 일어났는데,
그 결과 한편으로는 서로 간에 교류와 융합이 이루어지기도 하여 절에
공자와 노자상이 모셔지고 유학자와 도사들은 불교를 연구하였으며 출가
하는 이들까지 생겨났으니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사상적으로도 당연히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이것은 다음의 송유(宋儒)와 불교와의
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 료오슈 著, 계환 譯, 중국불교사 (우리출판사, 1996), p 180.
또한 종밀이 열반했을 當時는 唐代에 들어와서 가장 규모가 컸던 불교
사태인 무종의 폐불단행의 원년이 된다. 뒤에 三武一宗의 법난이라고 부
르는 가운데 세번째에 해당하는 일로서 회창법난이라고도 부른다. 이
845년에 일어난 회창법난은 가장 광범위한 것이었다. 초기에 발생하였던
446년과 574년에서 577년 사이의 탄압은 북위와 북주가 지배하고 있던
북방에만 한정되어 남방의 승단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불교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무종에 의한 탄압이 있기 전에도
어떤 지방에서는 신앙심과 활력의 약화 속에 불교가 쇠락의 조짐을 보이
기도 하였지만, 845년의 탄압은 치명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845년은 불
교의 전성기에서 쇠퇴기로의 전환점이 된다. ) K·S 케네쓰 첸 著, 박해당 譯, 중국불교 上 (서울 : 민족사, 1991), p. 251.
이와같이 종밀은 불교의 황금기에서 서서히 쇠퇴기가 시작되는 기점의
인물이고, 삼교 담론의 필요성 속에 있었으며, 유학이 흥기하려는 꿈틀거
림이 있을 시기에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原人論 의 성립 과정
먼저 宗密 原人論 에 대한 撰述 시기에 대해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살
펴보고 앞서의 사회 사상적 배경과 당시 관학으로서의 유학의 모습 그리
고 종밀 原人論 에서 보이는 사상적 내용에 의해 찬술 시기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먼저 加地哲定은 원인론 의 찬술 시기 ) 加地哲定, 宗密の 原人論について ( 密敎文化 13號, 1950), pp. 23∼24.
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다. 종밀이 原人論 을 저술한 것에는 동기가 있다. 그는 본래 유자였으
며, 어릴 때부터 유서에 통하고 진사에도 급제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후
에 불교를 배웠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추측해 보건대, 그의 이력에서 봐
도 유교와 불교를 어떻게 관련짓는가? 그 해결이 그의 큰 과제 였을 것
이다. 불교의 이해에 있어서도 그는 먼저 선을 닦고 후에 화엄을 배웠던
인물이다. 그의 저술에 있어서 圓覺·華嚴·涅槃·金剛·起信·唯識·法
界觀·行願經等의 소초가 있는 것에 의해서도 얼마나 넓게 불교를 배웠
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러한 것 등의 우열도 문제였을 것이다. 우선 한 가
지는 그가 생존했던 환경이 그가 原人論 을 짓게 되었던 동기로도 되지
않았을까! 그가 原人論 을 지었던 것은 언제쯤인가 분명한 것은 아니지
만, 그의 논의 내용에서 본다면 그의 사상의 원숙한 경우로 만년에 지었
던 것이 아닐까? 그가 태어난 것은 당의 대종의 대력14년(779)이며, 입
적 시기는 무종의 회창원년(841)이다. 그의 당시는 불교도 성행했었지만,
유가 가운데에는 불교를 비난하는 자도 있고, 도교 가운데에도 불교를
비난하는 것도 있었다. 유가의 배불론자로서 유명한 자는 (사람들이) 아
는 한퇴지다. 憲宗 元和14년(819)에 佛骨表을 상표해서 불교를 매도했던
것은 종밀의 40세 되던 때이다. 문종이 궁중의 麟德殿에서 儒佛道의 대
표자를 초빙하여 삼교의 대론을 하게 한 것이 태화원년(827)이며, 종밀이
48세 였다. 당시는 이와같이 삼교가 소용돌이치듯 서로 얽히게 되어 상
호간에 비판을 시도하고 있었다. 종밀이 原人論 을 지었던 것도 이런
환경에 처해서 그 대결의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原人論 이
라고 이름했던 것도 한퇴지가 原人, 原道, 原毁, 原性, 原鬼 등의 五原을
지어 맹렬하게 유교정신을 고취했던 原人 이라고 말하는 이름을 따와서
오히려 유교의 原人(인간의 본성, 본원을 구명 탐구한 것)에 대항했던 것
이다
다음은 鎌田茂雄의 國譯一切經 「原人論의 解題」부분에서 보여지는
原人論 찬술 시기에 대한 評이다. 原人論 이 언제 씌여졌는가 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原人論 의 서문 가운데 수십 년 중 배
움에 항상하는 스승이 없어 … 라고 스스로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종밀이 만년에 지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일면도 있다. 그러나 (1)
原人論 가운데에는 선종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고 만년의
저작이라고 추정되는 선원제전집도서 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선의 3종에
관한 기술이 없는 것은 原人論 이 비교적 초기의 저술이라는 것을 증명
하고 있다. (2) 原人論 은 儒·道 二敎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지만, 종
밀은 청소년시대 유학을 공부하고, 유학을 버리고 불교에 전향해서, 곧
글을 쓴 것이 原人論 이 아닌가 추정되어진다. (3) 原人論 의 一乘顯
性敎는 華嚴宗의 교리를 설했던 것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선종의 하택종
과 홍주종에 관한 구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禪門師資承襲圖 와 비교
할 때 꽤 사상적으로 미숙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같이 생각해보
면, 原人論 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찬술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결정적
인 단언을 내릴 수는 없다 ) 鎌田茂雄, 國譯一切經, 諸宗部 4,「原人論의 解題」, pp. 259∼260.
라고 평하고 있다.
또한 찬술연대를 종밀의 만년이라고 가정한다면 ― (이것도) 한가지
배경으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 그보다 原人論 찬술의 이유로 보여
지는 것은 원화 14년 (819)에 행해졌던 韓愈의 論佛骨表 의 上表일 것
이다. 이 韓愈의 배불설에 자극받아 原人論 을 찬술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가능할 것이지만, 오히려 직접적인 반론이라고 말하기 보다도, 종
밀의 全揀全收의 방법론의 입장에서 보면 儒·道 二敎도 또한 불교 속에
서 그 위치를 부여받고 포섭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밀 철
학의 당연한 결과로서 原人論 의 성립을 고찰하는 방법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湛然의 제자 元浩 등도 儒·釋일치설을 주장하고 있었고, 「北
山錄」의 저자 神淸도 삼교일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던 것을 봐도 당시
三敎歸一의 정신 풍토가 양성되어 있었고, 그 정점에 위치한 것이 종밀
의 原人論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鎌田茂雄,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75), pp. 126∼127.
정순일은 原人論 저술 동기의 직접적 계기가 韓愈의 原道論 이나
論佛骨表 에 의한다고 하며 이러한 글의 상표가 朝野에 큰 영향을 미쳤
을 것이고, 호법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한다. 韓愈는 宗密과 동시
대 인물로서 유학을 대표했고, 둘 다 정치·사회적 관심이 컸다. 종밀은
관료인 배휴와 교류가 깊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儒·道에 대한 호법
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대내적으로는 불교의 諸 종파를 나름의 교판적
안목으로 정리하려고 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저술 연대를
40세 전후일 것이라고 하고, 그에 대한 논거로서 첫째 原人論 에 보여
지는 數十年中學無常師 란 말이 그가 유학을 공부한 것을 시작의 기점으
로 하면 수 십년이란 용어 사용이 가능하다. 둘째 원각경대소 의 설을
간추린 것이 원인론 이라 하였으나 반대로 原人論 의 것을 기초로 하
여 원각경대소 를 저술했을 가능성도 있다. 세째 도서 에서 선종에 관
한 글이 전연 없다는 것은 저술연대 추정에 중요한 점이다. 네째 論佛
骨表 에 대한 반박의 의도가 강한 것으로 출가 직후의 가능성은 거의 없
다. ) 정순일, 華嚴原人論 연구(韓國宗敎 8집, 圓光大學校, 1983), pp. 58∼64.
신규탁은 종밀이 54세 이후 도서 의 저술에 착수할 시기에 원인론 이
씌여 졌을 것이라는 설에 동조하며, 그 근거로서 中華禪門師資承襲圖
나 도서 등에서 자세하게 설명된 부분이, 原人論 에서 간략하게 요약
되는 경우가 있는 것 등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50대 후반의 종밀은 출
가 이전의 유학 연구, 그 후의 圓覺經 에 대한 연구, 유식사상의 연구,
반야사상의 연구, 淸凉澄觀의 회하에서의 화엄관계 문헌의 연구, 그리고
선종사에 대한 정리 등이 이미 끝난 상태이므로 原人論 은 이러한 시기
에 씌어진 것이라고 한다. ) 신규탁, 인간론에 대한 종밀의 이해 (동양고전 연구 제3집, 1994), p. 696.
上記의 原人論 저술에 대한 견해에서 일반적인 것을 요약하면, 첫째
는 개인의 사상적 편력으로 처음에는 유자였으며, 불교에 귀의하여 제반
불교 사상을 연구함. 둘째 타교(儒·道)와의 관계에서는 유교의 배불론
과 삼교 쟁론의 시기에 있었음. 세째 原人論 의 내용상에는 禪에 대한
언급이 없음. 네째 원인론 이 도서 에서의 선 사상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 교학에 대한 교판과 회통 사상의 근거가 동일하다는 것을 일
반적인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사상적 배경에서 고찰해보면 종밀의 생졸 연대는 780∼
841년 이고, 한유가 논불골표 를 쓴 것이 819년 이며, 대명궁에서의 승
려와 도사의 대론은 826년, 인덕궁에서의 삼교 대론은 827년 이다. 또한
여전히 관학으로서의 유학은 관직으로서의 비중이 있었고, 학적으로는
형식적, 문학적 재주를 뽐내는 것에 그쳤지만, 안록산의 난(755∼763) 후
에 새로운 사회적 대안의 모색으로 유교 사상에 대한 부흥과 재구성을
위한 지적 공감대가 지식인들 사이에 형성되고, 이러한 배경속에서 종밀
은 그가 신념하는 사상에 대한 변호 그리고 그 개인의 사상적 편력에서
제 사상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삼교회통을 시도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禪에 대한 사상은 담고 있지 않지만, 교학에 있어서 도서 의 내용
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볼때, 도서 이전의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논자는 최소한 40세 이후에서 도서 를 저술한 시기인 54세
이전이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글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2. 原人論 의 조직
原人論 의 조직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이 된다. 그러나 原人論 에
대한 大旨를 말하고 三敎統一의 목적과 필요성, 조직을 말하는 總序 부
분을 포함하면 총 다섯 단락으로 구분이 된다. 總序의 네 번째 부분에서
宗密은 다음과 같이 原人論 의 조직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돌아가 내외의 교리에 의하여 만법을 추궁하되 처음
에는 옅은데서 부터 시작하여 깊은 곳에 이르게 하며 권교를 배우는 사람이
막힌 것을 배척하고 통하게 하고, 나중에는 了敎에 의하여 전전하여 생기하
는 뜻을 현시하고 편벽된 것을 모아 圓滿케 하여 末에 이르게 할 것이다.(末
은 곧 천지와 인간과 사물이다) ) 原人論 , 大正藏 45권, 708 上, 余今還依內外敎理推窮萬法. 初從淺至深. 於習權敎
者, 斥滯令通而極其本. 後依了敎, 顯示展轉生起之義, 會偏令圓而至於末.(末卽天地人
物)
이후 原人論 원문 인용의 글에서 ( ) 안의 글은 종밀이 自註를 붙인 것을 말함.
라고 하여 原人論 은 序分을 제외하면 4편으로 구성되며, 從淺到深의
방법으로 儒·道 에서 人天敎, 小乘敎, 大乘法相敎, 大乘破相敎의 순서로
비판하고, 참된 가르침이라는 一乘顯性敎를 설명하고, 다시 諸敎를 會通
하는 순서로 論이 전개된다. 간략히 각 부분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
음과 같다.
1. 總序 : 모든 것은 근본이 있으며 그 근본을 천착함에 儒·道 와 佛敎
諸思想의 大旨를 말하고, 三敎統一의 목적과 필요성을 강조한 후 本書의
조직을 설명한다.
2. 斥迷執第一 : 儒·道의 요지와 비판을 내용으로 하며, 儒·道 의 중
심 사상으로서의 허무대도설, 원기론, 자연설, 천명설을 비판한다.
3. 斥偏淺第二 : 불교 내부의 諸宗을 人天敎, 小乘敎, 大乘法相敎, 大乘
破相敎의 四敎로 나누어 비판한다. 그는 자신의 교판에 따라 從淺到深의
순서로 전개해 나간다.
4. 直顯眞源第三 : 本性을 밝혀보면 一乘敎로서 宗密의 핵심 사상인 本
覺眞心을 드러낸다.
5. 會通本末第四 : 本覺眞心, 眞一靈心으로 儒·道 와 諸 佛敎를 會通
한다.
분과 ) 鄭舜日,「華嚴原人論」硏究(韓國宗敎 8輯, 圓光大學校, 1983), p. 66 과 鎌田茂雄,
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75), pp. 134∼135 참조.
를 통한 내용과 그 범위를 도식하면 다음과 같다.
┌───────┬───────┬───────┬───────────────┐
│ │ │ │ │
│ 目 次 │ 內 容 │ 範圍(大正45) │ 내 용 요 약 │
│ │ │ │ │
│ │ │ │ │
├───────┼───────┼───────┼───────────────┤
│ │ │ │ │
│ │總說 │-708上 2행 │모든 것은 근본이 있으며, 그 │
│ 總 序 │諸敎의 大旨 │-同 7행 │근본을 천착함에 儒·道와 佛敎 │
│ │三敎의 統一 │-同 15행 │의 諸思想의 大旨를 말하고, 三 │
│ │本書의 組織 │-同 20행 │敎통일의 목적과 필요성을 강조 │
│ │ │ │한 후 本書의 조직을 설명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儒·道의 요지와 비판을 내용으 │
│ 斥迷執 第一 │儒·道의要旨 │-同 20행 │로하며 儒·道의 중심사상으로 │
│ │儒·道의批判 │-708下10행 │서의 허무대도설, 자연설, 원기 │
│ │ │ │설, 천명설을 비판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불교諸宗의 │ │불교 내부의 諸宗을 從淺到深의 │
│ │분류 │-同 14행 │순으로 인천교, 소승교, 대승법 │
│ 斥偏淺 第二 │人天敎 │-709상10행 │상교, 대승파상교의 四敎로 나 │
│ │小乘敎 │-709中25행 │누어 비판한다. │
│ │大乘法相敎 │-709下 8행 │ │
│ │大乘破相敎 │-710上 9행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본성을 밝혀보면 一乘敎로서 종 │
│直顯眞源第三 │一乘顯性敎 │-710中 3행 │밀의 핵심사상인 本覺眞心을 드 │
│ │ │ │러낸다. │
│ │ │ │ │
│ │ │ │ │
│ │ │ │ │
├───────┼───────┼───────┼───────────────┤
│ │ │ │ │
│ │總說 │-同 7행 │ │
│ │一乘顯性敎의 │ │本覺眞心, 眞一靈心으로 儒·道 │
│會通本末第四 │本旨 │-同 10행 │와 諸 불교를 회통한다. │
│ │諸敎의 會通 │-710下 8행 │ │
│ │總括 │-同 13행 │ │
│ │ │ │ │
│ │ │ │ │
│ │ │ │ │
│ │ │ │ │
└───────┴───────┴───────┴───────────────┘
Ⅳ. 原人論 의 會通 사상과 의의
1. 會通의 근거
종밀은 原人論 을 무엇 때문에 쓴 것일까? 사회·사상적 배경이나 저
술 동기에 대한 분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原人論 본문에 의거하면 종
밀은 다음과 같이 그 집필 동기를 말한다.
