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에 대한 성찰과 서정적 진실 탐구
--박선정 시집 『잊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내일』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나”에 대한 인식과 성찰의 근원
우리 한국 현대시의 발상이나 주제의 투영은 대체로 한 시인이 살아온 추억의 회상에서 그 궤적(軌跡)을 재생하면서 지나온 과거에서 불망(不忘)의 애환들이 작품의 원류로 생성하고 거기에서 창출된 이미지들이 시로 형상화하는 경향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러한 과거 회상에서 수습(修習)된 체험들이 당시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사유(思惟)의 범주(範疇)나 인격체의 형성과정을 명민(明敏)하게 유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시인의 창작 동기나 작품의 결론적인 주제의 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 박선정 시인이 상재하는 두 번 째 시집 『잊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내일』을 일별하면서 이러한 사념(思念)을 먼저 상기하는 것은 그가 천착(穿鑿)하는 사유의 골깊은 산야(山野)에서는 그가 살아온 족적(足跡)이 다양하게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사유의 진폭이 어느 정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상황이었나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산다는 것은 때로
혼자서 외로이
떠나야 하는 것
사람살이
세상살이
속에 섞이다가
찰나에 가는 인생
나를 위해
뒤돌아본다
잘 살다가
잘 가는 것도
어려운 일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뒤를 돌아보며」 전문
박선정 시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있다. 그는 도입부분에서 “산다는 것은 때로/ 혼자서 외로이/ 떠나야 하는 것”이라는 단정적인 어조로 그가 평소에 간직한 내면의 진실을 토로(吐露)하면서 사람이 사는 것이나 세상을 사는 것이 모두 “찰나에 가는 인생”이라는 결론으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잘 살다가/ 잘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어조로 그의 인생론을 정리하고 있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불안정한 항해다”라는 말로 우리 인생을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논한바 있는데 인생행로에서는 순탄한 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선정 시인은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라는 결론으로 그의 회상에 종지부를 찍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천왕봉까지
힘차게 오를 수 있게 해 준
몸에게 말해 준다
지리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세상 내려다보며
먹고 말하고 숨을 쉬는 것에
감사하듯
나의 목소리 나의 노래
마음껏 표현하며
나답게 살 수 있음에
고맙다고
나에게 말을 건다
온전하게 버텨 준 몸에게
무탈하게 살아 준 나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맙고 감사하다고
--「내가 나에게」 전문
박선정 시인은 이제 자기에게 스스로 말을 걸고 있다. 진정한 “나의 목소리 나의 노래/ 마음껏 표현하며/ 나답게 살 수 있음에/ 고맙다고”라는 “내가 나에게” 화해의 어조를 보내면서 자신을 위무(慰撫)하고 있어서 자신이 지탱해온 삶의 여정(旅情)에 감사함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결론으로 “온전하게 버텨 준 몸에게/ 무탈하게 살아 준 나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맙고 감사하다고”라는 그는 진심으로 그의 전신(全身)이 세파(世波)를 혜쳐나온 여로(旅路)에서 무사 귀환한 “나”는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는 자아(自我)의 성찰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찰은 작품 「시력」 중에서 “보고 듣고 배울 것 무궁무진해도/ 때로는 지식의 숲에서 미련 없이 나가/ 자유롭게 편안히 쉬고 싶은/ 나의 두 눈” 또는 「기능인 명장」 중에서도 “한길만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기초 기능인 없다면 세상은 아쉬울 터/ 나의 길 열심히 살아 온 기능직 명장” 등으로 그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답답하고 불편했던 “나의 눈”이나 지금은 정년퇴직한 “나의 길”에서 그가 감응한 심중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적시되고 있는 것이다.
