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은혜로운 당신] 김선일 동시 작가(강동교당)- “우리 모두는 한때 동시 작가였다”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처음부터 동시였던 것도, 문학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능직공무원으로 이른바 ‘철밥통’ 기관에 재직하던 시절, 문득 불어온 ‘문학의 꿈’은 결국 사달을 냈다. 주위의 만류에도 끝끝내 그는 단국대학교 국문과에 뒤늦게 진학해 공부했다. 당시는 PC통신 시절로, 유니텔 문학동에서 활동하며 시 몇 편을 냈다. 그때 ‘내 시가 책이 되어 나오는 재미’를 느끼고 그 길로 동시 작가이자 아동문학가의 길에 들어섰다. 어린이문학 전문가 김선일 동시 작가(법명 성덕, 강동교당)의 짧지만 긴 여정이다.
쉬운 언어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
<누구 발자국이지?>(필명 김은성), <먹여주고 재워주고> 등을 써낸 김선일 작가. 특히 <먹여주고 재워주고>는 그림책으로는 드물게 2쇄를 찍었고, 최근 북스타트코리아, 국립 어린이도서관의 추천 도서로도 선정됐다. ‘전업 작가가 꿈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택한 길도 이쪽이라, 그는 현재 국풀교육 연구팀에서 국어교육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국동시작가협회와 동시 테마 웹진 <동시빵가게> 집행부 일에 가장 애정을 두고 있다.
“동시는 어린이들의 시가 아닌, 동심이 들어간 시입니다. 동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보니 동시의 대상은 보통 ‘0세부터 100세까지’라고 표현하죠. 어렵지 않은 쉬운 언어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이에요.”
‘뭔지 모르지만 근사’, ‘잘 모르겠지만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성인 문학과는 달리, 동시는 매우 쉽고 선명하다. 이 때문에 성인 시를 쓰다가 동시로 넘어오는 작가들이 많은데, 윤동주, 박목월, 정지용 같이 기라성같은 작가들도 다작의 동시를 남겼다.
마치 법문처럼 하루 활력 주는 사과 한 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처럼 동시 작가가 많지 않습니다. 계몽운동 시절 어린이들도 그 대상이었기에 읽고 쓰기를 시로 많이 표현했죠. 우리 모두는 한때 동시 작가였고, 동시를 암송했으며, 또한 동시의 애독자였죠.”
이는 곧 그의 꿈과도 맞닿아있다. 동시를 향유하는 세대가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것. 지금은 유치원생이 가장 많이 읽지만, 지치고 힘든 어른의 마음에야말로 동시가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그다.
“요즘은 다들 짧게 읽고 보잖아요. 동시는 짧은 가운데 내 추억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내 원래 마음도 있습니다. 마치 법문 말씀을 읽듯 아침에 사과 한 알 먹듯 읽어보세요. 가끔은 그저 재미있고 편하게, 순수한 언어유희를 느껴보는 것도 좋아요.”
시조 시인 시아버지와 글쓰는 공감대
원불교인권위원회 활동을 하는 남편(김양수 교도, 본명 치성)을 만나면서 일원가정에 깃든 김 작가. 그의 시아버지는 시조 시인 김창운 작가(법명 형진, 강동교당)다. 시아버지가 교사로 퇴직하고 자서전을 쓸 때 그는 교정·교열을 봐주며 ‘장르는 다르지만 글 쓰는 사람끼리의 공감대’를 쌓았다. 시아버지와 글 쓰는 고충이나 고민, 작품 활동에 대한 응원을 나눌 수 있으니 특별한 마음도 든다.
동심의 시선으로,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담아내는 김 작가에게 ‘원불교가 어린이들의 낙원세상을 위해 할 일’을 청했다.
“유치원 프로그램 연구를 10년 정도 했는데, 유치원에서 꼭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감정이에요.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잖아요. 원불교에서 하는 마음공부나 경계를 당할 때 취사 등은 교단의 울을 넘어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갖고 있어요.”
0세부터 100세까지 쓰고 읽을 수 있는 문학, 누구든 그 마음을 시원하고 순하게 만드는 글. 그것이 바로 ‘동시’라는 세계다. 그러니 그는 돈이나 명예 없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도 동시를 쓰고 알린다. 세상의 모든 동심을 위해, 계속 쓰여져야하기 때문이다.
그 서원으로 오늘도 원고지 앞에 앉는 김선일 작가, 그 미소 속에 천진하고 사없는 하늘사람의 마음이 투명히 비친다.
[2024년 5월 22일자]