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이 넘어서 까지 할머니 동화작가로 활동하셨던 타샤튜더. 타샤 튜더의 정원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원의 주인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표 동화작가였지만 오히려 가드닝 전문가로
더 알려져 있었지요.
2008년 6월 19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타샤 튜더'의 자연 친화적인 삶의 세계를
방송을 통해서 들어보신 분도 계실것입니다.
아흔 살이 넘어서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그녀였습니다.
시골집 마당에 텃밭을 일구어 배추나 열무라도 심어보고싶은 마음 계시지요.
언젠가는 이 타샤튜더의 정원처럼 될날을 꿈꾸어보시기 바랍니다.
* * *
미국 보스턴에서
요트ㆍ항공기 디자이너인 아버지와 초상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타샤는
결혼하던 해인 23세에 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이라는
그림책을 내며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슬로 라이프의 출발은 남편과 함께 뉴햄프셔주 웹스트의
옛 농가를 사들여 이사한 30세부터이다.
수도도 전기도 없는 이곳에서 타샤는 막내가 5세가 될 때까지 2남2녀를 키웠다.
소젖을 짜고 닭과 오리, 양과 돼지를 치면서 채소밭을 돌보고
꽃밭을 가꾸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 나날이었다.
그 사이 두 차례 이혼을 겪었지만
그림책을 내며 모은 돈으로 그는 56세에 마침내
넓은 정원이 딸린 농가를 갖는 꿈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었다.
버려진 농장 부지를 사들여 큰 아들의 도움을 받아
19세기풍 농가를 직접 지었다.
과수원과 정원에 과실수와 꽃을, 초지에 야생화 씨앗을 뿌려 가꾸었다.
버몬트 숲에 펼쳐진 그의 정원은 철이 바뀔 때마다 화려한 튤립,
단아한 작약, 눈밭에서 피어나는 수선화 등
꽃과 나무들이 흐드러진다.
비밀의 화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인의 투어가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이다.
석탄과 석유를 때지 않고 전기를 쓰지 않는 생활은 여전했다.
새벽녘부터 시작한 정원 일을 마무리하면 기르는 염소에서
젖을 짜 요구르트를 만들고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었다.
먹고 입는 모든 것이 자신이 길러내고 만든 자급자족의 생활이었다.
이런 자신의 생활을 그대로 담은 정원 가꾸기,
인형과 양초 만들기, 요리 책은 진작에 전세계에 번역됐다.
슬로 라이프를 지탱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책 역시 미국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남편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렸다가
책이 된 호박 달빛은 위인전이 주류던
1930년대 미국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린이와 자연풍경, 애견 코기를 비롯한 동물과 꽃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수채화가 주류인
타샤풍 그림책으로 그는 미국 최고 권위의 그림책상인
칼데콧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코기를 주인공으로 한 코기빌 축제(Corgiville Fair) 등
자신이 줄거리를 만들고 삽화를
그린 책이 20여권, 소공녀 비밀의 화원 등
그의 그림이 들어간 동화까지 합하면 100권을 넘는다.
"잼을 저으면서 셰익스피어 읽을 수 있는" 삶을 사랑했던
그에게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누가 물었다.
"우리 손이 닿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타샤 튜더는 지난 2008년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떠나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심고,
평생을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다
92세의 나이로 ‘비밀의 화원’에 잠든 타샤 튜더.
타샤 튜더(Tasha Tudor)는 1915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Boston Museum Fine Art School에서 공부했다.
1938년부터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미국의 전원 풍경, 꽃, 아이들, 동물들을 묘사한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고전풍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Mother Goose, 1 is One으로 칼데콧 영예상을 수상했으며,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엽서에 그녀의 그림이 사용되기도 했다.
사랑하는 자신의 정원에서 재잘대는 새 소리와 향긋한 꽃 내음에 잠을 깨고, 꽃 찾은 나비들이 춤 추고,
벌들이 붕붕대는 정원에서 맨발로 산책을 즐기는 타샤 튜더!
그녀의 삶이야말로 오늘의 도시인들이 바라는 꿈의 웰빙 라이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힘든 노력과 인내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결과물이라는 것.....
타샤 튜더의 친자연적인 삶과 그녀의 정원을 구경해보자.
타샤 튜더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모두 별세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아흔 살이 넘은 부지런한 이 할머니는
그녀가 그리는 그림처럼 예쁜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손수 천을 짜서 옷을 해 입고, 옛날식 장작 스토브로 음식을 만들고,
맨발로 정원을 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꽃들을 돌본다.
언덕 경사면에 세워져 포도나무나 덩굴장미 등으로 덮힌 낡은 건물.