2. 변화하는 계절과 시간성의 이미지
박선정 시인의 내면 의식에는 지나온 시간성과 현재의 당면한 현장에서 감지하는 계절의 섭리에서 많은 사유의 변화에 순화(醇化)하고 있다. 그는 “풀꽃들 향기 예쁘게 담아낼/ 꽃삽 하나 필요해/ 시인의 사랑 노래처럼/ 봄 향기 옮길 꽃삽 준비한다(「시인의 꽃삽」 중에서)”거나 “서산에 노을 지고/ 가을의 감흥 짙어지면// 단풍 진 공원 낙엽 밟으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다시 듣는다 (「시월을 보내며」 중에서)”는 등의 사계절에 대한 정감적인 정서가 그의 뇌리에서는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녹두색 연한 기운
온 세상 감돌아 흐를 때
도지는 봄 앓이
그리움 가득 가슴에 와 박힌다
옳거니
그거였구나
봄볕에 물오른 나뭇가지
터질듯한 꽃눈 보는 맛
천천히 피어오르는 따스한 서정
한없이 감동하고 싶은
미래의 그리움을 그려본다
그렇게 봄은
곰살맞은 기다림을
던져주고 있다
--「기다리는 봄」 전문
박선정 시인은 우선 봄에 심취하면서 그의 사유와 정서를 확대하고 있다. 그는 생명 탄생의 봄을 기다리면서 봄 앓이가 시작된다. 그 봄 앓이는 그리움이다. 봄의 이미지는 새 생명의 탄생으로 온 천지가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이 넘치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다. 그는 녹두색 연한 기운이 감돌 때가 되면 “그리움 가득 가슴에 와 박”히면서 현재와 미래의 그리움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봄의 정경(情景)에서 봄볕으로 물오른 나뭇가지와 터질 듯한 꽃눈에서 한없이 감동하는 진한 서정이 그의 뇌리에 충만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그에게 무엇인가 “기다림”을 시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작품 「봄의 길목에서」 중에서 “꽃망울도 흐드러질 시간/ 가지마다 청명한 물소리/ 하늘로 퍼”질 때 옛 사랑을 기억하며 봄의 길을 걸어본다. 또한 「봄이 오는 소리」 중에서도 “언 땅 속 어린 새싹/ 가녀린 박동 울리며/ 벌써 봄인 듯 따스하다”는 등의 어조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 「풀꽃을 보면서」 「봄 길을 걷다」 「꽃씨」 「보릿골 앞에서」 등등에서 그가 감지하는 계절의 시간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라는 곳 없어도
가을이면
한적한 단풍길
걸어가 보자
오가는 이 없어도
벼 이삭 영그는 금빛 들녘을 지나
상수리 떨어져 발걸음 반기는
그 길에 서보자
촌락 가는 고갯마루
높고 푸른 하늘에는
기러기 떼 한가로이 날고
윗샘 들 아랫마을 들판
날아가 보자
공세들 풍성함 이어지라고
꾸르륵꾸르륵 기원하는
그 소리에
가을이 익어간다
--「가을 따라 걷는 길」 전문
이제는 가을이다. 그는 사계절 가운데에서도 봄과 가을을 특히 그의 정서에서 명징(明澄)한 시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 그는 하염없이 한적한 가을길을 단풍을 밟으며 걷는다. 그는 걸어가다가 “벼 이삭 영그는 금빛 들녘을 지나/ 상수리 떨어져 발걸음 반기는” 그 길에 서있다.
