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 작품)
가을이 가을을 그리워하며
김대현
부산 금정산 범어사는 단풍 명소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동남권 3대 사찰로 꼽힌다. 천년고찰인 범어사에는 600년을 지켜온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노란 낙엽이 융단처럼 깔리는 늦가을에는 행락객으로 만원이다. 십수 년 전 초겨울에 가족여행을 왔던 추억의 장소이다. 아버지가 늙은 나무의 무르팍을 어루만지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든의 노인과 600년의 노거수가 어떤 교감을 나누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를 일이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찾아 범어사로 떠난다.
주차 공간을 구한 건 행운이다. 노거수 주변이라서 아버지의 보살핌일 수 있다. 아직 이르다. 노란 단풍 비는 두어 주 뒤에나 가능해 보인다. 나지막한 일주문을 지난다. 보제루 아래를 걸어 계단을 올라서 보니 혼잡하다. 사찰 나들이를 온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보인다. 금정산 단풍놀이 길에 잠시 들린 등산객 무리도 여기저기를 서성댄다. 대웅전과 관음전 앞에는 독경 소리에 맞춰 연신 절하는 아주머니들로 북새통이다. 수능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저들 속에서 사십 년 전 내 어머니의 간절한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늘 한계를 뛰어넘는다. 아버지에게 헌신하는 일상을 행복이라고 믿은 여인이었다.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니는 갑작스레 가셨다. 응급실로 입원하고 딱 보름이라는 짧은 기간을 애타게 만들고서는 떠나셨다. 잘 살라는 응원의 말 한마디도 없었고, 외로이 남겨두고 가는 아버지에 대한 부탁도 없었다. 손 한 번 맞잡고 간절한 눈빛조차 나눌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몹시 가난한 이별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죽음보다 아버지의 통곡이 더 아팠던 하루였다.
갑자기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열다섯 해를 곱씹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설움이 북받친다. 어머니는 그 세월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의 마중을 몇 번이나 망설이셨을까. 사랑하니까 오지 말라고 말렸을 마음을 헤아려 본다. 이제, 서로 두 손 맞잡아 부빈 지 삼 년 팔 개월째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도 그리운 것은 구불구불한 곱슬 머리카락의 어머니이고, ‘그립다. 그립다.’ 하면서도 또 그리워져 아파지는 것은 아버지의 흔적이다.
한동안 아버지의 계절은 여름조차도 겨울이었다. 청소도 힘들고 빨래도 성가시지만, 진공청소기와 세탁기가 우렁각시라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혼자 먹는 밥의 외로움은 유독 극복하기 힘든 일이라고 하셨다. 편하게 먹고 외로움을 덜기 위해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여행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봄이면 봄꽃을 찾아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자연을 여행하셨다. 여행은 아버지에게 사계절을 다시 돌려주었다. 아버지 인생의 늦가을은 그렇게 여행과 함께 저물었다. 세월이 더해지는 만큼 어머니의 빈자리도 자꾸만 넓어진다고 하셨다. 그랬으리라. 사랑한 만큼 그리움도 컸으리라. 그래서 더 치열하게 여행을 다니시는 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언어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보고 느끼면서 배운 게 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여행의 기록을 남기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다.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실 때 나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무거운 숙제를 남기셨다.
노랗게 물든 단풍이 지천이다. 빨간 단풍도 곳곳에 보인다. 같은 땅에서 똑같은 물을 먹고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드는 이치는 모르겠다. 골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몇몇 낙엽들이 춤을 추며 내린다. 너덜겅 아래에는 가늘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차갑다. 소리만으로도 겨울이 코앞에 온 듯하다. 대성암 계곡 길을 따라 금정산성 북문까지 걷는다. 바쁜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 걷는 길은 어렵지도 않다. 아버지는 칠순이 지난 나이에 이 길을 오르셨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걸으면서 어떤 꿈을 꾸셨을까? 가을 단풍 그늘을 벗어나니 파란 하늘에 양떼구름 서넛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난다. 아버지와 걸었던 그날의 하늘도 눈이 시릴 만큼 파란빛이었다. 아버지가 이 파란 하늘과 함께 계시는 건 아닐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과 사람들의 고통을 모두 거두어 가는 관세음보살님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저승에 계신 조상님을 잘 돌봐 주고, 살아있는 나의 고통까지도 몽땅 덜어 달라는 심하게 과한 부탁인 셈이다. 그래도 이 가을날, 파란 하늘 아래서 간절히 되뇌면 무리한 부탁이라도 눈 질끈 감고 들어 주실법하다.
인생은 짧은 여행이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봄이라 할 수 있다. 나름대로 고생하는 때가 여름이라면 성장하고 자리 잡고 고생의 보답으로 풍성해지는 중년은 가을이다. 퇴직이나 회갑 전후를 가을이라 하겠다. 나도 어느덧 인생의 가을에 서 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주말마다 여행을 다닌다. 비가 오든 바람이 휘몰아치든 상관이 없다. 아들의 가을이 아버지의 가을을 반추하며 다니는 여행이니 말릴 사람도 이유도 없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멀리 가셨고, 딸년이나 아들놈 둘 다 자기 입은 스스로 건사하고 있으니 얽매일 거리 또한 전혀 없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이 하잘것없는 일들이다. 잠시 머뭇대다 보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겨울이랑 섞여 버리는 가을을 한두 번 보낸 게 아니다. 겨울은 다른 어떤 계절보다 새치기도 심하게 한다.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고 부족했던 기억들뿐이다. 아버지의 교훈은 ‘이만하면 만족하라.’였다. 먹을 만큼 있으면 되고 모자랄 듯이 가지라 했다. 그놈의 알량한 욕심은 이제 그만이다. 뿌린 대로 거두고, 거둔 만큼으로 나누어서 살면 될 일이다. 작은 가을걷이로 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늘 춥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선생님의 소중한 글 감사히 보고 느끼며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깊은 울림이 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워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시작한지 벌써 15주가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