지붕 위에는 비둘기, 헛간 마당에서는 산양이나 닭이 돌아다니고 있다.
언덕 위에는 허브 정원이 있고 집 앞의 경사면에는
꽃들이 가득히 심어져 햇살을 담뿍 받고 있다.
개척시대의 농가 같은 집에서 화초를 키우고
무엇이나 직접 만들어 살아가면서 동화를 위한 그림과 카드를 그린다.
자신의 취미로 인형을 만들어 함께 사는 세상,
타샤는 자신이 만든 이 세계를 "이 세상의 낙원"이라 부른다.
손수 가꾼 빅토리안 풍의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봄에는 미나리아재비, 수선화와 제비꽃이 피고
그 다음 여름, 가을에 걸쳐
포피, 장미, 붓꽃, 패랭이, 라벤더, 물망초, 백합, ....등등
다채로운 꽃이 차례로 정원을 채워준다.
"우리집 정원은 나의 자존심이에요.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정원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어찌할 줄 모를 정도예요.
정원 가꾸는 일만으로도 내 마음은 늘 행복으로 가득해져요."
"살벌한 세상 속에서 나는 정원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정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인생에 대해 우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안 좋은 일은 기억하지 않는 게 좋아요.
인생을 즐기지 않기엔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안 그래요? ”
타샤는 일하는 사람이다.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정원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 재배한 아마를 자아 천을 짜고
새벽부터 일몰까지 혼자서 일을 한다.
타샤의 손은 정원의 꽃과 나무를 싱싱하게 키우고
요리를 맛있게 만들고 천으로 옷을 만드는 마법의 손이다.
4월에 눈이 녹을 때부터 10월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타샤는 정원에서 꽃과 농작물을 가꾼다.
동화책은 물론 타샤가 낸 요리책, 정원 가꾸기 책, 수공예품 책들도
역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타샤 튜더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1830년대의 삶을 산다.
특히 그녀의 골동품 의상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컬렉션으로 불린다.
타샤 튜더는 시대에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는데 그게 150년전 옷이라 해도.....
그래서 그녀는 여느 할머니보다 훨씬 예뻐 보일수 밖에 없다.
나는 남자들을 무척 좋아해요.. 그렇지만,
남자처럼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아요..
모처럼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남자처럼 입으려는 거죠?
여성스러움이 여자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잖아요..
그것을 왜 스스로 버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들이 긴치마를 입지 않게 된것은
진짜 큰 실수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보여주는 것은 전부를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지요..
치맛자락 밑으로 하얀 발목이 살짝 보일때,
남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아세요?
그것도 모르고 요즘 여자들은
바지만 입고 다니니 정말 안타까워요..
<비밀의 화원>과 <소공녀>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 타샤 튜더.
그녀는 지난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삽화만 그려넣은 작품도 있지만
직접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림을 그린 작품도 20여편 정도되며
타샤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그녀의 실제 생활 공간이며 가족들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답니다."
"인생은 결코 긴 게 아니에요.
우물쭈물 멍하게 있다보면 어느새 인생은 끝나버리지요.
내키지않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너무 바보같은 짓이에요."
"나는 늘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어쩌면 겁이 많아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행동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것도 내 나름대로 즐겁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가끔씩 내게 “힘드셨죠?” 하고 물어요.
하지만 나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지금까지 나는 인생을 항상 방학처럼 살아왔거든요.
하루하루 그리고 순간순간을 늘 내가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즐기면서 살아왔지요."
"나는 아흔살이 넘은 지금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싶다고 생각한답니다.
전문가가 되고싶다. 정말 되고싶다라고 생각하며 꿈을 쫓는 일이 즐겁습니다.
사람이란 그 모든것의 해답을 알 수는 없어요.
그러니 더 많이 알고싶거나 더 연구하고 싶은 꿈에는 끝이 없는거죠.
더 배우고싶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은
누구든지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으뜸의 기쁨이랍니다."
타샤는 정원을 손질하고 산양 젖을 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정원 에서 딴 과일로 파이를 굽고
차를 직접 만들고
재배한 아마를 자아 천을 짜고 염색을 하고..
타샤의 손은 정원의 꽃과 나무를 싱싱하게 키우고
요리를 맛있게 만들고 천으로 옷을 만드는 마법의 손입니다.
타샤는 말합니다.
"살벌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정원으로부터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정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타샤 튜더의 집에는 인형이 넘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좋아했어요.
특히 봉제인형을 좋아해서 [소공녀] 속에 나오는 인형 이야기를 맘에 들어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아이 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 부엌 가까운 곳에는 삼단으로 지어진 인형의 집이 있고
인형들이 우아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만족해요.