그는 다시 “촌락 가는 고갯마루/ 높고 푸른 하늘에는/ 기러기 떼 한가로이 날고/ 윗샘 들 아랫마을 들판”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는 이 가을 길을 걷다가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는 결론으로 “공세들 풍성함 이어지라고/ 꾸르륵꾸르륵 기원하는/ 그 소리에/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꾸르륵꾸르륵 기원하는” 여망의 기원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낙엽에게」 전문에서도 “잘 익은 낙엽에/ 단풍 들면/ 너처럼 고울까// 사는 일도/ 낙엽처럼 무르익으면/ 삶의 빛도 고와질까// 낙엽도 인생도/ 책갈피에 갈무리 하는/ 아, 가을”이라는 감탄의 어조로 가을 계절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가을에서도 늦가을과 낙엽에 관한 이미지들을 선호(選好)하는 경향을 엿보게 되는데 “계절의 경계 불분명해도/ 마지막까지 피는 너를 보며/ 황혼의 꿈 다시 불태운다(「늦가을 달맞이꽃」 중에서)”거나 “먼지 되도록 밟혀야/ 거름 되어/ 흙으로 돌아가기에/ 바람에 날리고 구르는 것보다/ 짓밟히고 부스러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낙엽의 소망」 중에서)”라는 시간성과 밀접한 계절 감각과의 흡인력(吸引力)의 어조가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가을 앞에서」 「분꽃씨」 「귀뚜라미」 등등에서 가을의 시간성에서 감응하는 그의 시심(詩心)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3. “구순의 모정”과의 지밀한 정감
박선정 시인이 생애에서 불망의 존재로서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채로운 창작 동기와 더불어 현실 생활(real life)에서 불변의 정감적인 대화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telling) 있다. 그는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그의 깊은 효심(孝心)을 읽을 수도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 어머니가 그에게 베푼 모정(母情)에 대한 보답으로 지극한 그의 인생 덕목(德目)으로써의 모자(母子) 간의 정감적인 언어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효심이 충만한 어조는 “초봄엔 참쑥이 최고라고/ 장 쑥국 끓여/ 발 가득 퍼 주며/ 봄 타는 자식 보살피던/ 어머니 마음(「사발 닮은 어머니」 중에서)”라거나 “휘파람 뒤로/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 목소리/ 지금도 아련한데// 오래전 그리움이/ 추억을 달고 몰려 와/ 이유도 없는 허무 앞에/ 나이만 들어간다(「동경」 중에서)”라는 그의 정성어린 모정에 대한 그의 소회(素懷)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칠순 넘도록 자식 뒷바라지에
일손 놓지 않던 어머니
한없이 넓은 품 헤아릴 수 없네
당신을 위한 날 하나 없이
묵주를 놓지 않고 기도하시니
온전히 잘 지내는일 기도 덕인지
그 정성 눈물 나네
산달마다 산후풍 겪으며
모진 세월 사신 어머니의 만수무강
빌고 또 빌어보는 마음
홀로 키운 육 남매
고달픈 세월 헤아리지 않고
풍진 바람 겪어온 구순의 모정
--「모정」 전문
그렇다. 박선정 시인의 모정은 어머니가 “칠순 넘도록 자식 뒷바라지에/ 일손 놓지 않던 어머니/ 한없이 넓은 품 헤아릴 수 없네”라는 상황 설정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어머니가 살아온 고난의 세월을 조심스럽게 되뇌이고 있어서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어머니는 육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묵주의 기도로 자식들의 온전한 생활을 영위하게 한 어머니에 대한 “모진 세월 사신 어머니의 만수무강/ 빌고 또 빌어보는 마음”이 이제 “고달픈 세월 헤아리지 않고/ 풍진 바람 겪어온 구순의 모정”은 그가 영원히 다 갚지 못할 내심의 발원이다.
그는 “눈물과 후회/ 없어야 할텐데/ 지고지순 어머니는/ 늘 애잔한 사랑이다(「어머니」 중에서)”라거나 “자식 걱정 앞세우는/ 손때 묻은 어머니 문고리에/ 묵은 세월 고스란하다(「문고리 여정」 중에서)”는 등의 어조는 우리들을 공감의 영역으로 흡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은은한 빛으로 수 놓은
쪽진 머리 부드러운 선
가르마도 관능적인 머릿결
임 주신 정표였나
갈색 나무 비녀
궂은 일에 흰 수건 둘러
가지런히 모으고
때 되면
정성스레 차리는 밥상
꿈꾸며 기다리던 소년은
나무 비녀 추억과 함께
늙어간다
--「어머니의 비녀」 전문
박선정 시인의 모정은 그의 체험에서 재생하는 다채로운 현상들이 적시되고 있어서 그가 평소에 어머니에 효성이 얼마나 갸륵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유년시절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밥상에서부터 어머니가 애용하던 갈색 나무 비녀의 추억과 함께 자신도 이제 나이 들어 늙어감을 안타가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어머니의 대한 회상에서 그의 정성어린 효심은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고 있어서 애처롭기까지 한 심정이다.
