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이름에 담긴 뜻과 동무의 모습 떠올리며 우리말로 서로의 이름을 지어줬어요.
앞으로 우리말 시간에 우리말 이름으로 동무 불러줘요~^.^
환: 꿈슬기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길!)
상준: 아름드리 (듬직하고 단단한 나무)
재인: 이슬마리 (앞서 길을 든든히 내어가는 사람이 되길)
지현: 맑은물 (맑게 깨어 보고 자유롭게 흐르길)
이준: 솔바람 (시원한 소나무와 바람같이 고마워서)
서현: 밝고맑음이 (평소 지내는 모습이 밝고 맑아서)
말꽃
윤동주 삶과 시 세 번째 시간이에요. 오늘도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 마음에 와닿는 시 한 편씩 까닭과 함께 나눴어요.
꿈슬기(환)
죽을 때까지 부끄럼이 없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자. 익숙한 시였지만, 다시 보니 더 울림이 있는 시다. 시는 슬프고 어둡지만 한줄기 빛이 밝히고 있는 느낌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는 글도 생각에 남는다. 내가 가야 할 길, 주어진 길을 부끄럼 없이, 별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가라는 것 같다.
솔바람(이준)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 가장 많이 들어본거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대목이 기억에 남았다. 창씨개명을 한 윤동주는 이 일이 정말 부끄러웠을 것 같다. 정말 처절하지만 묵묵히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한다. 나도 이 시처럼 뚜벅뚜벅 내 길을 가고 싶다.
맑은물(지현)
나도 내가 미워질 때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면 내가 미워져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 시의 사나이는 용기 내 자신을 마주했을까? 잘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내가 미워지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용기 내어 마주하며 살아가고 싶다.
아름드리(상준)
담 저쪽에 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러 간다. 언젠가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만나면 뭘 할까? 내가 잃은 나를 만나보고 싶다.
이슬마리(재인)
이 시를 읽고 잃어버린 게 뭔지 궁금했다. 그게 목표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고. 슬픔 또는 기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길을 이탈하고 방황하더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 나타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잃어버린 게 있을까? 숙제 없는 삶?ㅎ 많지는 않다. 대신 쉽게 잃어버릴 수 있지만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건 생각이 났다. 고마움, 소중함, 노력 등이 참 중요하다. 쉽게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1941.2.7.)
이 시를 쓴 1941년에 윤동주는 시 16편을 쓴다. 일제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 ‘손들어 보지 못’하고,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이 살지 않겠다는 소명의식이 담긴 시들이다.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나’를 부르는 이 시간은 무서운 시간이다. 죽음의 시간이다. 떨어지지 않고 겨우 매달려 있는 가랑잎 같은, 겨우 호흡만 하고 있는 ‘나’를 부른다. ‘나’를 부른다는 것은 떨어지라는 것이고, 죽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니다. 죽을 때가 아니다. 하늘을 향해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목소리를 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했고, 죽어 돌아갈 곳도 없다. 그러니 ‘나’를 부르지 말라고 한다.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는 부름을 거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끝나면 돌아갈 것이니, 서럽지도 않게 가랑잎 떨어지듯 죽을 것이니, 그때까지는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다. 비록 겨우 호흡만 남아 있는 상태지만, 해야 할 소명을 다한 후에 부름에 응하겠다는 것이다. 죽을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소명을 다하지 못할까 봐 무서운 시간이다.
<눈 오는 지도>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 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 3.)
순이가 떠나는 아침에 함박눈이 내린다. 순이를 찾아가야 할 지도 위에 눈이 덮인다.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순이를 찾아갈 수가 없다. ‘잃어버린 역사처럼’이라는 비유는 순이를 우리 민족으로 확대하게 한다.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이다.
순이가 걸어간 곳마다 쪼그만 발자국이 남는다. 함박눈에 덮여버렸지만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 그 자리마다 꽃이 필 것이다. 그때 그 꽃을 따라가면 순이를 만날 수 있겠지만, 순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일 년 열두 달 내내 ‘나’의 마음에 눈이 내리게 할 것이다. 일 년 열두 달을 늘 그리워할 것이다. *하냥 : ‘늘’ (전북, 충청, 평북 사투리)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 9.)