모든 것에는 근본이 있고, … 하물며 三才(天地人)중 가장 신령한 인간이
근본이 없겠는가? … 그렇지만 지금 儒·道를 익히는 자들은 (그 근본이라
고 하는 것을) 가까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의하는 것이고, 멀리는 혼돈일
기에서 나누어진 것으로 모두 氣를 근본으로 한다고 알고 있다. 불법을 익히
는 자들은 가까이는 전생에 지은 조업의 과보를 받은 것이라 하고, 멀리는
업이 또한 번뇌에서 전전된 것이라 하고, 나아가 아뢰야식이 근본이라고 하
는데, 모두 이미 궁구함을 말하지만, 실로 미진하다. 孔·老·釋은 모두 지극
한 성인이고, … 三敎 모두 따르고 행할 것이지만, 그 중 불교가 權實을 겸
하고 있고, 가장 決了(결정적인 了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배우는
선비들이 각기 一宗에 집착하고, 불교를 배우는 사람도 實義에 미혹하여 天
地人物에 대한 지극한 근원을 구명하지 못하고 있다. ) 原人論 大正藏 45권, 707 下∼708 上 總序 부분의 요약.
皆有其本, … 況三才中之最靈而無本源乎? … 然今習儒道者, 知近則乃祖乃父傳體
相續受得此身, 遠則混沌一氣剖爲 … 皆氣爲本. 習佛法者, 但云近則前生造業隨業受報
得此人身, 遠則業又從惑展轉乃至阿賴耶識爲身根本 皆謂已窮而實未也. 然孔老釋迦皆
是至聖, … 佛兼權實, … 三敎皆可遵行, 則佛敎方爲決了. 然當今學士各執一宗, 就
師佛者, 仍迷實義, 故於天地人物不能原之至源.
그래서 종밀은 從淺到深으로 만법을 추궁하여 習權敎者에게 막힌 것을
배척하고 통하게 하여 그 근본을 다 알도록 하고, 이후에는 了義敎에 의하
여 展轉生起의 뜻을 현시하고 그 치우침을 회통하여 원만케 하여 그 일체
사물의 末(天地人物)에 이르기 까지도 모두 원만히 융통시키고 있다.
1) 교판을 통한 제 사상 비판
종밀은 먼저 그의 교판에 따라 儒·道 와 佛의 諸敎를 8가지로 나누고
(허무대도설, 자연설, 원기설, 천명설, 인천교, 소승교, 대승법상교, 대승
파상교) 차례로 그 사상들을 비판해 나간다.
첫째는 허무대도설이다. 즉 大道는 혼돈인 주객이 미분한 절대경지이지
만, 이 대도에서 자연히 나누어져 음양의 氣를 生하고, 氣는 천지를 생하
고, 천지는 만물을 생한다. 智愚·貴賤·貧富·苦樂이 모두 이것에 근거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한 것이 죽게 되면 또한 허무의 대도에 돌아간
다는 說이다. 종밀은 이 허무대도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대도가 生
死·賢愚·吉凶·禍福의 근본이라면, 똑같이 대도에서 생긴 것인데 무엇
때문에 길흉화복의 구별이 있는 것인가? 만약 길흉화복이 대도에 의해
생겼다고 하여도, 大道로 인해서 행해진 것이므로 인력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노장의 가르침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
이 된다. 만약 또 大道에서 생했다고 말한다면 大道는 무엇 때문에 인축
에 해를 주는 虎狼과 같은 惡獸를 만들고, 桀·紂와 같은 폭군을 만드는
가? 또 道가 범과 이리를 길러내고 걸(桀)과 주(紂)를 낳았다. 그리고 안
연(顔淵)과 염백우( 伯牛)를 요사(夭死)시키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가 화를 당한 것인데 어떻게 존귀하다 하겠는가? ) 原人論 , 大正藏 45권, 708 中, 所言萬物皆從虛無大道而生者. 大道卽是生死賢愚之
本. 吉凶禍福之基. 基本旣其常存, 則禍亂凶愚不可除也. 福慶賢善不可益也. 何用老莊
之敎耶. 又道育虎狼胎桀紂, 夭顔 禍夷齊, 何名尊乎.
이것은 하나의 근원
에서 차별적 세계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 만들어진 세계를 보면 道를 존
중하고 덕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自然說이다.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만물은 자연스
럽게 생성·변화 한다고 말하는 說이다. 종밀은 이것을 반박해서 말하기
를 만약 만물이 자연히 생하여, 인연에 의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일체의
인연이 없는 곳에서도 모두 生化가 있어야 할 것이다. 원인도 사정도 인
연도 경우도 일체를 생각할 것도 없이 생해야 할 것이다. 돌도 풀을 생
하는 것일 것이고, 풀도 사람을 생해야 할 것이고, 사람도 축류를 생해야
할 것이다. 생하는 일에 전후가 없고 일어나는 일에 이르고 늦음이 없고
신선도 단약을 빌리지 않고, 태평도 현량을 빌리지 않고, 인의도 교습을
빌리지 않고 일체 그러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일이 잘 된다. 노장의
가르침도 주공의 교습도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실은 노장도
이상의 세계를 설하고, 주공도 인의의 교습을 설하고 있다. 과연 무엇 때
문일까? ) 上同, 708 中, 又言萬物皆是自然生化非因緣者. 則一切無因緣處悉應生化. 謂石應生
草, 草或生人, 人生畜等. 又應生無前後. 起無早晩. 神仙不藉丹藥, 太平不藉賢良, 仁義
不藉敎習, 老莊周孔何用立敎爲軌則乎.
여기서 종밀의 비판은 세계의 형성 과정은 원인과 조건의
관계성 속에서 가능하다 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세째는 원기설이다. 원기라고 말하는 것은 천지만물은 모두 음양의 氣
의 盛衰에 의해 생한다고 말하는 설이다. 왜냐하면 만약 만물이 원기에
서 生한다고 말한다면 금방 태어난 어린애의 마음은 아직 아무런 사려나
습관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태어나면서 사랑이나 미움의 마음
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를 가까이 하고 젖을 구한다. 뜻에 맞지 않으면
절규를 하고, 수족에 힘을 주어 미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교태
와 아만과 여러가지의 마음이 있다. 무엇 때문일까? 만약 자연히 능히
분별에 따라 증오한다고 말한다면, 오덕육예도 모두 분별에 따라 해석
되야 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인연을 기다리고 오랫동안 학습을 하여 겨
우 성취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또 만약 生은 기를 품수하여 바로
생기고, 죽음은 氣가 흩어져서 바로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죽
어서 귀신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된다. 사실은
儒·道 二敎에서도 귀신에 대한 것과 제사에 관한 것을 설하고 있음은
여러 문헌에서 자주 보여지는 바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또한 知의
문제에 있어서도 설명이 없고, 만약 만물이 원기에서 생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는 知가 있으며, 초목에게는 知가 없는가? ) 上同, 708 中, 又言皆從元氣而生成者. 則 生之神未曾習慮. 豈得 孩便能愛惡驕恣
焉. 若言 有自然便能隨, 念愛惡等者, 則五德六藝悉能隨念而解. 何待因緣學習而成.
又若生是稟氣而 有, 死是氣散而 無, 則誰爲鬼神乎. 且世有鑒達前生追憶往事, 則知
生前相續. 非稟氣而 有. 又驗鬼神靈知不斷, 則知死後非氣散而 無. 故祭祀求禱, 典
藉有文. 況死而蘇者說幽途事, 或死後感動妻子 報怨恩, 今古皆有耶. 外難曰, 若人死
爲鬼, 則古來之鬼塡塞巷路. 合有見者, 如何不爾. 答曰, 人死六道, 不必皆爲鬼. 鬼死復
爲人等. 豈古來積鬼常存耶. 且天地之氣本無知也. 人稟無知之氣. 安得 起而有知乎.
草木亦皆稟氣, 何不知乎.
같은
元氣로부터 生했다면 초목에도 知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원기를
근본이라 하고, 사후의 세계를 氣 취산설로 말한다면 귀신에 대한 언급
은 무의미한 것이고 ) 儒·道 비판 내용의 취급에서 氣神說을 따로 구분하여 9 가지로 나누어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논자는 원기설에 氣神說을 포함하여 다룬다. 원기설에서 氣 聚散의
내용을 神에 적용한 것으로 기 취산설에 의하면 사후에는 神滅이 된다.
, 똑같은 원기에서 나왔는데 인간에게는 왜 知가
있고 초목에게는 왜 知가 없는가를 반문한다.
네 번째는 천명설 ) 종밀의 유교 해석인 천명설은 운명론적인 것으로 主宰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天에 대한 해석은 天人의 관계에서 人 이 天 에 종속되는 관계였으면서도, 학파에
따라서 서로 상보상성하는 관계(天人相成)을 구축하기도 하였고, 또 심지어 예외적
이긴 하지만 人 이 天 을 극복하고 만물을 사역하는 관계(人能戡天)등으로 변천하
기도 하였다. 천에 대한 해석은 主宰天 외에도 自然天, 義理天이 있으며 각 학파에
게 계승 발전 되어진다. 김충렬, 천인관계 를 둘러싼 논쟁의 기조 (중국철학연구
회,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 서울 : 예문서원, 1994), pp. 15∼22.
이와같이 原人論 에서 종밀의 天 개념 해석은 主宰天에 더 관계된다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다. 모든 것이 천명에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부귀
도 빈부도 현우도 화복도 모두 천명에 의한다고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貧은 많으며 富는 적고 賤은 많으며 貴는 적고 禍는 많으며 福은 적은
가? 참으로 많고 적음의 나뉨이 天에 있다면, 天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물며 행함이 없으면서도 존숭하고, 행을 지키는데도 천하며, 덕이 없는
데도 부하고, 덕이 있으면서 가난하고, 거스르는데도 吉하고, 의로운데도
凶하며 인자한데도 夭折하고, 난폭한데도 오래살고 乃至 道가 있어도 망
하고 道가 없어도 興함은 무슨 까닭인가? 이미 모든 것이 天으로 말미암
는 것이라고 한다면, 천은 도가 없는 것을 흥하게 하고, 도가 있는 것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天은 심히 無道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賞을 준다고 할 수 있으며, 음
탕한 자는 화를 당하고 넘치는 사람에게는 손해를 받게 하는 罰이 있다
고 하겠는가? 또 이미 화난반역이 모두가 천명에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
한다면, 성인이 가령 人을 責하고 天을 責하지 않고 事物을 斷罪하고 命
을 斷罪하지 않음을 가르치는 이것은 몹시 부당한 것이 아닌가? ) 上同, 708 中, 又言貧富貴賤賢愚善惡吉凶禍福皆由天命者. 則天之賦命奚有貧多富少
賤多貴少, 乃至禍多福少. 苟多少之分在天, 天何不平乎. 況有無行而貴, 守行而賤, 無
德而富, 有德而貧, 逆吉義凶仁夭暴壽, 乃至有道者喪, 無道者興, 旣皆由天, 天乃興不
道而喪道. 何有福善益謙之賞, 禍淫害盈之罰焉. 又旣禍亂反逆皆由天命, 則聖人設敎
責人不責天, 罪物不罪命, 是不當也.
즉
종밀은 모든 것이 천명으로 말미암는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의 삶의 불평
등은 바로 천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운명론적인 해석은 자유의
지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한다.
종밀의 이 네 가지(허무대도설, 자연설, 원기설, 천명설) 비판은 儒·道
에 대해 그가 처음에 말한 것을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즉 斥迷執 第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儒·道 二敎에서는 人畜 등의 類는 모두 허
무대도에서 생성·양육된다고 말한다. 도는 자연을 본받은 것이므로 그
道가 元氣를 내고, 원기는 천지를 生하고, 천지는 만물을 생한다. 그러므
로 愚·智, 貴·賤, 貧·富, 苦·樂의 모든 것이 天에서 품수된 것이고,
時命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사후에는 다시 천지로 돌아가고, 그 허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外敎의 종지는 단지 몸에 의해 行을 세운
것일 뿐 몸의 근본적 근원을 궁구하지 않은 것이다. 만물을 말한 것도
象外(현상적인 것 이상으로)는 논한 것이 아니다. 비록 대도를 근본이라
고 가리키지만 그 순역(順逆), 기멸(起滅), 염정(染淨)의 인연을 갖추어
밝힌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배우는 자는 이것이 權임을 알지 못하고, 그것
을 了義라고 집착한다. ) 上同, 708 上∼下, 儒道二敎說, 人畜等類皆是虛無大道生成養育. 謂道法自然, 生於元
氣, 元氣生天地, 天地生萬物. 故愚智貴賤貧富苦樂, 皆稟於天, 由於時命, 故死後 歸
天地, 復其虛無. 然外敎宗旨, 但在乎依身立行, 不在究竟身之元由. 所說萬物不論象外.
雖指大道爲本而不備明順逆起滅染淨因緣. 故習者不知是權, 執之爲了.
여기서 儒·道 二敎는 크게 기론과 천명설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종밀은 이러한 사상이 앞서의 비판에서 보듯이
만물의 근원에 대해 제대로 궁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人天敎다. 인천교란 5戒를 보전하여 인간에 태어나고 十善을
행하여 天上界에 태어나는 것을 설하는 世間敎(종교적 해탈을 설하지 않
는 세속적인 가르침)이다. 십악을 짓는다면 죽어서 삼악취에 떨어지고
오상오계를 지키면 죽어서 인천에 生한다. 인간의 화복, 인간의 생사, 인
간의 운명, 모든 것이 인간이 짓는 업에 말미암는다고 말하는 가르침이
다. ) 上同, 708 下, 一佛爲初心人且說三世業報善惡因果. 造上品十惡死墮地獄, 中品餓鬼,
下品畜生故, 佛且類世五常之敎, 令持五戒, 得免三途生人道中. 修上品十善及施戒等生
六欲天. 修四禪八定生色界無色界天. 故名人天敎也.
그러나 업을 짓는 것에는 그 조업의 주체가 없어서는 안된다. 또
그 보를 받는 주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 주체는 누구인가? ) 上同, 708 下, 據此敎中, 業爲身本. 今詰之曰, 旣由造業受五道身, 未審誰人造業, 誰
人受報.