이렇게 행복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는 무지개를 손에 넣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행복은 물질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왜 그토록
행복을 바라는걸까요?
아마 그건 텅빈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것에 만족합니다..
<일부 자료 출처 : 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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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 탸샤 튜뎌***
타샤의 한국인 며느리 김은임 씨가 이야기하는 타샤 튜더
내가 타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2남 2녀 중 차남인 남편과 1994년 결혼하면서였다.
미국 공군 자문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시어머니께 인사드리기 위해 브래틀보로로 찾아갔다.
서울을 출발, 열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국(異國) 사람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자동차로 보스턴 교외를 빠져나갈 때는 불안감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세 시간쯤 달리자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도로에 이르자
“이 길은 우리 가족들 사이 비밀의 오솔길”이라며 남편이 내려서 걷자고 했다.
이때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앞으로 계속해서
경이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남편과 나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은 숲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은 달빛을 받아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올빼미가 등 뒤에서 가르릉거리며 적막을 깨뜨려
혼비백산케 했다.
흠칫흠칫 놀라는 내게 남편은 “올빼미들이 당신을 반기는 소리”라고 했다.
그 다음엔 승냥이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사립문이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빛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 아래 거무스름한 집의 윤곽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물가물한 호박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이 시어머니의 집이란다.
종이 달린 작은 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현재의 삶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웨일스산(産) 작은 개인 귀여운 코기(corgi) 두 마리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계셨다.
집 안은 초가을 숲 속 냉기를 몰아낼 만큼 훈훈했다.
화덕에는 구수한 닭고기 수프가 끓고 있었고,
향긋한 옥수수 빵 냄새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시어머니의 집과 생활, 그리고 정원 손질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금방 그곳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시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손수 키우는 닭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먹이를 주고, 양젖을 짜서 버터나 치즈,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셨다.
낮에는 정원을 거닐며 꽃에 물을 주고, 잡초를 일일이 뽑으셨다.
그러면서 꽃들의 색깔, 높낮이의 조화를 살피셨다.
정원은 시어머니가 마음 가는 대로 채색하는 캔버스였다.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내게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느냐?”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 “영국 문학작품 중 즐겨 읽는 게 있느냐?”
“집에는 어떤 꽃들을 심었느냐?” “어떤 애완동물을 키우느냐?”고 물으셨다.
한국 부모님들과는 삶의 의미와 중심을 전혀 다른 곳에 두고 계셔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대표적인 외유내강 인물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계획을 세운 시어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동물을 사들여 농장생활을 준비하셨다.
시어머니는 화가 어머니와 수학자이자 발명가 아버지로부터 감수성과 창의력을 물려받았다.
8학년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자신의 글과 그림을 출판하며
독립된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두 독립을 이룬 분이다.
시어머니의 식량 창고에는 직접 재배하고 가공한 야채와 과일 통조림이
겨우내 먹을 수 있을 만큼 쌓여 있다.
해가 긴 여름이면 낮에 화초를 가꾸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신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키운 양털로 천을 짜고 정원의 화초로 천연염색을 한 후
담요와 셔츠를 만들기도 하신다.
남편이 어릴 때 시어머니는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각본을 쓰고 무대를 꾸며
아이들과 인형극 공연을 다니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요리와 바느질을 잘한다.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서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백발, 주름진 얼굴인 시어머니는 여전히 지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계시다.
일 때문에 거칠어진 손과 발조차도 멋스러워 보인다. 그분의 요리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때면 10인분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만들어 내곤 하신다.
음식이나 옷,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데 그분은 아주 까다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고수하신다.
시어머니가 매일 입는 드레스는 1980년대 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외화 <초원의 집> 배우들과 같다.
오스트리아산(産) 옷감으로 전통의상 전문가인 친구들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정원 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어머니는 화초를 구하러 네덜란드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그 외에는 모두 자급자족하는 게 원칙인데, 자급자족이 안 되는 식료품의 경우
농장에서 생산한 무공해 달걀이나 사과 주스 등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웰빙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시어머니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해 오셨다.
시어머니의 섬세하고 예술가적 기질은 자녀들에게 골고루 전해진 것 같다.
남편 역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요리 솜씨와 식탁 차림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남편이 들려주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너무 색달라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 착각할 때가 많다.
그중 생일파티 이야기는 정말 이채로웠다.
어린 시절 남편이 살던 집에는 작은 시내가 하나 있었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시냇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드신 후 나무판과 이끼 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붙여 시냇물에 띄우셨기 때문이다.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케이크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환호하던 순간을
남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형극 순회공연을 했던 것이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남편은 말하곤 한다.
남편이 그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서울에서 살던 우리 부부는
남편이 미국 국방부에서 근무하게 돼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