화자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무엇이었는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 잃어버린 것을 찾아 길을 나선다. 돌이 끝없이 이어진 돌담을 따라 걷는다. 문이 있어 돌담을 넘어가려 했으나 쇠문은 굳게 닫혀 있다. 높은 돌담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돌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돌담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는다. 길은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통하고 끝없이 이어져 있다. 돌담을 더듬으며 길을 걷다 하늘을 쳐다보니 푸르다. 무엇을 어디에서 잃었는지도 모른 채 길을 걷는 자신이 부끄럽고 가엾다. 그러나 열린 문을 찾으려면 이 길을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또 다른 자아이다. 담 저편에 있는 것은 ‘나’임을 깨닫는다. 계속 걷다 보면 담 저쪽에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화자는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인생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을 때까지 길을 걷는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윤동주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했다가 송몽규가 다니고 있던 교토제국대학 편입을 목표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1942년 10월 교토제국대학 대신 교토 도시샤대학(동지사대학)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편입한다. 교토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서 가장 존경했던 이양하가 고등학교와 대학원을 다닌 곳이었고,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정지용이 다닌 대학이었다. 일본에서 살았을 때 쓴 시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불과 5편 뿐이다. 이 5편 모두 동경에서 썼다. 그 중 첫 작품인 <흰 그림자>는 윤동주의 내면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목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곳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4.14.)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 6. 3.)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쓴 시다. 육첩방은 일본식 돗자리인 다다미가 6장 깔린 방으로, 3평 정도 크기이다. 비 내리는 밤, 나는 낯선 남의 나라 육첩방에 홀로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고국에서 보내주신 학비로 편하게 유학생활을 한다. 하는 일이라곤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시를 끄적이는 것뿐이다. 어릴 적 동무와도 멀리 떨어진 채 홀로 가라앉고 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쉽게 시를 쓰는 자신이 부끄럽다. 시인이란 작고 사소하고 아픈 것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회의가 든다. 고민과 아픔 없이 일상을 사는 자기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책상에 앉아 시를 끄적이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 최후의 나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이나마 내몰고 아침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민다. 괴로움과 부끄러움에 눈물 흘리는 나에게 ‘최후의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위로를 건넨다. * 속살거리다 :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한 식민지 청년이 적국이자 종주국인 나라의 수도에 서서, 자신은 결코 그들의 신민이 아님을 선포하는 선은은 이 한마디로 족했다. - <윤동주 평전>
윤동주는 마지막으로 본가에 들렀을 때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라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했다. 윤동주는 이 학교에서 두 학기를 보내다가 1943년 7월 14일 특고 형사(사상범죄 전문인 일본경찰의 특수조직)에 체포된다. 체포되면서 한글로 쓴 글을 모두 압수당하고 만다. ‘경도에 있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 그 이유이다.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 일본 정부 문서의 기술을 보면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유지하고 앙양시키려고 애썼다” 고 한다.
‘독립운동’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꽃다운 나이, 스물아홉에 사망한다. 함께 투옥되어 있던 송몽규도 같은 해 3월 7일에 사망한다. 그는 얼마나 원통했던지 눈을 번뜩 뜬 채로 죽었다.
“붓 끝을 따라온 귀뚜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라고 쓴 나의 글월에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는 답장을 준 일이 기억된다. - 윤일주 교수 증언
윤동주의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와 3월 6일 북간도의 중앙교회 묘지에 묻힌다. 6월 14일 그의 묘지에 ‘시인윤동주지묘’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졌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27년 2개월을 살았던 윤동주. 그는 죽어서야 시인이 되었다.
-1947년,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를 두고 “동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라고 했다.
-치안유지법(1925~1945)은 “국체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갖가지 악행의 수단과 도구가 되었다.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바꾸어 시 지어봤어요. 나는 어떠한 길을 지나 어떠한 길로 가고 있는지, 나의 새로운 길은 어떠한지 떠올려 보았지요.
*
새로운 길 / 이슬마리(재인)
어색함을 건너서 익숙함으로
익숙함을 넘어서 새로움으로
이미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꽃이 피고 새가 날고
만남이 지나고 헤어짐이 스치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새로움을 건너서 비춤으로
비춤을 넘어서 깊어짐으로
→ 이 시는 내 이야기다. 내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 학교에 왔을 때 내 마음을 썼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길을 어떻게 꾸려서 살고 싶은지. 시 쓰면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
새로운 길 / 아름드리(상준)
계곡을 넘어서 마을로
마을을 넘어서 숲으로
언제나 갔고 다음에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꽃들이 피고 새들이 날고
계절이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계곡을 넘어서 마을로
마을을 넘어서 숲으로
→ 원래 시랑 좀 비슷하게 됐다. 늘 같은 길을 지난다. 그러나 꽃들이 피고 지고, 새들도 날고, 계절마다 다르고 바람이 불기도 한다. 늘 같은 언제나 간 길이지만 늘 새로운 길이다.