업감연
기에는 그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
여섯째는 小乘敎다. 종밀이 소승교라 칭하는 것은 초기 원시불교로서
地水火風의 色과 受想行識의 心을 세계를 구성하는 기초로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하고 貪瞋癡로 근신기계의 근본을 삼는 것을 말한다. 형해지
색과 사려지심인 이 색과 심이 무시이래 인연력에 말미암아서 념념히 소
멸상속하여 유전함이 끝이 없다. 이것이 세계의 상이다. 그렇지만 색과
심은 가화합으로서 한결같으며 한결같지 않고, 항상하면서도 항상 하지
않는다. 자연히 범부는 이것을 집착하여 나라고 하고, 나를 사랑하여 탐
진치의 삼독을 生한다. 이 삼독이 근본이 되어 일체의 업을 짓고, 업이
이루어진 것은 피할 수가 없고 따라서 그 보를 받고, 몸은 태어나서 병
들어 죽고, 죽은 후에 생한다. 세계도 또한 고업소감으로 말미암아 成·
住·壞·空하고 空에서 다시 成이 되고 成이 되어서는 다시 空이 된다.
이와같이 무궁하게 생멸상속하며 윤회가 끝이 없다. 이 유전윤회를 끊는
다고 한다면 심을 삼계유류의 선악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무아의 관
지를 닦아서 삼독을 끊고, 제 혹업을 止息하여 아라한과를 얻어 灰身滅
智 해야 한다. ) 上同, 709 上∼中, 說形骸之色, 思慮之心, 從無始來因緣力故, 念念生滅相續無窮. 如
水涓涓. 如燈焰焰. 身心假合似一似常. 凡愚不覺執之爲我, 寶此我故卽起貪瞋癡等三毒.
三毒擊意發動身口造一切業. 業成難逃, 故受五道苦樂等身, 三界勝劣等處. 於所受身還
執爲我, 還起貪等造業受報. 身則生老病死, 死而復生. 界則成住壞空, 空而復成, 劫劫
生生輪 不絶. … 遂不滯心於三界有漏善惡. 但修無我觀智, 以斷貪等, 止息諸業, 證
得我空眞如, 乃至得阿羅漢果, 灰身滅智方斷諸苦.
이것이 소승교의 대의이다. 색심 이법과 탐진치가 몸과
기계를 만드는 근본이 되고, 과거 미래에 다시 근본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으로, 무릇 生(전생, 현생, 후생)과 여러 世(전세, 현세, 후세)를 지나
도록 자체가 모름지기 간단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른바 심은 의식심이고,
안이비설신의 연을 빌어 일어나는 마음이다. 연이 아니라면 의식은 일어
나지 않는다. 의식이 때에 따라 일어나지 않고(졸도, 잠잘 때), 일어나지
않는다면 상속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색은 四大로 말미암아 成住壞空
한다면, 그렇다면 무색계에는 四大는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 몸을 지속
하여 세세에 끊어지지 않게 하겠는가? ) 上同, 709 中, 夫經生累世爲身本者, 自體須無間斷. 今五識闕緣不起,(根境等爲緣)
意識有時不行.(悶絶 睡眠 滅盡定 無想定 無想天) 無色界天無此四大, 如何持得此
身, 世世不絶.
이것은 근원에 대해 未了한 것
으로 근원이 되는 것은 間斷없이 지속되는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일곱번째는 대승법상교다. 대승법상교에서는 아뢰야식이 몸의 체라고
말한다. 소승은 색심이원론이지만 법상교는 오로지 식만이 있어, 색도 그
식의 소변이라고 말한다. 그 설에 의하면, 일체의 유정은 無始已來로 자
연히 8종의 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제8아뢰야식은 그 근본이다. 이
識이 근신 기계 종자로 단박에 변하고, 7식을 전생하며 모두 능히 자분
의 반연할 바를 변현하니 모든 것이 실법이 아니다. 어떻게 변하는가?
말하자면 나와 법에 대한 훈습력 때문이다. 諸識이 生할 때 我나 法이
있는 것 처럼 변하는 것이다. … 오직 식이 변한 것인데, 미혹하기 때문
에 나와 諸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여 이것으로 말미암아 惑을 일으키고
업을 지어서 生死가 무궁한 것이다. ) 上同, 709 中∼下, 一切有情無始已來, 法爾有八種識. 於中第八阿賴耶識, 是其根本,
頓變根身器界種子. 轉生七識, 皆能變現自分所緣, 都無實法. 如何變耶? 謂我法分別熏
習力故. 諸識生時變似我法. … 唯識所變, 迷故執有我及諸境, 由此起惑造業, 生死無
窮. (廣如前說)
이것이 세계의 모습이라고 말한
다. 그러나 만일 所變의 境이 허망하다면 能變의 識도 참된 것이 아닐
것이다. 소변의 경은 망이지만, 능변의 식은 眞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所變의 境이 妄이라면 能變의 識도 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꿈을 꿀적
에 夢想과 夢物, 능견과 소견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이치를 추구하면
夢想도 夢物도 동일한 허망이며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諸識도 또
한 이와 같이 모두 거짓의 衆緣에 의해 생한 것이므로 실은 自性인 것은
아니다. ) 上同, 709 下, "所變之境旣妄, 能變之識豈眞. 若言一有一無者,(此下 將彼喩破之)
則夢想與所見物應異. 異則夢不是物, 物不是夢. 寐來夢滅, 其物應在. 又物若非夢, 應
是眞物. 夢若非物, 以何爲相. 故知夢時則夢想夢物, 似能見所見之殊. 據理則同一虛妄,
都無所有. 諸識亦爾, 以皆假託衆緣無自性故."
종밀은 대승파상교의 교리를 가지고 식의 본체는 자성이 없
는 공한 존재라고 하여 법상교의 내용을 비판한다. 대승법상교에서는 허
망이 아닌 참된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는 종밀의 비판을 볼수 있다.
여덟째는 대승파상교다. 破相은 諸部 반야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대승경전에 편재해 있다. 앞서 삼교는 선후의 次第에 의하지만, 이
가르침은 執에 따라 곧 破하는 것으로 정해진 시절이 없다. 그러므로 용
수가 이종의 반야를 세우는데, 공반야와 불공반야다. 공반야는 二乘의 법
집을 파하기 위해서 설해지고, 불공반야는 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공관이
다. 공과 불공의 相異는, 공은 오로지 공관이지만 불공은 공관의 근저에
서 은밀히 불성를 드러내어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파상교에서는
앞의 대승법상의 執을 깨뜨리는 것이고, 동시에 은밀이 뒤의 眞性空寂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 上同, 709 下, 破相之談, 不唯諸部般若, 遍在大乘經. 前之三敎依次先後, 此敎隨執卽
破, 無定時節. 故龍樹立二種般若:一共, 二不共. 共者, 二乘同聞信解, 破二乘法執故.
不共者, 唯菩薩解, 密顯佛性故.
파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心境皆空이다.
종밀은 이것을 비판하여 심경이 개공이라면 그 공을 아는 자는 누구인
가? 또 만약 모든 실법은 공이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 모든 허망
을 나타내는가? 만약 참으로 일체개공이라면 허망도 또한 존재가 가능하
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공교는 단지 執情을 파하기 위해서 설해진
가르침이며 아직 眞靈의 性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 上同, 709 下∼710 上, "若心境皆無, 知無者誰. 又若都無實法, 依何現諸虛妄. 今旣心
境皆空, 未審依何妄現. 故知此敎但破執情, 亦未明顯眞靈之性."
고 한다. 그래서 종
밀은 인식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2) 핵심개념으로서의 本覺眞心
세번째 단원인 直顯眞源에서는 일승현성교를 말하여 인간의 근본을 궁
구함이 가장 지극하다고 한다. ) 原人論 , 대정장 45권, 710 上, 大哉妙門原人至此.
그렇다면 곧바로 드러내는 참된 根源이
란 무엇인가? 原人論發微錄 에서는 다음과 같이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源이라는 한 글자는 일체중생의 本覺眞性에 비유한 것이다. 만법은 依報·
正報의 근원이고, 중생은 迷悟의 근원이고, 보살은 萬行의 근원이고, 諸佛은
萬德의 근원이다. ) 淨源, 原人論發微錄 續藏經 104 卷, 206 上, 源之一字, 喩一切衆生本覺眞性也. 在
萬法爲依正之源, 在衆生迷悟之源, 在菩薩爲萬行之源, 在諸佛爲萬德之源.
그래서 人天敎, 小乘敎, 大乘法相敎, 大乘破相敎의 사교를 비판하고 다
섯번째 참된 가르침인 一乘顯性敎를 설한다. 淨源은 原人論發微錄 에서
一乘顯性敎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승현성교란 선원제전집도서 에서 현시한 진심즉성교와 동일한 것으로
그것은 선종의 직현심성종과 짝이 되는 것이다. 즉 性이라 함은 이것이 第三
법상, 第四 파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顯性이란 또한 대승편천과 다
른 것으로 일승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小註 : 대승법상은 생멸문에서 삼세
에 지극한 것이고, 대승파상은 진여문에서 空義를 은밀히 드러낸 것이다. 모
두 편천한 것일 뿐이다.) 說一切 아래의 이것은 진여성이 일체중생에게 두루
함에 나아가 모두가 본각진심이 있다는 것이다. 大經에서 법성은 일체처 일
체중생 및 국토에 在한다고 하고, 智論에서는 흰돌은 은성이 있고, 누런돌
은 황성이 있고, 일체중생에게는 열반성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참된
증명이다. 無始已來常住淸淨이라는 것은 기신론에서 일체중생에게 본래 상주
하는 혹은 잃지 않고 어그러지지 않는 항상 머무는 일심은 본래부터 일체
염법과는 相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청정한 것이고, 청청함
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無上依經에서는 하나는 自性淸淨으로 이것은 通
相이고, 둘은 離垢淸淨으로 이것은 別相이다. 寶性論중에 또한 두가지 뜻이
있는데, 自性淸淨은 性淨해탈을 말하고, 離垢淸淨은 離障해탈을 말한다. 지금
말하는 상주청정은 곧 통상인 성정해탈을 말하는 것이다. 昭昭不昧了了常知
라는 것은 화엄 회향품에서 진여의 밝게 비춤이 性이므로 어둡지 않다고 하
고, 여기서 말하는 知라는 것은 證知는 아니고 뜻으로 말해서 진성과 허공목
석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知라고 말한다. 대상을 緣한 분별의 識과는 같지 않
고, 체를 비추어 깨달아 통달하는 智와도 같은 것이 아니다. 바로 진여성으
로 자연히 항상 아는 것이므로 마명보살은 진여라는 것은 자체가 眞實識知
란 뜻으로 또한 불성이라 이름하고, 아래의 이 제불만덕의 근원이 되는 것이
므로 불성이라 이름하고, 중생이 미오하는 근원이므로 여래장이라 이름한다
(小註 : 윗글의 뜻은 선원제전집도서에서 많이 의거하고 현수의 교의장에서
겸하여 취하였다) ) 上同, 206 上∼下, 一乘顯性敎卽同禪詮序中顯示眞心卽性敎, 彼對禪宗直顯心性宗.
故云卽性此超第三法相, 第四破相, 故云顯性, 又異大乘偏淺故標一乘(大乘法相在生滅
門極於三細, 大乘破相在眞如門密顯空義. 皆偏淺耳)說一切下, 此就眞如性 一切衆生,
皆有本覺眞心也. 大經云, 法性 在一切處, 一切衆生及國土. 智論云, 白石有銀性, 黃
石有金性, 一切衆生有涅槃性. 斯皆良證也. 無始已來常住淸淨者, 起信云, 一切衆生本
來常住, 又云, 不失不壞常住一心, 從本已來一切染法不相應故. 故云淸淨. 然淸淨有其
二義. 無上依經云, 一者, 自性淸淨. 是其通相. 二者, 離垢淸淨. 是其別相. 寶性論中亦
有二義. 一, 自性淸淨謂性淨解脫. 二, 離垢淸淨謂離障解脫. 今云常住淸淨卽通相性淨
解脫也. 昭昭不昧了了常知者, 華嚴回向品云, 眞如照明爲性故云不昧, 此言知者. 不是
證知, 意說眞性不同虛空木石, 故云, 知也. 非如緣境分別之識, 非如照體了達之智. 直
是眞如之性, 自然常知故, 馬鳴菩薩云, 眞如者, 自體眞實識知義故, 亦名佛性, 下是諸
佛萬德之源故, 名佛性, 是衆生迷悟之源故, 名如來藏.(釋上文義多依禪詮兼取賢首敎義
章).
上記의 原人論發微錄 에서 일심이란 通相인 性淨解脫을 말하는 것이
고, 知란 증득하여 깨달은 것도 시간적으로 後得적인 것도 아니고, 허공
목석과 같이 비주체적인 대상적인 것도 아니고, 어떤 대상과 반연하여
분별하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것이거나 解悟인 智慧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원래부터 그렇게 항상 그 자체로 진실하게 아는 것이라 진여성이
고, 덕성으로 말하면 불성이라 할 수 있고, 그 미혹함과 깨달음이 함께
담겨 있으므로 여래장이라고 이름한다.
종밀은 이 일승현성교에서 上記의 8가지 사상에 대한 비판 즉,
① 왜 하나의 기원에서 차별적 세계가 생기는가? (허무대도설)
② 세계의 형성 과정이 원인과 조건의 관계성이 없이도 생성 가능한 것
인가? (자연설)
③ (유물론적인) 氣 취산설을 말한다면 귀신에 대한 언급은 무의미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인식할 수 있는 知가 있는데, 초목에게는 왜 그
것이 없는가? (원기설)
④ 모든 것이 천명으로 말미암는다면, 이 인간의 불평등한 현실을 보면
천은 불공평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천
명설)
⑤ 造業과 受報의 주체는 누구인가? (인천교)
⑥ 間斷없이 지속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소승교)
⑦ 허망이 아닌 참된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 (대승법상교)
⑧ 인식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대승파상교)
라는 비판을 수용해 내는 本覺眞心 사상을 제출한다. 이 本覺眞心이 成
佛의 근거·수행의 근거·천지만물의 근원·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밀은 모든 인간은 본성상 평등하며 본래 깨달아 있는 참된 마
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체유정은 모두 본각진심을 가지고 있고, 무
시이래로 항상 청정함에 머무는 것이고, 환희 밝아 어둡지 않고, 환희 깨
달아 항상 아는 것이라 또한 불성이라 이름하기도 하고, 여래장이라 이
름하기도 한다. ) 原人論 대정장 45卷, 710 上, 一切有情, 皆有本覺眞心. 無始以來 常住淸淨, 昭昭
不昧, 了了常知, 亦名佛性, 亦名如來藏.