-너도 어서 먹어보라며/ 채근하시는 어머니/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밥상」 중에서)
-저녁밥은 홍두깨 칼국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머니의 부뚜막 한 상(「부뚜막」 중에서)
-객지풍상 다 버리고 쉬게 하고 싶은/ 어머니 마음/ 달빛 아래 기다림만/가지런하다(「댓돌」 중에서)
-정성 어린 손놀림/ 따뜻한 마음 다가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다(「뜨개질 속에는」 중에서)
-둥근 면경 비춰보며/ 옷매무새 깔끔히 여미고/ 부엌에 드나드는 어머니// 어머니 보며/ 먼 미래의 여인을/ 혼자 그려 본다(「나무 비녀」 중에서)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와 다시/ 그 밤길 걸을 수 있다면(「논둑길」 중에서)
이 밖에도 그는 작품 「아버지의 단상」에서 “처진 어깨 짓눌린 삶의 무게/ 튼 손가락에 갈라진 손톱/ 굳은살 옹이 박힌 발바닥 절뚝이며/ 새벽 별 벗 삼아/ 공사판 찾아가던 아버지”과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서 “새벽 어스름 허기진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굽은 등허리 쓸쓸히 내보이던/ 논밭일 온갖 허드렛일 소까지 키우며/ 하던 공부 내려놓고 고생하며/ 걱정 근심 끊임없던 아버지”라는 아버지에 대한 불망의 애환까지도 적시하고 있어서 그의 효성은 부모에게 고르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4. 자연 섭리의 순응과 서정적 교감
박선정 시인은 사계절의 시간성의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함께 자연 친화에서 교감하는 서정적인 사유를 작품으로 승화하는 노력을 엿보게 한다. 그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 무언의 대화를 통한 다변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우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꽃들과 나무들에서 투영하는 그의 사유는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연연하지 않고
초연해지는 것도
살아가는 일
청춘도
꽃처럼
열매를 남기고 돌아갈텐데
소리 없이 지는 꽃
봄이 지는 길목에서
사라져 버리고
인생의 봄날도
꽃처럼 조금씩
흐려져 가네
--「낙화」 전문
박선정 시인은 이처럼 흩날리는 “낙화”에서도 그는 “인생의 봄날도/ 꽃처럼 조금씩/ 흐려져 가네”라는 약간 서글픈 어조로 낙화와 인생의 봄날이 대칭적으로 꽃의 한 생애와 인생의 지향점을 대입함으로써 그의 서정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렇게 가을의 풍요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결실의 풍요를 거둬들이는 수확에서도 고독과 절망의 이미지가 투영된 낙화와 우리 인생의 운명이 상호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주고(showing) 있어서 그가 한 사물을 접하면서 그 주제는 인본주의(humanism)에 입각한 진실을 구명(究明)하려는 그의 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낙엽이 한생을 마감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초연해지는 우리네 삶에서도 사유하는 시법(“청춘도/ 꽃처럼/ 열매를 남기고 돌아갈텐데”)은 그가 관조하는 사물(낙화)에서 그의 깊은 인생관이 투영되는 적절한 이미지의 창출이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구상나무 잔해
천년 지난 지금도 뼈대 우뚝
속으로 단단해져 보란 듯
태백산 등성이 건재하다
숨 멎은 시간 오래이건만
이름만큼 위풍당당 고산준령에
운치 더해주는 고사목 군락
다 벗은 껍질 골짜기 능선에
뿌리 깊은 나무로 위용 드러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버티는 관솔
천년을 기리며 변함없는 꿈
오래도록 굳세게 태백산을 지키는
천년의 고사목
--「고사목을 보며」 전문