*
새로운 길 / 맑은물(지현)
슬픔을 건너서 행복으로
두려움을 넘어서 기쁨으로
언제나 거처야 할
나의 길 새로운 길
웃음이 피고 마음이 날고
슬픔이 지나고 행복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슬픔을 건너서 행복으로
두려움을 넘어서 기쁨으로
→ 언제나 행복하고 기쁠 수 없듯이, 언제나 슬프고 두려울 수도 없다. 슬픔과 두려움이 있다면 그 뒤에는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계속 한 마음일 수 없기에 새로운 길이다.
*
새로운 길 / 꿈슬기(환)
강을 건너서 산으로
산을 넘어서 강으로
똑같고 비슷하지만
나의 길 새로운 길
꽃들이 피고 새들이 날고
바람이 지나고 파도가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강을 건너서 산으로
산을 넘어서 강으로
→ 똑같고 비슷한 길이지만 그 안에는 늘 새로움이 있다. 따분해하고, 지루하더라도 그 안에 새로움을 찾으며 지내고픈 마음이 든다.
*
새로운 길 / 솔바람(이준)
찻길을 건너서 흙길로
언덕을 넘어서 숲으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꽃이 피고 벌레가 날고
몇시간이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찻길을 건너서 흙길로
언덕을 넘어서 숲으로
→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시를 조금 바꾼 것이다. 내가 가끔 가는 숲을 이렇게 표현해 봤다. 숲에 가면 좋다. 공기도 맑고 재미도 있다. 숲에 자주 가고 싶다.
말본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에 온갖 영어를 참 아무렇지 않게 쉬 섞곤 합니다. 사진을 찍으니 사진기이지만 으레 '카메라'라 이야기합니다. 서로 모여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를 한다 말합니다. 뜻이 맞는 동무들이 모여서 한 가지 놀이나 일을 즐기는데 동아리 아닌 '서클'이나 '클럽'을 한다고 합니다.
온갖 영어
일상 속에서 쓰고 있는 온갖 영어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의미가 담긴 고운 우리말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봤어요.
1) 미팅·로망·노트·스케일·스타일
→ 사귀다, 달콤한 꿈, 똑똑 두드리다, 커다랗다/작다, 몸가짐
2) 마스터·오버·메시지·셀프·유머
→ 갈고닦다, 지나치다, 이야기, 스스로, 웃기다
3) 심플·패션·미스터리·라이벌·오케이
→ 단출하다, 드러내다, 수수께끼
4) 힌트·미니·다운로드·파이팅·시스템
→ 실마리, 조그맣다, 내려받다, 힘을 내다, 얼거리
5) 쿨·알레르기·이미지·아마추어·센스
→ 시원하다, 두드러기, 그림/사진, 풋내기, 살뜰하다
6) 스트레스·사이즈·베스트·타임·레벨
→ 짜증, 품, 가장 손꼽다, 시간/짬, 눈높이
7) 아이디어·메모·시즌·업·팀
→ 생각, 적바림, 철, 좋다/날다, 무리/떼
낯선 단어 익히기
배움책 곳곳에 나오는 낯선 단어 함께 예문 지어보며 익혔어요.
- 미리내 : 은하수를 뜻하는 말
- 흠씬 : 아주 꽉 차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상태.
- 골마루 : 안방이나 건넌방에 딸린 골방처럼 좁은 마루.
- 허투루 : 아무렇게나 되는대로.(=겉치레)
- 짐짓 :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일부러 그렇게.
- 까무룩 : 정신이 갑자기 흐려지는 모양.
-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 흐드러지다 : 매우 탐스럽거나 한창 성하다.
- 얼추 : 어지간한 정도로 대충. 어떤 기준에 거의 가깝게.
재미로 살펴보는 우리말 어원
- 아수라장 :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 아수라는 ‘추악하다’라는 뜻을 가진, 얼굴 셋에 팔이 여섯인 거대한 괴물이다.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한다. 아수라들이 모여서 있는 모습은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 ‘아수라장’이다. 아수라를 줄여서 수라라고도 하며 아수라장 역시 수라장이라고도 한다.
- 십년감수 : 뭔가에 놀랐을 때 “심년감수 할 뻔했네.”라고 말한다. ‘십년감수’는 말 그대로 ‘목숨이 10년 줄었다’는 뜻이다. 1897년, 미국 공사인 알렌이 처음 축음기를 들여와 어전에 설치했다. 당시 유명한 소리꾼인 박춘재는 어전 앞으로 불려와, 고종과 대신들 앞에서 판소리를 불렀고 이를 축음기에 담았다. 박춘재가 기다란 나팔에 입을 대고 판소리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축음기에 그대로 흘러나오자 모두가 화들짝 놀란다. 그때 고종도 놀라며 한마디 한 것이 십년감수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춘재야, 네 기운을 기계에 빼앗겼으니, 네 수명이 십 년은 감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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