加地哲定은 본각진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본각진심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에 상대해서 하는 말로 수행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본래 그대
로의 모든 허망을 떠난 진실 무망의 심체로서 이것이 앞의 파상교에서의
공의 자각체이다. 이 심체만이 우주만유의 실체이며 이미 공관을 초월한
것으로서 시공을 초월한 절대 경지이다. 선악미추의 차별을 넘어선 것이
므로 청정이며, 망집을 障蔽한 것이므로 소소불매하며, 지각의 당체이므
로 了了하여 항상 아는 것이다. 성불의 진정한 원인이 됨으로 불성이라
고 말하고, 중생이 얽매이게 되고, 얽매임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므로 여
래장이라고 말하며, 여래의 지혜이고, 자연지이며, 무애지이고, 그리고 또
한 미오동일의 진심이다. 일체유정은 무시이래로 이 진심을 갖추고 있고,
가령 번뇌에 의해 가리워져 있지만, 性 그것은 불변이다. 그런데 중생은
무시이래로 망상에 가리워져 스스로 그 진심을 알지 못하고, 凡質을 인
식하여 愛憎에 탐착하고 업에 결박되어 생사의 고통을 받고 있다. 만약
불심에 계합하여 불행을 닦는다면 근본에 돌이키고, 근원으로 돌아가 범
습을 斷除한다면 일심, 불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되고, 일진, 불토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되며, 일체 법계가 오직 이 진심의 자성인 것을 깨
닫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불교의 극치이고, 인생의 진원이다 ) 加地哲定, 宗密の 原人論について , ( 密敎文化 13號, 1950), p. 28.
라고 하여 본각진심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 본각진심은 성불의 근거·수행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이 본
각진심을 (일념에 깨달아) 영원히 망상을 떠나게 되면, 바로 자신에게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上同, 710 上, 令其永離妄想?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
라고 하며 종밀은 華嚴經
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영각진심의 청정함은 諸佛과 같다
고 하고, 망상을 버린다면 참된 지혜와 인식이 현현한다 ) 上同, 710 上, 靈覺眞心淸淨, 全同諸佛. … 若離妄想, 一切智, 自然智, 無 智, 卽得
現前.
고 말한다.
종밀은 이러한 본래면목을 위해서 본원에 되돌아가 凡習을 제단하고,
덜고 또 덜어 무위자연에 이르면 응용이 항하와 같음을 佛이라 이름한
다 ) 上同, 710 上, 返本還源?斷除凡習?損之又損 以至無爲自然?應用恒沙?名之曰佛.
상기의 문장에서 밑줄이 그어진 부분은 莊子 의 爲道者, 日損, 損之又損之以至於
無爲, 無爲而無不爲也(도를 위하는 자는 날로(사욕을) 덜어 낼 것이니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無爲에 이르는 것이고, 함이 없음에도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라는
글과 유사하다. 莊子 翼卷之七, 知北遊第二十二.
라고 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 현상세계 가운데에서 심리요소 내지 물
질적 요소 모두가 本覺眞心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는 단지 하나의 眞靈의 性으로 不生不滅 不增不減 不變不易한 것이지
만 衆生이 無始이래 迷睡하여 깨달아 알지 못한다. 隱覆함에 말미암기
때문에 여래장이라고 이름하고, 여래장에 의하기 때문에 생멸의 심상이
있고, 이른바 불생멸의 진심과 생멸의 망상이 화합한 것이다 ) 上同, 710 中, 謂初唯一眞靈性?不生不滅?不增不減?不變不易, 衆生無始迷睡不自
覺知, 由隱覆故名如來藏, 依如來藏故有生滅心相. 所謂不生滅眞心與生滅妄想和合.
라고 하
여 만법의 기원인 本覺眞心은 不生不滅眞心與生滅妄想和合 이고, 이것은
현상 세계 중에서 두 가지 뜻을 낳는데 覺과 不覺이 그것이다. 不覺이라
는 뜻에서는 일련의 과정의 결과로서 能見之識, 所見之境, 法執我執, 造
業受報, 生死輪廻로 끊임없는 고통을 遭受하는 것이다. 이것이 만법이 만
연해지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宗密의 현상 세계의 생성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생명은 심신이 업력에 의해 중음에 떠돌다
가 모태중에 들어가 기질을 품수한다 ) 710 中, 運於中陰, 入母胎中, 稟氣受質.
고 하고, 기란 곧 홀연히 四大
를 갖추어 점차 諸根을 이루고 마음은 곧 홀연히 사온을 갖추어 점차 제
식을 이룬다. 10개월이 채워져서 태어나는 것을 인간이라 이름한다. 즉
我 등의 지금의 심신이 이것이다 ) 上同, 710 中, 氣則頓具四大漸成諸根. 心則頓具四蘊漸成諸識. 十月滿足生來名人. 卽
我等今者身心是也.
라고 하여 색법과 심법이 합쳐진 五
蘊으로 구성되며, 나아가 색온의 물질 요소와 중국 사상에서의 원기론을
합하여 설명하기를 그렇지만 품수받은 기를 전전하여 추극해보면 곧 혼
일한 원기이다 ) 上同, 710 下, 然所稟之氣, 展轉推本, 卽混一之元氣也.
고 한다.
元氣라는 말은 漢代에 출현한 것인데, 이것은 물질의 기본 상태를 가
리키는 것으로, 이후에는 道家의 주요한 술어 중의 하나가 된다. … 그러
나 道家와 儒敎에서 가르치는 원기는 원시적인 자연물질이며, 그것은 자
연의 변화를 거쳐 비로서 세계를 만들고, 이후에 다시 여러가지 변화를
거쳐 有形有名의 사물이 이루어진다. ) 苒雲華 著, 宗密 (臺北 : 世界哲學家叢書, 東大圖書公司印行, 1988), pp. 173∼174.
그리고 여기에 心을 더하여 실
재를 궁구하여 말하자면 심 외에는 따로이 법이 없다. 원기 또한 마음의
변하는 바를 쫑아서 앞서 전전하여 나타난 바의 境에 속하는 것이다 ) 上同, 710 下, 究實言之, 心外的無別法. 元氣亦從心之所變. 屬前轉識所現之境.
라고 하여 최종적으로 本覺眞心에 제 현상의 본원을 귀속시킨다.
3) 본각진심을 통한 제 사상 회통
종밀은 네 번째 단원에서 본말을 회통해 나간다. 앞서 배척한 것을 모
아 하나의 근원으로 같이 돌아가니 모든 것이 正義가 된다 ) 上同, 710 中, 會前所斥同歸一源皆爲正義
고 하면서
회통본말의 大旨를 말한다.
眞性이 비록 몸의 근본이지만, 生起함에는 대개 그 까닭이 있는 것이
다. 아무 단서도 없이 홀연이 몸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앞에서
의 宗(8가지 사상적 내용)은 未了한 것이라서 절절이 그것을 배척한 것
이다. 지금 본말을 회통하여 본다면 儒·道 또한 옳을 것이다. ) 上同, 710 中, 眞性雖爲身本, 生起蓋有因由. 不可無端忽成身相. 但緣前宗未了, 所以
節節斥之. 今將本末會通, 乃至儒道亦是.
종밀은 인간의 참된 근원으로서 일진영성, 본각진심을 말하여 기신론
의 여래장 사상을 인용하고, 불변수연의 논리를 통해 불각에 의해 전전
하는 九相次第의 모습을 설명하여 이 전전하는 세계에 그 8가지 교판의
사상적 내용을 배대하여 회통시키고 있다.
종밀은 대승파상교에 대한 비판 부분에서 반야 불공은 공관의 근저에서
은밀히 불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승법상의 執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한
다. 그러나 이 파상교에서 심경이 개공이라면 그 공을 아는 자는 누구이
고, 또 만약 모든 실법은 공이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 모든 허망
을 나타내는가? 만약 참으로 일체개공이라면 허망도 또한 존재가 가능하
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비판은 佛性과 불교의 진리를 직접 드러내지 못하고 현상 세계에 대
한 부정을 거친다는 은밀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통하여 해탈을 추구하고
마음이 단지 부정적인 표현만으로 언어화 될 수 있다는 편견에 빠져 적
극적이고 긍정적인 기술(表詮)의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 卞熙郁, 종밀 철학에서 知 의 역할과 의미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3), p. 31.
그러나 또한 遮詮의 표현으로 법상의 執을 깨뜨리고, 眞性空寂의 이치
를 나타내는 것은 인정이 되는 것이다.
대승파상교에서의 인식의 주체 문제에 대해서는, 일진영성이 있다고
하는 表詮에 의해서 그 해답을 준다. 一眞靈性은 불생불멸 부증불감의
당체이지만, 중생은 무시이래로 무명 번뇌에 의해 迷睡하여 스스로 이것
을 깨닫지 못하고, 항상 그 진심을 은폐하여 덮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여래장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래장이 무명 번뇌 때문에 진심이 은폐되어
진 당체이므로 그것에 생멸의 심상이 일어난다. 이것을 아뢰야식이라고
말한다. 기신론에 불생불멸의 진심과 생멸의 망상이 화합하여 한결같지
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을 이름하여 여래장이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음은 대승법상교에 대한 회통이다. 대승법상교에서는 아뢰야식 외에
는 어떤 것도 없다고 하고, 망상에 말미암아 惑을 생하고, 혹에 말미암아
業을 짓고 생사를 다함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所變의 境은 妄이지만 能
變의 識은 眞이라는 해석에 대해 境이 妄이면 그 능변의 식도 망이 된다
고 하고 대승파상교의 교리를 가지고 식의 본체는 자성이 없는 공한 것
이라고 비판해내며, 허망이 아닌 참된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는 분석을
통해서, 이 아뢰야식은 불생멸심과 생멸심의 화합이고, 覺과 不覺의 구조
로 되어 있음을 말하여, 그 불각에 의해 근본무명이 작용을 일으켜 업상
을 생하고 전전하여 능견의 식과 소견의 상이 현현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뢰야식의 각과 불각의 구조에서 불각에서 전전되어 주·객의 분리가
생긴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주·객 분리의 세계와 그 근원을 識에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므로 법상교도 인정이 되는 것이며, 근원으로부터
전전된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또한 회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경계
는 자심으로부터 妄現된 것으로, 본래부터 없는 것이지만, 그 없는 것을
알지 못하고 집착하여 정해진 (실체가)있다고 하는 것이 법집을 생하는
것이다.
다음은 소승교이다. 色心 二法을 근본으로 하는 소승교에서는 졸도나
잠잘 때 등에서는 그 상속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분석에서 근원이 되는
것은 간단없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비판을 했었다. 여기에 대해서 일
진영성, 본각진심을 근원으로 하는, 그러나 불각에 의해서 전전된 세계에
의하면 上記와 같은 무명업상, 능견의 식, 소견의 상이 현현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심의 妄現에 의해 생겨난 것임에도 무지와 집착으로 법집이 생
기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드디어 자기와 남의 다름을 보게
되어 곧 아집을 이룬다. 我相에 집착하므로 자기 감정에 맞는 모든 경계
를 탐내고 좋아하며 그 애욕과 아집을 더 불어나게 하고 자기 감정에 거
슬리는 모든 경계를 화내고 싫어하여 상대방이 혹시 자기에게 손해를 끼
치거나 괴롭힐까 두려워하여 그 우치한 감정이 더욱 증가하기만 하는 현
상이 생기는 것이다 ) 上同, 710 中, 執此等故, 遂見自他之殊, 便成我執. 執我相故, 貪愛順情諸境, 欲以潤
我, 瞋嫌違情諸境, 恐相損惱, 愚癡之情展轉增長.
라고 하여 소승교에서 어떻게 아집이 생기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색법, 심법과 탐진치를 근본으로 하는 해석도 오
온가화합의 무아론에 의한 탐진치의 조복이라는 면에서는 인정될 수 있
는 것이지만, 그 근원에 대한 미혹이 아집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속에서
소승교의 미흡을 지적하면서 다시 회통해 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인천교다. 종밀은 앞에서 인천교의 조업과 수보의 주체문제에
대해서 비판을 했었다. 종밀은 기신론의 여래장 사상을 통해 그 조업과
수보의 주체는 불생멸의 진심과 생멸의 망심이 화합된 아뢰야식이고, 불
각에 의해 이것이 전전됨에 의해 아집을 갖게 된 세계에서 貪瞋癡의 삼
독이 증장하여 意口身의 업에 의해 선악의 업을 만들게 되고 악업에 의
해 地獄 餓鬼중에 생하고 선업에 의해 중유를 거쳐 인간의 모태에 들어
온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선을 짓고, 악을 막는 인천교의 교설은 방편적 가르침으로 인정
될 수 있으나, 그 근원의 무지에 대해서는 기신론의 여래장 사상과 그
불각에 의해 전전하는 세계를 통해서 조업과 수보의 주체와 인천교의 윤
리적 실천 강령이 나오게 되는 것을 설명하여 회통시키고 있다.
종밀은 그 다음으로 儒·道 二敎를 회통해 나간다. 儒·道 이교의 이론
도 기론(허무대도, 원기설), 자연설, 천명설로 나누어 말하고, 불교의 업
설을 통하여 회통시켜 나간다.
먼저 기론에 대한 회통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선업을 닦으면 그 업에
의해서 중음을 거쳐 모태 내에 들어오고, 생성의 직접 원인은 그 사람의
업이다. 거기에서 기를 품수하고 質을 받아서 신체가 되고, 심은 제 의식
을 생한다. 儒·道 二敎에서 氣質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지수화
풍의 四大라고 말한다. 儒·道 二敎에서 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에서
는 수상행식과 제 의식이라고 말한다. 儒·道 二敎에도 기질이 아니면
물이 생하지 않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四大가 아니면 만법은 생하지 않는
다. 그러므로 기질에 의해 만물을 생한다고 말하는 儒·道 二敎의 설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불교에서는 업에 의해 사대가 가화합하여 신체
를 이룬다고 한다. 儒·道에서는 기질을 이루면 따라서 마음이 있다고
말하고 아직 知가 곧 마음에 의해 생기는 바를 살피고 있지 않지만, 불
교에서는 그 모태에 들어갈 때에 이미 몸도 마음도 갖추어 들어가는 것
이다. 몸도 마음도 전생의 업에 所感된 것이다. 이와같이 색과 심이 화합
하여 모태에 들어가서 십 개월이 채워져서 사람으로 생하는 것이다. 그
러므로 기론에서의 생성의 설명도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닌 것이다.
다음은 자연설에 대한 회통이다. 종밀은 자연설에서 원인과 조건의 관
계성이 없이도 생성 가능한 것인가를 비판했었는데, 종밀은 여기서 引業
과 滿業으로 그리고 현세의 삶이 아니라 三世의 시간 개념과 업설에 의
해 회통시켜 나간다.