그의 시야에는 만유(萬有)의 자연에서도 낙화나 고사목처럼 한생을 마감하고 영원한 자적(自適)의 여유에서 감응하는 그의 시적인 발상과 주제의 창출은 그가 평소에 사유하면서 염원해오던 인간들의 가치관을 여과(濾過) 없이 적시해내는 그의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태백산 고사목 군락지에서 동화(同化)한 그의 의식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위용 앞에서 지금도 고산준령서 위풍당당하게 “천년을 기다리는 변함없는 꿈”이 바로 우리들의 인내를 요구하는 확고한 끈기를 비유하는 시법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선정 시인은 이 밖에도 화훼(花卉)에 대한 서정적인 이미지를 다채롭게 현시하고 있는데 “꽃잎이 지는 소리/ 아무도 없는 길에/ 슬픔 홀로 묻는다(「꽃씨」 중에서)”라거나 “툇마루에 걸터앉아/ 달빛 둥근 박꽃/ 첫사랑 설레임처럼/ 하얗게 취한다(「박꽃」 중에서)”, “계절의 경계 불분명해도/ 마지막까지 피는 너를 보며/ 황혼의 꿈 다시 불태운다(「늦가을 달맞이꽃」 중에서)” 그리고 “산사 화단이 타오른다/ 절간 마루에 내려와 앉아/ 쉬고 있는 푸른 하늘/ 다 타겠다(「맨드라미」 중에서)”는 어조로 꽃들괴의 정감적인 서정성을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보릿골 앞에서」 「밤비」 「비위를 보며」 「오죽을 보며」 「비슬산」 「낙조」 등등에서 그가 관조하면서 감응한 서정성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5. 결(結). 삶의 지표인 기원의 의식
박선정 시인은 이 시집 『잊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내일』에서 분사(噴射)하고자 했던 과거나 현재의 삶의 범주(範疇)는 “나”를 인식하면서 삶의 성찰을 지향적인 지표를 위한 기원의 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우선 계절의 시간성에서 그가 영위한 삶과의 상관성과 자연 섭리 등에서 서정성을 구현하려는 사유의 심저(心底)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구순의 모정에서 삶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아련한 정감을 적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삶의 행간에서 그가 다시 여망하는 진실을 알 수 있는데 우선 상당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해법을 찾고 있다. 그는 작품 「애증의 세월」 중에서 “함께 걸어온 길/ 되돌릴 수 없어/ 피보다 진한 애증/ 세월에 묻는다// 조금 모자란 남자와 살아온 세월도/ 가을하늘 닮아 높아질까” 또는 「바람 참 좋다」 중에서도 “야간 당직 일손/ 퇴근길에 맞는/ 다음날 바람 내음도/ 오늘처럼 좋으려나”라는 의문이 그의 의식에 아직도 침잠(沈潛)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로 산 날이
몇 해이던가
거친 세상
커다란 그늘로 아직
서 있는데
이제는 그늘이 아니라
그 그늘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 쉬고 싶다
삶의 무게 벗어나
자유로운 시인의 길
시향으로
꽃향기 따라 흐르듯
마음 가는 곳으로 한 번
그렇게 살고 싶다
--「가장」 전문
그의 여망(혹은 욕망)은 원대한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순박하고 순정적인 보편성의 삶의 기원으로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에 얽혀서 살아왔으나 지금은 “그늘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 쉬고 싶다”거나 “꽃향기 따라 흐르듯/ 마음 가는 곳으로 한 번/ 그렇게 살고 싶다”는 진정한 “시인의 길”을 가고 싶은 희구(希求)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삶의 지향점에서 그가 새로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려는 고차원의 사유가 “이제는 그 면장갑처럼/ 가려주고/ 감싸주며/ 살아야겠다(「면장갑」 중에서)” 혹은 “청계천 지키는 수호의 장신구들/ 내년에도 후년에도/ 오래오래 피고지기를/ 염원해 본다 (「괴불주머니꽃」 중에서)”는 인본주의의 원류에서 서정적인 그의 시법을 명민(明敏)하게 발현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산하게 된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