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4수 끝에 통과했지만
박원순표 층고제한에 막혀
정비계획안 심의 수차례 무산
33개동 5778가구 결국 승인
목동 재건축 단지도 훈풍 기대
19일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경. [매경DB]
'재건축 규제 상징'으로 꼽힌 은마아파트(서울 대치동)가 재건축 조합 추진을 위한 길이 열리면서 다른 서울 재건축 대장주 단지들 사업에도 훈풍이 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매매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기존 재건축 추진 단지들에는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가격 반등 요인이 될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비계획안이 통과된 직후인 19일 오후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분주한 분위기였다. 한 공인중개사는 "한동안 끊겼던 매수 문의 전화가 조금씩 오고 있다"며 "동시에 매도자들에겐 호가를 올리겠다는 연락이 온다"고 했다. 이 중개사는 다주택자인 매도자가 급매로 19억원에 내놓은 물건이 있었는데 계획안이 통과되자 호가를 1억원 올렸다고 전했다. 은마아파트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지만 집값 상승을 우려한 역대 정부·서울시의 강력한 규제와 입주민 간 거듭된 반목 탓에 재건축 추진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안전진단만 '4수' 끝에 통과한 은마아파트는 층수 규제에도 발목이 잡혔다. 당초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49층 높이로 신규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 층고 제한'을 도입한 이후 정비계획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도입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역시 은마아파트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은마아파트처럼 입지가 좋은 대규모 단지일수록 재건축사업에서 수익성이 높은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로 수익이 줄어들면 사업성 역시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건축을 늦게 추진한 개포주공은 사업이 이미 끝나고, 강남의 다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조합 설립을 마쳤는데 은마아파트만 조합 설립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정부와 서울시의 고강도 규제는 '주민 분열'이라는 악재로 이어졌다. 오랜 기간 사업이 반려되면서 사업 방식에 대한 주민 의견이 갈라졌다.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조합 추진위원회를 설립한 것은 2002년이지만, 이후 20년 동안 주민들 의견이 갈리면서 재건축 '만년 유망주'로 남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은마아파트에 등장한 재건축 추진 관련 단체만 은마반상회, 은마소유주협의회, 은마사랑모임 등 수곳에 달한다. 지난해 9월에는 지도부 전체가 해임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지지부진하던 분위기는 올해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5층 룰'을 폐지하면서 주민 갈등이 사라졌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과감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은마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새롭게 결성되면서 재건축사업 논의도 탄력을 받았다. 조합 설립을 위한 마지막 문턱인 도계위를 19일 통과하면서 조합 설립과 함께 재건축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 시장의 앓던 이가 빠졌다"며 "서울 지역 재건축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평가했다.
변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다는 점과 사업비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소식만으로도 강남 일대 재건축 단지 가격이 1억~2억원씩 올라갔을 텐데 요즘 분위기에서 다른 단지들도 이 같은 반등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당장은 초급매 매물이 사라지고 호가가 바뀌겠지만 실제 거래가 이어질지는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문제는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흐름이 안 좋다는 것"이라며 "활황기엔 굉장한 가격 상승 요인이 됐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긴 어려워 보인다. 금리 인상 쇼크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다른 재건축 단지에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전망이다. 서울에서는 은마아파트뿐만 아니라 강남구 압구정 일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 등이 대표적인 '재건축 대장주'로 꼽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단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규제 때문에 재건축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추진을 위한 길이 열린 만큼 다른 단지들의 기대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 원장은 "은마아파트는 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막는 '하방경직'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여의도나 목동의 다른 재건축 아파트들 가격도 은마아파트 사례를 보고 급격히 떨어지거나 하진 않을 듯하다"고 밝혔다.
[정석환 기자 / 이희수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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