비록 인업으로 인하여 이 몸을 받게 되지만 또한 만업을 말미암기 때
문에 貴賤貧富壽夭病健盛衰苦樂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생의 敬慢이
因이 되어 금생에 귀천의 果를 받고, 나아가 인자하면 장수하고 살생하
면 요사하며, 보시하면 부귀하고 貪하면 빈천하게 되는 따위의 갖가지
別報를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몸이 혹은 악함이 없는데 화를
당하고, 선함이 없는데 복을 받는다. 不仁한데 장수하고 不殺한데 요사하
는 등에 것은 모든 것이 전생의 만업에서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
세에서 지은 바의 업과 같지 않다 하더라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외학자들은 전생을 모르고 단지 자기네들의 보는 것에만 의지하여 인간
의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로 된다고 고집한다 ) 上同, 710 下, 雖因引業受得此身, 復由滿業故貴賤貧富壽夭病健盛衰苦樂. 謂前生敬
慢爲因, 今感貴賤之果. 乃至仁壽殺夭施富 貧, 種種別報不可具述. 是以此身, 或有無
惡自禍, 無善自福, 不仁而壽. 不殺而夭等者, 皆是前生滿業已定. 故今世不同所作自然
如然, 外學者不知前世, 但據目睹, 唯執自然.
고 하여 자연설을 회통
해 나간다.
다음은 천명설이다. 모든 것이 時運에 말미암고 천명에 돌리는 문제에
대하여 자연설에서 회통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삼세인과와 업력의 연기에
의해서 과거의 지은 업에 의해 받게 되는 과보라고 하여 회통해 나간다.
이와같이 종밀은 모든 사상을 여래장연기, 진여연기를 통해서 회통해
나감을 알수 있다. 이 불각에 의해 전전된 세계를 역으로 구성해 보면,
儒·道 二敎에서 말하는 바의 원기가 모여서 사람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이며, 氣의 기초가 되는 것은 혼일의 대도라고 말하는 것도 사
실이며, 否泰順逆으로 구별되는 운명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은 단순히 맹목적인 기의 작용에 의한 것은 아니고, 또한 이른바 자연설,
천명설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 奧에는 엄연히 업의 鐵鎖가 있다. 업의
주체는 아집이다. 아집이 있으면 법집이 있다. 거기서 惑이 생긴다. 그러
나 아집과 법집은 아뢰야식의 소변인 진실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므로 일
어난다. 거기서 업의 철쇄도 그 주체가 아뢰야식의 소변인 것을 안다면
헛됨에서 벗어남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아뢰야식도 진심이 수연에 의해
생멸의 상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초가 되는 것은 眞心이다. 결
국 만법은 진심이 隨緣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 加地哲定, 宗密の 原人論について ( 密敎文化 13號, 1950), pp. 27∼28.
라고 하여 加地哲定은
그 역구조를 잘 설명하고 있다.
2. 회통의 방법
1) 從淺到深
全揀全收, 從淺到深 이라고 하는 것은 종밀이 原人論 에서 그의 논의
를 전개하는 기술적 방법이고, 학문적 태도이다. 原人論 의 서문에서 그
는 논의의 전개 방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나는 지금 돌아
가 내외의 교리에 의하여 만법을 추궁하되 처음에는 옅은데서 부터 시작
하여 깊은 곳에 이르게 하며 권교를 배우는 사람의 막힌 것을 배척하고
통하게 하고, 나중에는 了敎에 의하여 전전하여 生起하는 뜻을 顯示하고
편벽된 것을 모아 圓滿케 하여 末에 이르게 할 것이다. (末은 곧 천지와
인간과 사물이다) 글에는 네 편이 있고, 원인이라 이름한다 ) 上同, 708 上, 余今還依內外敎理推窮萬法. 初從淺至深, 於習權敎者, 斥滯令通而極其
本, 後依了敎, 顯示展轉生起之義, 會偏令圓而至於末. (末卽天地人物)文有四篇名原人
也.
라고 하여
종밀은 서문을 제외한 네 편의 글을 그의 교판에 따라 從淺到深의 순서
로 전개해 나간다.
上記 문장에 대한 淨源의 原人論發微錄 에서의 주석을 보면 내외 교
리라고 하는 것은 교문의 의리를 말한다. 마음을 다스림은 吾佛의 敎迹
으로 章門에 의거한 네 가지다. 권교를 익힌다는 것은 처음의 2편으로
모두 옅은 것이다. 그 근본을 추극해보면 제 3편으로 오직 마음 뿐이다.
滯란 막힘이 오래됨을 말한다. 전전생기 이하의 글은 본래 오직 일심 뿐
임을 현성한 것으로, 나아가 儒·道 이교의 지말까지 회통하는 것이다.
첫째는 미혹한 집착을 배척하는 것으로, 儒·道를 익히는 자에 해당된다.
둘째는 편벽되고 옅은 것을 배척하는 것으로, 불교 가운데 不了義敎를
익히는 자에 해당된다. 세째는 곧바로 참된 근원을 드러내는 것으로, 불
교의 진실하고 극진한 이치를 분명하게 말한 了義實敎다. 네째는 본말을
회통하는 것으로, 앞서 배척한 것을 회통하여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니
모두 正義가 된다. 儒·道가 도두 인업과 만업에 미혹하여 망녕되이 一
氣가 근본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배척한 것이다. 편천은 이 篇에서 人天
에서 비롯하여 破相에 이르러 마치는데, 모두 편천하여 불료의하다는 것
이다. 직현진원이란 곧 일승현성교로서 참으로 료의를 다한 것이다. 앞서
배척한 것을 회통하니 즉 앞의 두 편이 똑같이 진원즉 제삼편에 돌아가
는 것이다 ) 淨源, 原人論發微錄 속장경 104 권, 184 上, 內外敎理者, 敎文義理也. 治於心, 曰
內, 卽吾佛敎迹, 四依章門也. 治於身, 曰外, 卽老子道德孔氏五經也. 於習權敎卽初二
篇皆淺也. 而極其本卽第三篇唯心也. 滯者凝久也. 展轉生起者. 下文以初顯性本唯一心.
乃至會通儒道二敎之末. 斥迷執第一(習儒道者), 斥偏淺第二(習佛不了義敎者), 直
顯眞源第三(佛了義實敎), 會通本末第四(會前所斥同歸一源皆爲正義), 排斥儒道皆
迷引滿二業, 妄執一氣爲本也. 偏淺者. 此篇始自人天終至破相, 此四種敎皆偏淺不了也.
直顯眞源卽一乘顯性方窮了義也. 會前所斥卽前二篇同歸眞源卽第三篇.
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밀의 이러한 교판에 따른 순서는 그의 禪源諸詮集都序 에서의 교의
三種에 대한 교판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위의 열가지 뜻은 그 이치가
대체로 분명하나, 단지 선 3종과 교 3종을 상대해 상세하게 한다면 말이
나 저울로 재는 것 처럼 족히 얕고 깊음을 정할 수 있다. 먼저 선문을
서술하고 나중에 교를 밝히겠다. 선 3종은 1. 息妄修心宗 2. 泯絶無寄宗
3. 直顯心性宗 이고, 교 3종은 1. 密意依性說相敎 2. 密意破相顯性敎 3.
顯示眞心卽性敎이다 ) 都序 대정장 48권, 402 中, 上來十意, 理例昭然, 但細對詳禪之三宗, 敎之三種, 如
經斗稱, 足定淺深. 先 禪門, 後以敎證. 禪三宗者, 一息妄修心宗, 二泯絶無寄宗, 三直
顯心性宗. 敎三種者, 一密意依性說相敎, 二密意破相顯性敎, 三顯示眞心卽性敎.
라고 하여 선 3종과 교 3종을 기술하고 배대시켜
나간다.
都序 에서의 이 禪 3종과 敎 3종의 선교 일치 사상에서도 原人論 과
마찬가지의 본각진심(공적영지)을 핵심개념으로 하여 기신론의 여래장
사상으로 회통시켜 나간다. 都序 에서는 顯示眞心卽性敎敎에서의 眞心,
本性, 心地, 靈知之心, 空寂之心이 禪에서 直顯心性宗의 空寂靈知와 일치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息妄修心宗과 密意依性說相敎, 泯絶無寄宗과 密意
破相顯性敎, 直顯心性宗과 顯示眞心卽性敎를 같은 것으로 배대한다.
원인론 과 도서 의 교판 내용을 배대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原 人 論 │ 禪源諸詮集都序 │
│ ├───────────┬───────────┤
│ │ 敎 3種 │ 禪 3種 │
├───────────┼───────────┼───────────┤
│ (儒·道 二敎) │ 密意依性說相敎 ☞ │ 息妄修心宗 │
│ 人天敎 ☞ │ - 人天因果敎 │ │
│ 小乘敎 ☞ │ - 斷惑滅苦敎 │ │
│ 大乘法相敎 ☞ │ - 將識破相敎 │ │
│ 大乘破相敎 ☞ │ 密意破相顯性敎 ☞ │ 泯絶無寄宗 │
│ 一乘顯性敎 ☞ │ 顯示眞心卽性敎 ☞ │ 直顯心性宗 │
│ │ │ │
│ │ │ │
│ │ │ │
│ │ │ │
│ │ │ │
└───────────┴───────────┴───────────┘
이와 같이 종밀은 종천도심으로 그의 교판을 설정하고 전간전수해 나간
다.
2) 全揀全收
全揀全收라는 용어는 전적으로 가려내고, 전적으로 수렴해는 낸다는 뜻
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에서 간별하고 수렴해 내는가? 종밀은 都
序 에서 전간전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교중에 一眞心으로써 염정제법에 대해 전간전수하니 全揀이라함은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이 단지 체를 정(定)하여 곧바로 영지가 곧 이 마음
의 자성이고, 나머지는 모두 허망한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이 아는 바가 아니고 心境 등이 아니고, 이에 이르러 性도 相도 아니
며, 불도 중생도 아니며, 四句偈를 떠나며 百非가 끊어진 것이고, 全收라
는 것은 염정제법이 이 心이 아님이 없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허망하게
혹업을 일으켜, 이에 사생과 육도, 잡다한 더러움의 국토라느니 하지만
마음이 깨달으면, 체로부터 용이 일어나 네 가지 등(四攝事나 四無量
心)·육바라밀 내지 사변(사무애변)·십력·묘신·정찰등 나타나지 않는
바가 없다. 이미 바로 이 마음이 제법을 現起하니 제법 모두가 곧 진심
이다. 마치 사람이 꿈에 나타나는 일은 그것들이 모두 다 사람인 것과
같이, 금으로 그릇을 만들 때 그릇그릇이 모두 금인 것처럼, 거울이 그림
자를 나타내면, 그림자 그림자가 다 거울인 것과 같다 ) 都序 , 大正藏 48권, 405 下, 然此敎中以一眞心性對染淨諸法, 全揀全收. 全揀者,
如上所說, 俱剋體直指靈知. 卽是心性, 餘皆虛妄. 故云, 非識所識, 非心境等, 乃至非性
非相, 非佛非衆生, 離四句絶百非也. 全收者, 染淨諸法無不是心, 心迷故妄起惑業, 乃
至四生六道, 雜穢國界. 心悟故從體起用, 四等六度, 乃至四辨十力, 妙身淨刹, 無所不
現. 旣是此心現起諸法, 諸法全卽眞心. 如人夢所現事, 事事皆人. 如金作器, 器器皆金.
如鏡現影, 影影皆鏡.
라고 한다. 그러
므로 종밀은 一眞心으로 전간하고 전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전간에서는
일진심으로 비판되어 지고, 전수에서는 일체 대상을 다 긍정하여 그 절
대적인 것 속에 다 섭수한다는 것이다. 도서 에서의 이 전간전수는 원
인론 의 논리 전개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 전간전수에 대
한 荒木見悟의 해석은 그 의미 이해를 더해 준다. 생각컨대 혼돈의 시
대사조를 일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관점을 강력히
밀고 나아가며 破邪顯正에 아주 첨예하고, 여타의 입장을 모두 허망한
것으로 배척하는 분명히 판가름하는 태도도 가능하고, 또한 가능한 만큼
구체적인 시대색과 개별적 특성을 불식하고, 영원의 相 아래로 돌아서서
상호의 마찰을 줄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종밀은 그 어떠한 것
도 취하지 않고, 실재하는 종교 혹은 사상은 무릇 그 존재 의의를 인정
하면서 그 곳에 본말상하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 의해 모든 입장을 포
용해 갈려고 했다. 그 입장의 폭 넓음은 그가 화엄 - 선 의 본래적 위치
를 발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의 예리한 시각은 그가 圓覺 - 絶
對知 의 순수성을 保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종밀은 징관의 華嚴大疏를
얻었던 감격을 스승에게 告知할때 자세히 원류를 조사하여 밝히고, 두루
名體를 궁구하고 연후에 融會하여 本部를 이룬다. 전간전수는 만약 능히
이것을 精米하게 하려면 이미 百家의 文義를 두루 거느린다 고 말하고
(遙稟淸凉國師書) 또 都序 에서도 그런데 이 敎중에는 一眞心性으로 전
간전수한다 고 하고, 全揀은 四句百非를 끊은 本體的靈知를 가리키고, 全
收는 染淨諸法은 모두 眞心에서 現起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405下)
原人論 의 全揀全收가 破斥 → 直顯 → 會通이 되는 것은 一見으로도
명료하다. ) 荒木見悟, 佛敎と儒敎 (京都 : 平樂寺書店, 1963), pp. 163∼164.
종밀은 자신의 교판에 따라 종천도심의 순서로 전간전수해 나가는 분
명한 학문적 논리 전개 방식을 통해서 그의 회통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 全揀全收에 관한 내용은 정순일, 종밀의 會通思想硏究 (한국 불교학 8집, 1983)을
참조할 것.
그래서 原人論 에서는 本覺眞心이라는 본체론적 인식론적 개
념으로 전간전수하고 있다.
3. 原人論 의 사상사적 의의
1) 교판의 확장
중국 불교의 교판 연구의 맥락에서 고찰해보면 교판의 문제를 유교와
도가로 확장한 점에서 종밀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가르침을 분류하는
데에 있어 그의 특별한 안목이 무엇이든지 간에 교판이란 전형적으로 불
교의 가르침에서 (어떤 사상적 입장에서) 배타적으로 적용하는 기획이
다. 비록 外敎로서 (불교의 內敎에 적용한)다섯 가지 범주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판의 문제를 二敎에 확장한 것이고, 이것
은 그 사상적 가치를 불교와 동등하게 儒·道 를 자리매김 함으로 가능
한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儒·道·佛은 지극한 성인이고, 때와 근기에
따라 교법을 시설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 原人論 , 708上, 然孔老釋迦, 皆是至聖. 隨時應物, 設敎殊塗.
라고 말한다. 종밀은 여기에서
불교를 삼교에서의 차이를 설명하는 합당한 수단으로서 사용한다. 종밀
이 儒敎와 道家보다 불교를 최상의 가르침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이지만, 특히 주목 할 만한 것은 二敎에 대한 그의 태도가 호의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비록 그는 儒·道 二敎에 대해 배타적으로, 임시적인
것으로써 불교보다 열등한 범주에 자리매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같은 담론의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비록 그 구체적인 표
현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세 성인이 깨달은 진리는 보편
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 Gregory, Peter N.,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p. 256∼257. Gregory, Peter N.은 Chapter
Ten : CONFUCIANISM AND TAOISM IN TSUNG-MI'S THOUGHT 에서 종
밀이 外敎인 儒·道 二敎를 포함한 교판의 확장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며 서술하
고 있다.
화엄 전통에서 종밀의 선조들은 예를 들면 智儼, 法藏 뿐 아니라 澄觀
도 그의 교판의 범주에 유교와 도가를 넣지 않았다. 慧苑은 화엄의 교
학을 논할 때 그 사상적 입장이 항상 내외에 겸하여 통하는 것으로 많은
선현의 교판을 비판 했을 뿐 아니라 법장의 오교판을 고쳐서, 寶性論
에 의거하여 사종교판을 세우고, 혹은 십현문에 德相, 業用의 兩重 十玄
門을 여는 등, 그의 사유 방식에는 師說과 다른 점이 있다. ) 張愛順, 華嚴敎學史に於ける慧苑の敎判 (印度學佛敎學硏究印佛硏, 36-1, 1987.), p. 68.
法藏의
부당하게 중상된 제자인 혜원에 의해 만들어진 사교판에 대해 징관이 비
난을 퍼부은 주된 반대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첫째 범주에 비불교적 가르
침을 구성하고, 불교와 邪道를 혼동시킨다는 것이다. 그 비난은 심각한
것이었으며, 혜원이 사후에 화엄 계열에서 추방되고, 이단이라 낙인 찍히
게 되는 주된 이유중에 하나가 된다. ) Gregory, Peter N.,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 256.
종밀은 原人論 에서 그것들이 인간의 경험과 윤리적 행위의 궁극적인
존재론적 기초를 드러낸 것에 한하여 儒·道를 査定하기 위해서 여러 가
지 불교의 가르침과 함께 그의 교판을 儒·道에로 확장한다. 이 계급적
조직에서 유교의 해답은 심지어는 불교에 기초하는 가장 피상적인 설명
(기초적인 도덕적 業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더 아래에 자리되어 진다. 그
러나 그러한 자리매김이 儒敎에 대한 폄하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종밀
이 그의 글에서 유교에 대해 제기하는 비판을 분석함에 있어서 유교의
도덕적 견해를 거부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그
가 거부하는 것은 그 견해를 정당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사실상 종밀은
논의를 계속하여 인간과 근원에 대한 가르침에서 불교의 업설이 우주의
고유한 도덕적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확실히 유교보다
우월하다고 한다. 유교의 도덕적 가르침에 대한 실천은 그러므로 불교의
도덕적 가르침의 실천과 마찬가지로 소망스러운 인간의 재탄생을 확실케
하는데 효과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종밀은 유교의 도덕적 가치를 정당화
하기 위해 불교의 業說을 사용한다. 참으로 종밀이 근본적으로 불교에
귀의하는 근거중의 하나가 유교의 도덕적 질서보다 불교가 더 일관성있
고 설득적인 정당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 Gregory, Peter N.,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 265.
종밀의 사상은 서론
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融會·평화의 사상이다. 안록산의 난 이후 정
치·사회적으로 와해되어 가는 환경속에서, 사상적으로는 삼교의 반목과
대립의 상황에서 원인론 은 저술된 것이다. 종밀은 당시의 諸 사상을
여덟가지로 분류하고 그 핵심적 교리를 낱낱이 들어 비판하고, 그가 신
념하는 본각진심의 여래장 사상으로 회통시켜 나간다. 물론 그는 原人
論 에서 儒·道 二敎와 불교의 諸 사상에 우열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유자로서 학문을 시작하여 제 사상들을 익히는 학문적
편력속에서 그는 외교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종밀은 제
사상에 대해 비판하면서 또한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가 신념
하는 사상의 정당성을 기술해 나간다. 종밀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종교가·사상가로서의 여실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元代의 화
엄학자 圓覺은 原人論 의 주석서인 原人論解 에서 흐름을 尋求하고
근본을 討究함을 쫑아 그 귀취를 얻음에 이르른 者는 가히 드물다. …
일찌기 배휴는 여래는 敎說之主이고, 종밀은 會通之人이라고 말했다 ) 圓覺, 原人論解 속장경 104 권, 215 上, 至若尋流討本而得其歸趣者, 蓋亦鮮矣. …
裵相國嘗云, 如來爲說敎之主, 吾師爲會敎之人.
라고 하여 종밀을 회통의 대가로 평가하고 있다.
제 사상의 회통이란 현대라는 시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현대의 다양한 종교 공존의 현상은 종교 다원 현상이라는 용어로 말해
지기도 한다. ) H. 카워드 著, 한국종교 연구회 譯,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서울 : 서광사,
1990), p. 4∼5.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해 왔고 또 공존하고 있는 역사, 사회적인 현
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으로 현상에 강조점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은 현대의 숙제가 되
었다. 동양사상에서 회통적 성격은 하나의 조류이기도 하다. 동양의 사유
방식은 진리에 대한 통찰이라는 유사성을 지닌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진
리를 法이라 하고, 유교에서는 理 ― 이(理 ; 원리) 와 기(氣 ; 실체) 의
이분법에서 볼 때, 단지 합리적 질서를 의미했던 중국 고대의 理 개념은
대승불교의 초절대성, 즉 드미에빌의 견해처럼, 신플라톤주의에서의 유
일(One)'과 유사한 개념으로서 대치됐던 것이다. ) 아서라이트著, 양필승 譯, 중국사와 불교 (서울 : 신서원, 1994), p. 113.
― 도가에서는 道라
고 이름한다.
거시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회통의 성격을 이기영은 동양의 諸宗敎들은
일반적으로 독선적 배타성을 띤 종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 상호간
에서는 서로 용어가 다르고 체계가 다를 경우에라도 같은 眞理가 밝혀지
고 있을 때, 내 것 네 것 가림이 없이 도를 硏磨하는 理想을 따라 개인
의 인격함양, 가정의 평화, 사회의 안녕 질서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자연
의 진리에 순응하는 궁극적 목적을 공유하는 방향을 달리고 있었다. 그
러는 과정에 儒·佛·道 삼교간의 교섭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도되었
으며, 부지불식간에 삼교는 각기 그 이름과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그 내
용에 있어서 공통된 이상을 표방하였으므로 상호간에 소위 서양의 宗敎
戰爭 과 같은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 이기영, 종교와 평화 ( 21세기 문명과 불교 , 서울 : 동국대학교, 1996), p. 163.
라고 하여 동양 삼교
의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동양 삼교에 대한 성격은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전통사회와
는 크게 다른 현상으로 나타난다. 종교에 대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에
대해 길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다종교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
통사회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사회구성원 다수를 묶어주는 하나의 지배적
인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통해 사회통합을 기할 수 있었다. 중
국과 한국에서는 유교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그러했다. 둘째, 전통사회에서는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낮았고, 포교나 신
앙의 자유가 현대 사회만큼 보편화되지 않았다. 인쇄물의 보급도 매우
낮았으며 오늘날과 같은 대중 매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종교다
원성의 문제는 극히 소수 엘리트 지식인들의 관심사일 뿐, 교육과 정보
와 지식이 보편화된 오늘날과 같이 모두의 문제로 등장하지는 않았던 것
이다. 셋째, 문화간의 접촉이나 종교간의 만남이 근대 이전에는 극히 제
한적으로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과 같은 동서양의 만남도 없
었으며 전 세계의 종교와 문화들이 자유롭게 접하지 못했으며, 문화인류
학이나 비교종교학 같은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학문이
성립하게 된 것 자체가 이미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근대 사
회의 상황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사회의 지식인들
에게는 현대인들에게 상식화되다시피 한 역사의식이 희박했고, 이에 따
른 역사상대주의나 문화상대주의적 사고 또한 낯선 것이었다. ) 길희성, 종교 다원주의의 두 가지 형태 ( 한국 불교의 좌표 녹원스님고희기념,
1997), p. 785.
이와같
은 전통 사회와 현대사회라는 차이성 속에서 새로운 종교·사상간의 입
장이 요청된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이 역사상대주의나 문화상대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종교적 상대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에 대해 종교다원주의가 말해진
다. 종교다원주의란 용어는 1960년대 말부터 종교신학자들에 의하여 제
기됐다. 이 용어의 이전에는 물론 종교대화 또는 대화운동이 우리에게
친근했었다. 종교대화운동에서 다원주의로 오는 데는 대체로 ① 타 종교
의 인정 단계와, ② 타 종교와의 대화 모색의 두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
르렀다. ) 윤이흠, 종교다원주의의 불교적 조명 ( 21세기 문명과 불교 , 동국대학교, 1996), p.
243.
이러한 종교다원주의가 서구신학의 외형적 변형이라 하더라
도 종교대화의 요청은 시대적인 것이다.
종교간의 대화의 목적은 이해이다. 종교간의 대화는 상대방을 제압한다든
지 서로 완전한 합의에 이르거나 어떤 우주적·보편적 종교에 도달하는 것
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언어로써 자기 고유의 통찰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서로간의 무지와 오해의
심연에 다리를 놓기 위한 의사 소통에 있다. ) R.파니카 著, 김승철 譯, 종교간의 대화 (서울 : 서광사, 1992), p. 37.
이기영은 종교와 평화 라
는 글에서 종교를 믿는 마음과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은 종교를 믿는 마음보다 한층 더 知的으로 우월하며
그 마음의 幅과 깊이가 더 넓고, 깊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 이기영, 종교와 평화 ( 21세기 문명과 불교 , 서울 : 동국대학교, 1996), p. 161.
고
하며, 종교를 믿는 마음과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치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에 종교와 사상에 의해
서 조화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으로 상호간의 분열
을 초래한다면 종교와 사상의 의미와 가치는 크게 퇴색 될 것이다.
原人論 에서 교판의 확장을 통한 외교에 대한 수용은 그 사상적 수용을
넘어서, 저마다 다른 사상이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밀의 기본적인 입장은 다
종교 사회에서 화해의 장을 열 수 있는 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종밀은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속에서 原人論 의 말미에 불교의 다섯 등급
의 교리와 함께 儒·道 를 병합하여 인간의 근원에 대한 설명을 열어보인
다. 儒·道·佛이 통합되어질 수 있는 조직을 창조함에 의해 종밀은 삼교간
의 초기 담론의 쟁론적인 경향을 넘어설 뿐 아니라 (불교의 용어가 주입된)
유학의 용어가 이후 송 왕조의 유학의 부흥속에서 소생되는 방법론을 제시
하여 준 것이다. ) Gregory, Peter N., Tsung-mi and signification of Buddism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 261.
2) 宋·明 道學에 미친 영향
(1) 주렴계의 태극도설
먼저 原人論 의 사상적 영향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송대 신유학의
開祖인 周濂溪의 太極圖說에 대한 영향이다. 태극도설의 성립에 대한 사
상적 영향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說이 있다. (儒家正統說, 道家影響說,
佛敎影響說) 그리고 불교의 영향설에 있어서도 宗密의 都序 를 그 예로
드는 경우가 있다. ) 즉 도서 에서의 迷悟十重圖를 취해서 거기에서의 을 眞如로 ⊙를 阿賴耶識으
로 圖示하고, 아뢰야식속에는 眞妄이 화합하여 있다고 하였다. 이 眞如, 그리고 眞
妄의 화합은 無極, 太極, 兩儀에 해당한다. 그래서 濂溪의 太極圖說이 宗密의 都
序 에 의한 불교의 영향이라고 하는 설이다.
그러나 原人論 에 의한 영향설 ) 苒雲華, 宗密 (臺北 : 世界哲學家叢書, 東大圖書公司印行, 1988) pp. 257∼258.
형이상학 방면에서의 신유가의 노력은 주로 易傳 에서 우주론의 근거를 찾는 것
이다. 주렴계의 태극도설이 易·繫辭傳 에서 온 것이라면, 자연히 유가 고유의 전
통으로 전연 문제가 없겠지만, 周濂溪의 태극도설의 연원은 오히려 佛道兩家에 섞
여 있다. 근래의 연구에서는 太極圖 의 도식의 순서는 道家의 鍊丹圖를 본뜬 것이
라는 점에는 대체로 異意가 없다. 그러나 太極圖說 의 해석에 있어서는 불가의 영
향을 받고 있다. 이점을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淸代학자 毛奇齡(1632∼1716)으로
그는 圖說 에서의 많은 용어가 原人論 과 相似하다고 말한다. 후대의 학자들은
周濂溪에 대한 종밀 原人論 의 영향을 相繼하여 지적하고 있다.
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
면 태극도설의 도형이 道家의 鍊丹圖를 본뜬 것이라고 하면 그 내용면에
있어서 원인론 은 元氣의 사상을 다루고 있고 또한 일부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原人論 에서 종밀은 객관화된 세계를 일원기와 같은 것으
로 보고 기개념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종밀 자신이 사람이
품부받은 기의 근본을 추구하면 혼일한 원기이며, 일어나는 바의 마음의
근본을 궁구해 보면 靈心이라는 것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기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기의 개념을 궁극적으로는 윤리·도
덕의 문제와 心의 인식 문제에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볼수 있다. … 그리고 종밀은 元氣가 전식에 포함되는 것, 감각적·이성
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대상계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아뢰야식
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다시 말하면 元氣는 대상계와 8식이 변
화하여 드러내는 대상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종밀은 心과
境은 주관과 객관이며 인식주체와 대상을 설정하면서도 그 주체는 인식
주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그는 종국에는 영심의 인식으로 모든 것
을 환원하여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은 인식의
대상세계인 경을 다시 둘로 나누어 심식과 화합한 인간과 심식과 화합하
지 않은 천지만물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종밀은 儒·道의 원기설을 불교
의 심식이론 속으로 편입시키면서도, 기의 세계의 객관성을 제한적이기
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 리기용, 당대후기유학과 종밀의 원인론 비교 (백련불교논집5·6, 1996), pp. 208∼209.
그러나 품부 받은 바의 기를 전전 추본한 즉 혼일한 원기요, 일어나는 바 마음을
전전 궁원하면 곧 진일한 영심이다. … 진여의 일심이 움직이기 시작한 최초의 상
태로부터 나누어져 心과境 둘이 되는데, 心은 이미 세밀한 것으로부터 조잡한 것에
이르러 끊임없이 망령되이 헤아리고 업을 짓는데 이른다. 境 또한 미미한 것으로부
터 확연히 드러나는 것에로 이르러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이에 하늘과 땅이
되기에 이른다. … 이에 근거하면 심식이 변화한 境은 두 부분이 되는데 하나는 심
식과 화합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심식과 화합하지 않은 하늘과 땅, 산과 강, 나
라와 도읍이다.(709 中∼下, "然所稟之氣展轉推本, 卽混一之元氣也. 所起之心展轉窮
源, 卽眞一之靈心也. … 從初一念業相, 分爲心境之二. 心旣從細至粗, 展轉妄計乃至造
業. 境亦從微至著, 展轉變起乃至天地. … 據此則心識所變之境, 乃成二分. 一分卽與心
識和合成人. 一分不與心識和合, 卽成天地山河國邑.")
그리고 두번째 단원인 斥偏淺에서는 소승교에 대한 대의와 그 비판의
내용을 싣고 있는데, 自註에서 成·住·壞·空의 불교 우주론을 설명하
면서 도가의 氣論에 배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계겁, 이것을 가리켜 도교
는 허무대도라 말한다. 그러나 道體는 고요히 비추고, 신령스럽게 통하는
것이지 허무가 아니다. 노자는 혹은 그것에 미혹하고, 혹은 방법적으로
말한 것으로 인욕을 끊도록 힘쓰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계를 가르켜
도라 하고, 공계중의 대풍을 곧 그 혼돈의 一氣라고 하여 그것을 道가
하나를 생한다고 말한 것이다. 金藏雲이라는 것은 氣形의 비롯됨이니 곧
태극이다. 비가 내려 흐르지 않아 음기가 응축되고, 음양이 서로 합하니
바야흐로 생성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梵王界 내지 須彌라는 것은 그 天
을 말하고, 滓濁은 地를 말한다. 곧 하나가 둘을 생한 것이다. 이선에서
복이 다해 하생한 것이 인간이다. 즉 둘이 셋을 생한 것이니 삼재가 갖
추어 진 것이다 ) 原人論 , 709 上, 空界劫中, 是道敎指云虛無之道. 然道體寂照靈通, 不是虛無. 老
氏或迷之, 或權設務絶人欲, 故指空界爲道. 空界中大風卽彼混沌一氣, 故彼云, 道生一
也. 金藏雲者, 氣形之始, 卽太極也. 雨下不流陰氣凝也. 陰陽相合方能生成矣. 梵王界
乃至須彌者, 彼之天也. 滓濁者, 地. 卽一生二矣. 二禪福盡下生卽人也. 卽二生三, 三才
備矣.
라고 하며 이러한 과정이 劫劫生生 윤회함이 끊임이
없다고 하고, 그 無終無始함이 우물의 도르래와 같다고 한다. 종밀은 도
교는 단지 지금의 이 세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한번의 공겁
을 허무혼돈일기 등이라 말하여, (혼돈일기가)비롯됨의 근원이라고 말한
다. 그러나 공계 이전에 일찌기 成·住·壞·空의 숱한 과정을 거치며,
또한 마치고 다시 시작함을 알지 못하므로, 불교법 가운데의 낮은 소승
교가 이미 외전의 깊은 설을 넘어선 것이다 ) 上同, 709 中, 道敎只知今此世界未成時一度空劫, 云虛無混沌一氣等, 名爲元始. 不
知空界已前, 早經千千萬萬遍成住壞空, 終而復始. 故知佛敎法中小乘淺淺之敎. 已超外
典深深之說.
라고 한다.
종밀은 기론에서 근원으로 이름되는 원기, 혼돈일기를 공계중에 一風에
의한 비롯됨이라는 해석으로 기론의 근원에 대한 것을 불교 우주론의 내
부에 연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불교의 시간 개념이 이미 현세라
는 시간대를 넘어서 해석하는 것과, 별업과 공업이라고 하는 업설에 대
한 문제가 윤리적 문제와 연관되어져서 해석되어지는 맥락에서 기론의
불충분한 해석은 지적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계중에 대풍이 일어나는 것
을 混沌一氣라고 하고, 형기의 시초인 금장운을 태극이라고 하는 등, 기
론의 그 해석은 지금 이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는 맞다고 하여 그 기론
해석의 일부를 긍정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 해석은 세계의 未成
時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미흡한 해석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종밀은
기론에 대해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上記의 문장에서 보이는 여러 용어들과 그 우주론의 전개 방식
은 종밀 이후 道學家의 우주발생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소강절과
주자의 세계 생성이론에서는 거의 이것과 동일하다 ) 馮友蘭 著, 中國哲學史 下 (香港 : 三聯書店有限公司, 1989), p. 241.
고 한다.
종밀은 原人論 의 서문에서 도가의 근원에 대한 해석을 멀리는 혼돈
의 一氣가 음양의 둘을 낳고, 그 둘이 천지인 셋을 낳고, 그 셋이 만물을
낳는데, 만물과 사람은 모두가 氣를 근본으로 한다 ) 上同, 708 上, 遠則混沌一氣剖爲陰陽之二, 二生天地人三, 三生萬物, 萬物與人皆氣
爲本.
라고 하여 도가
사상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요약하고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혼돈일기라는 것은 아뢰야식의 相分에 해당되는 것이
다. 즉 품수받은 바의 氣를 전전하여 근본을 추궁해보면 混一의 元氣이
고 … 이 원기 또한 마음의 小變인 것으로 앞서 전변된 바의 식이 나타
내는 境이고 이것은 아뢰야식의 상분에 所攝되는 것이다. ) 上同, 710 下, 然所稟之氣展轉推本, 卽混一之元氣也. … 元氣亦從心之所變, 屬前轉
識所現之境, 是阿賴耶相分所攝.
그리고 모
든 것이 일념에서 비롯하여 전전된 세계라고 말한다. 처음에 일념업상
에서 심경의 둘로 나뉘어지고, 心이 미세한 것에서 거친 것에 이르고 전
전하여 망념되이 헤아리며 업을 짓는 것에 이른다. (앞서 예를 들어 서
술함) 대상 또한 미세한 것에서 거친 것에 이르고, 전전하여 변해 일어
나 천지에 이른다. ) 上同, 710 下, 從初一念業相, 分爲心境之二. 心旣從細至 , 展轉妄計乃至造業.(如
前 列)境亦從微至著, 展轉變起乃至天地.
종밀은 이와같이 일진영성, 일심, 본각진심으로부터 세계가 전전되어져
나온 것이라고 하고 自註를 붙여서 儒·道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즉 그
처음에 태역에서 오종운전하여 이에 태극에 이른다. 태극은 양의를 낳는
다. 유교(그것)는 자연대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대도(이것)를 眞性이
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단지 일념의 能變見分이다. 도교(그것)는 원기라
고 말한다. 그러나 원기(이것)를 일념이 처음 움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단지 경계의 相이다. ) 上同, 710 下, 卽彼始自太易五重運轉乃至太極, 太極生兩儀. 彼說自然大道, 如此說
眞性. 其實但是一念能變見分. 彼云元氣, 如此一念初動. 其實但是境界之相.
이와같이 종밀은 기론인 허무대도설과
원기설을 불교의 업상에서 轉하여 나온 능견지식과 소견지경에 배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原人論發微錄 에서는 상기의 태역설과 儒·道 이교에
대해서 역위에서 氣象이 未分한 것을 태역이라 이름하고, 원기 시초의
싹이 되는 것을 태초라 이름하고, 氣形의 단초가 되는 것을 태시라 이름
하고, 기형이 변하고 기질이 있게 되는 것을 태소라 이름하고, 기형과 기
질이 모두 갖추어진 것을 태극이라 이름한다. 이 오종의 운전은 미세한
것에서 거친 것에 이르는 것을 예로 든 것이다. 彼說 이하는 도교를 가
리킨다. 능변견분이란 즉 第二 轉相을 말한다. 원기는 儒·道 이교가 모
두 종지로 하는 것이다. 일념초동이란 즉 第一의 업상을 말하고, 境界之
相이란 즉 第三의 현상을 말한다 ) 淨源, 原人論發微錄 속장경 104 권, pp. 212 下∼213 上, 易緯曰, 氣象未分謂之
太易, 元氣始萌謂之太初, 氣形之端謂之太始, 形變有質謂之太素, 形質已具謂之太極.
彼五種運轉, 例此從微至著也. 彼說下, 指道敎也. 能變見分卽第二轉相. 元氣, 儒道二
敎皆宗之, 一念初動卽第一業相. 境界之相卽第三現相耳.
라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
므로 자연대도는 能變見分으로 起信論 의 九相次第에 배대하면 轉相이
되고, 원기는 境界之相으로 現相에 해당된다. 이러한 설명을 두고 加地哲
定은 태극도설 과 내용적으로 유사하다고 언급한다. ) 加地哲定, 宗密の 原人論について ( 密敎文化 13號, 1950), p. 31.
그리고 이 글은
종밀이 漢易 이론으로 불교를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양한 시대의 6경에는 모두 緯가 있었다. 위는 곧 緯書(경서에 가탁하여 미래의 일
을 설명한 책)로서 유가 경서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서이다. 그 가운데 易緯 는
주역 의 경전을 해석한 것으로, 유행하자마자 재빨리 한역의 주요 유파를 형성하
여 그 영향력이 아주 컸다. 건착도乾鑿度 는 역위 가운데 대표작이다. 건착도
는 우주의 형성을 태역·태초·태시·태소의 네 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태역은 氣
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단계이고, 뒤의 셋이 뒤섞여 나뉘지 않은 것을 태극이라고
한다. 이 태극은 氣質이 갖추어진 단계로, 먼저 태역이 있은 뒤에 태극이 나온다고
하였다. 건착도 는 건곤 2괘의 상이 우주의 기원과 연관되며 그 발생의 순서는 태
역→태극→음양 2기 및 천지라고 보았다.
廖名春·康學偉·梁韋弦 著, 심경호 옮김, 주역철학사 (서울 : 예문서원, 1994),
pp. 197∼200 에서 재인용.
상기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종밀은 기론에 대해 제한적으로 수용하
고 있고, 기론의 허무대도, 원기설을 成·住·壞·空의 우주론에 배대해
설명하고, 주역의 태역설을 이용하여 起信論 의 九相次第에 배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原人論 이 사상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
에는 종밀이 회통의 근거로 삼고 있는 기신론의 여래장연기설에 대한 영
향이다. 이 기신론의 여래장연기설에 의한 사상적 영향을 고찰해 보면,
기신론의 사상은 一心에서 心眞如門과 心生滅門 二門이 생겨나고, 또 이
심진여문에서는 離言眞如와 依言眞如가 생겨나며, 심생멸문은 알라야식
으로 하여금 만물을 전개시키게 한다는 것이 그 사상의 대강이다.
그런데 주렴계가 말하는 무극과 태극은 심진여문의 이언진여와 의언진
여를 방불케 하는데, 극론하면 無聲·無臭·無象·不可說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무극은 四句百非를 모두 떠나 있는 심진여문의 이언진여이며,
태극으로부터 이기오행을 전개시키고 있는 것은 심생멸문의 알라야식에
서 만물이 전개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久保田量遠 著, 최준식 譯, 중국 儒佛道 三敎의 만남 , (서울 : 민족사, 1990), p.
180.
이것으로 미
루어볼 때 도서 나 원인론 내에서의 여래장(기신론) 사상이 공히 영
향을 미치고 있지만 원인론 에서는 기론의 취급과 제한적인 인정 즉 기
론의 허무대도, 원기설을 成·住·壞·空의 불교 우주론에 배대해 설명
하고 있는 점, 주역의 태역설을 이용하여 起信論 의 九相次第에 배대해
서 설명하고 있는 점, 원기설을 인정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심의 소변으로
규정하며 기론을 취급하는 점에서 원인론 의 영향설이 더 유력할 것이
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또한 종밀의 영향설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 勞思光 著, 鄭仁在 譯, 中國哲學史 , 宋明篇, (서울 : 探求堂, 1987) p. 158.
노사광은 모기령의 불교 영향설( 도서 와 원인론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
다.이것( 도서 의 십중도)이 가리키는 것은 마음 혹은 주체에 있는 것일 뿐 우주론
과는 무관하며 丹의 비결과는 더 더욱 무관하다. 대체로 이 그림은 검은색과 흰 색
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점 이외에는 진단과 주돈이의 그림과는 모든 점에서 다
르다. 또 검은 색 반, 흰 색 반으로 만든 그림은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일로서,
유가·불가·도가의 특색이나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또한 원인론 은 본시
유가와 도가의 설을 깨뜨리는 것을 위주로 삼았으며, 거기에서 논급된 元氣 등의
문제들은 모두 상대방이 논한 敵論 설들을 예로 들어 말한 것이다. 종밀의 뜻에는
일체의 우주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뜻의 원리 나 본체 는 모두 아뢰야식이 변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하나하나 그것을 깨뜨려 없앴다. 이 가운데에 예
로 든 유학자의 설 중에 설령 주돈이의 설과 서로 비슷한 곳이 있다 하더라도 역
시 주돈이의 설이 종밀에게 근본을 두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2) 양명학의 양지론
논자는 본 장에서 종밀의 본각진심의 사상이 양명의 심즉리 학설의 본
체가 되는 양지론에 대한 영향에 관련하여 두 가지 면에서 고찰하려 한
다. 첫째는 양지 개념의 연원에 대한 고찰이고, 둘째는 心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다.
먼저 양명학의 사상적 대의를 고찰해 보면 양명학의 골자는 心卽理에
있고, 그의 知行合一이나 致良知는 모두 이 심즉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이론이다.
양명의 心卽理는 주자의 性卽理와는 대별되는 것으로, 주자학에서는 心
은 性情을 통섭하는 것으로 그리고 理氣, 性情의 양면을 머금고 있는 것
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理氣의 엄격한 구분이 있다. 또한 理는 所以然(존
재근거, 원리)으로 그리고 所當然(도덕원리, 가치근원)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理가 性, 즉 본연지성으로서 性卽理이다.
양명학에서의 心이란 윤리적 심정으로, 인간의 자연스런 심정이 행위로
드러날 때 그것을 理라 하고, 理氣의 관점에서는 良知가 곧 理며 氣로서
理氣를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주자학에서 心과 理를 생각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반대한다.
다음 致良知와 卽物窮理라는 것은, 주자학이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
구하여 知를 완성하는 인식론(格物致知)임에 비해서 치양지를 주장하여
외부 사물의 간섭이나 가리움을 제거해야 자신의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양지가 이루어지고 그래야만 사물은 바르게 드러난다고
한다. 또한 사사물물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양지를 사물 속에
발휘하여 마음의 양지와 사물 속의 理를 일치시킨다. 그래서 실제 행동
에서 즉각으로 대응 결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知行合一과 知先後行이라고 하는 것은 양명에서는 지와 행을 하
나의 두가지 면으로 보는데, 知는 心之知이고 行 또한 心之行으로 心卽
理 인 心에 통일되어 있으므로 知行合一이다. 그렇다면 그의 심즉리 학설
에서 心體가 되는 良知 개념의 연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중국 유학의 심학에 대한 연원은 주로 맹자와 禪 사상에서
찾고 있다. ) 宋在雲, 陽明哲學의 硏究 (서울 : 思社硏, 1991), p. 14.
유가 방면에서 양명학의 연원을 孟子에서 찾는다고 하는
것은 맹자 에 보이는 다음의 글 들에서다.
입이 맛에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으며, 귀가 소리에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色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 마음에
이르러만 홀로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가 없겠는가!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理와 義를 말한다. ) 孟子 告子章句 上, 口之於味也, 有同嗜焉. 耳之於聲也, 有同聽焉. 目之於色也,
有同美焉. 至於心, 獨無所同然乎! 心之所同然者, 何也. 謂理也. 義也.
그래서 맹자의 心은
똑같이 그러하게 여기는 理·義를 아는 마음이다. 맹자의 知는 감각기관
과 心이 合作된 결과이다. 마음과 감각기관이 합쳐져서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으로 이 知는 곧 識知다.
사려하지 않고도 아는 바 그것은 良知요, 배우지 않고 능한 바 그것은
良能이다. 이는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바, 내가 본래 이것을 가진 것이
요, 밖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만물이 나에게 다 갖
추어져 있다. 내몸을 반성하여 誠意를 다하면 즐거움이 더할 수 없는 것
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나의 본심이다 ) 象山全集 , 권1, 與曾宅之, 所不應而知者, 其良知也. 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此
天之所與我者, 我固有之. 非由外 我也. 故曰萬物皆備於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此
吾之本心也. 宋在雲, 陽明哲學의 硏究 (서울 : 思社硏, 1991), p. 86 재인용. 밑줄
친 부분은 孟子 , 盡心章句 上에 나온다.
라고 하여 良知는 生得적인 것
으로 本心이며, 先天的인 것으로 도덕적 주체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良知 개념이 양명학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양명학이 선학에 영향을 입고 있음은 그의 개인적 편력에서 보아도 자
명한 것이다. 양명은 처음에 유자로서 주자학을 배우며 그 학문적 회의
끝에 선학에 들어가 방황하다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왕양명이 20∼30여
년 동안 禪家에서 방황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한 마디로 선학적 깨달음
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유·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선학적 깨달음 이라고 한 까닭은 그가 선가를 방황하면서
선가적 수련 과정을 겪은 뒤에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 김길락, 象山學과 陽明學 (서울 : 예문서원, 1995), p. 156.
양명이
불학에 대해 영향을 받은 사실은 일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양명의 心
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 양명이 전습록 에서 쓰고 있는 良知에 대한 설
명인 虛靈明覺, 昭明靈覺處, 明鏡, 照心, 恒照者, 本來面目 ) 宋在雲, 陽明哲學의 硏究 (서울 : 思社硏, 1991), p. 122∼123.
등에서 보
이는 것처럼 靈明不昧, 空寂眞心, 明明不昧, 靈知之心 등의 심에 대한 화
엄학의 용어들은 虛靈不昧 그것과 내용상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허영불
매는 陳榮捷의 말대로 澄觀, 宗密 등 화엄 사상가들의 말을 빌어 成句되
어진 것이라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 宋在雲, 陽明哲學의 硏究 (서울 : 思社硏, 1991), pp. 110∼111.
또한 양명은 良知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천지만물이 모두 나의 良
知發用의 流行에 있는데 良知를 넘어서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王陽明全書傳習錄 (正中本 89項), 天地萬物, 俱在我良知發用流行中, 何嘗有一物超
於良知以外. 錢 穆 等著, 中國哲學思想論集 , 宋明篇, -蔣夢麟, 陽明學說之淵源及
其影響 -(臺北 : 牧童出版社, 1976), pp. 296∼297 재인용.
라
는 의미는 心이 일체만물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良知라는 것은
心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心의 運用이고, 心의 流動이고, 천지만물이 모
두 良知에 있으며, 良知 외에는 一物도 없는 것이다. ) 錢 穆 等著, 中國哲學思想論集 , 宋明篇, -蔣夢麟, 陽明學說之淵源及其影響 -(臺
北 : 牧童出版社, 1976), p. 297.
또한 텅비어 영명하고 어둡지 않아 衆理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만 가지
일이 이로부터 나온다. 마음밖에 理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밖에 事가
있는 것이 아니다 ) 전습록 卷上, 徐愛 錄, p. 38. "虛靈不昧, 衆理具而萬事出, 心外無理, 心外無事.",
宋在雲, 陽明哲學의 硏究 (서울 : 思社硏, 1991), p. 109에서 재 인용.
라고 한다.
이 衆理를 갖춘, 虛靈不昧한 萬事에 응하는 心은 종밀 원인론 에서
일체유정이 모두 본각진심을 가지고 있고, 무시이래로 항상 청정함에
머무는 것이고 환희 밝아 어둡지 않고, 환희 깨달아 항상 아는 것이
다 ) 原人論 710 上, 一切有情皆有本覺眞心, 無始以來常住淸淨, 昭昭不昧了了常知.
라고 형용하는 본각진심, 그리고 일어난 바의 心도 전전하여 근
원을 궁구해보면 眞一의 靈心이고 실재를 궁구하여 말하자면 心 외에 다
른 법은 없다. ) 原人論 710 下, 所起之心, 展轉窮源, 卽眞一之靈心也. 究實言之, 心外的無別法.
라고 하는 글 속에서 眞一靈心이고 心外無別法이라는
종밀의 근원으로서의 본각진심 사상과 양명 심학의 良知 개념과의 유사
성을 알 수 있다.
Ⅴ. 결 론
논자는 종밀과 동시대 유학자인 한유와 이고의 불교 비판의 내용을 네
가지 텍스트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 주된 내용은 첫째 중국인 고유의
자대(自大)사상으로써 불교는 오랑캐의 법문으로 폄하하고, 둘째 정치적
인 면에서 임금의 수명과 연계해서 불교를 신봉한 임금은 오래 在位하지
못했으며, 불교의 탈세간주의는 사회적 현실적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면
모를 찾지 않는 윤리 도덕을 폐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세째 경제적인
면에서 사회 계급 가운데 農·工·商·士·佛·老가 있는데, 여기서 僧
侶, 道士의 집단은 불필요한 소비적 집단이라고 한다. 그들은 유학에서의
仁義가 그 변치않는 道라고 주장한다
그들 사상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에서는 韓愈는 선종의 도통설의 영향
을 받고, 李 는 性情 개념 등에서 심성론의 영향과 수양론에서의 漸修
적 입장을 취함을 살펴 보았다. 이상과 같이 동시대의 대표적 유학자인
한유와 이고의 불교 비판은 경제, 정치, 윤리면에 폐단 등의 지적이 주로
되어지고 있고, 또한 그들이 표방하는 유학 사상이 불교의 영향을 입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종밀의 당시는 안록산의 난 이후 정치·사회적으로 와해되어가는 환경
이었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의 모색으로 유교 사상에 대한 부흥과 재구
성을 위한 지적 공감대가 지식인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황이었다. 사상적
으로는 삼교의 반목과 대립의 상황에서 原人論 은 저술된다.
原人論 에서 종밀은 儒·道 二敎와 불교의 諸敎가 근본에 대한 궁구함
이 미흡하다고 하여 儒·道의 가르침은 미혹한 집착으로 규정하고, 불교
의 諸敎는 편벽되고 옅은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그 근본에 대해 궁구
함이 미흡한 제 사상들을 비판하고, 일승현성교에서 참다운 근원을 드러
내는 가르침으로 본각진심의 여래장 사상을 말한다.
成佛의 근거·천지만물의 근원·인식의 근거·수양의 근거로서 本覺眞
心 이라는 핵심 개념을 가지고 여래장 사상을 통하여 從淺到深, 全揀全收
의 기술적 전개 방식으로 삼교를 회통해 나가고 있다.
原人論 에서의 기론에 대한 취급은 儒·道의 敵論을 위한 것이기도 하
지만, 成·住·壞·空의 불교 우주론을 기론에 배대해 설명하는 것과 현
상 세계에 대한 기론적 이해의 내용에서 종밀은 중국의 기론을 제한적이
지만 인정하고 있다는 측면과 여래장연기설의 사상이 주돈이의 태극도
설 에 미친 사상적 영향일 것이라는 점을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양명 심학에 미친 영향에서는 양명의 심즉리 학설의 심체가 되
는 良知론의 사상적 연원에 대한 고찰에서 맹자와 불교의 영향을 살펴보
았고, 종밀의 本覺眞心과 양명의 心에 대한 용어 개념과 그 성격의 유사
성을 고찰해 보았다.
인도의 사유 방식이 인식론적이라고 한다면 중국인의 사유와 의식 구조
의 특징은 논리적 정합성을 중요시 하기 보다는 은유나 비유적 사고를
중요시하고, 직관적 사유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종밀 개인의 사상적
편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처음 유자로서 출발하여 제반 사상들을
섭렵해 나간다. 중국이라는 문화적 터전위에서 종밀의 사상은 氣論에 대
한 제한적 인정과 수용, 주역에 의한 설명, 장자 문구의 자기 언어화
그리고 본 논문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盂蘭盆經疏 에서 효도를 최
고의 덕목으로 평하고 있는 것 ) 苒雲華, 宗密 (臺北 : 世界哲學家叢書, 東大圖書公司印行, 1988), pp. 97∼98.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중국 고유의
사상에도 당연히 깊은 사상적 영향을 입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사상
을 머금고 있으면서 화엄학 5조이며 하택종의 선사로서 종밀의 사상은
이후 宋·明 道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종밀은 사회적으로 사상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가
原人論 의 서문에서 수십년 동안의 배움에 항상 하는 스승이 없었
다 ) 原人論 , 大正藏 45권, 707 下 ∼ 708 上, 數十年中學無常師
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그는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의 여
정을 거친다. 그는 原人論 에서 당시의 삼교를 8가지 사상적 내용으로
교판하여 비판하고 회통시켜 나간다. 종밀의 외교에 대한 수용은 그 사
상적 수용을 넘어서, 저 마다 다른 사상이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인간
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밀의
입장은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 화해의 장을 열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종밀이 原人論 에서 제출한 融會·平和의 사상은 삶의 본질
에 대한 성찰의 면모와 역사적 현실속에서 종교와 학문이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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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FOR Yuan Yin Lun(原人論) OF GU -F NG Z NG-M (圭峯宗密)
Kim, Kang
Master s Thesis
Dept. of Buddhist Studies
Dongguk University
Gui-Feng Zong-Mi(圭峯宗密; 781-840) was the man in the middle
T ng(唐) period in main china, he, as the 5th patriarch in Hwa-Yen
sect and Chan master in He-Ze(荷澤) sect as well, was famous for
the Chan-Kyo(禪-敎) accordance of thoughts in Dou-Xu(都序) and
the unity of three teachings(三敎) in that era. These two thoughts
are those of harmony and peace which made the dispute pacified,
arranged and integrated in those days.
The title of Yuan Yin Lun(原人論) means the scrutinizing and
investigating the origin and existence of human beings. Zong-mi
criticized and harmonnized the Confucianism, Taoism and all Buddist
thoughts in this Yuan Yin Lun(原人論). Even though it covers only
four pages of Shinsh Daiz kyo(新修大藏經), the intensive contents
and the analysis of doctrins are profound.
Existing researches which begun from understanding content of
Yuan Yin Lun(原人論) and connection with chinese thoughts, are
studying for the relation to history of human nature (人性論史) and
the influence of thought to Sung·Ming Tao Xue(宋·明 道學).
Zong-mi was confucianist in the beginning, we can find the his
intensive connection with chinese thoughts through interpretation by
Zhou-Yi(周易) and usage of Lao-Chuang(老莊) s terms which can be
found in his work.
So in Unit Ⅱ, I consider the insufficience of existing researches in
confucianist s critics of Buddhism which give the writing good
background as to H n-Y (韓愈), L -A (李 ), and Buddhist influence
seen in the research.
In Unit Ⅲ, consider the background and time of writing Yuan Yin
Lun(原人論), in chapter one in unit Ⅳ, analyze critic content which
according to the development course of script, describe what is
Ben-Jue-Zhen-Xin(本覺眞心) the content of unity after all.
In chapter two, deal with Cong-Quan-Dao-Shen(從淺到深), Quan-
Jian-Quan-Shou(全揀全收) as Zong-mi s logic development method,
comparing with the Kyo-Pan(敎判) of Dou-Xu(都序).
In Chapter three, interpret the meaning of thought of Kyo-Pan(敎判)
expansion by the meaning of thought in the context of the his
accepting other teaching(外敎) and the harmony of that thought
rather than in the context of kyo-pan history.
I Will reconsider the meaning of Zong-mi s peace thought while
connecting Zong-mi s standpoint for other teaching with mordern
plural phenomenon of religion. And this tretise deals with a
Zh u-T n-Y (周惇 ) Tai-Ju-Tu-Shuo(太極圖說) mainly, the connection
and influence for the thought of Yang-Ming(陽明)'s Liang-Zhi- Lun(良
知論) as to the influence of thought for Sung·Ming Tao Xue(宋·明
道學).
The consideration mentioned above arrives to conlusion as follow.
In unit Ⅱ, confucianist insisted that Love and Justice(仁·義) are
unchangeable Tao(道), and criticized Buddhism for covering to the
aspects of politic, economic, ethics, not to the thought of essence as
Zong-mi s Yuan Yin Lun(原人論).
It is seen in their doctrine that H n-Y (韓愈) was influenced on the
Tao-Tong-Shou(道通說) of Chan sect, L -A (李 ) on Xin-Xing-Lun
(心性論) in Xing·Qing(性·情) conception, took the stand of gradual
practice(漸修).
At Zong-mi s time, the situation was social political disintegration
after n-L -S n(安祿山) s rebellion(亂) and intellectual consensus for
revival and reconstitution of Confucianism as the alternative.
Yuan Yin Lun(原人論) is described in the situation of the
confrontation and hostility of three teachings(三敎).
Zong-mi prescribed confucianism, Taoism(道敎) as delusive attachment,
all Buddhism as biased and shallow learning. So he criticized all
thought of being insufficient to exhaustive investigation for essence,
and induced Tath gatagarbha Prat ya-samatp da(如來藏 緣起) thought
as true one. Zong-mi harmonized three teachings(三敎) through
Ben-Jue-Zhen-Xin(本覺眞心) as the basis of enlightenment·the
source of the world·the basis of cognition·the basis of cultivation
of the mind, based on Tath gatagarbha Prat ya-samatp da(如來藏 緣
起) thought by technical development method of Cong-Quan-Dao-
Shen(從淺到深), Quan-Jian-Quan-Shou(全揀全收).
Although Yuan Yin Lun(原人論) dealt with Qi-lun(氣論) in order to
stand against energy theory(敵論), Zong-mi admitted Qi-lun(氣論)
limitly in that he explains the Buddhism cosmology of Cheng-Zhu-
Huai-Kong(成住壞空) comparing with Qi-lun(氣論), the phenomenon
world with Qi-lun(氣論). with that, the Tath gatagarbha Prat ya-
samatp da(如來藏 緣起) thought affected Zhou-Tun-Yi(周惇 ) Tai-Ju-
Tu-Shuo(太極圖說). As to the influence on Yang-Ming(陽明) s Xin-Xue
(心學), I considered the influence of Meng-Zi(孟子) and Buddhism in
dealing with the origin of Liang-Zhi-Lun(良知論) thought, considered
a conception and the similarity of character between Zong-mi s
Ben-Jue-Zhen-Xin(本覺眞心) and Y ng-M ng(陽明) s Xin(心).
Like the saying that I had no only teacher in searching for the
truth, he spent time questioning ceaselessly. Zong-mi divided(敎判)
the thoughts at that times into eight parts, criticized and harmonized
them.
Zong-mi s flexible manner to other teaching(外敎) can tell
understanding of human being who is able to possess different
thoughts or opinions respectively, beyond the acception of them.
It cad be basic premise which can realize compromise and peace. the
thought of harmony and peace suggested by Zong mi's Yuan Yin
Lun(原人論) showed exhaustive investigation for human's essence and
what religion and study have to do with historic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